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범죄나 사고 현장에 출동해 관련 증거를 채취하고 범죄 단서를 찾는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이 정작 자신들의 안전에는 소홀해 각종 안전사고나 질병 발생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3일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에서 지난해 5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전국 16개 지방경찰청 및 일선 경찰서에 근무하는 과학수사요원 971명과 검시관 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업무 중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45.9%에 달했으나 이들 가운데 적절한 부상 치료를 받은 사례는 27.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회성 부상이 아닌 지속적인 업무 수행 과정에서 질병이 발생했다고 답한 응답자도 29.2%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66.7%는 과학수사 업무에 투입된 이후 얻은 질병이라고 답했다.

다수의 과학수사요원들이 업무 수행 과정에서 안전사고 및 질병 발생 위협에 처해 있지만 근무부서에 안전수칙 등 관련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27.4%에 불과했으며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고 답한 요원들 가운데서도 이를 숙지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40%에 그쳤다. 

또 과학수사요원들에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나 각 지방경찰청에서 실시하는 안전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절반이 넘는 54.7%가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각종 감염원에 노출될 수 있는 사건 현장에서도 제대로 된 안전장비를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전체 응답자 중 17.3%만이 사건 현장에서 라텍스 장갑을 사용한다고 밝혔고 장화를 신지 않는다고 밝힌 응답자도 44.1%에 달했다. 보호복을 입지 않는다는 답도 36.5%를 기록했다. 

증거분석실에서도 안전장비 활용은 미흡해 마스크를 쓰고 작업한다는 응답자는 5.8%에 그쳤으며 살균소독기(6.1%)나 고글(9.1%) 등을 활용하는 응답자도 매우 적었다. 

범죄 전문가들은 방독마스크나 환기장치 등 안전장비 없이 범죄 현장에 노출될 경우 호흡기질환 등 각종 질병 발생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설문에 응한 경찰 과학수사요원들은 안전사고나 질병 발생 예방을 위해 가장 시급한 조치로 정밀건강검진(45.9%)과 안전장비 보강(27.8%) 등을 꼽았다. 정진성(경찰행정학) 순천향대 교수는 “경찰청 주도로 안전에 관한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급하고 철저한 안전교육이 이뤄져야 제대로 된 과학수사 역량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








혈흔패턴 수사로 푼 ‘대전 판암동 살인사건’

현장에 남은 핏자국(혈흔)의 유형(패턴)을 분석한 과학수사로 대전 경찰이 7개월 만에 살인범을 붙잡았다는데….혈흔 패턴 수사 결과가 법원에서 유죄 증거로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유력한 용의자 범행 부인에

현장 혈흔 주목해 DNA 분석

핏방울 위치로 범행동선 그려

“피해자 둘이 싸웠을 가능성 0

범인은 옆집 남자입니다”


# 참혹한 아파트, 원점을 맴도는 수사

“여기 판암동 ○○아파트인데요, 사람이 죽었어요.”

지난해 4월4일 새벽 1시21분, 대전 119 상황실에 전화벨이 울렸다. 출동한 경찰과 119 구급대원들이 원룸형 아파트 문을 열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벽과 천장, 문은 온통 피투성이였고 이불 위에 집주인 김아무개(58)씨와 이웃 ㄱ(53)씨가 쓰러져 있었다. 이들은 모두 심하게 맞아 얼굴 등이 으깨진 상태였다. 옆에는 굵은 전선을 자르는 절단기가 놓여 있었다. 김씨는 이미 숨진 뒤였고, ㄱ씨는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0여일 뒤 숨졌다.

신고자는 이아무개(51)씨. 그는 “김씨 등과 화투를 하는데 김씨와 ㄱ씨가 심하게 다퉈 이를 말렸다. 두 사람의 피가 묻어 김씨 집 조리대에서 손을 씻은 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다시 김씨 집에 와보니 두 사람이 피투성이가 돼 쓰러져 있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대전 동부경찰서는 숨진 김씨 등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조사와 행적 등을 탐문했다. 아파트 폐회로텔레비전(CCTV) 화면 녹화영상을 분석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김씨와 ㄱ씨는 4월3일 밤 10시부터 주검이 발견된 4일 새벽 1시21분 사이에 절단기로 각각 80여차례, 10여차례 맞은 것으로 추정했다. 범행 시간대에 김씨 집에 드나든 사람은 신고자 이씨뿐이었다.

수사는 급물살을 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씨는 “내가 집에 다녀온 사이 둘이 다시 싸우다 서로를 해친 것”이라며 강하게 범행을 부인했다. 현장에 있던 3명 가운데 2명은 숨졌고 다른 1명은 이씨뿐이었지만, 경찰은 직접 증거나 범행 동기를 찾지 못했다. 수사는 미궁에 빠져들었다.

# 혈흔을 분석하다

경찰은 다시 범행 현장을 주목했다. 대전지방경찰청은 혈흔패턴 수사 전문요원인 과학수사계 허강진 경사를 투입했다. 허 경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경남경찰청의 혈흔패턴 수사요원 등 3명으로 팀을 꾸린 뒤 현장을 다시 살피고 사진 수천장과 감식자료를 분석했다. 유전자(DNA) 분석으로 김씨와 ㄱ씨의 피를 가렸다.

허 경사팀은 4개월여 동안 어지럽던 현장의 핏방울 수천개가 왜 피해자들의 몸을 떠나 벽과 천장에 점과 선으로 남게 됐는지, 이불과 방바닥에 어떻게 떨어졌는지 분석했다.

김씨의 피는 방 안 왼쪽 벽 위에서 시작돼 점점 방바닥에 가깝게 내려와 뿌려졌고, 오른쪽 유리문에 묻은 피는 흉기에 묻었다가 휘두를 때 떨어져나간 흔적이었다. 김씨가 이불 위에 쓰러진 뒤에도 피의 흔적은 계속 나타났다. 범인이 왼쪽 벽 쪽에 서 있던 김씨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김씨가 주저앉아 웅크리고 있을 때는 물론 이불에 쓰러진 뒤에도 타격을 가했다는 범행 동선이 완성됐다.

ㄱ씨는 방문에서 타격을 당한 뒤 의식을 잃고서 문에 기대앉은 자세에서 피를 흘리다 김씨 옆으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됐다.

혈흔으로 범행 동선을 재구성하는 데에는 과학 원리를 동원했다. 낙하해 둥글게 형성된 핏방울은 만유인력(중력)의 법칙, 맞아서 분출된 핏방울과 흉기에 묻었다 날아간 핏방울은 분출 압력과 포물선 공식, 관성의 법칙 등이 적용됐다. 피들의 증언은 끝났다.

# 진실 공방-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경찰은 범행 시각을 지난해 4월3일 밤 10시로 추정했다. 옆집 사는 ㅅ씨가 드라마를 보는데 ‘악’ 하는 비명을 들었다고 한 진술에 따라, 드라마 방영 시간대와 장면을 확인했다.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에 이씨가 숨진 김씨 집에서 나온 시각은 밤 10시24분이었다.

