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서울 광화문 광장. 추위 속에서도 한 남자와 포옹하기 위해 시민들의 긴 행렬이 줄을 이었다.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이 77%가 넘으면 ‘프리허그’를 하겠다며 공약을 내건 프로파일러이자 전 경찰대 교수인 표창원 씨가 그다. 1.2% 부족한 75.8%의 투표율이었지만 그만큼도 훌륭하다며 기다린 이들을 위해 약속을 지킨 사람.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아닌, 공공의 약속임을 알게 해 준 사람. ‘익명’이라는 가면 뒤로 숨어버린 작금의 사회 속에서 당당히 소신을 밝힐 줄 아는 사람, 표창원.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자유로운 의사를 표현하고 싶다”며 경찰대 교수직을 사직하고 진정한 ‘자유 시민’으로 살아가는 표창원 전 교수를 함께걸음이 만났다.


  
 

Q_‘프로파일러(profiler)’라는 용어가 교수님을 통해 많이 알려진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생소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쉽게 말해 ‘셜록 홈스’처럼 사건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나
셜록 홈스 같은 존재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다. 우리는 영국이나 미국처럼 시민들의 조사활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국가에 소속된 경찰이나 검찰이 아닌 시민이 전문성, 분석능력, 추리능력이 있다고 해서 범죄사건을 수사할 수 없도록 해 놨다. 그래서 그런 직업은 없다고 보시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경찰이나 검찰이 아닌 일반인이 범죄사건에 대해서 분석ㆍ추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런 역량을 가지고 기자가 돼서 보도하거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의뢰인을 위해 분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프로파일러’라는 역할이 직업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면이 다양하다고 볼 수 있겠다. 정신과 의사 중에서도 범죄사건에서 정신장애가 수반된 문제, 이상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어떤 유형의 정신적인 문제를 가졌는지 분석하는 분들이 계신다. 그것도 일종의 프로파일러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셜록 홈스 같은 존재가 프로파일러냐 했을 때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저 같은 경우는 독특한데, 경찰관 출신의 교수로서 일선에 있을 때는 직접 수사를 했고, 이후에 범죄심리와 프로파일링 등을 연구해 가르치고, 분석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왔다.


Q_<나는 셜롬 홈스처럼 살고 싶다>라는 책을 냈는데, 셜록 홈스라는 인물을 동경하는 것 같다
그렇다. 추리소설을 무척 좋아했고, 셜록 홈스 어린이판 시리즈를 읽으면서 셜록 홈스를 동경했다. 어릴 적 분노도 많았고, 공격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싸움을 많이 했다. 합기도까지 배워서 싸움에 자신있었고, 싸움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했었다. 초등학교 때는 싸움하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맨날 코피 나고 눈 붓고, 집으로 맞은 친구 어머니가 찾아오곤 했다. 집이 가난했는데도, 제가 부러뜨린 친구 팔 치료비를 물어내느라고 부모님이 힘드셨다. 그러다 셜록 홈스를 읽으면서 깨달음과 반성이 있게 됐다. 폭력이 아닌 지식과 추리, 논리, 조사와 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폭력보다 멋지고,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셜록 홈스는 저한테 폭력으로부터 합리와 논리, 공부, 노력 등을 통한 문제해결로 방향을 바꾸게 만든 존재였다고 볼 수 있다.


Q_인생의 전환점이 된 계기가 한 권의 책이었던 건가
그렇다. 인생에서 몇 번의 전환점이 있었지만, 특히 ‘셜록 홈스’라는 책이 어린 시절의 전환점이 됐다.


Q_그때부터 프로파일러의 꿈을 키우셨나
그때는 프로파일러가 뭔지도 몰랐다. 그냥 그 모습이 좋았고 흉내도 내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탐정단도 조직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간첩식별법’이라는 것을 배웠었는데, 책 속의 셜록 홈스처럼 친구들과 저는 진짜 간첩을 잡으려고 돌아다니면서 수상한 사람을 미행하곤 했었다. 산에 올라가서 동굴을 탐사하고, 동굴 속에서 혹시 간첩이 은거하는지 찾아보고, ‘삐라’ 같은 게 있는지, 메시지가 있는지 찾고 다녔다. 실제 의심되는 사람을 신고한 적도 있었는데 오인 신고였고(웃음), 다행히도 파출소 경찰관들께서 야단치지 않고 타일러 돌려보내셨다.


