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충남대병원 호스피스 간호사(왼쪽)가 16일 대전 선화동 박경숙씨 집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담관암 말기였던 박씨의 시어머니는 지난해 8∼10월 충남대병원 가정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고 집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 오른쪽 사진은 가정호스피스로 위암 말기 남편을 돌보다 떠나보낸 대전 가장동 이규정씨가 김 간호사와 가족 앨범을 보며 대화하고 있는 모습. 대전=김지훈 기자

충남대병원은 대전시의 예산 지원을 받아 원하는 환자에게 가정호스피스 서비스를 무상 제공하고 있다. 간호사 3명이 10∼20명 환자 가정을 주 2∼3회 직접 방문해 치료와 심리 상담을 한다. 환자가 사망해 공식적인 호스피스 기간이 끝나도 김 간호사처럼 주기적으로 보호자의 집을 찾아 유족의 마음을 달래준다. 

“꽃방석에 앉았다 간다”

유씨는 지난해 5월 암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치료는 불가능한 상태였지만 박씨와 남편이 교대로 병원에 머물며 간병했다. 낯선 병원 밥을 힘들어하던 유씨를 위해 세 끼를 집에서 만들어 날랐다. 메르스 사태가 한창일 때여서 면회가 금지되자 유씨는 “왜 다른 가족은 보이지 않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이런 모습을 본 가족들은 가정호스피스를 결심했다.

박씨는 “석 달 만에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간 뒤에야 한숨 놓을 수 있었다”고 했다. 평소 먹던 반찬으로 상을 차리자 병원에서 식사를 거부하던 유씨가 조금씩 죽을 먹기 시작했다. 남들 눈치 볼 필요가 없어 목욕도 편해졌다. 병원에서 쪽잠을 자다 집 침대에서 푹 쉬니 간병생활이 덜 피곤했다. 담즙 주머니와 수액 등은 김 간호사가 사나흘에 한 번씩 찾아와 관리해줬다. 입원했을 때와 똑같은 서비스였다.

무엇보다 함께 산 지 1년밖에 안 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됐다. 박씨는 “용기를 내서 어머니께 ‘사랑한다’고 하고 안아드렸어요. 병원에 있었으면 남 눈치 보느라 쑥스러워 못했을 거예요.” 유씨는 지난해 10월 집에서 숨을 거뒀다. 임종 전 박씨 손을 잡고 “내가 꽃방석에 앉았다 간다”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호스피스 서비스는 계속되고 있다. 박씨는 장례를 치른 뒤 가족들이 사소한 일로 싸우고 화내는 과정을 겪었다. 김 간호사의 조언으로 가족끼리 감정이 폭발할 때 잠시 자리를 피하는 지혜가 생겼다고 했다. “가정호스피스는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를 위한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온 가족이 지켜본 마지막

김 간호사가 두 번째로 간 곳은 가장동의 한 주택이었다. “우리 양반이 이 방에서 임종을 했어. 그래선지 이 방에 들어오면 아직도 함께 있는 것 같아.” 앨범을 꺼내 생전 남편의 모습을 넘겨보던 이규정(81)씨가 눈물을 흘렸다.

평생을 공직에서 보낸 남편 김모(사망 당시 81세)씨는 3년 전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이듬해 서울의 대형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이씨는 주저 없이 남편을 집으로 데려온 뒤 충남대병원에 가정호스피스를 신청했다.

이씨는 “자식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나도 허리가 아파 병원에서는 도저히 모실 수 없었다”며 “40년 넘게 산 이 집에서 편하게, 내 손으로 마지막을 준비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 간호사는 지난해 6월부터 두 달간 15차례 이씨 집을 방문했다. 다리 마비에 의한 배뇨 장애와 통증 관리를 주로 했다. 거실에 작은 풀장을 설치하고 간호사와 이씨, 자녀들이 함께 김씨를 목욕시켰다. 간병인과 자원봉사자도 도왔다.

