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마지막 인권인 ‘검시(檢視)’체제가 부실해 원인미상 사망률이 10%에 달한다”는 세계일보 보도(9월 15∼18일자 참조·관련기사 4면)에 대해 정부는 현재 23명인 국가 법의관을 100여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아울러 진로가 막혀 고사상태인 각 대학 법의학 교실 활성화 등 법의학자 양성 방안 및 서울지역 법의관 현장검안 시범 실시도 추진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중석 원장은 10일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과 협의해 일단 올해 법의관을 5명 늘리기로 했으며 순차적으로 100명까지 증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 원장은 또 “법의 양성 방안에 대해서도 법의학회와 논의 중이며 내년에는 서울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변사 현장에 법의관이 현장 검안을 나갈 계획”이라며 “인력이 충분하지 않지만 여차하면 나도 계급장 떼고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 내 검시체계 개선 논의는 지난달 23일 안행부 정 장관이 서 원장에게 국과수·법의학계 공동 개선안 도출을 지시하는 것으로 본격화됐다. 이후 서 원장은 지난 8일 대전에서 열린 대한법의학회 임시 평의원 회의에 직접 참석해 인력 양성 방안 등을 협의했다.

법의학회는 이와 별도로 검찰, 경찰과 각각 검시체계 개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개선안을 논의 중이다. 박종태 법의학회장은 “8일 회의에서 대학은 인력을 양성하고 국과수는 이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었고 문제는 양성방법인데 앞으로 좋은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예방의학처럼 정부가 사회적 필요성을 인정해 법의학 레지던트 제도를 만드는 방안과 군 장기복무 군의관처럼 임상 경험있는 인턴을 뽑아 재정 지원을 해주면서 법의관으로 키우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원주 국과수 본원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선 여야 의원이 검시체계 개선 의지를 나타냈다.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은 “촉탁의에게 부검을 맡기는 이유가 전문인력이 없어서인데 정확성도 떨어지고 책임소재도 불분명한 만큼 법의관이 다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박남춘 의원도 “세월호 사건 때 국가 근본을 바꿔야한다고 우리가 강조했는데 검시체계가 여기에 해당한다”며 근본적인 체계 확립 필요성을 지적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정부 검시 체계 개편 내용·전망
우리나라 검시제도는 근본부터 문제다. 매년 25만명 정도가 사망하는데 이 중 15만여명은 병원에서 의료진 보살핌속에 임종을 맞지만 나머지 10만여명은 병원 밖에서 숨진다. 가난하거나 외로운 소외계층이기 십상인 이들의 병원 밖 죽음은 국가가 보호자로서 책임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관련 법체계·인력 미비 등 국가는 사실상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을 현재 23명에서 100명으로 대폭 늘리기로 한 것은 이 같은 검시제도의 가장 약한 고리인 인력 부족 현상부터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법의학 교실 활성화→법의관 증원→검시 역량 강화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순차적으로 진행되면 법의관이 변사 현장에 나가지 못한 채 부검만 하는 반쪽짜리 검시의 최대 현안이 개선될 수 있다. 법의학계에선 “수십 년간 진척되지 않아 자포자기 상태였는데 상당히 고무적이다”며 환영했다.

검시제도 개선은 부처 간 협의·예산 확보는 물론 관련법 제·개정 등 난관이 많다. 그러나 50여년 된 적폐에 대한 정부 개선 의지도 매우 강한 상태다. 법의학계에 따르면 정종섭 안행부 장관은 세계일보의 ‘대한민국 검시 리포트(9월15∼18일)’보도 후인 지난달 23일 서중석 국과수 원장과 법의관 증원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외국처럼 법의학자가 (변사)현장에 임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난 8일 대전에서 열린 대한법의학회 평의원회의에선 국과수 서 원장도 참석해 현재 턱없이 부족한 법의관 양성 및 활용 방안이 논의됐다. 양측은 이달 말까지 법의관제도 개선을 위한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 안행부 장관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안행부 장관은 이를 토대로 청와대에 법의관 양성에서 국과수 법의관 확충에 이르는 검시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안을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 변사사건 부실 지휘로 곤욕을 치른 검찰도 검시 전문성 강화를 위해 법의학회 등과 함께 제도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또 경찰은 간호사, 임상병리사 출신의 검시보조인력을 ‘경찰검시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법의관과 혼동을 줄 수 있다는 법의학계 의견을 수용, 이달 1일부터 ‘검시조사관’으로 개칭했다.

