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한 올에 달라지는 판결 … 우린 진실을 분석한다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조사과 부검실. 법의관이 부검 후 신체 조직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추가 분석을 위해 채취된 조직 샘플은 유전자공학과나 마약독성화학과 등으로 보내진다. [사진 김경록 기자]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 없도록 부검·약물분석·DNA 검사
대부분 석사 이상…전공 다양하지만 법의관은 의사만 가능
하루에 수십 건 사고…개인 시간 따로 없이 한밤중 출동도



과학수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갈수록 대범해지고 지능화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과학수사를 통해 자살로 위장한 사건이 결국 타살로 밝혀지기도 하고 유전자 감식을 통해 가해자로 지목된 피의자가 누명을 벗기도 한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진실을 찾아내는 과학수사요원에 대해 알아봤다. 

미국 드라마 CSI에는 다양한 과학수사요원이 등장한다. 실험실에서 유전자 분석을 하는 요원도 있고, 부검을 담당하는 요원도 있다. 과학수사란 사건 현장에서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사망 경위와 범인 등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전 과정을 일컫는다. 현장에서 지문 감식을 하거나 증거품을 수집하기도 한다. 이런 일을 담당하는 이들을 통틀어 과학수사요원이라고 부른다. 

국내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경찰청 과학수사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에서 이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기관별로 불리는 명칭은 조금씩 다르다. 국과수와 국방부는 과학수사연구사·연구관, 경찰청과 대검찰청은 과학수사관으로 부른다. 이들 모두 범죄 기록을 찾아 범인을 밝히는 과학자·수사관·의사·병리학자·심리학자·공학자들이다.




의학·생물학·전자공학 넘나드는 과학수사

과학수사에는 부검, 약물 분석, DNA 검사, 사고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기법이 동원된다.

 지난 1일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조사과의 장정식 의무사무관(법의관)을 만난 건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시신의 부검을 끝낸 직후였다. 그가 부검을 맡는 건 교통사고, 의료사고 등 각종 사건·사고로 사망했거나 유족이 부검 요청을 해오는 경우다. 장 법의관은 “법의조사과에서는 사망 원인을 눈으로 확인하는 검안과 시신 부검을 통해 타살인지 자살인지, 또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 등을 밝힌다”고 말했다.

 검안이나 부검에서 독약·마약 중독에 의한 사망으로 밝혀진 경우 시신의 신체 조직을 마약독성화학과로 보낸다. 혈중알코올농도, 미세증거물, 독성, 체내 마약 성분 등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은 부검 시료 및 현장에서 발견된 관련 물품들을 감정해 음주나 독극물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 올 3월에는 보험금을 노린 40대 여성이 시어머니와 남편, 친딸에게 제초제를 먹여 살해한 사건을 밝혀냈다. 화재 사건의 경우 시신이나 사건 현장에 남은 물질을 통해 자연 발화인지 방화인지를 알아낸다.

 유전자분석실에서는 DNA 분석을 한다. 2006년 서래마을 영아살해 유기 사건의 경우 DNA 분석으로 친자 관계, 살해 방법 등을 밝혀 범인을 찾았다. 화재나 교통사고의 원인을 찾는데도 과학수사가 필요하다. 자동차 사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려낸다. 국과수 이공과의 이기태 과장은 “교통사고의 경우 차량의 파손 형태와 손상 흔적, 사고 현장의 차량 흔적과 위치 등을 기반으로 상황을 재연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밝힌다”고 전했다.

 직접 현장에 가야 할 때도 잦다. 지난 4월 강화도 캠핑장 화재 사고의 경우 현장 감식을 통해 화재 원인을 찾았다. 보험 회사가 교통사고 원인 분석을 의뢰할 경우에도 현장에 간다. 가능한 빨리 현장에 도착해야 정확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부서진 차량을 직접 뜯어낸다. 사고의 원인을 알려면 아주 작은 실마리를 놓쳐선 안 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CCTV·사진·비디오·휴대전화·PC메모리카드를 복원·판독하고, 최면이나 심리분석 기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1.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설립됐다. 2. 국과수는 81년 발생한 유괴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를 도입했다. 국내 최초로 거짓말 탐지기를 도 입한 건 60년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당시 육군 과학 수사본부)였다. 3. 93년 국과수는 국내 최초로 모발 에서 약물을 검출했다. 사진은 메스맘페타민 검출기. 4.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국과수는 국내 최초로 사망자 유전자(DNA) 분석을 시도했다.

까다로운 채용, 학부만 졸업해서는 어려워

국과수는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과학수사요원을 뽑는다. 면접 땐 지원하는 과에 대한 전문적인 질문을 한다. 국과수는 석사 학위 이상이어야 입사할 수 있고 일정한 경력이 있어야 지원할 수 있다. 법의관의 경우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증을 소지한 2년 이상 경력자여야 한다. 병리학 전문의 자격증이 있으면 우대한다. 약학 분야의 경우 약학대를 졸업하고 약사면허증을 딴 사람만 뽑는다. 화학·물리학·공학·생물학·보건학·심리학을 전공한 요원도 있다. 이들은 특수직 공무원으로 공무원 급수가 아닌 연구직과 의무직으로 나뉜다. 운영지원 파트 직원의 경우 건축·전기·경영·경제·언론·행정학 등을 전공한 후 일반 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경찰청 과학수사대는 경찰공무원시험 합격자가 대상이다. 과학수사대가 되려면 연 1회 선발심사를 거쳐 수사경과에 들어가야 한다. 수사경과 지원 요건은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로 과학수사학·법과학·법의학(법정의학·법의간호학·의학 포함)·범죄수사학·범죄학·형사학 등을 전공해야 한다. 실기시험·체력검사·적성검사·서류전형·면접시험 등 5차에 걸친 시험을 거친다. 실기시험은 인터뷰 형식이며 과학수사의 개념 및 기법 등에 대해 질문한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관계자는 “경찰 시험에 합격한 후 과학수사요원을 지망하는 경우와 대학원에서 관련 전공을 이수하거나 과학수사 특채시험에 응시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며 “검시나 범죄심리 분석 등을 담당하는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다면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가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국방부에도 과학수사연구소가 있다. 국방부의 업무는 군대 안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제한된다. 전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소장인 전충현 박사는 “경찰이나 국과수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면 국방부 과학수사는 군에서 발생한 사건의 원인을 밝힌다”고 말했다.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는 유전자과·법의학과·범죄심리과·이화학과·문서지문과·총기화재과·영사과 등 7개 과로 나뉘며, 모두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여야 지원할 수 있다.

