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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호스피스완화의료

[웰다잉, 삶의 끝을 아름답게] 윤영호 교수 “웰다잉법, 치료 포기 아니라 환자 돌봄에 무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아름다운 마무리라고 역설해 온 윤영호 교수는 웰다잉법이 만들어짐으로써 우리 사회가 존엄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병주 기자

가정의학전문의인 윤영호(52)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삶’보다는 ‘죽음’에 더 익숙한 의사다. 살리는 일이 본업인 그는 주로 죽음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살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가 주된 관심사다. 윤 교수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일명 웰다잉법)이 지난달 8일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의료기관 등 80여개 단체와 1만5000여명이 참여한 호스피스·완화의료 국민본부 실무 책임을 맡은 운영간사로서 의료계와 국민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정치인과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법률 제정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시행을 앞두고 (호스피스·완화의료는 2017년 하반기, 연명치료 중단은 2018년 상반기 도입) 보완할 점이 적지 않지만 이 법률은 ‘죽음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른바 ‘웰다잉’의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지난 15일 서울 대학로 서울대 의대 교육관 306호에서 윤 교수를 만나 이 법률의 제정 의미, 과제 등을 포함해 삶과 죽음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웰다잉이 뭔가.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죽음을 통해 삶을 완성하는 과정이다. 죽음은 치료의 실패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이를 받아들이고 ‘잘 죽어야 된다’는 자세로 죽음에 대처하는 것이 웰다잉이다. 김 할머니 사건(2009년 5월 대법원이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 중 식물인간이 된 김 할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존엄사를 허용한 판결)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존엄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신체적으로 건강해지고 기대여명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 죽음의 과정이 너무 힘들고 비참해진다는 성찰이 이뤄졌다. 특히 요즘처럼 거의 모든 환자가 집이 아닌 병원에서 황망하게 마지막을 맞는 상황에서 존엄한 죽음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 죽음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며 법적 절차까지 명확히 해놓자는 실천이 웰다잉이다.”

-웰다잉 법률의 제정 의미는.

“의료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이다. 지금까지 의료는 질병을 극복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으나 이 법은 인간 중심의 ‘돌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것으로 의료의 기능을 수정한 것이다. 나아가 죽음을 개인과 가족의 책임만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같이 맡아야 한다는 의미를 법제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제나 보완할 점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가장 아쉬운 점은 시민의 자발적 동참 등을 유도하는 조직을 만드는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법이 통과됨으로써 얼개는 짜였다. 그러나 효과를 거두려면 시민 등 민간 부문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돈과 제도만으로는 웰다잉의 철학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론 조성, 캠페인 확산 등 민간의 역할을 결집할 재단법인 같은 기구가 있어야 하는데 국회 상임위 통과 과정에서 이 근거가 삭제됐다. 원래 있었는데 아마 ‘위인설관’을 우려해 뺀 것 같다. 정부에서 앞으로 보다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법률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

“정부는 당초 호스피스 부문에는 소극적이었다. 국정과제로 선정했던 연명의료 파트에만 관심을 보였다. 호스피스 관련 내용이 법률에 포함된데는 국회의원들의 노력이 컸다. 특히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이 많이 도왔다. 김 의원의 경우는 18대 국회 때 발의한 내용이 폐기되자 19대 때 재발의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호스피스는 뭐고 왜 중요한가.

“호스피스는 삶에 대한 통제권과 의사결정권을 의사가 아닌 환자 본인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세 측면에서 호스피스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신체적으로는 통증을 완화하고 정신적으로는 삶을 긍정적으로 마무리하게 한다. 사회적으로는 과도한 의료비 부담을 덜게 하는 목적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적 또는 실존적 의미다. 불안하고 두렵게 여겼던 죽음을 준비하게 함으로써 이를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이다. 호스피스와 관련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흔히 호스피스를 연명치료 중단으로 여기는데, 아니다. 완화치료를 받게 되는데 이 경우 생존기간이 늘고 특히 항암치료를 하는 과정에서는 삶의 질과 생존율 향상에 상당한 효과가 나타난다. 경험에 의하면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시점보다 조금 일찍 호스피스를 이용한 환자들은 본인 스스로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 더 좋은 결과를 드러낸다. 기대여명이 1년 정도 남았을 때 호스피스를 시작할 것을 권한다.”

-국내 호스피스 실태는.

