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검사에서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은 (1) 주검의 신원확인(누가), (2) 사망시각(언제) 추정, (3) 사망장소(어디서) 확인, (4) 사망원인(왜) 결정, (5) 사망의 종류(어떻게) 결정, 그리고 (6) 증거물 확보 등이다. 신원확인이 법의학 영역에서 문제되는 일은 많지 않다. 대개 신원을 알고 있거나, 식구나 친지가 확인하거나 또는 경찰청이 갖고 있는 지문 자료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지가 확인하지 못하거나 지문을 채취할 수 없는 정도로 훼손되었을 경우에 주검을 확인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워진다. 그런 예를 들어본다.

비행기가 사고 나면 주검이 많이 훼손된다. 심지어 주검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때는 어느 개인의 사망을 확인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물론 비행기 탑승자 명단을 보면 사망자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도 있지만, 그 누구라도 주검 또는 주검의 일부라도 보지 않고는 사망을 진단하거나 선고할 수는 없고, 그러면 법은 어느 사람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 법은 이런 경우에 일단 '실종 신고'를 하도록 하고, 끝까지 죽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 일정한 기간이 지난 다음에 사망신고를 받는다. 만약 영화나 추리소설에서 보듯 다른 사람 이름으로 탑승하였다면 어떡하나?

이와 같이 대형사고가 생기면 외국에서는 법의학전문가, 법치의학전문가, 법인류학자 등이 동원된 팀이 구성되어 흩어진 주검 또는 주검의 일부가 누구인지를 찾아낸다. 이때 피해자의 치료 경력과 기록, 치과 기록, 신체 특성과 같은 자료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1993년 1월의 신문을 보면 '지난해 청주 우암상가 아파트 붕괴사고 사망자 가운데 가족들이 고아무개 씨로 확인해 이미 화장한 시신은 고씨가 아니라 그동안 실종자로 처리됐던 이아무개 군으로 밝혀졌다'는 기사가 있다.

이런 일은 바로 대형사고에서 사망자 처리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조그만 조직이라도 있으면 유전자 감식이라는 방법으로 백만 분의 일이나 천만 분의 일이라는 확률로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웬일인지 모르겠다. 1993년에 일어난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과 서해 페리호 침몰 사건 이후에 신원확인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과 그 이후에 발생한 대형참사(2003년에는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에서는 신원확인에 DNA 감식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출처> 법의학의 세계. 이윤성. 살림출판사.






2000년 6월 6일 오전 10시 20분 서울 성북구의 한 동네에서 고모(38)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서 발견된 시신 옆에는 먹다 남은 소주와 막걸리 병 등이 뒹굴고 있었다. 가족들은 평소 고씨가 술을 지나치게 좋아해 간경화를 앓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고씨가 지병 악화로 숨졌다고 보고 수사를 종결했다. 검안을 한 동네 의사는 타살 흔적이 없다고 밝혔다. 겉으로 보기에 몸에 흉터가 없었고, 현장에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할 만한 흉기도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나 부산진경찰서에 한 남자가 “사람을 죽였다.”며 찾아왔다. 고씨와 알고 지내던 김모(43)씨였다. 그는 경찰에서 “술친구로 지내온 고씨가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화가 나 전선으로 목을 졸랐다.”고 자백했다. 그는 “흉터가 남지 않도록 목에 라면박스 조각을 대고 목을 졸랐다.”면서 “범행에 사용한 목장갑과 라면박스는 지문이 묻은 것 같아서 들고 나왔다.”고 실토했다.

결국 사건을 해결한 것은 탐문수사도, 과학수사도 아닌 범인에게 남아 있던 일말의 양심이었다. 고씨의 죽음처럼 살인사건이 자연사나 병사로 처리되는 일은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극히 이례적일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그렇다’고 자신있게 답할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고씨 사건의 경우 부검을 했다면 상황이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설골이나 갑상연골의 골절 여부를 살펴보거나, 후두덮개나 성대문의 점상출혈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타살인지 자연사인지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부검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검안과정에서 타살의 흔적이 없으니 굳이 부검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그 판단은 철저히 비(非)전문가들에 의해 내려졌다. 

되짚어볼 점은 그대로 묻힐 뻔한 고씨의 죽음이 우리나라의 허술한 검시(檢屍)제도로부터 기인한다는 점이다. 검시란 시체를 원형대로 검사하는 검안(檢眼)과 해부를 통해 사인을 규명하는 부검(剖檢) 두 가지를 의미한다. 검안은 부검의 전제 조건이다. 부검을 위해선 검안 소견이 필요하고, 또 부검을 할지 안 할지도 검안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변사사건의 처리과정을 보자. 경찰에 사망자 신고가 접수되면 먼저 지구대 직원이 출동해 현장을 확인한 후 경찰서 본서에 보고한다. 출동한 형사(형사과나 강력반)들은 현장 상황과 최초 발견자 등을 상대로 조사한다. 이때 검안을 맡는 것은 그 지역 개업의사인 공의(公醫)들이다. 

현장에 나갈 때도 있지만 시신을 병원으로 이송하고 검안하는 일도 많다. 공의들은 현장 조사를 맡았던 형사의 의견을 참조해 시체검안서를 작성한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변사사건 보고서가 만들어지면 이를 바탕으로 검사가 부검이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를 결정한다. 대부분 부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진행되지만, 의대 법의학 교실이나 지역병원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문제는 부검까지 가는 일련의 과정에 법의학적 전문가가 배제돼 있다는 점이다. 초기 현장에 나가는 형사와 마지막 부검 결정권을 쥔 검사는 아무리 베테랑일지라도 전문적인 법의학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시체검안서를 쓰는 의사가 있지 않으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의대에서 받는 법의학 교육은 불과 1학점짜리 교양과목 정도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성형외과를 찾아 심장질환을 묻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검시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전국적으로 부검할 수 있는 전문 검시 인력은 국과원과 대학을 통틀어도 40여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부검 건수는 연간 4600건. 부검만 하더라도 손이 달리는 상황이다. 법의학계에서는 300명 정도의 검시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요원하기만 하다. 