 대검찰청은 올해 2월 과학수사부를 신설했다. 과학수사1과·과학수사2과·디지털수사과·사이버수사과로 나뉘어 금융·경제·기업·부패·마약·강력범죄와 사이버범죄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게 목표다. 식품·유해화학물질·환경 등 법생화학 감정 업무도 담당한다.

 정부는 과학수사요원을 늘리는 추세다. 인터넷게임을 모방한 잔혹 범죄나 디지털 범행, 보이스 피싱 등 다양한 범죄가 등장하고 있다. 범죄는 늘어나고 초동 수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초동 수사가 안 되면 수사 자체가 미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발 빠른 증거품 수집과 분석이 중요하다.

 최근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과학수사요원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의 안정성과 과학수사에 대한 직업적인 자부심도 매력으로 꼽힌다.

 
사건 끝까지 파고드는 인내심과 끈기 중요 

과학수사요원들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억울한 피해자를 밝혀냈을 때다. 작은 증거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성취감도 있다. 머리카락 한 올로 죽음의 이유를 분석하고 당시 상황 등을 종합해 사건을 해결한다. 책에서 배운 지식을 현장에 접목하는 것도 보람이다.

 일은 쉽지 않다.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대형 사건의 경우엔 전 요원이 하나가 돼서 매달려야 한다. 한 달 이상 전 연구원이 총동원돼 현장을 오가며 증거를 찾고 분석을 한다. 국과수 마약독성화학과의 백승경 과장은 “아무리 몸이 고되도 지체할 수 없는 게 우리 일이다”며 “증거품이 훼손되거나 사체가 부패하기 전에 단서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1분 1초도 쉬지 않고 일에 매달린다”고 말했다. 마약 사범의 경우 경찰 임의동행 시간은 48시간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결과의 유무에 상관없이 무조건 풀어줘야 한다. 때문에 마약독성화학과에서는 주말에도 당번을 지정해 24시간 대기하다가 경찰의 연락을 받으면 바로 출동한다. 백 과장은 “개인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범죄와 싸우고 있다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과학수사요원이 투입되는 일은 뉴스에 나오는 대형 사건·사고뿐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수많은 시신이 과학수사 요원의 손을 거친다. 오후 6시 퇴근 시간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한밤중이라도 의뢰가 들어오면 분초를 다투며 증거품을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야근이 잦다. 특히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땐 유족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사건의 원인을 찾아 밤낮없이 일한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직접 접하는 경우는 부검 담당자 외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요원은 생체조직 검사나 사건 현장에 남은 증거품을 살피는 일을 한다. 시신이나 증거품을 대할 땐 죽음을 떠올리기보다 범인이 남긴 과학적 증거를 찾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국과수 유전자분석과의 조남수 과장은 “과학수사의 임무는 범인을 찾는 것이다. 그게 최우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각 분야의 전문성이 중요하지만 다른 분야 요원들과 협력도 잘해야 한다. 백 과장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밝혀가는 업무이기 때문에 전문 지식만큼 협업 능력이 중요하다”며 “다른 분야를 존중하고 유대감을 키울 수 있는 인성이 과학수사요원 기본 자질”이라고 말했다.

 인내심과 끈기는 중요한 덕목이다. 이공과 이기태 과장은 “사건을 끝까지 해결하려는 끈기와 성실함, 인내심은 과학수사요원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라며 “반드시 사건을 해결하고 말겠다는 집념과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 법의관은 의대 재학 시절 법의학교실 강의를 들으며 법의관의 꿈을 키웠다. 그는 ““살아있는 사람을 살리는 게 의사의 임무라면 법의관들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임무”라며 “사람에 대한 관심, 하나의 사건을 끝까지 파헤치고자 하는 열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병리전문의 면허를 취득, 일반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지난해 국과수로 이직했다. 국과수 과학수사연구사는 빈자리가 나야 채용하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다. 유전공학부 같은 부서는 1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조 과장은 연구실에서 연구하거나 의료 계통에서 일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억울한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는 게 더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범인과 마주 서야 할 때도 있다. 그는 “힘든 일도 많지만 범죄자를 밝혀내 희생자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풀어진다면 그보다 더한 보람은 없다”고 말했다.


김소엽 기자 kim.soyub@joongang.co.kr








지문 감식 기법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때로는 '눈으로 지문을 읽어내는 기술'도 필요하다. 서울 관악경찰서 박재선 경위는 10초면 지문번호를 읽어내고 신분 도용 사실을 밝혀낸다. 경찰 최고의 '매의 눈'을 가지고 있다. [최승식 기자]



“만인부동(萬人不同), 종생불변(終生不變).”

 모든 사람이 다 다르고, 평생 바뀌지 않는다. 사람의 지문에 대해 얘기할 때 꼭 따라붙는 말이다. 지문은 범죄 수사에서 가장 확실한 무기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관계자는 “엄지손가락 지문을 제대로 찍을 경우 선이 이어지거나 끊어지는 일명 ‘특징점’이 120개가 넘는데, 특징점을 12개로만 설정해도 같은 지문이 나올 확률은 1조분의 1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지문 감식은 여전히 가장 빠르고 편리한 신원 확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문 모양이 불변인 것과 달리 지문 감식 기술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고도의 지문 감식 기법은 다시 주목을 받았다. 발견 당시 유 전 회장의 시신은 지문 채취가 어려울 만큼 부패했다. 비교적 오래 형태가 유지되는 손가락과 발가락까지도 심한 탈수로 건조된 상태였다. 이처럼 미라화한 시신에서 경찰이 지문을 채취할 수 있었던 건 ‘고온습열처리법’이라는 기법을 통해서였다. 손가락을 100℃ 물에 담가 순간적으로 지문을 팽창시킨 뒤 가까스로 지문 하나를 채취했다는 것이다. 고온습열처리법은 2005년에 처음 시도된 지문 채취 기술이다. 10년 전에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면 유 전 회장의 시신은 신원 미상의 변사체로 남았을 수도 있다.

