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게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와 다급한 남자의 외침이 자정 무렵 다세대주택 골목의 정적을 갈랐다. “누구세요? 이 시간에….” 잠에서 깬 A(51)씨가 놀라서 뛰어나왔다. “불이 났어요. 집에, 불이 났어요. 빨리 119에 신고 좀 해 주세요. 어머니가 안에 있는데….” 칠순 노모와 함께 사는 옆집 큰아들 김씨(53)였다. 그의 집은 이미 강한 불길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A씨는 119에 신고했고, 김씨는 A씨로부터 휴대전화를 빌려 동생들에게 전화를 돌려댔다. 소방차들이 출동했고 주민들은 자다 말고 뛰쳐나왔다. 동네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들어가 어머니를 구해 보라고 했지만, 두려움 때문인지 김씨는 그 자리에서 어린아이처럼 울부짖기만 했다. 얼마 후 불이 꺼졌다. 작은방에서 까맣게 타 버린 시신이 발견됐다. 김씨의 어머니(72)였다. 자식에게 지극정성이던 노모를 잃은 형제들은 목 놓아 울었다. 김씨는 경찰에서 “동료와 술을 마시고 들어왔는데 현관을 열어 보니 집 안에 불길이 가득했다.”고 넋이 나가 말했다.

지난해 5월 16일 발생한 경기 파주시의 화재 현장은 참혹했다. 10평 남짓한 작은 집이 무엇하나 건질 것 없이 모두 타거나 녹아내려 있었다. 화마의 흔적만큼 시신의 훼손도 심했다. 경찰은 가장 많이 탄 안방에서 불이 시작됐을 것으로 판단했다. 현장감식반은 노인의 사망 원인이 직접적으로 화재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간이 검사를 했다. 시신의 콧속에 빨대를 끼운 후 그 속으로 면봉을 밀어 넣었다. 화재가 났을 당시 사망자가 호흡을 하고 있었는지 아닌지를 가리는 검사다.

하지만 기도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면봉에는 그을음이 묻어나지 않았다. 화재로 사망한 사람의 기도에 매연이 없다? 그것은 이미 죽거나 죽임을 당한 뒤 화재를 만났다는 얘기다. 감식반원들은 섬뜩해졌다. 결국 시신은 단순 화재 사망으로 처리되지 않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넘어갔다.

보통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은 신체가 심하게 불에 훼손된 채 발견된다. 하지만 모두 화상이 직접적인 원인이 돼 죽는 것은 아니다. 화재 사망의 원인은 대략 세 가지다. 가장 흔한 것이 공기의 불완전 연소로 인해 발생한 일산화탄소 또는 내장재가 타면서 발생한 유독가스(암모니아, 염소 등)를 들이마시는 것이다. 특히 일산화탄소는 치명적이다. 공기 중 일산화탄소의 농도가 30% 이상인 곳에서 30초 동안만 숨을 쉬어도 혈중 일산화탄소량이 치사량을 넘는 75%까지 올라간다. 

두 번째는 불길이 번지면서 산소가 대량으로 한꺼번에 사라지면서 질식사하는 경우다. 선박같이 밀폐된 공간에서 큰 화재가 났을 때 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세 번째가 화염에 휩싸여 곧바로 소사(燒死)하는 것인데 그 비율은 예상 외로 낮다. 하지만 어떻게 죽음에 이르든 살아 있는 상태에서 화재를 만난 사망자의 기도에는 그을음이 남는다. 불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발버둥친 최후의 생활반응(生活反應)이기 때문이다.

감식반의 보고를 받은 경찰은 곧바로 아들 김씨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반드시 30대 초반에 4세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살해했던 전과기록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술에 아귀가 맞지 않았다. “동료와 술을 마신 후 버스를 타고 자정쯤 집에 와 보니 불이 나 있었다.”고 했지만 실제 술자리가 끝난 것은 이보다 3시간 앞선 오후 9시였다. 아무리 불길과 연기가 심하다고 해도 어머니를 구해 보려는 시도가 없었다는 점도 의심스러웠다.

불이 났다며 A씨 집에 찾아와 전화를 걸면서 어머니의 사망을 기정사실화한 것도 이상했다. 그는 동생들과 통화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말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심증일 뿐 물증이 없었다. 수사는 조심스러웠다. 극한의 슬픔에 빠져 있는 피해자 유족을 수사선상에 올리기는 늘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2개월이 갔다. 차츰 사건 당시 김씨의 알리바이가 조작됐다는 증거들이 나타났다. 자정쯤 집에 왔다는 그를 “화재 발생 두 시간 전인 오후 10시쯤 집앞 슈퍼마켓에서 봤다.”는 증언이 나왔다. 목격자는 당시 옷차림부터 운동화, 김씨가 흥얼거린 노래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사망한 노모와 아들이 큰 소리로 싸우는 걸 들었다는 동네 주민의 증언도 있었다.

부검 결과도 정황 증거를 더했다. 사망자의 목과 턱밑에서 작은 출혈이 확인됐다. 폐에서는 울혈과 부종이, 기관지 안에서는 거품이 발견됐다. 흔적은 약했지만 모두 목 졸려 질식사한 시신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이었다. 거짓말 탐지기도 김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응했다.

그 스스로 자승자박한 대목도 있었다. 알리바이에 대한 경찰의 추궁이 이어지자 교통카드 회사에 전화를 했는데 통화 내용이 고스란히 녹음됐다.

“듣자 하니 버스를 타고 내린 시간이 기록으로 남는다는데 진짜인가요.”

“맞습니다. 고객님.” 통화 내용에는 그의 한숨 소리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낳아 주고 길러 준 어머니를 살해하고 범행을 감추기 위해 시신과 집에 불까지 지른 패륜범. 범행 이유가 수사관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들었다. 잦은 음주에 어머니가 심하게 훈계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whoami@seoul.co.kr





“여기 방이동(서울 송파구)인데요, 노래방 문 좀 따주세요.” 지난해 9월 20일 밤 10시. 119신고센터에 20대 여성의 다급한 요청이 들어왔다. 닷새 전 노래방 문을 연다고 나간 A(당시 46세)씨를 애타게 찾던 첫째딸(당시 28세)의 목소리였다. 구조대가 급히 달려간 지하 노래방은 앞뒤로 굳게 철문이 닫혀 있었다. 119 대원이 한참을 씨름하던 잠금장치를 절단하고 문을 열자 고약한 냄새가 확 풍겼다. 뭔가 썩는 냄새였다. 노래방 주인 A씨가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자살이었다. 한눈에 들어온 현장은 그랬다. 시신이 누워 있던 노래방 내실 탁자에서는 유서가 담긴 흰 봉투와 먹다 남은 소주병 2개가 나왔다. A4 용지 2장 분량의 유서에는 구구하게 긴 사연이 담겨 있었다. 1년 전 남편 유산으로 시작한 노래방이 생각만큼 잘 안돼 속상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3남매가 엄마 마음을 몰라줘 섭섭했다는 사연, 자신은 재미있게 살지 못했지만 자식들은 서로 의지해 가며 정겹게 인생을 살라는 당부 등이 이어졌다. 노래방과 살던 집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숨겨놓은 통장은 어디에 있는지, 출금 비밀번호는무엇인지 등도 적혀 있었다.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인쇄돼 마지막에 도장까지 찍힌 유서는 남이 썼다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세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자살이라고밖에는”… 유서 2장과 소주병

A씨의 왼쪽에는 피묻은 칼이 놓여 있었다. 노래방 부엌에 있던 식칼이었다. 칼은 명치와 왼쪽 손목 2군데에 상처를 냈다. 치명상은 명치 쪽인 듯했다. 정황상으로 보면 A씨는 평소에 자살을 고민해 왔고, 결국 어느 날 노래방 문을 잠그고 술을 마신 뒤 1차로 손목을 2차례 긋고 나서 다시 명치 부위를 스스로 찌른 것으로 보였다.

