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사는 눈에 띄지 않는 자그마한 흔적, 시신의 손톱, 화장실 타일 틈새 등에서 사건의 단서를 찾고 수집하는 고단한 작업이다. 수없이 연습과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10팀 과학수사대원 2명이 지난 22일 서울경찰청 과학수사 현장실습장에서 지문 감식을 하고 있다. 컵 위에 형광가루를 바른 뒤 깃털로 털어내면서 플래시를 비추면 숨어 있던 지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김지훈 기자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지하 2층에는 전용면적 60㎡(18.18평)의 ‘가정집’이 있다. 옷장·화장대·책상이 갖춰진 안방, 소파·테이블이 놓인 거실, 4인 식탁이 들어선 주방까지 일반 가정집과 다를 바 없다.

이곳은 온갖 사건 현장으로 변신한다. 지난 7월 9일 문을 연 ‘과학수사 현장실습장’이다. 과학수사대원들은 매번 다른 형태의 모의사건을 구성한 뒤 직접 범행 현장을 꾸미고 감식과 분석을 한다. 수없이 연습하고 감식·분석을 반복한다.

과학수사팀은 보통 2인1조로 구성된다. 대형 사건에는 2∼3개 조가 투입돼 현장을 기록하고 단서를 수집한다. 역할은 철저하게 나뉜다. 사건 현장에 처음 발을 딛는 리더, 사진과 비디오 촬영 담당, 스케치 담당 등으로 일을 분담한다. 과학수사대원에게 팀워크는 ‘생명’이다.


손톱, 욕실 타일에서 찾는 ‘흔적’


사건 현장에서 지문과 함께 중요한 단서는 족적, 시신의 사망시간 등이 될 수 있다. 현장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장갑, 발싸개 등으로 무장한 과학수사대원들이 22일 서울경찰청 과학수사 현장실습장에서 범행 현장 바닥에 젤라틴판을 붙여 발자국 크기와 모양을 채취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서울 강북·도봉·노원 지역을 맡는 서울경찰청 광역10팀 과학수사대원 김진수(46) 경위 등 5명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경찰청 지하 ‘가정집’에서 현장실습에 들어갔다. 현장 훼손을 막기 위해 전신을 덮는 하얀 클린가드를 입었다. 모자와 조끼, 발싸개, 장갑, 마스크도 필수다. 10팀은 지난 9월 과학수사평가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서울경찰청장 표창을 받은 ‘베테랑’이다.

이날 10팀 앞에 벌어진 사건 현장은 이랬다. 46세 여성이 헤어드라이어 전선을 목에 감은 채 사망했다. 왼쪽 옆구리에 길이 3.5㎝, 폭 5㎜ 상흔이 있었다. 현장에선 핏방울이 묻은 칼도 발견됐다. 유치원에 다녀온 아들이 발견해 신고했고, 과학수사팀이 출동했다.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가발을 쓴 마네킹이 방안에 누워 있었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과일을 담은 접시와 찻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이곳에 찾아왔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흔적이다.

현장 감식은 리더가 실내에 ‘플라스틱 통행판’을 놓는 것으로 시작됐다. 아크릴 재질로 된 통행판은 현장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대원들이 접근할 수 있게 돕는다. 대원들이 통행판을 밟고 차례로 현장으로 진입했다. 이 모든 상황과 사건 현장 구석구석은 사진과 비디오 촬영, 스케치 작업으로 기록됐다.

대원들은 먼저 사체의 직장(直腸) 온도를 쟀다. 세 차례 측정해 얻은 평균값으로 사후 경과시간을 추정한다. 이어 특수제작한 손전등 ‘블루 LED 라이트’와 ‘화이트 라이트’를 동원해 족적과 머리카락, 살점이나 체액 등 범행의 흔적을 샅샅이 뒤진다. 뭐든 발견되면 테이프를 이용해 모양과 크기를 살려 옮겼다. 젤라틴판으로 얻어낸 족적은 경찰청이 수집한 약 2만 켤레의 족적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게 된다.



