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내가 요르단에 있을 때 였다.


쇼핑몰 화장품 가게에서 립틴트를 사고 나오는데 


점원이 나에게 다른 건 필요 없냐고 


컨실러 필요하지 않냐고 물었다. 헐..


 

나도 알고 있었다.


내 피부 잡티가 쩐다는 걸


아무리 그래도 컨실러까지 권유 받을 줄이야



한국에서 2번이나 레이져로 점도 빼고 기미, 주근깨도 지웠는데


요르단 뜨거운 태양아래서 2년 가까이 살다보니 피부가 다시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물론 선크림 안바르고 싸돌아댕긴 내 잘못이 크다.




집에 온 뒤 나는 미친듯이 검색질에 들어갔다.


내 피부를 구원해줄 기적의 방법을 찾기위해.



기사 및 블로그, 카페 검색질로 알게된 스티바 에이(Stieva-A)


스티바 에이는 상품명이고 성분명은 트레티노인(Tretinoin)

 

요르단에서 살수 있을까 싶어 약국을 가보았지만 역시나 없다ㅠㅠ


다행이도 약사가 같은 성분의 약을 추천해주었다.


그리고 의사 처방이 없이도 살 수있음.


구글링해보니 사우디 제약회사 약품이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 같다.


좋은건 주위에 널리 알려 함께 즐겨야 하기에 


언니들이랑 하나씩 사서 써보기로 함.



트레티노인 성분은 잘쓰면 기적의 연고이지만 잘못쓰면 독이 되기에 주의해서 써야한다.


그리고 임부 또는 임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부인 및 수유부 사용 금지





Tip. 레티노이드 연고 제대로 바르는 방법

1. 세안 후 얼굴을 완전히 건조시킨 뒤 스킨 단계는 건너뛰고 바로 연고를 바른다.

2. 약 5분 정도 지난 뒤 연고가 어느 정도 흡수되면 에센스·수분크림을 발라 밀폐한다. 

3. 자극이 심하면 2~3일에 한번씩 바르고, 익숙해지면 매일 바른다.

4. 농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전문의와 상담한 후 가장 낮은 단계부터 시작한다. 

5. 피부가 햇빛에 예민해지기 때문에 자외선차단제를 빼놓지 않고 바른다. 

6. 하이드록시(-OH)기가 있는 의약품 또는 화장품과 병용하지 않는다. 

7. 국소 비타민C 제품과 같이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0.025% 연고를 첫 일주일 동안은 하루 한번 저녁 자기 전에 면봉 머리만큼 짜서 


수분크림에 섞어 발라 적응기를 거친 후에 단독으로 바르기 시작했다.


첫 일주일은 아무 반응 없었다..


같이 바르기 시작한 다른 언니는 피부가 술마신 사람처럼 눈 주위가 벌개졌다고하고 


누구는 트러블이 더 올라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감감 무소식..




일주일이 지나고 입주위, 코주위로 하얗게 각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점점 각질이 얼굴 전체로 퍼지고 사람이 점점 지저분해보이게 됨ㅋㅋ


일부러 각질을 뜯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에 세수할 때 (조금 과장하면) 뿌연물이 나오기 시작함.




12일째, 얼굴에 광이 나기 시작함.


이건 물광도 기름광도 아니고 자연,,,


블로그에서 봤던 피부가 삶은 계란처럼 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


얼굴이 반질반질해지고 세수할때 보들보들해진 느낌이 든다.


화장도 잘 먹고 피부톤이 밝아진 느낌이다.


주위에서도 알아챌 정도가 됨.




작년 8월부터 3달동안 거의 매일을 바르고 30g 튜브하나를 다썼음.


이대로라면 1년에 튜브 4개는 쓸것 같은데


한국에서 사려면 너무 비싸고 (25g, 4만원)


거기다 처방전까지 있어야해서 


요르단에서 한국올 때 사재기 했다ㅋㅋㅋ


농도도 올려서 0.05% 연고도 여러 개 사고 완전 보따리상임.




한국와서도 계속 바르고 있고 몇 번 욕심내서 좀 발랐다가 얼굴 화끈거려서 혼났음.


귀찮아서 안 바르다가도 뽀루지 올라왔을 때 바르고 자면 신기하면 가라앉음 

  

이 연고하나면 평생 피부가 갈 일 없다는 말이 왜 나온 말인지 알 것 같다.








