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감식 기법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때로는 '눈으로 지문을 읽어내는 기술'도 필요하다. 서울 관악경찰서 박재선 경위는 10초면 지문번호를 읽어내고 신분 도용 사실을 밝혀낸다. 경찰 최고의 '매의 눈'을 가지고 있다. [최승식 기자]



“만인부동(萬人不同), 종생불변(終生不變).”

 모든 사람이 다 다르고, 평생 바뀌지 않는다. 사람의 지문에 대해 얘기할 때 꼭 따라붙는 말이다. 지문은 범죄 수사에서 가장 확실한 무기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관계자는 “엄지손가락 지문을 제대로 찍을 경우 선이 이어지거나 끊어지는 일명 ‘특징점’이 120개가 넘는데, 특징점을 12개로만 설정해도 같은 지문이 나올 확률은 1조분의 1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지문 감식은 여전히 가장 빠르고 편리한 신원 확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문 모양이 불변인 것과 달리 지문 감식 기술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고도의 지문 감식 기법은 다시 주목을 받았다. 발견 당시 유 전 회장의 시신은 지문 채취가 어려울 만큼 부패했다. 비교적 오래 형태가 유지되는 손가락과 발가락까지도 심한 탈수로 건조된 상태였다. 이처럼 미라화한 시신에서 경찰이 지문을 채취할 수 있었던 건 ‘고온습열처리법’이라는 기법을 통해서였다. 손가락을 100℃ 물에 담가 순간적으로 지문을 팽창시킨 뒤 가까스로 지문 하나를 채취했다는 것이다. 고온습열처리법은 2005년에 처음 시도된 지문 채취 기술이다. 10년 전에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면 유 전 회장의 시신은 신원 미상의 변사체로 남았을 수도 있다.

 지문 분석 기술의 진화로 장기 미제 사건들이 해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05년 9월 2일 오전 5시30분쯤 부산 동대신동의 한 원룸 3층에 괴한이 침입했다. 괴한은 베란다의 열린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 집주인 A씨(25·여)를 흉기로 위협했다. 양손을 묶고 성폭행까지 시도했지만 A씨가 저항하자 현금만 빼앗아 그대로 달아났다. 당시 베란다 난간에서 괴한의 ‘쪽지문’(조각 나거나 부분만 남은 지문)이 발견됐지만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긴 시간 미제로 남아 있던 이 사건은 지난해 4월 경찰청의 지문 재검색을 통해 9년 만에 해결됐다. 2010년과 2012년 두 번에 걸쳐 지문 데이터베이스를 새로 입력하고 검색 프로그램의 성능을 높인 결과 희미한 지문을 남긴 괴한이 김모(33)씨란 걸 확인해 낸 것이다. 경찰은 즉시 연고지를 추적해 김씨를 검거했고 반박할 수 없는 증거 앞에 김씨는 범행을 시인했다.





 경찰청은 2010년 이후 매년 살인·성폭력·강도·절도 등 공소시효가 남은 주요 미제 사건에 대해 지문 재검색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5년간 총 3032개의 사건 관련 지문을 재검색해 1157명의 신원을 새로 확인했다. 덕분에 영구미제로 남을 뻔한 374건을 해결했다. 경찰관들이 “‘지문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속설이 범죄 수사에선 사실”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국내 지문 감식 기술은 여러 나라로 수출된다. 2013년 6월 과테말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한 것도 한국의 지문 감식 기술이었다. 당시 과학수사기법을 교육하기 위해 과테말라에 가 있던 충북경찰청 과학수사계 신강일 경위 등은 현지 과학수사대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깨진 유리조각에 지문이 남았는데 제대로 채취되지 않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과테말라 수사관은 하얀 분말을 이용한 일반적인 지문 채취뿐 아니라 기체화시킨 본드를 활용해 지문을 채취하는 ‘기체법’까지 시도했지만 제대로 지문이 드러나지 않아 난감해했다. 이에 신 경위는 기체법 적용 후 염색 시약(Basic Yellow)을 활용해 지문이 눈에 보이게 했다. 그 결과 과테말라 경찰은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신 경위는 “당시 과테말라 수사 당국이 염색 시약을 활용한 채취 방법을 잘 몰라 기법을 전수해줬다”고 말했다.