숨진 김씨의 옷에서는 김씨, ㄱ씨의 옷에서는 ㄱ씨의 혈흔만 나타났다. 피해자들의 발바닥은 깨끗했다. 평소 김씨는 다리가 불편했고, ㄱ씨는 오른손에 장애가 있었다. 경찰은 이 두 사람이 서로를 공격했다면 옷에 상대의 피가 튀었을 것이고 방바닥에 떨어진 핏방울을 밟아 발바닥에 피 얼룩이 남았을 것이므로, 둘이 서로를 해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결론냈다.

반면 신고한 이씨의 옷에서는 김씨와 ㄱ씨의 혈흔이 모두 나왔고, 피해자의 피부조직 조각도 확인됐다. 이씨의 모자에도 피해자들의 피가 스며든 흔적과 위에서 떨어진 핏방울 등이 발견됐다. 피가 묻은 양말의 안쪽에서 채취한 각질은 이씨 것이었다. 그가 집에 갔을 때 신은 슬리퍼 안의 혈흔도 피해자들의 것이었다.

경찰은 이씨가 김씨와 ㄱ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김씨를 살해하고 ㄱ씨에게 상해를 입혔으며, 범행 과정에서 벗겨져 방바닥에 떨어진 모자에 피해자들의 피가 튀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씨가 범행 뒤 귀가해 옷을 빨고, 피 묻은 모자를 버린 뒤 다시 김씨 집으로 돌아와 신고한 것으로 결론냈다.

# 과학수사 결과 점차 위력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해 피고인 이○○을 징역 17년형에 처합니다.”

지난 1일 오후 대전지법 형사12부(재판장 안병욱)가 선고했다. 형사재판에서 처음으로 혈흔 형태 분석 결과가 증거로 인정된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를 무참히 살해하고도 반성하지 않고 있고 유가족들과 합의하려 노력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범행이 우발적이고 동기도 드러나지 않은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국민참여 재판을 신청했으나 배심원 9명도 모두 유죄 평결했다. 이씨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서 재판부를 바라봤다. 유가족들은 “저런 ××를 살려둬?” “이게 뭐야?”라며 격앙했다.

허강진 경사는 “과학수사는 억울한 피해자들을 구제하고 범인을 붙잡는 중요한 수사기법이다. 법원이 혈흔 패턴 분석 결과를 결정적인 증거로 인용해 보람을 느낀다”며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이씨는 항소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물리법칙 활용 범행순간 재현

혈흔패턴 수사는


혈흔패턴수사는 물리학 법칙을 활용해 범행 지점과 피해자, 가해자의 움직임 등을 분석해 범행 당시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혈흔 수사와 관련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성경>에 있다. 창세기 ‘카인과 아벨’의 내용이다. 여호와는 카인이 아벨을 죽인 사실을 부정하자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으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는데…’라고 말한다. 범행 현장에 남아 있는 혈흔은 움직임이 없다. 피가 누구 것인가 밝히는 수준을 뛰어넘어 범행을 재현해내는 타임캡슐인 셈이다.

혈흔 형태 분석은 검증된 과학 원리와 범죄수사가 결합된 최신 수사기법이다. 이 분석 결과가 법정 증거가 되려면 높은 전문성과 객관성을 갖춰야 한다.

방향·형태 다 다른 혈흔 추적

가해자와 피해자 움직임 그려


대전 판암동 살인사건에서 등장한 대표적인 혈흔은 낙하 혈흔, 이탈 혈흔, 충격 혈흔, 형태 전이 혈흔, 고인 혈흔 등이다. 낙하 혈흔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둥글게 퍼지고 주변에 태양 흑점 같은 모습이 남는다. 이탈 혈흔은 범행 도구에 묻은 피가 도구의 움직임에 따라 벽 등에 뿌려진 것이다. 궤적이 여러 개 남아 있다면 그만큼 범행 도구를 휘둘렀다는 의미다. 혈흔 분석은 범행의 패턴을 짐작하는 증거가 된다.

이 수사 기법은 2002년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표준화했다. 국내에서는 2008년 과학수사요원을 대상으로 교육이 시작됐다. 현재 혈흔패턴수사 전문요원은 각 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에 1명씩 배치돼 있다. 2010년 한국혈흔형태분석학회가 꾸려졌고 2011년에는 현장 실무자 중심의 연구모임(WGBPA)이 출범했다. 


송인걸 기자 






‘완전범죄와의 전쟁’은 진화하고 있다. 인간의 지혜에만 의지해 사건의 진실을 밝혔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첨단과학이란 도구를 이용해 범죄의 흔적을 찾는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수사관들이 범죄 현장에서 발견한 발자국을 정밀조사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한국판 CSI, 과학수사의 모든 것

《 “Crime Does Not Pay(범죄는 득이 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청와대에서 법무부와 안전행정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영어 문구를 인용하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안전한 나라 행복한 국민’을 강조하며 치안 강화를 강조했다.

경찰은 최근 주민등록시스템에 저장된 지문 4억여 개의 해상도와 선명도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기초로 살인 강도 강간 등 중요 미제 사건에 대해 지문을 다시 검색했고 미제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가고 있다. 2000년 10월 발생했던 서울 구로구 커피숍 여주인 살인사건의 범인 고모 씨(41)를 공소시효 2년이 남은 지난해 5월 검거한 것도 과학수사로 이룬 개가였다.

경찰은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라는 명제를 믿는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완전범죄를 꿈꾸며 범행의 흔적을 지우려 애쓰지만 대한민국 경찰 과학수사팀은 첨단 장비를 사용해 아주 작은 단서까지 찾아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찰은 범죄 피해자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지능범들과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Korea Crime Scene Investigation), ‘한국판 CSI’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  

▼ 온 힘 다해 움켜쥔 손바닥, 그 안에 사건 풀 열쇠가… ▼

속옷 벗겨졌지만 정액 검출안돼… 주인없는 담배꽁초에 혼선 가중

시신 손에서 나온 티셔츠 섬유… 우연히 묻은걸로 보기엔 많은 양

‘반쪽 증거’ 수사에 반전이…


이문철(가명·33) 씨가 눈을 감았다. 

“사건 발생 당일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경찰의 의심이 이 씨를 향했다. 이 씨는 표정 없는 답을 내놨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어요.” 

징검다리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해 9월 22일 오후 11시경. 그날 이 씨의 아내가 죽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주상복합아파트 ○○○호.

잔뜩 부은 아내의 얼굴에는 처참함만 남았다. 팬티는 발목에 가까스로 걸려 있었다. 브래지어는 벗겨진 채였다. 세 딸에게 물리던 젖가슴에 시퍼런 멍이 몇 다발씩 피어 있었다. 아내의 부드러웠던 살결은 부러진 갈비뼈로 구겨졌다. 사이사이 죽음의 그늘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부패가 진행된 아내의 몸속에는 가스가 찼고 높아진 압력 탓에 입가와 코밑으로 피가 새어 나왔다.

