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검안은 모든 법의학자들의 꿈

부검만 하는 ‘반쪽 검시’ 회의 느껴
사건 현장은 ‘증거의 바다’이다. 범죄 현장 어딘가에는 사건 실마리를 풀 단서가 남는다. 변사 사건에서는 현장과 더불어 시체에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 시신이 몸으로 쓴 유서를 읽어내는 전문가는 법의학자다. 그러나 국내 법의학자는 50명에 불과하다. 한 해 5000건이 넘는 부검을 하기도 벅차서 법의학자가 변사사건 현장에 직접 나가는 일은 아주 드물다. 이 때문에 경찰은 간호학·병리학 전공 출신의 경찰검시관을 늘려 그 빈자리를 채우려고 하지만 법의학계는 “안될 일”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반쪽 검시에 지친 법의학자들

현재 국내 법의학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22명, 전국 의과대학 법의학교실에 19명, 민간 법의학의원에 9명이 소속돼 있다. 

국과수 중앙법의학센터 양경무 법의관은 “현장에 직접 나가 검안하는 것은 법의관의 꿈이자 숙제”라며 “그러나 현실은 부검하다가 의문점이 생기거나 확인이 필요할 때나 현장에 나가는데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고 아쉬워했다.

법의관들이 현장에 나가려면 인원이 확충돼야 하지만 정부는 최소 5급 사무관으로 임용되는 법의관을 늘리는 데 난색을 표한다. 

결국 부검만 하는 반쪽짜리 검시에 회의를 느낀 법의관들은 국과수에서 나와 민간 법의학의원을 열고 있다. 현재 민간 법의학연구소는 서울 2곳, 부산·울산 2곳, 대구 1곳 등 전국에 총 5곳으로, 모두 9명의 법의학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경찰 연락을 받고 변사사건 현장에 나가 검안을 하고, 간혹 보험사나 일반인들로부터 사인 규명 의뢰를 받기도 한다.

한국법의학 서울의원 전석훈 원장은 “부산과 울산은 변사사건이 접수되면 경찰이 무조건 민간 법의학의원에 연락해 변사의 90%를 법의학전문의사가 검시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서울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경찰도 “현장에서 시신을 검안해야 하는데 나올 의사가 없으니 병원으로 시신을 싣고 간다”며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사망 여부만 판단하니 시체로부터 얻을 수 있는 법의학적 단서는 다 놓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전 원장은 “경찰과 의사 눈에는 병사처럼 보였지만 뒤늦게 사건이 푹푹 뜬다”며 “그게 바로 치과 모녀 살인사건, 고대 여학생 피살사건”이라고 꼬집었다.

◆경찰검시관을 둘러싼 논란

정부가 법의관을 확충해주지 않자 경찰은 2005년 ‘경찰검시관’을 7·9급 일반직으로 채용해 16개 지방경찰청에 배치했다. 간호학·임상병리학·생물학을 전공한 경찰검시관은 변사사건 현장에서 시신의 상태와 주변상황을 살펴 경찰과 부검의사에게 정보를 준다.

경찰은 2016년까지 검시관을 144명까지 늘려 장기적으로 모든 변사사건에 출동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법의학자들은 검시관이라는 명칭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검시관(Coroner)은 원래 검시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지닌 검사나 판사 등을 일컫는 명칭인데 경찰이 검시보조요원에 그릇된 명찰을 붙여 국민 혼동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 검시관을 전원 국과수로 파견, 국과수 현장 조사요원으로 활용하려던 구상이 변질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법의학계에선 “이런 식이면 검시관 교육조차 협조할 수 없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경찰은 최근 검시관이라는 명칭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전국 지방경찰청 소속 과학수사요원들이 지난해 6월 전북 전주의 한 야산에서 ‘매장시체 발굴 및 변사자 사후 경과시간 추정기법’ 교육을 받고 있다. 경찰은 검시업무를 보조할 검시관을 채용해 활용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그러나 경찰검시관의 전문성에 대한 공방은 여전하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국과수에서 6개월간 부검하는 것을 봤다고 (법의학)전문가가 되겠는가. 선발 후에는 보수교육을 받을 곳도 마땅치 않다”며 “솔직히 검시관 10명 뽑느니 전문의 1명 뽑는 게 나을 수 있고 원칙적으로도 그게 맞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검안 경험이 있는 일반의사 등 52명을 선발해 ‘현장검안의 인력풀’을 꾸렸지만, 이 역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경찰 스스로 “법의학 전문성을 확언하기는 힘들다”고 인정했다. 한 법의학자는 “지금도 법의학 지식이 없는 일반의사에 검안을 맡겨 문제가 되는데 아예 인력풀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완전히 코미디”라며 “그런 방식으로는 지금과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인간·동물 뼈 도감 발간 주역 김영삼 검시관 (의정부=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과학수사계는 '그림으로 이해하는 인체 뼈와 동물뼈 비교 도감'을 펴내 전국 경찰서에 배포했다. 국내에서 인간·동물 뼈의 도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간의 주축을 맡은 경기경찰2청 과학수사계 김영삼(45) 검시관은 "국내 최초로 뼈 컬러 사진을 실어 초동 과학수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사진은 김 검시관이 경기경찰2청 과학수사계에서 동물뼈를 살펴보는 모습. 2014.9.3 andphotodo@yna.co.kr



