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국가중 사인통계 정확도 상당히 낮은 수준…검시제도 낙후·법의학자 태부족




[라포르시안]  통계청에서는 해마다 전년도의 '사망원인통계'를 발표한다. 


여기에는 전년도를 기준으로 통계법과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국의 읍·면·동사무소 및 시·구청(재외국민은 재외공관)에 접수 된 사망신고서를 주민등록지 기준으로 집계한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발생한 사망자의 주요 사망원인을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표준질병·사인분류 기준을 기초로 통계화한 것이다. 

그런데 국내 사망원인통계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바로 R코드로 분류되는 '달리분류되지않은 증상, 징후와 임상 및 검사의 이상소견'에 의한 죽음, 즉 원인불명의 죽음이 유난히 많다는 점이다. 


R00부터 R99까지 구분되는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 징후와 임상 및 검사의 이상소견' 사인에는 각종 순환계통 및 호흡계통을 침범한 증상 및 징후, 원인미상의 질환이나 통증, 미상 및 상세불명의 병인 등이 포함된다. 





"높은 원인불명 사망률, 억울한 죽음 만들거나 범죄에 악용될 수도"
 
통계청이 지난 9월 발표한 '2013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사망자 26만6,257명 중에서 '달리분류되지않은 증상, 징후와 임상 및 검사의 이상소견'으로 사인이 분류된 사망자가 2만4,566명에 달한다. 

지난해 사망원인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인 악성신생물(각종 암질환)에 의한 사망은 총 7만6,621명으로, 원인불명의 죽음은 그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하지만 통계청은 사망원인 순위를 발표할 때 '원인불명'의 죽음이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이유로 이를 사망원인 순위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지난해 원인불명으로 처리된 사망자 비율은 전체 사망자의 9.2%에 달한다. 

다른 OECD 회원국과 비교할 때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 

우리나라의 사망원인통계에서 사인이 달리 분류 되지 않은 증상 및 증후(R코드)의 비율이 9~10%에 이르는 반면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의 국가는 1~2%에 불과하다. 

통계개발원이 지난 2008년 발간한 '사망원인통계 자료 보완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의 경우 2006년 기준으로 R코드로 분류된 사인이 1.1%였고, 영국은 2005년 기준으로 0.2%, 캐나다는 2004년 기준 1.18%, 그리고 미국은 2005년 기준 1.31%를 차지했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의 사망원인통계에서 R코드로 분류된 사인은 10%를 웃돌았다. 

이 같은 차이는 우리나라 사인통계의 제도상 허점에서 비롯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역별 의료자원의 부족과 불균형으로 인해 의사에 의해 발급되는 사망진단서(또는 시체검안서) 이외에 일반인에 의한 '인우증명서'로 갈음할 수 있도록 관련법에 규정돼 있다. 

모든 사망확인을 의사가 하도록 되어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인우증명서 갈음은 사인통계의 정확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보고서는 "노쇠 사망은 노인 사망에 해당하는 사인으로서, 노인 사망은 인우증명서에 의한 신고가 많다"며 "이는 사인통계의 불명확한 사인 비율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보완자료에 의한 보완시 노인들이 많이 앓고 있는 순환기 및 호흡기계통질환으로 사망분류사들이 변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통계청은 주요 사망원인통계를 발표할 때 R코드로 분류되는 원인불명의 사망에 대해서는 제외시킨다.




높은 원인불명 사망 비율은 억울한 죽음을 만들 수도 있고,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의 필요성이 높다. 

선진국에서는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검시해야 할 죽음의 종류를 법률로 정해 명백한 병사 이외의 모든 외인사의 의심이 있는 죽음은 변사체로서 반드시 경찰에 신고토록 해 죽음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신고된 변사체의 경우 검사가 반드시 조사하도록 책임을 지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검시의 대상이 되는 사망의 종류가 정해져 있지 않은 탓에 검시제도가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1년 펴낸 <형사정책연구> 봄호에는 '국가간 ‘불명확한 사망원인’요인과 검시제도가 사망원인통계품질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는 '사인불명 시 또는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을 경우나 검역전염병에 전염되었거나 전염된 의심이 있는 시체 등’ 시체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내지 검역법 등에서 사법부의 관여 없이 행정기관이 실시할 수 있는 행정검시절차를 개별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무연고자 시체의 처리 이외에는 사실상 행정검시제도가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의학자 절대적으로 부족 

또 다른 문제는 검시제도 운영에서 중요한 법의학자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김명연 의원이 올해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의사 면허를 소지하고 법의학 교육을 받은 정식 법의학자는 국민 100만명 당 1명 꼴인 50명에 불과했다. 

