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와 함께 하는 ‘CSI/Profiling’ 기법 살펴보기


[보안뉴스 원병철] ‘미스터리한 사건, 그 현장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한 장의 초대장이 편집부 앞으로 전해졌다. 얼마 전 발생한 살인사건 수사에 직접 참여해 사건을 분석하고, 범인을 프로파일링해 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초대장을 발송한 곳은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였다. 





전직 경찰대학교 교수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로파일러(Profiler)인 표창원 박사가 가상으로 벌어진 살인사건을 통해 CSI와 프로파일링을 배우고 체험하며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지난 8월 분당 코리아디자인센터에서 개최된 ‘CSI/Profiling 체험전’은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참여해 직접 사건을 추리하고 분석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물론 실제 범죄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까지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가 주최한 ‘CSI/Profiling 체험전’은 크게 6개의 방(Room)으로 구성됐으며, 한 대학교수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프로파일링방법과 증거수집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첫 번째 방은 ‘범죄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체자레 롬브로조 박사(Dr. Cesare Lombroso) 룸’으로, 먼저 참가자들은 CSI 조끼와 현장 조사시 현장을 훼손하지 않도록 장갑과 덧신, 마스크 등 CSI 장비를 착용하고 영상을 통해 범죄수사 기법과 체험수칙, 그리고 사건 개요를 들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방인 ‘법 과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에드몽 로카 르 박사(Dr. Edmond Pcard) 룸’에 들어서면 범죄현장과 증거의 위치 등을 알려주고, 혈흔의 자국을 통해 피해자가 어디서 어떻게 상처를 입었는지 배울 수 있었다. 





역사학자이자 대학교수인 고민중 교수가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수면제를 먹다 죽었는지 주변에는 수면제와 빈 약통이 흩어져 있고, 자살을 의심하게 하는 유서가 발견됐다. 하지만 고 교수의 지인들은 그가 결코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고 증언하고 있다. 참관객들은 실제 고민중 교수가 사망한 현장에서 증거물을 채집하고 사건을 프로파일링해야 한다.





과학수사의 창시자라 불리는 ‘알퐁스 베르티옹(Alphonse Bertillon) 룸’에서는 사건 현장에서 얻은 증거물을 검사하고 분석하는 곳이다. 여기서 참관객들은 핏자국을 통해서 사건을 재구성하고, 머리카락과 섬유질, 지문 등을 분석해 범인을 특정할 수 있다.  


또한 참관객들은 경찰과 검시관의 보고서를 통해 다양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참관객은 법의학의 창시자이자 코난 도일의 스승이라 불리는 ‘조셉 벨 박사(Dr. Joseph Bell) 룸’에서는 어떤 식으로 사건이 벌어졌는지 사건을 재구성해보고, 범죄인학과 범죄심리 수사기법의 창시자 ‘한스 그로스 박사(Dr. Hans Gross) 룸’에서 다른 참관객들과의 토론을 통해 프로파일링을 마무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적 수사기법의 창시자 ‘유진 프랜시스 비독(Eugene Francois Vidocq) 룸’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나면 참관객은 수료증을 발부받고 주최자인 표창원 박사를 만나는 순서로 진행됐다. 



[원병철 기자(sw@infothe.com)] 







[이색 직업인] 법의학 전문가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법의관의 삶에 대해 듣기 위해 만난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의 얼굴에선 법의관다운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사건 현장의 증거들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눈빛이 돋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서 원장은 1991년 법의관에 임명된 이래 25년째 외길을 꿋꿋이 걸어왔다.   

기자는 인터뷰에 앞서 “예전에는 조금 생소했던 ‘법의관’이라는 직업이 최근엔 미국·한국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에게 많이 친근해졌다”고 운을 뗐다. 서 원장이 최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인에 대한 감정결과를 발표하면서 법의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역할이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법의관은 범죄나 사고에 관련된 죽음을 조사하는 직업입니다. 사인(死因)과 사망 경위를 의학적·과학적으로 분석하죠. 법의관은 명칭만 달라졌을 뿐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검시(檢屍)제도와 같은 것입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직업 중에 하난데, 불행히도 우리나라가 물질만능주의에 빠지면서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기피하는 길 중 하나가 됐죠.”

서 원장 역시 처음부터 법의관이 될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그는 “당시에는 병리학에 종양학, 면역병리학, 법의학 등 세부전공이 있었다”며 “사람들이 법의학은 전공을 잘 안 하니까 법의학을 공부하면 좀 더 훌륭한 병리학 교수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국과수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조금 불순한(?) 의도를 갖고 법의관이 됐지만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순번을 정해놓고 돌아가면서 사건을 맡기 때문에 같은 법의관이라도 전혀 다른 사건을 맡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순번일 때 큰 사건을 많이 맡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많이 받게 됐고, 사인이나 사망 경위를 밝혀내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는 연세대생 노수석군 사망사건, 최덕근 전 블라디보스토크 영사 피살사건,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 살인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사건들을 도맡아 왔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구지하철 화재사건 등 대규모 사건의 부검, 검안에도 관여했다.

수천건의 부검을 해오는 동안 법의관으로서 힘든 점은 없었을까.