경기경찰2청, 국내 최초 '인간·동물 뼈' 도감 발간


(의정부=연합뉴스) 권숙희 기자 =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신 백골화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사람의 뼈와 동물의 뼈를 망라한 과학수사용 도감(圖鑑)이 국내 최초로 발간됐다.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과학수사계는 2011년 서울대 수의과대학과 함께 발족한 골격수사연구회의 연구 성과로, '그림으로 이해하는 인체 뼈와 동물뼈 비교 도감'을 펴내 전국 경찰서에 배포했다고 3일 밝혔다.

책 발간에는 연구회를 비롯해 경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가톨릭대·순천향대·연세대·이화여대 해부학교실 등이 협조했다.

경기경찰2청 과학수사계 김영삼(45) 검시관은 "사건 현장에서 뼈 조각 등이 발견될 때 인간의 것인지 동물의 것인지 처음에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국내 최초로 뼈 컬러 사진들을 실어 초동 과학수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김 검시관은 임상병리학을 전공(이학박사)하고 석·박사 특채로 2006년 경찰에 입문, 유전자 채취와 지문 감식 등을 맡고 있다.





국내 최초 '인간·동물 뼈 도감' 발간 (의정부=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과학수사계는 '그림으로 이해하는 인체 뼈와 동물뼈 비교 도감'을 펴내 전국 경찰서에 배포했다. 국내에서 인간·동물 뼈의 도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간의 주축을 맡은 경기경찰2청 과학수사계 김영삼(45) 검시관은 "국내 최초로 뼈 컬러 사진을 실어 초동 과학수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사진은 경기경찰2청 과학수사계에서 도감을 들고 있는 김 검시관의 모습. 2014.9.3 andphotodo@yna.co.kr



번 골격수사연구와 책 발간의 주축을 맡았다.

그에 따르면 해부학교실에서는 보통 조립·완성된 뼈 모형으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사건 현장에서 나뒹구는 분리된 뼈들을 보면 수사관들도 헷갈리기가 쉽다.

2012년 엽기 살인사건을 저지른 우웬춘의 집에서 뼈 조각이 발견돼 수사에 혼선을 주다가 동물 뼈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진 적이 있다.

최근에는 유 전 회장이 숨진 채 발견된 현장에서 뼈 조각이 유실돼 논란이 됐었다. 

연구회는 현장에서 유용한 정보를 담기 위해 독일서 수입한, 인간의 분리된 뼈모형과 개· 고라니·너구리 등 각종 동물의 실제 뼈를 수집했다.

시민들이 등산을 하다가 혹은 밭을 매다가 주로 발견하는 우리나라의 흔한 야생동물들 뼈를 택했다.

꼬박 2년이 걸려 뼈 사진을 직접 찍고 이 중에 200여 장을 추리고 부위별로 특징과 차이점 등을 일일이 정리한 책이 완성됐다.