“양과 질 모두 열악하다. 대체로 인구 100만명당 50병상 정도의 호스피스 병상이 적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2500병상 정도가 있어야 하나 우리나라는 1000병상 조금 넘는데 불과하다. 이러다 보니 선제적 완화의료 등 질적인 부분은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20년까지 병상을 1400개로 늘린다고 했는데.

“당연히 늘려야 한다. 다만 숫자에 너무 연연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호스피스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기 어려운 곳에까지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병상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현재 종합병원 등 상급병원들도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않은 실정이다. 증설 못지않게 내실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 호스피스를 허용하면 자칫 ‘현대판 고려장’을 늘린 것이란 비난이 나올 수도 있다. 세밀하게 따져야 한다.” 

매년 국내에서 암으로 사망하는 환자 7만5000명 중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13.8%, 전체 사망자 대비 3.3%에 불과하다. 영국은 95%, 미국과 대만은 각각 44.6%, 30%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민의 59%가 호스피스 이용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또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자료를 보면 말기 및 진행 암 환자 89%가 가정호스피스를 원했다.





-병상 확충보다 가정호스피스를 중점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3월 2일부터 가정 호스피스 완화의료 시범사업이 시행되는데 보완점은 뭔가.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가정형, 병동형, 자문형으로 나뉜다. 이 중 가정형이 여러모로 이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환자들이 가장 원하고 건물 신축 등 시설 투자를 하지 않아도 돼 건보재정 측면에서 유리하다. 이 분야가 활성화되면 의료 보조인력 충원 등 고용창출 효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의사 등 전문 인력의 서비스가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데 현실적 고민이 적지 않다. 당장 가정방문을 의사가 할 경우 이에 따른 부담, 병원 사정 등을 고려해야 한다. 사고와 제도 등 모든 것이 환자 중심으로 전환돼야 걸맞은 효과를 얻는다. 아마 시범 시행 과정에서 손봐야 될 내용이 많이 드러날 것이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 등 이른바 ‘빅5’가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인색하다는 지적이 많다. 사회적 책임에 너무 소홀한 것 아닌가.

“수익성이 낮으니 아무래도 그런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별 병원을 탓하는 것 못지않게 시스템이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예를 들어 상급병원들은 말기 환자들을 위한 단기 입원 병동을 세우려는 계획을 짜고, 정부는 일종의 공공 투자인 이런 시설에 지원을 해야 한다. 단기 입원 병동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능을 맡으면 환자의 연명치료가 줄고 이는 결국 건보재정에 득이다. 과도기적으로는 큰 병원들이 우선 임종실부터 만들 필요가 있다. 지금은 거의 중환자실에서 옆의 환자와 보호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는다. 죽음의 질은 고사하고 환자와 가족의 프라이버시조차 지켜지지 않는 지경이다.”

-외국의 경우 자원봉사자와 기부금이 호스피스 운영의 원동력인데.

“영국은 호스피스가 가장 앞선 나라다. 거의 모든 국민이 무료로 이용한다. 2000년에 호스피스 제도를 법제화한 대만도 잘하는 편이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호스피스를 우리의 품앗이처럼 여긴다는 점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도우면 다음에 내가 도움을 받는다는 식이다. 자연스레 자원봉사와 기부가 활성화된다. 정부가 큰 틀을 짜면 민간이 실천하는 이런 흐름이 당연히 바람직하다.”

-말기 환자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족의 경우 우선 말기임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환자와 가족 모두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주변에 말기 환자가 있으면 병문안을 가 감사 인사를 전한다든지,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든지 등 대화를 통해 환자와 나의 교류를 재확인하는 게 좋다. 경험에 의하면 이럴 때 대부분의 환자들이 즐거워한다. 단 너무 늦게 찾아가면 환자가 힘들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왜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됐나.

“중1 때 누님이 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고민했다.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재수를 해 의대에 진학했다. 전공을 뭐로 할까 선배들에게 상의했더니 가정의학이 가장 적합하다고 조언해주더라. 전공의 입국식 때 인사를 하며 ‘호스피스 하러 왔다’고 했더니 모두 웃더라. 당시만 해도 호스피스는 성직자들이나 간호사들이 전담하는 것으로 여겨질 때다.” 

◆ 윤영호는

△서울대 의대 졸업, 석·박사 △국립암센터 사회사업호스피스 실장 △미국MD 앤더슨 암센터 객원교수 △서울대 의대 건강사회정책실장 △서울대 의대 암통합케어센터 및 완화의료센터 교수 △저서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2015·공저)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2014)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2012)


만난 사람=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