“법의관은 한 사건을 맡으면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부터 굉장히 복잡한 데이터까지 분석한 후, 자신이 갖고 있는 법의학에 대한 신념에 입각해 법정에서 감정 결과를 발표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기면(그러면) 기고(그렇고) 아니면 말고’ 식의 추측이 아니라는 거죠. 이번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례처럼 과학적인 수사 결과를 국민들이 믿지 못할 때 힘이 듭니다.”


- 서 원장은 2012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한 후 혁신적 변화를 이끌어왔다. 2주 만에 8만명의 감정 지연(遲延) 건을 처리하고, 감정 기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범죄 현장에 답이 있다
서 원장은 미국의 ‘과학수사대(CSI)’와 우리나라의 법의관이 다른 점은 ‘수사권’의 유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변사체가 발견되면 법의관(ME·Medical Examiner)이 중심이 된 CSI가 출동해 현장 감식과 부검, 수사까지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전담 검시제’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경찰 등 수사당국이 검시 업무를 겸하는 ‘겸임 검시제’로 운영된다. 변사체가 발견되면 경찰의 초동수사반이 기초적인 검시를 진행한다.

그는 “국과수는 수사기관의 협조를 얻어야만 수사가 가능하다”며 “점차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기본적으로 수사기관과 국과수가 서로 믿고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의관은 수사 초기 단계에 현장에 가지 않고 사건 기록과 현장 사진을 보고 사건을 접하는데 사건 개요가 잘못 작성돼 있어 오판을 한 적도 있다”며 “법의관이 현장에 꼭 가야 하는 이유는 현장에 답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어진 자료 외에 새로운 증거가 많이 나타나면 재(再)감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인데요. 재감정을 통해 23년 만에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은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을 때, 이에 항의해 분신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총무부장이던 강기훈 씨가 대신 써줬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돼 복역했던 사건이다.


법의학은 인간의 최종 운명을 가름하는 학문
서 원장은 2006년부터 법의관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법의학의 장점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각양각층의 사람들에게 강의를 해왔다. 서 원장은 “부검실이 겨울엔 춥고 여름엔 물이 역류해서 바닥에 질퍽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며 “꾸준한 강의를 통해 이 같은 현실을 알렸고, 그 덕분에 환경을 개선하고 봉급도 올리고 사회적 이미지를 높였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려낸 SBS 드라마 〈싸인〉은 서 원장의 강의 내용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싸인〉은 한국판 ‘CSI : 과학수사대’로서 법의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 원장은 “실제로 드라마 방영 이후 법의관이 되려는 의대생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며 “국과수에서 시나리오를 검토해주고 주인공역을 맡은 박신양 씨가 교육을 받고 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25년간 수많은 범죄현장의 실마리를 풀어내고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을 살려낸 그에게 법의학이란 무엇일까.

“저는 법의학이 인간의 최종 운명을 가름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죽음도 삶의 연장입니다. 사람은 죽어도 남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영원히 있잖아요. 어떤 분이 명예롭게 돌아가셨다고 하면 그 명예를 지켜드리고, 억울하게 돌아가셨다고 하면 부검을 통해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거죠. 그렇게 가족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게 하는 겁니다. 죽음은 그 삶의 종점을 찍는 것이지만, 삶의 연속성을 만들어가기도 하는 거죠.”  

 

▒ 서중석 원장은…
1957년생, 83년 중앙대 의학과 졸, 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 94년 중앙대 대학원 의학 박사, 201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 부장,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대한법의학회 감사, 아시아법과학회 회장.


글:
 백예리 기자 (byr@chosun.com)
사진: 이신영







미국 인기 드라마 'CSI 마이애미'의 흑인 여성 검시관 알렉스 우즈는 점심을 먹고 들어와선 태연하게 시체를 이리저리 만지면서 시체의 이빨 사이나 손톱에서 결정적인 살해 단서를 찾아내 호레이쇼 반장이 범인 잡는 것을 돕는다. 시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어린 아이들의 시체를 대할 때면 눈물을 글썽이는 알렉스의 인간적인 매력 덕분에 'CSI' 시리즈 중 마이애미편이 특히 인기를 끄는지도 모른다.

검시관은 살인이나 자살 사건 등이 발생했을 때 경찰관과 함께 검시를 해서 사망 원인을 밝혀낸다. 1920∼30년대 미국에서 검시관은 선출직이었다. 사인(死因)을 알 수 없는 살인 사건이 잇따르면서 정치인과 부동산 중개업자. 술집 주인, 배관공, 조각가, 목수, 페인트공, 우유배달원이 검시관으로 일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쓴 사망진단서는 엉터리일 수밖에 없었다. '사인이 자살일 수도 있고, 타살일 수도 있다'거나 '폭행 또는 당뇨병일 수 있다', '당뇨병, 결핵, 신경성소화불량 중 하나다'. 심지어 '신의 뜻'이라고 적은 사망진단서도 있었다. 지금은 시체가 자연 상태에서 부패하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시체농장(Body Farm)까지 운영할 정도로 과학수사에서 앞서 있다.

