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중 법의학 개설 14곳뿐 대부분 전문의 과정 없어 못 받아

애써 키워놔도 일할 곳도 태부족

허술한 검시제도의 중심에는 법의학자 인력 문제가 놓여 있다. “법의학자가 충분치 않아 제대로 검시제도를 운영하는 건 무리”라며 인력 탓만 하는 당국 입장과 “일할 여건이 안 된 상태에서 누가 법의학자를 키우고, 하겠는가”라는 법의학계 입장이 끝없이 공전 중이다.

15일 대한법의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법의학자는 50여명이다. 검시제도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법의학자가 전국에 최소한 200여명 필요하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법의학자가 부족한 이유는 조직화된 양성 체계가 없고, 설령 법의학자가 배출돼도 일할 곳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법의학자 양성에서 국내 전문의 전문과목 26개 중 법의학 분야는 아예 없다. 다만 질병이나 손상의 원인·과정·결과 등을 연구하는 병리학 전문의 중 일부가 법의학자가 되고 있다. 병리학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부검 20건을 해야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법의학 전문성을 갖기 어렵다.

의대생 중 상당수는 법의학에 관심있다고 한다. 김형석 전남대 교수(법의학 교실)는 “얼마 전 다른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학생이 법의학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는데 병리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정은 다른 법의학 교실도 비슷하다. 법의학 교수가 제자 양성을 마다하는 건 진출할 곳이 마땅치 않을 제자 취업 걱정 때문이다. 이윤성 서울대 교수(법의학 교실)는 “법의학을 하겠다는 제자들이 찾아와도 첫 번째 걱정이 취직자리”라고 말했다. 

의과대학에서 법의학 교실을 만드는 것은 선택사항이다. 전국 41개 의과대학 중 법의학 교실이 있는 대학은 14개이며 대부분 “돈 안 되는 곳”이라는 눈총을 대학본부로부터 받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법의학자 양성을 계속 외면한다면 현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1세대 법의학자들이 줄줄이 은퇴하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에서 법의학자가 되기 위해 수련하고 있는 사람은 5명 정도로 알려졌다.

박종태 대한법의학회장은 “10년 전 검시 관련법이 발의됐다가 국회 통과하지 못했을 때 법안에 있었던 법의학자 양성만이라도 시작했다면 지금 법의학자가 100명은 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현장 검안은 모든 법의학자들의 꿈

부검만 하는 ‘반쪽 검시’ 회의 느껴
사건 현장은 ‘증거의 바다’이다. 범죄 현장 어딘가에는 사건 실마리를 풀 단서가 남는다. 변사 사건에서는 현장과 더불어 시체에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 시신이 몸으로 쓴 유서를 읽어내는 전문가는 법의학자다. 그러나 국내 법의학자는 50명에 불과하다. 한 해 5000건이 넘는 부검을 하기도 벅차서 법의학자가 변사사건 현장에 직접 나가는 일은 아주 드물다. 이 때문에 경찰은 간호학·병리학 전공 출신의 경찰검시관을 늘려 그 빈자리를 채우려고 하지만 법의학계는 “안될 일”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반쪽 검시에 지친 법의학자들

현재 국내 법의학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22명, 전국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에 19명, 민간 법의학의원에 9명이 소속돼 있다. 

국과수 중앙법의학센터 양경무 법의관은 “현장에 직접 나가 검안하는 것은 법의관의 꿈이자 숙제”라며 “그러나 현실은 부검하다가 의문점이 생기거나 확인이 필요할 때나 현장에 나가는데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고 아쉬워했다.

법의관들이 현장에 나가려면 인원이 확충돼야 하지만 정부는 최소 5급 사무관으로 임용되는 법의관을 늘리는 데 난색을 표한다. 

결국 부검만 하는 반쪽짜리 검시에 회의를 느낀 법의관들은 국과수에서 나와 민간 법의학의원을 열고 있다. 현재 민간 법의학연구소는 서울 2곳, 부산·울산 2곳, 대구 1곳 등 전국에 총 5곳으로, 모두 9명의 법의학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경찰 연락을 받고 변사사건 현장에 나가 검안을 하고, 간혹 보험사나 일반인들로부터 사인 규명 의뢰를 받기도 한다.

한국법의학 서울의원 전석훈 원장은 “부산과 울산은 변사사건이 접수되면 경찰이 무조건 민간 법의학의원에 연락해 변사의 90%를 법의학전문의사가 검시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서울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경찰도 “현장에서 시신을 검안해야 하는데 나올 의사가 없으니 병원으로 시신을 싣고 간다”며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사망 여부만 판단하니 시체로부터 얻을 수 있는 법의학적 단서는 다 놓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전 원장은 “경찰과 의사 눈에는 병사처럼 보였지만 뒤늦게 사건이 푹푹 뜬다”며 “그게 바로 치과 모녀 살인사건, 고대 여학생 피살사건”이라고 꼬집었다.

