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황재하 기자][2015년부터 '법의학 자문위원회' 검시에 참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사망)이 신원 미상의 변사체로 발견된 이후 한달여가 지나서야 신원이 확인되며 질타를 받았던 검찰이 관련 제도 개선에 나섰다.

대검찰청 강력부는 그동안 변사업무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검시 제도의 결함을 개선하기 위해 '변사에 관한 업무지침을 전면 개정해 지난 15일부터 전국 청에 시행하고 있다고 19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법의학 전문가의 검시 참여 필요성 및 검시 제도 개선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아 이를 반영할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시행 배경을 설명했다.

대검찰청은 앞으로 신원 미상의 변사체 또는 타살 의심 변사체, 대규모 인명사고를 '검사의 직접 검시 대상'으로 명시하고 그 외의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직접 검시한다는 방침이다. 검사의 직접 검시 대상을 확대·명시하고 변사가 발견되는 대로 검사가 현장에 나가도록 하는 등 직접 검시를 강화한다.

아울러 검사가 직접 검시하는 경우 법의학적인 지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 법의학 교수나 의사 등 전문가들로 법의학 자문위원회를 구성, 오는 2015년부터 검시에 참여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대검찰청은 사망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 등 전문가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 위원회가 참여하도록 하고, 예산과 인력풀을 고려해 앞으로도 참여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변사체 검시는 법의학적인 전문지식이 요구되지만 현재 검시 단계에서는 법의학 전문가가 전혀 참여하지 않고, 부검 단계에 이르러서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또는 의과대학 법의학 교수가 관여하는 실정이다.

경찰이 지난 9월 검시관 제도를 도입해 전국에서 총 71명의 검시관이 활동하고 있으나 법의학 전공 의사가 아닌 일반 의사로,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밖에도 검찰은 사고 현장에서 신속한 검시가 필요한 다수 인명피해 사건의 경우 현장 검시소를 설치하는 등 검시종합계획을 수립, 신속하고 정확하게 신원을 확인하고 사체를 인도하겠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변사사건 처리에 있어 '단 한명의 범죄도 암장시키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무거운 책무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황재하기자 jaejae32@







OECD 국가중 사인통계 정확도 상당히 낮은 수준…검시제도 낙후·법의학자 태부족




[라포르시안]  통계청에서는 해마다 전년도의 '사망원인통계'를 발표한다. 


여기에는 전년도를 기준으로 통계법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국의 읍·면·동사무소 및 시·구청(재외국민은 재외공관)에 접수 된 사망신고서를 주민등록지 기준으로 집계한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발생한 사망자의 주요 사망원인을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표준질병·사인분류 기준을 기초로 통계화한 것이다. 

그런데 국내 사망원인통계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바로 R코드로 분류되는 '달리분류되지않은 증상, 징후와 임상 및 검사의 이상소견'에 의한 죽음, 즉 원인불명의 죽음이 유난히 많다는 점이다. 


R00부터 R99까지 구분되는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 징후와 임상 및 검사의 이상소견' 사인에는 각종 순환계통 및 호흡계통을 침범한 증상 및 징후, 원인미상의 질환이나 통증, 미상 및 상세불명의 병인 등이 포함된다. 





"높은 원인불명 사망률, 억울한 죽음 만들거나 범죄에 악용될 수도"
 
통계청이 지난 9월 발표한 '2013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사망자 26만6,257명 중에서 '달리분류되지않은 증상, 징후와 임상 및 검사의 이상소견'으로 사인이 분류된 사망자가 2만4,566명에 달한다. 

지난해 사망원인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인 악성신생물(각종 암질환)에 의한 사망은 총 7만6,621명으로, 원인불명의 죽음은 그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하지만 통계청은 사망원인 순위를 발표할 때 '원인불명'의 죽음이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이유로 이를 사망원인 순위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지난해 원인불명으로 처리된 사망자 비율은 전체 사망자의 9.2%에 달한다. 

다른 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 

우리나라의 사망원인통계에서 사인이 달리 분류 되지 않은 증상 및 증후(R코드)의 비율이 9~10%에 이르는 반면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의 국가는 1~2%에 불과하다. 

