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직업인] 법의학 전문가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법의관의 삶에 대해 듣기 위해 만난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의 얼굴에선 법의관다운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사건 현장의 증거들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눈빛이 돋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서 원장은 1991년 법의관에 임명된 이래 25년째 외길을 꿋꿋이 걸어왔다.   

기자는 인터뷰에 앞서 “예전에는 조금 생소했던 ‘법의관’이라는 직업이 최근엔 미국·한국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에게 많이 친근해졌다”고 운을 뗐다. 서 원장이 최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인에 대한 감정결과를 발표하면서 법의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역할이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법의관은 범죄나 사고에 관련된 죽음을 조사하는 직업입니다. 사인(死因)과 사망 경위를 의학적·과학적으로 분석하죠. 법의관은 명칭만 달라졌을 뿐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검시(檢屍)제도와 같은 것입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직업 중에 하난데, 불행히도 우리나라가 물질만능주의에 빠지면서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기피하는 길 중 하나가 됐죠.”

서 원장 역시 처음부터 법의관이 될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그는 “당시에는 병리학에 종양학, 면역병리학, 법의학 등 세부전공이 있었다”며 “사람들이 법의학은 전공을 잘 안 하니까 법의학을 공부하면 좀 더 훌륭한 병리학 교수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국과수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조금 불순한(?) 의도를 갖고 법의관이 됐지만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순번을 정해놓고 돌아가면서 사건을 맡기 때문에 같은 법의관이라도 전혀 다른 사건을 맡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순번일 때 큰 사건을 많이 맡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많이 받게 됐고, 사인이나 사망 경위를 밝혀내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는 연세대생 노수석군 사망사건, 최덕근 전 블라디보스토크 영사 피살사건,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 살인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사건들을 도맡아 왔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구지하철 화재사건 등 대규모 사건의 부검, 검안에도 관여했다.

수천건의 부검을 해오는 동안 법의관으로서 힘든 점은 없었을까.

“법의관은 한 사건을 맡으면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부터 굉장히 복잡한 데이터까지 분석한 후, 자신이 갖고 있는 법의학에 대한 신념에 입각해 법정에서 감정 결과를 발표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기면(그러면) 기고(그렇고) 아니면 말고’ 식의 추측이 아니라는 거죠. 이번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례처럼 과학적인 수사 결과를 국민들이 믿지 못할 때 힘이 듭니다.”


- 서 원장은 2012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한 후 혁신적 변화를 이끌어왔다. 2주 만에 8만명의 감정 지연(遲延) 건을 처리하고, 감정 기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범죄 현장에 답이 있다
서 원장은 미국의 ‘과학수사대(CSI)’와 우리나라의 법의관이 다른 점은 ‘수사권’의 유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변사체가 발견되면 법의관(ME·Medical Examiner)이 중심이 된 CSI가 출동해 현장 감식과 부검, 수사까지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전담 검시제’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경찰 등 수사당국이 검시 업무를 겸하는 ‘겸임 검시제’로 운영된다. 변사체가 발견되면 경찰의 초동수사반이 기초적인 검시를 진행한다.

그는 “국과수는 수사기관의 협조를 얻어야만 수사가 가능하다”며 “점차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기본적으로 수사기관과 국과수가 서로 믿고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의관은 수사 초기 단계에 현장에 가지 않고 사건 기록과 현장 사진을 보고 사건을 접하는데 사건 개요가 잘못 작성돼 있어 오판을 한 적도 있다”며 “법의관이 현장에 꼭 가야 하는 이유는 현장에 답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어진 자료 외에 새로운 증거가 많이 나타나면 재(再)감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인데요. 재감정을 통해 23년 만에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은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을 때, 이에 항의해 분신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총무부장이던 강기훈 씨가 대신 써줬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돼 복역했던 사건이다.


