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마지막 인권인 ‘검시(檢視)’체제가 부실해 원인미상 사망률이 10%에 달한다”는 세계일보 보도(9월 15∼18일자 참조·관련기사 4면)에 대해 정부는 현재 23명인 국가 법의관을 100여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아울러 진로가 막혀 고사상태인 각 대학 법의학 교실 활성화 등 법의학자 양성 방안 및 서울지역 법의관 현장검안 시범 실시도 추진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중석 원장은 10일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과 협의해 일단 올해 법의관을 5명 늘리기로 했으며 순차적으로 100명까지 증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 원장은 또 “법의 양성 방안에 대해서도 법의학회와 논의 중이며 내년에는 서울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변사 현장에 법의관이 현장 검안을 나갈 계획”이라며 “인력이 충분하지 않지만 여차하면 나도 계급장 떼고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 내 검시체계 개선 논의는 지난달 23일 안행부 정 장관이 서 원장에게 국과수·법의학계 공동 개선안 도출을 지시하는 것으로 본격화됐다. 이후 서 원장은 지난 8일 대전에서 열린 대한법의학회 임시 평의원 회의에 직접 참석해 인력 양성 방안 등을 협의했다.

법의학회는 이와 별도로 검찰, 경찰과 각각 검시체계 개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개선안을 논의 중이다. 박종태 법의학회장은 “8일 회의에서 대학은 인력을 양성하고 국과수는 이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었고 문제는 양성방법인데 앞으로 좋은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예방의학처럼 정부가 사회적 필요성을 인정해 법의학 레지던트 제도를 만드는 방안과 군 장기복무 군의관처럼 임상 경험있는 인턴을 뽑아 재정 지원을 해주면서 법의관으로 키우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원주 국과수 본원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선 여야 의원이 검시체계 개선 의지를 나타냈다.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은 “촉탁의에게 부검을 맡기는 이유가 전문인력이 없어서인데 정확성도 떨어지고 책임소재도 불분명한 만큼 법의관이 다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박남춘 의원도 “세월호 사건 때 국가 근본을 바꿔야한다고 우리가 강조했는데 검시체계가 여기에 해당한다”며 근본적인 체계 확립 필요성을 지적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이색 직업인] 법의학 전문가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법의관의 삶에 대해 듣기 위해 만난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의 얼굴에선 법의관다운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사건 현장의 증거들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눈빛이 돋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서 원장은 1991년 법의관에 임명된 이래 25년째 외길을 꿋꿋이 걸어왔다.   

기자는 인터뷰에 앞서 “예전에는 조금 생소했던 ‘법의관’이라는 직업이 최근엔 미국·한국 드라마를 통해 사람들에게 많이 친근해졌다”고 운을 뗐다. 서 원장이 최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인에 대한 감정결과를 발표하면서 법의관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역할이 다시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법의관은 범죄나 사고에 관련된 죽음을 조사하는 직업입니다. 사인(死因)과 사망 경위를 의학적·과학적으로 분석하죠. 법의관은 명칭만 달라졌을 뿐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검시(檢屍)제도와 같은 것입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직업 중에 하난데, 불행히도 우리나라가 물질만능주의에 빠지면서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기피하는 길 중 하나가 됐죠.”

서 원장 역시 처음부터 법의관이 될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그는 “당시에는 병리학에 종양학, 면역병리학, 법의학 등 세부전공이 있었다”며 “사람들이 법의학은 전공을 잘 안 하니까 법의학을 공부하면 좀 더 훌륭한 병리학 교수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국과수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조금 불순한(?) 의도를 갖고 법의관이 됐지만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다.

“순번을 정해놓고 돌아가면서 사건을 맡기 때문에 같은 법의관이라도 전혀 다른 사건을 맡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순번일 때 큰 사건을 많이 맡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많이 받게 됐고, 사인이나 사망 경위를 밝혀내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는 연세대생 노수석군 사망사건, 최덕근 전 블라디보스토크 영사 피살사건,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 살인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사건들을 도맡아 왔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구지하철 화재사건 등 대규모 사건의 부검, 검안에도 관여했다.