죽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근대적인 악법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인우보증(隣友保證)제다. 예전에 의사가 드물던 시절, 동네 사람 몇몇이 보증을 서면 죽은 사람을 그냥 땅에 묻어도 좋다고 허가한 제도다. 이 제도 때문에 한 해 1만 7000명이 아무 확인절차 없이 사망처리된다. 이는 범죄에도 악용된다. 이웃의 보증만으로 자연사 처리될 뻔했던 2009년 4월 충남 보령 청산가리 살인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검시제도와 관련된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필요성은 모두 인정하지만 문제 제기만 벌써 16년째다. 웃지 못할 것은 검찰과 경찰의 힘겨루기이다. 개혁의 필요성은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운영은 반드시 우리 부처에서 해야 한다는 논리다. 난센스다.

땅에 묻히는 순간까지 죽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분명치 않은 이유로 억울한 죽음을 맞는 이도,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리는 일도 없어야 한다. 범죄는 흔적을 남기지만 주검은 말을 하지 않는다. 시신 속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과 이를 위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는 사회라면 범죄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whoami@seoul.co.kr





“형제님, 안에 계신가요?” 2003년 2월 16일 오전 10시 경기 OO시 OO읍 철물점 뒤 단칸방. 인근 개척교회의 유모(당시 45세) 목사는 신도 A씨를 깨우려고 문을 열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3평 남짓한 작은 방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온통 피칠갑이 돼 있고, 40대인 A씨는 방 한가운데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 뒤통수와 목, 복부 등 상처도 한두 곳에 난 게 아니었다. 방 한 구석에는 파이프렌치와 망치가, 또 다른 쪽에는 깨진 박카스 병과 액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A씨의 머리를 때린 것은 바로 그 파이프렌치와 망치였다. 머리 위쪽과 뒤통수에 여러 차례 둔기로 맞은 흔적이 있었다. 턱 아래쪽 목에는 모두 3개의 자상이 있었다. 복부에도 각각 7㎝와 4㎝의 자상이 나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타살의 현장이 분명했다. 

#알코올중독자 둔기 자해로 안 죽자 유리로 자살

경찰 감식반은 애를 먹었다. 이 작은 방 어디에서도 살인범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천장에 피가 튈 정도로 범행 수법이 잔혹했다면 분명히 범인 몸에도 피가 튀었을 테지만 출입구는 나간 흔적이 없었다. 현장에서 수많은 족적과 지문이 나왔지만 모두 숨진 A씨의 것이었다. 혈흔도 의문을 던졌다. 혈흔이 그려 낸 죽은 이의 최후는 결코 탈출하려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감식반은 마지막으로 DNA와 지문에 기대를 걸었다. 그 결과 또한 실망스러웠다. 어렵게 채취해 의뢰한 11개의 증거 자료 어디에서도 침입자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몸이 크게 훼손돼 있으면 통상 사람들은 타살을 떠올린다. 피범벅 등 현장이 잔혹할수록 이런 생각은 짙어진다. 이건 수사관들도 예외가 아니다. 

A씨 사건은 한 달여의 수사 끝에 자살로 결론 났다. 경찰이 판단한 사건 정황은 이러했다.

이혼 후 심한 알코올중독 증세를 보이며 삶을 비관해 오던 A씨는 자살할 결심을 했다. “못 박을 게 있다.”며 철물점 주인집에서 망치와 파이프렌치를 빌렸다. 그는 이것들로 여러 차례 자기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날카로운 것을 찾아 부엌으로 갔다(이런 동선은 문지방과 부엌에서 나온 적하혈흔 등을 통해 추론된 것). 마땅한 것이 없자 그는 유리를 떠올렸다. 그는 깨진 박카스 병과 액자 유리를 차례로 이용해 자기 몸을 찌르고 베었다.

결국 그는 숨을 거뒀다. 부검 결과 목과 배에 나타난 상처는 A씨가 오른손에 거머쥐었던 유리 조각에 의한 것으로 결론 났다. 현장에서 타인의 DNA나 지문이 전혀 나오지 않은 점도 자살로 무게중심을 옮기게 했다. 정황 증거도 참고됐다. 그는 불과 6개월 사이 네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었다. 손목을 긋고, 차에 뛰어들고, 돌로 스스로 머리를 내리쳤다. 그때마다 유 목사 등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나곤 했다.

#70대 자살 노인, 급소 못 찾아 ‘주저흔’ 남겨

현장의 참혹함은 때론 검안의마저 혼란에 빠뜨린다. 다음은 검안의까지 타살로 규정했다가 나중에 뒤집어진 경우다. 

2003년 12월 10일 오후 5시 경기 OO시 한 주택가. 방안에는 70대 노인 B씨가 벽을 향한 채 숨져 있었다. 목에 감긴 전깃줄은 벽 위쪽 못에 걸려 있었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B씨였다. 이마와 머리 곳곳에 각각 칼에 베이고 망치에 찍힌 듯한 상처들이 나타났다. 방 한쪽에서는 피가 엉겨붙은 망치와 칼이 발견됐다. 시신을 검안한 인근 병원 의사는 “목에 있는 끈 자국은 누군가 전기선 등으로 잡아당긴 교사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마와 얼굴에 난 칼과 망치 자국은 각각 열상과 좌상으로 중풍에 걸린 노인이 자해해 생긴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어진 부검과 경찰 조사에서 이 말이 뒤집혔다. B씨는 최종적으로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났다. 부검의는 “이마와 얼굴에 출혈을 동반한 상처가 여럿 있긴 하지만 뇌 등 주요 장기를 다치게 할 만큼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면서 “목을 구성하는 방패연골이나 목뿔뼈 등이 부러지지 않았고 목 주위 물렁뼈 등에도 손상이 없는 것으로 봐서 죽음의 원인은 타인의 목 누름에 의한 질식사가 아니다.”고 밝혔다. 가족과 건강문제 등을 비관한 노인은 자기 집에서 망치와 칼, 한복끈과 전깃줄 등으로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다는 게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수사진의 결론이었다. 

이렇게 두 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자살을 하는 것을 법의학적으로 복합자살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하자 2차, 3차 계속해서 자살을 이어가는 것이다. 전체 자살의 5%가 이런 복합자살이라는 외국 통계도 있다.

