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관·경찰검시관 협업 잘 안돼… 검시 잘못돼도 책임지는 사람 없어”


“국과수 소속이 아니라 법의학 하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인 것처럼 ‘검시는 의사에게, 법적 판단은 사법부에게’가 제 결론입니다.”

서중석(사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1991년부터 법의관으로 일해오며 과학수사의 초석을 다져왔다. 다음은 서원장과 일문일답.


―현행 검시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병원 의사는 환자가 진찰실에 들어올 때부터 진료를 한다. 검시 역시 전문가가 맡아 ‘수사가 필요한 부검이겠다’ 싶으면 수사기관에 연락하면 된다. ‘의사한테 이런 걸(검시권) 맡겨도 되겠는가’라고 하는데, 그래서 외국에선 법의관에게 별도의 라이선스를 주는 것이다.”

―법의관 검시권 부여는 기소독점주의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한 것 아닌가.

“법의관에게 검시권을 주는 것이 제대로 된 검시제도다. (그게 안 되니) 그러면 뭔가 변형을 해야 하는데 그때부터 ‘한국식’이라는 말을 붙이게 된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간호사 등을 뽑아서 ‘검시관’이라고 한다. 검시관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검시관이 하는 사망 판단을 점검해보니 맞는 판단이 반도 안 된다. 그런데 그걸 왜 운영하는가.”

―법의관이 직접 현장에서 사법부검 대상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검시체계 전반을 직접 관장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리고 경찰검시관이 전혀 쓸모없는 분들이 아니라 의사 입장에서 굉장히 좋은 자원이다. 처음 검시관 논의가 시작될 때 경찰에서 ‘국과수 인원 늘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구조로 돼 있으니 그걸 우회적으로 국과수에 다 파견해주겠다’고 해서 제가 (검시관 제도 도입을) 뒷바라지했다. 막상 검시관 인력이 생기니 ‘왜 우리 인력을 딴 데 주느냐’며 경찰이 쓰고 있다. 이는 병원이 의사와 간호사를 따로 뽑아서 양쪽에서 따로 운영하는 거랑 똑같은 것이다. 합쳐져야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 그 좋은 인력 144명을 (추가 검시관으로) 뽑는다는데, 국과수에 붙여주면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형성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현재 법의관과 검시관 협업은 잘되는가.

“아마 의사들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은 것으로 안다. 이상한 편법을 쓰다 보면 점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복잡해지고 일이 꼬여 간다. 법의학 20여년 경험으로 봤을 때 (검시체제가) 과거보다 더 나빠지고 있다. 외국은 점점 단순화해서 협업하도록 하는데 우리나라 현장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누가 검시를 잘못해서 처벌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령화사회의 검시 문제는 더 심각해지는가.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죽은데 그 검안을 의료보험 재정에서 지원하는 걸 검토해야한다. 돈이 없거나 병원에 가기 어려워서 사각지대에서 그냥 쓸쓸히 유명을 달리 하시는 분들의 사인규명은 나라가 책임지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보험분쟁·의료사고 느는데…검시의 또 다른 적폐들

김모(47)씨는 2012년 1월28일 직장 동료와 경기 양평 용문산을 등산했다. 1시간30분가량 산행 끝에 정상을 눈앞에 둔 김씨는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쓰러졌다. 다시 1시간30분 만에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숨을 거뒀다. 응급실 담당 의사는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김씨 사인을 그냥 ‘미상’으로 적어 시체검안서를 발급했다. 경찰은 ①사망 당시 목격자가 있었고, ②타살 혐의점이 없으며, ③유족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검하지 않고 사인미상인 상태로 사건을 종결했다.



사인불명의 김씨 죽음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됐다. 김씨는 심근경색 진단 시 2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특약가입한 상태였다. 보험사는 사인미상이라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시체검안서상 사인이 미상이고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흉통을 호소하고 쓰러진 사실만으로 급성심근경색증 때문에 죽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족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금전적 손해까지 입게 됐다.

국내 검시제도하에선 이런 억울한 사례가 흔하다. 검시가 오로지 범죄 연관성만 따지는 ‘사법검시’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보험분쟁, 전염병 예방, 의료사고 조사 등에서도 검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나 범죄와 무관한 죽음의 이유를 밝히는 ‘행정검시’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도는 갖춰져 있지만 사실상 전무