조선시대의 검시제도도 엄격하고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다. 검시관들은 육안으로 시체의 76개 부위를 검안해 상태를 기입하고, 구리로 만든 검시척으로 외상의 크기를 재어 시체 형태도를 작성했다. 또 은비녀를 갖고 다니면서 독살 여부를 판단했다. 현대에 들어선 1948년 11월 당시 내무부 치안국에 최초로 감식과가 설치됐고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가 신설됐다. 국과수는 DNA 수사를 통해 2006년 서울 서래마을 영아유기 사건을 해결하는 등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데 공을 세웠다.

변사체로 발견된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씨 시신을 정밀 감식한 국과수가 25일 모든 과학적 기법을 동원했으나 부패가 심해 사망 원인을 판명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변사체는 유씨가 맞다고 다시 확인했다. 전날 풀밭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키가 큰 듯한 유씨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의혹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꽉 막혀 있는 세월호 정국만큼 답답한 노릇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완전범죄와의 전쟁’은 진화하고 있다. 인간의 지혜에만 의지해 사건의 진실을 밝혔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첨단과학이란 도구를 이용해 범죄의 흔적을 찾는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수사관들이 범죄 현장에서 발견한 발자국을 정밀조사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한국판 CSI, 과학수사의 모든 것

《 “Crime Does Not Pay(범죄는 득이 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청와대에서 법무부와 안전행정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영어 문구를 인용하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안전한 나라 행복한 국민’을 강조하며 치안 강화를 강조했다.

경찰은 최근 주민등록시스템에 저장된 지문 4억여 개의 해상도와 선명도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기초로 살인 강도 강간 등 중요 미제 사건에 대해 지문을 다시 검색했고 미제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가고 있다. 2000년 10월 발생했던 서울 구로구 커피숍 여주인 살인사건의 범인 고모 씨(41)를 공소시효 2년이 남은 지난해 5월 검거한 것도 과학수사로 이룬 개가였다.

경찰은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라는 명제를 믿는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완전범죄를 꿈꾸며 범행의 흔적을 지우려 애쓰지만 대한민국 경찰 과학수사팀은 첨단 장비를 사용해 아주 작은 단서까지 찾아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찰은 범죄 피해자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지능범들과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Korea Crime Scene Investigation), ‘한국판 CSI’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  

▼ 온 힘 다해 움켜쥔 손바닥, 그 안에 사건 풀 열쇠가… ▼

속옷 벗겨졌지만 정액 검출안돼… 주인없는 담배꽁초에 혼선 가중

시신 손에서 나온 티셔츠 섬유… 우연히 묻은걸로 보기엔 많은 양

‘반쪽 증거’ 수사에 반전이…


이문철(가명·33) 씨가 눈을 감았다. 

“사건 발생 당일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경찰의 의심이 이 씨를 향했다. 이 씨는 표정 없는 답을 내놨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어요.” 

징검다리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해 9월 22일 오후 11시경. 그날 이 씨의 아내가 죽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주상복합아파트 ○○○호.

잔뜩 부은 아내의 얼굴에는 처참함만 남았다. 팬티는 발목에 가까스로 걸려 있었다. 브래지어는 벗겨진 채였다. 세 딸에게 물리던 젖가슴에 시퍼런 멍이 몇 다발씩 피어 있었다. 아내의 부드러웠던 살결은 부러진 갈비뼈로 구겨졌다. 사이사이 죽음의 그늘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부패가 진행된 아내의 몸속에는 가스가 찼고 높아진 압력 탓에 입가와 코밑으로 피가 새어 나왔다.

아내의 눈동자는 고집스럽게 벽 쪽을 향했다. 할 말이 있다는 듯. 그녀의 마지막 시선이 닿은 곳엔 한 살, 세 살, 다섯 살 된 딸들의 돌 사진과 결혼기념 사진이 걸려 있었다. 결혼 6년차. 남편을 만나고 세 딸을 낳기까지 보낸 많은 시간이 사진에 담겨 있었지만 아내의 죽음은 한 줄로 요약됐다.

‘목졸림에 의한 질식사. 심한 폭행으로 인한 다발성 늑골 골절 및 간 췌장 등 장기 파열, 강도 및 성폭행 시도, 심한 폭행.’ 

평온했던 밤, 아내가 죽었다

아내가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건 23일 오후 1시 반. “이 사람아, 서둘러 집으로 가보게.” 일산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아내가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는 장모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집으로 달려왔다. 전날 밤 첫째 딸 유영이(가명)를 데리고 본가에 가 있던 참이었다. 30분 거리의 집으로 급히 차를 몰며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다. 둘째 아영이(가명·3)와 셋째 수영이(가명·1)가 오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편이 도착했다. 한낮이었지만 주검이 놓인 방 안은 서늘했다. 한기(寒氣)의 의미를 생각할 틈도 없이 두 딸이 달려와 품에 안겼다. 아이의 얼굴에 남은 눈물자국이 아내의 부재(不在)를 예감케 했다. 현관에서부터 거실이 한눈에 들어오기까지는 불과 다섯 걸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불안은 현실로 바뀌었다.