과학수사대원들이 살해된 여성의 시신 모형에서 디지털 직장온도계로 직장 내 온도를 잰 뒤 기록하는 장면. 김지훈 기자



‘손’은 많은 진실을 쥐고 있다

사건 현장에서 손은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피의자와 몸싸움을 했을 때 묻어 나온 DNA나 상처, 옷에서 떨어진 미세 섬유가 검출되는 일이 잦다. 미세테이프를 이용해 손바닥 흔적을 채취하고 슬라이드 글라스에 붙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낸다.

손톱도 잘라 밀봉한다. 손톱에도 수많은 단서가 숨어 있을 수 있다. 허벅지 안쪽, 질과 항문, 귓불과 입술 등 접촉 가능성이 있는 부위도 면밀히 관찰했다. 이쯤 진행되니 대원들 이마에 땀이 맺혔다.

대원들은 피해자 목을 감고 있는 헤어드라이어 전선에 집중했다. 자살이라면 끈 자국은 목 부위에서 윗부분을 향해 남아 있게 된다. 타살일 경우엔 비교적 평행을 이룬다. 사후 10시간이 지나면 혈액이 중력에 따라 이동한 뒤 굳어 피부 표면이 붉은색을 띤다는 점도 고려할 변수다.

화장실 세면대의 S자형 배수관에 고인 물, 변기, 타일 틈새 등도 반드시 확인해야 할 대상이다. 김 경위는 “현장은 상식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수사 과정 또한 변수가 많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가능한 한 많은 단서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지난 8일 발생한 경기도 용인 ‘캣맘’ 사망사건에는 3차원 스캐너가 등장했다. 이 장비로 경찰은 각 지점의 좌표를 컴퓨터에 입력해 거리·각도 등을 계산한 뒤 벽돌 투척지점을 예측해냈다. ‘트렁크 살인사건’ 용의자 김일곤(48)을 검거하는 과정에도 과학수사는 빛을 발했다. 현장 감식에 나선 과학수사팀은 피해자 가방에 있던 편지지 뒷면에 ‘닌히드린 용액’을 발라 지문을 추출해냈다. 이걸 바탕으로 처음 김일곤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과학수사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기법은 여전히 지문과 DNA 분석이다. 우리나라는 지문 분석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을 자랑한다. 2004년 12월 쓰나미가 태국 등 동남아를 덮쳤을 때 현지에 파견된 우리 과학수사팀은 뜨거운 열기를 이용해 시신에서 지문을 찾아내는 ‘고온 습열 처리법’으로 현장을 놀라게 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는 범죄 분석 프로파일링, 지리적 프로파일링(용의자 거점 분석), 진술 분석이나 거짓말 탐지기, 몽타주와 법 최면 등으로 세분화해 분야별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CCTV에 찍힌 걸음걸이 특징을 비교·분석하는 법 보행 분석기법, 3차원 얼굴인식, 체취 증거, 정맥 패턴 등 정보기술(ICT)과 생명과학기술(BT)을 접목시키고 있다.

경찰청은 앞으로 5년간 180억원을 과학수사에 투자할 계획이다. 1948년 11월 4일 당시 내무부 치안국 감식과로 출발한 과학수사는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경찰의 날…

대구 중부서 김연희 순경 이색 이력 ‘눈길’ 
미드 접하고 법의학 관심 
대학원 거쳐 경찰 입문 
녹록지 않은 경찰생활 한달 
“새로운 일 흥미롭고 보람”



                             ‘경찰의 날’을 하루 앞둔 20일 대구 중부경찰서 형사과 사무실에서 

                             김연희 순경이 파이팅을 하며 앞으로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 

                             김무진기자


21일은 대한민국 경찰 창설 70주년이 되는 ‘경찰의 날’이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경찰들이 시민들을 위한 각종 치안활동을 펼쳐 왔고, 또 해마다 새로운 경찰관들이 탄생하고 있다. 최근 지역에서 독특한 이력을 지닌 새내기 여경이 있어 눈길을 끈다. 


