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법의학자… 부검현장 지켜

과학수사시스템 말聯에 수출도”


“나는 원장이기 이전에 법의학자잖아요. 당연히 부검 현장을 지켜야죠.”

서중석(58·사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지난 2012년 원장에 취임한 이후 국정원 직원 자살사건, 중국 선원에 의한 해경 사망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직접 부검했다. 아직도 ‘서중석’이란 이름으로 감정서를 작성해 수사기관에 보낸다. 올해 7월 전주 지방행정연수원현장학습 버스 사고 당시, 직접 중국으로 출장 가 검안을 진행하고 현장을 수습하기도 했다. 그는 “국과수의 원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학문적 리더십’”이라며 “과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일하는 곳인 만큼 전문성과 현장감을 유지하고 있어야 수장으로서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 원장은 원장 취임 이전부터 대표적인 ‘출동형 법의관’으로 유명했다. 사무실에 앉아 시신을 인계받아 부검하고 기계적으로 감정서를 적어 보내는 법의학이 아닌,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서 직접 검시와 검안을 하고 현장의 다양한 변수를 살펴보는 실무형 법의관이다. 이 때문에 올해부터는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무조건 법의관이 경찰과 함께 출동해 검시하는 24시간 검시시스템을 서울 서남부권을 중심으로 시작하기도 했다. 서 원장은 “현재는 법의관 인력이 부족해 세 명의 법의관이 희생하는 마음으로 24시간 검시시스템을 운영 중이지만, 2020년이 되면 사건 사고가 많은 대도시에서 부검의들의 현장검안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서 원장은 법의관 출신이지만 국과수의 다양한 부서에 대한 강한 애착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최근 범죄 해결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디지털분석과는 서 원장 부임 전 3명의 인력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18명이 됐다고 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국과수의 과학수사 시스템은 한류 열풍을 타고 있다. 지난해 말레이시아에 1억 원 규모의 국과수 시스템을 사상 처음 수출했다. 국과수는 개발도상국에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방식으로 320만 달러 규모의 스리랑카 디지털멀티미디어 과학수사센터 구축 사업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서 원장은 “형사사건에 국한돼 있던 국과수의 증거감정 업무를 확대해 민사감정까지 통합함으로써 보다 과학적이고 진실한 증거 감정을 제공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dayoung817@munhwa.com




머리카락 한 올에 달라지는 판결 … 우린 진실을 분석한다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조사과 부검실. 법의관이 부검 후 신체 조직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 추가 분석을 위해 채취된 조직 샘플은 유전자공학과나 마약독성화학과 등으로 보내진다. [사진 김경록 기자]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 없도록 부검·약물분석·DNA 검사
대부분 석사 이상…전공 다양하지만 법의관은 의사만 가능
하루에 수십 건 사고…개인 시간 따로 없이 한밤중 출동도



과학수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갈수록 대범해지고 지능화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과학수사를 통해 자살로 위장한 사건이 결국 타살로 밝혀지기도 하고 유전자 감식을 통해 가해자로 지목된 피의자가 누명을 벗기도 한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진실을 찾아내는 과학수사요원에 대해 알아봤다. 

미국 드라마 CSI에는 다양한 과학수사요원이 등장한다. 실험실에서 유전자 분석을 하는 요원도 있고, 부검을 담당하는 요원도 있다. 과학수사란 사건 현장에서 나온 증거를 바탕으로 사망 경위와 범인 등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는 전 과정을 일컫는다. 현장에서 지문 감식을 하거나 증거품을 수집하기도 한다. 이런 일을 담당하는 이들을 통틀어 과학수사요원이라고 부른다. 

국내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경찰청 과학수사대,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에서 이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기관별로 불리는 명칭은 조금씩 다르다. 국과수와 국방부는 과학수사연구사·연구관, 경찰청과 대검찰청은 과학수사관으로 부른다. 이들 모두 범죄 기록을 찾아 범인을 밝히는 과학자·수사관·의사·병리학자·심리학자·공학자들이다.