 지문 감식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눈으로 지문을 읽는 기술’이 큰 힘을 발휘할 때가 많다. 경찰은 지문인식기가 없어도 육안으로 지문을 구분할 수 있도록 모든 지문에 지문 번호를 부여한다. 크게 활모양의 ‘궁상문(弓狀紋)’, 말굽 모양의 ‘제상문(蹄狀紋)’, 소용돌이 모양의 ‘와상문(渦狀紋)’으로 유형화하고 융선의 숫자와 선들이 만나는 지점인 ‘삼각도’의 위치를 통해 각각의 번호를 부여한다. 

궁상문은 1번, 제상문은 삼각도 위치와 융선 수에 따라 2~6번, 와상문은 융선 수에 따라 7~9번, 손상된 지문은 0번이다. 손가락이 10개인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10자리의 지문 번호를 가진다. 경찰은 교육과정에서 지문 번호를 읽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종이에 찍힌 지문 모양으로 교육을 받기 때문에 실제 손가락을 보고 지문 번호를 읽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과 경험이 필요하다.




 17년 동안 2만여 명의 지문 번호를 읽어낸 서울 관악경찰서 신림지구대 박재선 경위는 경찰 내에서 ‘눈으로 지문 읽기의 달인’으로 꼽힌다. 박 경위는 독학으로 지문 읽기를 연마했다. 수배자나 용의자가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외우고 다니며 쉽게 수사망을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다. 절차는 간단하다. 신원조회기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지문 번호가 뜬다. 이를 실제 손가락 지문과 대조해 신원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확인한다.

 박 경위가 처음 지문 읽기를 수사 현장에서 적용한 건 1998년이다. 당시 박 경위는 서울 신림동 길가에서 팔이 부러진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남성을 발견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신분증이 없었다. 대신 이름이 적힌 작은 맥가이버 칼이 나왔다. 최모(당시 24세)씨였다. 박 경위는 최씨의 손가락을 보고 지문 모양에 따른 10자리의 지문 번호를 읽어냈다. 이어 이름과 대강의 연령대를 신원조회기에 입력한 뒤 지문 번호를 대조해 신원을 알아냈다. 최씨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 박 경위는 오랜 연습으로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열 손가락 지문 번호를 읽어내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지난 1월에는 자신의 이름밖에 모르는 치매 노인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고 집에 데려다 줬다. 지난 4월엔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술집에 출입한 미성년자들을 적발했다.

 박 경위는 “치매 환자나 만취한 사람은 빠르게 신원을 확인해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지문을 채취해 신원을 조회하는 데는 2~3시간이 넘게 걸린다”며 “수배자의 경우 지문 채취를 거부하면 현행범이 아닌 이상 강제할 수 없어 눈으로 지문을 읽는 방법이 유용하게 쓰인다”고 말했다.

 그는 일선 경찰을 위한 동영상 교육 자료도 제작했다. 이를 본 동료 경찰들은 “교육을 받고도 응용이 어려워 지문 읽기를 시도하지 못했는데 자료엔 너무 쉽게 설명이 돼 있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며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윤정민·백민경 기자 yunjm@joongang.co.kr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10월 수상자로 김종만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를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김 교수는 땀구멍 지도를 이용한 새로운 지문분석법을 고안, 법의학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문 분석은 지난 100년 간 지문의 융선(지문을 이루는 곡선) 패턴에 의존해왔는데 이 방법은 범죄현장에 남은 지문이 완전한 형태여야 분석이 가능했다. 