◆경찰검시관을 둘러싼 논란

정부가 법의관을 확충해주지 않자 경찰은 2005년 ‘경찰검시관’을 7·9급 일반직으로 채용해 16개 지방경찰청에 배치했다. 간호학·임상병리학·생물학을 전공한 경찰검시관은 변사사건 현장에서 시신의 상태와 주변상황을 살펴 경찰과 부검의사에게 정보를 준다.

경찰은 2016년까지 검시관을 144명까지 늘려 장기적으로 모든 변사사건에 출동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법의학자들은 검시관이라는 명칭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검시관(Coroner)은 원래 검시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지닌 검사나 판사 등을 일컫는 명칭인데 경찰이 검시보조요원에 그릇된 명찰을 붙여 국민 혼동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 검시관을 전원 국과수로 파견, 국과수 현장 조사요원으로 활용하려던 구상이 변질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법의학계에선 “이런 식이면 검시관 교육조차 협조할 수 없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경찰은 최근 검시관이라는 명칭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전국 지방경찰청 소속 과학수사요원들이 지난해 6월 전북 전주의 한 야산에서 ‘매장시체 발굴 및 변사자 사후 경과시간 추정기법’ 교육을 받고 있다. 경찰은 검시업무를 보조할 검시관을 채용해 활용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그러나 경찰검시관의 전문성에 대한 공방은 여전하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국과수에서 6개월간 부검하는 것을 봤다고 (법의학)전문가가 되겠는가. 선발 후에는 보수교육을 받을 곳도 마땅치 않다”며 “솔직히 검시관 10명 뽑느니 전문의 1명 뽑는 게 나을 수 있고 원칙적으로도 그게 맞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검안 경험이 있는 일반의사 등 52명을 선발해 ‘현장검안의 인력풀’을 꾸렸지만, 이 역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경찰 스스로 “법의학 전문성을 확언하기는 힘들다”고 인정했다. 한 법의학자는 “지금도 법의학 지식이 없는 일반의사에 검안을 맡겨 문제가 되는데 아예 인력풀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완전히 코미디”라며 “그런 방식으로는 지금과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검시전문가 100% 현장 투입 등 관계기관과 합의 없이 일방 발표

화상통화 자문 등 실효성 낮아
유병언 전 청해진해운 회장 변사체의 노숙자 오인 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지난 13일 “단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도 없도록 하겠다”며 ‘변사사건 종합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관계기관과 협의가 채 되지 않은 설익은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현장 문제점에 대응하는 실질적인 대책도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책의 골자는 변사사건 중 타살 의심, 신원 미확인, 아동학대 사망 등 사회적 이목 집중이 예상되는 사건을 ‘중점관리’ 대상으로 정해 별도 대응한다는 것이다. 타살 흔적을 잘 숨긴 사건이나 신원이 확인된 변사자에 대한 수사 허점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

또 중점관리 변사사건 현장에 검시 전문인력을 100% 투입하겠다는 내용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찰은 국내 법의학자 9명을 포함해 현장 출동이 가능한 ‘검안의 인력풀’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법의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인력풀에 대해 결정된 바 없고, 인력풀이 만들어져도 경찰 구상처럼 현장에 나갈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또 “서울·경기의 일선 경찰서 상당수는 기존의 법의학 전문의사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않다“며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한법의학회 관계자는 “경찰청과 두 차례 회의를 했지만 구체적으로 정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부검하기도 바쁘고, 대학 법의학교실은 부검·연구·강의를 해야 하는데 경찰 전화에 바로바로 나갈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우리가 확보한 검안의는 법의학자는 아니지만 검안 경험이 있는 의사들이고, 현장에 바로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국과수 법의관에게 태블릿 PC를 지급해 필요할 경우 화상통화를 통한 ‘원격 법의 자문’을 받겠다고 발표한 내용에 대해서도 국과수에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 좀 비춰주세요”하는 식으로는 현장 파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검시전문인력 투입을 명분으로 두 배 가까운 증원 계획을 발표한 ‘경찰 검시관’은 전문성에 대한 공방이 뜨겁다. 임상병리, 간호학 등을 전공한 검시관이 병리학 전문의 자격을 따고 법의병리 실무 경험을 쌓은 법의학자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시체제의 심각한 문제점인 일선 수사진의 부검 기피 풍토는 아예 빠져 있다. 취재를 종합하면 실무진에선 당직 중 변사상황이 발생하면 비번(휴무)인데도 출근해서 부검에 참여하는 등의 이유로 변사체 부검을 왠만하면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일부에서 업무 과다를 호소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형사들은 부검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검시의 두 축인 검경이 따로 대책을 세우는 상황도 아쉬운 대목이다. 검찰은 경찰과 별도로 변사사건 처리 관련 대책을 마련 중이며 이달 말 법의학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특별기획취재팀