통계개발원이 지난 2008년 발간한 '사망원인통계 자료 보완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의 경우 2006년 기준으로 R코드로 분류된 사인이 1.1%였고, 영국은 2005년 기준으로 0.2%, 캐나다는 2004년 기준 1.18%, 그리고 미국은 2005년 기준 1.31%를 차지했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의 사망원인통계에서 R코드로 분류된 사인은 10%를 웃돌았다. 

이 같은 차이는 우리나라 사인통계의 제도상 허점에서 비롯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역별 의료자원의 부족과 불균형으로 인해 의사에 의해 발급되는 사망진단서(또는 시체검안서) 이외에 일반인에 의한 '인우증명서'로 갈음할 수 있도록 관련법에 규정돼 있다. 

모든 사망확인을 의사가 하도록 되어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인우증명서 갈음은 사인통계의 정확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보고서는 "노쇠 사망은 노인 사망에 해당하는 사인으로서, 노인 사망은 인우증명서에 의한 신고가 많다"며 "이는 사인통계의 불명확한 사인 비율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보완자료에 의한 보완시 노인들이 많이 앓고 있는 순환기 및 호흡기계통질환으로 사망분류사들이 변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통계청은 주요 사망원인통계를 발표할 때 R코드로 분류되는 원인불명의 사망에 대해서는 제외시킨다.




높은 원인불명 사망 비율은 억울한 죽음을 만들 수도 있고,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의 필요성이 높다. 

선진국에서는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검시해야 할 죽음의 종류를 법률로 정해 명백한 병사 이외의 모든 외인사의 의심이 있는 죽음은 변사체로서 반드시 경찰에 신고토록 해 죽음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신고된 변사체의 경우 검사가 반드시 조사하도록 책임을 지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검시의 대상이 되는 사망의 종류가 정해져 있지 않은 탓에 검시제도가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1년 펴낸 <형사정책연구> 봄호에는 '국가간 ‘불명확한 사망원인’요인과 검시제도가 사망원인통계품질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는 '사인불명 시 또는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을 경우나 검역전염병에 전염되었거나 전염된 의심이 있는 시체 등’ 시체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내지 검역법 등에서 사법부의 관여 없이 행정기관이 실시할 수 있는 행정검시절차를 개별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무연고자 시체의 처리 이외에는 사실상 행정검시제도가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의학자 절대적으로 부족 

또 다른 문제는 검시제도 운영에서 중요한 법의학자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김명연 의원이 올해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의사 면허를 소지하고 법의학 교육을 받은 정식 법의학자는 국민 100만명 당 1명 꼴인 50명에 불과했다. 

일본의 7만명당 1명, 미국의 15만명당 1명과 비교하면 크게 차이가 나는 수준이다. 

사정히 이렇다보니 2013년 기준으로 한 해 국립과학수사원에 의뢰되는 부검 건수는 약 5,300건에 이르지만 소속 법의학자의 수는 고작 23명에 불과하다.

김 의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검시 집행 책임은 검사가 담당하고 집행은 경찰관, 실무는 의사, 변사자 부검 여부 판단은 판사가 함으로써 체계적인 관리와 업무협조가 어렵다.

경찰이 올해 7월 말 ‘경찰 검시관’에 대한 증원을 발표했지만 전문의사가 아닌 보건계열 전공의 7~9급 일반직으로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시신을 부검할 수 없는 실정이다. 

김 의원은 "복지부 또한 전공의 양성에 지원하는 비인기, 기피의학 전공 분류에 법의학이 포함되지 않고 있어 늘어나는 법의학자의 수요에 뒷짐을 지고 있다"며 "부검 의뢰는 매년 5~10%씩 증가하는 추세에 비해 법의하자가 턱 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







[이색 직업인] 법의학 전문가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법의관의 삶에 대해 듣기 위해 만난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의 얼굴에선 법의관다운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사건 현장의 증거들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눈빛이 돋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서 원장은 1991년 법의관에 임명된 이래 25년째 외길을 꿋꿋이 걸어왔다.   