국내 최초 '인간·동물 뼈 도감' 발간 (의정부=연합뉴스) 임병식 기자 =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과학수사계는 '그림으로 이해하는 인체 뼈와 동물뼈 비교 도감'을 펴내 전국 경찰서에 배포했다. 국내에서 인간·동물 뼈의 도감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도감의 표지 모습. 2014.9.3 andphotodo@yna.co.kr



그는 "집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족발 주문하고 치킨만 해도 100마리 넘게 먹으며 뼈를 모으는 등 내 모든 것을 투자했다"면서 "이제 족발은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질렸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책 뒷부분에는 신원확인을 위한 수사용 팁이 담겼다.

시신이 백골이 됐더라도 두개골, 골반, 치아 등으로 성별, 연령 등을 추정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긴 뼈를 이용해 키를 추정하는 공식과 두개골 봉합 정도를 살펴 연령을 추산하는 사례도 실려 있다. 

김 검시관은 최근 포천의 한 빌라 내 고무통에서 사망한 지 약 10년이 지나 발견된 시신에서까지 지문을 찾아내 신원을 밝혀내기도 했다. 

그는 "인력 부족으로 과학수사 분야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유가족이나 돌아가신 분의 마지막 한을 풀어준다는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suki@yna.co.kr







Q) 검시관으로서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A) 경기지방경찰청에서 검시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변사자를 전문적으로 검시하고, 시체 주변에서 증거물 등을 확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접수되면 현장으로 출동합니다. 현장에 도착하면 이미 형사, 지구대 요원들이 초동조치를 해둔 상태입니다. 그 상태에서 저희가 임장해 정밀검시를 합니다. 현장 검시가 끝나면 추가로 자료를 수집하고 현장상황을 취합합니다. 때론 간단한 실험과정을 통해서 나온 분석에 대한 의견을 ‘변사조사결과서’라는 문서로 작성해 담당형사나 검사, 부검의에게 제공하기도 합니다.


Q)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일을 하게 되셨나요?

A) 간호사 생활을 14~15년 정도 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심혈관계 분야를 담당했었죠. 중환자실에서 사망하는 분들을 많이 보면서 의료인의 문제점도 보게 됐습니다. 중환자실은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게 통제된 공간입니다. 그래서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들은 전적으로 의료인의 양심에 맡겨지죠. 제가 유가족이었으면 억울할 것 같다 싶은 일들을 많이 봐왔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사망에 이르게 된 원인을 찾아내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습니다. 의료 수요가 많아지는 현실을 감안하면 의료사고나 의료과실도 더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의료사고를 전담하는 인력 수요도 생길 거라고 봤고요. 그래서 병원 내 사망에 대한 조사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05년 11월, 경찰청에서 사망의 원인과 형태를 조사하는 검시관을 특채한다는 공고를 보고 곧바로 지원했습니다.


Q) 어떤 준비와 노력을 통해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A) 대학에서는 간호학을 전공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일하며 의료사고에 관심을 갖게 된 후로 법의학 공부를 했습니다. 법의학 책을 사서 혼자 공부하면서 법의학에 대한 개념과, 법정에서 형을 집행할 때 사인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등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간호사 면허증은 있었고, 사망 원인에 대한 공부 등 다른 실무적인 공부는 검시관으로 채용된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실 파견 실습을 통해 자세히 배웠습니다.


Q) 간호사 출신 검시관들이 많은가 보네요?

A) 크게는 임상병리학 전공 검시관과 간호학 전공 검시관이 있습니다. 간호사들은 해부학, 생리학, 약리학, 병리학 등의 기본 항목을 모두 배우고, 질병에 대해서도 알기 때문에 검시 업무에 접근하기 좋습니다. 임상병리학을 전공한 검시관은 질병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비교적 적은 편이어서 초기에는 이 업무를 조금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미세한 혈흔 흔적을 분석할 때나 시약 등을 개발할 때는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Q) 이 직업만의 매력은 뭔가요?

A) 간호사로 활동했을 때와 검시관인 지금, 출근할 때 느낌의 차이가 있습니다. 간호사로 일할 때는 내 작은 실수로 살아있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압박감 때문에 바짝 긴장을 하고 옵니다. 일을 할 때 농담도 잘 안 했습니다. 그런데 검시관 일은 죽어 있는 사람의 사망 원인을 조사하는 일이라 심리적인 부담이 훨씬 덜합니다. 혼자 사건의 모든 걸 책임지는 게 아니라 팀원 여럿이 함께 일을 처리한다는 점에서 심리적으로 편안합니다.