이씨는 남편이 떠난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지난해 8월 셋째아들이 먼저 안방 침대에서 아버지 상태를 확인한 뒤 식구들이 모두 시신을 확인했다. 평생 살던 집에서 맞는 편안한 죽음이었다. 이씨는 “무섭지 않았다”며 “오히려 편하게 떠난 남편을 보니 여한이 없다”고 했다. 이후 이씨가 장에 나가 직접 사온 수의를 입히고 장례를 치렀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본 아이들은 김 간호사와 함께 찾아온 미술치료사의 상담도 받았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이씨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남편이 몰래 녹음해둔 음성 유언이 담겨 있었다. “얘들아 잘 들어라. 혼자 된 어머니 잘 모셔라….” 눈물을 흘리던 이씨는 “그래도 이 양반이 집에 누워 있었으니 이런 거라도 했지. 병원이었으면 이런 흔적도 못 남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삶의 마지막을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준비하는 가정호스피스 건강보험 시범사업이 다음달 2일 시작된다. 서울성모병원 가정호스피스팀 자원봉사자 남명희씨가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다가구주택을 방문해 위암 말기인 김모 할머니 손을 꼭 잡아주고 있다. 김지훈 기자

서울 용산구의 한 다가구주택 4층 집에 지난 15일 서울성모병원 혈액종양내과 이경식(73) 명예교수가 들어섰다. 김인경(41·여) 간호사와 자원봉사자 남명희(53·여)씨가 동행했다.

“할머니 저희 왔어요.”

핼쑥한 얼굴로 안방 침상에 누워 있던 김모(85) 할머니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 김 간호사는 손을 꼭 잡으며 “진지는 드셨고? 불편한 데는 없어요?”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어∼” 하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딸 고모(51)씨는 “통증이 오면 진통제 먹고 주무시기만 한다”고 했다. 심할 때는 몸에 통증 패치를 붙인다. 김 간호사는 팔에 꽂힌 영양수액을 체크했다. 혈압을 재고 욕창은 없는지 이리저리 살폈다. 그 사이 남씨가 다리 마사지를 시작했다. 혈액순환이 안 돼 부어 있는 다리를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아내곤 계속 주물렀다.

할머니는 이 집에서 40년을 살았다. 군인이었던 남편과 평생을 바쳐 일군 삶의 공간이다. 구석구석 남편의 체취가 있다.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병원에서 “더 이상 해드릴 게 없다”고 말했을 때 할머니는 “집에 가겠다”고 했다.

40년을 산 집에서…

할머니의 암이 발견된 건 3년 전이다. 이미 위암 4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간에도 퍼진 데다 암 덩어리가 위와 대장 연결 부위를 막고 있어 수술도 위험했다. 살고 싶었다. “항암치료를 해보자”는 의사의 말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할머니는 암과 싸웠다. 2년간 60여 차례 독한 항암치료를 버텨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해 9월 마지막 항암치료가 끝난 뒤 의사는 “길어야 3개월, 짧으면 한 달입니다. 호스피스를 알아보시죠”라고 했다. 억울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악착같이 살아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

가족들은 입원이 가능한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봤다. 그런데 할머니는 “병원은 무섭다”며 한사코 “집에 가자”고 했다. 딸 고씨는 “암 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옆 환자가 아프다고 소리치고 끙끙거리는 걸 보셨다. 안 좋은 기억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했다. 응급상황이 오더라도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치료를 일절 하지 말라고 가족에게 당부했다.

고씨는 “솔직히 집에서 어떻게 보살필지 걱정이 많이 됐다”고 했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는 거동이 불가능하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고씨 가족은 할머니 집 아래층에 살면서 간병하고 있다. 주말마다 언니 가족이 찾아온다. 고씨는 “거동하실 수 있을 땐 같이 여행도 다니곤 했다. 이제 평안히 보내드리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가족들은 지난해 11월 가정호스피스의 문을 두드렸다. 통증 완화, 욕창 관리 등 말기 암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와 간호는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가정호스피스팀의 도움을 받는다. 가정호스피스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기대여명 6개월 안팎의 말기 암 환자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입원을 대체할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찾아가는 호스피스, 아름다운 동행

호스피스 자원봉사 5년째인 남씨는 “다른 봉사자와 함께 2주에 한 번씩 와서 샴푸와 마사지를 해드리는데 할머니가 무척 시원해하신다”며 “함께 기도하고 찬송가를 불러드리면 할머니 얼굴이 편안해 보여 좋다”고 말했다.

김 간호사는 가정호스피스 경력 6년의 베테랑이다. 현장 경험이 풍부해 의사 왕진이 필요한지, 병동에 입원해야 하는지, 임종 순간이 임박했는지 가늠한다. 그를 비롯한 간호사 2∼3명이 번갈아 주 2회 할머니를 찾는다. 보호자와 전화 통화는 수시로 이뤄진다. 이번에도 할머니 상태에 대한 의료적 판단이 필요해 이 교수와 함께 왔다.

이 교수가 왕진 가방에서 청진기를 꺼내 할머니 가슴에 댔다. “숨을 크게 쉬어 보세요…아이고, 좋으시네.” 이번엔 손으로 아랫배를 만져보더니 “변이 좀 차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고씨는 “사흘에 한 번씩 (대변을) 본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교수는 “관장이 효과 없으면 약국에서 둘코락스를 사서 드시게 하라”고 조언했다.

