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사망 사건 계기

역대 최대규모 41명 채용


[ 윤희은 기자 ] 지난해 7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늦은 신원 확인과 부실한 사망 원인 확인 등으로 비난을 받았던 경찰이 역대 최대 규모의 검시조사관 채용에 나섰다.

경찰청은 지난달 간호사 또는 임상병리사 면허증을 가진 검시조사관(9급) 41명에 대한 채용공고를 낸 뒤 지난 9일까지 원서를 받았다고 12일 밝혔다. 합격자는 연수원 교육을 마친 뒤 오는 9월부터 정식 발령을 받아 근무한다.

41명 채용은 지금까지 치렀던 검시조사관 채용 중 최대 규모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검시조사관이 67명인 것을 감안하면 기존 인력의 60%를 한꺼번에 증원하는 것이다.

경찰이 역대 최대 규모 채용에 나선 것은 지난해 발생한 일명 ‘유병언 사망 사건’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해 6월 전남 순천에서 신원 미상의 남성 변사체를 발견한 뒤 40여일 지나 유 전 회장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한 달에 걸친 사망 원인 분석에 나섰지만 사망 추정 시점이 6월2일 이전이라는 것과 타살 흔적이 없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 구체적인 사망 원인 파악에는 실패했다. 지지부진한 수사가 이어지면서 경찰은 부실수사 논란에 시달렸고, 이 과정에서 정순도 당시 전남지방경찰청장이 직위 해제되기도 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관계자는 “지난해 발생한 유 전 회장 사망 사건을 계기로 검시조사관 증원에 대한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며 “올해 100명 이상으로 늘리고 내년 중 한 차례 더 채용해 144명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충청일보 신정훈기자] 검시조사관은 사건·사고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이 범죄와 연관성이 있는지 과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66주년 과학수사의 날(11월4일)을 맞아 충북지방경찰청 광역과학수사대 김혜숙(39·7급·여) 검시조사관(조사관)을 만났다.
 

◇세 살배기 엄마의 새로운 도전=매일 마주해야 하는 주검, 세 살배기의 엄마였던 그는 2006년 검시조사관이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검시관교육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생활했던 6개월은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다. 매일 10여차례 부검 참관과 빡빡한 교육일정으로 눈만 감으면 죽은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서웠어요. 그런데 어린아이들 부검을 참관하면서 내 아이 생각도 나고,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한다'라는 다짐을 하니 두려움도 무서움도 사라졌어요."
 

◇검시조사관, 녹록지 않은 7년=그렇게 시작한 검시조사관일이 벌써 7년. 그의 집념처럼 검시관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3명의 검시관이 충북전역의 사건을 담당해야 했다. "너무 힘들죠, 하루에도 몇 번씩 현장을 나가고, 24시간 꼬박 현장에 있을 때도 있어요"라며 "시신을 만지고 확인하는 일이 쉽지는 않죠. 특유의 냄새도 힘들고요"
 

지난해 충북청에서 발생한 변사사건은 총 1327건으로 검시조사관 1명당 200여건의 사건을 담당했다. 적은 인원 탓에 검시조사관은 365일 24시간 대기 중이다.
 

결혼식도 돌잔치도, 심지어 맏며느리임에도 제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현재 충북청의 3명의 검시관 모두 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지금도 쉴새 없이 현장을 쫓아 다닌다.
 

◇그 때 그 사건…, 내가 공부하는 이유=하루도 편할 날 없는 그는 시간을 쪼개 아직도 공부 중이다. 충남대학교 평화안보대학원에서 과학수사학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지금은 후학 양성을 위한 대학원 강의도 나선다.
 

"입문한지 얼마 안 돼 대형마트 여종업원 살인사건이 있었죠. 아직도 범인을 밝혀내지 못했어요"라며 "힘들어도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
 

김 조사관은 "충북 영동에서 아내를 살해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한 사건처럼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검시조사관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전국에 71명뿐인 검시조사관으로는 어려운 현실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더욱 많은 지원과 검시조사관을 양성해 단 한명의 억울한 죽음도 없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충북만 올해 157명 상담…트라우마센터 4곳 상담도 벅차


[청주CBS 박현호 기자]




수시로 생명을 위협받고, 충격적인 사건 현장을 마주하는 경찰관. 

경찰 창설 69주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들이 겪는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다.

