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째 이야기하고 있는데 바뀐 게 없습니다. 검·경 수사권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검시 문제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김형석 대한법의학회 총무이사) 검·경이 검시체계 개선 작업에 나서고 관련법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이를 바라보는 법의학계의 시선은 차갑다. 정치권이나 정부의 진짜 속내는 검시제도에 대한 관심도, 개선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역대 검시제도 개선 작업이 별다른 성과 없이 번번이 무산된 과정을 살펴보면 법의학계의 이 같은 냉소는 이해가 간다.



검시제도 개선 논의는 196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본격적인 건 2000년대 초반 의문사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2002년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건의로 법무부에서 개선 방안까지 내놨으나 유야무야됐다. 2005년 17대 국회 당시에는 윤호중 의원이 검시 대상을 법으로 정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유시민 의원도 각계 의견을 모아 검시법 초안을 만들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유 전 의원의 검시법 초안 폐기는 법의학계가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유 전 의원은 “검찰, 경찰,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관련기관 실무자들과 10여회 협의를 거쳐 합의로 만든 이 법률안이 법사위에서 아무 합당한 이유도 없이 의결을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이명박정부에서는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검시제도 개선 기획조사 및 공청회 등을 통해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 구체적 방안까지 청와대에 보고됐으나 이 역시 흐지부지됐다. 



검시체계 개선작업이 번번이 무산된 배경에는 검시권을 수사권과 결부시킨 검·경 간 갈등이 놓여 있다. 권익위 검시체계 개선 작업에 참여했던 김헌진 전 권익위 전문위원은 “청와대에 보고를 들어가서 마무리지으려고 했던 부분인데 (청와대내에서조차 부처 파견 비서관 간에) 조율이 계속 안됐다”고 말했다. 그는 “각 기관 입장에서 생각할 게 아니라 국민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야만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검시체계 개선 작업에는 이처럼 법무부와 검찰,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법의학계 등 여러 조직이 얽혀 있는 만큼 범부처 차원의 총리 또는 사회부총리 산하 위원회 신설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박종태 대한법의학회장은 “예전 학회 차원에서 정리된 내용은 총리 산하에 검시위원회를 두고 그 위원회가 검시를 관리하는 것”이라며 “변사체가 발생하면 경찰이 법의관한테 신고해 현장 출동하도록 하는데, 일단 (인력을 차차 충원하면서) 시행 가능한 지역부터 하고 점차 확대하자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도 “검시위나 검시를 총괄하는 조직을 만들어 현장 검안 의사부터 검안 자격 등을 관리해야 한다”며 “넓게는 의과대에 법의학교실 설치를 의무화하고 의사고시에도 법의학 과목을 넣는 등 법의 양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은 부처 간 권한 갈등에 휩싸일 가능성도 크다. 한 법의학자는 “총리실 소속 검시위를 만들자고 하면 기관 권한 싸움이 시작돼 개선 작업이 난관에 부닥친다”며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의사 얘기는 없는데 형사소송법 혹은 규칙에라도 ‘이러이러한 경우는 법의관의 검시를 받아 처리하라’고만 넣어도 굉장한 진전이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검사 판단에만 맡겨 놓은 검시 대상 일부를 ‘수용시설 내 사망사건’ 등 일정 상황에는 무조건 검시하도록 법에 정해 놓는 방안이 시급하다. 검안서를 모든 의사가 쓸 수 있도록 돼 있어 부실한 검안서가 쏟아지는 현실도 고쳐야 한다. 법의학자만 검안서를 쓰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법의학자가 부족해 당장 어렵다면 검안서 작성 교육을 따로 받은 의사만이 검안서를 쓰도록 해야 한다. 



경찰은 검시권을 검찰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내부적으로 가능한 방안을 모은 것이 지난 13일 발표한 ‘변사사건 개선 종합대책’이었다. 임상병리학·간호학 등을 전공한 경찰검시관을 대폭 늘리고, 검안 경험이 많고 현장에 출동할 수 있는 일반 임상의사들로 인력풀을 꾸려 현장 검안을 강화겠다는 것이 요지이다.

그러나 여전히 법의전문의사들을 활용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현장 검안의 인력풀에 민간 법의학자 9명을 포함했지만, 경찰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민간 법의학자와 적극적인 공조체제를 구축한 부산·울산은 만족도가 높은 반면에 다른 지역에서는 “공적인 수사 영역에 민간 법의학자를 개입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조를 꺼려 왔다. 

민간 법의학자와 경찰의 공조체계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과수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소수의 믿을 만한 법의학자들이 활동하지만 나중에는 하나의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부검 대상 명문화·검시는 법의관이… “죽음의 사각지대 해소”
우리나라 검시제도는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수십년 동안 곪아 온 제도를 바로잡으려면 간단한 처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가장 이상적인 대수술은 법의관 제도를 만들어 현재 검사에게 있는 검시권을 법의학자에게 주는 것이다. 수사는 수사기관이 맡고 시체는 법의관이 맡아 각자 전문성 있는 일만 하자는 얘기다.