수천건의 부검을 해오는 동안 법의관으로서 힘든 점은 없었을까.

“법의관은 한 사건을 맡으면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부터 굉장히 복잡한 데이터까지 분석한 후, 자신이 갖고 있는 법의학에 대한 신념에 입각해 법정에서 감정 결과를 발표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기면(그러면) 기고(그렇고) 아니면 말고’ 식의 추측이 아니라는 거죠. 이번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례처럼 과학적인 수사 결과를 국민들이 믿지 못할 때 힘이 듭니다.”


- 서 원장은 2012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한 후 혁신적 변화를 이끌어왔다. 2주 만에 8만명의 감정 지연(遲延) 건을 처리하고, 감정 기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범죄 현장에 답이 있다
서 원장은 미국의 ‘과학수사대(CSI)’와 우리나라의 법의관이 다른 점은 ‘수사권’의 유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변사체가 발견되면 법의관(ME·Medical Examiner)이 중심이 된 CSI가 출동해 현장 감식과 부검, 수사까지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전담 검시제’를 채택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경찰 등 수사당국이 검시 업무를 겸하는 ‘겸임 검시제’로 운영된다. 변사체가 발견되면 경찰의 초동수사반이 기초적인 검시를 진행한다.

그는 “국과수는 수사기관의 협조를 얻어야만 수사가 가능하다”며 “점차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기본적으로 수사기관과 국과수가 서로 믿고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의관은 수사 초기 단계에 현장에 가지 않고 사건 기록과 현장 사진을 보고 사건을 접하는데 사건 개요가 잘못 작성돼 있어 오판을 한 적도 있다”며 “법의관이 현장에 꼭 가야 하는 이유는 현장에 답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어진 자료 외에 새로운 증거가 많이 나타나면 재(再)감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인데요. 재감정을 통해 23년 만에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은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을 때, 이에 항의해 분신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총무부장이던 강기훈 씨가 대신 써줬다는 혐의를 받고 구속돼 복역했던 사건이다.


법의학은 인간의 최종 운명을 가름하는 학문
서 원장은 2006년부터 법의관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법의학의 장점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각양각층의 사람들에게 강의를 해왔다. 서 원장은 “부검실이 겨울엔 춥고 여름엔 물이 역류해서 바닥에 질퍽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며 “꾸준한 강의를 통해 이 같은 현실을 알렸고, 그 덕분에 환경을 개선하고 봉급도 올리고 사회적 이미지를 높였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려낸 SBS 드라마 〈싸인〉은 서 원장의 강의 내용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싸인〉은 한국판 ‘CSI : 과학수사대’로서 법의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 원장은 “실제로 드라마 방영 이후 법의관이 되려는 의대생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며 “국과수에서 시나리오를 검토해주고 주인공역을 맡은 박신양 씨가 교육을 받고 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25년간 수많은 범죄현장의 실마리를 풀어내고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을 살려낸 그에게 법의학이란 무엇일까.

“저는 법의학이 인간의 최종 운명을 가름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죽음도 삶의 연장입니다. 사람은 죽어도 남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영원히 있잖아요. 어떤 분이 명예롭게 돌아가셨다고 하면 그 명예를 지켜드리고, 억울하게 돌아가셨다고 하면 부검을 통해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거죠. 그렇게 가족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게 하는 겁니다. 죽음은 그 삶의 종점을 찍는 것이지만, 삶의 연속성을 만들어가기도 하는 거죠.”  

 

▒ 서중석 원장은…
1957년생, 83년 중앙대 의학과 졸, 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 94년 중앙대 대학원 의학 박사, 201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 부장,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대한법의학회 감사, 아시아법과학회 회장.