여기서 드는 깊은 의문 한 가지. ‘기왕 죽을 작정을 했다면 왜 그토록 자신에게 가혹하게 굴까.’ 하는 점이다. 법의학자들은 자살하는 사람들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흉기로 자살하려는 사람은 고통 없이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겁을 낸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국과수 관계자는 “영화를 보면 타살의 흔적은 무조건 잔혹하게, 자살의 흔적은 평안하게 그려지지만 실제는 이와 반대인 경우가 상당수”라면서 “때론 자살자의 몸에서도 수십 개의 자상(베이는 것)이나 창상(찔리는 것)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상처의 개수만으로 자살, 타살을 구분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스스로 치명적인 곳을 한 번에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처를 모두 법의학적으론 주저흔이라고 부른다. A씨와 B씨의 몸에 난 여러 개의 상처 역시 주저흔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이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고민한다. 생(生)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whoami@seoul.co.kr





“거기 119, 119죠? 저, 저희…어머니가 목을 매셨는데….”

2006년 5월 25일 새벽 4시 경기 시흥시 신천동의 한 아파트. 119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갈랐다. 사망자는 당시 56세의 주부 A씨. 그는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안방에 반듯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목을 맨 시신을 처음 발견해 바닥에 것은 남편 B씨(56)였다.

“1시간쯤 전에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작은 방문에 목을 매 죽어 있더라고요. 손자들 놀라고 달아 놓은 그네용 철봉에 끈을 묶었더군요. 목 뒤 가운데에 매듭이 있었고 두 발이 공중에 5㎝ 정도 떠 있었어요.”

급히 줄을 끊어 안방에 눕혔는데 한밤에 시신과 함께 있자니 무서운 생각이 들어 이불을 덮어 놓고 분가한 아들에게 급히 연락했다고 말했다. 남편은 차분하게 상황을 증언했다. 아내의 자살 동기를 묻는 경찰에게 남편은 “나한테 맞은 게 분해서 자살한 것 같다.”고 했다. 

남편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사건발생 몇시간 전인 5월 24일 오후 10시쯤 부부싸움을 했다. 남편은 이 과정에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주워 온 플라스틱 막대기로 부인을 때렸다. 자기는 화가 나서 집을 나갔다가 새벽 3시쯤 돌아와 보니 아내가 숨져 있었다고 했다.

집안에는 길이 50㎝ 남짓한 플라스틱 막대기와 부인이 목을 맨 낡은 나일론 끈이 놓여 있었다. 남편은 나일론 끈은 집에서 보던 게 아니라고 했다. A씨의 목 주변에는 끈 자국이 뚜렷했다. 턱 아래부터 시작된 자국은 목덜미와 턱을 따라 비스듬히 위로 올라가 있었다. 부인의 얼굴에는 심한 울혈이, 양 눈꺼풀은 많은 일혈점이 보였다. 전형적인 질식사의 흔적이었다. 얼굴, 목, 팔 등에서는 붉은색을 띤 타원형의 크고 작은 상처가 발견됐다. 남편 진술대로라면 부부싸움 때 막대기로 맞은 상처였다. 모두 18곳. 하지만 사인으로 보기에는 상처가 너무 작았다. 검안의는 일단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1차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것은 나중에 있을 대반전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보조장치에 불과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녀는 타살된 것이었고 범인은 남편이었다.

 

■ 완전의사에선 없어야 할 울혈과 일혈점

억울한 죽음이 자살로 묻혀버릴 뻔한 것을 막아준 사람은 부검의였다. 그는 시신의 상태와 정황이 어딘지 모르게 아귀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시신 속 일혈점과 울혈에 주목했다.

“목격자(남편)는 목을 맨 부인의 발이 허공에 5㎝ 떠 있었다고 했죠. 매듭은 목 뒤에 걸려 있었고…. 근데 이상해요. 이렇게 교수형 당하는 사람처럼 죽으면 질식사와 달리 울혈이나 일혈점이 나타나지 않는 법이거든요.”

법의학에서는 A씨처럼 정확하게 목을 매 죽는 것을 ‘전형적· 완전 의사(縊死)’라고 말한다. 뇌로 가는 혈류가 순간적으로 막히는 데다 몸 전체가 공중에 떠 하중이 온전히 목에 걸려 시신의 얼굴 부위가 창백하게 변한다. 피가 쏠리지 않으니 당연히 일혈점도 울혈도 나타나지 않는다. 

부검의는 몸에 남은 상처도 의심스럽다고 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막대기에 맞아서 생긴 상처는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화상이나 탕상(湯傷·물이나 증기에 데인 상처)에 가까워요.”

수사진의 시선은 남편을 향했다. 지금까지 그가 해온 진술이 모두 거짓일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그를 다그치려면 뭔가 물증이 있어야 했다.

수사진은 아파트 인근을 이잡듯이 뒤졌고, 그 노력은 이내 결실을 맺었다. 아파트에서 좀 떨어진 공터에서 집에 있던 플라스틱 막대기와 나일론끈의 나머지 부분을 발견한 것. 집에서 나온 막대기나 나일론끈과 절단면도 정확히 일치했다. 

“가만있자, 남편은 막대기를 이곳 공터가 아닌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주웠다고 하지 않았나. 게다가 여기서 목 맬 때 쓴 나일론끈까지 발견되고….”

일반적으로 목을 매는 사람들은 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물건을 사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자살을 결심한 아내가 한밤 중 칠흑같이 어두운 공터까지 와서 어렵사리 끈을 찾았다는 얘기다. 이게 말이 되는가.

형사와 남편의 피말리는 두뇌게임이 이어졌다. 조사 8시간째. 심리적인 불안감을 내비치는 남편 앞에 경찰이 그동안 감춰두었던 증거를 내밀었다. 공터에서 발견한 플라스틱 막대기와 나일론 끈이었다.

“모두 공터에서 찾은 겁니다. 왜 거짓말을 하셨습니까.”

“…”

“부인을 살해한 건 당신이죠.” 남편은 고개를 떨궜다. 

 

■ 전기도 흔적을 남긴다

사건은 엽기적이었다. 불행의 씨앗은 아내의 외도에 대한 남편의 망상증이었다. 남편은 증세가 차츰 심해지더니 급기야 ‘아내가 밥에 독을 타 나를 죽이려 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됐다. 결국 남편은 아내가 자기를 죽이기 전에 먼저 죽이기로 결심했다. 