거실에는 벌거벗겨진 아내가 쓰러져 있었다. “여보….” 딱딱하게 굳은 아내는 대답하지 못했다. 품에 안은 두 딸의 체온이 집 안 유일한 온기(溫氣)라는 생각이 들자 남편 목덜미에 소름이 스쳤다.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관에 ‘출입금지 POLICE LINE 수사 중’이란 노란 테이프를 붙이고 나서야 이 씨는 아내의 죽음을 실감했고, 오열했다.

아내의 다리 쪽에서 담배꽁초가 나왔다. 양 젖가슴에는 침이 묻어 있었다. 음모와 머리카락이 시신의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아내의 몸에서 흘러내린 오줌이 이불에 흥건했다. 장롱 서랍은 모두 열려 있었고 컴퓨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주방에서 또 다른 담배꽁초가 발견됐다. 낯선 남자의 주민등록증도 나왔다. 남편 이 씨는 “아내에게 빚을…, 빚을 진 남자가 잠시 맡겨둔 신분증”이라고 했다. 남편은 온전히 한 문장을 잇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아내의 몸에 온도계가 꽂아졌다. 직장온도 33.4도, 12시간 전 사망했다는 뜻이었다. 남편이 첫째 유영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 즈음이다.

‘반쪽짜리 흔적’만 곳곳에 남았다

사건 현장에 남은 흔적은 범인의 목적을 드러내 보이기 마련이다. 단순절도, 강도, 강간, 원한에 의한 살인 등 범인이 남긴 흔적은 범행의 이유를 설명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반쪽짜리 흔적이 너무 많다.” 현장을 살핀 고양경찰서 과학수사팀장이 말했다. 집 안 곳곳에 남은 수많은 흔적은 목적이 빠진 ‘반쪽짜리’였다. 속옷이 벗겨진 아내의 몸에 정액은 없었다. 방 안을 뒤진 흔적은 있지만 귀중품은 그대로였다. 화장대와 이불 밑처럼 꼭 뒤져야 할 곳에 손을 댄 흔적은 없었다. 이상했다. 

주민등록증의 주인은 범행 추정 시간 당시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담배꽁초의 주인도 아니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제3자의 지문이나 족적(足跡)도 없었다. 수거된 음모는 모두 남편과 아내의 것이었다. 목적이 보이지 않는 반쪽짜리 흔적은 수사를 안갯속으로 내몰았다.

아내의 젖가슴에서 발견된 타액의 주인은 둘째 아영이와 막내 수영이었다. 유일하지만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목격자. “너희가 배가 고파서 엄마 브래지어를 벗겨 젖도 빨고 그런 거니? 너희가 속옷을 벗겼어?” 목격자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2개의 담배꽁초에서 검출된 유전자형과 일치하는 남성 없음.’ 

담배꽁초에 걸었던 기대가 사라졌다. 당일 집에 택배를 배달했던 배달원, 아내에게 빚을 지고 주민등록증을 맡긴 남성,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웃, 그리고 남편까지 담배꽁초 유전자(DNA) 분석 결과와 일치하는 용의자가 없었다. 주인 없는 담배꽁초는 단서가 되지 못했다. 아내의 통화 기록도, 용의자들의 스마트폰 인터넷 검색기록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보험에도 들지 않았다. 경찰 수사는 원점에서 맴돌았다.

경찰은 범행시간 전후로 엘리베이터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그곳에도 용의자의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전날 밤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선 남편과 딸의 모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화면 속 남편 이 씨는 열림 버튼을 누르고 현관 쪽을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었다. 첫째 유영이가 아빠와 눈을 맞췄다. ‘엄마한테 인사해야지’라는 의미를 읽은 유영이도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9월 22일 오후 11시 58분. 폐쇄회로 화면의 디지털 숫자 위로 겹쳐진 유영이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현관 앞 모습이 화면에 잡히지 않았지만 유영이의 웃음은 남편과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의 모습을 짐작하게 했다.

보이지 않았던 결정적 증거

‘변사자의 손바닥에서 채취한 테이프에서 남편이 당일 입고 있던 반팔 티셔츠 구성 섬유와 같은 보라색 계열 섬유물 발견. 동일한 두께 꼬임 및 성분 유사한 섬유가 식별됨.’

사건 발생 8일 뒤인 10월 1일. 아내의 손과 목에서 채취한 미세증거물 분석 결과가 고양경찰서에 도착했다. 사망 직전 아내가 마지막으로 만진 물건이 남편의 반팔 티셔츠라는 뜻이다. 부부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손에 남은 섬유의 양이 너무 많았다. 무엇인가 온 힘을 다해 쥐었을 때라야 남는 양이었다.

“그날 우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애들과 같이 삼겹살을 구워 먹고 아이들을 안방에 먼저 재웠어요. 함께 TV를 보다가 아내가 잔다고 해서 큰 애만 깨워서 나왔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아내와 다투지는 않았습니까?”

“작은 말다툼이 있긴 했지만 곧바로 화해했어요. 당일 아내의 휴대전화로 보낸 ‘앞으로 더 잘 지내자’는 문자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어떤 프로를 보셨죠?” 

“개그콘서트를 봤습니다.” 