그러곤 할머니에게 고씨 칭찬을 했다. “좋은 따님 두셨네요. 효녀를 두셨어. 간병도 잘 하고….” 할머니 입가에 미소가 잠시 번졌다. 고씨는 “엄마를 위해 한달음에 와준 분들이 정말 고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죽음을 정복 대상으로 착각”

이 교수는 1988년 서울성모병원에 국내 첫 ‘병동 호스피스’가 생겼을 때부터 말기 암 환자들과 함께해 왔다. 한국 호스피스의 선구자다. 2008년 은퇴 후에도 1주일에 두 번씩 호스피스 병동과 가정에서 환자들을 살핀다.

이 교수는 “말기 암 환자가 통증과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많이 봤다. 마지막 삶을 가장 아름답게, 여한이 없도록 해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호스피스는 단순히 신체적 돌봄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과 삶에 관한 영적 돌봄까지 제공한다. 물론 환자의 종교를 존중하며 이뤄진다.

“60, 70년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가족이 다 모여 작별인사도 하고 집에서 모셨어요. 우리의 전통문화입니다. 그게 의학이 발전하면서 변질된 거죠. 죽음을 정복 대상으로 착각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삶의 마지막을 대하는 방식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교수는 “살 수 있는 병은 치료하는 게 맞다. 하지만 말기 환자는 치료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라도 의미 있게,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도리”라고 했다.

“호스피스는 뜻있는 몇몇이 하는 게 아니라 국가적 사업입니다. 복지국가의 역할이에요.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가정호스피스가 더욱 활성화돼야 합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국내 최초로 ‘가정호스피스 표준지침(가이드라인)’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가정호스피스 시범사업을 앞두고 ‘말기 암 환자 가정형 호스피스 운영 편람’을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편람은 가정호스피스의 운영체계와 대상자 등록기준, 서비스 범위, 호스피스팀원별 주요 임무, 환자 방문 및 돌봄 요령과 환자 등록을 위한 표준 서식 등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는 일부 기관에서 자체 매뉴얼로 시행해 운영이 천차만별이었다.

국립암센터 장윤정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과장은 “2014년 말부터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의 사례와 기존 가정간호 업무 편람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병동형 호스피스의 경우 ‘표준 매뉴얼’이 보급돼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금 마무리 작업 중이다. 26일쯤 시범기관들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범사업 개시를 불과 며칠 앞두고 마련돼 준비시간이 촉박하다는 볼멘소리가 시범기관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16일 17개 가정호스피스 시범기관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40∼50명 실무자들은 “당장 3월 2일 시범사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임박해서 운영지침이 나올 경우 준비하는 데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시범기관 관계자는 “전산시스템도 구축해야 해 2일 시작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태원 전수민 기자

 

 

 







'심리부검'에 관한 국내 학자의 첫 책 출간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은 1만3천836명이다. 6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하나 여전히 하루에 37.9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다.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 남긴 자료를 분석하고 남겨진 사람과의 면담을 통해 사망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찾아내는 책 '심리부검 : 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가 2일 학고재에서 출간됐다.

심리부검은 아직 우리나라에선 익숙지 않은 용어다. 심리부검은 1950년대 미국 수사기관에서 자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주변인에게 자살 동기를 탐문하는 절차로 시작돼 현재는 자살 예방을 위한 국가적 노력의 첫 단계로 선진국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된다.

경찰청 프로파일러 출신으로, 미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심리부검 전문가 자격을 획득한 저자는 이 책에서 40여개의 실제 사례를 토대로 심리부검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사례 중에는 경찰청에서 근무하면서 직접 접한 사건부터 최진실, 장국영, 정다빈 등 유명인 자살 사건이 포함돼 있다.

책은 사례 분석을 통해 자살의 유형화를 시도한다. 자살사건에 공통적인 패턴을 추출해 유형화하지 않으면 구체적인 자살 예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1980년대 일어난 허 일병 의문사 사건이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친구 빈센트 포스터 자살 사건을 통해 신뢰성 있는 자살 사건 조사를 위해 제도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짚어본다.

자살사건을 다룰 때 유서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최신 연구 방법을 응용해 한국사람들이 남기는 유서의 독특한 점을 밝힌다.