아내의 눈동자는 고집스럽게 벽 쪽을 향했다. 할 말이 있다는 듯. 그녀의 마지막 시선이 닿은 곳엔 한 살, 세 살, 다섯 살 된 딸들의 돌 사진과 결혼기념 사진이 걸려 있었다. 결혼 6년차. 남편을 만나고 세 딸을 낳기까지 보낸 많은 시간이 사진에 담겨 있었지만 아내의 죽음은 한 줄로 요약됐다.

‘목졸림에 의한 질식사. 심한 폭행으로 인한 다발성 늑골 골절 및 간 췌장 등 장기 파열, 강도 및 성폭행 시도, 심한 폭행.’ 

평온했던 밤, 아내가 죽었다

아내가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건 23일 오후 1시 반. “이 사람아, 서둘러 집으로 가보게.” 일산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아내가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는 장모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집으로 달려왔다. 전날 밤 첫째 딸 유영이(가명)를 데리고 본가에 가 있던 참이었다. 30분 거리의 집으로 급히 차를 몰며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다. 둘째 아영이(가명·3)와 셋째 수영이(가명·1)가 오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편이 도착했다. 한낮이었지만 주검이 놓인 방 안은 서늘했다. 한기(寒氣)의 의미를 생각할 틈도 없이 두 딸이 달려와 품에 안겼다. 아이의 얼굴에 남은 눈물자국이 아내의 부재(不在)를 예감케 했다. 현관에서부터 거실이 한눈에 들어오기까지는 불과 다섯 걸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불안은 현실로 바뀌었다.


거실에는 벌거벗겨진 아내가 쓰러져 있었다. “여보….” 딱딱하게 굳은 아내는 대답하지 못했다. 품에 안은 두 딸의 체온이 집 안 유일한 온기(溫氣)라는 생각이 들자 남편 목덜미에 소름이 스쳤다.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관에 ‘출입금지 POLICE LINE 수사 중’이란 노란 테이프를 붙이고 나서야 이 씨는 아내의 죽음을 실감했고, 오열했다.

아내의 다리 쪽에서 담배꽁초가 나왔다. 양 젖가슴에는 침이 묻어 있었다. 음모와 머리카락이 시신의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아내의 몸에서 흘러내린 오줌이 이불에 흥건했다. 장롱 서랍은 모두 열려 있었고 컴퓨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주방에서 또 다른 담배꽁초가 발견됐다. 낯선 남자의 주민등록증도 나왔다. 남편 이 씨는 “아내에게 빚을…, 빚을 진 남자가 잠시 맡겨둔 신분증”이라고 했다. 남편은 온전히 한 문장을 잇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아내의 몸에 온도계가 꽂아졌다. 직장온도 33.4도, 12시간 전 사망했다는 뜻이었다. 남편이 첫째 유영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 즈음이다.

‘반쪽짜리 흔적’만 곳곳에 남았다

사건 현장에 남은 흔적은 범인의 목적을 드러내 보이기 마련이다. 단순절도, 강도, 강간, 원한에 의한 살인 등 범인이 남긴 흔적은 범행의 이유를 설명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반쪽짜리 흔적이 너무 많다.” 현장을 살핀 고양경찰서 과학수사팀장이 말했다. 집 안 곳곳에 남은 수많은 흔적은 목적이 빠진 ‘반쪽짜리’였다. 속옷이 벗겨진 아내의 몸에 정액은 없었다. 방 안을 뒤진 흔적은 있지만 귀중품은 그대로였다. 화장대와 이불 밑처럼 꼭 뒤져야 할 곳에 손을 댄 흔적은 없었다. 이상했다. 

주민등록증의 주인은 범행 추정 시간 당시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담배꽁초의 주인도 아니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제3자의 지문이나 족적(足跡)도 없었다. 수거된 음모는 모두 남편과 아내의 것이었다. 목적이 보이지 않는 반쪽짜리 흔적은 수사를 안갯속으로 내몰았다.

아내의 젖가슴에서 발견된 타액의 주인은 둘째 아영이와 막내 수영이었다. 유일하지만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목격자. “너희가 배가 고파서 엄마 브래지어를 벗겨 젖도 빨고 그런 거니? 너희가 속옷을 벗겼어?” 목격자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2개의 담배꽁초에서 검출된 유전자형과 일치하는 남성 없음.’ 

담배꽁초에 걸었던 기대가 사라졌다. 당일 집에 택배를 배달했던 배달원, 아내에게 빚을 지고 주민등록증을 맡긴 남성,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웃, 그리고 남편까지 담배꽁초 유전자(DNA) 분석 결과와 일치하는 용의자가 없었다. 주인 없는 담배꽁초는 단서가 되지 못했다. 아내의 통화 기록도, 용의자들의 스마트폰 인터넷 검색기록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보험에도 들지 않았다. 경찰 수사는 원점에서 맴돌았다.

경찰은 범행시간 전후로 엘리베이터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그곳에도 용의자의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전날 밤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선 남편과 딸의 모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화면 속 남편 이 씨는 열림 버튼을 누르고 현관 쪽을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었다. 첫째 유영이가 아빠와 눈을 맞췄다. ‘엄마한테 인사해야지’라는 의미를 읽은 유영이도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9월 22일 오후 11시 58분. 폐쇄회로 화면의 디지털 숫자 위로 겹쳐진 유영이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현관 앞 모습이 화면에 잡히지 않았지만 유영이의 웃음은 남편과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의 모습을 짐작하게 했다.

보이지 않았던 결정적 증거

‘변사자의 손바닥에서 채취한 테이프에서 남편이 당일 입고 있던 반팔 티셔츠 구성 섬유와 같은 보라색 계열 섬유물 발견. 동일한 두께 꼬임 및 성분 유사한 섬유가 식별됨.’

사건 발생 8일 뒤인 10월 1일. 아내의 손과 목에서 채취한 미세증거물 분석 결과가 고양경찰서에 도착했다. 사망 직전 아내가 마지막으로 만진 물건이 남편의 반팔 티셔츠라는 뜻이다. 부부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손에 남은 섬유의 양이 너무 많았다. 무엇인가 온 힘을 다해 쥐었을 때라야 남는 양이었다.

“그날 우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애들과 같이 삼겹살을 구워 먹고 아이들을 안방에 먼저 재웠어요. 함께 TV를 보다가 아내가 잔다고 해서 큰 애만 깨워서 나왔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아내와 다투지는 않았습니까?”

“작은 말다툼이 있긴 했지만 곧바로 화해했어요. 당일 아내의 휴대전화로 보낸 ‘앞으로 더 잘 지내자’는 문자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어떤 프로를 보셨죠?” 

“개그콘서트를 봤습니다.” 

범인 추적과 사건 해결의 핵심인 경찰의 과학수사 기법은 최첨단을 달린다. [1] 사건 현장에 남은 핏방울만으로 범행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2] 지문을 찾아 용의자를 추적한다. [3] 현장에 남은 발자국도 용의자가 신고 있는 신발의 종류, 신체조건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제공


“당일 보신 개그콘서트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

남편은 대답하지 못했다. 경찰은 남편의 알리바이를 증명했던 CCTV에 아내의 모습이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남편이 손을 흔들었던 곳, 아이가 아빠를 따라 손을 흔들었던 방향. 그곳에는 남편과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의 미소가 아닌, 눈조차 감지 못한 아내의 시신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경찰이 짐작한 ‘아내의 배웅’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었다.