경찰의 날을 맞아 간호사 출신의 ‘새내기 미세스 캅’을 만나 앞으로의 각오 등에 대해 들어봤다.


주인공은 대구 중부경찰서 형사과 김연희(여·37) 순경. 지난 9월 7일 발령받은 그는 갓 1개월여 된 초임 경찰관이다. 그는 올해 대구에서는 유일한 과학수사 특채 2기로 경찰에 입문했다.


김 순경은 특이한 경력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간호사 출신이자 주부 경찰관인 것. 


그는 지난 1998년 대구가톨릭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해 12월까지 13년간 지역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그러다 우연히 ‘미드’ CSI 시리즈를 접한 뒤 법의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사건·사고 현장에서 과학적 증거를 확보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검시조사관’으로 진로 변경을 결정했다. 


김 순경은 일을 병행하며 2008년 경북대 수사과학대학원 법의 간호학과에 입학, 2010년 졸업했다. 하지만 2010년 결혼으로 아이가 생기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보디 검시조사관 시험을 보지 못했다.


 이후 지난해 우연히 경찰 과학수사 특채 선발 소식을 접하고, 그해 말 10여년간 일했던 간호사 일을 관둔 뒤 공부에 전념했다. 결과는 합격이었고, 중앙경찰학교의 교육과정을 거쳐 꿈에 그리던 순경 계급장을 달았다.


김 순경은 “경찰관이 됐을 때 남편은 물론 5살 난 딸이 무척 좋아했다”며 “많이 도와준 가족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1달여간의 경찰관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과학수사계로의 발령 예상을 깨고 형사과로 발령받은 것. 살면서 지구대·파출소 한번 가본 적 없던 그에게 형사과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또 새내기인 동시에 주부인 그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컸다. 이 같은 두려움은 기우에 불과했다. 선배 경찰관들이 적극 도와주고 보살펴준 덕택이었다. 범인 검거를 위해 밤 늦게까지 현장에서 근무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또 처음으로 폭행 피의자를 직접 조사한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 등 현재 이 순간을 행복하게 느끼고 있다.


김 순경은 “많이 부족한 저를 선배들이 잘 도와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훌륭한 경찰이 될 것을 가슴 속에 깊이 새기고 있다”며 “앞으로 과학수사 파트로 발령나면 간호사 전공을 살려 정확한 초동수사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무진기자 jin@idaegu.co.kr






서울청 'CSI 과학수사 실습장'

특수전등으로 범인 발자국 확인…혈흔에 증류수 묻혀 혈액 채취
6명이 현장 파악·촬영 등 분담
"팀워크 향상…실제 사건해결 도움"


[ 마지혜 기자 ]


서울지방경찰청 광역5팀 과학수사요원들이 지난 16일 서울청 CSI 과학수사 현장실습장에서 열린 가상 살인사건 현장 증거수집 실습에서 범인의 발자국을 채취한 젤라틴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병언 기자misaeon@hankyung.com
서울지방경찰청 지하 2층엔 오피스텔이 있다. 전용면적 60㎡ 크기에 주방, 소파와 탁자가 있는 거실, 책상과 침대 등이 있는 안방, 화장실 등을 모두 갖췄다. 누가 들어와 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만 이곳은 훈련 장소다. 주택 등에서 강도 살인 강간 등의 강력사건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 출동해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을 훈련할 수 있도록 오피스텔과 똑같은 구조로 꾸민 것이다. 서울청이 지난 9일 개관한 CSI 과학수사 현장실습장이다.

개관 후 첫 실습이 16일 열렸다. 서울 성동·중랑·광진구를 관할하는 광역5팀의 과학수사요원 6명이 참가했다. 실습장은 과거 발생한 살인사건을 본떠 꾸몄다. 피해자는 양손을 청테이프에 묶인 채 거실 소파에 죽어 있고 거실 중앙까지 피가 떨어진 채 굳어 있었다. 어질러진 안방에서는 화장대 서랍 안에 있던 30만원과 귀금속이 없어졌다. 간략히 상황 설명을 들은 광역5팀 요원들은 곧 현장에 투입됐다.