의학·생물학·전자공학 넘나드는 과학수사

과학수사에는 부검, 약물 분석, DNA 검사, 사고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기법이 동원된다.

 지난 1일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조사과의 장정식 의무사무관(법의관)을 만난 건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시신의 부검을 끝낸 직후였다. 그가 부검을 맡는 건 교통사고, 의료사고 등 각종 사건·사고로 사망했거나 유족이 부검 요청을 해오는 경우다. 장 법의관은 “법의조사과에서는 사망 원인을 눈으로 확인하는 검안과 시신 부검을 통해 타살인지 자살인지, 또 어떻게 죽음에 이르렀는지 등을 밝힌다”고 말했다.

 검안이나 부검에서 독약·마약 중독에 의한 사망으로 밝혀진 경우 시신의 신체 조직을 마약독성화학과로 보낸다. 혈중알코올농도, 미세증거물, 독성, 체내 마약 성분 등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은 부검 시료 및 현장에서 발견된 관련 물품들을 감정해 음주나 독극물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는 판정을 내렸다. 올 3월에는 보험금을 노린 40대 여성이 시어머니와 남편, 친딸에게 제초제를 먹여 살해한 사건을 밝혀냈다. 화재 사건의 경우 시신이나 사건 현장에 남은 물질을 통해 자연 발화인지 방화인지를 알아낸다.

 유전자분석실에서는 DNA 분석을 한다. 2006년 서래마을 영아살해 유기 사건의 경우 DNA 분석으로 친자 관계, 살해 방법 등을 밝혀 범인을 찾았다. 화재나 교통사고의 원인을 찾는데도 과학수사가 필요하다. 자동차 사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려낸다. 국과수 이공과의 이기태 과장은 “교통사고의 경우 차량의 파손 형태와 손상 흔적, 사고 현장의 차량 흔적과 위치 등을 기반으로 상황을 재연해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밝힌다”고 전했다.

 직접 현장에 가야 할 때도 잦다. 지난 4월 강화도 캠핑장 화재 사고의 경우 현장 감식을 통해 화재 원인을 찾았다. 보험 회사가 교통사고 원인 분석을 의뢰할 경우에도 현장에 간다. 가능한 빨리 현장에 도착해야 정확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부서진 차량을 직접 뜯어낸다. 사고의 원인을 알려면 아주 작은 실마리를 놓쳐선 안 되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CCTV·사진·비디오·휴대전화·PC메모리카드를 복원·판독하고, 최면이나 심리분석 기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1.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설립됐다. 2. 국과수는 81년 발생한 유괴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를 도입했다. 국내 최초로 거짓말 탐지기를 도 입한 건 60년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당시 육군 과학 수사본부)였다. 3. 93년 국과수는 국내 최초로 모발 에서 약물을 검출했다. 사진은 메스맘페타민 검출기. 4.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국과수는 국내 최초로 사망자 유전자(DNA) 분석을 시도했다.