법에서는 행정검시를 할 수 있는 경우를 3가지로 정하고 있다.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제6조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 국방부 장관 또는 광역·기초자치단체장이 시체를 해부하지 않고는 사인을 알 수 없거나 이로 인해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시체의 해부를 명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0조에서는 질병관리본부장에게 국민 건강에 중대한 위협을 미칠 우려가 있는 감염병으로 사망한 것이 의심되는 때 시체 해부를 명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경찰청의 행정검시규칙에서는 범죄 연관성이 없더라도 수재, 낙뢰, 파선 등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 또는 행려 병사자를 검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뤄진 행정검시는 없다. 국내 부검 대부분을 맡고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2012년 실시한 5159건의 부검 중 경찰에서 의뢰한 것이 4907건, 해양경찰 211건, 군 17건, 기타(교도소 등) 24건이었다. 경찰이 하는 검시가 사법검시 위주인 것을 생각하면 행정검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윤성 서울대 교수(법의학 교실)는 “교통사고가 나서 타고 있던 사람이 다 죽었을 경우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했다고 해도 탑승자가 다 죽었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는 더는 수사하지 않는다”며 “누가 운전했느냐에 따라 보험금 지급이 달라지는데 우리나라 검시제도는 검사가 지휘권을 가진 범죄수사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제도·인식 부족이 원인

행정검시가 등한시되는 것은 검시를 총괄하는 기구가 없는 등 검시제도가 체계적이지 않은 영향이 크다. 

검시 관련 규정은 형사소송법, 의료법,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행정검시규칙 등 최소 6가지 이상이다. 규정이 여러 개라는 것은 권한이 분산돼 있어 체계가 없다는 뜻이다. 

검시를 총괄하는 기구가 없는 상황에서 모든 변사체는 그나마 검시체계가 갖춰진 수사기관 소관이 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행정검시는 이뤄지지 않고 사법검시 위주로 흘러간다. 사인이 명확하지 않아 받지 못하는 보험금이 얼마나 되는지, 의료사고나 산업재해와 관련 있지만 그냥 처리되는 죽음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검시를 꺼리는 사회적 인식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장례 절차를 중시하고, 시체를 훼손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 이는 범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닌 상황에서는 부검을 꺼리는 현실로 이어진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2년 전국(제주 제외) 성인남녀 1000명에게 물어봤더니 검시를 꺼리는 이유 중 ‘검시가 신속하게 처리되지 못해 장례일정과 절차에 미치는 영향이 우려된다’는 것에 대해 45.5%가 조금 그렇다, 14.8%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몸이 잘린다는 것이 두벌죽음이라 여겨 비인간적이다’라는 것에는 조금 그렇다 27.8%, 매우 그렇다 11.7%로 나타났다. 행정검시 관련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에스제이 손해사정의 최순진 대표는 “유족에게 부검을 왜 안 했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다 똑같다”며 “‘(사망 당시에는) 경황도 없고 어느 누가 부검을 원하겠느냐’고 말한다”고 전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죽은 자는 몸으로 말하는데…

현장에 검사도 법의학자도 없다

77세 A할머니는 지난해 10월 울산 자택에서 사망했다. 가족은 상조회사 직원을 불렀고, 장례식장으로 옮겨진 시신은 일반의사가 검안했다. 사인은 ‘심폐정지(노환 추정).’ 할머니의 죽음은 흔한 노인 사망으로 치부돼 경찰에 신고되지 않았다. 상황은 발인 2시간을 남겨두고 급변했다. 할머니가 사망하기 이틀 전 딸 B(49)와 싸운 것을 의심한 가족이 고민 끝에 경찰에 변사 신고를 한 것이다. 모녀는 평소에도 다퉜다. 이틀 전 B의 언니는 어머니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는데 B는 경찰에서 “화가 나서 뺨을 3대 때렸다”고 진술했었다. 부검 결과 할머니는 양쪽갈비뼈와 골반이 부러지고 내부 출혈이 나타나 저혈량성 쇼크로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이 신고하지 않았다면 사망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단순 병사로 묻혔을 A 할머니 죽음에는 한국 검시제도 문제점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검시대상을 법으로 정하지 않고 검사의 판단에 맡겨두고, 법의학자가 적어 전문 지식 없는 일반의사가 검안하는 일이 많은 한국에서는 억울한 죽음이 언제라도 생길 수 있다.



◆“검시, 법치(法治) 아닌 인치(人治)”

시체 외부와 발견현장을 조사하는 검안을 한 뒤 추가로 시체를 해부해 살피는 부검이 필요할지 결정하는 건 검사다. 그러나 정작 검사 대부분에겐 시체 상태를 살필 법의학 전문성이 없다.

외국은 다르다. 일차적인 판단을 법의관이 하거나 반드시 검시해야 하는 죽음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20여개씩 아예 못 박아 놓은 경우가 많다. 채종민 경북대 교수(법의학교실)는 “한국의 검시제도는 법치가 아니라 인치”라고 말했다.

변사 통계도 제각각이다. 경찰과 해경에서 발생하는 모든 변사사건을 지휘하는 검찰의 변사자 통계는 경찰·해경 변사자 통계와 일치하지 않는다. 대검찰청이 집계한 2012년 변사자는 3만766명이다. 같은 기간 경찰과 해경의 변사자는 3만2854명이다. 2000여명 차이가 난다.