 지문 분석 기술의 진화로 장기 미제 사건들이 해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05년 9월 2일 오전 5시30분쯤 부산 동대신동의 한 원룸 3층에 괴한이 침입했다. 괴한은 베란다의 열린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 집주인 A씨(25·여)를 흉기로 위협했다. 양손을 묶고 성폭행까지 시도했지만 A씨가 저항하자 현금만 빼앗아 그대로 달아났다. 당시 베란다 난간에서 괴한의 ‘쪽지문’(조각 나거나 부분만 남은 지문)이 발견됐지만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긴 시간 미제로 남아 있던 이 사건은 지난해 4월 경찰청의 지문 재검색을 통해 9년 만에 해결됐다. 2010년과 2012년 두 번에 걸쳐 지문 데이터베이스를 새로 입력하고 검색 프로그램의 성능을 높인 결과 희미한 지문을 남긴 괴한이 김모(33)씨란 걸 확인해 낸 것이다. 경찰은 즉시 연고지를 추적해 김씨를 검거했고 반박할 수 없는 증거 앞에 김씨는 범행을 시인했다.





 경찰청은 2010년 이후 매년 살인·성폭력·강도·절도 등 공소시효가 남은 주요 미제 사건에 대해 지문 재검색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5년간 총 3032개의 사건 관련 지문을 재검색해 1157명의 신원을 새로 확인했다. 덕분에 영구미제로 남을 뻔한 374건을 해결했다. 경찰관들이 “‘지문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속설이 범죄 수사에선 사실”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국내 지문 감식 기술은 여러 나라로 수출된다. 2013년 6월 과테말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한 것도 한국의 지문 감식 기술이었다. 당시 과학수사기법을 교육하기 위해 과테말라에 가 있던 충북경찰청 과학수사계 신강일 경위 등은 현지 과학수사대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깨진 유리조각에 지문이 남았는데 제대로 채취되지 않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과테말라 수사관은 하얀 분말을 이용한 일반적인 지문 채취뿐 아니라 기체화시킨 본드를 활용해 지문을 채취하는 ‘기체법’까지 시도했지만 제대로 지문이 드러나지 않아 난감해했다. 이에 신 경위는 기체법 적용 후 염색 시약(Basic Yellow)을 활용해 지문이 눈에 보이게 했다. 그 결과 과테말라 경찰은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신 경위는 “당시 과테말라 수사 당국이 염색 시약을 활용한 채취 방법을 잘 몰라 기법을 전수해줬다”고 말했다.

 지문 감식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눈으로 지문을 읽는 기술’이 큰 힘을 발휘할 때가 많다. 경찰은 지문인식기가 없어도 육안으로 지문을 구분할 수 있도록 모든 지문에 지문 번호를 부여한다. 크게 활모양의 ‘궁상문(弓狀紋)’, 말굽 모양의 ‘제상문(蹄狀紋)’, 소용돌이 모양의 ‘와상문(渦狀紋)’으로 유형화하고 융선의 숫자와 선들이 만나는 지점인 ‘삼각도’의 위치를 통해 각각의 번호를 부여한다. 

궁상문은 1번, 제상문은 삼각도 위치와 융선 수에 따라 2~6번, 와상문은 융선 수에 따라 7~9번, 손상된 지문은 0번이다. 손가락이 10개인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10자리의 지문 번호를 가진다. 경찰은 교육과정에서 지문 번호를 읽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종이에 찍힌 지문 모양으로 교육을 받기 때문에 실제 손가락을 보고 지문 번호를 읽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과 경험이 필요하다.




 17년 동안 2만여 명의 지문 번호를 읽어낸 서울 관악경찰서 신림지구대 박재선 경위는 경찰 내에서 ‘눈으로 지문 읽기의 달인’으로 꼽힌다. 박 경위는 독학으로 지문 읽기를 연마했다. 수배자나 용의자가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외우고 다니며 쉽게 수사망을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다. 절차는 간단하다. 신원조회기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지문 번호가 뜬다. 이를 실제 손가락 지문과 대조해 신원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확인한다.

 박 경위가 처음 지문 읽기를 수사 현장에서 적용한 건 1998년이다. 당시 박 경위는 서울 신림동 길가에서 팔이 부러진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남성을 발견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신분증이 없었다. 대신 이름이 적힌 작은 맥가이버 칼이 나왔다. 최모(당시 24세)씨였다. 박 경위는 최씨의 손가락을 보고 지문 모양에 따른 10자리의 지문 번호를 읽어냈다. 이어 이름과 대강의 연령대를 신원조회기에 입력한 뒤 지문 번호를 대조해 신원을 알아냈다. 최씨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 박 경위는 오랜 연습으로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열 손가락 지문 번호를 읽어내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지난 1월에는 자신의 이름밖에 모르는 치매 노인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고 집에 데려다 줬다. 지난 4월엔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술집에 출입한 미성년자들을 적발했다.

 박 경위는 “치매 환자나 만취한 사람은 빠르게 신원을 확인해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지문을 채취해 신원을 조회하는 데는 2~3시간이 넘게 걸린다”며 “수배자의 경우 지문 채취를 거부하면 현행범이 아닌 이상 강제할 수 없어 눈으로 지문을 읽는 방법이 유용하게 쓰인다”고 말했다.

 그는 일선 경찰을 위한 동영상 교육 자료도 제작했다. 이를 본 동료 경찰들은 “교육을 받고도 응용이 어려워 지문 읽기를 시도하지 못했는데 자료엔 너무 쉽게 설명이 돼 있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며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윤정민·백민경 기자 yunjm@joongang.co.kr









병원 응급 중환자실에서 뇌사 상태에 빠진 우위안신(가명)을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왼쪽 사진). 보호자 대기실에서 딸과의 면회를 기다리는 아버지. 대기실에서 162일간 생활하고 있다. [채승기 기자]



너는 눈을 감고 있다. 오래도록 고요하게…. 오늘(29일)로 162일째. 아마도 깊은 잠에 빠진 거겠지. 아빠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사랑하는 내 딸 우위안신(吳元馨(가명)·25)! 아빠 목소리 들리니? 여기 서울대병원 응급 중환자실은 참담한 침묵의 공간이구나. 의료기기가 내는 윙윙 소리까지 없다면 진공상태 같은 이곳에 네가 왜 누워 있어야 하는지 아빠는 여전히 납득할 수가 없다.

 올해로 스물다섯 살인 우리 외동딸. 사춘기때부터 한국 드라마를 챙겨보면서 서울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지. 그렇게 동경하던 한국 유학 길에 오른 게 지난해 3월이었어. 한국의 명문 사립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단다. 아빠 친구들에게 “중국 땅에 우리 애보다 똑똑한 딸 있으면 나와보라”며 자랑도 했었지. 그런데 그 귀한 내 딸이 뇌사 상태라니….