까다로운 채용, 학부만 졸업해서는 어려워

국과수는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과학수사요원을 뽑는다. 면접 땐 지원하는 과에 대한 전문적인 질문을 한다. 국과수는 석사 학위 이상이어야 입사할 수 있고 일정한 경력이 있어야 지원할 수 있다. 법의관의 경우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면허증을 소지한 2년 이상 경력자여야 한다. 병리학 전문의 자격증이 있으면 우대한다. 약학 분야의 경우 약학대를 졸업하고 약사면허증을 딴 사람만 뽑는다. 화학·물리학·공학·생물학·보건학·심리학을 전공한 요원도 있다. 이들은 특수직 공무원으로 공무원 급수가 아닌 연구직과 의무직으로 나뉜다. 운영지원 파트 직원의 경우 건축·전기·경영·경제·언론·행정학 등을 전공한 후 일반 공무원 채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경찰청 과학수사대는 경찰공무원시험 합격자가 대상이다. 과학수사대가 되려면 연 1회 선발심사를 거쳐 수사경과에 들어가야 한다. 수사경과 지원 요건은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로 과학수사학·법과학·법의학(법정의학·법의간호학·의학 포함)·범죄수사학·범죄학·형사학 등을 전공해야 한다. 실기시험·체력검사·적성검사·서류전형·면접시험 등 5차에 걸친 시험을 거친다. 실기시험은 인터뷰 형식이며 과학수사의 개념 및 기법 등에 대해 질문한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관계자는 “경찰 시험에 합격한 후 과학수사요원을 지망하는 경우와 대학원에서 관련 전공을 이수하거나 과학수사 특채시험에 응시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며 “검시나 범죄심리 분석 등을 담당하는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다면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가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국방부에도 과학수사연구소가 있다. 국방부의 업무는 군대 안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제한된다. 전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 소장인 전충현 박사는 “경찰이나 국과수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면 국방부 과학수사는 군에서 발생한 사건의 원인을 밝힌다”고 말했다. 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는 유전자과·법의학과·범죄심리과·이화학과·문서지문과·총기화재과·영사과 등 7개 과로 나뉘며, 모두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여야 지원할 수 있다.

 대검찰청은 올해 2월 과학수사부를 신설했다. 과학수사1과·과학수사2과·디지털수사과·사이버수사과로 나뉘어 금융·경제·기업·부패·마약·강력범죄와 사이버범죄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게 목표다. 식품·유해화학물질·환경 등 법생화학 감정 업무도 담당한다.

 정부는 과학수사요원을 늘리는 추세다. 인터넷게임을 모방한 잔혹 범죄나 디지털 범행, 보이스 피싱 등 다양한 범죄가 등장하고 있다. 범죄는 늘어나고 초동 수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초동 수사가 안 되면 수사 자체가 미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발 빠른 증거품 수집과 분석이 중요하다.

 최근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과학수사요원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의 안정성과 과학수사에 대한 직업적인 자부심도 매력으로 꼽힌다.

 
사건 끝까지 파고드는 인내심과 끈기 중요 

과학수사요원들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억울한 피해자를 밝혀냈을 때다. 작은 증거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성취감도 있다. 머리카락 한 올로 죽음의 이유를 분석하고 당시 상황 등을 종합해 사건을 해결한다. 책에서 배운 지식을 현장에 접목하는 것도 보람이다.

 일은 쉽지 않다. 세간의 이목이 쏠리는 대형 사건의 경우엔 전 요원이 하나가 돼서 매달려야 한다. 한 달 이상 전 연구원이 총동원돼 현장을 오가며 증거를 찾고 분석을 한다. 국과수 마약독성화학과의 백승경 과장은 “아무리 몸이 고되도 지체할 수 없는 게 우리 일이다”며 “증거품이 훼손되거나 사체가 부패하기 전에 단서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1분 1초도 쉬지 않고 일에 매달린다”고 말했다. 마약 사범의 경우 경찰 임의동행 시간은 48시간이다. 이 시간이 지나면 결과의 유무에 상관없이 무조건 풀어줘야 한다. 때문에 마약독성화학과에서는 주말에도 당번을 지정해 24시간 대기하다가 경찰의 연락을 받으면 바로 출동한다. 백 과장은 “개인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범죄와 싸우고 있다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과학수사요원이 투입되는 일은 뉴스에 나오는 대형 사건·사고뿐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수많은 시신이 과학수사 요원의 손을 거친다. 오후 6시 퇴근 시간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한밤중이라도 의뢰가 들어오면 분초를 다투며 증거품을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야근이 잦다. 특히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땐 유족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사건의 원인을 찾아 밤낮없이 일한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직접 접하는 경우는 부검 담당자 외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요원은 생체조직 검사나 사건 현장에 남은 증거품을 살피는 일을 한다. 시신이나 증거품을 대할 땐 죽음을 떠올리기보다 범인이 남긴 과학적 증거를 찾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국과수 유전자분석과의 조남수 과장은 “과학수사의 임무는 범인을 찾는 것이다. 그게 최우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각 분야의 전문성이 중요하지만 다른 분야 요원들과 협력도 잘해야 한다. 백 과장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밝혀가는 업무이기 때문에 전문 지식만큼 협업 능력이 중요하다”며 “다른 분야를 존중하고 유대감을 키울 수 있는 인성이 과학수사요원 기본 자질”이라고 말했다.