범행은 치밀하게 준비됐다. 그는 헤어드라이어 끝을 잘라 빼낸 전선과 나무막대기 등으로 간이 전기충격기를 만들었다. 과거 철물점을 운영하면서 배운 지식을 총동원했다. 범행에 쓸 나일론끈과 플라스틱 막대기도 준비했다. 막대기는 전기충격 때문에 아내 몸에 생길 상처를 맞아서 생긴 것처럼 위장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날 밤 남편은 TV를 보는 아내 뒤로 다가가 모두 9차례 전기충격을 가했다. 아내가 기절하자 나일론 끈에 그녀의 목을 매달았다. 15분 후 아내가 죽은 것을 확인한 그는 살인의 흔적을 지운 뒤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결백을 확인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뒤늦게 밝혀진 것이지만 부인의 몸에 남은 상처는 전류반(電流斑)이었다. 데인 상처와도 비슷한 이 자국은 최초 전기가 몸에 들어오고 나온 곳에 각각 흔적을 남긴다. 피부 가장자리가 올라와 있어 마치 분화구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전류의 세기가 약하거나 몸에 물기가 있다면 반점처럼 작은 자국만을 남긴다. 

특히 남편은 상처를 닦아냄으로써 경찰의 감식을 한층 어렵게 했다. 이렇게 흔적이 약할 때는 피부에 철 등 금속성분이 묻어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감전된 피부에는 순간적으로 금속 성분이 녹아서 늘어붙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전도체와 맞닿은 부위는 마치 도금을 한 것처럼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전기도 흔적을 남긴다.


whoami@seoul.co.kr






‘완전범죄와의 전쟁’은 진화하고 있다. 인간의 지혜에만 의지해 사건의 진실을 밝혔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첨단과학이란 도구를 이용해 범죄의 흔적을 찾는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수사관들이 범죄 현장에서 발견한 발자국을 정밀조사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한국판 CSI, 과학수사의 모든 것

《 “Crime Does Not Pay(범죄는 득이 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청와대에서 법무부와 안전행정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영어 문구를 인용하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안전한 나라 행복한 국민’을 강조하며 치안 강화를 강조했다.

경찰은 최근 주민등록시스템에 저장된 지문 4억여 개의 해상도와 선명도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기초로 살인 강도 강간 등 중요 미제 사건에 대해 지문을 다시 검색했고 미제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가고 있다. 2000년 10월 발생했던 서울 구로구 커피숍 여주인 살인사건의 범인 고모 씨(41)를 공소시효 2년이 남은 지난해 5월 검거한 것도 과학수사로 이룬 개가였다.

경찰은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라는 명제를 믿는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완전범죄를 꿈꾸며 범행의 흔적을 지우려 애쓰지만 대한민국 경찰 과학수사팀은 첨단 장비를 사용해 아주 작은 단서까지 찾아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찰은 범죄 피해자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지능범들과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Korea Crime Scene Investigation), ‘한국판 CSI’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  

▼ 온 힘 다해 움켜쥔 손바닥, 그 안에 사건 풀 열쇠가… ▼

속옷 벗겨졌지만 정액 검출안돼… 주인없는 담배꽁초에 혼선 가중

시신 손에서 나온 티셔츠 섬유… 우연히 묻은걸로 보기엔 많은 양

‘반쪽 증거’ 수사에 반전이…


이문철(가명·33) 씨가 눈을 감았다. 

“사건 발생 당일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경찰의 의심이 이 씨를 향했다. 이 씨는 표정 없는 답을 내놨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어요.” 

징검다리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해 9월 22일 오후 11시경. 그날 이 씨의 아내가 죽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주상복합아파트 ○○○호.

잔뜩 부은 아내의 얼굴에는 처참함만 남았다. 팬티는 발목에 가까스로 걸려 있었다. 브래지어는 벗겨진 채였다. 세 딸에게 물리던 젖가슴에 시퍼런 멍이 몇 다발씩 피어 있었다. 아내의 부드러웠던 살결은 부러진 갈비뼈로 구겨졌다. 사이사이 죽음의 그늘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부패가 진행된 아내의 몸속에는 가스가 찼고 높아진 압력 탓에 입가와 코밑으로 피가 새어 나왔다.

아내의 눈동자는 고집스럽게 벽 쪽을 향했다. 할 말이 있다는 듯. 그녀의 마지막 시선이 닿은 곳엔 한 살, 세 살, 다섯 살 된 딸들의 돌 사진과 결혼기념 사진이 걸려 있었다. 결혼 6년차. 남편을 만나고 세 딸을 낳기까지 보낸 많은 시간이 사진에 담겨 있었지만 아내의 죽음은 한 줄로 요약됐다.

‘목졸림에 의한 질식사. 심한 폭행으로 인한 다발성 늑골 골절 및 간 췌장 등 장기 파열, 강도 및 성폭행 시도, 심한 폭행.’ 

평온했던 밤, 아내가 죽었다

아내가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건 23일 오후 1시 반. “이 사람아, 서둘러 집으로 가보게.” 일산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아내가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는 장모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집으로 달려왔다. 전날 밤 첫째 딸 유영이(가명)를 데리고 본가에 가 있던 참이었다. 30분 거리의 집으로 급히 차를 몰며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다. 둘째 아영이(가명·3)와 셋째 수영이(가명·1)가 오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편이 도착했다. 한낮이었지만 주검이 놓인 방 안은 서늘했다. 한기(寒氣)의 의미를 생각할 틈도 없이 두 딸이 달려와 품에 안겼다. 아이의 얼굴에 남은 눈물자국이 아내의 부재(不在)를 예감케 했다. 현관에서부터 거실이 한눈에 들어오기까지는 불과 다섯 걸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불안은 현실로 바뀌었다.


거실에는 벌거벗겨진 아내가 쓰러져 있었다. “여보….” 딱딱하게 굳은 아내는 대답하지 못했다. 품에 안은 두 딸의 체온이 집 안 유일한 온기(溫氣)라는 생각이 들자 남편 목덜미에 소름이 스쳤다.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관에 ‘출입금지 POLICE LINE 수사 중’이란 노란 테이프를 붙이고 나서야 이 씨는 아내의 죽음을 실감했고, 오열했다.