기자는 인터뷰에 앞서 “예전에는 조금 생소했던 ‘법의관’이라는 직업이 최근엔 미국·한국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에게 많이 친근해졌다”고 운을 뗐다. 서 원장이 최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인에 대한 감정결과를 발표하면서 법의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역할이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법의관은 범죄나 사고에 관련된 죽음을 조사하는 직업입니다. 사인(死因)과 사망 경위를 의학적·과학적으로 분석하죠. 법의관은 명칭만 달라졌을 뿐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검시(檢屍)제도와 같은 것입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직업 중에 하난데, 불행히도 우리나라가 물질만능주의에 빠지면서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기피하는 길 중 하나가 됐죠.”

서 원장 역시 처음부터 법의관이 될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그는 “당시에는 병리학에 종양학, 면역병리학, 법의학 등 세부전공이 있었다”며 “사람들이 법의학은 전공을 잘 안 하니까 법의학을 공부하면 좀 더 훌륭한 병리학 교수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국과수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조금 불순한(?) 의도를 갖고 법의관이 됐지만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순번을 정해놓고 돌아가면서 사건을 맡기 때문에 같은 법의관이라도 전혀 다른 사건을 맡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순번일 때 큰 사건을 많이 맡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많이 받게 됐고, 사인이나 사망 경위를 밝혀내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는 연세대생 노수석군 사망사건, 최덕근 전 블라디보스토크 영사 피살사건,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 살인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사건들을 도맡아 왔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구지하철 화재사건 등 대규모 사건의 부검, 검안에도 관여했다.

수천건의 부검을 해오는 동안 법의관으로서 힘든 점은 없었을까.

“법의관은 한 사건을 맡으면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부터 굉장히 복잡한 데이터까지 분석한 후, 자신이 갖고 있는 법의학에 대한 신념에 입각해 법정에서 감정 결과를 발표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기면(그러면) 기고(그렇고) 아니면 말고’ 식의 추측이 아니라는 거죠. 이번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례처럼 과학적인 수사 결과를 국민들이 믿지 못할 때 힘이 듭니다.”


- 서 원장은 2012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한 후 혁신적 변화를 이끌어왔다. 2주 만에 8만명의 감정 지연(遲延) 건을 처리하고, 감정 기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범죄 현장에 답이 있다
서 원장은 미국의 ‘과학수사대(CSI)’와 우리나라의 법의관이 다른 점은 ‘수사권’의 유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변사체가 발견되면 법의관(ME·Medical Examiner)이 중심이 된 CSI가 출동해 현장 감식과 부검, 수사까지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전담 검시제’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경찰 등 수사당국이 검시 업무를 겸하는 ‘겸임 검시제’로 운영된다. 변사체가 발견되면 경찰의 초동수사반이 기초적인 검시를 진행한다.

그는 “국과수는 수사기관의 협조를 얻어야만 수사가 가능하다”며 “점차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기본적으로 수사기관과 국과수가 서로 믿고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의관은 수사 초기 단계에 현장에 가지 않고 사건 기록과 현장 사진을 보고 사건을 접하는데 사건 개요가 잘못 작성돼 있어 오판을 한 적도 있다”며 “법의관이 현장에 꼭 가야 하는 이유는 현장에 답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어진 자료 외에 새로운 증거가 많이 나타나면 재(再)감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인데요. 재감정을 통해 23년 만에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은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을 때, 이에 항의해 분신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총무부장이던 강기훈 씨가 대신 써줬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돼 복역했던 사건이다.


법의학은 인간의 최종 운명을 가름하는 학문
서 원장은 2006년부터 법의관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법의학의 장점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각양각층의 사람들에게 강의를 해왔다. 서 원장은 “부검실이 겨울엔 춥고 여름엔 물이 역류해서 바닥에 질퍽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며 “꾸준한 강의를 통해 이 같은 현실을 알렸고, 그 덕분에 환경을 개선하고 봉급도 올리고 사회적 이미지를 높였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려낸 SBS 드라마 〈싸인〉은 서 원장의 강의 내용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싸인〉은 한국판 ‘CSI : 과학수사대’로서 법의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 원장은 “실제로 드라마 방영 이후 법의관이 되려는 의대생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며 “국과수에서 시나리오를 검토해주고 주인공역을 맡은 박신양 씨가 교육을 받고 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25년간 수많은 범죄현장의 실마리를 풀어내고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을 살려낸 그에게 법의학이란 무엇일까.