범인 추적과 사건 해결의 핵심인 경찰의 과학수사 기법은 최첨단을 달린다. [1] 사건 현장에 남은 핏방울만으로 범행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2] 지문을 찾아 용의자를 추적한다. [3] 현장에 남은 발자국도 용의자가 신고 있는 신발의 종류, 신체조건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제공


“당일 보신 개그콘서트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

남편은 대답하지 못했다. 경찰은 남편의 알리바이를 증명했던 CCTV에 아내의 모습이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남편이 손을 흔들었던 곳, 아이가 아빠를 따라 손을 흔들었던 방향. 그곳에는 남편과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의 미소가 아닌, 눈조차 감지 못한 아내의 시신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경찰이 짐작한 ‘아내의 배웅’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었다.

뒤따라 발견된 또 하나의 CCTV 화면. 아내의 시신이 발견된 당일 경찰은 현장 훼손을 막기 위해 오열하는 남편을 두 아이와 함께 집 밖으로 내보냈다. 아내의 옆에서 눈물을 참지 못했던 남편은 엘리베이터에 타자 금세 태연해졌다. 언제 눈물을 흘렸느냐는 듯 무심히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고쳤다. 머리를 만지고 이를 내보이며 치아 상태를 확인했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모습이 아니었다.

다음 날 오후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사 조사실. 남편이 거짓말탐지기 앞에 앉았다. “당신이 부인을 죽였습니까?” 남편의 호흡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태연한 척 애써 가다듬은 호흡이 떨렸다. “아내를 때려서 죽게 한 게 당신입니까?” 그가 경찰의 시선을 외면했다. 거짓말탐지기의 기록계 파장이 이 씨의 맥박과 호흡을 따라 요동쳤다. “담배꽁초는 아내를 죽이기로 계획하고 미리 준비한 것이죠?” 경찰의 마지막 질문에 남편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항상 저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길 3년째. 남편은 완전범죄를 계획했다. 아내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길가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내를 향해 손을 흔드는 척한 것도, 첫째 유영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 것도 모두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셋째를 엄마의 시신과 함께 두고 잠에서 깬 아이들이 현장을 훼손시켜 주길 바랐다. 자식들이 직접 죽은 엄마의 시신을 더럽히길 기대했다.

경찰은 “남편은 경찰 조사를 받을 때마다 꼭 범인을 잡아 달라고 울며 부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범행을 실토한 날, 남편은 울지 않았다.  

▼ 혈흔은 알고 있다… 범인 체형-자세, 도망친 속도까지 ▼

현장 주변 말라붙은 침자국에서 DNA 채취해 절도범 검거

땀방울 DNA분석해 용의자 잡고… 대변 속 장점막 세포가 단서되기도

흐릿한 CCTV 얼굴식별 잘안돼… 특유 걸음걸이 분석 기법 개발


모든 사건이 경찰의 바람처럼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도 수많은 사건이 ‘장기 미제’로 남아 있다. 그중 1986년부터 5년간 10명의 부녀자가 성폭행당한 후 살해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지금도 대한민국 경찰에 깊은 흉터로 남아 있다. 

역대 최대 경찰력이 동원된 사건이었다. 당시 경찰은 사건 수사에만 연인원 200만 명이 넘는 인력을 투입했다. 조사한 용의자와 참고인이 2만1280명에 이르고 지문 대조만 4만116명을 했다. 하지만 경찰이 알아낸 단서는 ‘20대 중반의 B형 남성. 165∼170cm 호리호리한 몸매’가 전부였다.

30년 가까이 지났어도 사라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고서야 경찰은 비로소 ‘과학수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덥수룩한 머리에 낡은 점퍼를 걸치고 동물적 직감이 최고의 수사방법이란 착각에 빠진 경찰의 모습은 사라졌다. 범죄 현장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밤낮으로 피해자 주변을 배회하며 단서가 ‘걸리길’ 바라는 형사는 이제 없다.

2014년 한국의 과학수사는 어떤 모습일까. 동아일보는 경찰청 과학수사센터(KCSI)와 함께 전국 특별시·광역시도 16개 지방경찰청에서 최근 2년 동안 강력사건 해결에 과학수사 기법이 활용된 사례를 종합했다. 사건 현장이나 피해자 신체에 남은 작은 증거를 찾아 분석하는 미세증거 분석, 핏방울의 모양을 관찰해 범행을 재구성하는 혈흔형태 분석, 손바닥에 난 손금 무늬 모양으로 범인을 식별하는 장문(掌紋) 분석, 폐쇄회로(CC)TV에 촬영된 용의자의 걸음걸이 특징을 비교·분석하는 걸음걸이 분석…. 경찰의 과학수사 기법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해졌고 범인 추적과 사건 해결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 방울의 피에 담긴 의미

혈흔은 범행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큰 단서다. 강력사건 현장에서 발견되는 혈흔은 유전자(DNA) 분석에만 쓰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피의 다양한 성질은 과학수사의 중요한 단서로 활용된다.

혈액은 점도가 1인 물에 비해 4배 정도 점착성이 높아 끈끈하게 달라붙는다. 혈관 밖으로 나온 피는 젤리처럼 굳어진다. 굳어지기 전 혈액은 가해진 힘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바뀌며 분산된다. 혈흔은 재현 가능한 흔적이며, 경찰은 혈흔의 분포상태 모양 특징 크기 등의 정보를 통해 사건 당시 상황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다.