Q_아주 모험적인 어린 시절을 보내신 것 같은데, 그런 경험들이 커서 경찰이 되는 데 도움이 됐나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상당히 겁이 없고, 두려움 없고, 진취적이고, 적극적이고, 모험이나 위험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성향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 것 같다. 다만 신중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행동 중심적인 게 단점이었는데, 그런 부분들은 커가면서 다듬어져 왔다. 그전까지는 실수를 자주 저지르고 엉뚱한 사람들을 단초로 의심하는 엉뚱한 에피소드들도 있었다.(웃음)


  
 

Q_앞서 영국과 미국 얘기가 나왔는데, 해외에는 셜록 홈스처럼 사립탐정이 있나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영국 같이 아예 규제하지 않고 관련법 없이 그냥 하고 싶으면 한다. 신고하고 등록한 다음, 돈을 받고 일을 하면 세금만 내면 된다. 다른 하나는 허가를 내주는 곳이 있는데, 미국이 그렇다. 미국은 과거 서부개척시대부터 ‘바운티 헌터(bounty hunter, 현상금 사냥꾼)’, 즉 현상금이 걸린 수배자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허가 없이 했었는데, 죽이든 살리든 찾아서 데려가면 돈을 받아갔다. 그러니까 범죄자가 범죄자를 잡는 등 혼란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핀커턴’이라는 기업형의 민간 수배자 사냥꾼이 생겼다. 그들은 주로 탄광 같은 곳에서 도망간 노동자나 범죄자들을 찾아다녔는데, 전문적 기업적으로 일하다보니 대단히 효율적이었다. 그러면서 아무나 하지 못하도록 기준을 마련하고 일정한 교육을 받게 하는 등 진입장벽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미국에 자격증을 주는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Q_한국에도 공공기관 외에 범죄를 분석하고 조사하는 기관이나 개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답이 있다고 하긴 어렵고, 저는 그 문제에 대한 의견은 유보하고 있다.

상당히 애매하고, 장단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자생적으로 규제 없이 일어난 탐정도 없었고, 반대로 기준을 정하는 자격증도 없었다. 단지, 국가공권력 바깥에서 민간이 조사ㆍ수사하는 것은 금지되었고, 그런 와중에 흥신소라는 영역이 생겨났다. 국가의 수사권은 범죄사건에만 한정되니까 가족 중에 어른이 가출했거나 실종됐거나 하는 애매한 경우들은 범죄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 쉽게 찾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합법적인 방법보다는 불법적인 방법이 돈이 많이 되니까 흥신소라는 곳이 비리와 불법의 온상이 되어버렸고, 사생활침해 같은 많은 문제가 야기됐다.

이런 논란 때문에 ‘양성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있고, 기준을 정하고 검증하고 자격 있는 자에게만 자격증을 줘서 불법적인 일들을 없애자는 의견이 있다. 그에 따른 반론은 양성화시키면 인허가로 생긴 시장 때문에 그보다 더 싼 불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음성적인 영역이 더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저는 이러한 논점들을 관찰하고 있다. 가급적이면 탐정 형태의 우리 여건이 돈으로 조사를 하는 시장영역보다는 꼭 조사활동이 필요한 영역인 실종자 찾기, 언론 방송 등의 취재를 위한 사실 확인, 기업 경영의 이익보호 차원, 억울한 피의자ㆍ피해자들에게 국가가 해주지 못하는 부분들, 전문적인 수사ㆍ분석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영역을 준 공공영역 형태로 지원하는 것이 낫지, 시장논리에 따라서 허용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과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Q_뉴스에 사건·사고가 많이 나오는데 보면 바로 분석에 들어가시나
워낙에 사건이 많아서 다 분석하지는 못한다. 상당 부분은 그냥 흘려보내고, 일상적이고 패턴화 된 것이나 뻔히 보이는 것은 굳이 분석할 필요가 없다. 그럴만한 가치와 여지가 있는 사건, 예를 들어, 언론에서는 의미를 잘 모르고 단순 보도로 끝나버리는 사건들도 나중에 문제가 될 것 같다든지, 불확실한 부분들이 밝혀질 필요가 있는 사건이 있을 때는 관심 있게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분석도 하고, 나중에 그것이 예상한 것처럼 언론이나 다른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문제가 됐을 때, 저는 준비돼 있는 것이다. 인터뷰 요청이나 문의가 들어오면 어느 정도 분석을 도와드리고 있다.