Q) 하지만 힘든 순간도 있을 것 같은데요.

A) 전국에 83명 정도의 검시관이 있습니다. 근데 변사사건은 연간 약 3만 5,000건 발생합니다. 인력 수가 적어 힘듭니다. 사건 발생지로 가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 인원이 너무 적으니까 교대로 근무를 해야 합니다. 모든 사건현장에 동행할 수 없으니 검시관이 꼭 동반해야 하는 변사사건을 분류해 놓기도 합니다. 장애인이나 만 14세 이하 미성년자 등이 사망한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하죠. 제가 여자이고, 엄마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피해자가 아주 어린 아이였을 경우, 안 좋게 살해당한 변사자 등을 봤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습니다.


Q)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A) 용의자가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 무죄를 주장해도, 저희 쪽에서 증거를 정확히 제시해서 사건이 해결됐을 때 느끼는 뿌듯함이 있습니다. 이렇게 죽은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을 억울하지 않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일이 가치 있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유족들을 위로해 줄 수 있다는 점도 좋고요. 다른 사람의 죽음을 계속해서 봄으로써 내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고, 내 삶에서 감사할 조건들을 많이 발견하기도 합니다.


Q) 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A) 가장 까다로운 사건 중 하나가 바로 화재사건입니다. 불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현장 증거물이 훼손될 경우가 많거든요. 시체에 남아있는 증거도 희박하기 때문에 이게 단순화재사건인지, 살인 후 방화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국과수 부검을 통해 내부 장기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러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화재가 났을 때 화재 이전에 사망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또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부검보다 간단한 방법을 찾아낸 적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시체의 혈액을 채취해서 그 안에 함유된 일산화탄소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이었죠. 죽은 다음에 화재가 나면 시체가 호흡하지 않으니까 혈액에 일산화탄소 농도가 없겠죠. 그 방법을 도입해서 타살로 밝혀낸 사례가 3건 있습니다. 그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앞으로 이 직업의 전망은 어떨까요?

A) 현장에서는 검시관이 많이 모자랍니다. 모든 변사사건에 검시관이 동행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건 발생 시 출입구가 열려 있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애매한 사건이거나 청소년, 연예인 자살사건처럼 사회적 파장이 큰 경우에 한해 현장에 검시관이 동행합니다. 이렇게 제한적으로 현장에 나가다 보니, 전년도에 380건 정도의 변사사건만을 소화했습니다. 변사체 발견의 7~8% 정도 밖에 안 되는 수치입니다. 인원이 지속적으로 충원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검시제도에 한계가 있어서 이를 명확하게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인력이 충원될 지는 미지수입니다.


Q) 이 직업을 선택하려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섬세하면서 통찰력이 있는 사람에게 이 일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시체만 들여다본다면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시체를 중심으로 현장 전체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한 반면, 시체를 볼 때는 전체를 다 세밀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병원에서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경험을 쌓아두면 도움이 될 겁니다.

현장 검시 작업이 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해 팀워크를 발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죽은 사람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어주고 싶다는 신념도 필요합니다. 미국 드라마에서처럼 현장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기대하진 마세요. 그런 사람은 이 일을 오래할 수 없습니다. 또 죽음에 대한 명확한 가치관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 출처 > http://www.work.go.kr







미국 인기 드라마 'CSI 마이애미'의 흑인 여성 검시관 알렉스 우즈는 점심을 먹고 들어와선 태연하게 시체를 이리저리 만지면서 시체의 이빨 사이나 손톱에서 결정적인 살해 단서를 찾아내 호레이쇼 반장이 범인 잡는 것을 돕는다. 시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어린 아이들의 시체를 대할 때면 눈물을 글썽이는 알렉스의 인간적인 매력 덕분에 'CSI' 시리즈 중 마이애미편이 특히 인기를 끄는지도 모른다.