응급처치도 시급한 현실이다. 검시 대상 죽음을 법에 명시하고, 검안을 할 수 있는 의사의 조건을 강화하는 일이다. 이러한 장·단기 대책을 함께 추진해야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산 자의 의무’를 다해 ‘죽은 자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다.

◆검시권은 법의관에게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검시권을 의학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다. 사망 원인을 밝히는 일 자체는 환자를 진단하는 것이니 당연히 의사 몫이라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의사 역할은 현재 경찰 요청에 응하는 참고인 또는 감정인 수준이다. 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조차 마찬가지다. 진료는 의사, 약은 약사의 몫이듯 검시는 의사가 하고 그 결과에 대한 법적 판단은 사법부가 할 일이라는 것이 법의학계 주장이다.

하지만 “검시는 사망의 원인이 범죄인지 밝히기 위한 절차로서 ‘내사’에 해당하는 사법행위”라는 것이 법조계의 입장이다. 의학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의사를 검시체계에 넣을 수 없으며 검시권을 의사에게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영미법 체계 국가처럼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는 또 다른 수사기관으로서 법의관 또는 검시관을 법령에 규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형법체계 전반을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하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수사당국은 이보다는 검시 전문인력, 즉 법의학자의 부족을 현행 검시체계의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지금도 초동수사 단계에서 의사들의 참여는 가능하지만, 법의학 지식을 갖춘 의사가 부족해 부검 단계에서야 법의학자가 개입하는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의학계는 설령 법의학자가 대거 쏟아져 나온다 해도 그들을 받아줄 현장이나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황인 만큼 제도 정비가 선행해야 인력 양성이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또 수사기관 개입은 법의학자가 시체를 살펴 타살이 의심된다고 판단한 후에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김장한 서울아산병

원 교수는 “시체를 살피는 것은 수사와 아무런 관계 없는 수사 전 단계”라며 “법의관이 검시권을 가질 경우 부검을 위해 시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는 것을 가지고 수사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상황을 혼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검 권한을 가진 법의관 제도를 만들게 되면 법의관은 병원 밖에서 사망해 검안해야 하는 모든 죽음을 총괄하게 된다. 범죄 연관성에만 초점을 맞춘 검시로 등한시됐던 행정검시도 가능해진다. 

법의관 제도가 장기적으로 마련된다면 법의학자 숫자도 늘게 된다. 법의학 전문의 과정을 신설하고, 의과대학에 법의학교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전국 의대에 법의학교실이 생기면 전국을 담당할 수 있는 법의관 200명 양성도 4∼5년이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윤성 서울대 교수(법의학교실)는 “10년, 20년 뒤에 검시 전문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따져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회의 권고안이 주는 메시지 주목

검시체계의 모범답안을 작성하기 위해선 유럽회의(유럽 42개국 가입·유럽연합과는 다른 조직)에서 1999년 내놓은 ‘회원국의 법의검시규정 일치에 관한 각료위원회의 권고안’을 주목할 만하다. 권고안이 나온 지 15년이나 됐지만 후진적인 한국의 검시제도에는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권고안에서는 법의전문가나 법의학적 검사에 익숙한 의사가 검시를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다만 타살과 타살이 의심스러운 죽음은 반드시 법의전문가가 검시하도록 돼 있다. 또 ‘법의전문가는 어떠한 형태의 압력에도 굴복해서는 안 되고 직무를 수행하는 데 객관적이어야 하며, 특히 결과와 결론을 표현하는 데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조항을 넣어 법의학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강조했다. 

부검을 해야 하는 죽음은 10가지로 정해놨다. 타살과 타살이 의심되는 경우는 물론이고 고문 또는 어떠한 형태의 학대를 의심할 수 있는 인권 침해, 직업병과 직장의 위해, 기술적 재해 또는 환경적 재해 등이 대상이다. 범죄로 인한 억울한 죽음뿐 아니라 재해로 인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유럽회의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권고안은 부검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도 해놓았다. ‘부검은 가능한 한 한두 명의 의사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며, 그중 최소 한 사람은 검시의학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세계일보 보도 후 '용기있는 제보' 잇따라

검시제도 허점 개탄하며 개선 촉구

억울한 죽음을 허용하는 검시체계의 문제점을 다룬 ‘대한민국 검시 리포트’ 시리즈는 여러 반응을 이끌어 냈다. 경찰 내부에서는 기사가 나간 후 직접 취재진을 접촉해 기획 취지에 공감하며 현장의 심각성을 전했다.