Q_교수님은 아동, 여성 등 우리 사회 약자들의 범죄 피해에 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신안 염전 노예사건이라든지, 지적장애여성 성폭력, 장애인 명의도용 등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잦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저는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절도범죄는 관심이 없다. 그들이 알아서 CCTV를 달고, 자구책을 취할 수도 있고, 경찰이든 국가든 그런 범죄는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사건에는 관심도 없고 관심 가질 필요도 없다. 국가가 오히려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보다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기 어려운 환경과 여건에 처한 분들을 보호해드리는 것이 원래의 역할인데, 그게 잘 안 되다 보니까 제가 사회 약자들에게 관심을 많이 두게 된 거다. 특히 장애인, 여성, 아동, 노인, 외국인, 성소수자와 같은 소수자,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많다. 이런 분들은 ‘취약성(vulnerability)’, 즉 착취하거나 공격하고 가해하기 쉬운 특성을 가지고 있고, 표적이 되기 쉽다.


Q_예방 대책이나 해결방안을 고민해 보신 적이 있나
일반 범죄는 불특정 다수에게 예상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렵지만, 특정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들은 노력만 하면 예방책을 찾기가 쉽다. 장애인에게 접근하는 특성, 수법들이 두드러지고 장애인, 여성 등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자들은 심리적, 행동적 특성이 있다. 범죄는 언제나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근절하겠다는 말을 믿지도 않고 반대한다. 범죄 발생 시에 최대한 신속하게 피해를 최소화 하도록 응급적 조치, 조속히 검거하는 수사, 그 와중에 지원, 치료, 보호가 필요하다. 저는 사후적으로 이러한 사건들의 의미가 무엇이고, 재발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연구해보는 차원이지, 범죄에 대한 대책이 뭐냐는 것은 막연하다.


  
 

Q_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 중에 배고파서, 정말 죽을 만큼 힘들어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영화 <7번 방의 선물> 지적장애인 주인공처럼 ‘누명’을 쓰는 ‘억울한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혹시 기억나는 사례가 있나
사실 어떤 것도 범죄의 변명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범죄를 저지르면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더욱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든가, 혹은 책임질 것 이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은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강원도 고성에서 강도범들이 잡혔는데 그중 한 명이 지적장애가 있는 분이었다. 형사들이 지적장애가 있는 분을 유도신문 했다. 지적장애인의 특성을 알고 그랬다면 더 나쁘겠지만, 아마 형사들이 몰라서 더 그랬을 거다. 해당 사건 말고 “너 사람 죽였다며?”라는 식으로 말이다. “누가 그래요?”라고 답하니까, 형사들이 “쟤네들이 네가 그랬다고 하더라.”라고 말했고, 지적장애인분이 얼떨결에 “제가 아니라 저놈들이 한 거예요.”라고 말하게 된 거다. 형사들이 이 사람의 진술을 진심으로 믿었고, 시신이 있다고 지목한 곳에 가서 바로 안 나오니까 수색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는 상당히 넓은 범위 내에서 시신 한 구를 찾았다. 그게 실제 살인사건이 됐는데, 1심에서는 국선 변호인이 엉성하게 해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항소심에서 하나하나 증거를 다 따져보니까 진술과 시신 상태가 너무 안 맞아 결국,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이처럼 장애가 있다고 해서, 약점을 빌미로 삼아서 저지르지 않은 범죄까지도 덮어쓴다든지, 범죄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할 수 있는 수사를 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되겠지만, 반대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비장애인이라면 처벌받지 않을 것도 처벌받거나 과도하게 처벌받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된다.


