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 한 아파트에서 자매를 번갈아 성폭행하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밤중에 불상의 남성 한명이 베란다 창문을 통하여 침입한 후 잠을 자고 있던 자매에게 흉기를 들이대고 순순히 자신의 명령에 따르라고 요구하였다. 그리고 주위에 있던 노끈을 사용하여 피해자의 손을 묶고 차례로 성폭행한 후 이불로 피해자들을 뒤집어씌우고 도망하였다. 자매는 범인이 문을 열고 도망한 잠시 후에 일어나 가까스로 경찰에 신고하였다.

 

 사건 현장에 대한 정밀감식이 진행되었다. 피해자들이 입고 있던 팬티, 잠옷, 침대 위와 침대 주변에서 수거된 모발 그리고 침대보 등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되었다. 의뢰된 팬티와 잠옷 등에서 정액반응 검사를 하였다. 하지만 정액반응 음성이었다. 즉, 정액반응이 음성으로 나오는 경우는 정액의 양이 정액반응 시약으로는 검출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적거나 또는 전혀 없어 안 검출을 할 수 없는 경우이다.

 

 두 경우를 모두 배제할 수 없어 정액반응이 음성이라도 유전자분석을 하기도 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는 분명히 범인이 사정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증거물에 남성의 정액이 극히 소량 숨어 있는 경우로 판단할 수 있었다. 보통 피해자가 사건 당시 수치심으로 질 내부를 닦은 경우 등에 이렇게 남성의 정액이 극히 소량 남아 있게 된다. 경찰관이 긴급하게 도착했을 때는 이미 피해자가 샤워를 하고 난 후였기 때문에 매우 소량의 정액만 피해자의 질 속에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예전에는 정액반응이 음성으로 나온 경우 유전자분석을 해도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되지 않으므로 유전자분석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유전자 분석 기술이 발전하여 아주 적은 양의 정액이 섞인 시료의 경우에도 유전자형을 검출할 수 있기 때문에 유전자분석을 한다.


 이 사건의 경우도 정액반응은 음성이었지만 유전자분석을 하였다. 하지만 워낙 정액의 양이 시료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일부의 유전자형만 검출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15개 좌위를 분석하는데 실제로 검출에 성공한 것은 11개 좌위였다. 그것도 범인의 정액이 극미량 섞여 있어 피해자의 유전자형만 정확하게 나오고 남성의 유전자형은 피크가 매우 낮고 판단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이런 혼합된 유전자형의 경우는 확실하게 남성과 여성의 유전자형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혼합된 유전형으로 기재되어 감정서가 나간다. 추후 범인이 검거되면 혼합반에 범인의 유전자형이 포함되어 있는지 포함되어 있지 않은지만 판단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범인이 아닌 사람이 우연히 그 혼합반에 포함되는 결과를 나타낼 수 있다. 범인을 특정하기에는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남성의 유전자형을 추정할 수만 있다면 그 확률은 엄청나게 올라갈 수 있고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기존의 범죄자와도 검색할 수 있다.


 따라서 어렵지만, 이 혼합반에서 남성의 유전자형을 추정해 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워낙 적은 양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남성의 유전자형을 혼합반에서 분석해내기 쉽지가 않았다. 작은 피크를 중심으로 남성의 유전자형을 추정해내기는 했지만 워낙 적은 양이고 검출된 좌위가 일부여서 오류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이를 통하여 가장 가능성이 있는 한 남성의 유전자형을 분리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추정된 남성의 유전자형을 범죄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한 결과 2010년에 채취되었던 구속피의자와 일치하였다. 당시 강원도 원주에 있던 동부분원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추정한 유전자형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추가 실험을 통해서 범인임을 확증한다. 따라서 당시 국과수 동부분원 유전자분석실에서 실험했는데 분석 후 보관하고 있던 DNA를 다시 찾아 추가로 Y-STR 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 구속되었던 피의자는 이번 사건의 범인과 일치하였다. 이 결과를 담당 수사관에게 통보를 하였다.


 통보를 받은 수사관이 그의 소재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사건으로 만기 복역을 한 후 출소하여 지방에서 막노동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소재지에 수사관이 급파되어 그를 검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추가 실험을 위해 그의 구강이 채취되어 연구원으로 의뢰되었다.


 결과는 위에서 실시했던 Y-STR 결과와 같았다. Y-STR 유전자 분석은 남성의 유전자형만 골라서 검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사건에서처럼 질 내용물에 극소량의 남성 유전자가 섞여 있더라도 남성의 유전자형을 검출할 수 있는 방법이다.