 사고 소식을 들은 건 지난 1월 19일이었다. 한국으로 함께 유학을 떠났던 네 친구 A가 중국 난징으로 ‘위챗(※중국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왔어.

 “우위안신이 큰 사고를 당했어요. 어서 한국으로 오셔야겠어요.”

 그 순간 아빠는 믿을 수가 없었어. 사고 전날 엄마랑 네가 마지막으로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니. 너는 매일 밤 10시면 마트에 야간조로 출근하는 엄마와 화상통화나 위챗을 했지. 그날도 주고받은 위챗 메시지가 아직도 엄마 전화에 그대로 남아 있어.

 ‘이 옷은 어떠니? 엄마한테 어울리니?’ ‘엄마는 뚱뚱해서 못 입어^^.’ ‘알았다. 잘 자.’ ‘응. 알았어.’

 네 엄마와 나는 서둘러 한국에 들어왔단다. 응급 중환자실 문을 열자 조용히 누워 있는 네가 보였지. 누군가 옆에서 이상한 말을 하더구나.

 “낙태 수술을 받다가 뇌사 상태에….”

 중국어로 통역돼 들리는 말이 너무나 끔찍해 엄마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지. 딸아, 그때부터 네 엄마와 나는 진실을 알기 위한 싸움에 나섰단다. 병원 응급 중환자실 지하 대기실에 의자 몇 개를 붙여 침대를 만들고 숙식을 해결해 가며 사고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지. 어떻게 임신중절 수술을 하다가 뇌사에 빠지게 된 건지…. 한국처럼 의료기술이 발달한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사고가 나고 두 달쯤 지났을 때였나. 3월 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의료수사팀이 신설됐고, 이 수사팀에서 네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지. 형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어. 임신 12주였다는 네가 불법 낙태 수술 중에 끔찍한 의료사고를 당했다고 경찰이 설명해 줬지.

 경찰의 설명은 이런 거였어. 서울 OO의원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던 중에 포도당 수액을 너무 많이 맞았고, 네가 구토 등 이상 증세를 보이니까 의사가 수술을 미루면서 계속 수액만 맞게 했다고 … 그 때문에 혈액 속 나트륨 농도가 떨어져 뇌가 부어 올랐다고…. 그런데도 그 의사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10시간 동안이나 네 몸에 10팩이 넘는 4000~5000ml의 수액을 계속 집어넣었다는 거야. 적정량의 4배가 넘는 수액을 투여하면서 의사는 혈액·소변검사 같은 기본적인 검사도 하지 않았다고 경찰이 설명해 줬어.

 의료수사팀 형사들은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자기들을 믿으라고 했어. 널 이렇게 만든 의사는 수액을 1000ml만 투여했다고 계속 주장했어. 강제 낙태가 아니라 이미 네 배 속에서 사산한 태아를 제거하는 수술을 한 것이라고도 했지. 진료차트에는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고…. 그런데 형사들이 수술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네 소변량이 너무나 많았던 사실을 확인하고 그걸 증거로 제시했어. 그 의사는 지금 구속됐고 간호조무사는 불구속 입건된 상태야.

 현재 의사와 병원 사람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대. 그들은 병원으로 찾아간 우리에게도 “당신 딸이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했어. 수술동의서 내용도 ‘임신중절’에서 ‘계류유산(※사산 태아가 자궁에 남아 있는 상태) 수술’로 바꿨고, 병원 폐쇄회로TV(CCTV)도 지우려고 한 것으로 밝혀졌단다. 

 네 휴대전화에 전화번호를 ‘애인’으로 저장해 뒀던 남자친구 얘기도 들려줄게. 네가 낙태 수술을 받을 때 그 친구도 함께 갔다가 사고가 났으니 아마 두렵고 무서웠겠지. 네가 뇌사에 빠지고 이틀 뒤 한강에 뛰어들었다고 들었어. 다행히 구조됐다는구나. 이 아빠는 그 친구가 우릴 찾아와 용서를 빈다면 용서해 줄 수 있단다. 딸아, 오늘 주어진 면회 시간이 다 됐어.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7시, 30분씩밖에 안 되는 면회 시간이 매번 안타깝기만 하구나. 너를 이렇게 만든 한국을 원망하느냐고? 아니야. 병원에서 지내면서 좋은 분도 많이 만났어. 의자를 붙이고 생활하는 우리에게 김치를 가져다준 청소부 아주머니도 있었고…. 비록 몇 명의 한국인이 상처를 줬지만 더 많은 한국인은 우릴 보듬어주고 있단다.

 그러니 우리 딸, 너도 어서 힘을 내서 “아빠” 하고 깨어나길 바란다. 딸아, 이제 오늘의 기도를 올리자꾸나. 늘 그렇듯 아빠가 네 조그맣고 예쁜 귀에 속삭여줄게.

 “하이쯔, 부야오팡치, 이딩야오잔치라이(孩子, 不要放棄 一定要站起來 아가야. 포기하지 마. 일어나야 해.)”


글, 사진=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이 기사는 중국인 우위안신의 부모와 경찰 관계자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아버지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달 2일부터 의료사고를 전담해 수사하는 의료사고전담수사팀을 발족했다. 2일 강윤석 경감(맨 오른쪽)과 팀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형사 1~2명으론 의료수사 한계"

수사관 7명·검시조사관 1명 구성

간호석사 투입해 전문성 강화

팀원 3명은 '간호사 남편' 공통점

30%대 그친 기소율 높일지 주목


[ 윤희은 기자 ] 

지난 2월 초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성형외과의사협회에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낯선 조직의 경찰관들이 나타났다. 강윤석 경감 등 세 명의 경찰관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사고전담수사팀(의료수사팀)이라고 밝혔다. 1월27일 청담동의 한 성형외과병원에서 중국인 여성이 수면마취 상태에서 성형수술을 받던 중 호흡이 정지돼 뇌사 판정을 받은 직후였다.

의료사고는 관할 경찰서 경찰관 한두 명이 조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협회 관계자 입장에서는 당황할 법한 일이었다. 이날 경찰은 수술을 집도한 병원 원장이 성형외과 전문의가 맞는지, 사무장병원이 아닌지 여부를 확인했다. 의료수사팀은 이때부터 임시 운영을 시작해 지난달 2일 정식 발족했다.

