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 호스피스, 나를 위한 선택

① 삶의 마지막을 가족과 함께


내 집만큼 편한 곳은 없다. 익숙한 공간, 낯익은 냄새,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집에서 돌봄을 받다 임종하는 경우 환자와 가족 모두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여러 차례 제시됐다.

2010년 미국 학술지 ‘임상 암 저널’에 말기 암 환자 342명과 그 사별 가족을 연구한 논문이 실렸다. 집에서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으며 임종한 환자는 병원 입원실이나 중환자실에서 임종한 경우보다 삶의 질, 신체적 편안함, 심리적 안녕 등 모든 지표가 월등히 높았다.

사별 가족이 겪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비율도 집에서 임종한 경우 4.4%로 병원 임종(21.1%)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가족이 사별 후 일상에 복귀하지 못하는 ‘장기간 애도 장애’를 겪을 확률도 병원(21.6%)보다 집(5.2%)이 훨씬 낮았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연구팀도 최근 ‘BMC의학저널’에 비슷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생의 마지막 날을 집에서 보내면 환자는 물론 가족도 더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내용이다. 단,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면 몇 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봤다. 그 필요성에 환자와 가족이 모두 동의해야 하고, 통증을 줄여줄 간병이 가능해야 한다.

집에서 임종하는 경우 의료비용도 적게 든다. 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는 “대만의 호스피스 비용·효과 분석 연구를 보면 전통적인 병원 치료 대신 병원호스피스를 택한 경우 사망 전 1개월간 의료비용이 64.2% 줄어들고, 가정호스피스는 병원호스피스의 절반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말기 암 환자들도 임종 장소로 ‘내 집’을 선호했다. 2012년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말기 및 진행 암 환자 465명을 조사했더니 75.9%가 돌봄 장소로 ‘가정’을 택했다. 그 이유(복수응답)로는 ‘익숙한 장소가 주는 안정감’(88.9%)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72.4%) ‘경제적 부담이 적어서’(51.4%) 등을 꼽았다. 또 89.1%는 ‘가정호스피스 이용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일반인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2014년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성인남녀 1500명을 조사한 결과 57.2%가 임종 장소로 자택을 선택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19.5%) 병원(16.3%) 요양원(5.2%)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지 않다. 간병할 사람이 없어 입원을 택하고, 많은 말기 암 환자가 요양시설에 머문다. 말기 암 환자의 병동호스피스 이용률도 13%(2014년)에 불과하다. 암 환자의 89.2%(2013년)는 여전히 병원에서 임종하고 있다.

유럽과 북미 국가의 대부분은 호스피스 서비스 가운데 가정호스피스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대만과 일본도 가정호스피스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호스피스 제도는 2003년부터 ‘병동호스피스’ 중심으로 시행돼 왔다. 지난해 말에야 ‘암관리법’ 개정으로 가정호스피스가 제도화됐다. 다음 달 2일부터 가정호스피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시범사업이 서울성모병원 등 17개 기관에서 시작된다. 환자 집에 찾아가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의 방문료와 교통비 등을 진료비(일당 정액제)로 책정해 지원한다. 그동안은 병동호스피스를 갖춘 일부 의료기관이 기부금 등 자체 비용을 들여 운영해 왔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김은숙 충남대병원 호스피스 간호사(왼쪽)가 16일 대전 선화동 박경숙씨 집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담관암 말기였던 박씨의 시어머니는 지난해 8∼10월 충남대병원 가정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고 집에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 오른쪽 사진은 가정호스피스로 위암 말기 남편을 돌보다 떠나보낸 대전 가장동 이규정씨가 김 간호사와 가족 앨범을 보며 대화하고 있는 모습. 대전=김지훈 기자

충남대병원은 대전시의 예산 지원을 받아 원하는 환자에게 가정호스피스 서비스를 무상 제공하고 있다. 간호사 3명이 10∼20명 환자 가정을 주 2∼3회 직접 방문해 치료와 심리 상담을 한다. 환자가 사망해 공식적인 호스피스 기간이 끝나도 김 간호사처럼 주기적으로 보호자의 집을 찾아 유족의 마음을 달래준다. 