뒤따라 발견된 또 하나의 CCTV 화면. 아내의 시신이 발견된 당일 경찰은 현장 훼손을 막기 위해 오열하는 남편을 두 아이와 함께 집 밖으로 내보냈다. 아내의 옆에서 눈물을 참지 못했던 남편은 엘리베이터에 타자 금세 태연해졌다. 언제 눈물을 흘렸느냐는 듯 무심히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고쳤다. 머리를 만지고 이를 내보이며 치아 상태를 확인했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모습이 아니었다.

다음 날 오후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사 조사실. 남편이 거짓말탐지기 앞에 앉았다. “당신이 부인을 죽였습니까?” 남편의 호흡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태연한 척 애써 가다듬은 호흡이 떨렸다. “아내를 때려서 죽게 한 게 당신입니까?” 그가 경찰의 시선을 외면했다. 거짓말탐지기의 기록계 파장이 이 씨의 맥박과 호흡을 따라 요동쳤다. “담배꽁초는 아내를 죽이기로 계획하고 미리 준비한 것이죠?” 경찰의 마지막 질문에 남편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항상 저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길 3년째. 남편은 완전범죄를 계획했다. 아내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길가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내를 향해 손을 흔드는 척한 것도, 첫째 유영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 것도 모두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셋째를 엄마의 시신과 함께 두고 잠에서 깬 아이들이 현장을 훼손시켜 주길 바랐다. 자식들이 직접 죽은 엄마의 시신을 더럽히길 기대했다.

경찰은 “남편은 경찰 조사를 받을 때마다 꼭 범인을 잡아 달라고 울며 부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범행을 실토한 날, 남편은 울지 않았다.  

▼ 혈흔은 알고 있다… 범인 체형-자세, 도망친 속도까지 ▼

현장 주변 말라붙은 침자국에서 DNA 채취해 절도범 검거

땀방울 DNA분석해 용의자 잡고… 대변 속 장점막 세포가 단서되기도

흐릿한 CCTV 얼굴식별 잘안돼… 특유 걸음걸이 분석 기법 개발


모든 사건이 경찰의 바람처럼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도 수많은 사건이 ‘장기 미제’로 남아 있다. 그중 1986년부터 5년간 10명의 부녀자가 성폭행당한 후 살해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지금도 대한민국 경찰에 깊은 흉터로 남아 있다. 

역대 최대 경찰력이 동원된 사건이었다. 당시 경찰은 사건 수사에만 연인원 200만 명이 넘는 인력을 투입했다. 조사한 용의자와 참고인이 2만1280명에 이르고 지문 대조만 4만116명을 했다. 하지만 경찰이 알아낸 단서는 ‘20대 중반의 B형 남성. 165∼170cm 호리호리한 몸매’가 전부였다.

30년 가까이 지났어도 사라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고서야 경찰은 비로소 ‘과학수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덥수룩한 머리에 낡은 점퍼를 걸치고 동물적 직감이 최고의 수사방법이란 착각에 빠진 경찰의 모습은 사라졌다. 범죄 현장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밤낮으로 피해자 주변을 배회하며 단서가 ‘걸리길’ 바라는 형사는 이제 없다.

2014년 한국의 과학수사는 어떤 모습일까. 동아일보는 경찰청 과학수사센터(KCSI)와 함께 전국 특별시·광역시도 16개 지방경찰청에서 최근 2년 동안 강력사건 해결에 과학수사 기법이 활용된 사례를 종합했다. 사건 현장이나 피해자 신체에 남은 작은 증거를 찾아 분석하는 미세증거 분석, 핏방울의 모양을 관찰해 범행을 재구성하는 혈흔형태 분석, 손바닥에 난 손금 무늬 모양으로 범인을 식별하는 장문(掌紋) 분석, 폐쇄회로(CC)TV에 촬영된 용의자의 걸음걸이 특징을 비교·분석하는 걸음걸이 분석…. 경찰의 과학수사 기법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해졌고 범인 추적과 사건 해결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 방울의 피에 담긴 의미

혈흔은 범행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큰 단서다. 강력사건 현장에서 발견되는 혈흔은 유전자(DNA) 분석에만 쓰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피의 다양한 성질은 과학수사의 중요한 단서로 활용된다.

혈액은 점도가 1인 물에 비해 4배 정도 점착성이 높아 끈끈하게 달라붙는다. 혈관 밖으로 나온 피는 젤리처럼 굳어진다. 굳어지기 전 혈액은 가해진 힘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바뀌며 분산된다. 혈흔은 재현 가능한 흔적이며, 경찰은 혈흔의 분포상태 모양 특징 크기 등의 정보를 통해 사건 당시 상황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다.

이를테면 위에서 아래로 곧장 떨어지는 자유낙하 혈흔의 지름을 통해 피해자나 가해자의 자세를 유추할 수 있다. 또 범행도구의 움직임에 따라 벽 등에 뿌려진 이탈혈흔의 궤적은 범행 도구를 휘두른 횟수와 방향을 증명한다. 움직이면서 흘린 피는 움직인 방향으로 폭이 줄어들며 긴 모서리를 남기는데 이에 따라 범인이나 피해자의 이동 방향과 속도를 알아낼 수 있다. 

“제가 죽인 것이 아닙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거짓을 말하지도 않는다. 몸에 남은 다양한 흔적들로 오직 진실만을 얘기한다. 서울 양천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연구소 법의조사과 법의관들이 시신을 부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11년 11월 대전지법 국민참여 재판정. 대전 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도박을 하던 일행 2명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이모 씨(53)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이 씨의 주장은 간단했다. “함께 도박을 하던 두 사람이 심하게 싸워 이를 겨우 말렸다. 옷에 두 사람의 피가 묻어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두 사람이 서로 싸우다 지쳐 죽은 것이다.”

숨진 두 사람은 얼굴이 뭉개질 정도로 심한 폭행을 당했다. 굵은 전선을 자를 때 쓰는 절단기가 범행 도구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절단기로만 80여 차례 폭행당한 흔적이 있다”는 소견을 냈다.

사건 현장에 출입한 사람은 이 씨와 죽은 2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함께 있었다는 정황만으로 이 씨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경찰은 혈흔형태 분석 전문요원을 수사에 투입했다. 벽과 천장, 방바닥 등 사방으로 튄 핏방울의 흔적을 추적해 각각의 주인을 찾아나갔다.

두 사람이 수십 차례 흉기에 맞았던 장소는 서로 달랐다. 거실과 화장실 앞, 두 사람은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벽에는 160cm 정도의 남성이 흉기를 휘둘렀을 때 보이는 혈흔이 남았다. 이 씨의 키와 같았다. 피해자들의 발바닥은 깨끗했다. 서로를 공격했다면 옷과 발바닥에도 핏자국이 남아 있어야 했다. 또 이들의 몸에 남은 혈흔은 모두 본인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였다. 이 씨는 징역 17년형을 선고 받았다.

