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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놀이/과학수사

[박기원 박사의 CSI 파일] 경기도 고양 아파트 자매 성폭행범을 검거한 결정적 단서는?




 경기도 고양시 한 아파트에서 자매를 번갈아 성폭행하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밤중에 불상의 남성 한명이 베란다 창문을 통하여 침입한 후 잠을 자고 있던 자매에게 흉기를 들이대고 순순히 자신의 명령에 따르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주위에 있던 노끈을 사용하여 피해자의 손을 묶고 차례로 성폭행한 후 이불로 피해자들을 뒤집어씌우고 도망하였다. 자매는 범인이 문을 열고 도망한 잠시 후에 일어나 가까스로 경찰에 신고하였다.

 

 사건 현장에 대한 정밀감식이 진행되었다. 피해자들이 입고 있던 팬티, 잠옷, 침대 위와 침대 주변에서 수거된 모발 그리고 침대보 등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되었다. 의뢰된 팬티와 잠옷 등에서 정액반응 검사를 하였다. 하지만 정액반응 음성이었다. 즉, 정액반응이 음성으로 나오는 경우는 정액의 양이 정액반응 시약으로는 검출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적거나 또는 전혀 없어 안 검출을 할 수 없는 경우이다.

 

 두 경우를 모두 배제할 수 없어 정액반응이 음성이라도 유전자분석을 하기도 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는 분명히 범인이 사정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증거물에 남성의 정액이 극히 소량 숨어 있는 경우로 판단할 수 있었다. 보통 피해자가 사건 당시 수치심으로 질 내부를 닦은 경우 등에 이렇게 남성의 정액이 극히 소량 남아 있게 된다. 경찰관이 긴급하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피해자가 샤워를 하고 난 후였기 때문에 매우 소량의 정액만 피해자의 질 속에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예전에는 정액반응이 음성으로 나온 경우 유전자분석을 해도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되지 않으므로 유전자분석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유전자 분석 기술이 발전하여 아주 적은 양의 정액이 섞인 시료의 경우에도 유전자형을 검출할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분석을 한다.


 이 사건의 경우도 정액반응은 음성이었지만 유전자분석을 하였다. 하지만 워낙 정액의 양이 시료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일부의 유전자형만 검출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15개 좌위를 분석하는데 실제로 검출에 성공한 것은 11개 좌위였다. 그것도 범인의 정액이 극미량 섞여 있어 피해자의 유전자형만 정확하게 나오고 남성의 유전자형은 피크가 매우 낮고 판단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이런 혼합된 유전자형의 경우는 확실하게 남성과 여성의 유전자형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혼합된 유전형으로 기재되어 감정서가 나간다. 추후 범인이 검거되면 혼합반에 범인의 유전자형이 포함되어 있는지 포함되어 있지 않은지만 판단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범인이 아닌 사람이 우연히 그 혼합반에 포함되는 결과를 나타낼 수 있다. 범인을 특정하기에는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남성의 유전자형을 추정할 수만 있다면 그 확률은 엄청나게 올라갈 수 있고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기존의 범죄자와도 검색할 수 있다.


 따라서 어렵지만, 이 혼합반에서 남성의 유전자형을 추정해 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워낙 적은 양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남성의 유전자형을 혼합반에서 분석해내기 쉽지가 않았다. 작은 피크를 중심으로 남성의 유전자형을 추정해내기는 했지만 워낙 적은 양이고 검출된 좌위가 일부여서 오류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이를 통하여 가장 가능성이 있는 한 남성의 유전자형을 분리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추정된 남성의 유전자형을 범죄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한 결과 2010년에 채취되었던 구속피의자와 일치하였다. 당시 강원도 원주에 있던 동부분원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추정한 유전자형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추가 실험을 통해서 범인임을 확증한다. 따라서 당시 국과수 동부분원 유전자분석실에서 실험했는데 분석 후 보관하고 있던 DNA를 다시 찾아 추가로 Y-STR 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 구속되었던 피의자는 이번 사건의 범인과 일치하였다. 이 결과를 담당 수사관에게 통보를 하였다.


 통보를 받은 수사관이 그의 소재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사건으로 만기 복역을 한 후 출소하여 지방에서 막노동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소재지에 수사관이 급파되어 그를 검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추가 실험을 위해 그의 구강이 채취되어 연구원으로 의뢰되었다.


 결과는 위에서 실시했던 Y-STR 결과와 같았다. Y-STR 유전자 분석은 남성의 유전자형만 골라서 검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사건에서처럼 질 내용물에 극소량의 남성 유전자가 섞여 있더라도 남성의 유전자형을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성범죄의 경우 현재는 정액반응이 매우 약하거나 음성이라도 범인의 유전자형을 확보하기 위해 Y-STR분석을 실시하고 있다. 박 모 탤런트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액반응은 음성이었지만 Y-STR 분석 결과 남성의 유전자형을 검출할 수 있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번 안산의 인질살인사건에서도 정액반응은 음성이었지만 Y-STR 유전자형이 000의 유전자형과 일치하여 그가 딸을 살해하기 전에 성폭력을 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


 적극적인 감정과 많은 노력으로 혼합된 유전자형에서 범인의 유전자형을 분리할 수 있었고 이를 이해하고 열심히 수사에 임했던 수사관의 노력으로 한 사건을 또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렇게 범인을 검거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잠시 다른 업무로 바쁜 사이에 방송 매체에서 경기도 00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범인이 수갑을 찬 채 도주했다고 보도했다.


 범인은 이미 전과가 있는 사람으로 재범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해당 경찰서 관내의 전 경찰력이 동원되어 가능한 도주로를 차단하고 그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범인은 서울 인근 지역에서 은신하다가 잡혔다.


 나중에 위의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하고 통화해서 안 내용이었지만 바로 도주했던 범인이 어렵게 잡았던 이 사건의 범인이었다고 했다. 정말 힘들게 범인을 잡아서 매우 좋아했던 모습이 생각나 씁쓸했다. 한순간 방심으로 어렵게 잡았던 범인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었다. 조사를 담당했던 담당자는 상 대신에 징계를 받게 되었다고 했다.


[박기원 kwpark0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