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중 사망땐 진단서… 그외엔 검안서 작성
검시제도는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누리던 개인의 사망에 한 점 의구심도 없게 하기 위한 제도다. 질병 정보 등 국민 보건에도 막중한 역할을 한다.

검시의 시작인 사망신고는 공동체 구성원의 사멸을 공인하는 엄중한 절차다. 국내에선 유고 시 유가족은 사망 사실을 안 날부터 1개월 이내에 사망진단서 또는 시체검안서를 첨부해 관공서에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 사정이 있어 진단서나 검안서를 받을 수 없을 때는 ‘인우증명제’로서 사망자 주변 사람 2명의 증언으로 첨부서류를 대신할 수 있다. 진단서 또는 검안서는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등이 작성한다.



진단서와 검안서의 쓰임새는 다르나 양식은 같다. 병원 치료 중 사망자는 주치의가 진단서를 쓴다. 환자 진료기록 등이 사망 원인의 근거다. 병원 밖에서 죽었더라도 마지막 진료를 받은 뒤 48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면 진단서를 쓸 수 있다.

이 외에는 시체검안서를 써야 한다. 병원 밖 죽음은 병사 아닌 경우가 많다. 병사라고 하더라도 진료기록 등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인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법의학 지식이 부족하다면 부실한 검안서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또 책임이 무거울 수 있어 그냥 ‘미상’으로 적는 경우도 많다. 

검안에서 예상치 못한 죽음, 변사로 분류되면 수사기관 소관이 된다. 보통 병원 밖에서 숨진 사람을 발견한 목격자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경찰은 이를 변사자 및 변사사건으로 접수한다. 간혹 의사가 검안서를 작성하기 위해 시체를 살피다가 범죄 흔적이 의심되는 경우 역시 변사이며 수사기관 신고가 의무다. 이를 어길 경우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으나 실제 사례는 거의 없다.

변사자가 받는 검시에는 두 가지 의미가 혼용된다. ‘검시(檢視)’는 수사기관이 범죄 때문에 발생한 죽음인지 법률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시체 및 그 주변환경을 종합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 ‘검시(檢屍)’는 의사가 죽음에 대한 의학적 판단을 위해 시체에 대해 의학적 검사를 하는 것이다. 의사의 검시는 검안(檢案·시체를 훼손하지 않고 외부만 검사)과 부검(剖檢·시체를 해부하여 검사)으로 나뉜다.

변사체 검시(檢視)의 주체는 검사이며 경찰은 집행을 맡고 판사는 이를 허가한다. 현행 제도 하에서 법의관, 또는 의사는 일종의 기술 지원만 맡고 있는 상황이다.

변사체 신고 현장 대부분에는 경찰만 출동한다. 원래라면 법의관, 또는 의사가 현장에 나가서 시체 외부와 주변을 살피고 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사인과 타살 의혹 여부를 파악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검안은 주로 병원, 장례식장으로 시체가 옮겨진 후 이뤄진다.

의사가 불충분한 정보만으로 경찰에 검안서를 써주면 경찰은 검찰에 검안서, 수사내용을 합쳐 변사자 발생보고를 한다. 검찰이 이를 바탕으로 범죄 관련성 등 특이사항이 없다고 판단하면 사건이 종결된다. 범죄와 연관됐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어 검찰이 부검을 지휘하면 의사가 시체를 해부해서 살피고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수사를 개시한다.


특별기획취재팀








사건 현장 베테랑 법의관 부검 여부 판단하고 결정

[동아일보]

“범죄 현장을 녹화한 폐쇄회로(CC)TV 영상입니다.”

법의학자 한 사람이 범죄 현장을 실시간 촬영한 영상을 틀자 방에 있던 10여 명의 의사도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집중한다. 화면 속에서는 복면을 쓴 권총강도가 한 피부관리실에 들어와 권총을 난사하는 장면, 가게 한쪽에 앉아 있던 어린아이 한 명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이 나왔다.

CCTV를 통해 범죄 현장을 확인한 법의학자들은 사망한 어린아이의 부검 과정을 상세히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토론을 벌였다. 어린이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총격이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서다.

○ 미드 ‘CSI 마이애미’ 실재했네

국내에서 과학수사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진 계기는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 방영이다. 특히 드라마 배경이 된 라스베이거스와 마이애미, 뉴욕은 과학수사가 어느 곳보다 발전한 곳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17일 찾은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는 미드 CSI 마이애미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도 가장 발전된 법의학 및 과학수사 체계를 갖추고 있다. 마이애미 공항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마이애미대병원 외상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법의학본부(ME Office)’는 카운티 내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3000건 이상의 의학적, 과학적 조언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법의학 체계는 크게 법의관 제도와 검시관 제도로 나뉜다. 검시관은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것이 주요 업무인 반면, 법의관은 의학적 조언과 범인 판단 여부에 결정적인 의견을 내며 부검 여부를 판단하고 수행한다.