한 경찰검시관은 “처음 1차로 뽑은 검시관은 국과수에서 6개월 연수했는데 요즘 채용 검시관은 한 달 교육하고 내보내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며 “(검시관) 선배 옆에서 배우라는 건데, 정식 교육이나 연수 과정도 없는 상태에서 검증되지 않은 걸 보고 따라 하라고 하면 제대로 되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 진료기록조차 못 읽는 이들이 검시관으로 채용되는 경우도 있다며, 차라리 의사를 더 채용해서 검시 보조인력으로 검시관이 현장을 뛰고 의사는 팀장으로서 책임을 지는 방안이 옳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일선 경찰은 “변사사건 발생 수에 비해 경찰검시관이 턱없이 적은 것은 맞지만 지금 있는 71명조차도 현장에 제대로 투입되지 않고 있다”며 “변사체 보라고 뽑았는데 (변사 현장)피하고 내근직이나 거짓말탐지기 담당 등 검시와 관련 없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기사를 접한 네티즌들도 대한민국 검시제도의 허점에 개탄하며 하루빨리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디 ‘싸이버***’는 “지방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는데 사망진단서, 사체검안서만 있으면 무조건 화장 통과입니다. 거기에 병사라고만 있으면 말이죠. 검안하시는 의사 분이 80세 넘으셨는데 사인은 무조건 좀 젊으면 급성심부전증 … 연세 있으시면 만성심부전증 … 그렇게 억울한 죽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라고 했다. ‘nair****’이란 아이디의 네티즌은 “싱가포르 교민인데, 여기서는 모든 의문사의 부검을 의무화합니다. 병원에서 사망해서 사망원인이 확실한 경우 아니면 주치의라고 해도 섣불리 사망원인을 적지 않으려 합니다. 혹시나 있을 법적 분쟁 책임도 그렇고, 만약 대충 ‘노쇠해 사망’ 등으로 기재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의사도 자격정지는 물론 감옥행이기 때문이죠.”라고 전했다. 

법의학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는 법의학도들의 진심어린 목소리도 많았다. 

“법의학자 되려고 병리학을 전공하는 의사들 널렸습니다. TO가 나오질 않아서 경쟁률도 어마어마합니다. 정원만 늘리면 다 해결될 문제예요. 지금도 법의학자가 꿈인 사람 많고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까요.”(아이디 ‘keoy****’)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법의관·경찰검시관 협업 잘 안돼… 검시 잘못돼도 책임지는 사람 없어”


“국과수 소속이 아니라 법의학 하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인 것처럼 ‘검시는 의사에게, 법적 판단은 사법부에게’가 제 결론입니다.”

서중석(사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1991년부터 법의관으로 일해오며 과학수사의 초석을 다져왔다. 다음은 서원장과 일문일답.


―현행 검시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병원 의사는 환자가 진찰실에 들어올 때부터 진료를 한다. 검시 역시 전문가가 맡아 ‘수사가 필요한 부검이겠다’ 싶으면 수사기관에 연락하면 된다. ‘의사한테 이런 걸(검시권) 맡겨도 되겠는가’라고 하는데, 그래서 외국에선 법의관에게 별도의 라이선스를 주는 것이다.”

―법의관 검시권 부여는 기소독점주의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한 것 아닌가.

“법의관에게 검시권을 주는 것이 제대로 된 검시제도다. (그게 안 되니) 그러면 뭔가 변형을 해야 하는데 그때부터 ‘한국식’이라는 말을 붙이게 된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간호사 등을 뽑아서 ‘검시관’이라고 한다. 검시관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검시관이 하는 사망 판단을 점검해보니 맞는 판단이 반도 안 된다. 그런데 그걸 왜 운영하는가.”

―법의관이 직접 현장에서 사법부검 대상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검시체계 전반을 직접 관장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리고 경찰검시관이 전혀 쓸모없는 분들이 아니라 의사 입장에서 굉장히 좋은 자원이다. 처음 검시관 논의가 시작될 때 경찰에서 ‘국과수 인원 늘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구조로 돼 있으니 그걸 우회적으로 국과수에 다 파견해주겠다’고 해서 제가 (검시관 제도 도입을) 뒷바라지했다. 막상 검시관 인력이 생기니 ‘왜 우리 인력을 딴 데 주느냐’며 경찰이 쓰고 있다. 이는 병원이 의사와 간호사를 따로 뽑아서 양쪽에서 따로 운영하는 거랑 똑같은 것이다. 합쳐져야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 그 좋은 인력 144명을 (추가 검시관으로) 뽑는다는데, 국과수에 붙여주면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형성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현재 법의관과 검시관 협업은 잘되는가.