아내의 다리 쪽에서 담배꽁초가 나왔다. 양 젖가슴에는 침이 묻어 있었다. 음모와 머리카락이 시신의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아내의 몸에서 흘러내린 오줌이 이불에 흥건했다. 장롱 서랍은 모두 열려 있었고 컴퓨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주방에서 또 다른 담배꽁초가 발견됐다. 낯선 남자의 주민등록증도 나왔다. 남편 이 씨는 “아내에게 빚을…, 빚을 진 남자가 잠시 맡겨둔 신분증”이라고 했다. 남편은 온전히 한 문장을 잇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아내의 몸에 온도계가 꽂아졌다. 직장온도 33.4도, 12시간 전 사망했다는 뜻이었다. 남편이 첫째 유영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 즈음이다.

‘반쪽짜리 흔적’만 곳곳에 남았다

사건 현장에 남은 흔적은 범인의 목적을 드러내 보이기 마련이다. 단순절도, 강도, 강간, 원한에 의한 살인 등 범인이 남긴 흔적은 범행의 이유를 설명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반쪽짜리 흔적이 너무 많다.” 현장을 살핀 고양경찰서 과학수사팀장이 말했다. 집 안 곳곳에 남은 수많은 흔적은 목적이 빠진 ‘반쪽짜리’였다. 속옷이 벗겨진 아내의 몸에 정액은 없었다. 방 안을 뒤진 흔적은 있지만 귀중품은 그대로였다. 화장대와 이불 밑처럼 꼭 뒤져야 할 곳에 손을 댄 흔적은 없었다. 이상했다. 

주민등록증의 주인은 범행 추정 시간 당시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담배꽁초의 주인도 아니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제3자의 지문이나 족적(足跡)도 없었다. 수거된 음모는 모두 남편과 아내의 것이었다. 목적이 보이지 않는 반쪽짜리 흔적은 수사를 안갯속으로 내몰았다.

아내의 젖가슴에서 발견된 타액의 주인은 둘째 아영이와 막내 수영이었다. 유일하지만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목격자. “너희가 배가 고파서 엄마 브래지어를 벗겨 젖도 빨고 그런 거니? 너희가 속옷을 벗겼어?” 목격자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2개의 담배꽁초에서 검출된 유전자형과 일치하는 남성 없음.’ 

담배꽁초에 걸었던 기대가 사라졌다. 당일 집에 택배를 배달했던 배달원, 아내에게 빚을 지고 주민등록증을 맡긴 남성,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웃, 그리고 남편까지 담배꽁초 유전자(DNA) 분석 결과와 일치하는 용의자가 없었다. 주인 없는 담배꽁초는 단서가 되지 못했다. 아내의 통화 기록도, 용의자들의 스마트폰 인터넷 검색기록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보험에도 들지 않았다. 경찰 수사는 원점에서 맴돌았다.

경찰은 범행시간 전후로 엘리베이터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그곳에도 용의자의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전날 밤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선 남편과 딸의 모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화면 속 남편 이 씨는 열림 버튼을 누르고 현관 쪽을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었다. 첫째 유영이가 아빠와 눈을 맞췄다. ‘엄마한테 인사해야지’라는 의미를 읽은 유영이도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9월 22일 오후 11시 58분. 폐쇄회로 화면의 디지털 숫자 위로 겹쳐진 유영이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현관 앞 모습이 화면에 잡히지 않았지만 유영이의 웃음은 남편과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의 모습을 짐작하게 했다.

보이지 않았던 결정적 증거

‘변사자의 손바닥에서 채취한 테이프에서 남편이 당일 입고 있던 반팔 티셔츠 구성 섬유와 같은 보라색 계열 섬유물 발견. 동일한 두께 꼬임 및 성분 유사한 섬유가 식별됨.’

사건 발생 8일 뒤인 10월 1일. 아내의 손과 목에서 채취한 미세증거물 분석 결과가 고양경찰서에 도착했다. 사망 직전 아내가 마지막으로 만진 물건이 남편의 반팔 티셔츠라는 뜻이다. 부부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손에 남은 섬유의 양이 너무 많았다. 무엇인가 온 힘을 다해 쥐었을 때라야 남는 양이었다.

“그날 우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애들과 같이 삼겹살을 구워 먹고 아이들을 안방에 먼저 재웠어요. 함께 TV를 보다가 아내가 잔다고 해서 큰 애만 깨워서 나왔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아내와 다투지는 않았습니까?”

“작은 말다툼이 있긴 했지만 곧바로 화해했어요. 당일 아내의 휴대전화로 보낸 ‘앞으로 더 잘 지내자’는 문자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어떤 프로를 보셨죠?” 

“개그콘서트를 봤습니다.” 

범인 추적과 사건 해결의 핵심인 경찰의 과학수사 기법은 최첨단을 달린다. [1] 사건 현장에 남은 핏방울만으로 범행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2] 지문을 찾아 용의자를 추적한다. [3] 현장에 남은 발자국도 용의자가 신고 있는 신발의 종류, 신체조건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제공


“당일 보신 개그콘서트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

남편은 대답하지 못했다. 경찰은 남편의 알리바이를 증명했던 CCTV에 아내의 모습이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남편이 손을 흔들었던 곳, 아이가 아빠를 따라 손을 흔들었던 방향. 그곳에는 남편과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의 미소가 아닌, 눈조차 감지 못한 아내의 시신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경찰이 짐작한 ‘아내의 배웅’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었다.

뒤따라 발견된 또 하나의 CCTV 화면. 아내의 시신이 발견된 당일 경찰은 현장 훼손을 막기 위해 오열하는 남편을 두 아이와 함께 집 밖으로 내보냈다. 아내의 옆에서 눈물을 참지 못했던 남편은 엘리베이터에 타자 금세 태연해졌다. 언제 눈물을 흘렸느냐는 듯 무심히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고쳤다. 머리를 만지고 이를 내보이며 치아 상태를 확인했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모습이 아니었다.