가수 신해철 씨 사망사건이 계기

지난해 10월 발생한 가수 신해철 씨의 사망사건이 의료수사팀 출범의 계기가 됐다. 신씨의 사망이 장협착 수술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인지에 국민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기존 경찰 조직으로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송파경찰서는 수술을 집도한 병원 원장과 병원의 의료과실 여부 수사에 최선을 다했지만 전문성 부족에 대한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사건을 담당했던 관계자도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입해 자료를 확보하고 분석했지만 경찰이 할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 같은 한계를 절감하고 의료수사팀을 구성했다. 경찰 내에 의료사고 수사에 대한 전문성을 축적해 체계적인 수사를 하기 위해서다. 남대문경찰서 강력계장 출신인 강 경감을 팀장으로 8명이 모였다.


의료수사팀은 기존 경찰 조직으로 해결하기 힘들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의료사고를 전담한다. 팀이 소속된 서울청 광역수사2계의 강상문 계장은 “의료사고 특성상 수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만큼 일선 경찰서에서 형사 한두 명만으로는 수사가 어렵다”며 “의료사고 중 사망과 뇌사를 포함한 중상해, 사회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에는 가능하면 모두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팀원들, 의료사고 수사 자원

8명의 팀원은 이전에 의료사고를 수사했던 이들로 구성됐다. 특히 간호 석사 출신으로 2006년 경찰에 입문한 이지연 검시조사관은 팀원 중 유일한 여성이다. 이전에도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료차트를 분석하거나 조언을 해주던 이 조사관은 의료수사팀에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현장에 나서게 됐다. 이 조사관은 “현장에 가지 않고 차트 분석만 하다 보니 압수수색이나 수사 진행 과정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어 늘 안타까웠다”며 “전문적인 수사팀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생겨서 기쁘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관들은 일선 경찰서 형사과 소속으로 의료사고를 도맡아 수사한 경력이 있다. 열악한 수사환경과 의사들 사이의 동업자 의식으로 번번이 수사가 벽에 부딪히는 것을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동형 경사는 “의료사고 수사 과정에서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 의사협회 등에 감정 의뢰를 요청할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애매하고 난해한 답변을 받는 경우가 많아 수사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정훈 경위도 “해당 의료사고에 지식과 경험이 있는 다른 병원 의사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할 경우 상당수 의사가 사고가 난 병원 의사를 보호하겠다는 의도로 조사를 꺼리곤 했다”고 했다.

이들은 의료수사팀이 발족한 후 의료수사 과정에서 겪던 어려움이 상당수 해소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 조사관이 옆에서 수시로 조언해주는 데다 보건복지부와 각종 의학회, 의대 교수 등과 연계해 체계적으로 자문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홍순재 경위는 “형사 시절에는 다른 강력 사건과 함께 의료사고를 조사해야 해서 수사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며 “의료수사팀에서는 의료사고 하나만 맡아 꾸준히 수사하다 보니 업무 속도가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재미있는 것은 남성 팀원 7명 중 3명의 아내가 간호사라는 점이다. 강 팀장은 “의도한 것은 아닌데 팀을 갖추고 보니 그랬다”며 “열악한 의료사고 수사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던 아내들의 마음이 이들을 의료수사팀으로 모이게 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의료사고 기소율 31.42%

최근 발족 한 달째를 맞은 의료수사팀은 5건의 의료사고 현장에 출동했으며 이 중 3건을 수사하고 있다. 짧아도 3개월 이상 걸리는 의료사고 수사 기간을 가능한 한 단축하는 것이 목표다. 팀원들끼리의 소통은 물론 외부 전문가 그룹과의 협조가 중요한 이유다.

가장 어려운 점은 “대부분이 일선 형사 출신인 팀원들이 전문성이 필요한 의료사고 수사에서 얼마나 실적을 내겠느냐”는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이다. 강 팀장은 “‘정말 경찰의 의료사고 수사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겠나’ ‘따로 팀을 만들었다고 기소율이 얼마나 높아지나’ 등의 부정적인 시선을 접할 때가 자주 있다”며 “이런 시선을 불식하기 위해 중요한 의료사건에 팀의 역량을 집중하고, ‘제2의 신해철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더 효율적이고 빠른 수사를 통해 팀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지역에서 발생한 의료사고 기소율은 2010년 29.10%, 2011년 29.45%, 2012년 29.45%, 2013년 28.07% 등 꾸준히 30% 이하였다. 지난해 처음으로 31.42%(105건 중 33건)를 기록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성폭력 추방에 영향을 미친 10대 사건 



●변월수 사건 

 1988년 9월 10일 주부 변월수씨가 한밤의 귀가 길에 강간범의 혀를 잘라 자신을 방어한 사건이 일어났다. 변월수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해 남성의 혀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구속, 기소되었고 과잉방어라는 이유로 징역1년을 구형받았다. 여성운동단체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정당방위로서 인정될 수 없는 지나친 행위'라며 변월수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성폭력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나타나는 성 차별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가해자 측의 변호사는 변월수가 사건 당일 먹은 술의 양, 동서와의 불화 등을 계속 거론하면서 그를 부도덕한 여자로 몰아세웠고, 폭행 당시 행위의 순서가 진술 때마다 바뀐다며 검사가 호통을 치는 등 오히려 '피해자가 죄인으로 취급되는' 성폭력 재판과정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은 1심판결에서 여성에 대한 사법부의 편견과 여성의 인권보다 남성의 혀를 더 중시하는 사법부의 태도를 여실히 드러냈다.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아 여성의 자위권을 법적으로 인정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사건은 성폭력의 위기에 처한 여성이 취할 수 있는 '정당'한 자기 방어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김유진 감독의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강정순 사건 


-대구 대현동 강정순 씨 사건 

 1988년 12월 5일 대구시 대현동 파출소 내에서 경찰관 2명이 한 여인을 윤간하였다. 가해자인 박승근 순경과 김정부 경장은 이 여인을 모욕, 협박하고 윤간하여 성병까지 옮겼다. 경찰에서는 피해자인 강성순 씨가 다방 여종업원이었다는 점을 이용하였다. 경찰은 피해자인 강성순 씨를 무고죄로 맞고소를 하였다. 


 공정한 수사를 하여야 할 검찰은 가해자인 경찰을 도와 증거은폐, 조작까지 하였으며 피해자인 강정순씨를 간통죄와 무고죄로 구속하였다. 여성단체들은 이 사건에 대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성명서와 경찰, 검찰에 대한 규탄대회, 치안본부 항의방문, 가두홍보 등 열심히 활동하였다. 