[제2회 한미 수필문학상 수상작] 

 

유진아, 네가 태어나던 해에 아빠는 이런 젊은이를 보았단다 

- 이봉기(당시 국군수도병원 내과 군의관) -  

 




 

 2002년 6월 29일 토요일. 나는 터키와의 월드컵 3, 4위전을 앞두고 축제 분위기 끝물의 애틋함이 괜히 섭섭해서 이런저런 월드컵 이야기를 동료들과 노닥거리며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웬걸, 갑자기 구내방송이 나오고 어수선한 분위기…. 이윽고, TV에서는 연평도 앞바다에서 양측 해군 간에 교전이있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국군수도병원 전 군의관을 비롯한 장병들은 퇴근을 미루고 대기상태로 남겨졌고,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보낸 후 헬기를 통해서 환자들을 후송 중이라는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필요 인원만 남기고나머지는 퇴근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그날, 외과계 군의관들은 입대 이후 미증유의 수고를 했음은 물론이다. 내과 군의관들을 찾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기며귀가한 나를 아내와 뱃속의 아기가 반겼다. 점심식사를 하며 흘깃거리던 TV화면에는 사망자를 비롯해서 많은 부상자들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흐르고 있었다.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만삭인 아내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던 나는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어쩐지 쉽게 퇴근할 수 있었던 것이 찜찜하더라니….

 

‘내과를 찾을 일이 뭘까?’

 

 이유인즉, 경상자 중에서도 배의 화재로 인한 연기로 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이 있어서 내과 군의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출근한 뒤 들어선 중환자실의 분주함은 수도병원 근무 후 처음 접하는 광경이었다. 응급수술을 마치고 누워있는 중상자들이 즐비했고 팔다리를 잃은 장병들도 눈에 띈다. 콧등이 시큰거렸다. 평화로운 대한민국에서 이게 웬 난리인가. 저 창창한 청춘들을 어찌 하라고….

 

 화재에 의한 흡인손상이 의심되는 환자들을 봐주고 담당배정을 한 후 내 환자인 오중사의 몸에 박혀 미처 제거되지 않은 파편과 총알조각들을 손닿는 대로 마저 빼냈다. 14mm 기관총 탄두가 깨진 채로 등 뒤를 뚫고 들어가 방광을 찢고 사타구니 근처의 피부 밑에 묻혀 있었다. 피부를 절개하고 탄두를 끄집어내니 반 동강이 난 것이 어딘가에 부딪힌 후 튀어 들어간 듯 했다. 그나마 경상축에 속하던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사뭇 처절했다.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계속 내려오는 북쪽 배를 가로막고자 참수리 357호는 배의 옆구리로 적선의 진로를 막는 ‘차단기동’을 하고 있었다 한다. 차단기동이 무시무시한 이유는 서로 간에 배의 옆구리를 고스란히 노출시키게 된다는 점이다. 이건 피차간에 절대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으니….

 

 남하하던 북측 배가 방향을 틀며 옆으로 도는 순간 우리 장병들의 눈에는 포탑을 돌려 조준하고 있는 인민군들이 보였다. ‘어, 쟤네들 왜 저래?’하는 순간 적의 85mm포가 불을 뿜었고 무척이나 가까이 붙어 있던 우리배의 함교(조타실)가 명중당했다. 이후 우리의 포탑들이 차례로 가격 당했다. 이때 함교와 포탑에 위치하던 장병들이 전사했다. 우리와 같은 전자조준장비도 없이, 수동으로 조준하는 북쪽 함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우리를 노리고 미리 공격계획을 가진 상태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중앙 통제실인 함교가무력화되고 대응 사격할 수 있는 포탑들이 날아간 상황에서 어려운 전투를 벌이게 됐고, 유명한 이야기지만 권모상병 같은 경우는 왼손이 날아간 상태에서 오른손만으로 M60 기관총을 발사하는 투혼을 보였던 눈물나는 전투는 이렇게 시작됐다.


