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감식 기법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때로는 '눈으로 지문을 읽어내는 기술'도 필요하다. 서울 관악경찰서 박재선 경위는 10초면 지문번호를 읽어내고 신분 도용 사실을 밝혀낸다. 경찰 최고의 '매의 눈'을 가지고 있다. [최승식 기자]



“만인부동(萬人不同), 종생불변(終生不變).”

 모든 사람이 다 다르고, 평생 바뀌지 않는다. 사람의 지문에 대해 얘기할 때 꼭 따라붙는 말이다. 지문은 범죄 수사에서 가장 확실한 무기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관계자는 “엄지손가락 지문을 제대로 찍을 경우 선이 이어지거나 끊어지는 일명 ‘특징점’이 120개가 넘는데, 특징점을 12개로만 설정해도 같은 지문이 나올 확률은 1조분의 1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지문 감식은 여전히 가장 빠르고 편리한 신원 확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문 모양이 불변인 것과 달리 지문 감식 기술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고도의 지문 감식 기법은 다시 주목을 받았다. 발견 당시 유 전 회장의 시신은 지문 채취가 어려울 만큼 부패했다. 비교적 오래 형태가 유지되는 손가락과 발가락까지도 심한 탈수로 건조된 상태였다. 이처럼 미라화한 시신에서 경찰이 지문을 채취할 수 있었던 건 ‘고온습열처리법’이라는 기법을 통해서였다. 손가락을 100℃ 물에 담가 순간적으로 지문을 팽창시킨 뒤 가까스로 지문 하나를 채취했다는 것이다. 고온습열처리법은 2005년에 처음 시도된 지문 채취 기술이다. 10년 전에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면 유 전 회장의 시신은 신원 미상의 변사체로 남았을 수도 있다.

 지문 분석 기술의 진화로 장기 미제 사건들이 해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05년 9월 2일 오전 5시30분쯤 부산 동대신동의 한 원룸 3층에 괴한이 침입했다. 괴한은 베란다의 열린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 집주인 A씨(25·여)를 흉기로 위협했다. 양손을 묶고 성폭행까지 시도했지만 A씨가 저항하자 현금만 빼앗아 그대로 달아났다. 당시 베란다 난간에서 괴한의 ‘쪽지문’(조각 나거나 부분만 남은 지문)이 발견됐지만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긴 시간 미제로 남아 있던 이 사건은 지난해 4월 경찰청의 지문 재검색을 통해 9년 만에 해결됐다. 2010년과 2012년 두 번에 걸쳐 지문 데이터베이스를 새로 입력하고 검색 프로그램의 성능을 높인 결과 희미한 지문을 남긴 괴한이 김모(33)씨란 걸 확인해 낸 것이다. 경찰은 즉시 연고지를 추적해 김씨를 검거했고 반박할 수 없는 증거 앞에 김씨는 범행을 시인했다.





 경찰청은 2010년 이후 매년 살인·성폭력·강도·절도 등 공소시효가 남은 주요 미제 사건에 대해 지문 재검색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5년간 총 3032개의 사건 관련 지문을 재검색해 1157명의 신원을 새로 확인했다. 덕분에 영구미제로 남을 뻔한 374건을 해결했다. 경찰관들이 “‘지문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속설이 범죄 수사에선 사실”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국내 지문 감식 기술은 여러 나라로 수출된다. 2013년 6월 과테말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한 것도 한국의 지문 감식 기술이었다. 당시 과학수사기법을 교육하기 위해 과테말라에 가 있던 충북경찰청 과학수사계 신강일 경위 등은 현지 과학수사대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깨진 유리조각에 지문이 남았는데 제대로 채취되지 않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과테말라 수사관은 하얀 분말을 이용한 일반적인 지문 채취뿐 아니라 기체화시킨 본드를 활용해 지문을 채취하는 ‘기체법’까지 시도했지만 제대로 지문이 드러나지 않아 난감해했다. 이에 신 경위는 기체법 적용 후 염색 시약(Basic Yellow)을 활용해 지문이 눈에 보이게 했다. 그 결과 과테말라 경찰은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신 경위는 “당시 과테말라 수사 당국이 염색 시약을 활용한 채취 방법을 잘 몰라 기법을 전수해줬다”고 말했다.

