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발부·유죄판결에 결정적 기여 … 경찰, 내년부터 자동 얼굴인식 시스템 개발
지난 6월 충북지방경찰청 소속 신강일 경사는 과테말라를 방문했다. 국과수 직원들과 검찰, 경찰을 대상으로 과학수사 기법을 교육하기 위해서였다.
과테말라에서는 하루에만 10여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증거물을 확보하고도 범인의 흔적을 찾지 못해 미제로 남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런데 한 지문담당 실험요원이 "의뢰받은 증거물이 있다. 분석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실제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유리조각이었는데 범인이 만진 것이라고 했다.
해당 직원은 접착제를 증발시켜 지문흔적에 들러붙게 만드는 '기체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지문은 희미하게 나타났을 뿐, 선명하게 드러나진 않았다. 현실에서는 기체법을 써도 과학수사드라마 'CSI'처럼 한 번에 지문이 현출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신 경사는 기체법을 시도하고 이어 '베이직 옐로우'라는 시약으로 희미한 지문을 염색했다. 특정한 빛을 쪼이면 형광빛이 나는 시약이다. 빛을 쬐자 요철이 희미하던 지문이 밝은 부분, 그늘진 부분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면서 정체를 드러냈다.
과학수사 기법이 갈수록 고도화되면서 이를 통해 밝혀진 증거들이 각종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되고 있다. 지문, DNA를 비롯해 손바닥 지문, 냄새, 걸음걸이, 혈흔 등 다양한 흔적들로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갔다.
지난 4월 부산의 한 편의점에서 벌어진 강도사건 당시 편의점 CCTV에 찍힌 영상에서는 범인이 '20~30대 남성'이라는 점만 확인됐을 뿐 이렇다 할 실마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만 비슷한 사건이 잇따르자 경찰은 신병을 확보한 용의자의 손바닥 지문이 강도사건 당시 남아 있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구속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5월 벌어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자택 화염병 투척사건 당시에는 CCTV 영상을 통해 검거된 용의자의 걸음걸이가 영국 법의학 전문가의 감정을 통해 구속영장 발부에 기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역사는 6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복 후인 1948년 11월 4일, 당시 내무부 치안국에 '감식과'가 설치되면서다. 이어 각 시·도 경찰국 수사과에 '감식계'가 만들어지고 일대 다 방식의 지문대조도 가능하게 됐다.
과학수사 활동 과정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기법은 지문과 유전자(DNA) 증거다. 이를 활용한 한국의 신원확인 기법은 2004년 동남아 쓰나미 사건, 2006년 서래마을 영아 살해사건 등에서 톡톡히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대 초, 중반부터 경찰청 과학수사센터는 '미세증거'와 '혈흔형태분석'으로 대표되는 전문기법을 도입, 활용하고 있다. 미세증거란 섬유, 페인트, 유리, 먼지 등 범죄현장이나 사건 관계자의 몸에 붙어 있던 작은 증거로 용의주도한 범인의 자백을 받을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005년 도입된 혈흔분석은 사건 현장에서 벌어진 행동들을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해 범인의 자백을 받아내는 데 쓰인다. 지난해 4월 대전 동부 판암동 살인사건 당시 이 분석기법으로 확보한 증거가 인정받아 유죄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밖에 개를 이용한 체취증거 기법, 수중과학수사 기법을 이용한 증거확보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경찰은 내년부터 자동 얼굴인식 시스템 개발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CCTV에 찍힌 신원미상의 용의자를 범죄자 사진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유사도가 높은 용의자 리스트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경찰관계자는 "우리나라에는 350만대 이상의 CCTV가 설치돼 있고 차량에도 블랙박스가 설치되는 추세"라며 "영상장비가 수사에 자주 활용되는 만큼 용의자 특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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