“저는 법의학이 인간의 최종 운명을 가름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죽음도 삶의 연장입니다. 사람은 죽어도 남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영원히 있잖아요. 어떤 분이 명예롭게 돌아가셨다고 하면 그 명예를 지켜드리고, 억울하게 돌아가셨다고 하면 부검을 통해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거죠. 그렇게 가족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게 하는 겁니다. 죽음은 그 삶의 종점을 찍는 것이지만, 삶의 연속성을 만들어가기도 하는 거죠.”  

 

▒ 서중석 원장은…
1957년생, 83년 중앙대 의학과 졸, 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 94년 중앙대 대학원 의학 박사, 201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 부장,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대한법의학회 감사, 아시아법과학회 회장.


글:
 백예리 기자 (byr@chosun.com)
사진: 이신영









최근 모 방송에서 이른바 ‘홍천강 살인사건’을 다룬 것을 계기로 사망원인을 조사하는 검시(檢視)제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졌다. 자칫 단순 익사로 처리될 뻔했던 죽음이 유가족인 딸의 요청으로 부검이 이루어졌고 결국 타살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후 경찰수사에서 피해자의 남편이 범인으로 지목되었고,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유죄까지 선고된 상태다. 방송을 보던 많은 이들에게 만약 유가족의 요청이 없었다면 사고사로 종결되었을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게 했다.

정말 우리나라의 검시체계에는 많은 허점이 있는 것일까. 다른 나라는 어떨까. 선진 외국의 검시제도로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방식을 들 수 있다. 첫째는 법의학 전문의사인 법의관(medical examiner)이나 전담검시관(coroner)이 독자적으로 검시를 주도하는 방식이다. 국가가 임명하고 현장조사, 부검 결정, 재판증언까지 담당하는데 미국, 영국 등이 이에 속한다. 둘째는 수사당국을 검시의 일차적인 주체로 하되 법의학 전문의를 의무적으로 참여시키는 방식이다. 독일의 법정의(court doctor)나 일본의 감찰의(監察醫) 등이 이에 해당한다. 양자 모두 법의학 전문가가 현장에 임장한다는 점이 공통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법의학 전문의의 현장임장을 의무화하지 않은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법적으로 검시의 주체는 검사이고, 실무에서는 경찰이 대행해서 검시를 행하고 있다. 법의학 전문가는 빠져 있으니 전문성 부족이 문제되는 것이다. 통상 경찰이 협약을 맺은 관내 민간의사에게 검안을 맡기고 있지만, 법적으론 전문성이 부족한 치과의사나 한의사 등도 검안할 수 있다. 경찰이 자구책으로 병리학, 간호학 전공자를 특채하여 일선에서 배치하는 내부 전문화를 시도했다. 인력 증원, 전문교육의 확충, 국과수와의 연계, 법적 권한의 정비 등의 보완이 요구된다.

법의학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도 문제이다. 현재 부검을 실시할 수 있는 법의학자 수는 국과수 20여명, 은퇴한 개업의를 포함해도 전국적으로 40여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연간 4000건에 달하는 부검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한 해 발생하는 평균 변사건수 25000건 중 부검실시율은 20%에 미치지 못한다. 전국 41개 의대 중 법의학 교과가 개설된 곳은 14개이다. 해부학에 대한 기피특성에 더해 법의학계의 열악한 처우나 근무환경을 고려하면 선뜻 진로를 추천하기도 힘들 것이다. 전체 사망자 중 원인불명 사망비율도 10%에 달한다. OECD 회원국 중 1위다. 안타깝지만 검시제도 후진국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개선책으로 무엇보다 사체검시에 법의학 전문의를 필수적으로 임장시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수사전문가와의 합동임장을 통해 유기적 협력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관련법안이 몇 차례 국회에 제출된바 있지만, 법조계나 율사출신의 밥그릇 뺏기로 보는 시각에서의 반대나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방기되어온 형국이다.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일은 국가의 기본적 의무이자 죽음을 대하는 한 국가의 인권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그는 살아 있을 것이다. 지금쯤 밀항선 타고 웃고 있는 건 아닐까?”


5억 원이라는 사상 최고의 현상금이 걸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유병언(전 세모그룹 회장) 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으나 아직도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유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때는 6월 12일. 경찰은 실제 사망일은 발견 시점보다 3주가량 앞선 5월 말경으로 본다. 그간 유씨의 시신을 무연고자로 판단해 따로 보관하다가 지문 검사, 유전자 검사 결과 등이 뒤늦게 나오면서 변사체가 유씨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발표한 것이다.