일본의 7만명당 1명, 미국의 15만명당 1명과 비교하면 크게 차이가 나는 수준이다. 

사정히 이렇다보니 2013년 기준으로 한 해 국립과학수사원에 의뢰되는 부검 건수는 약 5,300건에 이르지만 소속 법의학자의 수는 고작 23명에 불과하다.

김 의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검시 집행 책임은 검사가 담당하고 집행은 경찰관, 실무는 의사, 변사자 부검 여부 판단은 판사가 함으로써 체계적인 관리와 업무협조가 어렵다.

경찰이 올해 7월 말 ‘경찰 검시관’에 대한 증원을 발표했지만 전문의사가 아닌 보건계열 전공의 7~9급 일반직으로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시신을 부검할 수 없는 실정이다. 

김 의원은 "복지부 또한 전공의 양성에 지원하는 비인기, 기피의학 전공 분류에 법의학이 포함되지 않고 있어 늘어나는 법의학자의 수요에 뒷짐을 지고 있다"며 "부검 의뢰는 매년 5~10%씩 증가하는 추세에 비해 법의하자가 턱 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








최근 5년간 중요미제사건 3200여건 중 329건 해결 

【서울=뉴시스】양길모 기자 = #1 2007년 10월 강원도 화천의 산골마을에서 70대 노파가 둔기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칫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 사건은 노파가 피살된 지 10여 일 뒤부터 2011년 1월 중순까지 집으로 배달된 7통의 협박성 편지가 단서가 돼 용의자를 특정, 범행 5년 만에 범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2 2004년 12월 대전 동구 대성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문모(당시 42세)씨가 10여 차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여러 방면으로 수사를 확대했으나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결국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최근 현장에 있던 칼집을 감은 테이프 안쪽 접착면에서 쪽 지문이 발견돼 8년 만에 사건이 해결됐다. 

#3 2004년 3월 서울 영등포 일대에서 8차례에 걸쳐 다세대 주택 화장실 창문을 뜯고 들어가 식칼로 피해자들을 위협해 강도강간을 저지른 피의자 A씨가 지난 1월 뒤늦게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A씨는 주민등록이 돼 있지 않아 현장에 지문을 남기고도 10여 년간 경찰 수사를 피해갈 수 있었다.

이 사건들은 당시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됐던 장기 미제사건들이다. 당시에는 수사기법 등이 발달하지 않아 오랫동안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다가 최근 경찰청의 '미제사건 전담팀'에 의해 해결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을 해결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더욱이 최근에는 살인·강도와 같은 강력범죄부터 신종범죄까지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범행 증거를 남기지 않거나 범행현장을 고의로 훼손하는 등 점점 지능화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완전 범죄는 없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증거 중심의 과학수사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담당 수사관들의 노력과 첨단 수사기법, 장비의 도움으로 미제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2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3~9월 강·절도 미제사건 697건 중 현장지문 재검색을 통해 9년 전 여자 혼자 사는 원룸에 침입한 야간 강도상해 사건 등 385건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를 일선 경찰서에 통보해 110명(범행당시 미성년자 89명, 성인 21명)을 검거했으며 148건은 수사 중이다.

현장지문 재검색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385명 중에는 미성년자가 194명으로 전체 신원확인 대상자 중 가장 많은 50.4%를 차지했다. 이어 성인 140명 36.4%, 외국인은 51명으로 13.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문 발견 이후 검거 기간은 2주 이내(58건, 53.9%)가 가장 많았다. 2주~1개월 이내(28건, 25.9%), 1~2개월 이내(11건, 10.1%), 2개월 이상(11건, 10.1%)이 뒤를 이었다.

또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미제로 남은 3032건에 대한 지문 재검색을 벌여 지난 7월말 기준 1143명의 신원을 밝혀냈고 329건의 사건을 해결했다. 