글:
 백예리 기자 (byr@chosun.com)
사진: 이신영







정부 검시 체계 개편 내용·전망
우리나라 검시제도는 근본부터 문제다. 매년 25만명 정도가 사망하는데 이 중 15만여명은 병원에서 의료진 보살핌속에 임종을 맞지만 나머지 10만여명은 병원 밖에서 숨진다. 가난하거나 외로운 소외계층이기 십상인 이들의 병원 밖 죽음은 국가가 보호자로서 책임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관련 법체계·인력 미비 등 국가는 사실상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을 현재 23명에서 100명으로 대폭 늘리기로 한 것은 이 같은 검시제도의 가장 약한 고리인 인력 부족 현상부터 해결하겠다는 뜻이다. 법의학 교실 활성화→법의관 증원→검시 역량 강화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순차적으로 진행되면 법의관이 변사 현장에 나가지 못한 채 부검만 하는 반쪽짜리 검시의 최대 현안이 개선될 수 있다. 법의학계에선 “수십 년간 진척되지 않아 자포자기 상태였는데 상당히 고무적이다”며 환영했다.

검시제도 개선은 부처 간 협의·예산 확보는 물론 관련법 제·개정 등 난관이 많다. 그러나 50여년 된 적폐에 대한 정부 개선 의지도 매우 강한 상태다. 법의학계에 따르면 정종섭 안행부 장관은 세계일보의 ‘대한민국 검시 리포트(9월15∼18일)’보도 후인 지난달 23일 서중석 국과수 원장과 법의관 증원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외국처럼 법의학자가 (변사)현장에 임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지난 8일 대전에서 열린 대한법의학회 평의원회의에선 국과수 서 원장도 참석해 현재 턱없이 부족한 법의관 양성 및 활용 방안이 논의됐다. 양측은 이달 말까지 법의관제도 개선을 위한 중장기 대책을 마련해 안행부 장관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안행부 장관은 이를 토대로 청와대에 법의관 양성에서 국과수 법의관 확충에 이르는 검시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안을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 변사사건 부실 지휘로 곤욕을 치른 검찰도 검시 전문성 강화를 위해 법의학회 등과 함께 제도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또 경찰은 간호사, 임상병리사 출신의 검시보조인력을 ‘경찰검시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법의관과 혼동을 줄 수 있다는 법의학계 의견을 수용, 이달 1일부터 ‘검시조사관’으로 개칭했다.

정치권도 검시제도 개선을 위한 법 제·개정에 착수하는 분위기다. 이날 강원도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에서 진행된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국과수에 대한 추궁보다는 검시제도 개선에 대한 의견 수렴이 주로 이뤄졌다. 여야 의원은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의 신원이 뒤늦게 확인되고, 사망원인을 끝내 밝히지 못한 이유로 국내 검시제도의 한계를 지목하고 제도 개선에 앞장설 뜻을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은 “검사가 (변사체를) 보지도 않고 무연고 변사로 부검 영장을 발부하고, 무연고 변사체는 범죄 연관성 없으면 다 화장해버린다”며 “이 문제는 경찰도 해당되고, 국과수, 법무부도 연관돼 있으니 전체적인 검시체계 개선 필요성을 국무회의 때 안행부가 제기해 앞장서야 한다. (국과수가 자체 마련 중인)법과학진흥기본법으로는 안 되고 이번 기회에 우리 위원회 차원에서 (검시제도 개선 입법)과제를 채택하자”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도 안행부 차관에게 “이번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올려보시라. 여야가 합의해서 하겠다”고 주문했다.

서 원장은 검시 절차 없이 이웃 증언만으로 매장이 가능한 인우보증 사망 신고제도에 대해 “아프리카에도 없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제도부터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부검 대상 명문화·검시는 법의관이… “죽음의 사각지대 해소”
우리나라 검시제도는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수십년 동안 곪아 온 제도를 바로잡으려면 간단한 처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가장 이상적인 대수술은 법의관 제도를 만들어 현재 검사에게 있는 검시권을 법의학자에게 주는 것이다. 수사는 수사기관이 맡고 시체는 법의관이 맡아 각자 전문성 있는 일만 하자는 얘기다.



응급처치도 시급한 현실이다. 검시 대상 죽음을 법에 명시하고, 검안을 할 수 있는 의사의 조건을 강화하는 일이다. 이러한 장·단기 대책을 함께 추진해야 억울한 죽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산 자의 의무’를 다해 ‘죽은 자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다.

