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미규명 사건 해결 과학수사 우수사례 10건 선정 

2011년 10월 15일 이른 아침 경기 안양시 한 주택에 불이 났다. 방에서는 상반신에 화상을 입은 집주인 A(54ㆍ여)씨와 전신이 불에 탄 내연남 B(57)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누군가 B씨의 몸에 미리 준비해 둔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 상황이었지만 피해자이자 유일한 목격자인 B씨는 사망했다. A씨는 "다른 여자 문제로 크게 다퉜지만 나는 방 밖에 있었고 B씨가 담뱃불을 붙이겠다고 라이터를 켠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미궁에 빠지는 듯했던 화재 원인은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 과학수사담당관실 화재분석팀과 진술분석팀이 나서면서 조금씩 분명해졌다. 두 팀이 B씨의 시신, A씨의 화상, 현장 불길의 흐름, 진술 내용을 전면 재검토해 "A씨가 불을 붙였다"는 결론을 내놓은 것. ▲A씨의 화상이 오른손에서 목덜미로 이어진 점 ▲불이 문에서 방 안쪽으로 진행됐다는 점 ▲방 안에서 있던 B씨가 불을 붙였다며 방 밖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A씨가 유증기로 인한 화상을 입을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됐다. 검찰 관계자는 "진술분석팀의 추가 조사에서도 A씨의 진술은 번번이 현장 증거와 엇갈렸다"고 말했다. 

A씨는 계속 혐의를 부인했지만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A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이 사건 기소 여부를 검토한 시민위원회 역시 A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사건 발행 22개월 만인 올 8월 말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대검 NDFC는 이처럼 과학수사기법을 활용해 원인 미규명 사건을 해결한 '3분기 과학수사 우수사례' 10건을 선정했다고 24일 밝혔다. ▲피의자가 복면으로 사용한 피해자의 옷 속 DNA를 찾아 성폭행 미수범을 밝혀낸 사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범인의 DNA를 토대로 15년 만에 규명된 스리랑카인의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건 등도 우수수사로 꼽혔다. 

대검 중수부 과학수사운영과에 뿌리를 둔 NDFC는 법의학 및 과학 수사 연구소로 지난해 11월 출범했다. 140여명의 검사 및 전문요원이 검찰의 과학수사(법화학, 문서, 심리, 영상, 음성, 화재 분석), 디지털수사, DNA수사, 사이버범죄 수사 등을 지원한다. 

shine@hk.co.kr





ㆍ시신이 병원에 와야 검안 시작

ㆍ최초 현장 조사하면 다를 수도

ㆍ“부검뿐인 ‘반쪽 제도’ 보완을”


2010년 4월 인천의 한 모텔에서 발생한 일명 ‘산낙지 살인사건’은 지난 9월 대법원이 용의자였던 숨진 여성(당시 21세)의 남자친구 김모씨(32)에게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하면서 영구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게 됐다. 검찰은 보험금을 노린 김씨의 계획적인 살인으로 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근무하며 이 사건을 맡았던 전석훈씨(44)는 “사망 당시 최초 현장에서 법의학 전문가가 검안·부검을 했다면 판단이 달랐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검안은 시각적으로 사망·사고 원인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부검은 해부를 통해 사인을 밝히는 일이다. 이 사건의 사망 여성은 애초 경찰이 단순 질식사로 처리해 유족들이 화장을 했고 뒤늦게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한국의 법의학자들은 검안이나 부검에 대한 독자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법의학자들은 변사자가 병원으로 옮겨진 뒤에야 볼 수 있고 경찰도 사망 사고 등 현장에서 이들을 거의 찾지 않는다. 민간 법의학 의원이 있지만, 부산·울산·대구와 서울 용산·동대문 등 전국에 5곳뿐이다. 

13년간 국과수에서 일하며 3000여차례 부검을 해온 전씨는 “법의학은 현장 검안과 부검의 두 축으로 이뤄진다고 배웠지만, ‘반쪽짜리 법의학’밖에 할 수 없는 우리 현실에 자괴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함께 근무했던 김형중씨(43)와 올해 국과수를 나와 지난 9월 서울 동대문구에 ‘한국법의학 서울의원’을 차렸다. 전씨 등은 경찰 요청 시 언제든 변사 현장에 출동할 수 있도록 365일 밤낮으로 대기한다.

전씨는 “시신에서 비전문가가 놓치기 쉬운 흔적은 많다. 법의학자가 현장에 나가지 않아서 얼마나 많은 억울한 죽음이 묻히고 있는지 알 수조차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울산에서 계모 폭행으로 8세 여아가 숨졌을 당시, 지역 민간 법의학 전문가가 변사 현장에 검안을 나갔다. 계모는 “아이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 했지만, 법의학 의사의 검안과 부검 결과 오랜 시간에 걸친 학대 사실이 밝혀졌다. 타살이 아니더라도 보험 판정 등 문제 때문에 유족들이 질병·상해·산업재해 여부 등 정확한 사인을 알아야 할 경우도 많다. 