 지문 감식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눈으로 지문을 읽는 기술’이 큰 힘을 발휘할 때가 많다. 경찰은 지문인식기가 없어도 육안으로 지문을 구분할 수 있도록 모든 지문에 지문 번호를 부여한다. 크게 활모양의 ‘궁상문(弓狀紋)’, 말굽 모양의 ‘제상문(蹄狀紋)’, 소용돌이 모양의 ‘와상문(渦狀紋)’으로 유형화하고 융선의 숫자와 선들이 만나는 지점인 ‘삼각도’의 위치를 통해 각각의 번호를 부여한다. 

궁상문은 1번, 제상문은 삼각도 위치와 융선 수에 따라 2~6번, 와상문은 융선 수에 따라 7~9번, 손상된 지문은 0번이다. 손가락이 10개인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10자리의 지문 번호를 가진다. 경찰은 교육과정에서 지문 번호를 읽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종이에 찍힌 지문 모양으로 교육을 받기 때문에 실제 손가락을 보고 지문 번호를 읽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과 경험이 필요하다.




 17년 동안 2만여 명의 지문 번호를 읽어낸 서울 관악경찰서 신림지구대 박재선 경위는 경찰 내에서 ‘눈으로 지문 읽기의 달인’으로 꼽힌다. 박 경위는 독학으로 지문 읽기를 연마했다. 수배자나 용의자가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외우고 다니며 쉽게 수사망을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다. 절차는 간단하다. 신원조회기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지문 번호가 뜬다. 이를 실제 손가락 지문과 대조해 신원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확인한다.

 박 경위가 처음 지문 읽기를 수사 현장에서 적용한 건 1998년이다. 당시 박 경위는 서울 신림동 길가에서 팔이 부러진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남성을 발견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신분증이 없었다. 대신 이름이 적힌 작은 맥가이버 칼이 나왔다. 최모(당시 24세)씨였다. 박 경위는 최씨의 손가락을 보고 지문 모양에 따른 10자리의 지문 번호를 읽어냈다. 이어 이름과 대강의 연령대를 신원조회기에 입력한 뒤 지문 번호를 대조해 신원을 알아냈다. 최씨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 박 경위는 오랜 연습으로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열 손가락 지문 번호를 읽어내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지난 1월에는 자신의 이름밖에 모르는 치매 노인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고 집에 데려다 줬다. 지난 4월엔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술집에 출입한 미성년자들을 적발했다.

 박 경위는 “치매 환자나 만취한 사람은 빠르게 신원을 확인해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지문을 채취해 신원을 조회하는 데는 2~3시간이 넘게 걸린다”며 “수배자의 경우 지문 채취를 거부하면 현행범이 아닌 이상 강제할 수 없어 눈으로 지문을 읽는 방법이 유용하게 쓰인다”고 말했다.

 그는 일선 경찰을 위한 동영상 교육 자료도 제작했다. 이를 본 동료 경찰들은 “교육을 받고도 응용이 어려워 지문 읽기를 시도하지 못했는데 자료엔 너무 쉽게 설명이 돼 있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며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윤정민·백민경 기자 yunjm@joongang.co.kr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달 2일부터 의료사고를 전담해 수사하는 의료사고전담수사팀을 발족했다. 2일 강윤석 경감(맨 오른쪽)과 팀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형사 1~2명으론 의료수사 한계"

수사관 7명·검시조사관 1명 구성

간호석사 투입해 전문성 강화

팀원 3명은 '간호사 남편' 공통점

30%대 그친 기소율 높일지 주목


[ 윤희은 기자 ] 

지난 2월 초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성형외과의사협회에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낯선 조직의 경찰관들이 나타났다. 강윤석 경감 등 세 명의 경찰관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사고전담수사팀(의료수사팀)이라고 밝혔다. 1월27일 청담동의 한 성형외과병원에서 중국인 여성이 수면마취 상태에서 성형수술을 받던 중 호흡이 정지돼 뇌사 판정을 받은 직후였다.