침 똥 땀, 모두가 과학수사의 단서

피가 아니라도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흔적은 과학수사의 단서가 된다. 머리카락 침 땀, 심지어 대소변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경찰이 사건 현장 주변에서 수백 개의 담배꽁초를 수거해 DNA 분석을 하는 것도, 바닥에 말라붙은 침 자국을 찾는 것도 용의자의 흔적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4월 경기 여주의 한 귀금속 상가. 2명의 남성이 출입문 강화 유리를 절단기와 망치로 깬 뒤 15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범행에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남짓.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도착했을 때 범인들은 이미 달아난 뒤였다. 단서는 현장에서 50여 m 떨어진 곳의 CCTV 한 개뿐이었다. 경찰은 용의자들이 범행 직전 담배를 피우다 바닥에 침을 뱉는 장면에 주목했다. 현장을 다시 찾은 경찰은 침 자국에서 DNA를 채취해 범인을 검거했다.

6월에는 똥이 단서가 됐다. 범인은 가출청소년 이모 군(17). 그는 길거리를 배회하다 갑자기 배가 아파오자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 용변을 봤다. 골목 구석에 쪼그려 앉아 급한 볼일을 보던 이 군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반쯤 열린 식당 주방의 창문이었다. 그는 주변에 떨어진 전단지로 대충 뒤를 해결하고는 창문으로 들어가 현금을 훔쳐 달아났다. 하지만 경찰은 대변과 함께 배출된 장점막 세포에서 이 군의 DNA를 찾아냈다.

땀으로 범인을 잡은 것은 8월이다. 경찰은 강원 춘천시 효자동 일대에서 잇따라 발생한 절도 사건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불과 8일 동안 신고 건수만 21차례. 피해주택마다 과학수사팀이 출동했지만 범인은 지문 하나 남기지 않았다. CCTV에도 범인의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피해 가정의 화장품 박스 위에 땀방울이 떨어진 흔적이 발견됐고, DNA 분석 결과 절도 전과가 있던 김모 씨(29)의 땀으로 확인됐다. 90kg이 넘는 거구의 절도범. 그는 농촌지역이나 재개발지역의 빈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경찰의 감시망을 피했지만 결국 무더위에 흘린 땀 한 방울로 덜미를 잡혔다.

아무리 얼굴을 가려도 숨길 수 없는 것

전국에 설치된 CCTV는 300만 대에 이른다. 최근 차량용 블랙박스 설치가 늘면서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범행을 감시할 수 있는 ‘눈’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 50만 화소 이하의 저해상도 카메라로 사건 관계자의 얼굴을 특정하기에는 ‘시력’이 좋지 않다. 또 지능화된 범인들이 CCTV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마스크와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는 사례가 늘면서 CCTV의 미비점을 보완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찰은 ‘걸음걸이 분석 기법’을 개발하고 있다. 사람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는 걸음걸이를 통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증거 분석 기법으로 영국 미국 등에서는 이미 수사 단계에서부터 걸음걸이 분석을 실시하고 있다.

국내에 이 기법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해 5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자택 화염병 투척 사건에서 경찰이 걸음걸이 분석으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을 때다. 애초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인 임모 씨(36)를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다. 경찰은 영국 런던 메디컬센터(LMC) 족병학과의 권위자인 헤이든 켈리 박사를 찾아가 CCTV 분석을 의뢰했다. 그는 범행 현장 장면과 임 씨의 모습이 찍힌 CCTV를 보고 ‘두 인물은 동일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범죄사실이 소명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최용석 계장은 “걸음걸이 분석 기법은 단순히 팔자걸음 여부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체형, 다리 길이 등과 같은 신체적 단서와 걷는 버릇이나 속도 같은 습관적 단서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며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국내 전문가가 양성되면 범인을 찾아내는 또 하나의 강력한 과학수사 기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부검의 1원칙 “죽은자는 거짓말 못해, 그것만 믿어라” ▼

죽어버리겠다는 마음 먹었어도… 자해 순간 망설여 ‘주저흔’ 남아

몸의 멍은 맞을때 생존상태 증거… “부검은 망자와의 마지막 대화

원통함 남지않게 살피고 또 살펴”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경찰의 과학수사기법이다. 현장에서 확보된 주변 증거들을 토대로 용의자를 좁혀가고 자백을 받아낸다.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에는 진술의 허점을 찾아낸다. 범인이 “나는 사건 현장에 없었다”고 거짓말을 한다면 ‘그가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게 과학수사의 역할이다. 죽은 사람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으니 용의자의 거짓을 하나씩 벗겨 나가는 식이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늘 살아있는 사람이다. 반면 죽은 사람은 말은 하지 못해도 진실하다. 죽은 자는 자신의 사인(死因)을 입이 아닌 몸으로 증명한다. 질식해 죽은 사람은 눈꺼풀 사이 좁쌀 같은 반점이 남고, 화재 현장에서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사망한 사람은 손톱이 선홍색을 띤다.



‘한국 과학수사의 본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약물·독물 및 마약 분석, 화재 감정, 교통사고를 담당하는 법과학부와 변사체의 사인 및 유전자 분석, 범죄심리 분석 등을 맡는 법의학부로 나뉜다. 특히 국과수 부검실은 죽은 자의 몸을 살펴 ‘죽음의 이유와 종류’를 밝혀내는 곳으로 국과수의 핵심 공간이다. 지난해 12월 국과수를 찾은 날, 시신 세 구가 부검실로 들어왔다.

첫 번째 시신

부검대 위에 눕혀진 첫 번째 시신은 결혼식을 올린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김모 씨(35)였다. 왼쪽 가슴 부위에는 3cm 길이로 칼에 찔린 흔적이 있었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검붉어진 속살이 비쳤다.

숨진 남편을 발견한 것은 아내였다. 생활비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던 중 아내는 주방에서 칼을 꺼내 남편을 위협했다. 하지만 아내는 위협만 했을 뿐 찌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남편이 달려들어 칼을 빼앗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 나가 보니 문 앞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자살한 시체에는 보통 ‘주저흔’이 남기 마련이다. ‘죽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막상 흉기로 찌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망설여 치명상을 가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자해로 생긴 상처를 주저흔이라고 한다. 타살인 경우에는 피해자 상처의 길이가 칼의 폭보다 길고 상처 부위 주변이 손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구라도 칼을 피하려 움직이고, 찔린 뒤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때문이다. 대부분 찌른 방향이 일정하지 않고 비스듬한 것도 특징이다.

부검 결과 남편의 상처는 변형되지 않았다. 남편의 몸에서는 주저흔을 비롯한 다른 외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타살인 경우 흔히 발견되는 방어흔도 없었다. 칼로 공격을 당하는 순간 피해자는 칼날에 베이거나 찔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칼을 잡게 되는데 이렇게 생긴 손상이 방어흔이다. 

칼이 몸에 들어온 방향도 평행했다. 상처의 깊이는 가슴 근육까지 뚫을 정도로 깊었다. 손에 쥔 칼은 어깨와 팔꿈치, 그리고 손목 관절을 축으로 움직이는데 상처 부위는 이 범위 내에 자연스럽게 위치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 방배경찰서는 부검 결과를 토대로 이 사건을 자살사건으로 결론지었다.