발자국과 혈흔, 지문…“놓치지 마라”

현장 채증은 징검다리를 놓듯 거실과 화장실, 안방 등지에 A4용지보다 조금 작은 플라스틱 통행판을 하나씩 놓는 것으로 시작됐다. 요원들의 발이 현장에 닿아 증거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범인과 피해자가 통행했을 가능성이 높은 장소를 피해 거실 가장자리에 설치했다.

다음은 범인의 동선 파악에 나섰다. 실내의 모든 조명을 끄고 측면으로 빛을 비추는 특수제작한 손전등으로 바닥을 훑었다. 형광등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머리카락과 사람의 발자국 등 여러 단서가 드러났다. 요원들은 발자국 크기를 자로 재고, 스티커처럼 바닥에 붙였다 떼면 발자국이 그대로 옮겨지는 젤라틴판으로 범인의 족적을 채취했다.

이어 본격적인 증거 수집을 시작했다. 굳은 혈흔에 증류수를 묻힌 면봉을 문지르자 혈액이 묻어나왔다. 요원들은 이를 보관함에 넣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재떨이에 있던 담배 두 개비를 핀셋으로 들어올려 봉투에 넣었다. 담배에 묻은 침에서 유전자 정보를 채취하기 위해서다. 탁자에 놓인 컵에도 주목했다. 범인의 지문이 남아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원들이 브러시에 형광 분말을 묻혀 컵을 쓸어내리고 푸른 불빛을 비추자 지문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현장 증거를 채집한 뒤에는 마네킹으로 연출된 피해자 시신을 수습했다. 먼저 테이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접착 성분만 일시적으로 녹이는 박리제로 피해자의 양손을 묶은 청테이프 접착면을 녹이기 시작했다. 피해자를 결박하는 과정에 범인이 지문을 남겼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손톱도 깎았다. 몸싸움을 벌이는 등 범인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범인의 피부 조직이 남아 있을 수 있어서다.

현장 채증이 끝나자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냉방을 최대로 했지만 광역5팀 요원들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안동현 서울청 과학수사계장은 “그나마 간편하게 실습할 수 있도록 현장을 꾸며서 그렇지 실제로는 6~8시간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각 지방경찰청에 훈련장 설치

과학수사 현장 실습장은 충남 아산 경찰교육원에 있다. 위치가 멀다 보니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 경찰들은 자주 찾기 힘들었다. 경찰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경찰청마다 실습시설을 마련하기로 했고 전북청에 이어 서울청이 문을 열었다.

실습장에서는 현장 파악과 증거 수집, 범행 재구성 등의 단계로 6명의 팀원이 역할을 분담해 협업하는 능력을 기른다. 안 계장은 “사건 현장에 나갔을 때 각자 맡은 역할을 명확히 이해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증거를 놓치지 않는다”며 “있는 증거도 경찰이 못 찾으면 없는 게 되는 만큼 증거를 찾기 위한 팀워크를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실습을 기획·감독한 이재준 기법감정팀장도 “요원 각자가 전문가라 하더라도 팀으로 일할 땐 각자 맡은 역할을 물 흐르듯이 수행해야 모든 증거를 효율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청은 오는 9월부터 두 달간 관내 30개 광역과학수사팀 모두를 실습장에 불러 한 차례씩 교육한 뒤 평가 결과가 가장 우수한 팀에 서울청장 표창을 할 예정이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과학수사 대학원, 학부 전공 안 따져요"


충남대 특수대학원 과학수사학과 학생이 마약·독 극물 검사를 하고 있다.


과학수사요원은 자연과학·공학·의학·약학·심리학·법학·경찰행정학 전공자가 많다. 

명확하게 과학수사와 관련된 학과는 거의 없다. 충남대와 경북대에 특수대학원 과정과 순천향대에 특수대학원 과정이 있다. 