 성범죄의 경우 현재는 정액반응이 매우 약하거나 음성이라도 범인의 유전자형을 확보하기 위해 Y-STR분석을 실시하고 있다. 박 모 탤런트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정액반응은 음성이었지만 Y-STR 분석 결과 남성의 유전자형을 검출할 수 있어 사건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번 안산의 인질살인사건에서도 정액반응은 음성이었지만 Y-STR 유전자형이 000의 유전자형과 일치하여 그가 딸을 살해하기 전에 성폭력을 한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


 적극적인 감정과 많은 노력으로 혼합된 유전자형에서 범인의 유전자형을 분리할 수 있었고 이를 이해하고 열심히 수사에 임했던 수사관의 노력으로 한 사건을 또 마무리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렇게 범인을 검거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잠시 다른 업무로 바쁜 사이에 방송 매체에서 경기도 00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범인이 수갑을 찬 채 도주했다고 보도했다.


 범인은 이미 전과가 있는 사람으로 재범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해당 경찰서 관내의 전 경찰력이 동원되어 가능한 도주로를 차단하고 그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범인은 서울 인근 지역에서 은신하다가 잡혔다.


 나중에 위의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하고 통화해서 안 내용이었지만 바로 도주했던 범인이 어렵게 잡았던 이 사건의 범인이었다고 했다. 정말 힘들게 범인을 잡아서 매우 좋아했던 모습이 생각나 씁쓸했다. 한순간 방심으로 어렵게 잡았던 범인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었다. 조사를 담당했던 담당자는 상 대신에 징계를 받게 되었다고 했다.


[박기원 kwpark001@hanmail.net]






[가만한 당신] 클라이드 콜린스 스노우
DNA 감식 도입 훨씬 전 유골 분석 신원 확인 길 열고 

1970년대부터 선구적 활동

아르헨 학살 500구 발굴, 희생자 대변해 정의 향한 투쟁 



2006년 8월 이라크 바그다드 특별재판소. 전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전범혐의 재판 법정 증인석에 미국의 법인류학자 클라이드 스노우가 앉았다. 이날은 1988년 8월 크루드족 거주지인 할라브자 마을 주민을 화학무기로 학살한 혐의가 후세인에게 추가되면서 열린 첫 공판이었다. 스노우는 91년 중동지역 인권 매체인 ‘미들 이스트 워치(Middle East Watch)’의 요청으로 국제 법의학 전문가들을 이끌고 현장 발굴조사를 다녀온 터였다. 

재판장은 이날 이례적으로 후세인에게 전문가 증언에 대한 항변권을 부여했고, 줄기차게 무죄를 주장하던 후세인은 ‘이라크 지역에는 집단 매장지가 널려 있다. 당신이 발굴한 곳이 수천 년 전 수메르인의 유적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따졌다. 스노우는 미국 남부 출신 특유의 느린 어조로, 그 특유의 냉소와 풍자와 사르캐즘(sarcasm)을 섞어 이렇게 대꾸한다. “수메르인들이 매~우 뛰어난 문명을 누렸다는 사실을 나도 안다. 하지만 그들 중 상당수가 전자 손목시계를 찰 정도는 아니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시계들은 1988년 3월 무렵에 대부분 멈춰 있었다.” 

스노우는 2009년 7월 가디언 위클리에 기고한 글에서 저 일화를 소개하며 이렇게 썼다. “내 증언이 후세인의 최종평결에 기여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그리고 이라크와 같은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과거의 범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다.” 

DNA분석을 통한 유전자 감식 기법이 범죄 수사에 활용되기 전인 1970년대부터 유골 관찰과 분석 등 기법으로 피살자의 신원과 범죄 가능성 등을 확인하는 길을 개척했던 선구적 법인류학자 클라이드 콜린스 스노우(ClydeCollins Snow)가 지난 5월 16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그는 이라크 학살 현장뿐 아니라 70~80년대의 아르헨티나와 칠레 엘살바도르 코소보 보스니아 르완다 등 독재권력에 의해 자행된 제노사이드와 79년 시카고 항공참사, 95년 오클라호마 폭탄참사, 2001년 9.11 뉴욕 맨해튼 시신 발굴 현장에서 수많은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했고 또 법정에 서서 희생자를 대변하고 정의를 위해 싸웠다. 그는 이런 말들을 남겼다. 

-인간의 몸에는 206개의 뼈와 32개의 치아가 있다. 그 각각은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뼈들의 이야기가 난해하게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뼈는 결코 거짓말하지 않으며, 나쁜 냄새를 풍기지도 않는다. 

-땅(유해가 묻힌)은 아름다운 여자와 같다. 만약 당신이 부드럽게 대한다면 ‘그녀’는 자신의 비밀을 들려줄 것이다.

-증인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것을 잊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망자, 특히 뼈는 결코 잊지 않는다. 그들의 증언은 조용하면서도 유창하다.

-뼈는 눈(雪)의 결정처럼 하나하나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들을 통해 유전적 특징과 영양 상태, 습관, 질병의 이력, 학대와 살인의 증거를 얻을 수 있다. 