법의학은 인간의 최종 운명을 가름하는 학문
서 원장은 2006년부터 법의관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법의학의 장점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각양각층의 사람들에게 강의를 해왔다. 서 원장은 “부검실이 겨울엔 춥고 여름엔 물이 역류해서 바닥에 질퍽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며 “꾸준한 강의를 통해 이 같은 현실을 알렸고, 그 덕분에 환경을 개선하고 봉급도 올리고 사회적 이미지를 높였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려낸 SBS 드라마 〈싸인〉은 서 원장의 강의 내용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싸인〉은 한국판 ‘CSI : 과학수사대’로서 법의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 원장은 “실제로 드라마 방영 이후 법의관이 되려는 의대생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며 “국과수에서 시나리오를 검토해주고 주인공역을 맡은 박신양 씨가 교육을 받고 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25년간 수많은 범죄현장의 실마리를 풀어내고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을 살려낸 그에게 법의학이란 무엇일까.

“저는 법의학이 인간의 최종 운명을 가름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죽음도 삶의 연장입니다. 사람은 죽어도 남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영원히 있잖아요. 어떤 분이 명예롭게 돌아가셨다고 하면 그 명예를 지켜드리고, 억울하게 돌아가셨다고 하면 부검을 통해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거죠. 그렇게 가족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게 하는 겁니다. 죽음은 그 삶의 종점을 찍는 것이지만, 삶의 연속성을 만들어가기도 하는 거죠.”  

 

▒ 서중석 원장은…
1957년생, 83년 중앙대 의학과 졸, 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 94년 중앙대 대학원 의학 박사, 201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 부장,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대한법의학회 감사, 아시아법과학회 회장.


글:
 백예리 기자 (byr@chosun.com)
사진: 이신영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10월 수상자로 김종만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를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김 교수는 땀구멍 지도를 이용한 새로운 지문분석법을 고안, 법의학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문 분석은 지난 100년 간 지문의 융선(지문을 이루는 곡선) 패턴에 의존해왔는데 이 방법은 범죄현장에 남은 지문이 완전한 형태여야 분석이 가능했다. 

김 교수는 고성능 센서를 통해 손가락 끝의 땀샘에서 나오는 미량의 수분을 감지하고 이를 시각화해 땀구멍 지도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손가락 끝 땀샘은 개개인마다 패턴이 다르고 태어날 때 정해진 패턴에서 변하지 않는다. 이를 활용해 개인의 땀구멍 지도를 데이터베이스화하면 현장에 남겨진 지문과 비교해 보다 쉽게 용의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지난 3년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등 정상급 국제학술지에 41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연구역량도 인정받았다.


lucho@yna.co.kr







정부 검시 체계 개편 내용·전망
우리나라 검시제도는 근본부터 문제다. 매년 25만명 정도가 사망하는데 이 중 15만여명은 병원에서 의료진 보살핌속에 임종을 맞지만 나머지 10만여명은 병원 밖에서 숨진다. 가난하거나 외로운 소외계층이기 십상인 이들의 병원 밖 죽음은 국가가 보호자로서 책임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관련 법체계·인력 미비 등 국가는 사실상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을 현재 23명에서 100명으로 대폭 늘리기로 한 것은 이 같은 검시제도의 가장 약한 고리인 인력 부족 현상부터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법의학 교실 활성화→법의관 증원→검시 역량 강화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순차적으로 진행되면 법의관이 변사 현장에 나가지 못한 채 부검만 하는 반쪽짜리 검시의 최대 현안이 개선될 수 있다. 법의학계에선 “수십 년간 진척되지 않아 자포자기 상태였는데 상당히 고무적이다”며 환영했다.

검시제도 개선은 부처 간 협의·예산 확보는 물론 관련법 제·개정 등 난관이 많다. 그러나 50여년 된 적폐에 대한 정부 개선 의지도 매우 강한 상태다. 법의학계에 따르면 정종섭 안행부 장관은 세계일보의 ‘대한민국 검시 리포트(9월15∼18일)’보도 후인 지난달 23일 서중석 국과수 원장과 법의관 증원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외국처럼 법의학자가 (변사)현장에 임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난 8일 대전에서 열린 대한법의학회 평의원회의에선 국과수 서 원장도 참석해 현재 턱없이 부족한 법의관 양성 및 활용 방안이 논의됐다. 양측은 이달 말까지 법의관제도 개선을 위한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 안행부 장관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안행부 장관은 이를 토대로 청와대에 법의관 양성에서 국과수 법의관 확충에 이르는 검시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안을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 변사사건 부실 지휘로 곤욕을 치른 검찰도 검시 전문성 강화를 위해 법의학회 등과 함께 제도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또 경찰은 간호사, 임상병리사 출신의 검시보조인력을 ‘경찰검시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법의관과 혼동을 줄 수 있다는 법의학계 의견을 수용, 이달 1일부터 ‘검시조사관’으로 개칭했다.