“아마 의사들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은 것으로 안다. 이상한 편법을 쓰다 보면 점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복잡해지고 일이 꼬여 간다. 법의학 20여년 경험으로 봤을 때 (검시체제가) 과거보다 더 나빠지고 있다. 외국은 점점 단순화해서 협업하도록 하는데 우리나라 현장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누가 검시를 잘못해서 처벌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령화사회의 검시 문제는 더 심각해지는가.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죽은데 그 검안을 의료보험 재정에서 지원하는 걸 검토해야한다. 돈이 없거나 병원에 가기 어려워서 사각지대에서 그냥 쓸쓸히 유명을 달리 하시는 분들의 사인규명은 나라가 책임지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보험분쟁·의료사고 느는데…검시의 또 다른 적폐들

김모(47)씨는 2012년 1월28일 직장 동료와 경기 양평 용문산을 등산했다. 1시간30분가량 산행 끝에 정상을 눈앞에 둔 김씨는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쓰러졌다. 다시 1시간30분 만에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숨을 거뒀다. 응급실 담당 의사는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김씨 사인을 그냥 ‘미상’으로 적어 시체검안서를 발급했다. 경찰은 ①사망 당시 목격자가 있었고, ②타살 혐의점이 없으며, ③유족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검하지 않고 사인미상인 상태로 사건을 종결했다.



사인불명의 김씨 죽음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됐다. 김씨는 심근경색 진단 시 2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특약가입한 상태였다. 보험사는 사인미상이라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시체검안서상 사인이 미상이고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흉통을 호소하고 쓰러진 사실만으로 급성심근경색증 때문에 죽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족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금전적 손해까지 입게 됐다.

국내 검시제도하에선 이런 억울한 사례가 흔하다. 검시가 오로지 범죄 연관성만 따지는 ‘사법검시’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보험분쟁, 전염병 예방, 의료사고 조사 등에서도 검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나 범죄와 무관한 죽음의 이유를 밝히는 ‘행정검시’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도는 갖춰져 있지만 사실상 전무

법에서는 행정검시를 할 수 있는 경우를 3가지로 정하고 있다.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제6조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 국방부 장관 또는 광역·기초자치단체장이 시체를 해부하지 않고는 사인을 알 수 없거나 이로 인해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시체의 해부를 명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0조에서는 질병관리본부장에게 국민 건강에 중대한 위협을 미칠 우려가 있는 감염병으로 사망한 것이 의심되는 때 시체 해부를 명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경찰청의 행정검시규칙에서는 범죄 연관성이 없더라도 수재, 낙뢰, 파선 등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 또는 행려 병사자를 검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뤄진 행정검시는 없다. 국내 부검 대부분을 맡고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2012년 실시한 5159건의 부검 중 경찰에서 의뢰한 것이 4907건, 해양경찰 211건, 군 17건, 기타(교도소 등) 24건이었다. 경찰이 하는 검시가 사법검시 위주인 것을 생각하면 행정검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윤성 서울대 교수(법의학 교실)는 “교통사고가 나서 타고 있던 사람이 다 죽었을 경우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했다고 해도 탑승자가 다 죽었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는 더는 수사하지 않는다”며 “누가 운전했느냐에 따라 보험금 지급이 달라지는데 우리나라 검시제도는 검사가 지휘권을 가진 범죄수사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제도·인식 부족이 원인

행정검시가 등한시되는 것은 검시를 총괄하는 기구가 없는 등 검시제도가 체계적이지 않은 영향이 크다. 

검시 관련 규정은 형사소송법, 의료법,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행정검시규칙 등 최소 6가지 이상이다. 규정이 여러 개라는 것은 권한이 분산돼 있어 체계가 없다는 뜻이다. 

검시를 총괄하는 기구가 없는 상황에서 모든 변사체는 그나마 검시체계가 갖춰진 수사기관 소관이 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행정검시는 이뤄지지 않고 사법검시 위주로 흘러간다. 사인이 명확하지 않아 받지 못하는 보험금이 얼마나 되는지, 의료사고나 산업재해와 관련 있지만 그냥 처리되는 죽음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검시를 꺼리는 사회적 인식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장례 절차를 중시하고, 시체를 훼손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 이는 범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닌 상황에서는 부검을 꺼리는 현실로 이어진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2년 전국(제주 제외) 성인남녀 1000명에게 물어봤더니 검시를 꺼리는 이유 중 ‘검시가 신속하게 처리되지 못해 장례일정과 절차에 미치는 영향이 우려된다’는 것에 대해 45.5%가 조금 그렇다, 14.8%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몸이 잘린다는 것이 두벌죽음이라 여겨 비인간적이다’라는 것에는 조금 그렇다 27.8%, 매우 그렇다 11.7%로 나타났다. 행정검시 관련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에스제이 손해사정의 최순진 대표는 “유족에게 부검을 왜 안 했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다 똑같다”며 “‘(사망 당시에는) 경황도 없고 어느 누가 부검을 원하겠느냐’고 말한다”고 전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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