정치권도 검시제도 개선을 위한 법 제·개정에 착수하는 분위기다. 이날 강원도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에서 진행된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국과수에 대한 추궁보다는 검시제도 개선에 대한 의견 수렴이 주로 이뤄졌다. 여야 의원은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의 신원이 뒤늦게 확인되고, 사망원인을 끝내 밝히지 못한 이유로 국내 검시제도의 한계를 지목하고 제도 개선에 앞장설 뜻을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은 “검사가 (변사체를) 보지도 않고 무연고 변사로 부검 영장을 발부하고, 무연고 변사체는 범죄 연관성 없으면 다 화장해버린다”며 “이 문제는 경찰도 해당되고, 국과수, 법무부도 연관돼 있으니 전체적인 검시체계 개선 필요성을 국무회의 때 안행부가 제기해 앞장서야 한다. (국과수가 자체 마련 중인)법과학진흥기본법으로는 안 되고 이번 기회에 우리 위원회 차원에서 (검시제도 개선 입법)과제를 채택하자”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도 안행부 차관에게 “이번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올려보시라. 여야가 합의해서 하겠다”고 주문했다.

서 원장은 검시 절차 없이 이웃 증언만으로 매장이 가능한 인우보증 사망 신고제도에 대해 “아프리카에도 없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제도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최근 모 방송에서 이른바 ‘홍천강 살인사건’을 다룬 것을 계기로 사망원인을 조사하는 검시(檢視)제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커졌다. 자칫 단순 익사로 처리될 뻔했던 죽음이 유가족인 딸의 요청으로 부검이 이루어졌고 결국 타살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후 경찰수사에서 피해자의 남편이 범인으로 지목되었고,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유죄까지 선고된 상태다. 방송을 보던 많은 이들에게 만약 유가족의 요청이 없었다면 사고사로 종결되었을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게 했다.

정말 우리나라의 검시체계에는 많은 허점이 있는 것일까. 다른 나라는 어떨까. 선진 외국의 검시제도로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방식을 들 수 있다. 첫째는 법의학 전문의사인 법의관(medical examiner)이나 전담검시관(coroner)이 독자적으로 검시를 주도하는 방식이다. 국가가 임명하고 현장조사, 부검 결정, 재판증언까지 담당하는데 미국, 영국 등이 이에 속한다. 둘째는 수사당국을 검시의 일차적인 주체로 하되 법의학 전문의를 의무적으로 참여시키는 방식이다. 독일의 법정의(court doctor)나 일본의 감찰의(監察醫) 등이 이에 해당한다. 양자 모두 법의학 전문가가 현장에 임장한다는 점이 공통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법의학 전문의의 현장임장을 의무화하지 않은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법적으로 검시의 주체는 검사이고, 실무에서는 경찰이 대행해서 검시를 행하고 있다. 법의학 전문가는 빠져 있으니 전문성 부족이 문제되는 것이다. 통상 경찰이 협약을 맺은 관내 민간의사에게 검안을 맡기고 있지만, 법적으론 전문성이 부족한 치과의사나 한의사 등도 검안할 수 있다. 경찰이 자구책으로 병리학, 간호학 전공자를 특채하여 일선에서 배치하는 내부 전문화를 시도했다. 인력 증원, 전문교육의 확충, 국과수와의 연계, 법적 권한의 정비 등의 보완이 요구된다.

법의학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도 문제이다. 현재 부검을 실시할 수 있는 법의학자 수는 국과수 20여명, 은퇴한 개업의를 포함해도 전국적으로 40여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연간 4000건에 달하는 부검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한 해 발생하는 평균 변사건수 25000건 중 부검실시율은 20%에 미치지 못한다. 전국 41개 의대 중 법의학 교과가 개설된 곳은 14개이다. 해부학에 대한 기피특성에 더해 법의학계의 열악한 처우나 근무환경을 고려하면 선뜻 진로를 추천하기도 힘들 것이다. 전체 사망자 중 원인불명 사망비율도 10%에 달한다. OECD 회원국 중 1위다. 안타깝지만 검시제도 후진국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개선책으로 무엇보다 사체검시에 법의학 전문의를 필수적으로 임장시키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수사전문가와의 합동임장을 통해 유기적 협력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관련법안이 몇 차례 국회에 제출된바 있지만, 법조계나 율사출신의 밥그릇 뺏기로 보는 시각에서의 반대나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방기되어온 형국이다.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일은 국가의 기본적 의무이자 죽음을 대하는 한 국가의 인권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50년째 이야기하고 있는데 바뀐 게 없습니다. 검·경 수사권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검시 문제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김형석 대한법의학회 총무이사) 검·경이 검시체계 개선 작업에 나서고 관련법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이를 바라보는 법의학계의 시선은 차갑다. 정치권이나 정부의 진짜 속내는 검시제도에 대한 관심도, 개선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역대 검시제도 개선 작업이 별다른 성과 없이 번번이 무산된 과정을 살펴보면 법의학계의 이 같은 냉소는 이해가 간다.



