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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양천구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법의관과 법의조사관들이 시신을 부검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대법원은 왜 부검 결과 수용 안했나
검찰 '목졸려 사망' 부검결과 증거에 대법 "사체 이동중 손상 배제 못해"
하루 지나면 사망시각 단정 어려워
검시관 범행현장 신속 출동이 중요
1년간 3만5000명 검시… "인력증원·검시법 제정" 목소리
대법원이 지난달 28일 만삭 의사 부인 사망사건을 파기 환송한 것은 우리 수사제도 상 검시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은 "유죄라는 확신에 이를 정도로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검찰이 살해 혐의로 기소한 남편 백모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1심과 2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다수 법의학 전문가가 백씨의 유죄를 뒷받침하는 소견을 내놓았음에도, 검시관이 범행 현장에서 배제되는 등의 고질적 문제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 검찰이 당혹스러워한 것은 당연했다. 수사 초기부터 백씨의 범행을 입증할 증거가 충분하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부부만의 공간에서 벌어진 의문의 죽음은 애초에 목격자도, 죽음의 직접적인 증거도 없었다. 그러나 검찰에게는 '피해자는 목이 졸려 사망한 것'이라는 내용의 부검 결과와 현장을 정밀 분석한 증거 자료가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물론 저명한 부검 전문가, 법의학자들의 다수 견해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를 배척했다. "사체에 대한 부검이 사망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실시되고, 그 과정에서 사체의 이동과 보관에 따른 훼손ㆍ변화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그 판단에 오류가 포함될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법의학자들이 결정적인 증거로 내세운 액사(縊死) 특유의 소견인 박씨의 '목 부위 피부 까짐'과 '목 주위의 내부 출혈'에 대해서도 "타인의 손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후에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손상일 텐데, 그걸로 어떻게 액사를 증명할 수 있냐"는 질문이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어 "일부 증인(법의학자)의 증언(소견)이 아니라,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이나 자료에 근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망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최고의 과학적인 방법이 부검이라 확신하는 법의학자들에게 더 과학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국내 대표 법의학자이자 이번 사건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섰던 이윤성(59)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가 "대법원의 결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남편의 출근 시간 전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검찰의 분석에 대해서도 "피고인이 집을 나선 오전 6시41분 이후에 사망했을 확률적 가능성이 상당함을 부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망시각 추정을 위한 직장온도 측정이 시신 발견 후 8시간이 지난 뒤 병원 영안실에서 이뤄져 피해자의 사망시각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법의학자들의 소견을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5년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재판부는 경찰이 시신이 있던 욕조 물의 온도를 재지 않았기 때문에 법의학자들이 추정한 사망시각을 토대로 출근 전 남편이 모녀를 죽였다고 볼 수 없다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가수 김성재 사망 사건도 마찬가지다.
한 검찰 관계자는 "특히 이번 사건처럼 목격자가 없는 범행이거나, 살인 등과 같은 범죄에서 흉기와 같은 직접 증거가 없을 때 수사 기관은 법의학자들의 부검이나 현장 분석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이를 증거 불충분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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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한 법의학 교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들은 자취를 감추는 법"이라며 "사실상 24시간이 지나면 귀신이 와도 정확한 사망 시각을 추정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통상적으로 부검이 이뤄지는 곳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시신이 그 곳으로 이동하기까지의 시간, 범행 현장과 부검 장소와의 온도 차이나 환경 차이 등을 고려할 때 부검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 역시 부검은 사건이 접수되고 3일 후 이뤄졌다. 부검 당시 사체를 촬영한 사진에는 검안(현장에서 사체 외부를 보고 사망 이유나 시각을 판단하는 임시 부검의 형태) 당시 촬영한 사진에 없던 부분이 추가로 발견됐다. 이 때문에 대법원은 시신을 현장에서 병원, 병원에서 국과수로 옮기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시신의 추가적 손상을 의심했다.
전문가들은 '검시 전문 인력 양성'과 이를 뒷받침할 '검시법 제정'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법원을 설득할 수 있는 '좀 더 과학적인' 분석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범행 현장에 출동해, 현장과 사체를 검시하는 검시관은 전국적으로 60명이 채 안 된다. 이들은 모두 각 지방 경찰청 과학수사계 검시팀에 소속돼 있다. 살인은 물론 통상적 변사 사건에도 모두 투입되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다. 한 검시관은 "1년에 통상 3만5,000명 정도의 시신을 검시해야 한다"며 "전문 검시 인력이 지금보다 최소 6배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죽음을 부검해야 하는지를 관할 지검 검사가 판단하는 현재의 검시 제도 역시 부검 지연의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에 따라 부검 조건을 법으로 규정한 '검시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채종민(60) 경북대(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검 여부를 검사가 판단하는 건 인치지 법치가 아니다"며 "산 사람의 권리, 죽은 사람의 권리, 정확한 부검을 위해서라도 검시법 제정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법의학자, 법과학자, 경찰, 수사관들이 현장에 함께 가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급한 대로 전문 검시 인력을 늘리기 위해 정부의 파격적인 정책 지원이 이뤄진다면, 미제 사건 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 새 증거 제시 사실상 불가능… 영구 미제 가능성
남상욱기자 thoth@hk.co.kr
범인으로 남편 백모씨를 지목해 공소를 제기했던 검찰은 대법원이 지적한 허점을 최대한 꼼꼼하게 채우는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5개월이나 지난 사건이라 추가 증거를 발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그래서 1ㆍ2심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부검과 현장 분석에 대한 전문가 추가 소견을 통해 '백씨가 아내를 살해한 것이 맞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재판부를 설득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사망한 박씨가 욕조에 넘어져 자연적으로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없다는 추가 소견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목 졸려 사망했다는 유력 증거로 제시했던 목 부위의 상처와 내부 출혈이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서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자연적인 시반의 흔적'라는 재판부의 판단에 재연 등의 형태를 통해서라도 반론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일각에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대검찰청 형사과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을 읽어보면, 1%도 자연사 가능성이 없어야 한다는 걸로 받아들여진다"며 "만약 항소심에서도 대법원과 같은 취지로 사건을 해석한다면 사실상 수사기관에서는 불가항력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번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열쇠가 검찰의 몫으로 남게 됐지만, 미제 사건으로 둔갑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대법원의 파기 환송 판결에 따라 이번 사건은 최종 결론이 언제 내려질 지 시점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통상 '무죄 취지'로 파기했다면, 항소심에서 대법원의 취지대로 판결을 내리고 다시 대법원에서 이를 확정하면 법정 공방이 종결된다. 그러나 대법원이 '다시 판단을 하라'고 했기 때문에, 항소심부터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재판을 하게 된 것이다. 1995년 발생한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의 경우 '1심 유죄, 2심 무죄, 3심 유죄 취지 환송, 2심 무죄, 3심 무죄 확정'을 거치며 7년 넘게 재판이 진행됐다. 이번 사건도 그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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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옥진 기자 clic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