자칫 억울하게 묻힐 뻔했던 A씨 피살의 한을 풀어 준 사람은 베테랑 형사였다. 자살 치고는 현장이나 시신이 지나치게 깔끔했다. A씨가 자살한 쪽방은 성인 2명 정도가 겨우 누워 잘 수 있는 크기. 그나마 가로로는 누울 공간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좁은 방이었지만 벽에 피가 튄 흔적이 전혀 없었다. 바닥에 고여 있는 혈액의 양도 이상하리만큼 적었다.

●“최후 순간에는 주저하기 마련, 그러나…”

피해자의 몸에 난 상처도 주저흔(hesitation marks) 하나 없이 지나치게 깨끗했다. 주저흔이란 자살하려는 사람이 한번에 치명상을 만들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자해한 흔적을 남기는 것을 말한다. 주로 치명상 주위에 생기는데 송곳에 찔린 듯한 작은 것부터 1~2㎝까지 많게는 수십개가 남기도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사망자의 몸에 칼에 찔린 상처가 많고 외부로 흘러나온 혈액이 많으면 타살로 간주하기 쉽지만 자살인데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흉기로 자살하려는 사람은 고통 없이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치명적인 곳을 못 찾거나 주저하게 돼 스스로 여러 곳에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 자녀도 “자살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A씨가 워낙 솔직하고 화통해 우울증이나 자살과는 거리가 먼 데다 유서도 어색하다고 했다. 유서에는 “내가 글씨를 잘 못써 PC방 점원에게 워드(워드프로세서)를 배웠는데, 유서 쓰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자녀들은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엄마가 어느 결에 워드를 배웠는지도 의문이고, 굳이 유서를 워드로 작성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유서 속 단어들이 평소 엄마의 말투와 전혀 달랐다.

●생활반응이 말해 주는 사건의 진실

A씨의 시신에 대해 부검 결정이 났다. 치명상은 가슴에 난 창상이었다. 찔린 곳은 한 곳이었지만 칼이 만든 상처의 끝부분이 묘하게 변해 있었다. 치명상을 입히려고 같은 곳을 정확하게 두 번 찔렀을 때에나 생기는 현상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스스로 치명상이 난 곳을 정교하게 찾아 두 번 칼을 찌를 리 없다.

자살 현장이 조작됐음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는 시신 왼쪽 손목의 상처였다.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다는 A씨의 상처에 ‘생활반응’(生活反應·특정 충격에 대해 살아 있는 몸이 보이는 반작용)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적은 출혈량 등을 감안했을 때 살아있는 상태에서 손목을 그었다기보다는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만든 가짜 상처로 결론났다.

하지만 의문은 계속됐다. 범인이 누구이기에 통장 비밀번호는 물론이고 남의 가족사를 줄줄이 꿰고 있을까. 그렇다면 범인은 3남매 중 하나일까. 주변인물을 대상으로 수사가 시작됐다. 정작 범인 색출은 싱겁게 마무리됐다. 유서 봉투에서 둘째 딸(당시 25세)의 헤어진 동거남(당시 25세)의 지문이 나왔다. A씨 사망현장에 그가 있었다는 얘기다. 친척집에 숨어 있던 동거남은 순순히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그는 1년 넘게 A씨의 둘째딸과 동거를 해왔지만 최근 자주 다투면서 때리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사건이 나기 한달 전 동거녀가 가출하자 노래방에 찾아가 “딸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A씨에게 면박을 당한 뒤 모욕감에 범행을 결심했다. 그는 “결혼식은 못 치렀지만 1년 이상을 사위처럼 살면서 집안 대소사를 챙기고 상주 노릇까지 했는데 장모가 나에게 너무 모질게 대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whoami@seoul.co.kr






자살로 위장 하여 살해, 드라마 '적도의 남자' 中  <출처> 엑스포츠뉴스




실제 다른 원인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후 이를 감추기 위해서 목을 매다는 소위 '위장의사' 의 경우는 그리 흔하지는 않다. 다만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유의하여 항상 조심하여야 하며, 특히 교사와 같이 끈을 이용하여 경부를 압박한 경우에 구별이 중요하다. 다음과 같은 점들이 이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된다.


㉠ 현장에서 스스로 목을 맬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집이나 직장 등 자기가 친숙한 환경을 흔히 선택하며, 위장의사의 경우에는 범죄를 은폐 할 목적으로 현장을 과도하게 꾸미는 경향이라고 한다.


㉡ 현수점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위장의사에 있어서 의사의 경우에서 보다 심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 의사의 경우에서는 여러 다양한 체위에서 사망에 이를 수 있는데, 위장의사의 경우에는 완전의사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한편 완전의사의 경우에는 목을 매기 위해 디딜 수 있는 받침대가 있는지 여부가 감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삭흔과 관련하여 끈과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느 것은 중요하다. 스스로 목을 맨 경우에는 끈과 피부 사이에 이물을 보지 못함에 비해 위장의사의 경우에는 끈과 일치되지 않는 또다른 삭흔을 보며, 이물을 보는 경우도 흔하다.


㉤ 압흔 검사가 도움이 될 수 있다.


㉥ 삭흔과 유사한 소견들이 여러 간섭현상에 의해 유발될 수 있음을 주의하여야한다. 비만한 사람이나 어린이의 경우에는 목 피부가 서로 가깝게 밀착됨으로 인해 시반과 유사하게 관찰될 수 있다. 한편 목이 꽉 끼는 옷을 입었을 경우에는 옷에 의해 삭흔과 유사한 소견이 나타날 수 있다. 


㉦ 삭흔 주위 손상 여부를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의사의 경우에는 삭흔 이외 별단른 소견이 관찰되지 않음에 비해 다른 원인에 의한 사망의 경우에는 반항 등에 의한 손상이 관찰되는 경우가 흔하다.