결핵 환자를 뇌졸중으로… 흉기 찔렸는데도 死因 미상…



지난해 11월 인천 한 요양원에서 숨을 거둔 어머니를 인근 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긴 강해웅(65)씨는 어머니 시체검안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1년간 결핵을 앓고 사망 전날까지도 결핵약을 복용한 어머니가 뇌졸중 환자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영정사진을 가지러 집에 잠시 간 사이 장례식장에서 부른 A 의사가 ‘검안서를 써야 한다’며 전화했길래 결핵으로 7개월 넘게 입원하셨다가 요양원으로 옮긴 자초지종을 다 얘기했다”며 “그런데 장례식장에 돌아와 보니 시체검안서 사망 원인에 ‘뇌졸중·고혈압’이 적혀 있어 황당했다”고 말했다. 강씨 설명에도 A 의사는 강씨 형에게 ‘결핵으로 사망했다고 쓰면 보건소에 신고도 해야 하고 절차가 복잡한데 노인들은 뇌졸중, 고혈압으로 쓰면 장례치르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며 이같이 검안서를 작성한 것이다. “유족 말을 무시한 데다 시신도 제대로 보지 않고 검안서를 썼다”는 게 유가족 주장이다. 강씨는 “의사는 시체를 봤다고 하는데, 의사가 병원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형이 내려가 만났는데 그 짧은 시간에, 보호자를 동행하지도 않은 채 시체를 봤다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A 의사는 검안비로 현금 15만원을 받아갔다. 보통 대학병원이나 병원은 7만∼10만원 선이다. 강씨는 “장례식장에서 의원을 불러주고 검안비에서 수수료를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일부 장례식장과 검안의사 결탁설은 흔한 얘기다.

취재팀 확인 결과 80대인 A 의사가 운영하는 B 의원은 최근 2년 9개월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진료비를 청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환자를 아예 보지 않았거나 비급여 진료만 했다는 뜻이다. 취재진 전화 문의에 A 의사는 “진료는 하지 않는다. 부르는 데나 나가고…”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아버지 장례를 치른 C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뜬금없이 빈소에 서류가방을 들고 온 70대 노인이 의사라며 명함을 건넸다. 그는 C씨 아버지 병력을 물어보며 “검안서에 (사인을)병사로 써주겠다”고 제안했다. 두 의사 모두 진료는 하지 않고 일대 장례식장을 순회 영업하며 마치 자판기처럼 검안서를 발급한다. 법의학계에서는 이런 이들을 ‘검안서 장수’라고 부른다.



◆검안서 장사

시체검안서나 사망진단서는 의료기관을 개설해야 쓸 수 있다. 검안서 장수 역시 대부분 병·의원을 차려놓고 진료는 하지 않는다. 심평원에 진료비를 청구하지 않으니 관할 보건소 관리감독도 받지 않는다. 병원 간판조차 없는 곳도 있다. 취재팀이 찾아낸 서울 은평구 한 검안서 장사 의원의 경우 ‘진료과목 내과·외과·산부인과·비뇨기과’와 ‘포경수술’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 병원명은 없었다. 심평원에 자료가 저장된 최근 5년간 진료비 청구내역도 전무했다.

이 같은 검안서 장수들은 국과수 부검의와 법의학자들 사이에서 ‘시체검안서의 나쁜 예’로 등장하는 단골 손님이다. 검안서와 사망진단서를 토대로 사망원인 통계를 내는 통계청에서도 큰 고민거리다.

한 법의학자는 “일부 의사가 사인을 ‘미상’으로 미리 써놓고 이름만 비어 있는 검안서를 들고 장례식장을 돌아다닌다”며 “경찰이나 유족 얘기는커녕 시신조차 안 보고 쓴 검안서는 엄밀히 따지면 허위진단서”라고 지적했다. 

◆범죄에 악용되는 부실 검안서

의사가 시체검안서 발부만 하더라도 이는 전혀 위법이거나 부도덕하지 않다.

문제는 일부가 망자의 죽음을 검증하는 엄중한 작업을 건성으로 하고 사인을 엉터리로 기재한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들뿐 아니라 일반 의사 다수에게서도 엉터리 사망진단서와 검안서가 발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엉터리 검안서는 자칫 억울한 죽음을 그대로 덮어버리거나, 향후 유족이 보험금 송사 등에 휘말렸을 때 증거자료 구실도 하지 못한다. 

취재 결과, 명백한 타살 흔적이 있는데도 의사가 병사 등으로 잘못 처리해 경찰에 신고되지도 않은 채 영원히 묻힐 뻔한 범죄 사례도 적지 않았다.