이를 두고 “유씨가 사망한 것을 믿을 수 없다”면서 의혹을 제기하는 이가 적지 않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7월 25일 “시신이 유씨인 것은 100% 확신하지만 사망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발표하면서 의혹이 오히려 커졌다. 과연 이 시신은 유씨가 맞는 것일까. 왜 과학적인 조사를 거쳤는데도 사인을 알 수 없다고 하는 걸까.

평소 한국의 미라나 미국 마이애미 법의학센터 등을 취재하면서 법의학과 관련한 기사를 다수 출고한 경험에 비춰본다면 유씨 사건처럼 법의학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례도 드물다. 유씨 사건을 계기로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법의학 관련 이야기를 정리해봤다.


유병언 시신은 백골 아니었다


유씨 사건과 관련해 궁금증 중 하나는 시신이 단기간 내에 ‘백골’ 형태로 부패할 수 있느냐다. 사진으로 남은 유씨 시신은 해골이 거의 그대로 드러난 상태다. 경찰은 “유씨의 시신이 80% 백골화됐다”고 밝혀 의혹을 부추겼으나 국과수는 “일단 백골이라는 용어 자체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얼굴 등이 많이 훼손된 시신 사진이 인터넷에 돌면서 ‘온몸의 살점이 다 썩어 뼈만 남은 상태’라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국과수는 “실제로 썩은 얼굴과 목, 즉 두개골 언저리에서만 뼈가 드러났고, 나머지 부위는 피부와 근육이 유지됐다”고 발표했다. 백골화라고 말할 수는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설령 완전히 백골화가 됐더라도 이상하게만 여길 상황은 아니다. 유씨의 사망 시기는 5월 말 이후 비교적 온도와 습도가 높을 때다. 무덥고 습한 여름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사람의 시체는 3~4주 만에 완전히 백골만 남기도 한다. 물론 습하지 않고 양지바른 곳이라면 1년 가까이 시신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도 있지만 “4주에 백골이 드러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무리라는 의미다.


사람이 죽으면 생명 현상이 정지해 생체 방어기전이 파괴되며 당연히 육체는 썩기 시작한다. 사람의 몸에는 살아 있을 때도 많은 세균이 존재하는 데다 사망 이후에는 대장에 생리적으로 존재하던 세균과 입이나 코, 귀, 눈과 같이 평소에 습기에 젖어 있는 부위나 기도에 붙어 있던 세균이 번식해 조직 안으로 뚫고 들어간다. 그래서 얼굴 부위와 내장기관이 먼저 손상을 입는 것이 보통이다. 유씨의 시신 역시 얼굴과 대장 부분이 손상되고 팔다리의 피부나 근육은 비교적 온전했다.


이렇게 부패하기 시작한 시신은 흔히 시취(屍臭)라고 하는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데,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나오는 암모니아, 황화수소 같은 물질이 원인이다.



5300년 썩지 않은 미라


시신이 손상되는 데는 세균에 의한 부패보다는 포식자(들짐승, 벌레 등)의 영향이 더 크다. 시취를 풍기기 시작한 시신은 벌레의 좋은 먹잇감이다. 날아든 곤충이 직접 시신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성체가 될 때까지 동물의 사체를 파먹으며 영양분을 얻어 성장하는 종류의 곤충(대표적인 것이 파리다)에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사체는 중요한 서식처이자 영양 공급원이다.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원을 주위에서 즉시 얻을 수 있어서다. 따라서 다수의 곤충이 애벌레의 먹이가 될 동물의 사체에 직접 알을 낳는데, 알은 빠르게 부화해 구더기로 변하고, 구더기가 시신을 훼손한다. 시신이 들개나 들쥐, 까마귀나 독수리 등 동물의 습격을 받는 경우도 많다.