정치권도 검시제도 개선을 위한 법 제·개정에 착수하는 분위기다. 이날 강원도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에서 진행된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국과수에 대한 추궁보다는 검시제도 개선에 대한 의견 수렴이 주로 이뤄졌다. 여야 의원은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의 신원이 뒤늦게 확인되고, 사망원인을 끝내 밝히지 못한 이유로 국내 검시제도의 한계를 지목하고 제도 개선에 앞장설 뜻을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은 “검사가 (변사체를) 보지도 않고 무연고 변사로 부검 영장을 발부하고, 무연고 변사체는 범죄 연관성 없으면 다 화장해버린다”며 “이 문제는 경찰도 해당되고, 국과수, 법무부도 연관돼 있으니 전체적인 검시체계 개선 필요성을 국무회의 때 안행부가 제기해 앞장서야 한다. (국과수가 자체 마련 중인)법과학진흥기본법으로는 안 되고 이번 기회에 우리 위원회 차원에서 (검시제도 개선 입법)과제를 채택하자”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도 안행부 차관에게 “이번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올려보시라. 여야가 합의해서 하겠다”고 주문했다.

서 원장은 검시 절차 없이 이웃 증언만으로 매장이 가능한 인우보증 사망 신고제도에 대해 “아프리카에도 없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제도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원격관제시스템을 이용해 현장에 들어가지 않고도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무선전송시스템을 구축해 

              운용예정인 경찰이 17일 대전 중구 한 여관에서 현장의 감식 상황을 모니터하고 있다. 전우용 기자 

              yongdsc@ggilbo.com 


17일 오전 대전 중구 문창동의 A 여관. 3층 객실 침대 위에 마네킹(이하 M 씨)이 낡은 베개를 벤 채 널브러져 있다. 객실 안 탁자에 놓인 흉기, 바닥에 낭자한 붉은 액체는 범죄 발생 현장의 긴장감과 전율을 생생히 전달했다.


이곳은 대전지방경찰청의 과학수사 모의훈련(F.T.X) 현장. 사건발생을 가장한 훈련의 일환이지만 대전청·중부경찰서 경찰들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과학수사를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경찰은 매뉴얼에 따라 현장 임장·보존 조치 원격관제시스템 운용, 현장관찰 및 기록, 증거물 검색 등을 진행했다.


 긴장감 가득한 현장 … 실전같은 과학수사 선보여
현장 밖에서도 무선시스템으로 실시간 감식상황 모니터


과학수사대 대원들은 훈련이 시작되자 경찰통제선을 설치하고 증거보전을 위한 통행판을 따라 조심스레 사건 현장으로 진입했다. 이날 검시를 담당한 대전청 과학수사대 신미애(39·여)·오주빈(41) 경찰 검시관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침대에서 숨진 채 발견된 M (40) 씨를 주시했다.


검시 10년 차 신 검시관과 8년 차인 오 검시관은 M 씨 곳곳에 난 상흔을 살폈다. 이들은 현장에서 상처를 살핀 후 ‘자상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M 씨를 옆 객실로 옮겼다. 이는 시신 뒤에 유리된 물건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와 증거가 되는 용의자 피가 시신 뒤에 묻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시관들은 M 씨의 시신을 시체포 위에 올려놨다. 시체포는 시신의 인격을 존중하기 위해 국내 과학수사대에서 쓰고 있는 것으로 하얀색 천 바탕 위에 신장 등을 확인 알 수 있는 눈금이 그려져 있다. 검시관들은 이후 좀 더 구체적인 검시를 진행했다.


신 검시관이 “얼굴에 출혈이 많아 창백하다. 눈꺼풀과 각막이 혼탁하다”고 검시한 내용을 오 검시관이 “얼굴에 출혈이 많아 창백, 눈꺼풀과 각막 혼탁”이라고 되물으며 한자 한자 정성스레 기록지에 적어 넣었다. 이런 검시과정을 거쳐 시신에 생긴 의문의 상흔은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과학적인 기록’으로 변해갔다.