스노우는 1928년 1월 1일 미국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태어나 서부텍사스 크로스비 카운티의 벽촌 랄스에서 자랐다. 반경 30 마일 이내 유일한 의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주민들의 출산에서부터 각종 사고 사건 현장에 뻔질나게 불려 다니곤 했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스노우는 아주 어려서부터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의 사연들에 익숙해졌다. 그가 인간의 유골을 처음 본 것은 12살 무렵이었다. 아버지와 사냥을 갔다가 사슴 뼈들과 함께 쌓인 인골을 보고, 희생자가 사냥감을 옮기다가 심장마비로 숨졌을 정황을 아버지와 함께 추리했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피해자가 현장에 남긴 유일한 단서였던 열쇠 꾸러미를 들고 실종된 인근지역 사냥꾼들의 집을 찾아 다닌 끝에 신원을 확인했다. 주검과의 그 강렬한 첫 만남을 스노우는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소년시절 그는 수업보다는 호기심에 끌렸고 공부보다는 장난을 ‘과도하게’ 즐겼던 듯하다. 텍사스 주교육관이 학교를 방문하던 날 그는 친구들과 화약 장난을 쳐서 퇴학당하고, 로스웰의 뉴멕시코 군사학교에서 간신히 학업을 마친다. 졸업 후 댈러스의 남부감리신학대학, 베일러의 매디컬스쿨 등을 잠깐씩 다니지만, 역시 학위를 따는 데는 실패한다. 공부보다는 술을 더 즐긴 시절이었다. 그는 51년 동부 뉴멕시코대학을 근근이 졸업하고, 55년 텍사스공대에서 동물학으로 석사 학위를 딴다. 공군에 입대해 3년을 복무한 뒤 애리조나대학에 진학해 고고학을 전공, 유적 발굴기법 등을 익힌다. 67년 박사학위는 인류학으로 딴다. 저 모든 방황과 유전(流轉)이 스노우 자신이 짠 인생의 영리한 기획에 따른 것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후 50여 년에 걸쳐 그가 법인류학의 독보적 영역을 개척하는 동안 저 학습과 연구의 이력은 절묘하게 기여한다. 

그의 첫 직장은 미연방항공국(FAA) 사고ㆍ안전 연구원이었다. 크고 작은 항공기 사고의 유형과 승객 부상 등 피해 메커니즘을 조사해 좌석과 안전벨트 디자인을 개선하고 비상구위치와 긴급탈출 전략 등을 조정하는 등의 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주된 관심은 기체보다는 승객, 즉 항공기 안전 역학보다는 승객의 상해 및 사망 사연이었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인 68년 FAA의 민간 항공의료위원회 법인류학 팀장이 됐고, 독보적인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다. 78년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의 하원 청문회에서 X레이의 진위를 확인하는 증인으로 그가 나섰고, 일리노이주의 성공한 건설업자로 70년대 무려 33명을 살해한 ‘광대 살인마’ 존 웨인 게이시(80년 사형)사건에서 피해자의 신원 확인 작업을 이끈 것도 그였다. 

79년 5월 시카고 오헤어공항을 이륙해 LA로 향하던 아메리칸 에어라인 191편이 기체 결함으로 일리노이주 상공에서 추락, 승객과 승무원 271명 등 273명이 숨진다. 당시로선 미국 초유의 참사였다. 스노우 팀은 희생자의 평상시 사진과 X레이, 관련자 증언 등을 토대로 1만2,000여 개에 달하는 유해 조각들을 분류, 234명의 신원을 확인해낸다. 영국의 유전학자 알렉 제프리가 인간의 유전자에서 33쌍의 염기서열을 발견, DNA로 명명된 유전자 지문을 확인한 것은 6년 뒤인 1985년이었고, DNA가 신원 확인의 법의학 자료로 활용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한국은 91년부터였다).

스노우는 자신의 역량을 보다 자유롭게 활용하고자 79년 FAA를 그만둔다. 83년 12월 출범한 아르헨티나의 라울 알폰신 정부는 76년 페론정부의 권력을 찬탈한 군부 쿠데타 세력들의 이른바 ‘더러운 7년 전쟁’의 희생자 발굴 작업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인다. 85년 시작된 그 작업에는 불도저가 동원될 정도였다. 노동운동가와 정치인 등 군사정권에 의해 사실상 납치된 ‘데사파레시도스(desaparecidosㆍ행방불명자)’는 1만5,000~3만 명에 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무작위로 아무 곳이나 파헤쳐도 유골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올 정도였다”고 당시 발굴 상황을 기록했다. 스노우는 현지 학생 등으로 발굴단을 조직, 중국 음식점에서 얻어온 나무젓가락 등을 이용해 유골들을 분류, 약 500여 구의 신원을 확인한다. 그는 희생자 대부분이 당시 군대 무기인 이타카 숏건에 희생됐고, 고문 흔적으로 손가락 뼈가 부러진 사실 등을 법정에서 증언, 학살을 지휘한 고위 장성 5명의 유죄 평결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그는 임신 중 납치돼 고문 끝에 숨진 한 여인의 골반뼈 이야기를 증언하기도 했다.(LA타임스, 2014.5.14)

험한 시절을 헤쳐 나온 국가와 국제인권단체들이 부를 때마다 그는 달려갔다. 유고, 필리핀, 엘살바도르, 칠레, 과테말라, 이라크, 콩고, 이디오피아 짐바브웨…. 그는 호주를 제외한 지구 전 대륙의 20세기 학살ㆍ참사 현장에서 일했다. 

