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CSI 대검 과학수사 ② 진술분석 수사
“언니 고마워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기뻐할 거예요.”
지난해 6월 5일 오후, 진술분석 예정 자료를 검토하고 있던 대검찰청 진술분석팀 소속 김미영 진술분석관의 휴대전화가 갑작스레 울렸다. 발신인은 얼마 전 김 분석관이 진술분석을 실시한 성폭력 피해자 A양(14).
이날 법원은 A양을 상대로 6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저지른 가해자 김 모씨(39)에 대해 징역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선고 소식을 전한 A양은 기쁜 목소리로 몇 번이고 ‘언니’ 김 분석관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은 A양은 같은 동네에 거주하던 가해자 김씨로부터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해왔다. A양의 삼촌과 친구사이였던 김씨는 평소 A양과 셋이서 식사를 함께 할 정도로 가까웠고, A양은 자주 마주치는 김씨를 친오빠처럼 따랐다.
그러나 친오빠 같던 김씨는 어느 순간 짐승으로 돌변했다. 김씨는 자신을 잘 따르던 A양을 문자메시지로 불러내 자신의 집 등에서 수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저질렀다.
범죄 장소가 자신의 집인데다 A양이 어리고 지적장애가 있다는 점 때문에 김씨는 범행을 쉽게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참다못한 A양이 김씨를 신고하자 김씨는 적반하장으로 나섰다. “정말 성폭행을 당했다면 구체적으로 진술해 보라”고 윽박지르는 김씨 앞에서 A양은 무서운 나머지 제대로 사건을 설명하지 못했다. 일찍 남편을 떠나보낸 A양의 어머니도 두려워하긴 마찬가지였다.
두려움에 질린 A양 모녀에게 김씨의 모친은 억지로 합의를 강요했다. 김 분석관이 A양에게 ‘친한 언니’가 돼준 시기는 그 무렵이었다.
면담을 위해 A양과 마주앉은 김 분석관은 다짜고짜 사건에 대해 묻기 이전에 A양의 마음을 열려는 노력부터 했다. A양은 겁에 질려있었고 자신이 당한 일들을 부끄럽게 생각해 좀처럼 말을 꺼내려 들지 않았다.
김 분석관은 친근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말문을 열었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A양은 김 분석관을 “언니”라고 부르며 못 다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았다.
장시간에 걸쳐 진행된 면담 결과 A양은 범행일시와 당시 상황을 비롯해 가해자의 행동과 표정, 그리고 자신이 느꼈던 감정까지 세세하고 일관되게 기억하고 있었다.
김 분석관은 면담 결과를 토대로 진술분석결과통보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고 직접 법정에도 나가 증언했다. 김 분석관의 노력으로 재판부는 어리고 지적장애까지 있는 A양의 진술을 유효하게 인정했다.
A양의 경우처럼 당사자 간의 진술이 결정적인 증거로 활용되는 성폭력 등 이른바 ‘밀실 범죄’ 사건과 관련해 진술의 증거능력을 보강하기 위한 진술분석 사건 의뢰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피해자의 경우 일반인과 표현 방식과 사고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표현 해석과 지적장애의 특성을 반영한 전문적인 진술방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김영대 대검 과학수사기획관은 “지적장애 피해자나 어린아이의 경우 일반 성인보다 진술이 미흡해 사건 처리 과정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며 “진술분석 제도는 심리학적 기법을 이용해 이들로부터 일관적이고 구체적인 진술을 끌어내 신뢰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NDFC) 소속 진술분석실이 처리한 진술분석 사건은 총 90건, 157명이다. 올해에는 11월 기준 대검 진술분석실은 163건, 265명의 진술을 분석했다.
imzero@as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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