<츨처> 강대영. 법의학. 정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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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범죄와의 전쟁’은 진화하고 있다. 인간의 지혜에만 의지해 사건의 진실을 밝혔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첨단과학이란 도구를 이용해 범죄의 흔적을 찾는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수사관들이 범죄 현장에서 발견한 발자국을 정밀조사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한국판 CSI, 과학수사의 모든 것

《 “Crime Does Not Pay(범죄는 득이 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청와대에서 법무부와 안전행정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영어 문구를 인용하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에도 수차례 ‘안전한 나라 행복한 국민’을 강조하며 치안 강화를 강조했다.

경찰은 최근 주민등록시스템에 저장된 지문 4억여 개의 해상도와 선명도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기초로 살인 강도 강간 등 중요 미제 사건에 대해 지문을 다시 검색했고 미제 사건들을 하나씩 해결해가고 있다. 2000년 10월 발생했던 서울 구로구 커피숍 여주인 살인사건의 범인 고모 씨(41)를 공소시효 2년이 남은 지난해 5월 검거한 것도 과학수사로 이룬 개가였다.

경찰은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라는 명제를 믿는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완전범죄를 꿈꾸며 범행의 흔적을 지우려 애쓰지만 대한민국 경찰 과학수사팀은 첨단 장비를 사용해 아주 작은 단서까지 찾아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찰은 범죄 피해자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지능범들과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Korea Crime Scene Investigation), ‘한국판 CSI’의 현장을 들여다봤다. 》  

▼ 온 힘 다해 움켜쥔 손바닥, 그 안에 사건 풀 열쇠가… ▼

속옷 벗겨졌지만 정액 검출안돼… 주인없는 담배꽁초에 혼선 가중

시신 손에서 나온 티셔츠 섬유… 우연히 묻은걸로 보기엔 많은 양

‘반쪽 증거’ 수사에 반전이…


이문철(가명·33) 씨가 눈을 감았다. 

“사건 발생 당일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경찰의 의심이 이 씨를 향했다. 이 씨는 표정 없는 답을 내놨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어요.” 

징검다리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해 9월 22일 오후 11시경. 그날 이 씨의 아내가 죽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주상복합아파트 ○○○호.

잔뜩 부은 아내의 얼굴에는 처참함만 남았다. 팬티는 발목에 가까스로 걸려 있었다. 브래지어는 벗겨진 채였다. 세 딸에게 물리던 젖가슴에 시퍼런 멍이 몇 다발씩 피어 있었다. 아내의 부드러웠던 살결은 부러진 갈비뼈로 구겨졌다. 사이사이 죽음의 그늘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부패가 진행된 아내의 몸속에는 가스가 찼고 높아진 압력 탓에 입가와 코밑으로 피가 새어 나왔다.

아내의 눈동자는 고집스럽게 벽 쪽을 향했다. 할 말이 있다는 듯. 그녀의 마지막 시선이 닿은 곳엔 한 살, 세 살, 다섯 살 된 딸들의 돌 사진과 결혼기념 사진이 걸려 있었다. 결혼 6년차. 남편을 만나고 세 딸을 낳기까지 보낸 많은 시간이 사진에 담겨 있었지만 아내의 죽음은 한 줄로 요약됐다.

‘목졸림에 의한 질식사. 심한 폭행으로 인한 다발성 늑골 골절 및 간 췌장 등 장기 파열, 강도 및 성폭행 시도, 심한 폭행.’ 

평온했던 밤, 아내가 죽었다

아내가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건 23일 오후 1시 반. “이 사람아, 서둘러 집으로 가보게.” 일산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아내가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는 장모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집으로 달려왔다. 전날 밤 첫째 딸 유영이(가명)를 데리고 본가에 가 있던 참이었다. 30분 거리의 집으로 급히 차를 몰며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다. 둘째 아영이(가명·3)와 셋째 수영이(가명·1)가 오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편이 도착했다. 한낮이었지만 주검이 놓인 방 안은 서늘했다. 한기(寒氣)의 의미를 생각할 틈도 없이 두 딸이 달려와 품에 안겼다. 아이의 얼굴에 남은 눈물자국이 아내의 부재(不在)를 예감케 했다. 현관에서부터 거실이 한눈에 들어오기까지는 불과 다섯 걸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불안은 현실로 바뀌었다.


거실에는 벌거벗겨진 아내가 쓰러져 있었다. “여보….” 딱딱하게 굳은 아내는 대답하지 못했다. 품에 안은 두 딸의 체온이 집 안 유일한 온기(溫氣)라는 생각이 들자 남편 목덜미에 소름이 스쳤다.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관에 ‘출입금지 POLICE LINE 수사 중’이란 노란 테이프를 붙이고 나서야 이 씨는 아내의 죽음을 실감했고, 오열했다.

아내의 다리 쪽에서 담배꽁초가 나왔다. 양 젖가슴에는 침이 묻어 있었다. 음모와 머리카락이 시신의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아내의 몸에서 흘러내린 오줌이 이불에 흥건했다. 장롱 서랍은 모두 열려 있었고 컴퓨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주방에서 또 다른 담배꽁초가 발견됐다. 낯선 남자의 주민등록증도 나왔다. 남편 이 씨는 “아내에게 빚을…, 빚을 진 남자가 잠시 맡겨둔 신분증”이라고 했다. 남편은 온전히 한 문장을 잇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아내의 몸에 온도계가 꽂아졌다. 직장온도 33.4도, 12시간 전 사망했다는 뜻이었다. 남편이 첫째 유영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 즈음이다.

‘반쪽짜리 흔적’만 곳곳에 남았다

사건 현장에 남은 흔적은 범인의 목적을 드러내 보이기 마련이다. 단순절도, 강도, 강간, 원한에 의한 살인 등 범인이 남긴 흔적은 범행의 이유를 설명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반쪽짜리 흔적이 너무 많다.” 현장을 살핀 고양경찰서 과학수사팀장이 말했다. 집 안 곳곳에 남은 수많은 흔적은 목적이 빠진 ‘반쪽짜리’였다. 속옷이 벗겨진 아내의 몸에 정액은 없었다. 방 안을 뒤진 흔적은 있지만 귀중품은 그대로였다. 화장대와 이불 밑처럼 꼭 뒤져야 할 곳에 손을 댄 흔적은 없었다. 이상했다. 

주민등록증의 주인은 범행 추정 시간 당시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담배꽁초의 주인도 아니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제3자의 지문이나 족적(足跡)도 없었다. 수거된 음모는 모두 남편과 아내의 것이었다. 목적이 보이지 않는 반쪽짜리 흔적은 수사를 안갯속으로 내몰았다.

아내의 젖가슴에서 발견된 타액의 주인은 둘째 아영이와 막내 수영이었다. 유일하지만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목격자. “너희가 배가 고파서 엄마 브래지어를 벗겨 젖도 빨고 그런 거니? 너희가 속옷을 벗겼어?” 목격자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2개의 담배꽁초에서 검출된 유전자형과 일치하는 남성 없음.’ 