경북대 수사과학대학원은 법정의학과·과학수사학과·법의간호학과 등 3개 학과가 개설돼 있다. 석사 과정으로 5학기제다. 3개 학과 전체 정원은 30명으로 법정의학과 6명, 과학수사학과 16명, 법의간호학과 8명이 전부다. 지원자격으로는 특별전형의 경우 관련 경력이 7년 이상인 현직 종사자, 일반전형 지원 요건으로는 국내외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으로 전공 불문이다. 

충남대 특수대학원 과학수사학과는 범죄학전공과 과학수사학전공으로 나뉜다. 학부 전공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전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소장이자 충남대 과학수사학과 강사인 전충현 박사는 “학부 전공 불문인 이유는 다양한 업적이 과학수사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며 “경제학을 전공한 학부생이라면 경제사범을 쫓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전기공학을 전공한 학부생이라면 교통이나 이공학 관련 안전 범죄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대학원을 통해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법과 범죄 관련 수사학에 대해 공부한다”고 설명했다.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에서는 법과학전공, 과학수사학전공, 디지털포렌식전공으로 나뉘며 입학 총 정원은 50명이다.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분석과의 조남수 과장은 “과학수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다양한 전공자들이 지원하게 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자신이 좋아하는 학과에 진학해 석사 과정까지 끈기 있게 공부해야 과학수사요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머리카락 한 올에 달라지는 판결 … 우린 진실을 분석한다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조사과 부검실. 법의관이 부검 후 신체 조직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추가 분석을 위해 채취된 조직 샘플은 유전자공학과나 마약독성화학과 등으로 보내진다. [사진 김경록 기자]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 없도록 부검·약물분석·DNA 검사
대부분 석사 이상…전공 다양하지만 법의관은 의사만 가능
하루에 수십 건 사고…개인 시간 따로 없이 한밤중 출동도



과학수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갈수록 대범해지고 지능화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과학수사를 통해 자살로 위장한 사건이 결국 타살로 밝혀지기도 하고 유전자 감식을 통해 가해자로 지목된 피의자가 누명을 벗기도 한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진실을 찾아내는 과학수사요원에 대해 알아봤다. 

미국 드라마 CSI에는 다양한 과학수사요원이 등장한다. 실험실에서 유전자 분석을 하는 요원도 있고, 부검을 담당하는 요원도 있다. 과학수사란 사건 현장에서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사망 경위와 범인 등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전 과정을 일컫는다. 현장에서 지문 감식을 하거나 증거품을 수집하기도 한다. 이런 일을 담당하는 이들을 통틀어 과학수사요원이라고 부른다. 

국내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경찰청 과학수사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에서 이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기관별로 불리는 명칭은 조금씩 다르다. 국과수와 국방부는 과학수사연구사·연구관, 경찰청과 대검찰청은 과학수사관으로 부른다. 이들 모두 범죄 기록을 찾아 범인을 밝히는 과학자·수사관·의사·병리학자·심리학자·공학자들이다.




의학·생물학·전자공학 넘나드는 과학수사

과학수사에는 부검, 약물 분석, DNA 검사, 사고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기법이 동원된다.

 지난 1일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조사과의 장정식 의무사무관(법의관)을 만난 건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시신의 부검을 끝낸 직후였다. 그가 부검을 맡는 건 교통사고, 의료사고 등 각종 사건·사고로 사망했거나 유족이 부검 요청을 해오는 경우다. 장 법의관은 “법의조사과에서는 사망 원인을 눈으로 확인하는 검안과 시신 부검을 통해 타살인지 자살인지, 또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 등을 밝힌다”고 말했다.

 검안이나 부검에서 독약·마약 중독에 의한 사망으로 밝혀진 경우 시신의 신체 조직을 마약독성화학과로 보낸다. 혈중알코올농도, 미세증거물, 독성, 체내 마약 성분 등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은 부검 시료 및 현장에서 발견된 관련 물품들을 감정해 음주나 독극물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 올 3월에는 보험금을 노린 40대 여성이 시어머니와 남편, 친딸에게 제초제를 먹여 살해한 사건을 밝혀냈다. 화재 사건의 경우 시신이나 사건 현장에 남은 물질을 통해 자연 발화인지 방화인지를 알아낸다.