두 번째 시신

두 번째 시신은 부패 정도가 심했다. 발견 당시 입과 콧구멍에 유충이 득실거릴 정도로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사건을 수사한 담당 형사는 부검의에게 “자살인지 타살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시신이 심하게 부패한 탓이 아니었다. 발견 당시 시신의 모습이 문제였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경기 고양시 인근의 산 중턱. 머리는 나무에 묶인 밧줄에, 두 다리는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려 언덕을 내려가는 승용차에 묶여 팽팽히 당겨지고 있었다. 시신은 초등학생 키 정도의 높이로 공중에 떠 있었다. 조금만 늦게 발견됐다면 부패된 시신이 밧줄의 힘에 의해 두 동강 날 상태였다.

법의관 1명, 법의조사관 2명, 법의학사진전문가 1명 등 4명으로 구성된 부검팀이 한 사람을 부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이다. 이 시신의 부검은 2시간을 훌쩍 넘겼다. 벽과 바닥의 환풍기를 아무리 돌려대도 부검실에 찬 악취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신 발견 당시 ‘1995년에 했어야 할 일이었는데 쓰레기같이 살았다. 난지도에 버려주세요’라는 유서가 함께 나왔다. 1995년은 그의 아내가 죽은 해였다. 유서가 발견됐지만 부검팀은 외상부터 철저히 살폈다. 스스로 목숨을 이토록 잔인하게 끊는 경우는 드물었다. 혹시 모를 타살의 흔적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사망한 뒤에 까진 피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넓고 뚜렷해진다. 상처 부위가 빨리 건조돼 색이 갈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눈에 더 잘 띈다. 밧줄이 감겨 있던 목과 발목에 남은 짙은 상처 외에 다른 상처는 없었다. 부검팀은 목 아래부터 성기 위까지 절개한 뒤 갈비뼈를 들어내 장기를 살폈다. 외부의 힘으로 장기가 파열되면 배 안에 피가 많이 고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의 양쪽 눈꺼풀에서 수많은 점출혈이 발견됐다. 눈 주변의 피부와 입안에서도 무수히 많은 점출혈이 나타났다. 목 졸려 죽은 시신에 흔히 나타나는 흔적이다. 밧줄의 힘에 의해 목의 설골과 갑상연골도 부러져 있었다. 

목에 감긴 밧줄 외에 사인이 될 만한 소견을 찾을 수 없었다. ‘타살의 흔적 없음.’ 국과수는 1차 소견을 내놓은 뒤 장기의 성분검사 등 시신 생화학검사와 조직검사, 수사기록, 부검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종 감정서를 작성한다. 육안의 흔적을 넘어 화학적 흔적을 찾기 위해서다. 최종 감정서 발급까지 걸리는 시간은 3∼6주. 두 번째 시신에 대해 경찰은 자살로 잠정 결론을 내렸고 국과수의 최종 감정서를 기다리고 있다. 

세 번째 시신

넘어지거나 맞았을 때 생기는 멍도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미 사망한 시신에는 아무리 힘을 가해도 멍이 생기지 않는다. 흉기로 시신을 훼손해도 피가 잘 나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검대 위에 올려진 세 번째 시신 박모 씨(56). 그는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멀쩡했다.

박 씨가 죽은 채 발견된 곳은 경기 안양시의 한 신축건물 지하 1층 주차장. 박 씨는 전날 만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왔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박 씨의 아내는 “집 앞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을 봤는데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다. 다음 날 오전 8시경 박 씨는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겉보기에는 멀쩡했던 박 씨의 두개골을 열자 출혈이 발견됐다. 머리뼈는 금이 가 있었고 뇌 안쪽으로 출혈이 발견됐다. 평소 혈압이 높았지만 혈관이 터져 생긴 출혈이 아니었다. 외부 충격에 의해 생긴 흔적이었다.

부검의 첫 번째 원칙은 ‘절대 소설을 쓰지 않는다’이다. 시신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합리적인 추론만 할 뿐이다.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욕심을 내는 순간 무리하게 소설을 쓰게 되고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박 씨의 시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머리뼈에 금이 가 있는 형태와 출혈로 미뤄 봤을 때 ‘외부의 충격’은 확인됐지만 부딪힌 것인지, 누군가가 흉기로 때린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 넓은 면의 흉기로 때려 금이 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홀로 넘어져 다친 것일 수도 있다. ‘외상성 두부손상.’ 부검팀은 자의인지 타의인지를 구분하지 않은 부검 소견을 내놓았다. 나머지 사실은 경찰의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부검은 ‘시신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강하다. 유족들은 차가운 스테인리스 침대에 시신이 눕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병을 고쳐서 낫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죽은 자의 사인을 밝히려 칼을 대기 때문에 두 번 죽인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국과수 이수경 법의관은 “부검은 시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망자(亡者)와 마지막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면 그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작은 흔적이라도 여러 차례 살피는 것은 혹시라도 억울함과 원통함이 남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며 부검은 그런 의미에서 ‘무원(無원)’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dong@donga.com




조각난 범죄의 퍼즐을 완성하다! 

서울경찰청 프로파일러를 소개합니다 


[이하 이미지=서울지방경찰청]

 

 

 한때 필자를 열광의 도가니로 빠뜨렸던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 Criminal Minds> 다들 한번쯤은 보셨죠? 그 중에서도 저는 시즌 5를 제일 좋아합니다!!

 

애런 하치너 팀장이 제가 상상했던 프로파일러의 모습에 딱 들어맞았거든요∼ 



 [이미지=구글 퍼블릭 이미지] 


 

흔적도 증거도 없는 의문의 사건 현장마다 짠∼하고 나타나는 해결사들이죠.

 

이처럼 범죄현장과 수사 진행상황을 파악하여 범행동기를 찾고 범죄를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우리는 이들을 '프로파일러' 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서울경찰청 프로파일러 3인방을 소개해 볼까해요. 

 

그들을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두근두근 떨리네요. 함께 만나러 가볼까요? 



 

서울경찰청 3층에는 전문적 지식을 겸비한 경찰관들과 최첨단 장비가 구축된 '과학수사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이곳은 견학하는 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이기도 하죠. 과학수사계는 감식팀, 현장팀, 행동과학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프로파일러 3인방 최대호 경사(특채 1기), 이주현 경사(특채 3기), 이상경 경장(특채 3기)은 행동과학팀 소속이에요. 

 

'행동과학'이라... 직업 경찰관인 저에게도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현재 경찰에는 총 35명의 프로파일러(각 지방청마다 2∼3명)가 활동 중인데요. 



 

이들 3인방은 2004년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특별 채용된 심리학에 능통한 전문가들입니다. 

 

 

Q. 프로파일러가 된 계기가 있다면? 





특채 1기 프로파일러 최대호 경사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수능 공부를 할 때, 구석에서 심리학 서적을 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에 몇 권을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의 행동이나 심리에 흥미가 생겨 자연스레 '심리학을 전공해야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답니다. 