 더욱 황당한 것은 피격당한 참수리 357호가 당하고 있는 동안 급히 접근한 참수리 358호에서 북측 경비정에 포탄을 퍼부어댔지만 그 상황에서도북측 경비정은 오로지 357호만 공격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더 위협적인 상대를 먼저 공격해야하는 것이거늘, 침몰시키겠다고 작정을 했던 모양인지 "난 한 놈만 패" 식의 공격에 의해 357호는 결국 가라앉아 버린다. 당연히 북측 경비정은 옆에 있던 358호에 의해 신나게 두들겨 맞아서, 침몰되는 것만 겨우 면하고 퇴각하게 됐고 이후 들리는 이야기로는 북측 사망자만 30명 이상이라 한다. 같은 민족끼리 내가 더 많이 죽였네, 겨루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오전을 보낸 가운데 오중사의 맞은 편 침상에서 생존자중 가장 많이 다친 박 상병을 접하게 된다. 건장하고 준수한 청년이었는데 의식은 없었고 인공호흡기가 달려 있었으며, 내가 군대온 이래로 목격한 가장 많은 기계와 약병들을 달고 있는 환자였다. 파편이 배를 뚫고 들어가서 장을 찢었고, 등으로 파고 들어간 파편은 등의 근육과 척추에 박혀있었으며, 등과 옆구리는 3도 화상으로 익어 있었다. 오른쪽 허벅지에도 길쭉한 파편이 박히고, 전신에 총상과 파편창이 즐비했다. 

 

 “쟤는…, 왜 저렇게 다쳤어요?”

 

 옆 침상에 누워 있던 부정장 이중위가 입을 열었다. 그는 포탄에 맞아 왼쪽 발목이 부서져 절단술을 끝낸 상태였고 그 옆에는 한참을 울었는지 눈이 발그레 부어오른 젊은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약혼자란다.

 

 “우리배의 의무병 녀석인데 부상자들 처치한다고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다니다가 그랬습니다….”

 

 참수리 357호의 의무병이었던 박상병은 첫 포탄에 조타실이 깨지면서 파편에쓰러진 정장 윤영하 대위를 몸으로 덮고 함교 계단 아래로 끌고 내려가 심폐 소생술을 시도했으나, 방탄조끼 밑으로 줄줄 흐르는 핏물을 보며 소용없음을 깨닫고는 다시 나가 쓰러지는 전우들을 치료하기 위해 몸을 숨기지 않고 뛰어다녔다. 당연히, 총을 쏘는 전투병은 엄폐물에 몸을 숨긴 채로 사격을 하게 마련이지만, 부상병을 찾아 이동해야하는 의무병은 전투 시 가장 위험한 처지에 놓이는 것이다. 총탄에는 눈이 없다. 

 

 이야기를 듣자 울컥했다. 멋진 놈…. 그런데, 이게 뭐냐.

 

 상태는 굉장히 안 좋았다. 출혈이 엄청나서 후송당시부터 쇼크 상태였고, 수술하는 동안에도 엄청난 양의 수혈이 필요했다. 정형외과와 외과 군의관들이 달려들어 가능한 대로 파편과 총탄을 제거하고, 장루를 복벽으로 뽑고, 부서진오른쪽 허벅지의 혈관을 이어놓은 상태였다. 엄청난 외상으로 인한 전신성 염증반응 증후군(SIRS)으로 인해 혈압이 쉽사리 오르지 않아 결국, 순환기내과전공인 나도 박상병과 인연을 맺게 된다. 스완갠쯔 도자를 삽입하고 수액과 승압제로 혈압을 힘겹게 유지해 나가는 가운데, 후송 시부터의 쇽에 의한 급성신부전 때문에 신장내과 동료도 힘을 합해 혈액투석을 지속했고, 외상성 ARDS가 속발해 호흡기내과 동료도 합류한다. 방광손상이 발견돼 비뇨기과 동료도 합세하고, 부비동에 문제가 생겨 이비인후과 군의관도 손을 더했다. 건장했던 박상병은 다행히도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고, 그 가운데, 나는 테니스 친구,술친구들에 다름 아니었던 동료군의관들이 실은 대단한 의사들이었음에 새삼스러워했다.

 

 ‘너는 반드시 살려낸다!’