그의 이름이 가장 뜨겁게 세계 언론에 등장한 것은 85년 아우슈비츠의 학살자 멩겔레의 신원을 확인했을 때였다. 나치 친위대 장교이자 내과의사였던 멩겔레는 2차 대전 중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유대인 등 수용자의 생체실험을 주도해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1급 전범. 그는 나치 항복 직전 종적을 감춘 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나치 사냥꾼’ 비젠탈 그룹의 끈질긴 추적을 피해 살아남았다. 모사드가 1960년 홀로코스트의 지휘자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하면서 멩겔레의 흔적도 찾아냈지만 그를 붙잡는 데는 실패했다. 

포기를 모르는 조직으로 알려진 비젠탈 그룹은 79년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수영 도중 발작으로 익사한 ‘볼프강 게르하르드’라는 남자가 멩겔레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브라질 정부에 협조를 구한 뒤 스노우에게 도움을 청한다. 스노우는 무덤을 열고 뼈들을 정교하게 조합한 뒤 키와 두개골 둘레 등 신체 사이즈와 나치 친위대 자료에 기록된 멩겔레의 유니폼 사이즈, 사진과 유골의 치아 등을 비교한 뒤 멩겔레의 유골이 거의 확실하다고 판정한다. 확증을 얻기 위해 스노우는 독일인 법인류학 동료인 리처드 헬머와 함께 ‘두개골- 얼굴 중첩기법(skull-face superimposition)’으로 검증까지 거친다. 훗날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얼굴 복원에도 활용된 이 기법은, 귓구멍 안구 등 두개골의 해부학적 주요 지점 30곳과 얼굴 이미지를 정교하게 대조해 두개골에 입히는 기법. 그들은 멩겔레가 100% 확실하다는 의견을 낸다.(테크놀러지& 사이언스, 2014.5) 그 판정은 훗날 발견된 멩겔레의 치아 방사선 사진과 DNA분석으로 옳았음이 입증된다. 멩겔레의 해골: 법심미학의 도래라는 책의 저자 이얼 바이저만은 “멩겔레 조사는 실종자의 신원 확인 기법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인권범죄 사건에서 과학자가 전문가 증인으로 나서게 된 것도 그의 영향이 크다”고 썼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DNA분석 등 다양한 과학수사 기법들이 활용되고 있는 지금도 미국 내 약 100여명의 법인류학자가 활약 중이다. 

2009년 가디언 위클리 기고문에서 스노우는 90년대 초 볼리비아에서 전설의 악당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의 유해 발굴 실패담도 소개했다. 미국 공영방송 PBS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그 발굴 작업에서 스노우는 부치와 선댄스가 남미 여러 나라를 전전하던 끝에 볼리비아의 고원지대 마을인 산 비센테라는 곳에서 사살됐다는 기록과 1911년 두 명의 ‘그링고(미국인)’가 묻혔다는 당시 경찰 조사를 근거로 작은 묘지에서 두 구의 유해를 발굴한다. 하지만 DNA 분석 결과 시신은 당시 현지 탄광 기술자로 파견됐다 총기 사고로 사망한 독일인의 유해로 판명된다. 스노우는 “내게 그 일은 대단한 과학적 경험이었다. 틀릴 수도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해줬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몇 피트 정도 떨어진 무덤을 열었다면 부치와 선댄스를 찾아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둘이 죽어서까지 추적을 피했다는 점에서 더 멋진 결말이었던 듯도 하다”고 썼다. 

오클라호마 노먼의 스노우 집을 방문했던 이코노미스트 기자는 작업실과 거실의 구분조차 없던 집 분위기를 인상적으로 묘사했다. 두개골과 골편들이 널려 있는 테이블 위에서 커피를 마시고, 필터 없는 카멜 담배를 끊임없이 피워대며 유쾌한 담소를 나눴다는 이야기. 그는 가끔 테이블 위의 두개골들을 애틋한 손길로 어루만지곤 했다고 한다. 

과테말라 조사 당시 현지 경찰이 트집을 잡으며 출입을 막자 그는 근엄한 자세로 주머니에서 일리노이주 검시관협회의 커다란 금속 배지를 내보인 뒤 당당하게 통과했다고 한다. 코미디의 한 장면 같은 그 일화의 사연을 묻는 워싱턴포스터 기자에게 그는 “(권력과 마찰을 빚을 땐) 언제나 더 큰 배지를 가진 놈이 이기는 법”이라고 말했다. 