Q_최근에는 장애인이 범죄에 연루됐을 때, 특히 의사소통이 어려운 지적장애인의 경우 법률조력인과 더불어 진술조력인이 필요한데, 때때로 경찰들이 조사에서 진술조력인을 붙여주지 않아서 피해를 볼 때가 있는 것 같다. 장애에 대한 이해 부족이기도 하겠지만, 수사 과정에서 불합리한 조사가 이뤄지기도 하는 것 같다

참 안타깝다. 소년법에는 처음부터 미성년자가 피의자일 경우에 반드시 부모에게 연락하게 되어 있고, 보호자의 도움을 받게 되어 있다. 모든 피의자에게는 변호인의 법률조력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장애가 있는 경우도 미성년자에 준해서 진술조력인에 대한 지원의무가 좀 더 일찍 이뤄져야 했다. 그런데 법제화가 된 이후에도 현실적으로 그게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쪽으로는 장애가 있는 분에게 반드시 진술조력인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무지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쪽으로는 알면서도 진술조력인이 있으면 골치 아프고, 복잡하고, 자백을 받아내기 어려우니까…. 좀 더 부정적으로 보자면,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치졸한 거다. 공정한 경기가 돼야 하는데 피의자라고 의심받고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애를 이용해서 그 사람에게 쉽게 불리한 진술을 받아낸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접근이고 치사한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범죄를 저질렀건 저지르지 않았건 자기 방어권이 헌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보장된 권리를 장애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보호해줘야만 비장애인에겐 자기가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것처럼 되는 건데, 장애가 없는 사람과 똑같이 취급할 경우에는 장애가 있는 분은 헌법상의 권리가 박탈당한 거나 다름없다.


Q_‘법이 곧 정의’라고 정의하기에는 정신보건법처럼 정신장애인을 강제입원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이 있는 등, 법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또는 공소시효 등 법 규제로 제대로 된 처벌이 되지 않아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가해자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경우도 많다
법이 곧 정의다. 몇몇 사례만을 가지고 법이 썩었다, 법이 필요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한다. 법은 우리 사회에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약속이지 않나. 그런데 최소한의 약속을 마치 ‘나는 약속하지 않았다’면서 법 자체에 대한 무용(無用)을 주장한다거나, 법의 형평성을 잃은 사례 면면만을 부각해서 법의 집행에 대한 효율성을 부정하는 시각은 법이 원래 목적하고 있는 약자 보호의 기능 자체를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절대 반대한다. 법이 곧 정의라는 것은 맞고, 그 자체가 정의롭지 않게 활용되고 악용되는 상황, 구조, 원인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찾아내서 고쳐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신보건법상의 강제입원 명령 같은 경우, 악이고 필요 없느냐 했을 때 그건 절대로 아니다. 특히 조현병으로 스스로 자기 통제를 하지 못하는 분들 같은 경우에 본인의 자발적인 의사로 입원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질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에게 가해하는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나. 서로를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다. 다만, 그 조치가 입법 취지대로 제대로 이뤄지는가 악용되는가 했을 때, 악용된다면 그 이유를 찾아서 고쳐야 한다.


Q_시대에 따라 범죄유형과 방법이 다른 것 같다. 반면 거꾸로 범죄유형이 시대를 반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범죄라는 게 시대와 분리할 수는 없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범죄 자체보다는 범죄를 조망하고 들여다보고 공개하는 방송과 언론의 시각이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더 부각되는 점도 있다.


Q_우리는 현재 ‘인권’이라는 화두가 던져진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경찰들에게 더 인권의식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 부분은 계속 강조돼왔다. 경찰대학뿐만 아니라, 경찰 교육기관마다 인권교육은 계속해 오고 있다. 하지만 교육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식과 문화와 관행을 바꿔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인권 감수성인데 느낌, 생각, 감정들이 교육만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 선발 단계에서부터 어떤 인성을 가진 사람인지, 경찰관의 적성이 맞는지, 업무를 어떻게 이루어 가는지 등등 이 모든 것들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Q_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국가가 ‘보상’이 아닌 ‘배상’을 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들을 때로는 국민이, 당사자와 그 가족이 짊어지는 것 같다
국가는 헌법 34조 6항에 따라 재난을 예방하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제대로 안 했을 경우에 국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근데 그 책임이 어느 정도냐 했을 때, 예를 들어, 예측 불가능한 태풍 때문에 많은 사람이 생명이나 재산을 잃었다면 국가 책임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 것을 ‘보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책임져야 할 문제는 아니지만, 국민이 심각한 피해를 당했고, 국가의 지원 없이는 피해복구를 못하는 상황이면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마땅히 해야 할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고, 구조에 고의나 과실이 있어서 손실이 발생하거나 커졌다면, 그것은 보상이 아닌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을 ‘국가배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국가의 잘못, 과실에 대해 너무 너그러웠고, 온정주의로 국민의 성금을 모아서 보상하는 것으로 무마하고 넘어가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저는 그것은 절대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인과관계와 책임소지를 분명히 따지고 잘못한 일이 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서 형사적인 처벌과 민사적인 배상을 다 한 다음, 개별 공무원에 책임이 있다면 배상하고, 국가도 배상하고, 그리고서 부족한 부분을 성금이든 보상이든 해야 한다는 것이다.