담배꽁초에 걸었던 기대가 사라졌다. 당일 집에 택배를 배달했던 배달원, 아내에게 빚을 지고 주민등록증을 맡긴 남성,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웃, 그리고 남편까지 담배꽁초 유전자(DNA) 분석 결과와 일치하는 용의자가 없었다. 주인 없는 담배꽁초는 단서가 되지 못했다. 아내의 통화 기록도, 용의자들의 스마트폰 인터넷 검색기록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는 보험에도 들지 않았다. 경찰 수사는 원점에서 맴돌았다.

경찰은 범행시간 전후로 엘리베이터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그곳에도 용의자의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전날 밤 저녁을 먹고 집을 나선 남편과 딸의 모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화면 속 남편 이 씨는 열림 버튼을 누르고 현관 쪽을 바라봤다.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었다. 첫째 유영이가 아빠와 눈을 맞췄다. ‘엄마한테 인사해야지’라는 의미를 읽은 유영이도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9월 22일 오후 11시 58분. 폐쇄회로 화면의 디지털 숫자 위로 겹쳐진 유영이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현관 앞 모습이 화면에 잡히지 않았지만 유영이의 웃음은 남편과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의 모습을 짐작하게 했다.

보이지 않았던 결정적 증거

‘변사자의 손바닥에서 채취한 테이프에서 남편이 당일 입고 있던 반팔 티셔츠 구성 섬유와 같은 보라색 계열 섬유물 발견. 동일한 두께 꼬임 및 성분 유사한 섬유가 식별됨.’

사건 발생 8일 뒤인 10월 1일. 아내의 손과 목에서 채취한 미세증거물 분석 결과가 고양경찰서에 도착했다. 사망 직전 아내가 마지막으로 만진 물건이 남편의 반팔 티셔츠라는 뜻이다. 부부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손에 남은 섬유의 양이 너무 많았다. 무엇인가 온 힘을 다해 쥐었을 때라야 남는 양이었다.

“그날 우린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애들과 같이 삼겹살을 구워 먹고 아이들을 안방에 먼저 재웠어요. 함께 TV를 보다가 아내가 잔다고 해서 큰 애만 깨워서 나왔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아내와 다투지는 않았습니까?”

“작은 말다툼이 있긴 했지만 곧바로 화해했어요. 당일 아내의 휴대전화로 보낸 ‘앞으로 더 잘 지내자’는 문자를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어떤 프로를 보셨죠?” 

“개그콘서트를 봤습니다.” 

범인 추적과 사건 해결의 핵심인 경찰의 과학수사 기법은 최첨단을 달린다. [1] 사건 현장에 남은 핏방울만으로 범행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2] 지문을 찾아 용의자를 추적한다. [3] 현장에 남은 발자국도 용의자가 신고 있는 신발의 종류, 신체조건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제공


“당일 보신 개그콘서트가 어떤 내용이었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

남편은 대답하지 못했다. 경찰은 남편의 알리바이를 증명했던 CCTV에 아내의 모습이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남편이 손을 흔들었던 곳, 아이가 아빠를 따라 손을 흔들었던 방향. 그곳에는 남편과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의 미소가 아닌, 눈조차 감지 못한 아내의 시신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경찰이 짐작한 ‘아내의 배웅’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었다.

뒤따라 발견된 또 하나의 CCTV 화면. 아내의 시신이 발견된 당일 경찰은 현장 훼손을 막기 위해 오열하는 남편을 두 아이와 함께 집 밖으로 내보냈다. 아내의 옆에서 눈물을 참지 못했던 남편은 엘리베이터에 타자 금세 태연해졌다. 언제 눈물을 흘렸느냐는 듯 무심히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고쳤다. 머리를 만지고 이를 내보이며 치아 상태를 확인했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모습이 아니었다.

다음 날 오후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사 조사실. 남편이 거짓말탐지기 앞에 앉았다. “당신이 부인을 죽였습니까?” 남편의 호흡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태연한 척 애써 가다듬은 호흡이 떨렸다. “아내를 때려서 죽게 한 게 당신입니까?” 그가 경찰의 시선을 외면했다. 거짓말탐지기의 기록계 파장이 이 씨의 맥박과 호흡을 따라 요동쳤다. “담배꽁초는 아내를 죽이기로 계획하고 미리 준비한 것이죠?” 경찰의 마지막 질문에 남편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항상 저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길 3년째. 남편은 완전범죄를 계획했다. 아내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길가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내를 향해 손을 흔드는 척한 것도, 첫째 유영이를 데리고 집을 나선 것도 모두 경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셋째를 엄마의 시신과 함께 두고 잠에서 깬 아이들이 현장을 훼손시켜 주길 바랐다. 자식들이 직접 죽은 엄마의 시신을 더럽히길 기대했다.

경찰은 “남편은 경찰 조사를 받을 때마다 꼭 범인을 잡아 달라고 울며 부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범행을 실토한 날, 남편은 울지 않았다.  

▼ 혈흔은 알고 있다… 범인 체형-자세, 도망친 속도까지 ▼

현장 주변 말라붙은 침자국에서 DNA 채취해 절도범 검거

땀방울 DNA분석해 용의자 잡고… 대변 속 장점막 세포가 단서되기도

흐릿한 CCTV 얼굴식별 잘안돼… 특유 걸음걸이 분석 기법 개발


모든 사건이 경찰의 바람처럼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도 수많은 사건이 ‘장기 미제’로 남아 있다. 그중 1986년부터 5년간 10명의 부녀자가 성폭행당한 후 살해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지금도 대한민국 경찰에 깊은 흉터로 남아 있다. 

역대 최대 경찰력이 동원된 사건이었다. 당시 경찰은 사건 수사에만 연인원 200만 명이 넘는 인력을 투입했다. 조사한 용의자와 참고인이 2만1280명에 이르고 지문 대조만 4만116명을 했다. 하지만 경찰이 알아낸 단서는 ‘20대 중반의 B형 남성. 165∼170cm 호리호리한 몸매’가 전부였다.

30년 가까이 지났어도 사라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고서야 경찰은 비로소 ‘과학수사’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덥수룩한 머리에 낡은 점퍼를 걸치고 동물적 직감이 최고의 수사방법이란 착각에 빠진 경찰의 모습은 사라졌다. 범죄 현장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밤낮으로 피해자 주변을 배회하며 단서가 ‘걸리길’ 바라는 형사는 이제 없다.

2014년 한국의 과학수사는 어떤 모습일까. 동아일보는 경찰청 과학수사센터(KCSI)와 함께 전국 특별시·광역시도 16개 지방경찰청에서 최근 2년 동안 강력사건 해결에 과학수사 기법이 활용된 사례를 종합했다. 사건 현장이나 피해자 신체에 남은 작은 증거를 찾아 분석하는 미세증거 분석, 핏방울의 모양을 관찰해 범행을 재구성하는 혈흔형태 분석, 손바닥에 난 손금 무늬 모양으로 범인을 식별하는 장문(掌紋) 분석, 폐쇄회로(CC)TV에 촬영된 용의자의 걸음걸이 특징을 비교·분석하는 걸음걸이 분석…. 경찰의 과학수사 기법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해졌고 범인 추적과 사건 해결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한 방울의 피에 담긴 의미

혈흔은 범행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큰 단서다. 강력사건 현장에서 발견되는 혈흔은 유전자(DNA) 분석에만 쓰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피의 다양한 성질은 과학수사의 중요한 단서로 활용된다.