참혹한 발굴 현장에서 학생들이 감정적으로 동요할 때면 “가운을 입고 작업모를 썼을 때는 냉정하게 작업에 임하라. 울어야겠다면 밤에 집에 가서 울어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UC버클리 법대 교수인 에릭 스토브는 저 말을“‘먼저 과학자가 돼야 한다, 하지만 인간성을 잃지는 마라’는 말로 들었다”고 기억했다. 

스노우는 세 차례 결혼과 이혼을 했고, 70년 결혼한 제리 휘슬러와 해로했다. 휘슬러는 스노우가 집에서는 쥐조차 못 잡게 했다고 전했다. 휘슬러는 “작업 속에 너무 많은 죽음과 파괴가 내재돼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지난해 3월 28일 오전 10시 대전 대덕산업단지의 북쪽 끝 2차선 도로. 일요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마트로 향하던 외국인 노동자 자하드의 눈에 이상한 물체가 들어왔다.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듯 했다. 자전거를 세우고 건물 한쪽 벽면을 살펴보니 젊은 여성이 대형 트럭과 담벼락 사이에 잠자듯 누워 있었다. “술에 취한 여자인가?” 급하게 여성에게 다가간 자하드. 소스라치게 놀랐다. 죽어 있는 게 아닌가. 양쪽 발목이 흰색 노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누군가 이 가련한 젊은 여성의 목숨을 끊은 뒤 이곳에 버린 것이었다.

●입만 막은 여성이 질식사하다?

시신은 깨끗했다. 앳된 얼굴의 피살자는 줄무늬 블라우스에 베스트, 검은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반듯한 옷매무새가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사회 초년생의 느낌. 코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광대뼈와 왼쪽 턱에도 작은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모두 치명상은 아니었다. 혈흔도 찾을 수 없었다. 여성 피살자들에게 통상 발견되는 목졸림의 흔적 또한 없었다(부검의들에 따르면 살해당한 여성의 90%가 목 졸려 죽는다. 힘이 약한 여성에게 쓰기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형사들은 범행 현장이 여기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여성은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 있었다. 하지만 시반(屍斑·시신의 피부에 나타나는 자주색 반점)은 몸 앞쪽에 나 있었다. 엎드려 있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았다는 얘기. 정액반응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가슴에서 남성의 타액이 발견됐다.

부검 결과 사인은 비구(鼻口) 폐쇄성 질식사였다. 입가에 테이프 자국이 있는 걸 봐서는 이것이 죽음의 원인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테이프가 코는 빼고 입만 막고 있었는데 왜 질식사를 한 걸까. 해답은 사망 당시의 자세에 있었다. 사람을 납치하면 범인들은 보통 끈을 풀지 못하도록 손을 등 뒤로 묶고 소리가 새어나오지 못하게 입을 막는다. 때론 팔을 묶은 끈으로 다리까지 묶기도 한다.

팔이 뒤로 꺾인 자세가 오래 지속되면 심장박동이 크게 떨어진다. 법의학자들은 이 자세로 오래 방치할 경우 코나 입 어느 하나만으로 숨쉬는 것이 어려워 질식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피해 여성은 코에서 난 피가 비강을 막은 게 분명했다.

지문조회 결과 사망자는 충북 청주에 사는 24세 A씨였다. 가족들은 그녀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가출신고를 한 상태였다. A씨가 죽은 채 발견되기 이틀 전인 26일(금요일) 저녁 청주 남문로에서 회식을 한 뒤 택시를 탄 게 화근이었다. 대학 졸업 후 무수한 입사 도전 끝에 직장에 취직하기 된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의 출근 첫째주 휴일을 앞두고 마련된 그녀를 위한 환영 회식이었다. 범인은 그렇게 막 피어나던 꽃망울을 무참하게 꺾어 버렸다.

●범인, 과실치사 적용받으려 술수

형사들은 시신 발견 지점 주변의 폐쇄회로(CC)TV 확인에 나섰다. 먼저 확보한 것은 A씨가 버려진 빌딩 담 위쪽에 설치된 CCTV 화면. 발견 전날인 27일 토요일 저녁 녹화분부터 확인했다. 후미진 곳이긴 해도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인데 시신이 며칠 동안이나 방치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성과 없이 이어지는 CCTV 화면 탐색에 형사들이 조금씩 지쳐갈 즈음이었다. 모니터의 시간이 오전 1시 30분을 가리키는 순간, 퉁퉁한 체격의 남자가 화면에 등장했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트렁크를 열었다. 뭔가를 급히 꺼냈다. 이미 숨져 있는 A씨였다. 남자는 트럭 옆에 A씨를 버린 뒤 황급히 차를 몰고 떠났다.

화면이 너무 흐려 차량번호는커녕 범인의 이목구비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차종이 흰색 NF쏘나타임은 분명했다. 더 큰 수확은 차 지붕에 택시표지가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경찰은 A씨가 회식을 마치고 탑승한 택시에 대한 수배에 나섰다.