[최대호 경사] 중앙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인간의 반사회적 행동 및 공격성 등 범죄와 관련된 심리에 흥미를 느꼈어요. 2004년 유영철 사건을 보면서 전공 지식을 활용해 어떻게 사회 안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던 때에 특채 공고를 보고 프로파일러가 되기로 결심했죠^^ 




특채 3기 이주현 경사는 경북대학교에서 심리학(석사)을 전공했습니다.

 

IT 계열 회사에서 2년간 직장생활을 해온 터라 초반에는 경찰조직에 적응하는데 힘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이주현 경사] 외국에서는 범죄수사에 프로파일링 기법이 적용된 게 오래전부터라 이런 직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막연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국내에는 알려진 부분이 없어 답답했었죠. 그러던 중 특채를 뽑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거에요. 사실 굉장히 특이한 직업이잖아요, 처음엔 그런 희소성에 매력을 느껴 들어오게 됐죠.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프랑스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의 격언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이상경 경장. 

 

역시 지성미가 철철 넘치네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이 경장은 어려서부터 퍼즐을 맞추는 걸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상경 경장] 흔히들 프로파일러를 '퍼즐을 맞추는 사람'이라고도 부르거든요∼ 범인의 연령, 성격, 직업, 교육수준, 신체적·육체적 특징 등의 흔적을 찾아 범죄의 퍼즐을 맞춰 간다고 해서 말이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거 맞죠?^^ 

 

Q. 프로파일러의 업무는 무엇일까요? 


프로파일러가 추구하는 목표는 범죄자의 심리와 행동적인 특성 등을 파악해 수사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좀 어렵고 생소하죠?

 

연쇄살인이나 성폭행 같은 강력범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범죄자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해서 데이터화 하는 작업이 필수라고 하는데요. 때문에 이들이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지난밤 서울시내에서 발생했던 형사 사건을 검토하는 것입니다. 밤사이에 일어난 사건사고를 하나씩 살펴가며, 프로파일러의 지원이 필요한 사건을 추려내는 것이죠. 

 

이들은 연쇄성이 의심되거나 특이하다고 판단되는 살인ㆍ강도ㆍ실종ㆍ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 나가 기초 조사를 벌이기도 합니다. 




 

프로파일러는 사건현장에 출동해 범죄자가 어떻게 범행을 준비했고,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지, 시신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 일련의 범죄과정을 과학적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범행동기와 용의자의 특징 등을 분석하는 일도 합니다. 

 

아래의 사진은 이상경 경장이 현장에서 작성한 일명 '프로파일러 노트'에요. 혈흔이 어떤 각도로 튀었는지, 독특한 범행도구에 대한 내용과 용의자의 특징들이 적혀 있네요∼(우와) 

 


[현장에서 작성한 이상경 경장의 노트] 



 범인이 검거된 사건이라면 범인과의 면담을 통해 자백을 받아내기도 하고, 여죄를 밝히는 심문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일선 형사들이 범인검거에 난항을 겪고 있을 때는 용의자의 범위를 좁혀 수사가 쉽게 진행되도록 돕거나, 수사 가치가 있는 목격자의 진술을 가려내는 역할도 합니다. 




 프로파일러들은 지리적 프로파일링(Geo Pros) 시스템도 운영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 토양에 맞는 공간통계분석기법을 경찰의 범죄수사 데이터에 적용해, 범죄위험지역 예측을 통해 방범전략을 수립하고, 연쇄범죄자의 거주지가 어디인지 추측이 가능토록 해줍니다. 한마디로 범죄자의 동선을 예측하는 것이지요. 

 

사건이 없을 경우에는 장기미해결 사건을 재분석하고 확인하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행정업무도 처리하며, 강의를 하기도 합니다. 



 

유영철 사건을 영화화한 <추격자> 보셨나요? 

 

프로파일러가 연쇄살인범 지영민의 범죄 심리를 까발리는(!) 장면...

 

"대개 너 같은 새끼가 성불구거든∼"

"정을 네 거시기로 생각해 여자의 머리에 때려 박을 때의 그 쾌감...." 

 

이 장면과 대사는 영화 초반의 지영민의 충격적인 범죄 장면과 함께 뇌리에 더욱 강렬하게 어필하는 명장면이었는데요. 범인과의 면담기법이 궁금했던 필자가 물어봤습니다. 




[최대호 경사]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접근방법도 다 달라요. 처음 한두 마디 해보고, 성향을 파악한 다음에 면담을 시작해요. 피의자들이 경계를 하니까요. 일단 어색함을 무너뜨려야 해요. '라포형성'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식사는 하셨어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하는 식으로 들어가죠. 일단 시도를 하고, 그쪽에서 돌아오는 반응을 봐서 '이렇게 접근해야 겠구나'하고 짧은 순간 파악을 해야 합니다. 

 

사건마다 다르지만 면담을 할때는 보통 2명의 프로파일러가 진술녹화실에 임장하는데, 프로파일러들은 수사과정에서 조사를 받는 범인의 태도 등을 사전에 분석해 예상 면담을 준비한다고 합니다(범인의 심리적 동요를 억제하기 위함이기도 함). 이 때문에 주 면담자는 범인의 면전에서 사전에 범인과 관련된 자료를 펼쳐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프로파일러는 그것을 적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분석된 면담자료는 '스카스'(SCAS : Scientific Crime Analysis)라는 범죄분석시스템에 입력합니다. 여기에는 범인의 성장 배경과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에 사용된 수법이나 도구의 특성 등을 세부적으로 담게 되는데요. 이렇게 축적되고 분석된 자료는 비슷한 성향의 범죄가 발생했을 경우 그에 맞는 범인상을 추정하는 귀중한 자료로 쓰이게 되는 것이죠. 

 

면담 도중에 성적인 질문 등 여성으로서 수치스러운 질문을 받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이상경 경장] 우리들이 (그 방면의) 전문가라고 생각하는지 오히려 더 편하게들 말해요. 자신의 성적인 문제, 심지어 발기부전같은 것들도 말이죠. 연쇄강간범 같은 경우 여자 앞이라고 오히려 자신의 활약상(?)을 자랑스레 떠벌이기도 해요. 아예 처음부터 "XX해봤어?"라고 물어오는 경우도 있었죠. "아가씨, 결혼 했어요?"하기도 하고. 이 일을 하다보면 아가씨도 됐다가, 아줌마도 됐다가, 애가 세 명인 엄마가 되기도 했다가 합니다.;;;; 

 

Q.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프로파일러 3인방은 한결같이 경험했던 수많은 살인사건을 한 건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주현 경사] 처음 채용되었을 때 광주경찰청으로 발령이 났었어요. 한 교회 옆에서 두 명의 신도가 각각 살해당한 사건이었어요. 기본적으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피해자 위주로 수사를 진행하거든요. 원한, 돈, 치정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순서인데 이런 식으로 수사를 하면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이면 대략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드러나는데 이 사건에는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

 

당시 저희 프로파일러들은 사건이 일반적인 살해사건과 달리 범인의 개인적인 욕구에 의한 연쇄살인이라고 추정했고, 그때까지의 수사방향과 다른 방향을 제시했죠. 