혈액은 점도가 1인 물에 비해 4배 정도 점착성이 높아 끈끈하게 달라붙는다. 혈관 밖으로 나온 피는 젤리처럼 굳어진다. 굳어지기 전 혈액은 가해진 힘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으로 바뀌며 분산된다. 혈흔은 재현 가능한 흔적이며, 경찰은 혈흔의 분포상태 모양 특징 크기 등의 정보를 통해 사건 당시 상황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다.

이를테면 위에서 아래로 곧장 떨어지는 자유낙하 혈흔의 지름을 통해 피해자나 가해자의 자세를 유추할 수 있다. 또 범행도구의 움직임에 따라 벽 등에 뿌려진 이탈혈흔의 궤적은 범행 도구를 휘두른 횟수와 방향을 증명한다. 움직이면서 흘린 피는 움직인 방향으로 폭이 줄어들며 긴 모서리를 남기는데 이에 따라 범인이나 피해자의 이동 방향과 속도를 알아낼 수 있다. 

“제가 죽인 것이 아닙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거짓을 말하지도 않는다. 몸에 남은 다양한 흔적들로 오직 진실만을 얘기한다. 서울 양천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연구소 법의조사과 법의관들이 시신을 부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11년 11월 대전지법 국민참여 재판정. 대전 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도박을 하던 일행 2명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이모 씨(53)는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이 씨의 주장은 간단했다. “함께 도박을 하던 두 사람이 심하게 싸워 이를 겨우 말렸다. 옷에 두 사람의 피가 묻어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두 사람이 서로 싸우다 지쳐 죽은 것이다.”

숨진 두 사람은 얼굴이 뭉개질 정도로 심한 폭행을 당했다. 굵은 전선을 자를 때 쓰는 절단기가 범행 도구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절단기로만 80여 차례 폭행당한 흔적이 있다”는 소견을 냈다.

사건 현장에 출입한 사람은 이 씨와 죽은 2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함께 있었다는 정황만으로 이 씨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경찰은 혈흔형태 분석 전문요원을 수사에 투입했다. 벽과 천장, 방바닥 등 사방으로 튄 핏방울의 흔적을 추적해 각각의 주인을 찾아나갔다.

두 사람이 수십 차례 흉기에 맞았던 장소는 서로 달랐다. 거실과 화장실 앞, 두 사람은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벽에는 160cm 정도의 남성이 흉기를 휘둘렀을 때 보이는 혈흔이 남았다. 이 씨의 키와 같았다. 피해자들의 발바닥은 깨끗했다. 서로를 공격했다면 옷과 발바닥에도 핏자국이 남아 있어야 했다. 또 이들의 몸에 남은 혈흔은 모두 본인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였다. 이 씨는 징역 17년형을 선고 받았다.

침 똥 땀, 모두가 과학수사의 단서

피가 아니라도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흔적은 과학수사의 단서가 된다. 머리카락 침 땀, 심지어 대소변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경찰이 사건 현장 주변에서 수백 개의 담배꽁초를 수거해 DNA 분석을 하는 것도, 바닥에 말라붙은 침 자국을 찾는 것도 용의자의 흔적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4월 경기 여주의 한 귀금속 상가. 2명의 남성이 출입문 강화 유리를 절단기와 망치로 깬 뒤 15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범행에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남짓.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도착했을 때 범인들은 이미 달아난 뒤였다. 단서는 현장에서 50여 m 떨어진 곳의 CCTV 한 개뿐이었다. 경찰은 용의자들이 범행 직전 담배를 피우다 바닥에 침을 뱉는 장면에 주목했다. 현장을 다시 찾은 경찰은 침 자국에서 DNA를 채취해 범인을 검거했다.

6월에는 똥이 단서가 됐다. 범인은 가출청소년 이모 군(17). 그는 길거리를 배회하다 갑자기 배가 아파오자 막다른 골목에 들어가 용변을 봤다. 골목 구석에 쪼그려 앉아 급한 볼일을 보던 이 군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반쯤 열린 식당 주방의 창문이었다. 그는 주변에 떨어진 전단지로 대충 뒤를 해결하고는 창문으로 들어가 현금을 훔쳐 달아났다. 하지만 경찰은 대변과 함께 배출된 장점막 세포에서 이 군의 DNA를 찾아냈다.

땀으로 범인을 잡은 것은 8월이다. 경찰은 강원 춘천시 효자동 일대에서 잇따라 발생한 절도 사건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불과 8일 동안 신고 건수만 21차례. 피해주택마다 과학수사팀이 출동했지만 범인은 지문 하나 남기지 않았다. CCTV에도 범인의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피해 가정의 화장품 박스 위에 땀방울이 떨어진 흔적이 발견됐고, DNA 분석 결과 절도 전과가 있던 김모 씨(29)의 땀으로 확인됐다. 90kg이 넘는 거구의 절도범. 그는 농촌지역이나 재개발지역의 빈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경찰의 감시망을 피했지만 결국 무더위에 흘린 땀 한 방울로 덜미를 잡혔다.

아무리 얼굴을 가려도 숨길 수 없는 것

전국에 설치된 CCTV는 300만 대에 이른다. 최근 차량용 블랙박스 설치가 늘면서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범행을 감시할 수 있는 ‘눈’이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 50만 화소 이하의 저해상도 카메라로 사건 관계자의 얼굴을 특정하기에는 ‘시력’이 좋지 않다. 또 지능화된 범인들이 CCTV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마스크와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는 사례가 늘면서 CCTV의 미비점을 보완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경찰은 ‘걸음걸이 분석 기법’을 개발하고 있다. 사람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는 걸음걸이를 통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증거 분석 기법으로 영국 미국 등에서는 이미 수사 단계에서부터 걸음걸이 분석을 실시하고 있다.

