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기 드라마 'CSI 마이애미'의 흑인 여성 검시관 알렉스 우즈는 점심을 먹고 들어와선 태연하게 시체를 이리저리 만지면서 시체의 이빨 사이나 손톱에서 결정적인 살해 단서를 찾아내 호레이쇼 반장이 범인 잡는 것을 돕는다. 시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어린 아이들의 시체를 대할 때면 눈물을 글썽이는 알렉스의 인간적인 매력 덕분에 'CSI' 시리즈 중 마이애미편이 특히 인기를 끄는지도 모른다.
검시관은 살인이나 자살 사건 등이 발생했을 때 경찰관과 함께 검시를 해서 사망 원인을 밝혀낸다. 1920∼30년대 미국에서 검시관은 선출직이었다. 사인(死因)을 알 수 없는 살인 사건이 잇따르면서 정치인과 부동산 중개업자. 술집 주인, 배관공, 조각가, 목수, 페인트공, 우유배달원이 검시관으로 일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쓴 사망진단서는 엉터리일 수밖에 없었다. '사인이 자살일 수도 있고, 타살일 수도 있다'거나 '폭행 또는 당뇨병일 수 있다', '당뇨병, 결핵, 신경성소화불량 중 하나다'. 심지어 '신의 뜻'이라고 적은 사망진단서도 있었다. 지금은 시체가 자연 상태에서 부패하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시체농장(Body Farm)까지 운영할 정도로 과학수사에서 앞서 있다.
조선시대의 검시제도도 엄격하고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다. 검시관들은 육안으로 시체의 76개 부위를 검안해 상태를 기입하고, 구리로 만든 검시척으로 외상의 크기를 재어 시체 형태도를 작성했다. 또 은비녀를 갖고 다니면서 독살 여부를 판단했다. 현대에 들어선 1948년 11월 당시 내무부 치안국에 최초로 감식과가 설치됐고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가 신설됐다. 국과수는 DNA 수사를 통해 2006년 서울 서래마을 영아유기 사건을 해결하는 등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데 공을 세웠다.
변사체로 발견된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씨 시신을 정밀 감식한 국과수가 25일 모든 과학적 기법을 동원했으나 부패가 심해 사망 원인을 판명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변사체는 유씨가 맞다고 다시 확인했다. 전날 풀밭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키가 큰 듯한 유씨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의혹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꽉 막혀 있는 세월호 정국만큼 답답한 노릇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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