다음 날 오후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사 조사실. 남편이 거짓말탐지기 앞에 앉았다. “당신이 부인을 죽였습니까?” 남편의 호흡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태연한 척 애써 가다듬은 호흡이 떨렸다. “아내를 때려서 죽게 한 게 당신입니까?” 그가 경찰의 시선을 외면했다. 거짓말탐지기의 기록계 파장이 이 씨의 맥박과 호흡을 따라 요동쳤다. “담배꽁초는 아내를 죽이기로 계획하고 미리 준비한 것이죠?” 경찰의 마지막 질문에 남편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항상 저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길 3년째. 남편은 완전범죄를 계획했다. 아내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길가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내를 향해 손을 흔드는 척한 것도, 첫째 유영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 것도 모두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셋째를 엄마의 시신과 함께 두고 잠에서 깬 아이들이 현장을 훼손시켜 주길 바랐다. 자식들이 직접 죽은 엄마의 시신을 더럽히길 기대했다.

경찰은 “남편은 경찰 조사를 받을 때마다 꼭 범인을 잡아 달라고 울며 부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범행을 실토한 날, 남편은 울지 않았다.  

▼ 혈흔은 알고 있다… 범인 체형-자세, 도망친 속도까지 ▼

현장 주변 말라붙은 침자국에서 DNA 채취해 절도범 검거

땀방울 DNA분석해 용의자 잡고… 대변 속 장점막 세포가 단서되기도

흐릿한 CCTV 얼굴식별 잘안돼… 특유 걸음걸이 분석 기법 개발


모든 사건이 경찰의 바람처럼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도 수많은 사건이 ‘장기 미제’로 남아 있다. 그중 1986년부터 5년간 10명의 부녀자가 성폭행당한 후 살해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지금도 대한민국 경찰에 깊은 흉터로 남아 있다. 

역대 최대 경찰력이 동원된 사건이었다. 당시 경찰은 사건 수사에만 연인원 200만 명이 넘는 인력을 투입했다. 조사한 용의자와 참고인이 2만1280명에 이르고 지문 대조만 4만116명을 했다. 하지만 경찰이 알아낸 단서는 ‘20대 중반의 B형 남성. 165∼170cm 호리호리한 몸매’가 전부였다.

30년 가까이 지났어도 사라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고서야 경찰은 비로소 ‘과학수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덥수룩한 머리에 낡은 점퍼를 걸치고 동물적 직감이 최고의 수사방법이란 착각에 빠진 경찰의 모습은 사라졌다. 범죄 현장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밤낮으로 피해자 주변을 배회하며 단서가 ‘걸리길’ 바라는 형사는 이제 없다.

2014년 한국의 과학수사는 어떤 모습일까. 동아일보는 경찰청 과학수사센터(KCSI)와 함께 전국 특별시·광역시도 16개 지방경찰청에서 최근 2년 동안 강력사건 해결에 과학수사 기법이 활용된 사례를 종합했다. 사건 현장이나 피해자 신체에 남은 작은 증거를 찾아 분석하는 미세증거 분석, 핏방울의 모양을 관찰해 범행을 재구성하는 혈흔형태 분석, 손바닥에 난 손금 무늬 모양으로 범인을 식별하는 장문(掌紋) 분석, 폐쇄회로(CC)TV에 촬영된 용의자의 걸음걸이 특징을 비교·분석하는 걸음걸이 분석…. 경찰의 과학수사 기법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해졌고 범인 추적과 사건 해결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 방울의 피에 담긴 의미

혈흔은 범행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큰 단서다. 강력사건 현장에서 발견되는 혈흔은 유전자(DNA) 분석에만 쓰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피의 다양한 성질은 과학수사의 중요한 단서로 활용된다.

혈액은 점도가 1인 물에 비해 4배 정도 점착성이 높아 끈끈하게 달라붙는다. 혈관 밖으로 나온 피는 젤리처럼 굳어진다. 굳어지기 전 혈액은 가해진 힘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바뀌며 분산된다. 혈흔은 재현 가능한 흔적이며, 경찰은 혈흔의 분포상태 모양 특징 크기 등의 정보를 통해 사건 당시 상황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다.

이를테면 위에서 아래로 곧장 떨어지는 자유낙하 혈흔의 지름을 통해 피해자나 가해자의 자세를 유추할 수 있다. 또 범행도구의 움직임에 따라 벽 등에 뿌려진 이탈혈흔의 궤적은 범행 도구를 휘두른 횟수와 방향을 증명한다. 움직이면서 흘린 피는 움직인 방향으로 폭이 줄어들며 긴 모서리를 남기는데 이에 따라 범인이나 피해자의 이동 방향과 속도를 알아낼 수 있다. 

“제가 죽인 것이 아닙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거짓을 말하지도 않는다. 몸에 남은 다양한 흔적들로 오직 진실만을 얘기한다. 서울 양천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연구소 법의조사과 법의관들이 시신을 부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11년 11월 대전지법 국민참여 재판정. 대전 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도박을 하던 일행 2명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이모 씨(53)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이 씨의 주장은 간단했다. “함께 도박을 하던 두 사람이 심하게 싸워 이를 겨우 말렸다. 옷에 두 사람의 피가 묻어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두 사람이 서로 싸우다 지쳐 죽은 것이다.”

숨진 두 사람은 얼굴이 뭉개질 정도로 심한 폭행을 당했다. 굵은 전선을 자를 때 쓰는 절단기가 범행 도구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절단기로만 80여 차례 폭행당한 흔적이 있다”는 소견을 냈다.

사건 현장에 출입한 사람은 이 씨와 죽은 2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함께 있었다는 정황만으로 이 씨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경찰은 혈흔형태 분석 전문요원을 수사에 투입했다. 벽과 천장, 방바닥 등 사방으로 튄 핏방울의 흔적을 추적해 각각의 주인을 찾아나갔다.

두 사람이 수십 차례 흉기에 맞았던 장소는 서로 달랐다. 거실과 화장실 앞, 두 사람은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벽에는 160cm 정도의 남성이 흉기를 휘둘렀을 때 보이는 혈흔이 남았다. 이 씨의 키와 같았다. 피해자들의 발바닥은 깨끗했다. 서로를 공격했다면 옷과 발바닥에도 핏자국이 남아 있어야 했다. 또 이들의 몸에 남은 혈흔은 모두 본인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였다. 이 씨는 징역 17년형을 선고 받았다.