경찰은 CCTV 속 범인이 시신을 유기한 후 다시 청주로 돌아갔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 과정에 반드시 거쳐 갈 수 밖에 없는 노루목을 찾아야 했다. 경찰이 짚은 지점은 현도교. 대전 대덕단지에서 신탄진 나들목(IC)을 거쳐 청주로 넘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거치는 곳이었다. 게다가 그곳에는 CCTV도 설치돼 있었다.

범행 당일 오전 1시 30분 이후 다리를 지나간 택시의 수는 모두 67대였다. 경찰은 이중 유독 수상해 보이는 1대에 주목했다. 차 번호를 숨기려 번호판에 반사테이프를 붙인 택시였다. 게다가 앞서 화면에서 본 것과 같은 흰색 NF쏘나타였다. CCTV 화면을 정밀 분석해 알아낸 차량번호는 충북××바××××. 경찰은 청주의 한 택시회사로 형사들을 급파했다.

“CCTV에 다 찍혀 있다.”

형사들의 말에 택시기사 안모(41)씨는 순순히 자기 집에서 수갑을 받았다. 자하드의 112 신고가 접수된 지 12시간 만이었다. 택시 운전석 문짝에서는 식칼이, 트렁크 매트에서는 혈흔이 나왔다. 혈흔은 숨진 A씨의 것과 일치했다. A씨를 위협해 빼앗은 7000원도 함께 나왔다. 범인은 “테이프로 입만 막았기 때문에 A씨가 숨은 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성폭행 등 성범죄는 저지르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미 2000년에 감금 및 성폭력 혐의로 3년형을 받고 복역했던 그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놓고도 어떻게 하면 살인이 아닌, 과실치사만 적용받을까 갖은 술수를 쓰고 있었다.

●잔혹한 살인자…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

“연기군 조천변 살인사건 있잖아요. 이번에 나온 DNA가 그 사건 용의자와 일치해요.”

수사팀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안씨의 과거 범행이 칡넝쿨처럼 이어져 나왔다. 택시기사를 하며 6년간 살해한 여성이 3명이나 됐다. 2004년 10월 충남 연기군 전동면 조천변 도로에서 발견된 B(당시 23세)씨도, 2009년 9월 청주시 무심천 장평교 아래 하천가에 숨져 있던 C(당시 41세)씨도 그의 손에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출소 후 안씨는 그렇게 늦은 밤 택시에 탄 여성을 상대로 살인과 강간, 강도 등의 범행을 이어갔다. 대부분 몸집이 작거나 술을 마신 사람들이었다. 지난해 10월 대전지법 형사합의11부는 안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고의성을 부인하고, 끊임없이 진술을 번복하는 등 진지하게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면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와 그 유족들이 겪은 고통 등을 고려해 극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에 설치된 CCTV는 총 274만대로 추정된다. 공공용 24만대, 민간용 250만대다. 현재 CCTV는 인권침해와 범죄예방 효과 사이에서 뜨거운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 사건에서는 CCTV가 자칫 미제사건으로 묻힐 뻔 했던 억울한 죽음들의 한을 풀어준 것과 동시에 추가적인 희생자를 막는 효과를 냈다. 우리사회의 ‘은밀한 감시자’인 CCTV에 대해 어떻게들 생각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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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Y씨(당시 45세·여)씨는 범인의 인상착의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잔혹의 끝을 보았기에 기억을 되돌리는 것은 그 자체로 고문이었다.

 2007년 4월 15일 오전 8시 45분 대전 대덕구의 건물 지하 1층 P다방. 문을 열자마자 30대 남자가 거칠게 안으로 들어왔다. 내부에는 종업원 C(당시 47세·여)씨뿐이었다. 약간의 몸싸움이 있은 후, 날카로운 흉기가 C씨의 목을 갈랐다. C씨는 외마디 비명에 화장실 바닥에 쓰러졌다. 변태성욕자였던 남자는 더운 피를 쏟고 있는 시신을 훼손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Y씨가 다방에 출근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계산대에 있어야 할 C씨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범인과 눈이 마주쳤다. 범인은 다시 칼을 휘둘렀다.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Y씨는 몸과 마음에 평생 남을 상처를 입고 말았다.


 
 루미놀이 찾아낸 악마의 피

 경찰은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다방 살인현장에서 50여개의 증거물을 수집했다. 하지만 딱부러지는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결정적인 증거물은 오히려 현장 밖에서 나왔다. ‘이쯤에서는 버려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범인은 다방에서 500m 떨어진 도로변에 피묻은 휴지를 버렸다. 1.5㎞ 더 떨어진 금강변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검정 점퍼가 발견됐다. 범인은 강을 따라 도주한듯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넘어온 점퍼는 육안으로는 혈흔을 발견할 수 없었다. 흐르는 강물이 피의 흔적을 지운듯 했다. 