짐승에게 살점이 뜯겨지고, 썪어 문드러져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시신까지…충북지역 변사사건 현장을 찾아 시신을 확인해야 하는 김모(여) 검시관은 최근 원인 모를 안구통증에 병가를 낼 수밖에 없었다. 

여성으로써 한 해 70건이 넘는 변사사건 현장과 맞딱뜨린 정신적인 충격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자비를 들여서라도 선뜻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도내 한 경찰서 형사는 나약함으로 비춰질까 하는 괜한 걱정에 혼자서 말 못할 고통을 끓어 안고 산 게 벌써 7년째다. 

2007년 흉기를 든 강도와 대치하다 총까지 빼들어야 했던 이모 형사는 이후 날카로운 물건에 대한 공포감이 생겼다. 

그러나 치료커녕 동료들에게조차 자신의 아픔을 알릴 수 없었다. 

그사이 마음의 병은 점차 커져만 갔고 올해 또다시 유사한 경험을 하면서 이제는 평상시 생활조차 힘이 들 정도가 됐다. 

이 형사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차마 총을 쏠 수 없어 발 밑으로 사격을 한 뒤에는 날카로운 물건만 봐도 공포감이 생겼다"며 "어쩔 수 없이 형사일을 했지만 올해 또다시 반복되면서 솔직히 이제는 못하겠다"고 하소연했다. 

20일 충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 현재,도내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심리 상담을 받은 경찰관만 157명이다. 

이는 인근 충남의 36명, 대전 60명보다 3배 가량 많은 수치다. 

뒤늦게나마 경찰청이 올해 트라우마센터를 전국 4곳으로 확대하기는 했지만 부족한 인력과 예산 등의 한계로 희망자에 한해서 주로 상담역할에만 그치고 있다. 

해마다 건강검진에 트라우마 검사를 실시하고, 치료비 지원까지 하고 있는 소방방재청과 비교해서도 그야말로 걸음마 수준이다. 

충북지방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업무적 특성상 못 견디면 경찰 그만둬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본인 희망에 의해 원거리 상담·치료를 받는다는 게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시간에도 이어지고 있는 사건·사고 현장에서 묵묵히 제몫을 하고 있는 경찰관의 소리 없는 아픔에도 이제는 귀를 기울여야할 때다.


ckatnfl@cbs.co.kr








              원격관제시스템을 이용해 현장에 들어가지 않고도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무선전송시스템을 구축해 

              운용예정인 경찰이 17일 대전 중구 한 여관에서 현장의 감식 상황을 모니터하고 있다. 전우용 기자 

              yongdsc@ggilbo.com 


17일 오전 대전 중구 문창동의 A 여관. 3층 객실 침대 위에 마네킹(이하 M 씨)이 낡은 베개를 벤 채 널브러져 있다. 객실 안 탁자에 놓인 흉기, 바닥에 낭자한 붉은 액체는 범죄 발생 현장의 긴장감과 전율을 생생히 전달했다.


이곳은 대전지방경찰청의 과학수사 모의훈련(F.T.X) 현장. 사건발생을 가장한 훈련의 일환이지만 대전청·중부경찰서 경찰들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과학수사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경찰은 매뉴얼에 따라 현장 임장·보존 조치 원격관제시스템 운용, 현장관찰 및 기록, 증거물 검색 등을 진행했다.


 긴장감 가득한 현장 … 실전같은 과학수사 선보여
현장 밖에서도 무선시스템으로 실시간 감식상황 모니터


과학수사대 대원들은 훈련이 시작되자 경찰통제선을 설치하고 증거보전을 위한 통행판을 따라 조심스레 사건 현장으로 진입했다. 이날 검시를 담당한 대전청 과학수사대 신미애(39·여)·오주빈(41) 경찰 검시관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침대에서 숨진 채 발견된 M (40) 씨를 주시했다.


검시 10년 차 신 검시관과 8년 차인 오 검시관은 M 씨 곳곳에 난 상흔을 살폈다. 이들은 현장에서 상처를 살핀 후 ‘자상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M 씨를 옆 객실로 옮겼다. 이는 시신 뒤에 유리된 물건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와 증거가 되는 용의자 피가 시신 뒤에 묻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시관들은 M 씨의 시신을 시체포 위에 올려놨다. 시체포는 시신의 인격을 존중하기 위해 국내 과학수사대에서 쓰고 있는 것으로 하얀색 천 바탕 위에 신장 등을 확인 알 수 있는 눈금이 그려져 있다. 검시관들은 이후 좀 더 구체적인 검시를 진행했다.