 

 박상병의 숭고했던 행동을 여러모로 전해들은 우리 군의관들은 암묵적으로 동감하고 있었다. 이기심으로 질펀한 세월을 뚫고 오면서 형편없이 메말라 버린 내 선량함에 박상병의 회생은 한통의 생수가 되어 줄 것만 같았다. 뭔가 해줄 수 있다는 것…. 레지던트 기간 동안 수없이 지새워냈던 하얀 밤들과 바꿔낸 중환자관리의 기술이 너무나도 기꺼웠다. 하지만, 감염부위에서 녹농균과 메치실린 내성 포도상 구균이 배양되면서 소위 항생제의 마지막 보루라 일컬어지는 이미페넴, 반코마이신, 아미카신으로 배수진을 치게 됐다. 오르내리는 체온에 일희일비하는 가운데 전신상태는 조금씩 호전되고 있었지만 오른쪽 다리가 서서히 차가와지며 색이 죽기 시작했다. 부서졌던 혈관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결국, 고관절부위에서 절단이 이뤄졌고, 사타구니 아래쪽 오른다리는 그렇게 사라졌다. 사지 손실이 감정적 아쉬움에 그치는 사건은 아님을 누구나가 알고 있었지만, 다른 길이 없었다. 아픈 마음과 괜스런 죄책감을 그나마 생명이 지속된다는 사실로 슬그머니 달래 버렸다. 그렇게, 3주를 지내며 더 이상의 발열도 없었고 등과 옆구리 화상부위 및 관통창에는 발간 육아조직이 자라고 있었다. 수술부위의 상처들도 자리가 잡혔다. 인공호흡기도 멈췄고, 기도절개를 미루며 버텨오던 기도관도 제거했다. 박상병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사이 바싹 말라버린 박상병은 정신을 차리면서 오히려 군의관들을 힘들게 했다. 현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면서 차오르는 불안과 공포와 절망감을 입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주렁주렁 매달린 약병 사이에서 부서진 육체로 꼼짝 못하고 누워 흐느끼는 젊은 장정을 바라보는 일은 너무나도 불편했다. 정신과 군의관이 나서서 도움을 주었지만, 그 역시 박상병의 망가진 육체와 앞으로 닥치게 될 고난을 대신해 줄 수 없음은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박상병은 그렇게 회복돼 갔다. 그사이 오중사는 방광수술을 위해 비뇨기과로 옮겨지고, 부정장 이중위도 정형외과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박상병이 서해교전 환자들 중 가장 늦게 중환자실을 빠져나와 외과병동으로 옮겨지게 됐다. 가장 위중했던 그의 회복으로 서해교전으로 인한 전투 시의 사망자 외 추가 사망자는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고, 이에 고무된 병원 측은 수고한 군의관들에게 포상으로 위로휴가를 주었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고통스러운 사건에서 파생된 개인적 호사여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내가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니라며 자위를 했다. 따지자면, 6.25 동란, 경술국치까지도 거슬러 올라가야 할 일이라고…. 


 그렇게 얻어진 휴가로 나는 아내의 출산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내 딸의 첫 모습을 대한 순간만큼은 광막한 우주 속에 나와 아이, 단 둘만 존재하는 감격이었다. 그 때까지 내 삶이 순전히 그 순간을 위한 것이라 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금 현실로 돌아와서도, 배냇짓을 하는 딸아이에게 풍덩 빠져 한참을 허우적거리는 사이에 또 한달 정도가 흘렀다.

 

 어느 날, 박상병이 다시 중환자실로 내려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식이 나빠져 CT를 찍어보니 뇌실질 전반에 걸친 세균감염이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예의 배수진용 항생제들은 계속 사용되던 중이었고, 중환자실에서 다시 만난 박상병은 완연히 수척해진 모습으로 인공호흡기와 약병들에 또다시 생명을 매달고 있었다. 새로 개발된 항생제들을 민간에서 구매해서 사용하기도 해봤지만 패혈성 쇼크가 이어지며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결국 9월 20일 금요일 새벽에 젊은 심장은 마지막 박동을 끝냈다. 이틀 뒤, 가족들의 오열 속에 우리병원에서 영결식이 거행되고 박병장(진급했다)은 대전국립묘지에 묻혔다. 충무무공훈장도 수여됐다. 하지만 그는 꿈꿔왔을 나머지 인생을 하늘로 가져가야 했고, 그의 부모님은 아들을 잃었다. 그를 만났던 군의관들의 가슴에도 구멍이 났다.