검·경은 “통계를 뽑는 기준 차이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처음에는 변사였으나 나중에 병사나 노쇠사로 밝혀진 것은 제외했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경찰에서 처음에 변사라고 올라오는 사건은 모두 포함한 통계”라고 말했다.

◆검사도 없고 법의학자도 없는 변사현장

누군가 변을 당해 숨진 현장에는 검시 지휘권을 가진 검사도 없고, 검시 전문성이 있는 법의학자도 없다.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이 변사체로 발견된 지난 6월12일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한 매실밭에도 법의학자는 없었다.

유 회장의 시신은 발견 다음날 부검을 위해 옮겨졌을 때 처음으로 법의학자 앞에 놓였다. 결과적으로 변사체가 유 회장인 것을 확인하는 데 40여일이나 걸렸고, 그 사이 수사력이 낭비됐다. 유 회장의 사인은 끝내 알 수 없게 됐다.

검사의 직접 검시율은 지난해 4.1%에 불과했다. 초동수사 격인 현장검안은 거의 경찰이 검사를 대행한다. 현장에 나가는 경찰도 법의학 전문성은 없다. 변사체 대부분은 일반 의사가 검안한다. 법의학자가 검안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전국 법의학자는 50여명이다. 범죄 연관성이 뚜렷한 부검 요청을 감당하기도 벅찬 숫자라 현장 출동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유 회장 시신은 부패 정도가 심해 법의학자라도 신원과 사인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었을 테지만 법의학자가 발견 초기 현장에 있었더라면 사인 규명에 필요한 증거수집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게 법의학계 의견이다. 



◆무연고 사망자 30% 사인 ‘미상’

허술한 검시제도 때문에 불명확하게 처리되는 죽음은 흔하다. 무연고 사망자가 대표적이다. 

노숙인이나 혼자 사는 사람이 대부분인 무연고자가 죽으면 거의 경찰에 변사체로 신고된다. 그러면 경찰이 현장에 나가 시체를 병원에 옮겨서 법의학 지식이 없는 일반 의사가 검안하는 것이 통상 절차다. 전남 순천 매실밭에서 발견된 유 회장 변사체도 이 절차를 거쳤다. 무연고자 시신은 경찰 신원 확인을 거쳐 범죄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부검 없이 화장(火葬)된다. 유 회장의 경우 신원 확인 과정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확보하고 있던 DNA 대조를 통해 신분이 밝혀졌다.

취재팀이 서울 시내 25개 구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에서 사망한 무연고 사망 1181건 중 394건(33.4%)이 ‘사인미상’으로 처리됐다. 이들의 검시에는 법의학자가 관여하지 않았다. 어쩌면 망자가 시신으로 하는 증언을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설령 나중에 타살 가능성이 제기돼도 이미 화장한 후라 수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많은 변사가 법의학 전문가 확인없이 함부로 처리된다. 검시 관련 법령이 없어 법의관이 현장에 가려 해도 갈 수 없다. 사인의 진실이 묻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나라는 1년에 25만명 정도 사망한다. 병원에서 15만명 정도 죽고 나머지 10만명은 병원이 아닌 곳에서 사망한다. 이게 변사다. 그런데 이 10만명의 죽음을 ‘제대로 다루라’는 법령은 하나도 없다. 사건 현장에 경찰이 달려가 전공과 무관하게 아무 의사나 불러 간단한 의견을 청취한 다음 검사에게 보고하고 판사가 부검 영장을 발부한다.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나.” 한 인터뷰에서 토로한 정희선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의 개탄이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살인의심 변사는 두번 검시 원칙

결과 불일치땐 4검도… 철저 규명

“지금의 검시제도는 조선시대보다 못하다.”

경북대 채종민 교수(법의학교실)의 평가다. “조선시대에는 죽은 자가 억울하면 저승에 가지 못하고 떠돈다고 해서 억울함을 없애자는 의미에서 검시를 철저하게 했다”는 것이다.

1937년 당시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사법제도 연혁도보에 묘사된 조선시대 검시 모습. 혹시 모를 증거를 찾기 위해 시신 옷을 모두 벗긴 후 술찌꺼기, 식초, 물 등으로 시신 몸을 세척한 후 검시했다고 한다.


수사기법이야 현대가 비교할 수 없는 우위이나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겠다는 정의 구현 의지와 국민의 마지막 인권을 대하는 자세는 조선시대가 낫다는 얘기다.

특히 조선시대에 살인이 의심되는 변사사건은 “봉분(무덤)을 파헤쳐서라도 정확하게 조사해야 한다”(정조)는 지침이 법에 명시될 정도로 철저한 검시가 이뤄졌다. 또 살인 의심 변사는 원칙적으로 두 번의 검시를 실시하고, 두 명의 ‘사또(조선 지방관 속칭)’가 개별적으로 조사하도록 했다.