Q_이 시대에는 사회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정의에 대해 논하고 방법을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젊은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교수로도 재직하셨으니 젊은 사람들, 청년들에 대한 생각이 많으실 것 같다
젊은이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젊은이들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면 사회 문제에 관심을 못 갖게 한 기성세대의 언론과 제도의 문제인 것이다.

제가 만나 본 젊은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혼자만이 아닌 친구, 동료와 우리 사회에 대해서 뭘 어떻게 할지 몰라 안타까워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이 사회와 기성세대로부터 경쟁 속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스펙을 쌓고 취업준비를 하는 자신의 모습들에 대해서 대단히 비판적이고 불만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런 내면과 노력하는 마음은 보려 하지 않고 젊은이들이 사회 문제를 위해서 행동하지 않는다는 외피만 가지고 비판하는 것은 근시안적으로 속이 좁다고 본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마음속의 의도와 욕구를 차단하고 억누르며 막은 제도와 기성세대가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Q_정의를 실현하며 살고 싶다고 하셨는데, 교수님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옳은 것’이다.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의라고 하면 안 된다. 옳다는 것에 근거가 있어야 하고, 보편적이어야 하고, 시대정신이 반영돼야 하는 것이 ‘정의’이다.



글 이애리 기자 사진 이용태  |  aery727@cowalknews.com







연인원 4만여명 투입…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극심


“우리가 겪는 트라우마는 소리없는 절규와 같습니다. 치료를 받을 곳도 없어 혼자 끙끙 앓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50여일 동안 진도 팽목항을 지켰던 경찰 검시관 A씨는 최근 불면증과 발작증세,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아졌다. A씨는 지난 10여년 동안 사건 현장에서 사체의 신원과 사인(死因)을 밝혀내는 일을 해온 베테랑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세월호 희생자들의 모습과 가족들이 겪은 고통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A씨는 말 못할 상처로 괴로워하고 있다. 

지난달 업무에 복귀했지만 세월호 관련 24시간 대기근무를 하고 있는 A씨는 “곧 트라우마 치료 센터가 생긴다고 하지만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 시간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혹시 상담을 받더라도 이상증세가 나오면 어떡하느냐…”고 말을 흐렸다.

세월호 참사에 투입된 경찰관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일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상담 및 치료시스템은 역부족이다. 전문 치료 기관을 늘리는 동시에 경찰의 근무여건을 고려한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7일 경찰청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가 난 4월16일 이후 지난달 말까지 진도 팽목항과 실내체육관 등 현장에는 형사와 정보, 경비 등 경찰 4만여명(연인원 기준)이 투입됐다. 하루 평균 880여명이 참사 현장에서 근무한 셈이다. 이중 대부분은 일선으로 복귀했지만 아직도 매일 500여명의 경찰은 진도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경찰의 PTSD와 관련해 치료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지난해 서울 보라매병원에 설치된 트라우마센터 한 곳뿐이었다.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한 경찰은 이달 들어 부산의료원과 대전 건양대병원, 광주 조선대병원 등 3곳에 트라우마센터 3곳을 추가로 개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전국 16개 지자체 중 12개 지역에는 트라우마센터가 없어 많은 경찰들이 원거리 진료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정작 트라우마센터가 마련되더라도 선뜻 상담이나 치료에 나서는 경찰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의 근무 여건과 업무 특징 때문이다.

형사 10년 경력의 한 경찰관은 “그것(정신적 고통)도 못 참고 못 견디면 경찰은 그만둬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라며 “세월호 이후 스트레스가 심해졌어도 말 못하는 경찰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이 2012년 실시한 ‘전국 경찰관 스트레스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 1만4271명 가운데 5309명(37.2%)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정도가 ‘심하다’고 답했고, 1569명(11%)은 ‘일부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답했지만 트라우마센터를 찾은 경찰은 476명에 그친다.