김씨는 “유족도 현장 검안의 중요성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소송 등 더 복잡한 방식으로 갈등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일본 등지에서는 검시법·법의관법이 마련돼 있으며 변사 현장에 무조건 법의학 전문가가 동행해 검안토록 하고 있다.

peel@kyunghyang.com








마음을 읽으면 죽음이 보인다

우울증·실연… 한마디 요약은 얼마나 무지한가

자살자 삶 재구성해 원인 밝히면 예방책도 가능 

한국인은 지난해 하루 평균 38.8명이 자살했다. 한 해 자살자는 총 1만4,160명으로 전년보다 11% 줄었다고 통계청은 지난주 밝혔다. 인구 10만명당 28.1명이라는 이 자살률은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최고이며, 회원국 평균(12.5명)의 두 배를 넘어선다. 

'자살 예방의 날'인 지난달 10일 보건복지부는 "심리적 부검을 통해 자살예방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심리적 부검이란, 한마디로 자살한 이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살자의 행적을 수집하고 유족 등 주변인 면담을 통해 자살의 사례별 원인과 매커니즘을 심층적으로, 또 다각도로 파악한다. 미국 핀란드 등 외국은 자살예방책 마련을 위해 심리적 부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심리적 부검으로 자살 원인을 밝힐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그렇다"고 답한다. 심리적 부검은 또 성적고민, 우울증, 신병비관 등 '한 마디로 요약ㆍ정리'되는 수사당국의 자살 원인 발표나 언론의 추정 보도가 얼마나 무지하고 무책임하고 심지어 난폭한 짓인지도 드러내준다. 연구자들은 고인의 삶을 재구성해보면 복합적인 요인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특정 시점에서 삶의 위기가 고조되는 징후를 뚜렷이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몸에 병이 들면 온갖 치료법을 찾으면서도 마음의 위기는 방치하는 현실,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사람이 아무런 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결국 자살에 이르는 사례들을 그들은 답답해했다. 

국내의 심리적 부검은 이제 시작 단계다. 한국형 자살(예방)모델이라도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역 차원에서, 또 특정 직종이나 직능 단위에서, 다양한 자살사례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심리적 부검은 유족의 벽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 심리적 부검을 위해서는 가족의 동의와 협조가 필수적인데, 실제로 유족들은 "왜 죽은 사람 얘기를 꺼내냐"며 말문을 닫기 일쑤라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자살을 외면하는 문화가 또 다른 자살을 막는 노력을 가로막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우선 자살에 대한 완고한 인식의 터부를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리적 부검은 그런 점에서, 자살 예방 모델이라는 결과 못지않게 그 과정을 통해 자살에 대한 개인적 공동체적 내성을 강화한다. 자살을 여타의 사망 원인처럼 특별한 경계심 없이 언급하고 들여다볼 수 있을 때 자살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고인의 삶 되짚는 '치유의 퍼즐'… 또 다른 비극을 막는다



■ "자살자 심리적 부검 활성화" 목소리

의료기록ㆍ휴대폰 메시지 확인… 유가족과의 면담 등서 단초

핀란드 시행 이후 자살률 급감… 성공적 사례로 거울삼을 만

터부시하는 한국 인식변화 필요… 남은자들 트라우마 씻는 효과도

류호성기자 rhs@hk.co.kr

"남성 유가족은 남성이, 여성은 여성이 만나는 게 좋은 것 같네요." 

"유가족이 느낄 심리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면담 참관은 가급적 줄이죠. 답변에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삼가는 게 좋겠어요."

지난달 경기 수원시 아주대 사회과학연구소 회의실에 연구원 5명이 모였다. 이들은 6월부터 보건복지부 연구 용역으로 '심리적 부검'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유족을 더 잘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는 중이었다. 서종한 아주대 전임연구원은 "가족의 자살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워낙 강하기 때문에 유가족을 설득하고 면담하는 일이 특히 어렵다"고 말했다. 

사인(死因)이 명확하지 않을 때 부검을 한다. 하지만 의학적 사인이 확인되더라도 왜라는 물음표가 빠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자살이 대개 그렇다. 유서로도 이유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을 때가 많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유서를 분석해보면 이상한 불일치가 발견된다. 유가족들도 유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많다는 것이다. 그런 불일치를 이해하기 위해 심리적 부검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심리적 부검은 대개 고인이 남긴 흔적과 남은 이들의 입을 통해 고인의 삶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우선 경찰이나 지역 자살예방센터 등을 통해 심리적 부검 대상자를 선정하고 유가족의 연락처를 확보한다. 경찰의 협력을 얻어 자살을 전후한 사실관계 등을 확인하고, 고인과 관련된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수집한다. 의료 기록, 재산 상황, 인터넷에 쓴 글, 휴대폰 메시지…. 유가족 등 고인과 가까운 이들과의 면담은 심리적 부검의 핵심 절차다. 면담 내용은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학력부터 병력까지 고인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한다.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산 경험은 있는지, 원하는 직汰?가졌는지, 친구는 몇 명인지, 자해를 시도한 적은 있는지…. 