침 똥 땀, 모두가 과학수사의 단서

피가 아니라도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흔적은 과학수사의 단서가 된다. 머리카락 침 땀, 심지어 대소변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경찰이 사건 현장 주변에서 수백 개의 담배꽁초를 수거해 DNA 분석을 하는 것도, 바닥에 말라붙은 침 자국을 찾는 것도 용의자의 흔적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4월 경기 여주의 한 귀금속 상가. 2명의 남성이 출입문 강화 유리를 절단기와 망치로 깬 뒤 15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범행에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남짓.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도착했을 때 범인들은 이미 달아난 뒤였다. 단서는 현장에서 50여 m 떨어진 곳의 CCTV 한 개뿐이었다. 경찰은 용의자들이 범행 직전 담배를 피우다 바닥에 침을 뱉는 장면에 주목했다. 현장을 다시 찾은 경찰은 침 자국에서 DNA를 채취해 범인을 검거했다.

6월에는 똥이 단서가 됐다. 범인은 가출청소년 이모 군(17). 그는 길거리를 배회하다 갑자기 배가 아파오자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 용변을 봤다. 골목 구석에 쪼그려 앉아 급한 볼일을 보던 이 군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반쯤 열린 식당 주방의 창문이었다. 그는 주변에 떨어진 전단지로 대충 뒤를 해결하고는 창문으로 들어가 현금을 훔쳐 달아났다. 하지만 경찰은 대변과 함께 배출된 장점막 세포에서 이 군의 DNA를 찾아냈다.

땀으로 범인을 잡은 것은 8월이다. 경찰은 강원 춘천시 효자동 일대에서 잇따라 발생한 절도 사건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불과 8일 동안 신고 건수만 21차례. 피해주택마다 과학수사팀이 출동했지만 범인은 지문 하나 남기지 않았다. CCTV에도 범인의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피해 가정의 화장품 박스 위에 땀방울이 떨어진 흔적이 발견됐고, DNA 분석 결과 절도 전과가 있던 김모 씨(29)의 땀으로 확인됐다. 90kg이 넘는 거구의 절도범. 그는 농촌지역이나 재개발지역의 빈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경찰의 감시망을 피했지만 결국 무더위에 흘린 땀 한 방울로 덜미를 잡혔다.

아무리 얼굴을 가려도 숨길 수 없는 것

전국에 설치된 CCTV는 300만 대에 이른다. 최근 차량용 블랙박스 설치가 늘면서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범행을 감시할 수 있는 ‘눈’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 50만 화소 이하의 저해상도 카메라로 사건 관계자의 얼굴을 특정하기에는 ‘시력’이 좋지 않다. 또 지능화된 범인들이 CCTV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마스크와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는 사례가 늘면서 CCTV의 미비점을 보완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찰은 ‘걸음걸이 분석 기법’을 개발하고 있다. 사람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는 걸음걸이를 통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증거 분석 기법으로 영국 미국 등에서는 이미 수사 단계에서부터 걸음걸이 분석을 실시하고 있다.

국내에 이 기법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해 5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자택 화염병 투척 사건에서 경찰이 걸음걸이 분석으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을 때다. 애초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인 임모 씨(36)를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다. 경찰은 영국 런던 메디컬센터(LMC) 족병학과의 권위자인 헤이든 켈리 박사를 찾아가 CCTV 분석을 의뢰했다. 그는 범행 현장 장면과 임 씨의 모습이 찍힌 CCTV를 보고 ‘두 인물은 동일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범죄사실이 소명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최용석 계장은 “걸음걸이 분석 기법은 단순히 팔자걸음 여부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체형, 다리 길이 등과 같은 신체적 단서와 걷는 버릇이나 속도 같은 습관적 단서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며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국내 전문가가 양성되면 범인을 찾아내는 또 하나의 강력한 과학수사 기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부검의 1원칙 “죽은자는 거짓말 못해, 그것만 믿어라” ▼

죽어버리겠다는 마음 먹었어도… 자해 순간 망설여 ‘주저흔’ 남아

몸의 멍은 맞을때 생존상태 증거… “부검은 망자와의 마지막 대화

원통함 남지않게 살피고 또 살펴”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경찰의 과학수사기법이다. 현장에서 확보된 주변 증거들을 토대로 용의자를 좁혀가고 자백을 받아낸다.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에는 진술의 허점을 찾아낸다. 범인이 “나는 사건 현장에 없었다”고 거짓말을 한다면 ‘그가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게 과학수사의 역할이다. 죽은 사람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으니 용의자의 거짓을 하나씩 벗겨 나가는 식이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늘 살아있는 사람이다. 반면 죽은 사람은 말은 하지 못해도 진실하다. 죽은 자는 자신의 사인(死因)을 입이 아닌 몸으로 증명한다. 질식해 죽은 사람은 눈꺼풀 사이 좁쌀 같은 반점이 남고, 화재 현장에서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사망한 사람은 손톱이 선홍색을 띤다.



‘한국 과학수사의 본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약물·독물 및 마약 분석, 화재 감정, 교통사고를 담당하는 법과학부와 변사체의 사인 및 유전자 분석, 범죄심리 분석 등을 맡는 법의학부로 나뉜다. 특히 국과수 부검실은 죽은 자의 몸을 살펴 ‘죽음의 이유와 종류’를 밝혀내는 곳으로 국과수의 핵심 공간이다. 지난해 12월 국과수를 찾은 날, 시신 세 구가 부검실로 들어왔다.

첫 번째 시신

부검대 위에 눕혀진 첫 번째 시신은 결혼식을 올린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김모 씨(35)였다. 왼쪽 가슴 부위에는 3cm 길이로 칼에 찔린 흔적이 있었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검붉어진 속살이 비쳤다.