검시제도 개선 논의는 196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본격적인 건 2000년대 초반 의문사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2002년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건의로 법무부에서 개선 방안까지 내놨으나 유야무야됐다. 2005년 17대 국회 당시에는 윤호중 의원이 검시 대상을 법으로 정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유시민 의원도 각계 의견을 모아 검시법 초안을 만들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유 전 의원의 검시법 초안 폐기는 법의학계가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유 전 의원은 “검찰, 경찰,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관련기관 실무자들과 10여회 협의를 거쳐 합의로 만든 이 법률안이 법사위에서 아무 합당한 이유도 없이 의결을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이명박정부에서는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검시제도 개선 기획조사 및 공청회 등을 통해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 구체적 방안까지 청와대에 보고됐으나 이 역시 흐지부지됐다. 



검시체계 개선작업이 번번이 무산된 배경에는 검시권을 수사권과 결부시킨 검·경 간 갈등이 놓여 있다. 권익위 검시체계 개선 작업에 참여했던 김헌진 전 권익위 전문위원은 “청와대에 보고를 들어가서 마무리지으려고 했던 부분인데 (청와대내에서조차 부처 파견 비서관 간에) 조율이 계속 안됐다”고 말했다. 그는 “각 기관 입장에서 생각할 게 아니라 국민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야만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검시체계 개선 작업에는 이처럼 법무부와 검찰,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법의학계 등 여러 조직이 얽혀 있는 만큼 범부처 차원의 총리 또는 사회부총리 산하 위원회 신설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박종태 대한법의학회장은 “예전 학회 차원에서 정리된 내용은 총리 산하에 검시위원회를 두고 그 위원회가 검시를 관리하는 것”이라며 “변사체가 발생하면 경찰이 법의관한테 신고해 현장 출동하도록 하는데, 일단 (인력을 차차 충원하면서) 시행 가능한 지역부터 하고 점차 확대하자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도 “검시위나 검시를 총괄하는 조직을 만들어 현장 검안 의사부터 검안 자격 등을 관리해야 한다”며 “넓게는 의과대에 법의학교실 설치를 의무화하고 의사고시에도 법의학 과목을 넣는 등 법의 양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은 부처 간 권한 갈등에 휩싸일 가능성도 크다. 한 법의학자는 “총리실 소속 검시위를 만들자고 하면 기관 권한 싸움이 시작돼 개선 작업이 난관에 부닥친다”며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의사 얘기는 없는데 형사소송법 혹은 규칙에라도 ‘이러이러한 경우는 법의관의 검시를 받아 처리하라’고만 넣어도 굉장한 진전이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검사 판단에만 맡겨 놓은 검시 대상 일부를 ‘수용시설 내 사망사건’ 등 일정 상황에는 무조건 검시하도록 법에 정해 놓는 방안이 시급하다. 검안서를 모든 의사가 쓸 수 있도록 돼 있어 부실한 검안서가 쏟아지는 현실도 고쳐야 한다. 법의학자만 검안서를 쓰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법의학자가 부족해 당장 어렵다면 검안서 작성 교육을 따로 받은 의사만이 검안서를 쓰도록 해야 한다. 



경찰은 검시권을 검찰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내부적으로 가능한 방안을 모은 것이 지난 13일 발표한 ‘변사사건 개선 종합대책’이었다. 임상병리학·간호학 등을 전공한 경찰검시관을 대폭 늘리고, 검안 경험이 많고 현장에 출동할 수 있는 일반 임상의사들로 인력풀을 꾸려 현장 검안을 강화겠다는 것이 요지이다.

그러나 여전히 법의전문의사들을 활용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현장 검안의 인력풀에 민간 법의학자 9명을 포함했지만, 경찰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민간 법의학자와 적극적인 공조체제를 구축한 부산·울산은 만족도가 높은 반면에 다른 지역에서는 “공적인 수사 영역에 민간 법의학자를 개입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조를 꺼려 왔다. 