국내에 이 기법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해 5월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자택 화염병 투척 사건에서 경찰이 걸음걸이 분석으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았을 때다. 애초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인 임모 씨(36)를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다. 경찰은 영국 런던 메디컬센터(LMC) 족병학과의 권위자인 헤이든 켈리 박사를 찾아가 CCTV 분석을 의뢰했다. 그는 범행 현장 장면과 임 씨의 모습이 찍힌 CCTV를 보고 ‘두 인물은 동일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범죄사실이 소명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최용석 계장은 “걸음걸이 분석 기법은 단순히 팔자걸음 여부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체형, 다리 길이 등과 같은 신체적 단서와 걷는 버릇이나 속도 같은 습관적 단서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며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국내 전문가가 양성되면 범인을 찾아내는 또 하나의 강력한 과학수사 기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부검의 1원칙 “죽은자는 거짓말 못해, 그것만 믿어라” ▼

죽어버리겠다는 마음 먹었어도… 자해 순간 망설여 ‘주저흔’ 남아

몸의 멍은 맞을때 생존상태 증거… “부검은 망자와의 마지막 대화

원통함 남지않게 살피고 또 살펴”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경찰의 과학수사기법이다. 현장에서 확보된 주변 증거들을 토대로 용의자를 좁혀가고 자백을 받아낸다.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는 경우에는 진술의 허점을 찾아낸다. 범인이 “나는 사건 현장에 없었다”고 거짓말을 한다면 ‘그가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게 과학수사의 역할이다. 죽은 사람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으니 용의자의 거짓을 하나씩 벗겨 나가는 식이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늘 살아있는 사람이다. 반면 죽은 사람은 말은 하지 못해도 진실하다. 죽은 자는 자신의 사인(死因)을 입이 아닌 몸으로 증명한다. 질식해 죽은 사람은 눈꺼풀 사이 좁쌀 같은 반점이 남고, 화재 현장에서 일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사망한 사람은 손톱이 선홍색을 띤다.



‘한국 과학수사의 본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약물·독물 및 마약 분석, 화재 감정, 교통사고를 담당하는 법과학부와 변사체의 사인 및 유전자 분석, 범죄심리 분석 등을 맡는 법의학부로 나뉜다. 특히 국과수 부검실은 죽은 자의 몸을 살펴 ‘죽음의 이유와 종류’를 밝혀내는 곳으로 국과수의 핵심 공간이다. 지난해 12월 국과수를 찾은 날, 시신 세 구가 부검실로 들어왔다.

첫 번째 시신

부검대 위에 눕혀진 첫 번째 시신은 결혼식을 올린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김모 씨(35)였다. 왼쪽 가슴 부위에는 3cm 길이로 칼에 찔린 흔적이 있었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검붉어진 속살이 비쳤다.

숨진 남편을 발견한 것은 아내였다. 생활비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던 중 아내는 주방에서 칼을 꺼내 남편을 위협했다. 하지만 아내는 위협만 했을 뿐 찌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남편이 달려들어 칼을 빼앗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 나가 보니 문 앞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자살한 시체에는 보통 ‘주저흔’이 남기 마련이다. ‘죽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막상 흉기로 찌르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망설여 치명상을 가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자해로 생긴 상처를 주저흔이라고 한다. 타살인 경우에는 피해자 상처의 길이가 칼의 폭보다 길고 상처 부위 주변이 손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구라도 칼을 피하려 움직이고, 찔린 뒤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때문이다. 대부분 찌른 방향이 일정하지 않고 비스듬한 것도 특징이다.

부검 결과 남편의 상처는 변형되지 않았다. 남편의 몸에서는 주저흔을 비롯한 다른 외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타살인 경우 흔히 발견되는 방어흔도 없었다. 칼로 공격을 당하는 순간 피해자는 칼날에 베이거나 찔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칼을 잡게 되는데 이렇게 생긴 손상이 방어흔이다. 

칼이 몸에 들어온 방향도 평행했다. 상처의 깊이는 가슴 근육까지 뚫을 정도로 깊었다. 손에 쥔 칼은 어깨와 팔꿈치, 그리고 손목 관절을 축으로 움직이는데 상처 부위는 이 범위 내에 자연스럽게 위치했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 방배경찰서는 부검 결과를 토대로 이 사건을 자살사건으로 결론지었다.

두 번째 시신

두 번째 시신은 부패 정도가 심했다. 발견 당시 입과 콧구멍에 유충이 득실거릴 정도로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사건을 수사한 담당 형사는 부검의에게 “자살인지 타살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시신이 심하게 부패한 탓이 아니었다. 발견 당시 시신의 모습이 문제였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경기 고양시 인근의 산 중턱. 머리는 나무에 묶인 밧줄에, 두 다리는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려 언덕을 내려가는 승용차에 묶여 팽팽히 당겨지고 있었다. 시신은 초등학생 키 정도의 높이로 공중에 떠 있었다. 조금만 늦게 발견됐다면 부패된 시신이 밧줄의 힘에 의해 두 동강 날 상태였다.

법의관 1명, 법의조사관 2명, 법의학사진전문가 1명 등 4명으로 구성된 부검팀이 한 사람을 부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이다. 이 시신의 부검은 2시간을 훌쩍 넘겼다. 벽과 바닥의 환풍기를 아무리 돌려대도 부검실에 찬 악취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신 발견 당시 ‘1995년에 했어야 할 일이었는데 쓰레기같이 살았다. 난지도에 버려주세요’라는 유서가 함께 나왔다. 1995년은 그의 아내가 죽은 해였다. 유서가 발견됐지만 부검팀은 외상부터 철저히 살폈다. 스스로 목숨을 이토록 잔인하게 끊는 경우는 드물었다. 혹시 모를 타살의 흔적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사망한 뒤에 까진 피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넓고 뚜렷해진다. 상처 부위가 빨리 건조돼 색이 갈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눈에 더 잘 띈다. 밧줄이 감겨 있던 목과 발목에 남은 짙은 상처 외에 다른 상처는 없었다. 부검팀은 목 아래부터 성기 위까지 절개한 뒤 갈비뼈를 들어내 장기를 살폈다. 외부의 힘으로 장기가 파열되면 배 안에 피가 많이 고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의 양쪽 눈꺼풀에서 수많은 점출혈이 발견됐다. 눈 주변의 피부와 입안에서도 무수히 많은 점출혈이 나타났다. 목 졸려 죽은 시신에 흔히 나타나는 흔적이다. 밧줄의 힘에 의해 목의 설골과 갑상연골도 부러져 있었다. 

목에 감긴 밧줄 외에 사인이 될 만한 소견을 찾을 수 없었다. ‘타살의 흔적 없음.’ 국과수는 1차 소견을 내놓은 뒤 장기의 성분검사 등 시신 생화학검사와 조직검사, 수사기록, 부검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종 감정서를 작성한다. 육안의 흔적을 넘어 화학적 흔적을 찾기 위해서다. 최종 감정서 발급까지 걸리는 시간은 3∼6주. 두 번째 시신에 대해 경찰은 자살로 잠정 결론을 내렸고 국과수의 최종 감정서를 기다리고 있다. 

세 번째 시신

넘어지거나 맞았을 때 생기는 멍도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이미 사망한 시신에는 아무리 힘을 가해도 멍이 생기지 않는다. 흉기로 시신을 훼손해도 피가 잘 나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부검대 위에 올려진 세 번째 시신 박모 씨(56). 그는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멀쩡했다.