법의관은 드라마에서처럼 현장을 직접 찾기도 하는데 경찰에게 CCTV 영상을 포함해 다양한 증거물을 요청할 수 있는 등 범죄 수사에 관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권한을 갖고 있다. 법의관은 200건 이상의 부검 경험을 갖고 있는 병리학 전문의 중에서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

에마 루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수석법의관은 “다양한 검시제도 중에서 법의학본부 체제는 현재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과학-의학 수사 제도”라고 말했다.

○ 의학-과학 연계돼 ‘범죄 꼼짝 마’

마이애미 법의학 본부가 유명해진 이유는 과학기술팀과의 긴밀한 연계 때문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처럼 법의관들은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히는 데 주력하는데, 그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증거는 본부 내 전문 분석팀에 넘겨 공동 대응한다. 또 사건 현장의 정밀한 증거사진을 남기기 위해 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사진팀을 운영하고 있다. 과학적 범죄 연구를 위해 부검 과정에서 얻은 인체조직을 모아두는 ‘조직은행’도 구축 중이다. 우리나라도 드라마 때문에 과학수사에 대한 대중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미국에서는 범죄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검시관 제도도 전문 법의관 제도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범죄 현장을 신속하게 찾아 초동조사를 할 검시관도 찾기 힘든 상황이다. 

또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부검을 할 때도 미국에서는 법의관 재량이지만, 우리나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나 대학 법의학팀에서 부검을 하기 위해서는 가족 동의와 함께 경찰이나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이상한 경북대 법의학과 교수는 “미국은 조사해야 할 죽음이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범죄 수사에 다양한 과학적 의학적 수단이 총동원된다”며 “우리나라도 과학적 법의학 수사기법을 강화하는 한편 제도의 개선과 현장 전문가 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애미=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서울 대림동에서 지난 3월 발생한 살인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 검시관들이 시신의 손가락에서 손톱을 채취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변사사건 年 3만5000여건에 법의관은 40여명 불과

非전문 의사들까지 현장 출동

사망 여부만 판단하고 미세한 증거 놓치는 경우 많아

허위로 검안서 작성하기도


#1. 지난 2월 중순 대구 효목동의 한 주택에서 이모씨(54·여)가 숨진 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20여년 동안 법의관으로 근무한 권일훈 권법의학연구소장이 경찰 요청으로 현장 검안에 투입됐다. 사망 원인이 불분명한 단순 변사로 처리될 뻔한 이 사건 수사는 권 소장이 현장에서 이씨 뒷목을 덮은 머리카락을 면도한 뒤 누군가에 의해 끈으로 목이 졸린 자국, 그로 인해 피부 일부분이 벗겨진 자국을 발견하면서 타살로 급선회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멀티탭에서 나온 혈흔, 이씨의 시신 부검 결과 등을 종합한 경찰은 타살로 결론짓고 수사망을 좁힌 끝에 이씨의 여동생(52)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2. 한 달여 뒤인 3월20일 대구 삼덕동 경북대병원에서 정지향 양(3)이 숨졌다. 의사 박모씨(32)는 “목욕탕에서 넘어져 다쳤다”는 친모 피모씨(25)의 말만 믿고 사망 원인을 ‘급성외인성 뇌출혈’, 사망 종류를 ‘외인사(외부 요인으로 인한 사망)’로 기재한 사망진단서를 발급했다. 사망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지만 생략했다. 검안의 양모씨(65)는 딸을 방치·학대해 숨지게 한 것을 숨기려 한 피씨의 사주를 받고 시신도 살펴보지 않은 채 사망원인을 ‘뇌출혈’, 사망 종류를 ‘병사(질병으로 인한 사망)’로 기재한 허위 검안서를 작성한 뒤 검안비로 25만원을 챙겼다. 박씨와 양씨, 경북대병원 의료법인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각각 지난달 17일 불구속 입건됐지만 지향이의 시신은 이미 한 줌 재로 변한 뒤였다. 

법의학 지식을 갖춘 검안의가 변사 사건 현장에 투입돼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지향이 사건’처럼 형식적으로 이뤄진다. 시신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사망의 원인·종류 등을 파악해 범죄 현장을 재구성해야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지만 겉치레 검안은 초기 수사 때부터 혼선을 줘 수사를 어렵게 만든다. ‘시신이 몸으로 쓴 유서’를 읽어 내는 검안을 법의학적 지식이 없는 동네 의사 등 민간에 맡기면서 벌어진 부작용이라는 분석이다. 