과학수사대의 ‘과학’의 밑바탕에는 진실을 밝히겠다는 수사대원의 열정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학병원 간호사로 수년 간 근무하다 과학수사에 매력을 느껴 과학수사대원이 됐다는 신 검시관. 그녀는 “대전경찰청·일선서가 같이 합동으로 훈련을 했다. 이런 훈련을 바탕으로 한 사람의 시민도 진실이 알려지지 못하는 피해가 없도록 철저히 노력하겠다”고 훈련소감을 밝혔다.


대전청 홍영선(45) 과학수사계장은 “국민에게 책임을 다하고 신뢰받는 경찰이 되기 위해서는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현장에서 단 한 가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로 평소 과학수사 전문인력 풀 구성과 신속한 현장지원을 위해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반복하겠다”고 약속했다.



곽진성 기자 pen@ggilbo.com









최근 모 방송에서 이른바 ‘홍천강 살인사건’을 다룬 것을 계기로 사망원인을 조사하는 검시(檢視)제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졌다. 자칫 단순 익사로 처리될 뻔했던 죽음이 유가족인 딸의 요청으로 부검이 이루어졌고 결국 타살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후 경찰수사에서 피해자의 남편이 범인으로 지목되었고,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유죄까지 선고된 상태다. 방송을 보던 많은 이들에게 만약 유가족의 요청이 없었다면 사고사로 종결되었을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게 했다.

정말 우리나라의 검시체계에는 많은 허점이 있는 것일까. 다른 나라는 어떨까. 선진 외국의 검시제도로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방식을 들 수 있다. 첫째는 법의학 전문의사인 법의관(medical examiner)이나 전담검시관(coroner)이 독자적으로 검시를 주도하는 방식이다. 국가가 임명하고 현장조사, 부검 결정, 재판증언까지 담당하는데 미국, 영국 등이 이에 속한다. 둘째는 수사당국을 검시의 일차적인 주체로 하되 법의학 전문의를 의무적으로 참여시키는 방식이다. 독일의 법정의(court doctor)나 일본의 감찰의(監察醫) 등이 이에 해당한다. 양자 모두 법의학 전문가가 현장에 임장한다는 점이 공통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법의학 전문의의 현장임장을 의무화하지 않은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법적으로 검시의 주체는 검사이고, 실무에서는 경찰이 대행해서 검시를 행하고 있다. 법의학 전문가는 빠져 있으니 전문성 부족이 문제되는 것이다. 통상 경찰이 협약을 맺은 관내 민간의사에게 검안을 맡기고 있지만, 법적으론 전문성이 부족한 치과의사나 한의사 등도 검안할 수 있다. 경찰이 자구책으로 병리학, 간호학 전공자를 특채하여 일선에서 배치하는 내부 전문화를 시도했다. 인력 증원, 전문교육의 확충, 국과수와의 연계, 법적 권한의 정비 등의 보완이 요구된다.

법의학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도 문제이다. 현재 부검을 실시할 수 있는 법의학자 수는 국과수 20여명, 은퇴한 개업의를 포함해도 전국적으로 40여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연간 4000건에 달하는 부검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한 해 발생하는 평균 변사건수 25000건 중 부검실시율은 20%에 미치지 못한다. 전국 41개 의대 중 법의학 교과가 개설된 곳은 14개이다. 해부학에 대한 기피특성에 더해 법의학계의 열악한 처우나 근무환경을 고려하면 선뜻 진로를 추천하기도 힘들 것이다. 전체 사망자 중 원인불명 사망비율도 10%에 달한다. OECD 회원국 중 1위다. 안타깝지만 검시제도 후진국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개선책으로 무엇보다 사체검시에 법의학 전문의를 필수적으로 임장시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수사전문가와의 합동임장을 통해 유기적 협력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관련법안이 몇 차례 국회에 제출된바 있지만, 법조계나 율사출신의 밥그릇 뺏기로 보는 시각에서의 반대나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방기되어온 형국이다.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일은 국가의 기본적 의무이자 죽음을 대하는 한 국가의 인권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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