박 씨가 죽은 채 발견된 곳은 경기 안양시의 한 신축건물 지하 1층 주차장. 박 씨는 전날 만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왔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박 씨의 아내는 “집 앞 계단에 앉아 있는 것을 봤는데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다. 다음 날 오전 8시경 박 씨는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겉보기에는 멀쩡했던 박 씨의 두개골을 열자 출혈이 발견됐다. 머리뼈는 금이 가 있었고 뇌 안쪽으로 출혈이 발견됐다. 평소 혈압이 높았지만 혈관이 터져 생긴 출혈이 아니었다. 외부 충격에 의해 생긴 흔적이었다.

부검의 첫 번째 원칙은 ‘절대 소설을 쓰지 않는다’이다. 시신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합리적인 추론만 할 뿐이다.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욕심을 내는 순간 무리하게 소설을 쓰게 되고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박 씨의 시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머리뼈에 금이 가 있는 형태와 출혈로 미뤄 봤을 때 ‘외부의 충격’은 확인됐지만 부딪힌 것인지, 누군가가 흉기로 때린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 넓은 면의 흉기로 때려 금이 났을 수도 있고, 아니면 홀로 넘어져 다친 것일 수도 있다. ‘외상성 두부손상.’ 부검팀은 자의인지 타의인지를 구분하지 않은 부검 소견을 내놓았다. 나머지 사실은 경찰의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부검은 ‘시신을 훼손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강하다. 유족들은 차가운 스테인리스 침대에 시신이 눕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병을 고쳐서 낫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죽은 자의 사인을 밝히려 칼을 대기 때문에 두 번 죽인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국과수 이수경 법의관은 “부검은 시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망자(亡者)와 마지막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면 그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작은 흔적이라도 여러 차례 살피는 것은 혹시라도 억울함과 원통함이 남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며 부검은 그런 의미에서 ‘무원(無원)’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dong@donga.com




조각난 범죄의 퍼즐을 완성하다! 

서울경찰청 프로파일러를 소개합니다 


[이하 이미지=서울지방경찰청]

 

 

 한때 필자를 열광의 도가니로 빠뜨렸던 '미국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 Criminal Minds> 다들 한번쯤은 보셨죠? 그 중에서도 저는 시즌 5를 제일 좋아합니다!!

 

애런 하치너 팀장이 제가 상상했던 프로파일러의 모습에 딱 들어맞았거든요∼ 



 [이미지=구글 퍼블릭 이미지] 


 

흔적도 증거도 없는 의문의 사건 현장마다 짠∼하고 나타나는 해결사들이죠.

 

이처럼 범죄현장과 수사 진행상황을 파악하여 범행동기를 찾고 범죄를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우리는 이들을 '프로파일러' 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서울경찰청 프로파일러 3인방을 소개해 볼까해요. 

 

그들을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두근두근 떨리네요. 함께 만나러 가볼까요? 



 

서울경찰청 3층에는 전문적 지식을 겸비한 경찰관들과 최첨단 장비가 구축된 '과학수사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이곳은 견학하는 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이기도 하죠. 과학수사계는 감식팀, 현장팀, 행동과학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프로파일러 3인방 최대호 경사(특채 1기), 이주현 경사(특채 3기), 이상경 경장(특채 3기)은 행동과학팀 소속이에요. 

 

'행동과학'이라... 직업 경찰관인 저에게도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현재 경찰에는 총 35명의 프로파일러(각 지방청마다 2∼3명)가 활동 중인데요. 



 

이들 3인방은 2004년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계기로 특별 채용된 심리학에 능통한 전문가들입니다. 

 

 

Q. 프로파일러가 된 계기가 있다면? 





특채 1기 프로파일러 최대호 경사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수능 공부를 할 때, 구석에서 심리학 서적을 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합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에 몇 권을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인간의 행동이나 심리에 흥미가 생겨 자연스레 '심리학을 전공해야겠구나' 라고 생각을 했답니다. 





[최대호 경사] 중앙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인간의 반사회적 행동 및 공격성 등 범죄와 관련된 심리에 흥미를 느꼈어요. 2004년 유영철 사건을 보면서 전공 지식을 활용해 어떻게 사회 안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던 때에 특채 공고를 보고 프로파일러가 되기로 결심했죠^^ 




특채 3기 이주현 경사는 경북대학교에서 심리학(석사)을 전공했습니다.

 

IT 계열 회사에서 2년간 직장생활을 해온 터라 초반에는 경찰조직에 적응하는데 힘이 들었다고 하는데요;;

 

[이주현 경사] 외국에서는 범죄수사에 프로파일링 기법이 적용된 게 오래전부터라 이런 직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막연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국내에는 알려진 부분이 없어 답답했었죠. 그러던 중 특채를 뽑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거에요. 사실 굉장히 특이한 직업이잖아요, 처음엔 그런 희소성에 매력을 느껴 들어오게 됐죠.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프랑스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의 격언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이상경 경장. 

 

역시 지성미가 철철 넘치네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이 경장은 어려서부터 퍼즐을 맞추는 걸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상경 경장] 흔히들 프로파일러를 '퍼즐을 맞추는 사람'이라고도 부르거든요∼ 범인의 연령, 성격, 직업, 교육수준, 신체적·육체적 특징 등의 흔적을 찾아 범죄의 퍼즐을 맞춰 간다고 해서 말이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거 맞죠?^^ 

 

Q. 프로파일러의 업무는 무엇일까요? 


프로파일러가 추구하는 목표는 범죄자의 심리와 행동적인 특성 등을 파악해 수사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좀 어렵고 생소하죠?

 

연쇄살인이나 성폭행 같은 강력범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범죄자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해서 데이터화 하는 작업이 필수라고 하는데요. 때문에 이들이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지난밤 서울시내에서 발생했던 형사 사건을 검토하는 것입니다. 밤사이에 일어난 사건사고를 하나씩 살펴가며, 프로파일러의 지원이 필요한 사건을 추려내는 것이죠. 

 

이들은 연쇄성이 의심되거나 특이하다고 판단되는 살인ㆍ강도ㆍ실종ㆍ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현장에 나가 기초 조사를 벌이기도 합니다. 




 

프로파일러는 사건현장에 출동해 범죄자가 어떻게 범행을 준비했고,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지, 시신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 일련의 범죄과정을 과학적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범행동기와 용의자의 특징 등을 분석하는 일도 합니다. 

 

아래의 사진은 이상경 경장이 현장에서 작성한 일명 '프로파일러 노트'에요. 혈흔이 어떤 각도로 튀었는지, 독특한 범행도구에 대한 내용과 용의자의 특징들이 적혀 있네요∼(우와) 

 


[현장에서 작성한 이상경 경장의 노트] 



 범인이 검거된 사건이라면 범인과의 면담을 통해 자백을 받아내기도 하고, 여죄를 밝히는 심문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일선 형사들이 범인검거에 난항을 겪고 있을 때는 용의자의 범위를 좁혀 수사가 쉽게 진행되도록 돕거나, 수사 가치가 있는 목격자의 진술을 가려내는 역할도 합니다. 