오영탁 기자 oyt@segye.com







사인을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거나 의학적 과실을 규명하기 위해 하는 것이 부검(剖檢ㆍautopsy)이다. 사건현장에서 희생자의 사인을 1차 조사하는 검시(檢屍)나 추후 법의관이 시신을 해부하는 부검은 사인 뿐 아니라 희생자의 신원, 사망 시점과 정황, 범죄 수법, 범인의 심리ㆍ신체적 특징 등 많은 단서를 던져준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거꾸로 죽은 자가 모든 걸 말해주는 게 부검이다. 희생자가 죽은 몸을 통해 시도하는 대화를 과학적으로 얼마나 잘 알아듣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 미국 조직병리학 통계에 따르면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사인의 3분의 1이 부정확하고, 부검에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경우가 절반에 달한다고 한다. 또 부검 4건 중 한 건에서 중대한 의학적 진단 실수가 발견된다. 특히 사인이 심근경색으로 알려진 죽음에서 심각한 오류가 자주 나온다. 미국의 경우 이런 의학적 오류가 부검을 통해 밝혀지는 게 전체 부검의 8.4~24.4%에 달한다. 

▦ ‘두 번 죽는다’는 뜻의 ‘두벌죽음’이라는 말에서 보듯 부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는 효의 개념과 사람이 이승에서 못 이룬 것을 저승에서 이룰 수 있다는 유교적 사고방식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관을 꺼내 주검을 훼손한다는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형벌이 나온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법의학 수준은 매우 낙후돼 있다. 외국처럼 검시를 전문적으로 하는 인력도 적고, 수사에서 검시관이나 법의관의 권한도 미미하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주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자기부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검을 해서라도 원인을 정확히 찾자는 뜻일 것이다. 지난 3월 서울 송파구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비극적으로 자살했을 때도 ‘사회안전망 부검’목소리가 높았다. 사건ㆍ사고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부검을 터부시하는 의식만큼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이다. 대한민국을 개조하기 위해서는 부패한 대한민국에 대한 부검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프로파일러의 활동이 잘 묘사된 모 케이블채널 본격수사 드라마의 한 장면. 부산일보DB



냉철함과 감성이 동시에 필요한 직업

Q: 최근 종영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출연한 배우 신성록의 '소시오패스(sociopath·반사회적 인격장애의 일종)' 연기가 화제가 되면서 범죄 심리를 분석한다는 프로파일러(profiler)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프로파일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될 수 있는지요.

사건 현장 흔적으로 범인 유추 
앞으로 채용 규모 확대될 전망


A : 특별한 범행 동기가 없는 '묻지 마 살인' 등 강력 범죄가 급증하고, 범죄 현장에 증거를 남기지 않는 지능범이 늘면서 범죄 심리 분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요.

프로파일러는 이 같은 현장에 남겨진 여러 흔적을 모아 범인의 성격, 콤플렉스, 취향, 연령대, 성별 등을 알아내는 '과학수사요원'을 말합니다.

주로 증거가 불충분해 일반 수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범죄나 연쇄 살인 등 강력 범죄 해결에 투입됩니다. 심리 분석뿐 아니라 범죄 현장에 남겨진 흔적을 분석해서 재구성을 하는 일을 주로 하지요.

예를 들면, 사건 현장에 출동해 범죄자가 어떻게 범행을 준비했고 범죄를 저질렀는지, 시신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 일련의 범죄 과정을 과학적으로 재구성합니다. 이를 통해 범행 동기와 용의자의 특징 등을 분석합니다.

피의자가 검거된 후에는 심리적 약점을 공략해 자백을 받아내고 여죄를 밝히는 심문에도 참여합니다.

프로파일러는 굳게 닫힌 피의자의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는 심리전의 달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냉철함과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감성이 동시에 필요해요. 범죄자가 언제 사건을 일으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되며, 끔찍한 범죄 현장을 감식하는 일도 쉽지 않아요.

신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강인함이 요구됩니다. 사회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보람이 크지만, 개인과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는 만큼 정의감과 책임감이 동시에 요구되죠.

우리나라에서는 프로파일링이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프로파일러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경찰 내부에서도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어 앞으로 채용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답니다.