 

 결국 강정순씨는 무죄로 풀려났다. 그러나 가해자인 두 경찰은 끝내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1992년 2월 19일 여연은 "대구 강정순씨 윤간사건" 무혐의 처리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통해 사법부의 인식의 한계와 공권력의 횡포를 규탄했다. 



●부천 성고문 사건 


-사건개요 

* 1986년 6월 : 5. 3 인천사태 진술을 받기 위해 성고문 

: 여성단체연합 성고문대책위원회 발족 


* 1986년 7월 : 권인숙 문귀동 경장 강제추행혐의로 인천지검에 고소 

: 변호인단이 문귀동·부천경찰서장 등 경찰 6명 고발 

: 문귀동이 권인숙 명예훼손 및 무고혐의로 맞고소 


* 1987년 : 한국여성연합 '올해의 여성상' 수상자로 권인숙 선정 


* 1989년 : 대법원에서 문귀동 징역 5년, 위자료 지불 판결 


* 1993년 : 가해자 문귀동 5년 만기 출소 



-사건의 의의 

 이 사건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히기 꺼려하던 사회 분위기에서 피해 여성의 용기있는 결단으로 성폭력의 실상이 폭로되고, 공론화 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이 사건은 공권력에 의한 여성 인권 유린을 처음으로 폭로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군사독재정권의 반인륜성과 야만성을 전 국민에게 폭로되었으며 '87 민주화 투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또한 여성운동사적인 측면에서도 이 사건은 여성문제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일반 대중 여성들의 폭넓은 지지와 공감을 얻었다는 것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김부남 사건 


-사건개요 

* 1991년 1월 30일 : 사건발생 / 사건현장에서 구속 

8월 26일 : 1심 선고 - 징역2년 6월 집행유예3년, 치료감호 

12월 20일 : 2심 선고 - 항소기각 


* 1992년 4월 20일 : 3심 선고 - 상고기각 


* 1993년 5월 1일 : 김부남 출소 


 1991년 1월, 어린이성폭력피해자 김부남 씨가 21년 전 자신을 강간한 이웃집 아저씨를 찾아가 살해한 사건이 전라북도 남원에서 일어났다. 


 김부남 씨는 (사건당시 30세) 9살 때 이웃집 아저씨에 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였지만 어릴 적 강간당한 후유증으로 부부관계를 거부하는 등의 행동을 하게 되었다. 


 김부남 씨는 자신의 이러한 행동의 근원이 어릴 적의 성폭행사건임을 알게 되었고, 그때야 고소를 하려 했지만 당시 성폭력범죄는 친고죄로 고소기간은 6개월이었으므로 이미 공소시효도 훨씬 넘긴 이후였다. 


 김부남 씨는 법적으로는 이미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음을 알게 되자, 스스로 가해자를 벌하기로 마음먹고 식칼을 들고 가서 가해자를 살해한 후 현장에서 검거되었다. 


-공대위 활동 

 이 사건이 지방지에 보도된 후, 이해 4월 10일, 전북지역의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김부남 씨의 무죄석방을 위한 활동의 필요성이 논의되면서 <김부남 사건 대책위원회 (이하 대책 위)>를 구성하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대책위는 김부남 씨 면회와 가족면담, 공동변호사 구성, 공판 참관, 판사 면담, 기자회견 등을 통한 각 언론사 홍보, 서명 작업, 후원회구성과 기금마련 활 동(양말판매)등을 하였다. 

이와 함께 성폭력 피해에 관한 사회적 인식전환의 필요성과 성폭력 관련 특별법제정을 촉구하는 활동도 함께 하였다. 


-이 사건의 의의 

 이 사건은 어린이성폭력의 후유증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라는 김부남 씨의 절규는 당시 성폭력의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고, 성폭력은 몇몇 운 나쁜 여성의 문제라는 일반인들의 척박한 인식전환에 크게 기여를 했다. 


 전주지역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김부남 사건 대책위원회>의 활동은 우리나라 성폭력 추방운동에 박차를 가하게 한 중요한 사건이다. 


 특히 김부남 후원회는 이후 성폭력예방치료센터(1994년 개소)의 모체가 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어린이 성폭력피해자 김부남씨 사건은 다음해에 일어난 김보은, 김진관 사건과 함께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김보은, 김진관 사건 


-사건 개요 

1992년 1월 17일 : 사건발생 

1월 19일 : 구속 

4월 4일 : 1심 선고 - 김진관 징역7년, 김보은 징역4년 

9월 14일 : 항소심 선고 - 김진관 징역5년, 김보은 징역3년 집행유예5년 

10월 2일 : 김보은 석방(판사직권 석방) 

12월22일 : 상고심 선고 - 상고기각 

1993년 2월 : (김영삼 대통령취임 시) 김보은 사면복권, 김진관 잔여형의 1/2감형 

1995년 2월 17일 : 김진관 출소 

1998년 2월 3일 : 김진관 복권신청(김대중 대통령 취임기념대사면복권시), 기각 

7월 16일 : 김진관 복권신청(건국50주년기념 8.15대사면 복권시), 기각 


 1992년 1월 7일, 13년 동안 의붓딸을 성폭행해온 가해자 김영오를 피해자 김보은의 남자친구인 김진관이 살해한 사건이 충북 충주에서 일어났다.


 김보은의 어머니는 보은이가 7살 때 김영오와 재혼을 했고 김영오는 의붓딸인 보은이가 9살 때부터 상습적인 성폭행을 시작했다. 김보은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주중에나마 아버지와 떨어져 기숙사에 머물게 되었고, 학교 친구인 김진관에게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김진관은 고통스러워하는 보은이를 도우려는 마음에 그날 밤 김영오를 찾아가 "이제 보은이를 놓아주라" 고 간청했지만 당시 충주검찰청에 총무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김영오가 오히려 "다 잡아넣겠다. 죽여 버리겠다"고 당당하게 나오는 데에 격분하여 가해자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공대위 활동내용 

 이 사건은 김진관의 아버지가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상담을 의뢰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곧이어 전국에서 <김보은, 김진관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구명활동을 시작했다. 공대위는 이 사건이 우리 사회의 부채, 법적 제도적 장치의 미비함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그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갖고 이들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항소심을 준비하면서 공대위는 전국 56개로 확대되었고, 22명의 무료공동변호인단도 구성하였다. 공대위는 공판참관과 함께, 성폭력 피해에 관한 사회적 인식전환의 필요성과 성폭력특별법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하였다. 