○법의관 40여명에 변사사건 3만5000여건

양씨처럼 일반 개업의를 강력사건 현장에 검안의로 투입하는 이유는 국내 법의관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연평균 3만5000여건의 변사 사건이 발생하지만 법의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23명을 비롯해 서울·연세·고려·경북·조선·전북·전남대 등 법의학 전공 교수들, 국과수 법의관 출신 개업의 등 40여명에 불과하다. 

국과수 법의관들은 연간 5000여건(1인당 연평균 220여건)의 부검 업무를 소화하느라 현장 검안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국과수 법의관 출신 개업의들도 권일훈·김광훈·이상용·조갑래·한길로 박사 등 5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서울, 대구·경북권, 부산·경남권 등 권역별로 소수만 활동하고 있을 뿐이어서 극히 제한된 일부 사건만 검안할 수 있다. 2005년부터 전국 지방경찰청에서 특별채용한 경찰 검시관들도 검안을 할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초동수사를 마친 뒤 검사에게 제출해야 할 시체검안서 및 사망진단서 작성 권한이 없다. 

의료법 17조에 따르면 치과·한의사를 포함한 의사만 시체검안서나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네에서 감기 진료를 하던 내과 의사가 검안의 부족에 허덕이는 경찰의 요청을 받고 사건 현장에 출동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 소재 일선 경찰서 과학수사팀에서 근무하는 김모 경사(40)는 “시신의 손톱 밑에 낀 살점이나 혈흔을 확보하려면 현장에서 손톱을 깎아 보관해야 하는데 동네 의사들은 사망 여부만 판단한 뒤 대충 넘어간다”고 토로했다.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혈흔의 방향이 바뀌고 섬유조직 등 미세증거가 사라지기 일쑤다. 김 경사는 “예전에는 시체 운구 차량을 타고 동네 의사들이 현장에 먼저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들은 현장 보존보다 시신의 사망 여부에만 관심을 갖는다”며 “시신의 동공을 열어보겠다며 시신에게 다가가 현장을 훼손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했다”고 귀띔했다. 

○“국가가 검안제 관리·감독해야”

경찰은 현장 검안에 전문가를 제대로 투입하려면 현재 인력의 4배 이상인 160여명 이상의 법의관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시신 1구에 평균 검안 시간을 9시간으로 잡으면 검안의 1명이 하루에 살펴볼 수 있는 시신은 많아야 2구 정도라는 점이 근거다. 

하지만 법의관은 의대생들이 기피하는 직종이라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과수도 1955년 설립 이후 57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법의관 정원 23명을 채웠을 정도로 이 분야는 ‘3D’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시체검안서 및 사망진단서를 경찰검시관이 작성한 변사사건 조사결과 보고서로 대체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법의관 및 경찰검시관을 충원할 수 없다면 최소한 검찰로 넘겨야 할 시신 관련 서류를 검시관이 작성한 서류로 갈음할 수 있도록 숨통을 터달라는 얘기다. 

변사사건 전문성을 강화하려고 선발한 경찰검시관은 현재 △서울·경기 각 10명 △부산 6명 △대구·인천·전남·경북·경남 각 4명 △광주·대전·울산·강원·충북·전북 각 3명 △충남·제주 각 2명 등 전국 지방경찰청에 소속돼 있다.

유제설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 교수는 “동네 의사들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 간호사, 임상병리사 출신인 경찰 검시관들로 검안의를 100% 대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종합병원 의사라도 해부학적 지식을 갖추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부검을 할 수 없듯 경찰검시관이든 동네 의사든 검안의도 법의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 시체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등에 흩어진 관련 규정을 아우를 수 있도록 독립적인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다. 유시민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5년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 산하에 검시위원회를 두고 검시관의 자격을 의사에서 △법의학 교육과정 수료자 △병리전문 자격증 취득자 △법의·병리학 전공 교수·부교수·조교수까지 확대하는 내용이었지만 폐기됐다. 

최용석 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억울한 죽음이 없으려면 사실상 민간에 맡겨진 ‘엉터리 검안’을 국가가 철저하게 관리·감독해야 한다”며 “부검도 중요하지만 경찰 입장에서는 고인의 죽음 직전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최고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는 검안이 더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

■ 검안(檢案)

변사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 현장에서 시신의 외부를 검사해 사망의 원인·종류 등을 알아내는 검시(檢視)의 일종. 시신을 병원으로 옮겨 개복하고 내부를 검사하는 것은 부검(剖檢)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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