의료사고는 관할 경찰서 경찰관 한두 명이 조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협회 관계자 입장에서는 당황할 법한 일이었다. 이날 경찰은 수술을 집도한 병원 원장이 성형외과 전문의가 맞는지, 사무장병원이 아닌지 여부를 확인했다. 의료수사팀은 이때부터 임시 운영을 시작해 지난달 2일 정식 발족했다.

가수 신해철 씨 사망사건이 계기

지난해 10월 발생한 가수 신해철 씨의 사망사건이 의료수사팀 출범의 계기가 됐다. 신씨의 사망이 장협착 수술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인지에 국민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기존 경찰 조직으로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송파경찰서는 수술을 집도한 병원 원장과 병원의 의료과실 여부 수사에 최선을 다했지만 전문성 부족에 대한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사건을 담당했던 관계자도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입해 자료를 확보하고 분석했지만 경찰이 할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 같은 한계를 절감하고 의료수사팀을 구성했다. 경찰 내에 의료사고 수사에 대한 전문성을 축적해 체계적인 수사를 하기 위해서다. 남대문경찰서 강력계장 출신인 강 경감을 팀장으로 8명이 모였다.


의료수사팀은 기존 경찰 조직으로 해결하기 힘들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의료사고를 전담한다. 팀이 소속된 서울청 광역수사2계의 강상문 계장은 “의료사고 특성상 수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만큼 일선 경찰서에서 형사 한두 명만으로는 수사가 어렵다”며 “의료사고 중 사망과 뇌사를 포함한 중상해, 사회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에는 가능하면 모두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팀원들, 의료사고 수사 자원

8명의 팀원은 이전에 의료사고를 수사했던 이들로 구성됐다. 특히 간호 석사 출신으로 2006년 경찰에 입문한 이지연 검시조사관은 팀원 중 유일한 여성이다. 이전에도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료차트를 분석하거나 조언을 해주던 이 조사관은 의료수사팀에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현장에 나서게 됐다. 이 조사관은 “현장에 가지 않고 차트 분석만 하다 보니 압수수색이나 수사 진행 과정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어 늘 안타까웠다”며 “전문적인 수사팀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생겨서 기쁘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관들은 일선 경찰서 형사과 소속으로 의료사고를 도맡아 수사한 경력이 있다. 열악한 수사환경과 의사들 사이의 동업자 의식으로 번번이 수사가 벽에 부딪히는 것을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동형 경사는 “의료사고 수사 과정에서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 의사협회 등에 감정 의뢰를 요청할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애매하고 난해한 답변을 받는 경우가 많아 수사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정훈 경위도 “해당 의료사고에 지식과 경험이 있는 다른 병원 의사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할 경우 상당수 의사가 사고가 난 병원 의사를 보호하겠다는 의도로 조사를 꺼리곤 했다”고 했다.

이들은 의료수사팀이 발족한 후 의료수사 과정에서 겪던 어려움이 상당수 해소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 조사관이 옆에서 수시로 조언해주는 데다 보건복지부와 각종 의학회, 의대 교수 등과 연계해 체계적으로 자문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홍순재 경위는 “형사 시절에는 다른 강력 사건과 함께 의료사고를 조사해야 해서 수사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며 “의료수사팀에서는 의료사고 하나만 맡아 꾸준히 수사하다 보니 업무 속도가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재미있는 것은 남성 팀원 7명 중 3명의 아내가 간호사라는 점이다. 강 팀장은 “의도한 것은 아닌데 팀을 갖추고 보니 그랬다”며 “열악한 의료사고 수사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던 아내들의 마음이 이들을 의료수사팀으로 모이게 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의료사고 기소율 31.42%

최근 발족 한 달째를 맞은 의료수사팀은 5건의 의료사고 현장에 출동했으며 이 중 3건을 수사하고 있다. 짧아도 3개월 이상 걸리는 의료사고 수사 기간을 가능한 한 단축하는 것이 목표다. 팀원들끼리의 소통은 물론 외부 전문가 그룹과의 협조가 중요한 이유다.