 그렇다면 이제 기대를 걸어볼 것은 ‘루미놀’(Luminol) 시험. 미국 수사드라마 CSI 시리즈에도 자주 나오는 루미놀은 사건현장에 남은 혈흔을 극소량까지도 찾아낼 수 있는 물질이다. 물이 가득 찬 양동이에 단 한방울의 혈액만 떨어져도 DNA를 감별할 수 있을만큼 감도가 뛰어나다. 이 때문에 주로 범인이 핏자국을 감추기 위해 증거물 세탁을 시도했을 때 유용하다. 특히 신선한 혈액보다 시간이 지난 혈흔에 더욱 강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다. 루미놀 용액과 과산화수소수 혼합액을 핏자국이 있을 만한 자리에 뿌리면 된다. 피가 있는 자리라면 화학반응에 일시적인 발광현상을 일으켰다가 사라진다.

 다행히 성과가 있었다. 피묻은 휴지와 검은 점퍼에서 숨진 C씨의 것 말고 정체를 알수 없는 한 남성의 DNA가 동시에 검출됐다. 이제 남은 일은 그 주인을 찾는 것.

 
 악마의 족보를 쫓아라

 하지만 이후로 수사는 제자리 걸음을 했다. 용의자의 DNA만 확보했을뿐 이것을 누구와 비교할지가 막막했다. 이런 가운데 국과원의 다른 실험실에서는 범인을 쫓는 새로운 분석이 한창이었다. 성(性) 염색체인 Y염색체를 이용해 범인의 성(姓)이 김씨인지 이씨인지 박씨인지를 가려내는 시도였다. Y염색체는 남성에게만 존재하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유전된다. 우리나라처럼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는 사회에서는 Y염색체의 유전적 지표(STR)를 분석해 공통점을 찾는다면 범인의 성씨를 특정할 수 있다고 국과원은 판단했다.

 국과원은 1차로 자체 보유하고 있던 동종 전과자 등 1000명의 Y염색체 STR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했다. 그 결과, 범인의 Y염색체 단상형은 오(吳)씨 성을 가진 2명과 일치했다. 국과원은 사건 현장 인근에 오씨 집성촌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2차 분석에 들어갔다. 집성촌 주민 19명의 동의를 얻어 상피세포를 분석했다. 역시 Y염색체는 특정 부위에서 공통점을 나타냈다. 국과원은 결국 수사팀에 “용의자는 오씨일 가능성이 크다.”고 통고했다.

 사건발생 50여일 만인 6월 4일 경찰은 경기 광명시에 숨어 있던 범인 오모(당시 35세)씨를 검거했다. 그는 1989년 충남 연기군에서 할머니와 어린이 등 3명을 살해한 죄로 15년을 복역하고 2년 전인 2005년 만기출소한 상태였다. 17년 전 범행 때에도 시신에 몹쓸 짓을 하는 등 수법이 비슷했다. 오씨는 “돈이 떨어지자 교통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방에 들어가 금품을 빼앗은 뒤 사람을 죽였다.”고 자백했다. 시신에 변태적인 방법으로 성욕을 푼 사실도 인정했다.

 당시 수사경찰은 “범인의 점퍼에서 점안액이 나왔는데, 그 안약이 의사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병원기록을 쫓으며 포위망을 좁혀갔다.”면서 “이 과정에서 용의자가 오씨라는 국과수의 분석은 불특정다수인 점안액 구매자들 가운데서 용의선상을 압축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국과원 관계자는 “지금은 살인이나 성 범죄자와 같은 흉악범의 DNA는 국가 차원에서 영구보존 하도록 해 재범 방지 등에 활용하고 있지만 2007년 오씨가 출소할 때만 해도 범죄자 DNA은행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다.

 하지만 DNA를 통한 성씨 규명이 모두 성공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성씨가 생물학적으로만 결정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아이를 입양했다든지 부인의 외도를 통해 임신이 된다든지 하는 변수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과원 관계자는 “한국인의 5대 성씨(김, 이, 박, 최, 정)는 본관 또한 워낙 다양해 부계 유전의 일관성이 결여되는 약점도 있다.”면서 “염색체를 이용해 성씨를 판별하는 것은 수사에서 제한적이고 보조적인 수단으로만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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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의 시청률이 올라갈수록 수사 당국은 괴로워진다. 사람들의 법의학 지식을 마구 늘려 주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이 아는 게 많아지면 그들이 현장에 남기는 흔적은 갈수록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현장에 아무것도 전혀 안 남길 수는 없다. 아주 작은 무엇이라도 남는다. 법의학에서는 이런 초미니 흔적들을 ‘미세증거물’(LCN·Low Copy Number)이라고 부른다. 현미경으로나 보이는 극미세 증거가 때로는 범인 검거에 결정적 한 방으로 작용한다.