최초로 이뤄지는 검시를 초검(初檢), 두번째를 복검(覆檢)이라 하는데 초검관은 복검에 참여하지 못하고, 복검을 할 때는 초검의 기록을 절대 열람할 수 없다. 초검관과 복검관이 만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초검관과 복검관이 각각 조사한 결과가 일치하면 사건을 종결했지만, 그렇지 않거나 의심이 가는 경우에는 형조, 지금의 법무부에서 파견된 관원 또는 해당지역 관찰사가 임명한 특별검시관이 3검, 4검을 할 정도로 집요하게 매달렸다. 사또는 사건 조사부터 기소, 판결까지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법의학적 지식을 갖춰야 했다. 수사가 잘못되면 파직을 당할 정도로 책임도 엄중하게 물었다

검시보고서에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되, ‘글자가 많은 것을 싫어하지 말라’며 주(註)를 달아 자세히 쓰도록 했다. 이 같은 수사 원칙과 기법은 ‘원통함이 없게 하라’는 뜻의 일종의 검시 지침서 ‘무원록(無寃錄)’이 근간이 됐다. 

증수무원록


1308년 중국 원나라 왕여(王與)가 저술한 이 책은 조선에 들어와 100여년이 지난 세종 20년(1438) 11월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으로 완성됐다. 

이후 영·정조대를 거치면서 혼란한 사회상과 다양한 범죄수법을 반영해 구택규·구윤명 부자의 ‘증수무원록대전’, 그리고 서유린의 ‘증수무원록언해’로 발전했다.

물론 당시 조선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부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의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변사사건의 사망원인을 규명하고 강력범죄를 해결했다는 것은 부검을 하지 않고도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법의학과 과학수사 기술이 발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인교대 김호 교수(사회교육과)는 “조선은 법의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고 그것이 법의학에 대한 요구로 이어져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법의학을 수용한 것”이라며 “(현대가) 과학기술은 더 발달했을지 몰라도 국민 죽음에 대한 국가의 의지나 책임은 후퇴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검시전문가 100% 현장 투입 등 관계기관과 합의 없이 일방 발표

화상통화 자문 등 실효성 낮아
유병언 전 청해진해운 회장 변사체의 노숙자 오인 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지난 13일 “단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도 없도록 하겠다”며 ‘변사사건 종합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관계기관과 협의가 채 되지 않은 설익은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현장 문제점에 대응하는 실질적인 대책도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책의 골자는 변사사건 중 타살 의심, 신원 미확인, 아동학대 사망 등 사회적 이목 집중이 예상되는 사건을 ‘중점관리’ 대상으로 정해 별도 대응한다는 것이다. 타살 흔적을 잘 숨긴 사건이나 신원이 확인된 변사자에 대한 수사 허점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

또 중점관리 변사사건 현장에 검시 전문인력을 100% 투입하겠다는 내용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찰은 국내 법의학자 9명을 포함해 현장 출동이 가능한 ‘검안의 인력풀’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법의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인력풀에 대해 결정된 바 없고, 인력풀이 만들어져도 경찰 구상처럼 현장에 나갈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또 “서울·경기의 일선 경찰서 상당수는 기존의 법의학 전문의사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않다“며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한법의학회 관계자는 “경찰청과 두 차례 회의를 했지만 구체적으로 정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부검하기도 바쁘고, 대학 법의학교실은 부검·연구·강의를 해야 하는데 경찰 전화에 바로바로 나갈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우리가 확보한 검안의는 법의학자는 아니지만 검안 경험이 있는 의사들이고, 현장에 바로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국과수 법의관에게 태블릿 PC를 지급해 필요할 경우 화상통화를 통한 ‘원격 법의 자문’을 받겠다고 발표한 내용에 대해서도 국과수에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 좀 비춰주세요”하는 식으로는 현장 파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검시전문인력 투입을 명분으로 두 배 가까운 증원 계획을 발표한 ‘경찰 검시관’은 전문성에 대한 공방이 뜨겁다. 임상병리, 간호학 등을 전공한 검시관이 병리학 전문의 자격을 따고 법의병리 실무 경험을 쌓은 법의학자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시체제의 심각한 문제점인 일선 수사진의 부검 기피 풍토는 아예 빠져 있다. 취재를 종합하면 실무진에선 당직 중 변사상황이 발생하면 비번(휴무)인데도 출근해서 부검에 참여하는 등의 이유로 변사체 부검을 왠만하면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일부에서 업무 과다를 호소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형사들은 부검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검시의 두 축인 검경이 따로 대책을 세우는 상황도 아쉬운 대목이다. 검찰은 경찰과 별도로 변사사건 처리 관련 대책을 마련 중이며 이달 말 법의학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특별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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