2012년 12월 경기도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83세 여성이 이미 숨이 끊긴 채 실려 왔다. 응급실 의사는 “어머니가 노환으로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아들의 말만 듣고 ‘직접사인-노쇠’, ‘사망의 종류-병사’로 기재해 검안서를 떼줬다. 병사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되지 않고, 검시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노인의 죽음은 자연사로 덮힐 뻔했지만, 입관 직전 아들에 의한 패륜사건으로 드러났다. 장례식장 직원이 시신 목에 걸쳐 있던 스카프를 풀자 끈에 졸린 선명한 자국이 나타났다. 직원 신고를 받은 경찰은 아들로부터 자백을 받아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동두천 한 병원 응급실에 부엌칼이 등에 꽂힌 채 실려온 50대 남성 한모씨 사례도 비슷했다. 의사는 숨진 채 병원에 온 한씨에게 심폐소생술을 한 후 시신 등에 칼자국도 뚜렷한데도 사망 원인을 ‘심폐정지’, 사망의 종류를 ‘기타 및 불상’이라고 썼다.

이 밖에도 2010년 노숙 여성을 살해한 뒤 자신이 죽은 것처럼 꾸민 부산 ‘시신 없는 살인사건’ 등 타살사건을 검안의가 병사로 처리해 완전범죄가 될 뻔한 사례는 찾기 어렵지 않다. 완전범죄가 다수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법의학 서울의원 김형중 원장은 “아무리 법의학전문의가 아니라지만 검안하는 의사들이 시신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무성의하게 검안서를 쓰고 있다”며 “심폐정지는 죽음의 결과적 현상이지 직접원인이 아닌데도 사인에 심폐정지를 쓰거나 선행 사인을 알 수 없는 노쇠, 심장마비 등을 쓰는 오류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빈부 격차는 죽음에도 예외가 없었다. 취재팀이 2012년 원인 미상 사망자를 분석한 결과다. 취재팀이 통계청으로부터 제공받은 2012년 국내 사망원인 통계 자료에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을 적용한 결과 26만7221명의 사망자 중 2만8838명이 ‘원인 불명’ 사망자로 분류됐다.




이들의 죽음을 들여다본 결과 역시 병원보다 병원 밖에서 죽은 사람이 많았고, 학력이 낮거나 혼자 산 이들이 많았다. 무관심과 소외의 사각지대에서 원인 미상 사망자가 대거 양산되고 있다. 원인 미상 사망자 79.7%(2만2975명)는 의료기관 바깥에서 사망했다. 전체 사망 인원(26만7221명) 중에서 의료시설 내 사망이 70.1%(18만7253명)인 것과 반대다. 

‘병원 밖 사망’에는 주치의에 의한 사망진단서 대신 시체검안서가 쓰였을 가능성(박스기사 참조)이 크다. 망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의사가 쓰기 마련인 시체검안서는 사인이 ‘심박정지’ 등으로 불명확할 가능성이 크다.

17개 광역자치단체별로 원인 불명 사망 비율을 비교한 결과 부산(6.4%), 울산(7.2%), 세종(7.7%)이 가장 적었다. 부산과 울산은 이례적으로 검안서 작성에 전문성이 있는 법의학자가 민간 법의의원을 차려 검안서 대부분을 꼼꼼히 작성하고 있다. 그 결과 지역 전체 원인 불명 사망자 수가 적어진 것이다.

왜 죽었는지 밝히지 못하고 묻힌 이들은 소외계층일 가능성도 컸다. 전체 사망자 중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47.5%(12만6998명)이었지만 원인 불명 사망자 중에서는 33.3%(9599명)만 남편·부인이 있었다. 학력에서도 전체 사망자 중 57.7%인 무학·초등학교 학력자 비중은 원인 불명 사망자 중에서는 69.4%로 늘어났다. 소외계층은 죽은 후에도 사망 원인이 불명확하게 마무리되는 서러움을 겪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원인 불명 사인에도 종류가 있다. 가장 흔한 것은 ‘노쇠’(51.8%·1만4946명)다. 고령층이 병원 밖에서 사망하면 전신 기능 쇠약으로 인한 노쇠로 사망했다고 단정 짓는 경우가 많아서다. 사실상 ‘노인이라서 뚜렷한 사인을 알 수 없거나 알 필요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선 친족에 의한 살인이 가장 흔한 만큼 이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다른 원인 불명 사인에는 ‘기타 불명확하고 상세 불명의 사망 원인’(15.8%·4536명), ‘급성 심장사로 기술된 것’(7.1%·2043명), ‘지켜본 사람이 없었던 사람’(6.1%·1753명), ‘원인 미상의 기타 급사’(3.5%·1014명)가 뒤따랐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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