심리적 부검은 미국 뉴욕에서 1934~40년 경찰 93명이 잇달아 자살하자 원인 규명을 위해 처음 시도됐다. 이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다양한 집단에 대한 심리적 부검이 실시돼 연구 결과가 자살 예방에 활용됐다. 가장 체계적이고 성공한 심리적 부검으로는 핀란드의 사례가 거론된다. 핀란드는 국가 차원에서 1987년 4월부터 1년간 발생한 자살 사건 1,397건 전체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실시했다. 연구 결과 자살자의 3분의 2 이상이 우울증 증상이 있었지만, 이 중 85%는 자신이 우울증을 앓는지도 모르는 채 방치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핀란드 정부는 보건소나 병원을 찾는 모든 환자를 대상으로 우울증 검사를 실시하고 상담ㆍ약물 치료를 받게 하는 등 적극적인 예방정책을 폈다. 1990년 10만명당 30명에 달했던 핀란드의 자살률은 2011년에는 16.4명으로 떨어졌다. 

한국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심리적 부검을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한국에서 심리적 부검은 좀처럼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 2009년 보건복지부와 자살예방협회가 경찰의 협조를 얻어 최초로 본격적인 심리적 부검을 시도했지만, 100건을 목표로 했던 이 연구는 7건의 결과를 내놓는 데 그쳤다. 유가족들의 거부 때문이었다. 당시 연구 책임을 맡았던 홍강의 서울의대 정신의학과 명예교수는 당시를 떠올리며 "굉장히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동양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살을 창피하게 여기고 숨기려고만 한다. 또 가족의 정신 질환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저항감도 크다. 하지만 책에 의존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할 게 아니라 한국에 어떤 특이한 사정이 있는지 알아야 예방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심리적 부검 연구자들의 우선 과제 역시 자살에 대해 말하기조차 거부하는 분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고인 사망 후 3개월 이상의 애도기간을 두고 유가족을 접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아주대 연구팀이 보내는 면담 안내문에는 '말하기 어려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모든 기록은 비밀 유지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충남에서 심리적 부검을 진행하고 있는 최명민 백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검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심리사회학적 원인조사라는 용어를 쓰고 마을 이장이나 보건소장 등 유가족을 잘 아는 분들을 통해 접촉을 한다"며 "이렇게 해도 면접 현장에서 안 되겠다고 하는 분들도 있고 결국 10명 중 8, 9명은 면담을 거절한다"고 말했다. 핀란드 심리적 부검에서 가족 면담 비율은 83%였다. 

전문가들은 자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유난한 터부가 역설적으로 심리적 부검이 필요한 이유라고 지적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이영문 국립공주병원장은 "우리 나라는 학생이 자살하면 부모가 얼마나 들볶았겠느냐고 하고 노인이 그러면 자식들을 불효자라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비난을 돌리면 안 된다. 자살에 이르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사회문화적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자살을 개인의 책임으로 몰고 가는 것만 줄여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정수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유가족들도 큰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심리적 부검을 통해 속에 담았던 것을 풀어놓으면 유가족의 정신적 치료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자살은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심리적 부검 자체가 자살 예방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최명민 교수는 "면담 후에는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던 얘기를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rhs@hk.co.kr





우리나라 사법상 최초로 실시한 ‘심리적 부검’에 참여한 원주세브란스 기독병원 민성호 교수





[청년의사가 만난 사람]


지난 2009년 11월 중년 남성이 ‘내 죽음은 사무실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유서 한 장을 남기고 부산소재 22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지방 국세청 공무원이었던 김모씨다. 유가족은 유서를 근거로 김씨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며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 측이 이를 거절하자 소송을 했고, 1심은 업무상 과로가 자살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지난 12월 시행된 2심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2심 재판부가 심리적 부검을 통해 김씨의 자살 원인이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라면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사법사상 처음으로 시행된 심리적 부검 사례다. 그 중심에는 원주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민성호 교수가 있다. 앞으로는 심리적 부검이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의 원인을 규명할 때 널리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Q. 심리적 부검이라는 말이 생소한데, 간략히 설명해 달라.