이런 과학수사는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분리·신설되고 1963년 시·도경찰국 수사과에 '감식계가 신설되면서 기틀이 마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후 1999년 지문계와 감식계가 통합된 '과학수사과'가 신설되어 지금의 '과학수사센터'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지문감정이나 족 흔적 감식, 몽타주 수배 등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지문 분석과 유전자(DNA) 분석 등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2000년대 중반까지도 감식이 어려웠던 지문의 극히 일부나 훼손된 것을 분석하는 '쪽 지문'과 머리카락, 침, 땀 심지어 대소변까지도 용의자의 흔적을 확보하기 위해 활용된다. 

특히 'DNA 분석'은 동남아인이 연루된 살인 사건에서 DNA만으로 피의자의 국적을 정확히 맞혀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용의자의 종족이나 피부색 등은 물론 동식물의 구체적인 개체 식별도 가능하다. 

또한 ▲핏방울의 위치와 크기 등을 토대로 범행을 재구성하는 '혈흔형태 분석' ▲손바닥 지문을 활용하는 '장문 분석' ▲범인 추적과 용의자 구별에 개를 이용하는 '체취증거 기법' ▲CC(폐쇄회로)TV 영상 속 걸음걸이 특징을 분석하는 '걸음걸이 분석' 시스템을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이밖에 CCTV와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곧바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동 얼굴인식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 과학적 수사 기법의 꽃으로 불리는 '프로파일링'도 있다. 이 기법은 범죄 현장과 유·무형의 증거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다. 범죄 심리의 재구성, 관련자 진술 분석, 지리학적 연관성 분석 등을 종합하는 다차원적인 수사기법이다. 부산 여중생 납치 성폭행 살해 사건인 김길태 사건, 제주 여자 초등생 납치 살해 사건도 프로파일링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날로 지능화돼 가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기법을 끊임없이 연구, 도입하고 있다"며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범은 끝까지 재검색해 범인을 반드시 검거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과학수사 역량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은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는 말을 믿는다"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범죄 피해자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지능범들과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일선경찰서 과학수사팀은 "정확한 현장감식을 위해서는 피해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112나 가까운 파출소에 신속히 신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장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음식물 취식, 침 뱉는 행위를 삼가고 사건현장에 출입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CCTV는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므로 상점 등 각 업소에서는 정기적으로 CCTV 작동상태 등을 점검해야 한다"며 "수사기관의 정확한 현장감식과 CCTV자료 확인을 통해 범인이 조기에 검거될 수 있도록 증거보존에 대한 주민들의 협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dios102@newsis.com








경찰 과학수사대원들이 살인사건을 가정해 현장감식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2014.9.17/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홍기삼 기자 = 지난 6일 저녁 강신명 경찰청장은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한동안 통화가 이어진 뒤 강 청장은 "잘하셨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청장 감사전화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이맹호 서울 강서경찰서장이었다. 그날 이 서장은 강서구 방화동 K건설사 사장 살해범 검거소식을 보고했다. 3월에 발생한 살인사건을 추적한 지 7개월 만에 범인을 붙잡은 것이다. 이로부터 열흘 뒤 이번 범인검거는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강서경찰서는 3월부터 강력 7개팀을 전원 투입하고 서울경찰청으로부터도 2개팀을 지원받는 등 수사본부에 준하는 수사전담팀을 편성, 범인을 쫓아왔다. 사건 초기 단서는 역시 CCTV였다.

경찰은 살인사건 현장 인근의 CCTV에서 범행 직후 '하나의 점' 크기로 보이는 인물이 신방화역 방향으로 급히 뛰어 도주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범행시각과 근접한 시간에 급하게 현장을 벗어난 점에서 경찰은 이를 용의자로 판단했다.

이후 경찰은 인적사항 특정을 위해 광범위한 CCTV 추적 작업에 들어갔다. 살인사건 현장 진입로와 예상 도주로에 있던 약 120여대의 CCTV를 정밀분석, 이중 용의자의 모습이 촬영된 21대의 CCTV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동시에 경찰은 기나긴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강서구 방화동, 공항동 일대 이동로상에 위치한 개별 가구 등 1457세대, 약 5853명에 대해 개별 면접 수사와 함께 원한 범행 가능성에 대비해 1870명을 따로 탐문했다.