이를테면 위에서 아래로 곧장 떨어지는 자유낙하 혈흔의 지름을 통해 피해자나 가해자의 자세를 유추할 수 있다. 또 범행도구의 움직임에 따라 벽 등에 뿌려진 이탈혈흔의 궤적은 범행 도구를 휘두른 횟수와 방향을 증명한다. 움직이면서 흘린 피는 움직인 방향으로 폭이 줄어들며 긴 모서리를 남기는데 이에 따라 범인이나 피해자의 이동 방향과 속도를 알아낼 수 있다. 

“제가 죽인 것이 아닙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거짓을 말하지도 않는다. 몸에 남은 다양한 흔적들로 오직 진실만을 얘기한다. 서울 양천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연구소 법의조사과 법의관들이 시신을 부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11년 11월 대전지법 국민참여 재판정. 대전 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도박을 하던 일행 2명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이모 씨(53)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이 씨의 주장은 간단했다. “함께 도박을 하던 두 사람이 심하게 싸워 이를 겨우 말렸다. 옷에 두 사람의 피가 묻어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두 사람이 서로 싸우다 지쳐 죽은 것이다.”

숨진 두 사람은 얼굴이 뭉개질 정도로 심한 폭행을 당했다. 굵은 전선을 자를 때 쓰는 절단기가 범행 도구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절단기로만 80여 차례 폭행당한 흔적이 있다”는 소견을 냈다.

사건 현장에 출입한 사람은 이 씨와 죽은 2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함께 있었다는 정황만으로 이 씨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경찰은 혈흔형태 분석 전문요원을 수사에 투입했다. 벽과 천장, 방바닥 등 사방으로 튄 핏방울의 흔적을 추적해 각각의 주인을 찾아나갔다.

두 사람이 수십 차례 흉기에 맞았던 장소는 서로 달랐다. 거실과 화장실 앞, 두 사람은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벽에는 160cm 정도의 남성이 흉기를 휘둘렀을 때 보이는 혈흔이 남았다. 이 씨의 키와 같았다. 피해자들의 발바닥은 깨끗했다. 서로를 공격했다면 옷과 발바닥에도 핏자국이 남아 있어야 했다. 또 이들의 몸에 남은 혈흔은 모두 본인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였다. 이 씨는 징역 17년형을 선고 받았다.

침 똥 땀, 모두가 과학수사의 단서

피가 아니라도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흔적은 과학수사의 단서가 된다. 머리카락 침 땀, 심지어 대소변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경찰이 사건 현장 주변에서 수백 개의 담배꽁초를 수거해 DNA 분석을 하는 것도, 바닥에 말라붙은 침 자국을 찾는 것도 용의자의 흔적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4월 경기 여주의 한 귀금속 상가. 2명의 남성이 출입문 강화 유리를 절단기와 망치로 깬 뒤 15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범행에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남짓.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도착했을 때 범인들은 이미 달아난 뒤였다. 단서는 현장에서 50여 m 떨어진 곳의 CCTV 한 개뿐이었다. 경찰은 용의자들이 범행 직전 담배를 피우다 바닥에 침을 뱉는 장면에 주목했다. 현장을 다시 찾은 경찰은 침 자국에서 DNA를 채취해 범인을 검거했다.

6월에는 똥이 단서가 됐다. 범인은 가출청소년 이모 군(17). 그는 길거리를 배회하다 갑자기 배가 아파오자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 용변을 봤다. 골목 구석에 쪼그려 앉아 급한 볼일을 보던 이 군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반쯤 열린 식당 주방의 창문이었다. 그는 주변에 떨어진 전단지로 대충 뒤를 해결하고는 창문으로 들어가 현금을 훔쳐 달아났다. 하지만 경찰은 대변과 함께 배출된 장점막 세포에서 이 군의 DNA를 찾아냈다.

땀으로 범인을 잡은 것은 8월이다. 경찰은 강원 춘천시 효자동 일대에서 잇따라 발생한 절도 사건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불과 8일 동안 신고 건수만 21차례. 피해주택마다 과학수사팀이 출동했지만 범인은 지문 하나 남기지 않았다. CCTV에도 범인의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피해 가정의 화장품 박스 위에 땀방울이 떨어진 흔적이 발견됐고, DNA 분석 결과 절도 전과가 있던 김모 씨(29)의 땀으로 확인됐다. 90kg이 넘는 거구의 절도범. 그는 농촌지역이나 재개발지역의 빈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경찰의 감시망을 피했지만 결국 무더위에 흘린 땀 한 방울로 덜미를 잡혔다.

아무리 얼굴을 가려도 숨길 수 없는 것

전국에 설치된 CCTV는 300만 대에 이른다. 최근 차량용 블랙박스 설치가 늘면서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범행을 감시할 수 있는 ‘눈’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 50만 화소 이하의 저해상도 카메라로 사건 관계자의 얼굴을 특정하기에는 ‘시력’이 좋지 않다. 또 지능화된 범인들이 CCTV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마스크와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는 사례가 늘면서 CCTV의 미비점을 보완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찰은 ‘걸음걸이 분석 기법’을 개발하고 있다. 사람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는 걸음걸이를 통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증거 분석 기법으로 영국 미국 등에서는 이미 수사 단계에서부터 걸음걸이 분석을 실시하고 있다.