물론 부패가 빠르지 않고 냄새도 멀리 퍼지지 않으며 주변에 벌레를 찾아보기 어려운 겨울철에 사망한 시신은 그리 빨리 손상되지 않는다. 땅속에 묻어둔 시신은 벌레 등의 접근을 막을 수 있어 온전히 세균의 힘으로 썩는데, 온대지방의 경우 매장한 시신이 백골이 되는 데 평균 7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수백, 수천 년 넘게 시신이 썩지 않고 유지되기도 한다. 그러려면 부패가 잘 진행되지 않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사막 지역 등에서 시신이 바싹 말랐거나 동토 지역에서 꽁꽁 언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물게 늪이나 무덤 속에서 외부 공기와 차단돼 썩지 않는 경우도 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 이후 가장 오랫동안 썩지 않은 시신은 5300년(이 정도 기간이 지나면 보통 ‘미라’라고 한다) 전 사망한 ‘아이스맨 외치(Oetzi)’다. 외치는 발견된 지역 명을 따 붙인 이름이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맥에서 1991년 발견된 이 미라는 현재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最古) 미라로 남아 있다. 이렇게 긴 시간 썩지 않고 보존된 이유는 추운 기후 덕분에 얼어붙은 시신이 그대로 남았기 때문이다.


외치는 1991년 9월 등산을 즐기던 부부가 발견했는데, 이들은 외치의 모습을 보고 살인사건이 벌어진 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보존 상태가 좋아 이탈리아 사우스티롤 고고학박물관 연구팀은 외치의 골격, 유전자 정보 등을 분석해 살아생전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복원했다. 외치의 사인을 분석한 많은 학자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보지만 일부에서는 두부에 강한 충격을 받아 사망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참고로 한국의 시신 중 썩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남은 것은 2004년 대전 계룡산 인근에서 발견된 ‘학봉장군 미라’다. 사방을 회곽으로 밀봉한 조선 전통 무덤 회곽묘 덕분에 썩지 않고 미라로 남은 것으로 시신의 주인공은 약 600년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전 계룡산 자연사박물관에 실물이 전시돼 있다.


저혈당발작·저체온증說


유씨의 사망을 놓고 대중의 의혹이 끊이지 않는 건 제대로 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백 년, 수천 년 전 죽은 미라도 사인을 척척 알아내는데, 죽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시신을 놓고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발표하니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도 이해가 가는 점이다.


경찰이 유씨의 사인을 감추고 있다거나 유씨가 이미 국외로 도피했는데 가짜 시신을 내놓았다는 낭설이 이어졌으나 사망 시기와 관계없이 사인 규명은 시신이 얼마나 온전하게 남아 있느냐에 달려 있다. 유씨는 발견 당시부터 시신이 크게 훼손돼 사망 원인을 알기 어려웠다는 것이 국과수의 주장이다.


유씨가 타살됐다는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먼저 독극물에 의한 피살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검사 결과 유씨의 시신에선 독극물이 일절 발견되지 않았으며 뼈가 부러지는 등 눈에 띄는 외상도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이 당뇨로 인한 저혈당 발작이다. 유씨가 지병으로 당뇨를 앓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에 비가 온 상황에서 당뇨나 고혈압 등의 지병을 가진 사람은 체온이 35도까지만 떨어져도 쇼크가 올 수 있다. 국과수 역시 이 점을 확인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백승경 국과수 독성화학과장은 “간과 폐의 독극물 검사에서 모두 음성 반응이 나타났다”며 “근육에서는 ‘케톤체(ketone body)’라는 성분에 음성 반응을 보였으며 나머지에는 반응을 아예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케톤체는 당뇨가 있는 사람의 몸이 포도당 대신 지방에서 에너지원을 얻을 때 생기는 물질로 보통 소변에서 검출되며 근육에선 검출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또 다른 유력한 추측으로 ‘저체온증 사망’이 꼽힌다. 만취 상태에서 길가에 쓰러졌다가 체온이 떨어져 죽었다는 것. 인근에서 술병이 발견됐다는 점, 양말 등을 벗고 있었다는 점 등이 정황 증거로 제시된다. 저체온이 계속되면 오히려 덥게 느껴져 옷을 벗는 현상이 종종 나타난다. 여성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경우 성폭행 살인으로 오해할 정도로 옷이 벗겨져 잇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한 법의학 전문가는 “시신이 신발과 양말을 벗은 상태에서 상의를 위로 끌어올리는 등 탈의 현상을 보인 것을 고려할 때 저체온 사망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체온증 사망 추측을 두고는 “저체온증으로 객사한 시체라면 반듯하게 누워 있는 게 아니라 웅크리고 있어야 한다”는 반박이 나온다. 또한 “5월 말에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5월 말이라고 하더라도 해가 뜨기 전에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만큼의 기온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 밤이슬 등에 젖으면 체온이 더 빨리 떨어질 수 있다는 점 등도 고려해야 한다. 사망할 때 몸 자세가 반듯했던 것도 앞뒤 정황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왜 그랬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과학적 수사 기법 강화해야”