가장 어려운 점은 “대부분이 일선 형사 출신인 팀원들이 전문성이 필요한 의료사고 수사에서 얼마나 실적을 내겠느냐”는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이다. 강 팀장은 “‘정말 경찰의 의료사고 수사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겠나’ ‘따로 팀을 만들었다고 기소율이 얼마나 높아지나’ 등의 부정적인 시선을 접할 때가 자주 있다”며 “이런 시선을 불식하기 위해 중요한 의료사건에 팀의 역량을 집중하고, ‘제2의 신해철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더 효율적이고 빠른 수사를 통해 팀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지역에서 발생한 의료사고 기소율은 2010년 29.10%, 2011년 29.45%, 2012년 29.45%, 2013년 28.07% 등 꾸준히 30% 이하였다. 지난해 처음으로 31.42%(105건 중 33건)를 기록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유병언 사망 사건 계기

역대 최대규모 41명 채용


[ 윤희은 기자 ] 지난해 7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망 사건과 관련해 늦은 신원 확인과 부실한 사망 원인 확인 등으로 비난을 받았던 경찰이 역대 최대 규모의 검시조사관 채용에 나섰다.

경찰청은 지난달 간호사 또는 임상병리사 면허증을 가진 검시조사관(9급) 41명에 대한 채용공고를 낸 뒤 지난 9일까지 원서를 받았다고 12일 밝혔다. 합격자는 연수원 교육을 마친 뒤 오는 9월부터 정식 발령을 받아 근무한다.

41명 채용은 지금까지 치렀던 검시조사관 채용 중 최대 규모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검시조사관이 67명인 것을 감안하면 기존 인력의 60%를 한꺼번에 증원하는 것이다.

경찰이 역대 최대 규모 채용에 나선 것은 지난해 발생한 일명 ‘유병언 사망 사건’ 때문이다. 경찰은 지난해 6월 전남 순천에서 신원 미상의 남성 변사체를 발견한 뒤 40여일 지나 유 전 회장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한 달에 걸친 사망 원인 분석에 나섰지만 사망 추정 시점이 6월2일 이전이라는 것과 타살 흔적이 없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 구체적인 사망 원인 파악에는 실패했다. 지지부진한 수사가 이어지면서 경찰은 부실수사 논란에 시달렸고, 이 과정에서 정순도 당시 전남지방경찰청장이 직위 해제되기도 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관계자는 “지난해 발생한 유 전 회장 사망 사건을 계기로 검시조사관 증원에 대한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며 “올해 100명 이상으로 늘리고 내년 중 한 차례 더 채용해 144명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와 함께 하는 ‘CSI/Profiling’ 기법 살펴보기


[보안뉴스 원병철] ‘미스터리한 사건, 그 현장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한 장의 초대장이 편집부 앞으로 전해졌다. 얼마 전 발생한 살인사건 수사에 직접 참여해 사건을 분석하고, 범인을 프로파일링해 잡아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초대장을 발송한 곳은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였다. 