숨진 남편을 발견한 것은 아내였다. 생활비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던 중 아내는 주방에서 칼을 꺼내 남편을 위협했다. 하지만 아내는 위협만 했을 뿐 찌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남편이 달려들어 칼을 빼앗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 나가 보니 문 앞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자살한 시체에는 보통 ‘주저흔’이 남기 마련이다. ‘죽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막상 흉기로 찌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망설여 치명상을 가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자해로 생긴 상처를 주저흔이라고 한다. 타살인 경우에는 피해자 상처의 길이가 칼의 폭보다 길고 상처 부위 주변이 손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구라도 칼을 피하려 움직이고, 찔린 뒤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때문이다. 대부분 찌른 방향이 일정하지 않고 비스듬한 것도 특징이다.

부검 결과 남편의 상처는 변형되지 않았다. 남편의 몸에서는 주저흔을 비롯한 다른 외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타살인 경우 흔히 발견되는 방어흔도 없었다. 칼로 공격을 당하는 순간 피해자는 칼날에 베이거나 찔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칼을 잡게 되는데 이렇게 생긴 손상이 방어흔이다. 

칼이 몸에 들어온 방향도 평행했다. 상처의 깊이는 가슴 근육까지 뚫을 정도로 깊었다. 손에 쥔 칼은 어깨와 팔꿈치, 그리고 손목 관절을 축으로 움직이는데 상처 부위는 이 범위 내에 자연스럽게 위치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 방배경찰서는 부검 결과를 토대로 이 사건을 자살사건으로 결론지었다.

두 번째 시신

두 번째 시신은 부패 정도가 심했다. 발견 당시 입과 콧구멍에 유충이 득실거릴 정도로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사건을 수사한 담당 형사는 부검의에게 “자살인지 타살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시신이 심하게 부패한 탓이 아니었다. 발견 당시 시신의 모습이 문제였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경기 고양시 인근의 산 중턱. 머리는 나무에 묶인 밧줄에, 두 다리는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려 언덕을 내려가는 승용차에 묶여 팽팽히 당겨지고 있었다. 시신은 초등학생 키 정도의 높이로 공중에 떠 있었다. 조금만 늦게 발견됐다면 부패된 시신이 밧줄의 힘에 의해 두 동강 날 상태였다.

법의관 1명, 법의조사관 2명, 법의학사진전문가 1명 등 4명으로 구성된 부검팀이 한 사람을 부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이다. 이 시신의 부검은 2시간을 훌쩍 넘겼다. 벽과 바닥의 환풍기를 아무리 돌려대도 부검실에 찬 악취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신 발견 당시 ‘1995년에 했어야 할 일이었는데 쓰레기같이 살았다. 난지도에 버려주세요’라는 유서가 함께 나왔다. 1995년은 그의 아내가 죽은 해였다. 유서가 발견됐지만 부검팀은 외상부터 철저히 살폈다. 스스로 목숨을 이토록 잔인하게 끊는 경우는 드물었다. 혹시 모를 타살의 흔적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사망한 뒤에 까진 피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넓고 뚜렷해진다. 상처 부위가 빨리 건조돼 색이 갈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눈에 더 잘 띈다. 밧줄이 감겨 있던 목과 발목에 남은 짙은 상처 외에 다른 상처는 없었다. 부검팀은 목 아래부터 성기 위까지 절개한 뒤 갈비뼈를 들어내 장기를 살폈다. 외부의 힘으로 장기가 파열되면 배 안에 피가 많이 고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의 양쪽 눈꺼풀에서 수많은 점출혈이 발견됐다. 눈 주변의 피부와 입안에서도 무수히 많은 점출혈이 나타났다. 목 졸려 죽은 시신에 흔히 나타나는 흔적이다. 밧줄의 힘에 의해 목의 설골과 갑상연골도 부러져 있었다. 

목에 감긴 밧줄 외에 사인이 될 만한 소견을 찾을 수 없었다. ‘타살의 흔적 없음.’ 국과수는 1차 소견을 내놓은 뒤 장기의 성분검사 등 시신 생화학검사와 조직검사, 수사기록, 부검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종 감정서를 작성한다. 육안의 흔적을 넘어 화학적 흔적을 찾기 위해서다. 최종 감정서 발급까지 걸리는 시간은 3∼6주. 두 번째 시신에 대해 경찰은 자살로 잠정 결론을 내렸고 국과수의 최종 감정서를 기다리고 있다. 

세 번째 시신

넘어지거나 맞았을 때 생기는 멍도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미 사망한 시신에는 아무리 힘을 가해도 멍이 생기지 않는다. 흉기로 시신을 훼손해도 피가 잘 나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검대 위에 올려진 세 번째 시신 박모 씨(56). 그는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멀쩡했다.

박 씨가 죽은 채 발견된 곳은 경기 안양시의 한 신축건물 지하 1층 주차장. 박 씨는 전날 만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왔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박 씨의 아내는 “집 앞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을 봤는데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다. 다음 날 오전 8시경 박 씨는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겉보기에는 멀쩡했던 박 씨의 두개골을 열자 출혈이 발견됐다. 머리뼈는 금이 가 있었고 뇌 안쪽으로 출혈이 발견됐다. 평소 혈압이 높았지만 혈관이 터져 생긴 출혈이 아니었다. 외부 충격에 의해 생긴 흔적이었다.

부검의 첫 번째 원칙은 ‘절대 소설을 쓰지 않는다’이다. 시신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합리적인 추론만 할 뿐이다.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욕심을 내는 순간 무리하게 소설을 쓰게 되고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박 씨의 시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머리뼈에 금이 가 있는 형태와 출혈로 미뤄 봤을 때 ‘외부의 충격’은 확인됐지만 부딪힌 것인지, 누군가가 흉기로 때린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 넓은 면의 흉기로 때려 금이 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홀로 넘어져 다친 것일 수도 있다. ‘외상성 두부손상.’ 부검팀은 자의인지 타의인지를 구분하지 않은 부검 소견을 내놓았다. 나머지 사실은 경찰의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부검은 ‘시신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강하다. 유족들은 차가운 스테인리스 침대에 시신이 눕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병을 고쳐서 낫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죽은 자의 사인을 밝히려 칼을 대기 때문에 두 번 죽인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국과수 이수경 법의관은 “부검은 시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망자(亡者)와 마지막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면 그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작은 흔적이라도 여러 차례 살피는 것은 혹시라도 억울함과 원통함이 남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며 부검은 그런 의미에서 ‘무원(無원)’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dong@donga.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