 프로파일러들은 지리적 프로파일링(Geo Pros) 시스템도 운영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 토양에 맞는 공간통계분석기법을 경찰의 범죄수사 데이터에 적용해, 범죄위험지역 예측을 통해 방범전략을 수립하고, 연쇄범죄자의 거주지가 어디인지 추측이 가능토록 해줍니다. 한마디로 범죄자의 동선을 예측하는 것이지요. 

 

사건이 없을 경우에는 장기미해결 사건을 재분석하고 확인하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행정업무도 처리하며, 강의를 하기도 합니다. 



 

유영철 사건을 영화화한 <추격자> 보셨나요? 

 

프로파일러가 연쇄살인범 지영민의 범죄 심리를 까발리는(!) 장면...

 

"대개 너 같은 새끼가 성불구거든∼"

"정을 네 거시기로 생각해 여자의 머리에 때려 박을 때의 그 쾌감...." 

 

이 장면과 대사는 영화 초반의 지영민의 충격적인 범죄 장면과 함께 뇌리에 더욱 강렬하게 어필하는 명장면이었는데요. 범인과의 면담기법이 궁금했던 필자가 물어봤습니다. 




[최대호 경사]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접근방법도 다 달라요. 처음 한두 마디 해보고, 성향을 파악한 다음에 면담을 시작해요. 피의자들이 경계를 하니까요. 일단 어색함을 무너뜨려야 해요. '라포형성'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식사는 하셨어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하는 식으로 들어가죠. 일단 시도를 하고, 그쪽에서 돌아오는 반응을 봐서 '이렇게 접근해야 겠구나'하고 짧은 순간 파악을 해야 합니다. 

 

사건마다 다르지만 면담을 할때는 보통 2명의 프로파일러가 진술녹화실에 임장하는데, 프로파일러들은 수사과정에서 조사를 받는 범인의 태도 등을 사전에 분석해 예상 면담을 준비한다고 합니다(범인의 심리적 동요를 억제하기 위함이기도 함). 이 때문에 주 면담자는 범인의 면전에서 사전에 범인과 관련된 자료를 펼쳐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프로파일러는 그것을 적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분석된 면담자료는 '스카스'(SCAS : Scientific Crime Analysis)라는 범죄분석시스템에 입력합니다. 여기에는 범인의 성장 배경과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에 사용된 수법이나 도구의 특성 등을 세부적으로 담게 되는데요. 이렇게 축적되고 분석된 자료는 비슷한 성향의 범죄가 발생했을 경우 그에 맞는 범인상을 추정하는 귀중한 자료로 쓰이게 되는 것이죠. 

 

면담 도중에 성적인 질문 등 여성으로서 수치스러운 질문을 받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요? 


 

 

[이상경 경장] 우리들이 (그 방면의) 전문가라고 생각하는지 오히려 더 편하게들 말해요. 자신의 성적인 문제, 심지어 발기부전같은 것들도 말이죠. 연쇄강간범 같은 경우 여자 앞이라고 오히려 자신의 활약상(?)을 자랑스레 떠벌이기도 해요. 아예 처음부터 "XX해봤어?"라고 물어오는 경우도 있었죠. "아가씨, 결혼 했어요?"하기도 하고. 이 일을 하다보면 아가씨도 됐다가, 아줌마도 됐다가, 애가 세 명인 엄마가 되기도 했다가 합니다.;;;; 

 

Q.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프로파일러 3인방은 한결같이 경험했던 수많은 살인사건을 한 건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주현 경사] 처음 채용되었을 때 광주경찰청으로 발령이 났었어요. 한 교회 옆에서 두 명의 신도가 각각 살해당한 사건이었어요. 기본적으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피해자 위주로 수사를 진행하거든요. 원한, 돈, 치정 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순서인데 이런 식으로 수사를 하면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이면 대략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드러나는데 이 사건에는 전혀 그런 게 없었어요.

 

당시 저희 프로파일러들은 사건이 일반적인 살해사건과 달리 범인의 개인적인 욕구에 의한 연쇄살인이라고 추정했고, 그때까지의 수사방향과 다른 방향을 제시했죠. 



 

예상대로 피해자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연쇄살인이었는데, 다문화가정에서 여성이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을 가자, 아내가 평소 다니던 교회의 도움을 받아 도망갔을 거라고 생각한 남편이 무작위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을 살해한 사건이었죠. 사실 프로파일러와 수사팀의 방향이 아주 다른 경우는 많지 않은데, 이때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고, 전혀 방향이 달랐던 일이라서 기억에 남네요.

 

[최대호 경사] 기억나는 게 하나 있네요. 몇 달 전이었는데, 방화살인사건이었어요. 술집에서 50대 남성과 우연히 술을 같이 먹게 된 범인은 피해자의 집에까지 가서 술을 한 잔 더하게 됐었죠. 그러다가 피해자가 술에 취해 깜빡 잠이 들었고, 그가 졸고 있는 틈을 이용해 손에 끼고 있던 금반지를 훔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정신을 차린 피해자에게 범행이 발각되자 집에 불을 질러 살인을 한 것이었는데요, 화재로 인해 물적 증거가 없어 유죄를 입증하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저와 이상경 경장이 피의자의 조사과정을 12시간정도 모니터링 하며 조사태도, 행동특성, 성향을 분석해 범인의 심리적 약점을 공략해 자백을 이끌어 낸 사건이었죠. 

 

Q. 업무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단 몇 시간의 인터뷰로 완전히 파악한다는 것이 언제나 부담스럽다고 말합니다. 



[이주현 경사] 또, 사건이 발생하고 그때마다 모든 상황을 판단ㆍ분석해서 범인을 지목하고, 범인의 은신처를 추정하지만, 실제로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항상 힘듭니다. 막상 범인을 검거하고 나면 그때까지의 추리가 맞았다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 전까지는 완전히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게 가장 힘들어요. 

 

Q. 끝으로 미래의 프로파일러를 꿈꾸는 사람에게 한마디 한다면? 


 [최대호 경사의 책상위에 놓여진 책들] 


누군가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다고 하면, 우선 말리고 싶다는 3인방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되고 싶다면 한 가지 분야만 공부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주현 경사] 프로파일러는 심리학, 사회학 전공자들로 뽑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심리학, 사회학 책만 열심히 읽는 것은 반대라는 이야기입니다. 사회를 보는 눈과, 앞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보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프로파일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멋지고 화려한 직업만은 아닙니다. 강력사건이 터지면 언제든 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죠. 

 

범인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며,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힘들고 고된 일입니다. 

 

하지만 생명을 구하고 사회의 안전을 책임진다는 사명감과, 시민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보람이 더 크기 때문에 프로파일러가 된 것이 인생 최고의 선택이자 선물이라고 말하는 3인방! 

 

짧은 시간 그들을 만났지만, 그들을 프로파일링 하자면 감히 '멋있는 사람' 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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