전직 경찰대학교 교수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로파일러(Profiler)인 표창원 박사가 가상으로 벌어진 살인사건을 통해 CSI와 프로파일링을 배우고 체험하며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지난 8월 분당 코리아디자인센터에서 개최된 ‘CSI/Profiling 체험전’은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참여해 직접 사건을 추리하고 분석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물론 실제 범죄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까지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가 주최한 ‘CSI/Profiling 체험전’은 크게 6개의 방(Room)으로 구성됐으며, 한 대학교수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프로파일링방법과 증거수집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첫 번째 방은 ‘범죄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체자레 롬브로조 박사(Dr. Cesare Lombroso) 룸’으로, 먼저 참가자들은 CSI 조끼와 현장 조사시 현장을 훼손하지 않도록 장갑과 덧신, 마스크 등 CSI 장비를 착용하고 영상을 통해 범죄수사 기법과 체험수칙, 그리고 사건 개요를 들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방인 ‘법 과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에드몽 로카 르 박사(Dr. Edmond Pcard) 룸’에 들어서면 범죄현장과 증거의 위치 등을 알려주고, 혈흔의 자국을 통해 피해자가 어디서 어떻게 상처를 입었는지 배울 수 있었다. 





역사학자이자 대학교수인 고민중 교수가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수면제를 먹다 죽었는지 주변에는 수면제와 빈 약통이 흩어져 있고, 자살을 의심하게 하는 유서가 발견됐다. 하지만 고 교수의 지인들은 그가 결코 자살할 사람이 아니라고 증언하고 있다. 참관객들은 실제 고민중 교수가 사망한 현장에서 증거물을 채집하고 사건을 프로파일링해야 한다.





과학수사의 창시자라 불리는 ‘알퐁스 베르티옹(Alphonse Bertillon) 룸’에서는 사건 현장에서 얻은 증거물을 검사하고 분석하는 곳이다. 여기서 참관객들은 핏자국을 통해서 사건을 재구성하고, 머리카락과 섬유질, 지문 등을 분석해 범인을 특정할 수 있다.  


또한 참관객들은 경찰과 검시관의 보고서를 통해 다양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참관객은 법의학의 창시자이자 코난 도일의 스승이라 불리는 ‘조셉 벨 박사(Dr. Joseph Bell) 룸’에서는 어떤 식으로 사건이 벌어졌는지 사건을 재구성해보고, 범죄인학과 범죄심리 수사기법의 창시자 ‘한스 그로스 박사(Dr. Hans Gross) 룸’에서 다른 참관객들과의 토론을 통해 프로파일링을 마무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적 수사기법의 창시자 ‘유진 프랜시스 비독(Eugene Francois Vidocq) 룸’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나면 참관객은 수료증을 발부받고 주최자인 표창원 박사를 만나는 순서로 진행됐다. 



[원병철 기자(sw@infothe.com)] 








최근 5년간 중요미제사건 3200여건 중 329건 해결 

【서울=뉴시스】양길모 기자 = #1 2007년 10월 강원도 화천의 산골마을에서 70대 노파가 둔기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칫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 사건은 노파가 피살된 지 10여 일 뒤부터 2011년 1월 중순까지 집으로 배달된 7통의 협박성 편지가 단서가 돼 용의자를 특정, 범행 5년 만에 범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2 2004년 12월 대전 동구 대성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문모(당시 42세)씨가 10여 차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여러 방면으로 수사를 확대했으나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결국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하지만 최근 현장에 있던 칼집을 감은 테이프 안쪽 접착면에서 쪽 지문이 발견돼 8년 만에 사건이 해결됐다. 

#3 2004년 3월 서울 영등포 일대에서 8차례에 걸쳐 다세대 주택 화장실 창문을 뜯고 들어가 식칼로 피해자들을 위협해 강도강간을 저지른 피의자 A씨가 지난 1월 뒤늦게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A씨는 주민등록이 돼 있지 않아 현장에 지문을 남기고도 10여 년간 경찰 수사를 피해갈 수 있었다.