 인내심과 끈기는 중요한 덕목이다. 이공과 이기태 과장은 “사건을 끝까지 해결하려는 끈기와 성실함, 인내심은 과학수사요원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라며 “반드시 사건을 해결하고 말겠다는 집념과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 법의관은 의대 재학 시절 법의학교실 강의를 들으며 법의관의 꿈을 키웠다. 그는 ““살아있는 사람을 살리는 게 의사의 임무라면 법의관들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임무”라며 “사람에 대한 관심, 하나의 사건을 끝까지 파헤치고자 하는 열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고 병리전문의 면허를 취득, 일반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지난해 국과수로 이직했다. 국과수 과학수사연구사는 빈자리가 나야 채용하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다. 유전공학부 같은 부서는 1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조 과장은 연구실에서 연구하거나 의료 계통에서 일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억울한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는 게 더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범인과 마주 서야 할 때도 있다. 그는 “힘든 일도 많지만 범죄자를 밝혀내 희생자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풀어진다면 그보다 더한 보람은 없다”고 말했다.


김소엽 기자 kim.soyub@joongang.co.kr








“국민의 마지막 인권인 ‘검시(檢視)’체제가 부실해 원인미상 사망률이 10%에 달한다”는 세계일보 보도(9월 15∼18일자 참조·관련기사 4면)에 대해 정부는 현재 23명인 국가 법의관을 100여명까지 늘리기로 했다. 아울러 진로가 막혀 고사상태인 각 대학 법의학 교실 활성화 등 법의학자 양성 방안 및 서울지역 법의관 현장검안 시범 실시도 추진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중석 원장은 10일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과 협의해 일단 올해 법의관을 5명 늘리기로 했으며 순차적으로 100명까지 증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 원장은 또 “법의 양성 방안에 대해서도 법의학회와 논의 중이며 내년에는 서울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변사 현장에 법의관이 현장 검안을 나갈 계획”이라며 “인력이 충분하지 않지만 여차하면 나도 계급장 떼고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 내 검시체계 개선 논의는 지난달 23일 안행부 정 장관이 서 원장에게 국과수·법의학계 공동 개선안 도출을 지시하는 것으로 본격화됐다. 이후 서 원장은 지난 8일 대전에서 열린 대한법의학회 임시 평의원 회의에 직접 참석해 인력 양성 방안 등을 협의했다.

법의학회는 이와 별도로 검찰, 경찰과 각각 검시체계 개선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개선안을 논의 중이다. 박종태 법의학회장은 “8일 회의에서 대학은 인력을 양성하고 국과수는 이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었고 문제는 양성방법인데 앞으로 좋은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예방의학처럼 정부가 사회적 필요성을 인정해 법의학 레지던트 제도를 만드는 방안과 군 장기복무 군의관처럼 임상 경험있는 인턴을 뽑아 재정 지원을 해주면서 법의관으로 키우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원주 국과수 본원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선 여야 의원이 검시체계 개선 의지를 나타냈다.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은 “촉탁의에게 부검을 맡기는 이유가 전문인력이 없어서인데 정확성도 떨어지고 책임소재도 불분명한 만큼 법의관이 다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박남춘 의원도 “세월호 사건 때 국가 근본을 바꿔야한다고 우리가 강조했는데 검시체계가 여기에 해당한다”며 근본적인 체계 확립 필요성을 지적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그는 살아 있을 것이다. 지금쯤 밀항선 타고 웃고 있는 건 아닐까?”