결정적인 단서 역시 CCTV에서 나왔다.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발목'만 녹화된 CCTV 화면을 확보해 인근 현금인출기 사용내역을 통해 용의자의 인적사항을 최종 확인하게 됐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수원으로부터 '신장계측', 경찰청 과학수사센터로부터 '걸음걸이 분석', 법영상분석소로부터 '동일인 감정' 등을 거쳐 주변인물로 수사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이런 과정을 거쳐 살인범과 살인을 교사한 범인 2명 등 총 3명의 피의자를 잇달아 검거하게 됐다.

7개월 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면서 올해 서울지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 모두 해결되는 '미제 사건, 제로'의 기록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올 1월부터 9월까지 서울지역에서 발생한 살인, 살인미수, 예비, 방조 등 '살인죄종' 사건 127건 모두 범인을 검거했다. 적어도 서울에는 '살인의 추억'같은 미해결 사건이 없는 것이다.

경찰은 세계 최고수준의 과학수사기법, 수미터 간격으로 서울 전 지역에 촘촘히 세워진 CCTV, 과거에 비해 몇 배 더 빨라진 경찰의 초동 대처 등이 이를 가능케 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비롯해 아직 서울 외 지역의 살인 미제 사건은 '기록'으로 존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관련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최종 행적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경찰의 오랜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범죄는 갈수록 치밀해지고, 범인은 쉽사리 물증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 은폐되고 지워진 단서를 찾아 범행 현장을 재구성, 범인의 윤곽을 찾아가는 과학수사는 그래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한다.' 김기정 계장을 중심으로 12명으로 구성된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과수계)는 각자 저마다 전문성으로 범행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

2011년 11월의 어느 날. 대구경찰청 과수계 요원들은 대구의 한 빌라에 부부로 추정되는 남녀가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다는 급보를 받고 출동했다. 거실에 있는 두 구의 시신. 그들이 흘린 피의 상당 부분은 닦여 있었다. 범인은 범행 흔적으로 지우거나 없애느라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듯했다. 

그러나 요원들의 눈을 가리지는 못했다. 백지 상태에서 요원들의 퍼즐 맞추기가 시작됐다. 현관의 닫힌 전자도어록은 범인이 이곳을 통해 침입, 도주했다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알리고 있었다. 이는 면식범의 소행이라는 단서. 세밀한 수색 끝에 발견된 화장실 문턱과 세면대 출입문 안쪽 바닥의 작은 혈흔엔 물이 섞여 있었다. 범행 과정에서 범인이 부상을 당했고 그 흔적을 없애려 씻은 것이 분명했다. 그의 마지막 손길이 닿은 곳은 어딜까. 요원들은 화장실 수도꼭지를 지목했고 장시간에 걸친 수색으로 지문 하나를 확보했다. 

지문을 분석한 결과, 그 지문의 주인은 윗집에 세들어 사는 남자였다. 용의자가 특정됐고, 그는 며칠 뒤 현금인출기의 CCTV에 모습이 찍히면서 붙잡혔다. 완강히 범행 사실을 부인하던 그는 과수계가 확보한 증거에 더는 고개를 가로젓지 못했다. 오른쪽 손가락에 난 상처, 희석 혈흔에서 발견된 DNA에 결국 자백했다. 집주인의 통장 비밀번호를 알자 돈을 빼앗을 요량으로 치밀하게 계획한 범행이었으나 과수계 요원들의 치밀한 분석은 피해갈 수 없었다.

◆멈추면 끝이다

수많은 범행 현장을 마주하는 과수계 요원들이 저마다 가슴속에 새기는 좌우명은 '멈추면 끝이다'다. 이는 과학수사에서 단서를 찾아내지 못하면 범인을 잡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며, 또한 날로 치밀해지는 범행 수법에 연구와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며 자신에게 던지는 채찍이다. 이런 노력은 대구청 과수계가 전국 최고의 수사력을 자랑하게 하는 배경이다.

현장에서 범행의 단서를 찾는 일은 쉽지도, 만만한 일도 아니다. 머리카락보다 작고 가는 흔적을 찾자면 몇 시간째 바닥과 천장, 벽면을 훑어야 한다. 허약한 체력과 나태한 정신력으로는 버텨낼 수 없는 일이다. 