1. 처참하게 살해된 천안 모녀

2009년 3월 19일 오전 7시 38분. 충남 천안의 주택가. 유모(당시 70세)씨가 다급한 비명을 듣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옆집이었다. 앞마당에는 이집 딸(당시 20세)이, 안방에는 엄마(당시 48세)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119가 출동했지만 두 명 모두 숨을 거뒀다. 사인은 출혈성 쇼크사. 주검은 처참했다. 범인은 특히 이집 엄마에게 원한이 많은 듯했다. 목과 등에 20곳에 걸쳐 상처가 나 있었다. 딸은 왼쪽 가슴과 팔 등 5곳을 베였다. 곳곳에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피 묻은 족적이 있었다. 경찰은 일단 치정(痴情) 살인에 무게를 뒀다. 경찰은 150여점의 현장 혈흔을 포함해 200여개의 방대한 증거품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냈다. 증거가 많은 만큼 사건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

2. 증거품 200여개 중 단서 없어

이튿날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과원 유전자분석실. 증거는 많았지만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없었다. 용의선상에 올린 피해자 주변 10명의 구강 상피세포를 채취해 비교했지만 현장 증거와 일치하는 것은 없었다. 범인의 족적도 개수만 많았을 뿐 발 치수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았다. 통상 살인사건에서 피 묻은 증거품이 많으면 단서가 될 만한 것 역시 많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지나치게 유혈이 낭자하면 피해자의 혈흔이 다른 증거들을 오염시키고 훼손하게 된다. 이 사건이 딱 그랬다.

난관에 부딪친 국과원은 마지막으로 ‘최고로 구린 녀석’에게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다. 피해자의 집 뒤뜰에 똬리를 틀고 있던 대변이었다. 경찰은 대변 주변에서 발견된 족적이 사건 현장의 혈흔 족적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게 범인의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던 터였다. 대변은 변질을 막기 위해 아이스박스에 냉장된 상태로 이송됐다.

3. 대변에 섞여 있던 범인의 DNA

이제 해야 할 일은 대변 속에 담긴 ‘범인의 DNA’를 찾아내는 것. 작업은 간단치 않았다. 사실 대변은 그 자체로는 인간의 DNA를 품고 있지 않다. 음식이 사람의 뱃속에서 다른 형태로 바뀐 것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대변에서 채취해야 하는 것은 주인의 몸을 빠져나오는 동안 표면에 묻는 장(腸) 상피세포다. 연구원들은 우선 대변을 꽁꽁 얼린 뒤 면봉으로 겉을 꼼꼼하게 닦아 냈다. 대변의 속보다는 표면에 상피세포가 더 많이 붙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추출한 세포를 원심분리기와 증폭기에서 돌렸다. 얼마 후 대변의 주인이자 DNA의 주인인 범인이 밝혀졌다.

이웃집 남성 천모(55)씨였다. 천씨는 살인에 썼던 도구를 몰래 버리는 모습까지 경찰에 발각되자 순순히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천씨는 “죽은 여인이 내가 과거 절도범으로 감옥에 갔다 온 사실을 내 애인 등에게 떠벌리고 다녀 이를 따지러 갔다가 홧김에 살해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고 3인 아들에게 아버지가 전과자인 것이 들통 나는 것이 미치도록 싫었다.”고도 했다.

4. 카펫 섬유·모발… 작아서 장점이자 단점

미세증거물의 종류는 다양하다. 피해자를 말았던 카펫에서 나온 섬유, 신발 밑창에 묻은 먼지, 성폭력 피해자의 몸에서 발견된 모발, 범행도구에 묻은 페인트 등이 말하자면 모두 미세증거물이다. 대변은 미세증거물 중에서도 아주 독특한 경우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말처럼 대부분 미세증거물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접촉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눈에 안 띌 정도로 작다는 것은 범인에게나 수사관에게 단점이 될 수도,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수사관이 현장에서 증거품으로 발견하기가 어렵지만 범죄자가 흔적으로 남겨 놓을 가능성 또한 높기 때문이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 덕에 현재 수사 당국은 사람들이 통상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미세한 물품에서도 증거를 가려낼 수 있다. 100pg(피코그램·100억분의1g)만큼의 극미세 DNA도 검출해 주인을 가려낼 수 있다. 물론 오염도 쉽고 분해되는 일도 많은 DNA가 원래 특성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을 경우에 한해서다.

5. 에필로그:범인의 대변 긴장 탓? 미신 탓?

천씨는 왜 화단에 대변을 본 걸까.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은 “본인은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미 흉기를 품에 지니고 피해자 집에 간 점 등을 감안할 때 사전에 계획된 범행이었다.”면서 “아무리 간 큰 범죄자도 범행 전엔 긴장하기 마련인데 이 때문에 천씨의 뱃속에서 꼬르륵 신호가 왔던 모양”이라고 했다. 다른 경찰관은 ‘절도범의 미신’ 때문으로 추측했다. 그는 “절도범들은 범행 현장에서 대변을 보면 경찰에 잡히지 않는다고 믿는데, 과거 절도 경력이 있던 천씨가 그대로 따라 했을 수 있다.”고 했다.


whoam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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