 

예상대로 피해자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연쇄살인이었는데, 다문화가정에서 여성이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을 가자, 아내가 평소 다니던 교회의 도움을 받아 도망갔을 거라고 생각한 남편이 무작위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살해한 사건이었죠. 사실 프로파일러와 수사팀의 방향이 아주 다른 경우는 많지 않은데, 이때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고, 전혀 방향이 달랐던 일이라서 기억에 남네요.

 

[최대호 경사] 기억나는 게 하나 있네요. 몇 달 전이었는데, 방화살인사건이었어요. 술집에서 50대 남성과 우연히 술을 같이 먹게 된 범인은 피해자의 집에까지 가서 술을 한 잔 더하게 됐었죠. 그러다가 피해자가 술에 취해 깜빡 잠이 들었고, 그가 졸고 있는 틈을 이용해 손에 끼고 있던 금반지를 훔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정신을 차린 피해자에게 범행이 발각되자 집에 불을 질러 살인을 한 것이었는데요, 화재로 인해 물적 증거가 없어 유죄를 입증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저와 이상경 경장이 피의자의 조사과정을 12시간정도 모니터링 하며 조사태도, 행동특성, 성향을 분석해 범인의 심리적 약점을 공략해 자백을 이끌어 낸 사건이었죠. 

 

Q. 업무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단 몇 시간의 인터뷰로 완전히 파악한다는 것이 언제나 부담스럽다고 말합니다. 



[이주현 경사] 또, 사건이 발생하고 그때마다 모든 상황을 판단ㆍ분석해서 범인을 지목하고, 범인의 은신처를 추정하지만, 실제로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항상 힘듭니다. 막상 범인을 검거하고 나면 그때까지의 추리가 맞았다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전까지는 완전히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게 가장 힘들어요. 

 

Q. 끝으로 미래의 프로파일러를 꿈꾸는 사람에게 한마디 한다면? 


 [최대호 경사의 책상위에 놓여진 책들] 


누군가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다고 하면, 우선 말리고 싶다는 3인방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되고 싶다면 한 가지 분야만 공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주현 경사] 프로파일러는 심리학, 사회학 전공자들로 뽑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심리학, 사회학 책만 열심히 읽는 것은 반대라는 이야기입니다. 사회를 보는 눈과, 앞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보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프로파일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멋지고 화려한 직업만은 아닙니다. 강력사건이 터지면 언제든 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죠. 

 

범인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며,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힘들고 고된 일입니다. 

 

하지만 생명을 구하고 사회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과, 시민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보람이 더 크기 때문에 프로파일러가 된 것이 인생 최고의 선택이자 선물이라고 말하는 3인방! 

 

짧은 시간 그들을 만났지만, 그들을 프로파일링 하자면 감히 '멋있는 사람' 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싶네요.



 





강도나 살인, 납치 등 강력범죄 사건에서 미세증거물에 대한 분석기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범죄가 지능화되면서 지문, 족적, 혈흔 등 범인 추적이 가능한 증거물들을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연구팀이 이 같은 미세증거물을 통해 뺑소니 차량의 차종과 제조연도, 시신의 사망추정시간을 신속히 파악할 수 있는 첨단과학수사 분석기술을 개발했다. 

범인 잡는 화학적 지문

미세증거물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서 현미경, 돋보기 등의 장비를 이용해야만 확인할 수 있는 범죄 증거를 말한다. 모발과 흙, 페인트·섬유·플라스틱·유리 조각 등이 여기에 속하며 지문, 족적, 혈흔 등과 달리 눈에 잘 띄지 않아 범인이 간과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때문에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미세증거물들은 사건 해결의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미세증거물의 경우 일반 증거물보다 분석이 쉽지 않다는 것. 동위원소나 미량원소에 대한 정밀 분석이 필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 구축이 요구된다. 미세증거물을 '화학적 지문'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환경과학연구부 류종식 박사팀과 생명과학연구부 최종순 박사팀이 첨단장비를 활용해 미세증거물의 활용도와 분석의 정확도를 대폭 향상시키는 첨단과학수사 분석기술을 연구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뺑소니 사고 검거율 100%를 향해

류 박사팀은 현재 유리와 거울조각만으로 자동차의 차종과 연식을 정확히 알아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 생산된 자동차용 유리와 거울이 제조사나 생산공정에 따라 구성물질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류 박사는 “결정화 과정 없이 단단하게 냉각된 융합무기물인 유리는 미량원소를 포함, 약 30여종의 물질로 구성돼 있다”며 “제조사나 제조공정별 미량원소에 차이가 발생하므로 작은 유리조각 하나로도 차종과 연식의 확인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를 위해 국내 5대 완성차 메이커에서 사용 중인 자동차 옆 유리 36종과 사이드미러 120종을 분석했다. 각 제품을 파쇄해 표면의 불순물을 완벽히 제거한 뒤 레이저 삭박 유도결합 플라즈마 질량분석기에 넣은 결과, 자동차 회사마다 납(Pb) 동위원소 조성비에 큰 차이가 있음이 확인됐다. 각 유리와 거울의 제조사별 차이도 명확했다.

류 박사는 “자연계의 납 동위원소는 208Pb·207Pb·206Pb·204Pb 등 4종이 존재하는데 이번 연구를 통해 완성차 메이커별, 유리·거울 제조사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며 “유리와 거울조각은 차량사고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미세증거물이기 때문에 매년 1만1,000건 이상 발생하는 뺑소니 사고 등의 해결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망시간 알려주는 종이 칩

최 박사팀의 경우 살인사건 피해자, 즉 시신의 사후경과시간(PMI) 판정기술 개발에 연구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PMI를 정확히 알아내면 피해자의 사망추정시간에 맞춰 용의자의 범위를 압축, 신속한 수사진행이 가능하지만 현재는 체온, 혈액 침하, 사체 경직, 부패 등 주변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 요인들에 의존하면서 정확성에 한계가 존재한다. 이에 연구팀은 오랜 연구 끝에 흰쥐의 장기에서 시신의 장기나 체액으로 PMI를 객관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생화학적 마커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 마커를 바탕으로 사건 현장에서 손쉽게 사용 가능한 종이소재의 PMI 진단 키트를 개발하고 있다.

이 키트는 임신진단 키트처럼 칩에 체액을 떨어뜨리면 10분 이내에 결과가 나타나는 방식으로 구동된다. PMI 다중 단백질 마커들의 존재 유무로 PMI를 추정하는 메커니즘이다. 최 박사는 “현재 국내의 PMI 판정 기법은 법의학자의 개인적 경험에 많이 좌우돼 정확성이 떨어지는 편”이라며 “향후 PMI 진단 키트 개발이 완료돼 본격 보급되면 살인사건의 초동과학수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기초지원연의 첨단과학수사연구 사업책임자인 이광식 선임본부장은 “첨단과학수사연구는 신속·정확한 사건 해결로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안전한 사회를 구현하는 국민 친화적·사회 친화적 과학기술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nbgk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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