국내에 이 기법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해 5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자택 화염병 투척 사건에서 경찰이 걸음걸이 분석으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을 때다. 애초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인 임모 씨(36)를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다. 경찰은 영국 런던 메디컬센터(LMC) 족병학과의 권위자인 헤이든 켈리 박사를 찾아가 CCTV 분석을 의뢰했다. 그는 범행 현장 장면과 임 씨의 모습이 찍힌 CCTV를 보고 ‘두 인물은 동일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범죄사실이 소명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최용석 계장은 “걸음걸이 분석 기법은 단순히 팔자걸음 여부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체형, 다리 길이 등과 같은 신체적 단서와 걷는 버릇이나 속도 같은 습관적 단서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며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국내 전문가가 양성되면 범인을 찾아내는 또 하나의 강력한 과학수사 기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부검의 1원칙 “죽은자는 거짓말 못해, 그것만 믿어라” ▼

죽어버리겠다는 마음 먹었어도… 자해 순간 망설여 ‘주저흔’ 남아

몸의 멍은 맞을때 생존상태 증거… “부검은 망자와의 마지막 대화

원통함 남지않게 살피고 또 살펴”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경찰의 과학수사기법이다. 현장에서 확보된 주변 증거들을 토대로 용의자를 좁혀가고 자백을 받아낸다.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에는 진술의 허점을 찾아낸다. 범인이 “나는 사건 현장에 없었다”고 거짓말을 한다면 ‘그가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게 과학수사의 역할이다. 죽은 사람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으니 용의자의 거짓을 하나씩 벗겨 나가는 식이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늘 살아있는 사람이다. 반면 죽은 사람은 말은 하지 못해도 진실하다. 죽은 자는 자신의 사인(死因)을 입이 아닌 몸으로 증명한다. 질식해 죽은 사람은 눈꺼풀 사이 좁쌀 같은 반점이 남고, 화재 현장에서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사망한 사람은 손톱이 선홍색을 띤다.



‘한국 과학수사의 본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약물·독물 및 마약 분석, 화재 감정, 교통사고를 담당하는 법과학부와 변사체의 사인 및 유전자 분석, 범죄심리 분석 등을 맡는 법의학부로 나뉜다. 특히 국과수 부검실은 죽은 자의 몸을 살펴 ‘죽음의 이유와 종류’를 밝혀내는 곳으로 국과수의 핵심 공간이다. 지난해 12월 국과수를 찾은 날, 시신 세 구가 부검실로 들어왔다.

첫 번째 시신

부검대 위에 눕혀진 첫 번째 시신은 결혼식을 올린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김모 씨(35)였다. 왼쪽 가슴 부위에는 3cm 길이로 칼에 찔린 흔적이 있었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검붉어진 속살이 비쳤다.

숨진 남편을 발견한 것은 아내였다. 생활비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던 중 아내는 주방에서 칼을 꺼내 남편을 위협했다. 하지만 아내는 위협만 했을 뿐 찌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남편이 달려들어 칼을 빼앗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 나가 보니 문 앞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자살한 시체에는 보통 ‘주저흔’이 남기 마련이다. ‘죽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막상 흉기로 찌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망설여 치명상을 가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자해로 생긴 상처를 주저흔이라고 한다. 타살인 경우에는 피해자 상처의 길이가 칼의 폭보다 길고 상처 부위 주변이 손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구라도 칼을 피하려 움직이고, 찔린 뒤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때문이다. 대부분 찌른 방향이 일정하지 않고 비스듬한 것도 특징이다.

부검 결과 남편의 상처는 변형되지 않았다. 남편의 몸에서는 주저흔을 비롯한 다른 외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타살인 경우 흔히 발견되는 방어흔도 없었다. 칼로 공격을 당하는 순간 피해자는 칼날에 베이거나 찔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칼을 잡게 되는데 이렇게 생긴 손상이 방어흔이다. 

칼이 몸에 들어온 방향도 평행했다. 상처의 깊이는 가슴 근육까지 뚫을 정도로 깊었다. 손에 쥔 칼은 어깨와 팔꿈치, 그리고 손목 관절을 축으로 움직이는데 상처 부위는 이 범위 내에 자연스럽게 위치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 방배경찰서는 부검 결과를 토대로 이 사건을 자살사건으로 결론지었다.

두 번째 시신

두 번째 시신은 부패 정도가 심했다. 발견 당시 입과 콧구멍에 유충이 득실거릴 정도로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사건을 수사한 담당 형사는 부검의에게 “자살인지 타살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시신이 심하게 부패한 탓이 아니었다. 발견 당시 시신의 모습이 문제였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경기 고양시 인근의 산 중턱. 머리는 나무에 묶인 밧줄에, 두 다리는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려 언덕을 내려가는 승용차에 묶여 팽팽히 당겨지고 있었다. 시신은 초등학생 키 정도의 높이로 공중에 떠 있었다. 조금만 늦게 발견됐다면 부패된 시신이 밧줄의 힘에 의해 두 동강 날 상태였다.