신 검시관이 “얼굴에 출혈이 많아 창백하다. 눈꺼풀과 각막이 혼탁하다”고 검시한 내용을 오 검시관이 “얼굴에 출혈이 많아 창백, 눈꺼풀과 각막 혼탁”이라고 되물으며 한자 한자 정성스레 기록지에 적어 넣었다. 이런 검시과정을 거쳐 시신에 생긴 의문의 상흔은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과학적인 기록’으로 변해갔다.


과학수사대의 ‘과학’의 밑바탕에는 진실을 밝히겠다는 수사대원의 열정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학병원 간호사로 수년 간 근무하다 과학수사에 매력을 느껴 과학수사대원이 됐다는 신 검시관. 그녀는 “대전경찰청·일선서가 같이 합동으로 훈련을 했다. 이런 훈련을 바탕으로 한 사람의 시민도 진실이 알려지지 못하는 피해가 없도록 철저히 노력하겠다”고 훈련소감을 밝혔다.


대전청 홍영선(45) 과학수사계장은 “국민에게 책임을 다하고 신뢰받는 경찰이 되기 위해서는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현장에서 단 한 가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평소 과학수사 전문인력 풀 구성과 신속한 현장지원을 위해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반복하겠다”고 약속했다.



곽진성 기자 pen@ggilbo.com







세계일보 보도 후 '용기있는 제보' 잇따라

검시제도 허점 개탄하며 개선 촉구

억울한 죽음을 허용하는 검시체계의 문제점을 다룬 ‘대한민국 검시 리포트’ 시리즈는 여러 반응을 이끌어 냈다. 경찰 내부에서는 기사가 나간 후 직접 취재진을 접촉해 기획 취지에 공감하며 현장의 심각성을 전했다.

한 경찰검시관은 “처음 1차로 뽑은 검시관은 국과수에서 6개월 연수했는데 요즘 채용 검시관은 한 달 교육하고 내보내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며 “(검시관) 선배 옆에서 배우라는 건데, 정식 교육이나 연수 과정도 없는 상태에서 검증되지 않은 걸 보고 따라 하라고 하면 제대로 되겠나”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 진료기록조차 못 읽는 이들이 검시관으로 채용되는 경우도 있다며, 차라리 의사를 더 채용해서 검시 보조인력으로 검시관이 현장을 뛰고 의사는 팀장으로서 책임을 지는 방안이 옳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일선 경찰은 “변사사건 발생 수에 비해 경찰검시관이 턱없이 적은 것은 맞지만 지금 있는 71명조차도 현장에 제대로 투입되지 않고 있다”며 “변사체 보라고 뽑았는데 (변사 현장)피하고 내근직이나 거짓말탐지기 담당 등 검시와 관련 없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기사를 접한 네티즌들도 대한민국 검시제도의 허점에 개탄하며 하루빨리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디 ‘싸이버***’는 “지방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는데 사망진단서, 사체검안서만 있으면 무조건 화장 통과입니다. 거기에 병사라고만 있으면 말이죠. 검안하시는 의사 분이 80세 넘으셨는데 사인은 무조건 좀 젊으면 급성심부전증 … 연세 있으시면 만성심부전증 … 그렇게 억울한 죽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라고 했다. ‘nair****’이란 아이디의 네티즌은 “싱가포르 교민인데, 여기서는 모든 의문사의 부검을 의무화합니다. 병원에서 사망해서 사망원인이 확실한 경우 아니면 주치의라고 해도 섣불리 사망원인을 적지 않으려 합니다. 혹시나 있을 법적 분쟁 책임도 그렇고, 만약 대충 ‘노쇠해 사망’ 등으로 기재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의사도 자격정지는 물론 감옥행이기 때문이죠.”라고 전했다. 

법의학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는 법의학도들의 진심어린 목소리도 많았다. 

“법의학자 되려고 병리학을 전공하는 의사들 널렸습니다. TO가 나오질 않아서 경쟁률도 어마어마합니다. 정원만 늘리면 다 해결될 문제예요. 지금도 법의학자가 꿈인 사람 많고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까요.”(아이디 ‘keoy****’)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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