■어떻게 준비할까

첫 번째는 먼저 경찰관이 되어야 합니다. 경찰대학을 졸업하면 경찰간부가 될 수 있지요. 그러나 일반 대학에서도 경찰관련 학과(경찰학과, 경찰행정학과, 경찰경호학과)가 있습니다.

경찰 관련학과가 아니더라도 경찰공무원 채용시험을 통하여 경찰관이 된 뒤 과학수사요원이 되어서 범죄분석 전문교육을 이수하면 공개채용을 통해 프로파일러의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대학 학부에서 심리학이나 사회학, 경기대나 동국대의 대학원에서 범죄심리를 전공해 석사 이상의 학위를 획득한 뒤 특채에 합격해야 합니다. 이후 경찰학교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은 뒤 주로 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등에 배치되지요.

보통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박사 학위를 요구하고, 경찰청은 석사 이상입니다. 배치되면 수사 인력의 전문화와 역량강화를 위해 도입한 '수사경과제'를 신청해야 합니다.

이때 강력범죄수사팀, 지능범죄수사팀, 과학수사팀, 수사지원팀, 유치관리팀 중 과학수사팀을 신청해 승인이 나면 과학수사요원으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경력을 쌓으면 '심리분석'을 하는 프로파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추가 정보

-인터넷사이트: 워크넷-직업진로-직업탐방-직업인인터뷰에서 프로파일러 검색

워크넷-직업진로-학과탐방-학과정보 검색-경찰행정학과나 심리학과 검색

-영화 : 주원, 김아중 주연의 '캐치미'(2013)

-도서: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사건추적(표창원 저·지식의 숲)

숨겨진 심리학(표창원 저·토네이도)

부산진로진학지원센터

박명순 진로교사(부산일과학고)







심리학 전공자 뽑아 1기 구성 

7년째 채용 '0명'…34명 뿐

조직내 업무 이해도 달라 

엉뚱한 일 맡아 갈등 잦아

피의자와 심리전에 감정노동도

연수·인센티브 등 복지 강화해야


[ 김태호 / 오형주 / 마지혜 기자 ] 

지난달 경찰 소속의 유명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K씨(41·여)가 뇌종양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경찰 프로파일러 1기인 그는 불모지와도 다름없던 국내 프로파일러 업무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청소년 아동 관련 성범죄와 방화사건 수사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였다. 2007년 성탄절 예배를 보고 돌아오다 납치·살해된 초등학생 ‘혜진·예슬이 사건’의 범인을 면담한 사람도 그였다. 각종 뉴스에 나와 프로파일러란 직업을 알렸고, 지상파·케이블 등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범죄 상식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가 지금까지 국내 학술지 등에 남긴 범죄심리 보고서만 10편이 넘는다. 

건강에 이상징후가 나타난 건 지난해 3월이었다. 근무 도중 갑자기 손이 마비됐다. 병원에선 ‘뇌종양’ 판정을 내렸다. 치료를 위해 여러 병원을 찾았으나 이미 병세가 악화된 뒤였다. K씨와 함께 프로파일러로 활동한 A씨는 “종종 스트레스로 편두통에 시달렸는데, 그때 미리 치료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경찰로서 자부심이 컸고 힘든 일을 해결한 뒤엔 성과를 동료들과 함께 나눴던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도입 10년, 연쇄살인범 검거 등 큰 성과

프로파일러는 1991년 개봉한 영화 ‘양들의 침묵’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영화에서 주인공 클라리스 스털링(조디 포스터 분)은 미국 연방수사국(FBI) 소속 프로파일러로 연쇄살인범을 심문하며 다양한 심리전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국내에선 영화 ‘추격자’의 배경이 된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을 계기로 프로파일러의 중요성이 대두됐다. 경찰청은 2005년 심리학 전공자를 ‘경장’으로 특별채용하는 방식으로 프로파일러를 처음 선발했다. 프로파일러는 2007년 3기 채용을 끝으로 지금까지 추가로 선발되지 않고 있다. 

1~3기로 채용된 인원은 40명. 지금까지 현장에서 경찰 프로파일러로 근무하고 있는 인원은 34명이다. 경찰청은 올해 7년 만에 4기를 채용할 계획이다. 