유씨의 사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일부 법의학자는 경찰이 현장검증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며 상당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미국 등 범죄 수사 선진국의 경우 변사체가 발견되면 법의학 전문가가 현장을 먼저 찾아가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근거를 수집하곤 하는데, 한국은 경찰이 수사를 마친 후 시신을 옮겨 부검만 요구하고, 이 결과를 토대로 경찰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관례다. 이번 유씨 사건도 경찰이 현장에 남아 있을지 모를 수많은 법의학적 근거를 놓쳐 사인 규명이 미궁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강신몽 가톨릭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국과수에서 유씨의 사인이 불분명하다고 발표한 데 동감하지만 사인은 시체를 부검해서만 밝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 사람의 행적이나 현장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참고로 드라마 ‘CSI’로 유명한 미국의 법의학 체계는 법의관 및 검시관 제도로 크게 나뉘는데 검시관은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것이 주요 업무이고, 법의관은 사건 현장에도 참여하며 수사 과정에서 의학적 조언을 하고 범인 판단 여부에 결정적 의견을 낸다. 또 부검 여부를 판단하고 수행하는 것도 법의관의 권한이다. 따라서 변사체를 발견했을 때 경찰이 법의관이나 검시관을 대동하는 것이 상례다.


특히 법의관은 드라마에서처럼 현장을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경찰에 CCTV 영상을 포함해 다양한 증거물을 역으로 요청하는 등 범죄 수사와 관련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권한을 갖고 있다. 마이애미 주의 경우 법의관은 200건 이상의 부검 경험을 가진 병리학 전문의 중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법의관 제도는커녕 범죄 현장을 신속하게 찾아 초동 조사를 할 검시관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어서 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상한 경북대 법의학과 교수는 “미국은 부검 등으로 조사해야 할 시신이 법으로 정해진 터라 범죄 수사 때 다양한 과학적, 의학적 수단을 총동원한다”며 “우리나라도 과학적 법의학 수사 기법을 강화하는 한편 현장 전문가를 양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은 “경찰이 사망 시기조차 알아내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한다. “무언가 감추고 있으니 사망 시기를 발표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이런 주장은 미국 드라마 CSI의 영향 탓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문요원으로 분한 미남 배우들이 시신을 살펴보고 “며칠 전에 죽었다”고 단정하듯 말하는 장면이 자주 방영됐다.


물론 시신은 말은 못해도 많은 정보를 전해준다. 법의학자들은 백골만 있어도 성별과 나이, 얼굴과 키 등을 알아낼 수 있다. 시신의 부패 정도만 보고도 대략적인 사망 시각을 추정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런 것도 충분히 검증할 수 있을 만큼 시신 상태가 온전해야 가능하다.


구더기, 8일 만에 번데기로


통상 시신의 상태를 맨눈으로 확인해 사망 시점을 역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실온 상태라면 사람은 보통 죽은 지 하루 만에 색깔이 변하고 구더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2∼3일이 지나면 썩기 시작해 물집이 나타나고, 8일이 지나면 구더기가 번데기로 바뀐다. 하지만 이 방법이 그리 정확한 것은 아니다. 기온이 섭씨 20도 이상이라면 시신은 12∼18시간 만에 급격하게 부패하기도 한다. 최근 일부 살인사건에서 범인이 시신에 횟가루를 뿌린 경우가 간혹 있다. 횟가루는 시신 표면의 수분을 흡수해 부패를 막을 수 있다. 사망 시점이 잘못 밝혀지기를 기대한 행위로 보이지만, 부패를 이용한 사망 시각 추정 기술이 부정확한 데다 다른 추정 방법이 많아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신이라면 체온측정법이 자주 쓰인다. 사람은 죽은 후 2시간까지는 체온이 변하지 않지만 이후엔 1시간마다 평균 0.8도씩 떨어진다. 체온이 다 식어버리기 전에 시신을 부검하면 대략적인 사망 시점을 알 수 있다. 물론 체온은 주위 온도나 습도, 바람 등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법의학자들은 ‘헨스게법’이라는 표준 측정법을 이용하곤 한다. 시신의 직장 온도를 주변 온도, 체중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사망 전후 2.8시간 이내로 사망 시점을 유추할 수 있다. 신뢰도는 95%다.