법의관 1명, 법의조사관 2명, 법의학사진전문가 1명 등 4명으로 구성된 부검팀이 한 사람을 부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이다. 이 시신의 부검은 2시간을 훌쩍 넘겼다. 벽과 바닥의 환풍기를 아무리 돌려대도 부검실에 찬 악취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신 발견 당시 ‘1995년에 했어야 할 일이었는데 쓰레기같이 살았다. 난지도에 버려주세요’라는 유서가 함께 나왔다. 1995년은 그의 아내가 죽은 해였다. 유서가 발견됐지만 부검팀은 외상부터 철저히 살폈다. 스스로 목숨을 이토록 잔인하게 끊는 경우는 드물었다. 혹시 모를 타살의 흔적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사망한 뒤에 까진 피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넓고 뚜렷해진다. 상처 부위가 빨리 건조돼 색이 갈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눈에 더 잘 띈다. 밧줄이 감겨 있던 목과 발목에 남은 짙은 상처 외에 다른 상처는 없었다. 부검팀은 목 아래부터 성기 위까지 절개한 뒤 갈비뼈를 들어내 장기를 살폈다. 외부의 힘으로 장기가 파열되면 배 안에 피가 많이 고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의 양쪽 눈꺼풀에서 수많은 점출혈이 발견됐다. 눈 주변의 피부와 입안에서도 무수히 많은 점출혈이 나타났다. 목 졸려 죽은 시신에 흔히 나타나는 흔적이다. 밧줄의 힘에 의해 목의 설골과 갑상연골도 부러져 있었다. 

목에 감긴 밧줄 외에 사인이 될 만한 소견을 찾을 수 없었다. ‘타살의 흔적 없음.’ 국과수는 1차 소견을 내놓은 뒤 장기의 성분검사 등 시신 생화학검사와 조직검사, 수사기록, 부검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종 감정서를 작성한다. 육안의 흔적을 넘어 화학적 흔적을 찾기 위해서다. 최종 감정서 발급까지 걸리는 시간은 3∼6주. 두 번째 시신에 대해 경찰은 자살로 잠정 결론을 내렸고 국과수의 최종 감정서를 기다리고 있다. 

세 번째 시신

넘어지거나 맞았을 때 생기는 멍도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미 사망한 시신에는 아무리 힘을 가해도 멍이 생기지 않는다. 흉기로 시신을 훼손해도 피가 잘 나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검대 위에 올려진 세 번째 시신 박모 씨(56). 그는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멀쩡했다.

박 씨가 죽은 채 발견된 곳은 경기 안양시의 한 신축건물 지하 1층 주차장. 박 씨는 전날 만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왔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박 씨의 아내는 “집 앞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을 봤는데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다. 다음 날 오전 8시경 박 씨는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겉보기에는 멀쩡했던 박 씨의 두개골을 열자 출혈이 발견됐다. 머리뼈는 금이 가 있었고 뇌 안쪽으로 출혈이 발견됐다. 평소 혈압이 높았지만 혈관이 터져 생긴 출혈이 아니었다. 외부 충격에 의해 생긴 흔적이었다.

부검의 첫 번째 원칙은 ‘절대 소설을 쓰지 않는다’이다. 시신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합리적인 추론만 할 뿐이다.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욕심을 내는 순간 무리하게 소설을 쓰게 되고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박 씨의 시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머리뼈에 금이 가 있는 형태와 출혈로 미뤄 봤을 때 ‘외부의 충격’은 확인됐지만 부딪힌 것인지, 누군가가 흉기로 때린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 넓은 면의 흉기로 때려 금이 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홀로 넘어져 다친 것일 수도 있다. ‘외상성 두부손상.’ 부검팀은 자의인지 타의인지를 구분하지 않은 부검 소견을 내놓았다. 나머지 사실은 경찰의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부검은 ‘시신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강하다. 유족들은 차가운 스테인리스 침대에 시신이 눕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병을 고쳐서 낫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죽은 자의 사인을 밝히려 칼을 대기 때문에 두 번 죽인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국과수 이수경 법의관은 “부검은 시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망자(亡者)와 마지막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면 그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작은 흔적이라도 여러 차례 살피는 것은 혹시라도 억울함과 원통함이 남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며 부검은 그런 의미에서 ‘무원(無원)’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dong@donga.com



 

 

 

 

 

 

대한민국 대표 프로파일러 표창원 경찰대학 교수와 과학수사 전문가 유제설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 교수가 펴낸 '한국의 CSI'. 치밀한 범죄자를 추적하는 한국형 과학수사의 모든 것을 담았다. 현장 감식, DNA, 검시 등 과학수사의 대표 영역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상세히 알려주고 오 제이 심슨 사건, 가수 김성재 사건 등 실제 사례를 통해 치밀한 과학수사 현장을 생생하게 담은 책. '한국의 CSI' 저자와의 대화 강연 동영상.

 

 

<출처> http://youtu.be/p2mflJLFm0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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