경찰 프로파일러가 활동한 10년간 굵직한 사건에서 일궈낸 성과는 적지 않다. 프로파일러들은 25건의 강도 상해 및 살인행각을 벌인 연쇄살인범 정남규(2006년),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인 사건의 범인 김길태(2010년) 등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 들어 프로파일러의 중요성은 더 부각되고 있다. 범죄 현장에 증거를 남기지 않는 지능범이 늘고 있는 데다 동기를 알 수 없는 연쇄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서다. 최근 서울 압구정동 인질극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인질범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협상을 유도하는 일도 프로파일러의 역할 중 하나로 꼽힌다. 

감정노동…정신적 스트레스

프로파일러들은 피의자 면담 등의 과정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호소한다. 2007년 프로파일러로 경찰의 길에 들어선 B씨는 “대형 사건보다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살인사건들이 오히려 기억에 많이 남는다”며 “우리도 인간인데 분노와 같은 감정을 억누르며 냉철하게 범인을 대하는 게 쉽지가 않다”고 토로했다.

B씨는 2011년 발생한 서울 도화동 임신부 살인사건에서 피의자를 면담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를 인터뷰하면서도 ‘분노’는 감춰야 했다. 오히려 정보를 캐내기 위해 범죄자의 심정을 이해하는 노력을 하는 게 쉽지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전직 프로파일러 C씨 역시 ‘감정노동’에서 오는 정신적 압박이 큰 고충이었다고 전했다.

프로파일러는 직업 특성상 ‘범죄자 정보’를 수집해 DB를 구축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이를 위해 흉악범들에게 미소를 보여야 하고, 차분한 화법으로 설득도 해야 한다. 그는 “범인과 2~5시간가량 면담하다 보면 ‘이 사람이 나중에 출소해 보복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겁도 난다”며 “그런 상황에서도 범죄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다”고 말했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장(경찰 프로파일러 1기)은 “프로파일러는 마치 범인처럼 현장을 분석하고, 피의자들과 고도의 심리전을 벌여야 하는 감정노동자”라며 “그러다 보니 프로파일러끼리 정신과 상담을 하듯 서로를 상담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작지 않은 성과를 냈지만 국내에서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뿌리내리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범인 검거가 우선 목표인 경찰 조직에서 프로파일러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범인은 이 사람”이라고 지목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이를 위해선 많은 연구와 DB 축적이 필요한데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검거 이후 피의자에 대한 프로파일러의 면담이 더 충실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경찰 조직에선 검거 자체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해 프로파일러들에게 엉뚱한 업무가 주어지는 경우도 잦다. 

초기 프로파일러 특별채용에 참여했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지방청마다 배치된 프로파일러 업무를 경찰 조직에서 잘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어떤 프로파일러는 업무가 없어 스트레스를 받고, 일부는 관련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를 받아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K씨가 이루고 싶었던 꿈은

K씨는 눈을 감기 직전까지 프로파일러로 살았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한다. 투병 중에도 꿈이 있었다고 했다. 바로 국내에 제대로 된 프로파일러를 키울 수 있는 ‘범죄심리아카데미’를 만드는 것이었다. 2006년 서울지방경찰청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던 K씨는 2011년부터 경찰상담 사례관리, 성범죄 이론 등 학문적인 연구에 집중하며 자신의 꿈을 조금씩 키웠다. 프로파일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앞으로 자신이 연구한 분야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배 학과장은 “K씨는 올초 대학에서 그동안 쌓은 경험을 전하고 싶다며 강의를 준비하기도 했다”며 “범죄심리학을 공부하려면 유학이 필요한데 그는 이런 체계적 교육과정을 국내에 정착시키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프로파일러 중에는 수사현장 분석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연구 분야에 주력하는 스타일도 있다”며 “지방청에 한 명씩 배치될 경우 전문 분야를 갖기 어려우므로 프로파일러를 모아 상호 피드백을 받는 시스템을 마련하면 전문성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표 전 교수는 “업무 특성에 따라 연수나 휴식이 보장되지 않고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상담도 부족하다”며 “인사상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등의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 프로파일러

범죄사건의 정황이나 단서를 분석해 용의자의 성격과 행동 유형, 성별 나이 직업 등을 추론하고 이에 맞는 수사 방향을 설정하는 전문가. 검거된 범인의 자백을 이끌어내는 역할도 한다.



김태호/오형주/마지혜 기자 highk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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