 

 옴짝달싹 못하는 역사의 틀 속에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고, 인류사에 전쟁이 없어지는 일은 아마도 없겠지만, 한 선량한 젊은이의 아까운 죽음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일은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을 안겨줬다. 나도, 내 주위의 사람들도 남이 일으키는 전쟁에 인생을 맡겨야 할 수도 있는 초라한 존재일 뿐이었다. 군의관 생활을 하면서 바라본 전쟁은 더욱 두려운 모습으로 저 멀리 서있다. 아득하게 멀지만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그의 섬뜩한 실루엣을 본다. 


 갖가지 대의명분으로 치장 해도 전쟁은 부서지는 육체와 영혼을 제물로 삼아야 한다. 전장에서 맞닥뜨려야 할 맹목적인 폭력들. 그리고 잇따르는 수많은 이의 비극들. 이를 막기 위한 소위 ‘전쟁억지력’을 키우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을 군인으로 만들고, 더 많은 무기를 갖춰야 하는 또 다른 아이러니….

 

 그렇게 가을을 보내던 중 병원 앞 산책로에서 이중위와 그의 휠체어를 밀고 있는 약혼녀를 만났다. 처음 중환자실에서 대하던 날의 우울했던 첫인상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밝은 모습이었다. 이중위는 의족보행 연습을 시작한 뒤였고, 퇴원후 다시 해군으로 복귀해 사무직에서 복무할 예정이었다. 그들의 결혼도 예정대로 이뤄질 거란다.

 

 삶은 계속되기에 여전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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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이상길 기자 = 사실 '에이즈(AIDS)'란 병은 미심쩍은 구석이 조금 있다. 실제로 에이즈와 관련해서는 '음모론'도 존재한다. 

비록 소수지만 음모론자들에 따르면 에이즈는 일종의 '가설'일 뿐이라고 한다. 

그게 왜 그런가 하니 보통 어떤 질병을 의학적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질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존재해야 한다. 소위 '병원체'라고 부른다. 

하지만 에이즈를 유발하는 HIV는 여태 한 번도 추출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아니 학자들 중에 에이즈 바이러스를 현미경으로 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고 한다. 그 때문에 에이즈는 진단 시 늘 '양성'이란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다시 말해 HIV양성반응은 혈액을 채취해 혈액 안에 HIV가 있는지를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혈액 속에 'CD4'로 분류되는 T세포(면역을 담당하는 세포) 수치를 보고 판단한다. 

더 이상한 건 그 기준이란 게 절대적이지도 않다는 것. 보통 혈액 속의 T세포 수치는 영양상태 등 여타 환경에 따라 쉽게 변할 수 있어 정부에서 정하기 나름이라고 한다. 


이는 곧 가난한 아프리카 어느 국가에서는 음성이지만 미국에서는 양성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상은 <에이즈 가설의 저편 너머>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근거로 소수의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이야기다. 

며칠 전 열렸던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인공 '매튜 맥커너히'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겼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배우들의 연기나 작품성을 떠나 앞서 음모론자들의 이야기처럼 우선 영화 속 핵심소재인 '에이즈'란 병의 진실과 관련해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린다. 

십 수 년 전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로 알게 된 에이즈란 병의 실제 모습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다르게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에이즈는 치사율 100%의 암보다 더 저주받은 병으로 알려지면서 지구촌을 온통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미국 텍사스주 달라스에 사는 론(매튜 맥커너히)은 전형적인 카우보이다. 실제로 그는 로데오 경기를 즐기고, 술과 섹스, 도박없이는 하루도 못 버티는 '탕아'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의 몸은 이유없이 말라갔고, 작업 도중 쓰러져 가게 된 병원에서 HIV양성 판정과 함께 30일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 


론은 이후 'AZT'라는 치료약이 임상실험 단계에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간호사를 매수해 약을 빼내 복용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한다. 

진단 후 30일이 다 되어가자 론은 점점 절망하게 되고 지푸라기라도 집는 심정으로 우연히 알게 된 정보를 통해 이웃나라 멕시코로 건너가 치료를 받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론의 상태는 호전된다. 더욱 놀라운 건 그곳 의사의 처방은 'AZT'가 아닌 단백질이나 비타민, 아연, 필수지방산, 알로에 등의 인체면역력을 높이는 식약품들이었던 것. 

그곳 의사의 말은 더 충격적이다. 그는 "AZT가 에이즈를 낫게 하는 게 아니냐"는 론의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AZT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그걸 파는 놈들뿐이야." 

하지만 정작 자신의 상태를 호전시킨 약품들은 모두 미국 내에서는 FDA(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유통이 불가했다. 