◆검시권은 법의관에게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검시권을 의학 영역으로 옮기는 것이다. 사망 원인을 밝히는 일 자체는 환자를 진단하는 것이니 당연히 의사 몫이라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의사 역할은 현재 경찰 요청에 응하는 참고인 또는 감정인 수준이다. 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조차 마찬가지다. 진료는 의사, 약은 약사의 몫이듯 검시는 의사가 하고 그 결과에 대한 법적 판단은 사법부가 할 일이라는 것이 법의학계 주장이다.

하지만 “검시는 사망의 원인이 범죄인지 밝히기 위한 절차로서 ‘내사’에 해당하는 사법행위”라는 것이 법조계의 입장이다. 의학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의사를 검시체계에 넣을 수 없으며 검시권을 의사에게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영미법 체계 국가처럼 검사의 지휘를 받지 않는 또 다른 수사기관으로서 법의관 또는 검시관을 법령에 규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형법체계 전반을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하기 때문에 실현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수사당국은 이보다는 검시 전문인력, 즉 법의학자의 부족을 현행 검시체계의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지금도 초동수사 단계에서 의사들의 참여는 가능하지만, 법의학 지식을 갖춘 의사가 부족해 부검 단계에서야 법의학자가 개입하는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의학계는 설령 법의학자가 대거 쏟아져 나온다 해도 그들을 받아줄 현장이나 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황인 만큼 제도 정비가 선행해야 인력 양성이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또 수사기관 개입은 법의학자가 시체를 살펴 타살이 의심된다고 판단한 후에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김장한 서울아산병

원 교수는 “시체를 살피는 것은 수사와 아무런 관계 없는 수사 전 단계”라며 “법의관이 검시권을 가질 경우 부검을 위해 시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는 것을 가지고 수사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상황을 혼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검 권한을 가진 법의관 제도를 만들게 되면 법의관은 병원 밖에서 사망해 검안해야 하는 모든 죽음을 총괄하게 된다. 범죄 연관성에만 초점을 맞춘 검시로 등한시됐던 행정검시도 가능해진다. 

법의관 제도가 장기적으로 마련된다면 법의학자 숫자도 늘게 된다. 법의학 전문의 과정을 신설하고, 의과대학에 법의학교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전국 의대에 법의학교실이 생기면 전국을 담당할 수 있는 법의관 200명 양성도 4∼5년이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윤성 서울대 교수(법의학교실)는 “10년, 20년 뒤에 검시 전문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따져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회의 권고안이 주는 메시지 주목

검시체계의 모범답안을 작성하기 위해선 유럽회의(유럽 42개국 가입·유럽연합과는 다른 조직)에서 1999년 내놓은 ‘회원국의 법의검시규정 일치에 관한 각료위원회의 권고안’을 주목할 만하다. 권고안이 나온 지 15년이나 됐지만 후진적인 한국의 검시제도에는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권고안에서는 법의전문가나 법의학적 검사에 익숙한 의사가 검시를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다만 타살과 타살이 의심스러운 죽음은 반드시 법의전문가가 검시하도록 돼 있다. 또 ‘법의전문가는 어떠한 형태의 압력에도 굴복해서는 안 되고 직무를 수행하는 데 객관적이어야 하며, 특히 결과와 결론을 표현하는 데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조항을 넣어 법의학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강조했다. 

부검을 해야 하는 죽음은 10가지로 정해놨다. 타살과 타살이 의심되는 경우는 물론이고 고문 또는 어떠한 형태의 학대를 의심할 수 있는 인권 침해, 직업병과 직장의 위해, 기술적 재해 또는 환경적 재해 등이 대상이다. 범죄로 인한 억울한 죽음뿐 아니라 재해로 인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유럽회의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권고안은 부검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도 해놓았다. ‘부검은 가능한 한 한두 명의 의사에 의해 수행되어야 하며, 그중 최소 한 사람은 검시의학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軍, 부검 않고 “질식사” 발표 후 정정…‘현장 보존’ 기본 원칙마저도 안 지켜



28사단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 등은 군 검시제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군, 부검하기 전 사인 발표


지난 4월6일 부대 내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한 윤 일병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가해자들은 응급조치를 취한 후 병원으로 이송했다. ‘현장 보존’이라는 검시의 기본원칙부터 무너졌다. 