“꽃방석에 앉았다 간다”

유씨는 지난해 5월 암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치료는 불가능한 상태였지만 박씨와 남편이 교대로 병원에 머물며 간병했다. 낯선 병원 밥을 힘들어하던 유씨를 위해 세 끼를 집에서 만들어 날랐다. 메르스 사태가 한창일 때여서 면회가 금지되자 유씨는 “왜 다른 가족은 보이지 않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이런 모습을 본 가족들은 가정호스피스를 결심했다.

박씨는 “석 달 만에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간 뒤에야 한숨 놓을 수 있었다”고 했다. 평소 먹던 반찬으로 상을 차리자 병원에서 식사를 거부하던 유씨가 조금씩 죽을 먹기 시작했다. 남들 눈치 볼 필요가 없어 목욕도 편해졌다. 병원에서 쪽잠을 자다 집 침대에서 푹 쉬니 간병생활이 덜 피곤했다. 담즙 주머니와 수액 등은 김 간호사가 사나흘에 한 번씩 찾아와 관리해줬다. 입원했을 때와 똑같은 서비스였다.

무엇보다 함께 산 지 1년밖에 안 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됐다. 박씨는 “용기를 내서 어머니께 ‘사랑한다’고 하고 안아드렸어요. 병원에 있었으면 남 눈치 보느라 쑥스러워 못했을 거예요.” 유씨는 지난해 10월 집에서 숨을 거뒀다. 임종 전 박씨 손을 잡고 “내가 꽃방석에 앉았다 간다”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호스피스 서비스는 계속되고 있다. 박씨는 장례를 치른 뒤 가족들이 사소한 일로 싸우고 화내는 과정을 겪었다. 김 간호사의 조언으로 가족끼리 감정이 폭발할 때 잠시 자리를 피하는 지혜가 생겼다고 했다. “가정호스피스는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를 위한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온 가족이 지켜본 마지막

김 간호사가 두 번째로 간 곳은 가장동의 한 주택이었다. “우리 양반이 이 방에서 임종을 했어. 그래선지 이 방에 들어오면 아직도 함께 있는 것 같아.” 앨범을 꺼내 생전 남편의 모습을 넘겨보던 이규정(81)씨가 눈물을 흘렸다.

평생을 공직에서 보낸 남편 김모(사망 당시 81세)씨는 3년 전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이듬해 서울의 대형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이씨는 주저 없이 남편을 집으로 데려온 뒤 충남대병원에 가정호스피스를 신청했다.

이씨는 “자식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나도 허리가 아파 병원에서는 도저히 모실 수 없었다”며 “40년 넘게 산 이 집에서 편하게, 내 손으로 마지막을 준비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김 간호사는 지난해 6월부터 두 달간 15차례 이씨 집을 방문했다. 다리 마비에 의한 배뇨 장애와 통증 관리를 주로 했다. 거실에 작은 풀장을 설치하고 간호사와 이씨, 자녀들이 함께 김씨를 목욕시켰다. 간병인과 자원봉사자도 도왔다.

이씨는 남편이 떠난 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지난해 8월 셋째아들이 먼저 안방 침대에서 아버지 상태를 확인한 뒤 식구들이 모두 시신을 확인했다. 평생 살던 집에서 맞는 편안한 죽음이었다. 이씨는 “무섭지 않았다”며 “오히려 편하게 떠난 남편을 보니 여한이 없다”고 했다. 이후 이씨가 장에 나가 직접 사온 수의를 입히고 장례를 치렀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본 아이들은 김 간호사와 함께 찾아온 미술치료사의 상담도 받았다.

