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검시 체계 개편 내용·전망
우리나라 검시제도는 근본부터 문제다. 매년 25만명 정도가 사망하는데 이 중 15만여명은 병원에서 의료진 보살핌속에 임종을 맞지만 나머지 10만여명은 병원 밖에서 숨진다. 가난하거나 외로운 소외계층이기 십상인 이들의 병원 밖 죽음은 국가가 보호자로서 책임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관련 법체계·인력 미비 등 국가는 사실상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을 현재 23명에서 100명으로 대폭 늘리기로 한 것은 이 같은 검시제도의 가장 약한 고리인 인력 부족 현상부터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법의학 교실 활성화→법의관 증원→검시 역량 강화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순차적으로 진행되면 법의관이 변사 현장에 나가지 못한 채 부검만 하는 반쪽짜리 검시의 최대 현안이 개선될 수 있다. 법의학계에선 “수십 년간 진척되지 않아 자포자기 상태였는데 상당히 고무적이다”며 환영했다.

검시제도 개선은 부처 간 협의·예산 확보는 물론 관련법 제·개정 등 난관이 많다. 그러나 50여년 된 적폐에 대한 정부 개선 의지도 매우 강한 상태다. 법의학계에 따르면 정종섭 안행부 장관은 세계일보의 ‘대한민국 검시 리포트(9월15∼18일)’보도 후인 지난달 23일 서중석 국과수 원장과 법의관 증원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외국처럼 법의학자가 (변사)현장에 임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난 8일 대전에서 열린 대한법의학회 평의원회의에선 국과수 서 원장도 참석해 현재 턱없이 부족한 법의관 양성 및 활용 방안이 논의됐다. 양측은 이달 말까지 법의관제도 개선을 위한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 안행부 장관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안행부 장관은 이를 토대로 청와대에 법의관 양성에서 국과수 법의관 확충에 이르는 검시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안을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 변사사건 부실 지휘로 곤욕을 치른 검찰도 검시 전문성 강화를 위해 법의학회 등과 함께 제도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또 경찰은 간호사, 임상병리사 출신의 검시보조인력을 ‘경찰검시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법의관과 혼동을 줄 수 있다는 법의학계 의견을 수용, 이달 1일부터 ‘검시조사관’으로 개칭했다.

정치권도 검시제도 개선을 위한 법 제·개정에 착수하는 분위기다. 이날 강원도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에서 진행된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국과수에 대한 추궁보다는 검시제도 개선에 대한 의견 수렴이 주로 이뤄졌다. 여야 의원은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의 신원이 뒤늦게 확인되고, 사망원인을 끝내 밝히지 못한 이유로 국내 검시제도의 한계를 지목하고 제도 개선에 앞장설 뜻을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은 “검사가 (변사체를) 보지도 않고 무연고 변사로 부검 영장을 발부하고, 무연고 변사체는 범죄 연관성 없으면 다 화장해버린다”며 “이 문제는 경찰도 해당되고, 국과수, 법무부도 연관돼 있으니 전체적인 검시체계 개선 필요성을 국무회의 때 안행부가 제기해 앞장서야 한다. (국과수가 자체 마련 중인)법과학진흥기본법으로는 안 되고 이번 기회에 우리 위원회 차원에서 (검시제도 개선 입법)과제를 채택하자”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도 안행부 차관에게 “이번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올려보시라. 여야가 합의해서 하겠다”고 주문했다.

서 원장은 검시 절차 없이 이웃 증언만으로 매장이 가능한 인우보증 사망 신고제도에 대해 “아프리카에도 없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제도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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