김영규 경위는 "과학수사 요원들은 범죄현장의 정리되지 않은 모습을 최초로 보고, 그 속에서 단서를 찾는다. 웬만한 비위로는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오직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데 집중한다"고 했다. 그래서 과수계 요원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스스로 용납지 않는다. 언제 발생할지 모를 사건과 현장감식에 대비해 늘 긴장의 끈을 죈다. 요원 대부분이 퇴근 후에도 술을 마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고의 팀워크

김기정 계장은 2007년 대한민국 과학수사 대상을 받고 올해 경찰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20년 차 과학수사통이다. 그는 경북대 의대 법의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쌓은 지식과 경험으로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단 하나의 핏방울로 범죄현장을 재구성하고 화마가 지나간 메케한 잿더미 속에서 화재 원인을 찾는 혈흔 분석 및 화재 분야 베테랑 김영규 경위, 현장만 봐도 범인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해내는 국내 1호 범죄행동 분석 특채요원 추창우 경사(경북대 심리학 석사), 일본 오사카대 범죄심리학 박사인 박희정 범죄분석관, 합성분말의 폐해와 고가의 외국산 지문 분말을 개선하고자 천연분말을 개발한 연구자이며 현장맨 김성동 경위 등 대구청 과수계 요원의 면모는 전국 최고를 자랑한다. 김기정 계장은 "요원 모두가 과학수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석`박사 과정을 밟는 등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구청 과수계는 숱한 특허와 독특한 아이디어로 제품을 개발, 전국 경찰에 보급하고 있다. 2008년 6월 아시아권 최초로 한국혈흔형태분석학회(KABPA)를 창립했고, 매년 그 학회를 대구에서 열고 있다. 2010년에는 법정에서 사용되는 혈흔의 명칭을 표준한글화위원회를 거쳐 확정. 전파했으며 올해엔 딸기와 산수유 등 천연물질을 이용해 몸에 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기존 시약보다 지문을 뜨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지문 채취용 분말도 개발했다.

이처럼 대구청 과수계가 연구개발해 출원한 특허만도 10여 종이고, 혈흔분석`차량화재 재연실험`걸음걸이기법 등 전국으로 전파한 수사기법 또한 여러 건에 이른다. 


최두성 기자 dschoi@msnet.co.kr







“국민의 마지막 인권인 ‘검시(檢視)’체제가 부실해 원인미상 사망률이 10%에 달한다”는 세계일보 보도(9월 15∼18일자 참조·관련기사 4면)에 대해 정부는 현재 23명인 국가 법의관을 100여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아울러 진로가 막혀 고사상태인 각 대학 법의학 교실 활성화 등 법의학자 양성 방안 및 서울지역 법의관 현장검안 시범 실시도 추진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중석 원장은 10일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과 협의해 일단 올해 법의관을 5명 늘리기로 했으며 순차적으로 100명까지 증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 원장은 또 “법의 양성 방안에 대해서도 법의학회와 논의 중이며 내년에는 서울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변사 현장에 법의관이 현장 검안을 나갈 계획”이라며 “인력이 충분하지 않지만 여차하면 나도 계급장 떼고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 내 검시체계 개선 논의는 지난달 23일 안행부 정 장관이 서 원장에게 국과수·법의학계 공동 개선안 도출을 지시하는 것으로 본격화됐다. 이후 서 원장은 지난 8일 대전에서 열린 대한법의학회 임시 평의원 회의에 직접 참석해 인력 양성 방안 등을 협의했다.

법의학회는 이와 별도로 검찰, 경찰과 각각 검시체계 개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개선안을 논의 중이다. 박종태 법의학회장은 “8일 회의에서 대학은 인력을 양성하고 국과수는 이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었고 문제는 양성방법인데 앞으로 좋은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예방의학처럼 정부가 사회적 필요성을 인정해 법의학 레지던트 제도를 만드는 방안과 군 장기복무 군의관처럼 임상 경험있는 인턴을 뽑아 재정 지원을 해주면서 법의관으로 키우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원주 국과수 본원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선 여야 의원이 검시체계 개선 의지를 나타냈다.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은 “촉탁의에게 부검을 맡기는 이유가 전문인력이 없어서인데 정확성도 떨어지고 책임소재도 불분명한 만큼 법의관이 다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박남춘 의원도 “세월호 사건 때 국가 근본을 바꿔야한다고 우리가 강조했는데 검시체계가 여기에 해당한다”며 근본적인 체계 확립 필요성을 지적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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