다음날인 7일 육군은 부검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윤 일병 사인을 ‘기도폐쇄에 의한 질식사’로 발표했다.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하는 바람에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후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에서 실시한 부검 감정서에 따르면 윤 일병은 온 몸에 멍과 출혈이 발견되고 갈비뼈 15개가 부러졌다. 뇌에서도 멍과 부종이 발견되고 비장마저 파열됐다. 부검 후 국방부가 밝힌 사인은 똑같았다.

반면 부검감정서를 검토한 법의학자들과 윤 일병 사건이 이송된 육군 3군사령부 검찰부가 밝힌 사인은 ‘심한(지속적인) 구타로 인한 쇼크사’였다. 법의학자들은 “군법의관이 (시신의)손상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굉장히 의문스럽다”고 말한다.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던 김호철 변호사는 “군에서는 사망 경위에 대한 은폐나 왜곡이 있을 수 있어 자세한 정보 없이 부검만으로 소견을 낸 부검의에게만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 일병 부검을 담당한 군법의관은 재판에서 “부검하기 전 피해자가 당한 폭행의 정도나 구체적 상황에 대해 몰랐다”고 증언했다. 이뿐 아니라 재판부에 제출된 부검감정서 일부가 은닉 또는 폐기됐다는 의혹도 가해자측 변호인이 제기한 상태다. 

훼손된 사건 현장, 법의학 전문가가 없는 현장 검안, 부검 결과만으로 소견을 내는 반쪽 검시 등 우리나라 검시제도의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 있는 군은 특유의 폐쇄성까지 더해져 국민 불신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이 8월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국방위원회 연석회의에서 폭행으로 사망한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의 사진을 공개하며 회의에 출석한 한민구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를 질책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의문사 의혹 많은 군 검시체계

1993년부터 2013년까지 21년간 군에서 사망한 장병은 총 4108명에 달한다. 한 해 평균 195.6명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에도 군에서 자살 등의 각종 사고로 117명이 숨졌다. 

군 병원 냉동고에는 18구의 주검과 133구의 유골이 장기보관돼 있다. 유족들이 의문사라며 진실을 밝혀달라고 인수를 거부한 주검들이다. 

군 의문사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은 수사기관과 감정기관이 모두 군 지휘체계에 종속돼 있는 데다 법의학 지식과 경험이 부족해 객관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는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군내에서 변사 의심 사고가 발생하면 군사법경찰관이 수사하고 소속부대 일반 군의관이 시체 검안을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군 검시권을 갖고 있는 검찰관(檢察官) 지휘에 따라 국방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을 한다. 다만 유족이 원하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다. 

국방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법의군의관 3명이 연평균 100여건의 부검을 한다. 이들은 국과수 부검의사들과 마찬가지로 현장검안은 거의 못한다. 대부분 의대 6년 내내 부검 한 번 제대로 못해본 채 임관해 군 입대 후에야 국과수에서 부검 훈련을 받는다. 한 군 관계자는 “강원도 부대에서 중요한 사망사건이 터져도 서울에서 갈 수 없는 게 현실이고, 법의군의관을 사건현장으로 부르려는 검찰관도 없다”고 지적했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수사에서 감정에 이르기까지 독립성을 보장하기 힘든 군 사법체계라는 지적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실은 “국방과학수사연구소가 실력이 없어서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며 “세계 최고의 전문성을 갖고 있다 해도 법의학적 소견이 아닌 (상부)지침을 받아 처리하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군에서 로스쿨 출신의 장기 군법무관을 뽑는데 큰 문제”라며 “사법고시 출신 법무관은 제한된 기간만 근무하면 됐지만, 장기 법무관들은 지휘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우려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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