-이 사건의 의의 

 김보은, 김진관 사건은 그동안 금기시되어왔던 근친성폭력의 엄청난 실상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고, 안식처로 여겨지던 가정 내에서 일어난 성폭행, 그래서 방치될 수밖에 없었고 또 지속될 수밖에 없는 근친성폭행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이 사건은 전 년도에 일어난 김부남 사건과 함께 우리나라 성폭력에 대한 인식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또한 전국규모의 <김보은. 김진관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의 세심하고 조직적인 활동은 성폭력피해자 보호와 성폭력추방운동의 장을 새롭게 마련한 점이 큰 의의가 있다. 그리고 1993년에 제정된 성폭력특별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성폭력특별법 제정 


성폭력 특별법 제정추진특별위원회 활동 개요 

1991. 8. [성폭력특별법 제정 추진 특별위원회] 결성 

1992. 7. 성폭력 특별법 시안 완성 

1992. 8. 이우정 국회의원 여성계안 국회에 상정 

1993. 12.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령] 통과 

1994. 4. 성폭력특별법 시행 

1997. 7. 성폭력특별법 개정안 통과 

1998. 1. 성폭력특별법(개정안) 시행 


-대책위 활동내용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하여 성폭력 관련 상담을 하는 여성단체와 여성의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여성, 사회단체 등 12단체가 1991년 8월에 <성폭력 특별법제정추진특별위원회>를 결서 여 성폭력 특별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여성계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 수차례의 논의를 거쳐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1992년 7월에 성폭력특별법 시안을 완성하여 발표했다. 


 이를 이어 1991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시 성폭력문제해결을 선거공약으로 내놓았던 민자당과 민주당, 국민당에서도 각기 준비한 성폭력특별법 시안을 발표했다. 여성계의 시안은 국회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이우정 국회의원이 국회에 상정되었다. 


 여성계의 시안과 각 당의 시안이 국회에 상정되었다. 여성계의 시안과 각 당의 시안이 국회에 상정된 후 여성계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권이 최대한 보호되고 성폭력의 근원적인 해결을 위한 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활동을 하였다. 


 또한 형식적이 아니라 내용을 갖춘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해서 <성폭력추방과 올바른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동결의대회>,<올바른 성폭력특별법 제정과 성폭력추방을 위한 문화제>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과의 면담, 올바른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시위를 수차례 하였다. 


-결과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93년 12월에 성폭력 특별법이 통과되어 1994년 4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때 통과된 특별법은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만들어진 여성계의 주요 안이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제정된 지 3년만인 1997년 7월 30일에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1998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개정 과정에서도 역시 여성계에서는 개정 방안에 대한 의견을 끊임없이 제시하였고 공청회에 참가하여 여성계의 의견을 수렴하도록 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성폭력특별법은 아직까지도 성폭력피해자의 권리보호에 미흡한 부분이 많으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개정작업을 펼쳐 가야할 것이다.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사건 개요 

1992. 5. 29 우조교가 화학과 기기담당 조교로 임용-성희롱 시작 

1993. 6. 재임용 탈락 

1993. 8. 교내 대자보로 호소 

1993. 9. 신교수가 우조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 

1993. 10. 19.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공동대책위 결성 

1993. 10. 우조교가 신교수, 서울대, 대한민국을 고소 

1994. 4. 18. 1심 선고 : 신교수에게 우조교에게 3천만원 배상토록, 신교수가 항소 

1995. 7. 25. 2심 선고 : 신교수, 서울대, 대한민국에게 무죄판결 

1995. 8. 17. 우조교 상고 

1998. 2. 10. 상고심 선고 : 신교수 관련 원심 파기, 서울대 대한민국 무죄 

1998. 4. 24. 고등법원 재판 시작 

1999. 6. 25. 고등법원 선고 : 신교수 우조교에게 5백만원 배상 판결 

1999. 7. 29. 상고 : 우조교, 신교수 


 1992년 5월 29일부터 서울대 화학과에 기기담당 조교로 취직한 우 조교는 첫 출근 이후 지속적으로 신 교수로부터 업무상 불필요한 고의적 신체접촉을 당했다. 우 조교는 신체접촉을 모면하게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으며, 불쾌감과 거부의 의사표시를 했다. 그러나 신 교수는 이를 무시하고 계속 성희롱을 했고 93년 6월 우 조교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우 조교는 이러한 부당한 조처에 대하 해결을 바라는 진정서를 대학에 보냈으나 서울대학교 당국은 진상조사는 커녕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결국 93년 8월 억울함을 알리는 대자보를 본 총학생회와 대학원 자치협의회, 여성문제 동아리협의회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진상조사 결과 우조교의 피해가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학교당국은 묵묵부답이었고 오히려 신 교수는 93년 9월에 우 조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다. 


-이 사건의 의의 

 직장 내 성희롱은 성적 친밀감 정도로 간주되어 직장 내의 명랑한 분위기를 위해서 여성이 웃으면서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일반화되어 온 우리 사회에 만연된 문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조교의 용기는 성희롱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참을 수 없는 불쾌감과 모욕감을 주는지를 알리는 데 기여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성희롱 민사소송사건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성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 판결은 국내에서 최초로 성희롱을 불법행위로 인정한 것이며, 1999년부터 남녀차별금지법(7월 시행)과 남녀고용평등법(2월 시행)에 의해 본격적으로 성희롱이 처벌될 수 있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음흉한 눈빛, 성적 농담 등의 성희롱에 얼마나 불쾌감을 느끼며,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는지를 인식시키고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남성 중심적인 성문화를 바꾸어 가는데 큰 기여를 한 사건이다. 



●롯데호텔 성희롱 사건 


-사건 개요 

 롯데호텔 노동조합은 여성노동자조합원 382명을 대상으로 직장내 성희롱 피해 실태를 조사한다(2000. 6). 그 결과 전체의 70%가 심각하고 광범위한 성희롱을 경험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여성 노조원들은 직장 생활에서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문제로 바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으로 꼽았다. 


- 직장 상사에 의한 성적 농담과 음담패설(77.2%) 

- 신체에 대한 성적 언급(75.3%) 

- 회식에서의 부루스(72.3%) 

- 모욕적인 성적 발언(60.3%) 

- 강간 및 강간미수나 성추행(21.6%) 


 이에 한국 성폭력 상담소 외 5개 여성단체와 민주노총, 한국노총 합동으로 노동부에 '호텔롯데 사업주의 직장 내 성희롱 예방조치 위반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한다(2000. 7). 그리고 롯데호텔 여성노조원 270여 명은 신격호 사장 및 대표이사 3명, (주)호텔 롯데를 상대로 17억 6,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출한다(2000. 8). 