민간 법의학자와 경찰의 공조체계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과수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소수의 믿을 만한 법의학자들이 활동하지만 나중에는 하나의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부검 대상 명문화·검시는 법의관이… “죽음의 사각지대 해소”
우리나라 검시제도는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수십년 동안 곪아 온 제도를 바로잡으려면 간단한 처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가장 이상적인 대수술은 법의관 제도를 만들어 현재 검사에게 있는 검시권을 법의학자에게 주는 것이다. 수사는 수사기관이 맡고 시체는 법의관이 맡아 각자 전문성 있는 일만 하자는 얘기다.



응급처치도 시급한 현실이다. 검시 대상 죽음을 법에 명시하고, 검안을 할 수 있는 의사의 조건을 강화하는 일이다. 이러한 장·단기 대책을 함께 추진해야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산 자의 의무’를 다해 ‘죽은 자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다.

◆검시권은 법의관에게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검시권을 의학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다. 사망 원인을 밝히는 일 자체는 환자를 진단하는 것이니 당연히 의사 몫이라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의사 역할은 현재 경찰 요청에 응하는 참고인 또는 감정인 수준이다. 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조차 마찬가지다. 진료는 의사, 약은 약사의 몫이듯 검시는 의사가 하고 그 결과에 대한 법적 판단은 사법부가 할 일이라는 것이 법의학계 주장이다.

하지만 “검시는 사망의 원인이 범죄인지 밝히기 위한 절차로서 ‘내사’에 해당하는 사법행위”라는 것이 법조계의 입장이다. 의학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의사를 검시체계에 넣을 수 없으며 검시권을 의사에게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영미법 체계 국가처럼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는 또 다른 수사기관으로서 법의관 또는 검시관을 법령에 규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형법체계 전반을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하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수사당국은 이보다는 검시 전문인력, 즉 법의학자의 부족을 현행 검시체계의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지금도 초동수사 단계에서 의사들의 참여는 가능하지만, 법의학 지식을 갖춘 의사가 부족해 부검 단계에서야 법의학자가 개입하는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의학계는 설령 법의학자가 대거 쏟아져 나온다 해도 그들을 받아줄 현장이나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황인 만큼 제도 정비가 선행해야 인력 양성이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또 수사기관 개입은 법의학자가 시체를 살펴 타살이 의심된다고 판단한 후에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김장한 서울아산병

원 교수는 “시체를 살피는 것은 수사와 아무런 관계 없는 수사 전 단계”라며 “법의관이 검시권을 가질 경우 부검을 위해 시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는 것을 가지고 수사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상황을 혼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검 권한을 가진 법의관 제도를 만들게 되면 법의관은 병원 밖에서 사망해 검안해야 하는 모든 죽음을 총괄하게 된다. 범죄 연관성에만 초점을 맞춘 검시로 등한시됐던 행정검시도 가능해진다. 

법의관 제도가 장기적으로 마련된다면 법의학자 숫자도 늘게 된다. 법의학 전문의 과정을 신설하고, 의과대학에 법의학교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전국 의대에 법의학교실이 생기면 전국을 담당할 수 있는 법의관 200명 양성도 4∼5년이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윤성 서울대 교수(법의학교실)는 “10년, 20년 뒤에 검시 전문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따져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회의 권고안이 주는 메시지 주목

검시체계의 모범답안을 작성하기 위해선 유럽회의(유럽 42개국 가입·유럽연합과는 다른 조직)에서 1999년 내놓은 ‘회원국의 법의검시규정 일치에 관한 각료위원회의 권고안’을 주목할 만하다. 권고안이 나온 지 15년이나 됐지만 후진적인 한국의 검시제도에는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권고안에서는 법의전문가나 법의학적 검사에 익숙한 의사가 검시를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다만 타살과 타살이 의심스러운 죽음은 반드시 법의전문가가 검시하도록 돼 있다. 또 ‘법의전문가는 어떠한 형태의 압력에도 굴복해서는 안 되고 직무를 수행하는 데 객관적이어야 하며, 특히 결과와 결론을 표현하는 데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조항을 넣어 법의학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강조했다. 

부검을 해야 하는 죽음은 10가지로 정해놨다. 타살과 타살이 의심되는 경우는 물론이고 고문 또는 어떠한 형태의 학대를 의심할 수 있는 인권 침해, 직업병과 직장의 위해, 기술적 재해 또는 환경적 재해 등이 대상이다. 범죄로 인한 억울한 죽음뿐 아니라 재해로 인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유럽회의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권고안은 부검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도 해놓았다. ‘부검은 가능한 한 한두 명의 의사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며, 그중 최소 한 사람은 검시의학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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