- 많은 사람들이 미국 수사드라마 ‘CSI’를 통해 신체적 부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신체적 부검이 사망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시신을 해부하거나 생화학적 방법으로 조사하는 것이라면, 심리적 부검은 타살인지 자살인지 규명되지 않은 경우 혹은 자살로 추정될 경우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심리적 부검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이번 사건과 같이 재판과정에서 사망자의 자살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게 있고, 또 하나는 국가나 지역사회에서 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보건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자살원인을 규명하는 역학조사 차원의 심리적 부검이 있다.


Q. 재판에서 심리적 부검을 시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던데.

- 역학조사 차원의 심리적 부검은 몇 년 전부터 시도된 적 있지만 재판과정에서 시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재판에서도 심리적 부검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1934년부터 1940년까지 뉴욕경찰 93명의 잇따른 자살에 대한 원인을 규명한 게 (심리적 부검의) 시초이며, 핀란드는 높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심리적 부검에 대해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Q. 지금까지 이와 같은 자살은 수도 없이 일어났을 텐데, 왜 이번 사건에서 처음으로 심리적 부검이 시행된 것인지.

- 대개 자살은 자신의 성격, 음주습관, 가족관계, 대인관계, 경제적 요인 등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공무원 김씨는 이같은 요인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판부도 ‘업무 과다로 인한 우울증’이 자살의 원인이라고 본 것 같다. 재판부도 심리적 부검이라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외국에는 활성화 돼 있는 것을 알고 처음으로 시도해보려 했던 게 아닐까.


Q. 이번 심리적 부검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 지난해 5월 서울고등법원 담당판사로부터 심리적 부검을 의뢰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지난 2008년 원주시 정신보건센터(現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자살예방 사업을 시작해 1,100여명의 자살지도자 사례관리를 해온 점, 지난 2009년에 ‘자살사망자 심리적 부검 및 자살시도자 사례관리서비스 구축방안’이라는 보건복지부 연구에 참여한 게 인연이 됐던 것 같다.


Q. 심리적 부검을 하는 데 있어 어려운 점은 없었나.

- (심리적 부검을 하는 데 있어서) 망인의 유가족을 만나는 게 가장 어렵다. 유족들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망인을 다시금 떠올리는 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족들이 면담을 회피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회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힌 이들 또한 면담 자체를 거부하는 특징이 있다.


Q. 심리적 부검은 신체적 부검과 달리 망인(亡人)의 주변 사람들과 면담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객관성 및 신빙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 맞는 말이다. 2~3분 정도의 면담 조사만으로는 안 된다. (망인 주변의)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과 면담이 이뤄져야 할 뿐 아니라 (몇 시간을 면담하더라도) 일치되는 내용만 선택, 취합해야 한다. 그리고 단순히 표면적인 내용 이외에 심층적이고 무의식적인 영역까지도 검토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한 전문가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번에 업무과다로 인한 우울증을 앓다 자살한 공무원 김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3개월 전부터 밥맛이 없어지고 체중이 급격히 빠져 바지 사이즈가 34인치에서 31인치로 줄었다고 한다. 이는 면담과정에서 부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이지만 정신과적 측면에서 (우울증 진단기준을 적용했을 때) 김씨가 매우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일반인이나 경찰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세심히 살피게 된다.


Q. 이번 심리적 부검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그동안은 재판과정이 개인이 아닌 ‘일반인’이라는 ‘평균적인 기준’에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에는 개별화된 감정소견을 갖고 망인을 평가했다는 점이 가장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재판이 ‘개인맞춤형 재판’이란 느낌이다.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는 경제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국가와 기관의 성장뿐 아니라 개인의 건강과 행복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망인의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가 주어졌고 이로 인해 우울증과 같은 건강의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직장은 직원 개인의 건강을 전혀 돌보지 못했다. 이제는 국가와 고용주가 국민과 직원의 건강에 관심을 갖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할 때다.


Q. 심리적 부검에 참여한 것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 (심리적 부검으로 주목을 받는 것에) 솔직히 걱정스러운 부분이 더 많다. (심리적 부검을 하는 의사가 아니라) 자살예방 사업을 하는 전문가 입장에서 이번 재판이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자살시도 이유를 업무와 관련짓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쉽게 자살을 시도할까봐서다.


Q. 2014년도 보건복지부 예산 가운데 ‘심리적 부검 제도’ 도입에 10억원이 편성됐다.

-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심리적 부검이 시도됐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법, 제도적, 비용 등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 차원의 심리적 부검에 대한 지원은 국가나 지역사회의 자살 특성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고무적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금전적인 지원 이전에 법과 제도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loveleira@docdocdoc.co.kr


 

 

 

 

두 아이를 둔 한 가정의 아내..
그녀의 직업은 검시관
죽음도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경기경찰의 이현주 검시관

그녀의 숨가뿐 하루가 시작된다.

 

 

<출처> http://youtu.be/t_EFcqCZQ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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