=> 직장내 성희롱으로 집단 소송을 낸 최초의 사건! 


 노동부는 롯데호텔 성희롱 진정사건 조사결과 32명의 남성 임직원이 68명의 여성노동자들에게 성희롱 행위를 한 사실을 확인하고 30명은 징계조치하고 나머지 2명은 주의 조치하도록 통보한다. 또한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지 않은 롯데호텔에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한다(2000. 10). 그러나 롯데호텔은 노동부의 행정지도에 포함된 임직원 중 21명에 대해서만 재계약 해지·감봉(3명), 근신(10명), 견책(8명) 했을 뿐, 핵심 가해자 10인에 대한 징계는 진행 중인 민사소송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징계를 유보한다고 발표한다. 게다가 이들 임직원 중 4명을 승진시킨다. 이에 노동부는 성희롱 가해자에 대해 부서 전환과 징계조치를 내리도록 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을 어긴 롯데에게 1인당 300만원씩 모두 3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였다(2001. 2. 4). 


=> 성희롱 가해자를 징계조치하지 않은 이유로 부과된 최초의 과태료! 


 그러나 성희롱 가해자의 부서 이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 밑에서 계속 일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 여성 노동자 5명은 성희롱 소송에 합류했다는 이유로 재계약 심사에서 탈락했다. 상급자를 성희롱 가해자로 진정한 직원이 해당 상급자에게 인사고과를 받는 상황이 벌어져 보복성 심사를 방치한 것이다. 


-이 사건의 의의 

 성희롱 피해자들의 집단 소송의 첫발을 뗀 이 사건은 성희롱 피해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사측에 피해보상 및 법적 책임을 묻는 첫 번째 사례로 모든 사업주에게 남녀 차별적 직장문화 개선의 책임이 있음을 각인 시켜주었다. 또한 성희롱을 진정한 피해 노동자가 미미한 가해자 처벌 후 결과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현실을 보여주어, 성희롱을 문제 제기한 피해 여성을 보호하는 법적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져올 수 있었다. 



●강릉 K양 사건 


-사건 개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7년간 지속적으로 마을 남성 7명에게 성폭행을 당한 강릉 김양 사건이 알려지면서 장애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가 조명을 받게 되었다. 이 사건에 분노한 마을 주민들은 김양의 가족들을 설득, 이 사건을 고발하게 되었다.


 우선 주범인 홍명준에 대한 고발장만 접수시키면서 이후 '심신 미약 자에 대한 간음'으로 처리된 이 사건은 결국 공소권 없음으로 기각됐고, 12월 말 K양 가족이 홍명준에게 2백만 원을 받고 합의함으로써 사건이 일단락됐다. 이에 대해 마을 주민들 사이에 성폭행 범들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 따르지 않는다면 자신들도 성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퍼지게 되었다.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2000년 1월 말 28개 단체로 구성된 '정신지체 장애여성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공대위는 2월 가해자 중 5명을 가중처벌이 가능한 성폭력특별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2명을 불구속기소하고 1명을 기소중지, 2명을 무혐의 처리하는 것으로 수사를 일단락 지었다. 그 후 가해자 처벌을 위한 서명운동과 시위 등 강력한 여론으로 주범인 홍명준이 실형 2년을 선고받고 곧바로 구속 수감되었다. 


-장애인 성폭력의 특성 

 강릉 김양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부산의 Y양, 서울의 E양, 김해의 K양 성폭력 사건 등 그동안 묻혀있던 정신지체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들도 관련단체에 접수되면서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신지체 여성 장애인 성폭력은 일반 성폭력과 달리 특수한 문제를 안고 있다. 피해자가 성폭력에 대한 인지능력이 낮기 때문에 오랫동안 피해를 당하다 노출되는 경우가 많고, 피해 뒤 대처능력도 떨어진다. 또 피해사실을 알린다고 해도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감춰진 피해의 양상은 더욱 심각하며 성폭력피해자라는 특성과 장애인이라는 특성이 세심하게 고려되지 않아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피해여성이 방치되는 일이 많다.


 K사건의 경우 강릉경찰서식의 형법 적용보다는 정식으로 장애판정을 받아 성폭력특별법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성폭력 예방교육 필요성 제기 인식전환 

 또 공동대책위원회는 '여성장애우 성폭력실태와 대책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여 여성장애인 성폭력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사회적 공론화 작업에 착수했다.


 여성 장애인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관계자들은 이들을 위한 성교육 성희롱 예방교육의 필요성과 장애인 시설을 갖춘 쉼터와 전문상담기관 마련 등을 제기했다.


 이후 여러 단체에서 장애인 성폭력 예방과 성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여성장애인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노력과 사회적 관심에 따라 2001년에는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이 대구, 부산, 전주, 서울에 '여성장애인 성폭력 상담소'를 열었다. 



●사단장 성추행 사건 


-사건 개요 

 2001년 1월 현역 사단장이 성추행 혐의로 보직해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육군은 부하 여군 장교를 성추행한 혐의로 현역 사단장이던 김 모 소장을 보직해임하고 육군 중앙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였다. 김 소장은 1999년 12월부터 약 6개월간 자신의 집무실 등에서 사단소속 여군 장교를 껴안고 입을 맞추는 등 여러 차례 성추행하였다. 고민 끝에 피해자인 여 중위가 고소장을 냈으나 하루 만에 고소를 취하할 수밖에 없었다. 

 

 성추행사건이 일어나고 이 사실이 알려지는 과정에서, 피해 중위는 성폭력피해자로서의 기본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였다. 가해자 측으로부터의 회유, 협박뿐만 아니라 사생활과 관련된 근거 없는 비난을 접하기까지 하였다. 이렇듯 피해자가 겪은 고통과 그간의 정황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김 소장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군대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보직해임과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은 김 소장은 국방부에 항고하였으나 기각되었고, 결국 지난 3월 전역지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군대내 성폭력이 근절될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국방부 차관보와의 면담을 가졌으며, 국방부는 장병교육 강화, 고충심사위원회 운영, 성폭력 상담/신고 전담창구 개설 등을 골자로 하는 계획을 추진 중임을 밝혔다. 이 사건은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행해져왔던 군대내 성폭력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결과 군대 내에 실제로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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