이밖에 혈액이 가라앉으며 시신 아래쪽에 생기는 시반(검붉은 점)의 크기, 시신이 굳어져가는 사후경직 순서를 봐도 사망 시점을 알 수 있다. 시반은 사망 후 30분부터 발생하기 시작해 2∼3시간 지나면 점 모양으로 나타난다. 10시간이 넘으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법의학자들은 이런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사망 시점을 추측한다.


이 같은 전통적 방법 외에도 첨단 기술이 계속 등장한다. 유리체 검사가 그중 하나다. 유리체는 사람의 수정체와 망막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 젤리 형태의 조직이다. 사망 이후에는 유리체의 칼륨 농도가 점차로 증가하는데, 이 농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눈동자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칼륨의 농도가 들쑥날쑥하기에 아직 참고자료로서만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이밖에 근육이 가진 에너지(글리코겐)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정확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의 사망 시점이 사인을 밝혀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국과수는 앞서 언급했듯 “시신의 손상이 심해 추정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말은 수긍이 간다. 유리체 검사를 할 안구는 이미 썩어 있고 장기도 대부분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사망하고 수주 이상 지난 시신을 냉장 보관했으니 체온검사법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국과수는 다만 발견한 날로부터 약 20일 전 안팎에 사망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만 내놓았다.


수상한 점 있지만…


국과수의 공식 발표에도 ‘시신이 정말 유씨의 것이 맞느냐’는 의혹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다. 7월 25일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시신을 바꿔치기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면사무소 업무일지와 112 신고기록에는 6월 12일 시신을 발견한 것으로 기록됐지만 매실 밭 인근 주민 5명은 ‘그 이전부터 시신이 있었다’고 밝혔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세월호 사망사고 이전인 4월에 사망한 시신이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도 나왔다.


다양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유전자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 “실종된 이복형제의 시신 아니냐”는 등의 낭설도 나돌았다. 사진만을 놓고 유씨 시신의 키가 애초 알려진 것보다 더 큰 것 같다고 지적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저런 의구심이 남아 있긴 하지만 시신 자체를 유씨의 것이 아니라고 보기에는 드러난 과학적 사실이 너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과학적으로는 유씨가 아니라 타인이라고 보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유전자 분석 결과 시신이 유씨의 이복형제일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과수는 “어머니로부터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검사한 결과 다른 어머니의 자식일 확률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정밀 기계로 측정한 결과 유씨 시신의 키는 159.3㎝가량으로 경찰이 파악한 키와 거의 같으며 치아의 형태나 치과 기록 역시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시신이 유씨의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는 것이다.


치과 기록에 대해 한 치과 개업의는 “방송 등에 나온 영상을 기준으로 보면 금니로 때운 부분(골드크라운)은 어금니 두개를 묶어 씌운 것으로 과거의 치료법이지만 꽤 오래전에 치료받은 것으로 보여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면서 “치과 치료 기록을 주치의가 미리 제공했다고 들었는데 기록과 시신의 치아 상태가 일치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물론 과학적 증거와 관련해 “시료나 검사 결과 자체가 조작됐다” “국과수조차 정부의 끄나풀이라 모든 발표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주장은 음모론에 가까울 뿐 과학적으로는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한 법의학 전문가는 “국과수 이외에도 수많은 법의학 전문가가 활동하며, 이 정도까지 증거를 제시했는데도 믿지 못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한 대학 법의학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 법의학자 중 4분의 1이 방송에 등장했을 만큼 국과수 검사 결과에 대해 시민의 의구심이 큰 것 같다”며 “정황상 의구심이 생기는 부분이야 있겠지만 과학적인 조사 결과만큼은 신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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