 유전자분석실에서는 DNA 분석을 한다. 2006년 서래마을 영아살해 유기 사건의 경우 DNA 분석으로 친자 관계, 살해 방법 등을 밝혀 범인을 찾았다. 화재나 교통사고의 원인을 찾는데도 과학수사가 필요하다. 자동차 사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려낸다. 국과수 이공과의 이기태 과장은 “교통사고의 경우 차량의 파손 형태와 손상 흔적, 사고 현장의 차량 흔적과 위치 등을 기반으로 상황을 재연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밝힌다”고 전했다.

 직접 현장에 가야 할 때도 잦다. 지난 4월 강화도 캠핑장 화재 사고의 경우 현장 감식을 통해 화재 원인을 찾았다. 보험 회사가 교통사고 원인 분석을 의뢰할 경우에도 현장에 간다. 가능한 빨리 현장에 도착해야 정확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부서진 차량을 직접 뜯어낸다. 사고의 원인을 알려면 아주 작은 실마리를 놓쳐선 안 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CCTV·사진·비디오·휴대전화·PC메모리카드를 복원·판독하고, 최면이나 심리분석 기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1.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설립됐다. 2. 국과수는 81년 발생한 유괴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를 도입했다. 국내 최초로 거짓말 탐지기를 도 입한 건 60년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당시 육군 과학 수사본부)였다. 3. 93년 국과수는 국내 최초로 모발 에서 약물을 검출했다. 사진은 메스맘페타민 검출기. 4.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국과수는 국내 최초로 사망자 유전자(DNA) 분석을 시도했다.

까다로운 채용, 학부만 졸업해서는 어려워

국과수는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과학수사요원을 뽑는다. 면접 땐 지원하는 과에 대한 전문적인 질문을 한다. 국과수는 석사 학위 이상이어야 입사할 수 있고 일정한 경력이 있어야 지원할 수 있다. 법의관의 경우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증을 소지한 2년 이상 경력자여야 한다. 병리학 전문의 자격증이 있으면 우대한다. 약학 분야의 경우 약학대를 졸업하고 약사면허증을 딴 사람만 뽑는다. 화학·물리학·공학·생물학·보건학·심리학을 전공한 요원도 있다. 이들은 특수직 공무원으로 공무원 급수가 아닌 연구직과 의무직으로 나뉜다. 운영지원 파트 직원의 경우 건축·전기·경영·경제·언론·행정학 등을 전공한 후 일반 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경찰청 과학수사대는 경찰공무원시험 합격자가 대상이다. 과학수사대가 되려면 연 1회 선발심사를 거쳐 수사경과에 들어가야 한다. 수사경과 지원 요건은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로 과학수사학·법과학·법의학(법정의학·법의간호학·의학 포함)·범죄수사학·범죄학·형사학 등을 전공해야 한다. 실기시험·체력검사·적성검사·서류전형·면접시험 등 5차에 걸친 시험을 거친다. 실기시험은 인터뷰 형식이며 과학수사의 개념 및 기법 등에 대해 질문한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관계자는 “경찰 시험에 합격한 후 과학수사요원을 지망하는 경우와 대학원에서 관련 전공을 이수하거나 과학수사 특채시험에 응시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며 “검시나 범죄심리 분석 등을 담당하는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다면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가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국방부에도 과학수사연구소가 있다. 국방부의 업무는 군대 안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제한된다. 전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소장인 전충현 박사는 “경찰이나 국과수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면 국방부 과학수사는 군에서 발생한 사건의 원인을 밝힌다”고 말했다.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는 유전자과·법의학과·범죄심리과·이화학과·문서지문과·총기화재과·영사과 등 7개 과로 나뉘며, 모두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여야 지원할 수 있다.

 대검찰청은 올해 2월 과학수사부를 신설했다. 과학수사1과·과학수사2과·디지털수사과·사이버수사과로 나뉘어 금융·경제·기업·부패·마약·강력범죄와 사이버범죄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게 목표다. 식품·유해화학물질·환경 등 법생화학 감정 업무도 담당한다.