결국 론은 몰래 멕시코에서 그 약품들을 밀수해 들여오기 시작하고, 회원제로 운영하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만들어 에이즈 환자들에게 팔기 시작한다. 


'톰 행크스' 주연의 1993년작 <필라델피아> 등 그 동안 에이즈 환자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제법 있었지만 앞서 음모론자들과 비슷한 시선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아마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기존의 에이즈 소재 영화들은 대부분 에이즈 환자들이 사회로부터 겪을 수밖에 없는 불편한 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것. 

영화 속에서 병원 측으로부터 30일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던 론은 실존인물로 그는 AZT를 거부한 덕택에 진단 후에도 무려 7년 넘게 살았다고 한다. 

아니, 정부의 AZT 강요에 맞섰던 론의 용감한 행동은 복합처방법으로 개발돼 이후 수많은 에이즈 환자들의 목숨을 연장시키는데 기여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 농구스타 '매직 존슨'도 1991년 에이즈 양성판정을 받았지만 아직 살아있다. 

왠지 터무니없어 보이는 에이즈 음모론자들의 주장이 오히려 이 영화로 힘을 받는 까닭이다. 


적어도 에이즈가 치사율 100%로 암보다 더 저주받은 병이란 건 이제 지나치게 과장된 이야기임이 분명해 보인다. 

공포는 쉽게 전염된다. 조금만 과장해도 공포는 생산되고 수많은 사람들을 쉽게 혼돈에 빠뜨린다. 

그런데 사업적인 마인드로 접근하면 공포는 사람들의 지갑을 쉽게 여는 힘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세상에는 권력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입한 뒤 쉽게 돈을 벌려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미국 FDA와 제약회사라는 거대 권력에 맞서 싸웠던 '로날드 우드로프'의 실화를 그린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우선은 사회성 짙은 저항영화로 비쳐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수상한 권력에 대한 투쟁기가 전부인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HIV양성 판정 이후 론의 행적을 조용히 담아내면서 삶의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론의 모습이 더욱 빛나는 영화다. 

론이 자신처럼 FDA에 반기를 든 의사 이브(제니퍼 가너)에게 말한다. 


"인생을 좀 즐겨. 한번 밖에 없잖아."

론이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회원제 클럽을 운영하며 공권력에 맞설 수 있었던 것도, 평소 경멸했던 게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동료 레이언(자레드 레토)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누구든 한번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이기 때문 아니었을까. 

마침내 영화는 카우보이 론이 평소 좋아했던 로데오 경기에 다시 참가해 미쳐 날뛰는 소를 타고 광란의 춤을 추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로데오 경기에 참가하는 모든 카우보이는 어차피 소에서 떨어질 걸 각오해야 한다. 

원래 로데오란 게 미쳐 날뛰는 소 위에서 몇 초라도 더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다. 다만 소를 타고 추는 춤이 좀 더 멋지길 바랄 뿐이다. 

삶이란 것도 그렇다. 굳이 에이즈가 아니라도 모든 삶은 언젠가 반드시 막을 내리기 마련이다. 그걸 생각하면 사는 게 가끔 힘겨워도 론의 말처럼 인생을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6일 개봉. 러닝타임 1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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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노트북으로 작성하는 첫 글입니다ㅎ

 

 

 

코이카 최종합격 한 뒤로 몇 달을 고민 또 고민하다가 결국은 지름.

 

며칠 전에 엄마랑 가서 보고 LG 울트라북으로 맘 정해 놓고 왔는데

 

오늘 가니깐 지난번에 못본 삼성 울트라북 최신형이 있더라.

 

신상이 눈이 또 반짝반짝 해지면서 어느새 카드를 내밀고 있는 나를 발견ㅋㅋㅋ

 

언니 덕분에 직원 할인에 상품권 할인을 더해서 싸게 샀음ㅎㅎ

 

좋아좋아

 

내가 2년간 알차게 이용해주겠어

 

부디 2년간 고장으로 맘고생 몸고생 시키지 말아다오

 

아기처럼 살살 다뤄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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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국이에게 빼빼로데이 선물을 택배로 보내고

엄마랑 언니하고 영화보러왔다.

카페에서 영화 시작 전까지 시간 보내기,

여자 셋이 모이면 수다쟁이가 된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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