검시관은 살인이나 자살 사건 등이 발생했을 때 경찰관과 함께 검시를 해서 사망 원인을 밝혀낸다. 1920∼30년대 미국에서 검시관은 선출직이었다. 사인(死因)을 알 수 없는 살인 사건이 잇따르면서 정치인과 부동산 중개업자. 술집 주인, 배관공, 조각가, 목수, 페인트공, 우유배달원이 검시관으로 일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이 쓴 사망진단서는 엉터리일 수밖에 없었다. '사인이 자살일 수도 있고, 타살일 수도 있다'거나 '폭행 또는 당뇨병일 수 있다', '당뇨병, 결핵, 신경성소화불량 중 하나다'. 심지어 '신의 뜻'이라고 적은 사망진단서도 있었다. 지금은 시체가 자연 상태에서 부패하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시체농장(Body Farm)까지 운영할 정도로 과학수사에서 앞서 있다.

조선시대의 검시제도도 엄격하고 철저한 것으로 유명하다. 검시관들은 육안으로 시체의 76개 부위를 검안해 상태를 기입하고, 구리로 만든 검시척으로 외상의 크기를 재어 시체 형태도를 작성했다. 또 은비녀를 갖고 다니면서 독살 여부를 판단했다. 현대에 들어선 1948년 11월 당시 내무부 치안국에 최초로 감식과가 설치됐고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가 신설됐다. 국과수는 DNA 수사를 통해 2006년 서울 서래마을 영아유기 사건을 해결하는 등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데 공을 세웠다.

변사체로 발견된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씨 시신을 정밀 감식한 국과수가 25일 모든 과학적 기법을 동원했으나 부패가 심해 사망 원인을 판명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변사체는 유씨가 맞다고 다시 확인했다. 전날 풀밭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키가 큰 듯한 유씨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의혹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꽉 막혀 있는 세월호 정국만큼 답답한 노릇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기존 경찰 검시관 확충 방안도 추진

(서울=연합뉴스) 윤종석 기자 =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변사체를 늦게 확인해 혼쭐이 난 경찰이 늦게나마 검시제도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주목된다.

경찰은 27일 전국 지휘부 화상회의에서 미국과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서양식 검시관(Coroner) 제도를 도입하거나 기존 경찰 검시관을 확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영국과 호주, 싱가포르, 미국 일부 주에서 시행되는 검시관 제도는 법률가나 의사 출신으로 법의학 교육을 받은 검시관들이 검시 업무를 총괄하게 하는 제도다.

검시관의 검시를 받는 시신은 주로 타살로 추정되거나 사망 원인이 불명확한 시신이다.

검시관 제도는 영국에서 시작됐으며, 검시관이라는 단어(Coroner)도 '영국 왕실에 충성한다'는 의미로 왕관(Crown)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에는 주로 법률가 출신이 많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의사들이 주로 검시관 업무를 맡고 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이 의사 출신 검시관 제도를 도입하려 해도 의사를 영입하는 것이 쉽지 않고 법의학 전공자도 많지 않아 인력 확보 측면에서 난관이 예상된다.

그 차선으로 경찰은 현재 활동하고 있는 경찰 검시관을 확충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현재 지방경찰청 단위로 활동하는 경찰 검시관은 67명인데, 경찰청은 3년 내 144명으로 증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찰 검시관은 전문 의사가 아니라 7∼9급 일반직으로 경찰에 들어온 병리학, 간호학 전공자들이다.

사실 경찰청은 2005년부터 경찰 검시관 확충을 안전행정부에 요청해 왔지만 예산과 인력 문제 등으로 진척을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경찰은 보통 변사 사건이 발생하면 민간 의사에 위탁하거나 경찰 검시관을 통해 검시를 해 왔다.

그러나 의사는 범죄와 관련한 지식이 부족하고, 경찰 검시관은 의사보다는 의학적인 식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법의학자가 직접 변사 사건 현장에서 활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서중석 국과수 원장이 2000년대 초반 대전 중부분원장을 지낼 때 법의학자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는 '현장출동 시스템'을 시범적으로 가동한 적은 있지만 제도화되지는 않았다.

유 전 회장이 지난달 12일 순천에서 변사체로 발견됐을 때에는 거리 문제로 검시관이 아닌 일반 의사가 검시를 맡았다. 그것도 유씨의 시신이 현장에서 병원으로 옮겨진 후였다.


banana@yna.c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