인터뷰를 마치기 전 이씨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남편이 몰래 녹음해둔 음성 유언이 담겨 있었다. “얘들아 잘 들어라. 혼자 된 어머니 잘 모셔라….” 눈물을 흘리던 이씨는 “그래도 이 양반이 집에 누워 있었으니 이런 거라도 했지. 병원이었으면 이런 흔적도 못 남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삶의 마지막을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준비하는 가정호스피스 건강보험 시범사업이 다음달 2일 시작된다. 서울성모병원 가정호스피스팀 자원봉사자 남명희씨가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다가구주택을 방문해 위암 말기인 김모 할머니 손을 꼭 잡아주고 있다. 김지훈 기자

서울 용산구의 한 다가구주택 4층 집에 지난 15일 서울성모병원 혈액종양내과 이경식(73) 명예교수가 들어섰다. 김인경(41·여) 간호사와 자원봉사자 남명희(53·여)씨가 동행했다.

“할머니 저희 왔어요.”

핼쑥한 얼굴로 안방 침상에 누워 있던 김모(85) 할머니가 희미하게 눈을 떴다. 김 간호사는 손을 꼭 잡으며 “진지는 드셨고? 불편한 데는 없어요?”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어∼” 하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딸 고모(51)씨는 “통증이 오면 진통제 먹고 주무시기만 한다”고 했다. 심할 때는 몸에 통증 패치를 붙인다. 김 간호사는 팔에 꽂힌 영양수액을 체크했다. 혈압을 재고 욕창은 없는지 이리저리 살폈다. 그 사이 남씨가 다리 마사지를 시작했다. 혈액순환이 안 돼 부어 있는 다리를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아내곤 계속 주물렀다.

할머니는 이 집에서 40년을 살았다. 군인이었던 남편과 평생을 바쳐 일군 삶의 공간이다. 구석구석 남편의 체취가 있다. 지난해 10월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병원에서 “더 이상 해드릴 게 없다”고 말했을 때 할머니는 “집에 가겠다”고 했다.

40년을 산 집에서…

할머니의 암이 발견된 건 3년 전이다. 이미 위암 4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간에도 퍼진 데다 암 덩어리가 위와 대장 연결 부위를 막고 있어 수술도 위험했다. 살고 싶었다. “항암치료를 해보자”는 의사의 말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할머니는 암과 싸웠다. 2년간 60여 차례 독한 항암치료를 버텨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해 9월 마지막 항암치료가 끝난 뒤 의사는 “길어야 3개월, 짧으면 한 달입니다. 호스피스를 알아보시죠”라고 했다. 억울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악착같이 살아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

가족들은 입원이 가능한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봤다. 그런데 할머니는 “병원은 무섭다”며 한사코 “집에 가자”고 했다. 딸 고씨는 “암 병동에 입원한 적이 있는데 옆 환자가 아프다고 소리치고 끙끙거리는 걸 보셨다. 안 좋은 기억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했다. 응급상황이 오더라도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치료를 일절 하지 말라고 가족에게 당부했다.

고씨는 “솔직히 집에서 어떻게 보살필지 걱정이 많이 됐다”고 했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는 거동이 불가능하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고씨 가족은 할머니 집 아래층에 살면서 간병하고 있다. 주말마다 언니 가족이 찾아온다. 고씨는 “거동하실 수 있을 땐 같이 여행도 다니곤 했다. 이제 평안히 보내드리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가족들은 지난해 11월 가정호스피스의 문을 두드렸다. 통증 완화, 욕창 관리 등 말기 암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와 간호는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가정호스피스팀의 도움을 받는다. 가정호스피스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기대여명 6개월 안팎의 말기 암 환자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입원을 대체할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찾아가는 호스피스, 아름다운 동행

호스피스 자원봉사 5년째인 남씨는 “다른 봉사자와 함께 2주에 한 번씩 와서 샴푸와 마사지를 해드리는데 할머니가 무척 시원해하신다”며 “함께 기도하고 찬송가를 불러드리면 할머니 얼굴이 편안해 보여 좋다”고 말했다.