 정부는 과학수사요원을 늘리는 추세다. 인터넷게임을 모방한 잔혹 범죄나 디지털 범행, 보이스 피싱 등 다양한 범죄가 등장하고 있다. 범죄는 늘어나고 초동 수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초동 수사가 안 되면 수사 자체가 미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발 빠른 증거품 수집과 분석이 중요하다.

 최근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과학수사요원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의 안정성과 과학수사에 대한 직업적인 자부심도 매력으로 꼽힌다.

 
사건 끝까지 파고드는 인내심과 끈기 중요 

과학수사요원들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억울한 피해자를 밝혀냈을 때다. 작은 증거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성취감도 있다. 머리카락 한 올로 죽음의 이유를 분석하고 당시 상황 등을 종합해 사건을 해결한다. 책에서 배운 지식을 현장에 접목하는 것도 보람이다.

 일은 쉽지 않다.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대형 사건의 경우엔 전 요원이 하나가 돼서 매달려야 한다. 한 달 이상 전 연구원이 총동원돼 현장을 오가며 증거를 찾고 분석을 한다. 국과수 마약독성화학과의 백승경 과장은 “아무리 몸이 고되도 지체할 수 없는 게 우리 일이다”며 “증거품이 훼손되거나 사체가 부패하기 전에 단서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1분 1초도 쉬지 않고 일에 매달린다”고 말했다. 마약 사범의 경우 경찰 임의동행 시간은 48시간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결과의 유무에 상관없이 무조건 풀어줘야 한다. 때문에 마약독성화학과에서는 주말에도 당번을 지정해 24시간 대기하다가 경찰의 연락을 받으면 바로 출동한다. 백 과장은 “개인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범죄와 싸우고 있다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과학수사요원이 투입되는 일은 뉴스에 나오는 대형 사건·사고뿐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수많은 시신이 과학수사 요원의 손을 거친다. 오후 6시 퇴근 시간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한밤중이라도 의뢰가 들어오면 분초를 다투며 증거품을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야근이 잦다. 특히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땐 유족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사건의 원인을 찾아 밤낮없이 일한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직접 접하는 경우는 부검 담당자 외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요원은 생체조직 검사나 사건 현장에 남은 증거품을 살피는 일을 한다. 시신이나 증거품을 대할 땐 죽음을 떠올리기보다 범인이 남긴 과학적 증거를 찾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국과수 유전자분석과의 조남수 과장은 “과학수사의 임무는 범인을 찾는 것이다. 그게 최우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각 분야의 전문성이 중요하지만 다른 분야 요원들과 협력도 잘해야 한다. 백 과장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밝혀가는 업무이기 때문에 전문 지식만큼 협업 능력이 중요하다”며 “다른 분야를 존중하고 유대감을 키울 수 있는 인성이 과학수사요원 기본 자질”이라고 말했다.

 인내심과 끈기는 중요한 덕목이다. 이공과 이기태 과장은 “사건을 끝까지 해결하려는 끈기와 성실함, 인내심은 과학수사요원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라며 “반드시 사건을 해결하고 말겠다는 집념과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 법의관은 의대 재학 시절 법의학교실 강의를 들으며 법의관의 꿈을 키웠다. 그는 ““살아있는 사람을 살리는 게 의사의 임무라면 법의관들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임무”라며 “사람에 대한 관심, 하나의 사건을 끝까지 파헤치고자 하는 열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병리전문의 면허를 취득, 일반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지난해 국과수로 이직했다. 국과수 과학수사연구사는 빈자리가 나야 채용하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다. 유전공학부 같은 부서는 1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조 과장은 연구실에서 연구하거나 의료 계통에서 일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억울한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는 게 더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범인과 마주 서야 할 때도 있다. 그는 “힘든 일도 많지만 범죄자를 밝혀내 희생자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풀어진다면 그보다 더한 보람은 없다”고 말했다.


김소엽 기자 kim.soyu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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