책은 마치 미국 과학수사 드라마를 보는 듯이 전개된다. 동시에 자살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저자는 그러나 심리부검이 단순히 자살 과정 추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6년 동안 현장에서 수많은 자살사건을 접하면서 '죽겠다는 의지를 찾느라 애쓰다 보면 그 죽겠다는 의지가 사실은 살고 싶다는 의지, 살려달라는 내면의 호소였음을 알게된다'고 밝혔다.

서종환 지음. 학고재. 320페이지. 1만5천원. 


lucid@yna.co.kr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2009년 11월 제주 화순 해수욕장 해변에서 한 여인이 자동차안에서 숨져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강원도에서 남편과 10대 자식을 둔 가정주부 이 모씨가 수면유도제를 탄 소주를 마신 뒤, 차 안에서 번개불을 피우고 목숨을 끊은 것. ‘그를 처벌해주세요’라는 유언장에는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20대의 시동생이 그녀를 강간한 사건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가슴에 묻어둔 채 10여년을 살아오다 남편과 시부모에게 털어놓았지만 오히려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신세가 됐다. 더 이상 문제삼지 않는다고 애원해 간신히 풀려나온 그녀가 선택한 건 자살이었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첫 심리부검이 이뤄진 사건이다.


심리부검/서종한 지음/학고재
죽음으로 이끈 흔적을 신체에서 찾는 사체부검과 달리 사망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주변인의 조사와 면담을 통해 찾는게 심리부검이다. 심리부검은 1950년대 미국 수사기관에서 시작돼 현재 자살방지와 유족의 심리 치유 등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 모씨 사례의 심리부검을 맡았던 경찰청 프로파일러 출신의 국내 최초 심리부검 전문가 서종한씨가 쓴 ‘심리부검’(학고재)은 국내외 심리부검 40사례를 통해 심리부검이 왜 필요하고 어떤 효력을 갖는지, 자살의 한국적 유형 등을 사건중심으로 펼쳐나간다. 

우리는 흔히 ‘자살은 한순간’이라는 말로 쉽게 설명하지만 저자가 현장에서 목격한 자살은 고통 그 자체로 표현된다. 살고자 하는 본능을 거슬러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려 할 때 몸은 감당하지 못하고 주저흔들을 남기게 된다.

저자는 자살 사망자는 분명하게 자살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가 실시한 심리 부검에서 자살자 200명 중 89%는 정신질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병원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남은 이들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

“가족 구성원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 자살은 사망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가족들이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악순환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책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한 ‘가짜 유서’ 사례도 실려있다. 당시 고인의 진짜 유서 앞에 덧붙여져 인터넷에 유포된 가짜 유서 사건이다. 이 경우 문체나 분위기가 진짜와 차이가 나 구별이 가능했지만 만일 가짜 유서만 유포된 상황이었다면 그 진위 판정은 매우 복잡했을 것이란 얘기다.

에드윈 슈나이드먼 UCLA교수의 가짜 유서 구별법에 따르면, 진짜 유서는 구체적인 사물, 사람, 장소를 더 많이 언급하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사고과정 혹은 결정과 관련된 단어들의 빈도가 높다. 

책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자살의 한국적 유형화 시도다. 저자는 2009년부터 실시한 심리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자살의 12가지 원인을 찾아내 네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즉 급성스트레스 유형과 만성스트레스 유형, 적극적 자해 자살 시도 유형, 정신과적 문제 유형 등이다.

급성스트레스 유형으로 꼽은 사례는 지난해 발생한 아파트 경비원 분신자살 사건. 평소 활달하고 가족과 주변인과 원만하게 지내왔지만 사건 발생 직전 근무지 이동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무력감, 정서적 불안에 입주민으로부터 인격 모욕을 받은게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다.

만성스트레스 유형은 송파구 세모녀 자살사건이 해당된다. 만성적인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들의 절망적 상황, 도움을 줄 가족이나 친구의 부재로 벗어날 탈출구를 찾지 못한 경우다.

저자는 이를 토대로 ‘고위험군 분류 프레임워크’를 만들어냈다. 자살과 관련된 직접적 요인과 추가적 위험요인에 따라 위험도를 분류한 것. 가령 최진실 사례의 경우, 필수위험요인1(‘죽고싶다’‘아이들을 부탁한다’)+추가적 위험요인 4개이상(악성 댓글, 불면증, 이혼, 부부폭력, 우울증. 자살자 경험 등)에 따라 고위험군에 속한다.

책에는 지난 수년간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자살사례가 망라돼 사회 심리 안전망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심리부검이 남겨진 이들에게 기억과 후회, 애도할 시간을 줌으로써 상처 치유의 역할을 한다든지, 심리부검이 법적 증거로 채택되기 위한 표준화 문제 등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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