김 간호사는 가정호스피스 경력 6년의 베테랑이다. 현장 경험이 풍부해 의사 왕진이 필요한지, 병동에 입원해야 하는지, 임종 순간이 임박했는지 가늠한다. 그를 비롯한 간호사 2∼3명이 번갈아 주 2회 할머니를 찾는다. 보호자와 전화 통화는 수시로 이뤄진다. 이번에도 할머니 상태에 대한 의료적 판단이 필요해 이 교수와 함께 왔다.

이 교수가 왕진 가방에서 청진기를 꺼내 할머니 가슴에 댔다. “숨을 크게 쉬어 보세요…아이고, 좋으시네.” 이번엔 손으로 아랫배를 만져보더니 “변이 좀 차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고씨는 “사흘에 한 번씩 (대변을) 본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교수는 “관장이 효과 없으면 약국에서 둘코락스를 사서 드시게 하라”고 조언했다.

그러곤 할머니에게 고씨 칭찬을 했다. “좋은 따님 두셨네요. 효녀를 두셨어. 간병도 잘 하고….” 할머니 입가에 미소가 잠시 번졌다. 고씨는 “엄마를 위해 한달음에 와준 분들이 정말 고맙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죽음을 정복 대상으로 착각”

이 교수는 1988년 서울성모병원에 국내 첫 ‘병동 호스피스’가 생겼을 때부터 말기 암 환자들과 함께해 왔다. 한국 호스피스의 선구자다. 2008년 은퇴 후에도 1주일에 두 번씩 호스피스 병동과 가정에서 환자들을 살핀다.

이 교수는 “말기 암 환자가 통증과 고통 속에 죽어가는 모습을 많이 봤다. 마지막 삶을 가장 아름답게, 여한이 없도록 해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호스피스는 단순히 신체적 돌봄에 그치지 않는다. 가족과 삶에 관한 영적 돌봄까지 제공한다. 물론 환자의 종교를 존중하며 이뤄진다.

“60, 70년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가족이 다 모여 작별인사도 하고 집에서 모셨어요. 우리의 전통문화입니다. 그게 의학이 발전하면서 변질된 거죠. 죽음을 정복 대상으로 착각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삶의 마지막을 대하는 방식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교수는 “살 수 있는 병은 치료하는 게 맞다. 하지만 말기 환자는 치료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라도 의미 있게,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도리”라고 했다.

“호스피스는 뜻있는 몇몇이 하는 게 아니라 국가적 사업입니다. 복지국가의 역할이에요.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가정호스피스가 더욱 활성화돼야 합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국내 최초로 ‘가정호스피스 표준지침(가이드라인)’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가정호스피스 시범사업을 앞두고 ‘말기 암 환자 가정형 호스피스 운영 편람’을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편람은 가정호스피스의 운영체계와 대상자 등록기준, 서비스 범위, 호스피스팀원별 주요 임무, 환자 방문 및 돌봄 요령과 환자 등록을 위한 표준 서식 등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는 일부 기관에서 자체 매뉴얼로 시행해 운영이 천차만별이었다.

국립암센터 장윤정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과장은 “2014년 말부터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의 사례와 기존 가정간호 업무 편람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말했다. 병동형 호스피스의 경우 ‘표준 매뉴얼’이 보급돼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금 마무리 작업 중이다. 26일쯤 시범기관들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범사업 개시를 불과 며칠 앞두고 마련돼 준비시간이 촉박하다는 볼멘소리가 시범기관 사이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16일 17개 가정호스피스 시범기관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40∼50명 실무자들은 “당장 3월 2일 시범사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임박해서 운영지침이 나올 경우 준비하는 데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시범기관 관계자는 “전산시스템도 구축해야 해 2일 시작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태원 전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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