김 교수는 고성능 센서를 통해 손가락 끝의 땀샘에서 나오는 미량의 수분을 감지하고 이를 시각화해 땀구멍 지도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손가락 끝 땀샘은 개개인마다 패턴이 다르고 태어날 때 정해진 패턴에서 변하지 않는다. 이를 활용해 개인의 땀구멍 지도를 데이터베이스화하면 현장에 남겨진 지문과 비교해 보다 쉽게 용의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지난 3년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 등 정상급 국제학술지에 41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연구역량도 인정받았다.


lucho@yna.co.kr






영장발부·유죄판결에 결정적 기여 … 경찰, 내년부터 자동 얼굴인식 시스템 개발


지난 6월 충북지방경찰청 소속 신강일 경사는 과테말라를 방문했다. 국과수 직원들과 검찰, 경찰을 대상으로 과학수사 기법을 교육하기 위해서였다. 

과테말라에서는 하루에만 10여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증거물을 확보하고도 범인의 흔적을 찾지 못해 미제로 남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런데 한 지문담당 실험요원이 "의뢰받은 증거물이 있다. 분석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실제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유리조각이었는데 범인이 만진 것이라고 했다. 

해당 직원은 접착제를 증발시켜 지문흔적에 들러붙게 만드는 '기체법'을 시도했다. 하지만 지문은 희미하게 나타났을 뿐, 선명하게 드러나진 않았다. 현실에서는 기체법을 써도 과학수사드라마 'CSI'처럼 한 번에 지문이 현출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신 경사는 기체법을 시도하고 이어 '베이직 옐로우'라는 시약으로 희미한 지문을 염색했다. 특정한 빛을 쪼이면 형광빛이 나는 시약이다. 빛을 쬐자 요철이 희미하던 지문이 밝은 부분, 그늘진 부분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면서 정체를 드러냈다.

과학수사 기법이 갈수록 고도화되면서 이를 통해 밝혀진 증거들이 각종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되고 있다. 지문, DNA를 비롯해 손바닥 지문, 냄새, 걸음걸이, 혈흔 등 다양한 흔적들로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갔다.

지난 4월 부산의 한 편의점에서 벌어진 강도사건 당시 편의점 CCTV에 찍힌 영상에서는 범인이 '20~30대 남성'이라는 점만 확인됐을 뿐 이렇다 할 실마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만 비슷한 사건이 잇따르자 경찰은 신병을 확보한 용의자의 손바닥 지문이 강도사건 당시 남아 있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구속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5월 벌어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자택 화염병 투척사건 당시에는 CCTV 영상을 통해 검거된 용의자의 걸음걸이가 영국 법의학 전문가의 감정을 통해 구속영장 발부에 기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역사는 6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복 후인 1948년 11월 4일, 당시 내무부 치안국에 '감식과'가 설치되면서다. 이어 각 시·도 경찰국 수사과에 '감식계'가 만들어지고 일대 다 방식의 지문대조도 가능하게 됐다.

과학수사 활동 과정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기법은 지문과 유전자(DNA) 증거다. 이를 활용한 한국의 신원확인 기법은 2004년 동남아 쓰나미 사건, 2006년 서래마을 영아 살해사건 등에서 톡톡히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대 초, 중반부터 경찰청 과학수사센터는 '미세증거'와 '혈흔형태분석'으로 대표되는 전문기법을 도입, 활용하고 있다. 미세증거란 섬유, 페인트, 유리, 먼지 등 범죄현장이나 사건 관계자의 몸에 붙어 있던 작은 증거로 용의주도한 범인의 자백을 받을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005년 도입된 혈흔분석은 사건 현장에서 벌어진 행동들을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해 범인의 자백을 받아내는 데 쓰인다. 지난해 4월 대전 동부 판암동 살인사건 당시 이 분석기법으로 확보한 증거가 인정받아 유죄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이밖에 개를 이용한 체취증거 기법, 수중과학수사 기법을 이용한 증거확보도 활성화될 전망이다..

경찰은 내년부터 자동 얼굴인식 시스템 개발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CCTV에 찍힌 신원미상의 용의자를 범죄자 사진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 유사도가 높은 용의자 리스트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경찰관계자는 "우리나라에는 350만대 이상의 CCTV가 설치돼 있고 차량에도 블랙박스가 설치되는 추세"라며 "영상장비가 수사에 자주 활용되는 만큼 용의자 특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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