이 사건들은 당시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됐던 장기 미제사건들이다. 당시에는 수사기법 등이 발달하지 않아 오랫동안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다가 최근 경찰청의 '미제사건 전담팀'에 의해 해결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건을 해결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더욱이 최근에는 살인·강도와 같은 강력범죄부터 신종범죄까지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범행 증거를 남기지 않거나 범행현장을 고의로 훼손하는 등 점점 지능화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완전 범죄는 없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증거 중심의 과학수사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 담당 수사관들의 노력과 첨단 수사기법, 장비의 도움으로 미제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21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3~9월 강·절도 미제사건 697건 중 현장지문 재검색을 통해 9년 전 여자 혼자 사는 원룸에 침입한 야간 강도상해 사건 등 385건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를 일선 경찰서에 통보해 110명(범행당시 미성년자 89명, 성인 21명)을 검거했으며 148건은 수사 중이다.

현장지문 재검색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385명 중에는 미성년자가 194명으로 전체 신원확인 대상자 중 가장 많은 50.4%를 차지했다. 이어 성인 140명 36.4%, 외국인은 51명으로 13.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문 발견 이후 검거 기간은 2주 이내(58건, 53.9%)가 가장 많았다. 2주~1개월 이내(28건, 25.9%), 1~2개월 이내(11건, 10.1%), 2개월 이상(11건, 10.1%)이 뒤를 이었다.

또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5년간 미제로 남은 3032건에 대한 지문 재검색을 벌여 지난 7월말 기준 1143명의 신원을 밝혀냈고 329건의 사건을 해결했다. 

이런 과학수사는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분리·신설되고 1963년 시·도경찰국 수사과에 '감식계가 신설되면서 기틀이 마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후 1999년 지문계와 감식계가 통합된 '과학수사과'가 신설되어 지금의 '과학수사센터'로 이어졌다. 

당시에는 지문감정이나 족 흔적 감식, 몽타주 수배 등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지문 분석과 유전자(DNA) 분석 등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2000년대 중반까지도 감식이 어려웠던 지문의 극히 일부나 훼손된 것을 분석하는 '쪽 지문'과 머리카락, 침, 땀 심지어 대소변까지도 용의자의 흔적을 확보하기 위해 활용된다. 

특히 'DNA 분석'은 동남아인이 연루된 살인 사건에서 DNA만으로 피의자의 국적을 정확히 맞혀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용의자의 종족이나 피부색 등은 물론 동식물의 구체적인 개체 식별도 가능하다. 

또한 ▲핏방울의 위치와 크기 등을 토대로 범행을 재구성하는 '혈흔형태 분석' ▲손바닥 지문을 활용하는 '장문 분석' ▲범인 추적과 용의자 구별에 개를 이용하는 '체취증거 기법' ▲CC(폐쇄회로)TV 영상 속 걸음걸이 특징을 분석하는 '걸음걸이 분석' 시스템을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이밖에 CCTV와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곧바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동 얼굴인식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외에 과학적 수사 기법의 꽃으로 불리는 '프로파일링'도 있다. 이 기법은 범죄 현장과 유·무형의 증거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다. 범죄 심리의 재구성, 관련자 진술 분석, 지리학적 연관성 분석 등을 종합하는 다차원적인 수사기법이다. 부산 여중생 납치 성폭행 살해 사건인 김길태 사건, 제주 여자 초등생 납치 살해 사건도 프로파일링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날로 지능화돼 가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기법을 끊임없이 연구, 도입하고 있다"며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범은 끝까지 재검색해 범인을 반드시 검거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도록 과학수사 역량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은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는 말을 믿는다"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범죄 피해자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지능범들과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일선경찰서 과학수사팀은 "정확한 현장감식을 위해서는 피해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112나 가까운 파출소에 신속히 신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장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음식물 취식, 침 뱉는 행위를 삼가고 사건현장에 출입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CCTV는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므로 상점 등 각 업소에서는 정기적으로 CCTV 작동상태 등을 점검해야 한다"며 "수사기관의 정확한 현장감식과 CCTV자료 확인을 통해 범인이 조기에 검거될 수 있도록 증거보존에 대한 주민들의 협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dios10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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