5억 원이라는 사상 최고의 현상금이 걸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유병언(전 세모그룹 회장) 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으나 아직도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유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때는 6월 12일. 경찰은 실제 사망일은 발견 시점보다 3주가량 앞선 5월 말경으로 본다. 그간 유씨의 시신을 무연고자로 판단해 따로 보관하다가 지문 검사, 유전자 검사 결과 등이 뒤늦게 나오면서 변사체가 유씨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발표한 것이다.


이를 두고 “유씨가 사망한 것을 믿을 수 없다”면서 의혹을 제기하는 이가 적지 않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7월 25일 “시신이 유씨인 것은 100% 확신하지만 사망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발표하면서 의혹이 오히려 커졌다. 과연 이 시신은 유씨가 맞는 것일까. 왜 과학적인 조사를 거쳤는데도 사인을 알 수 없다고 하는 걸까.

평소 한국의 미라나 미국 마이애미 법의학센터 등을 취재하면서 법의학과 관련한 기사를 다수 출고한 경험에 비춰본다면 유씨 사건처럼 법의학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례도 드물다. 유씨 사건을 계기로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법의학 관련 이야기를 정리해봤다.


유병언 시신은 백골 아니었다


유씨 사건과 관련해 궁금증 중 하나는 시신이 단기간 내에 ‘백골’ 형태로 부패할 수 있느냐다. 사진으로 남은 유씨 시신은 해골이 거의 그대로 드러난 상태다. 경찰은 “유씨의 시신이 80% 백골화됐다”고 밝혀 의혹을 부추겼으나 국과수는 “일단 백골이라는 용어 자체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얼굴 등이 많이 훼손된 시신 사진이 인터넷에 돌면서 ‘온몸의 살점이 다 썩어 뼈만 남은 상태’라는 주장도 제기됐으나 국과수는 “실제로 썩은 얼굴과 목, 즉 두개골 언저리에서만 뼈가 드러났고, 나머지 부위는 피부와 근육이 유지됐다”고 발표했다. 백골화라고 말할 수는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설령 완전히 백골화가 됐더라도 이상하게만 여길 상황은 아니다. 유씨의 사망 시기는 5월 말 이후 비교적 온도와 습도가 높을 때다. 무덥고 습한 여름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사람의 시체는 3~4주 만에 완전히 백골만 남기도 한다. 물론 습하지 않고 양지바른 곳이라면 1년 가까이 시신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도 있지만 “4주에 백골이 드러난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무리라는 의미다.


사람이 죽으면 생명 현상이 정지해 생체 방어기전이 파괴되며 당연히 육체는 썩기 시작한다. 사람의 몸에는 살아 있을 때도 많은 세균이 존재하는 데다 사망 이후에는 대장에 생리적으로 존재하던 세균과 입이나 코, 귀, 눈과 같이 평소에 습기에 젖어 있는 부위나 기도에 붙어 있던 세균이 번식해 조직 안으로 뚫고 들어간다. 그래서 얼굴 부위와 내장기관이 먼저 손상을 입는 것이 보통이다. 유씨의 시신 역시 얼굴과 대장 부분이 손상되고 팔다리의 피부나 근육은 비교적 온전했다.


이렇게 부패하기 시작한 시신은 흔히 시취(屍臭)라고 하는 독특한 냄새를 풍기는데,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나오는 암모니아, 황화수소 같은 물질이 원인이다.



5300년 썩지 않은 미라


시신이 손상되는 데는 세균에 의한 부패보다는 포식자(들짐승, 벌레 등)의 영향이 더 크다. 시취를 풍기기 시작한 시신은 벌레의 좋은 먹잇감이다. 날아든 곤충이 직접 시신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성체가 될 때까지 동물의 사체를 파먹으며 영양분을 얻어 성장하는 종류의 곤충(대표적인 것이 파리다)에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사체는 중요한 서식처이자 영양 공급원이다.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원을 주위에서 즉시 얻을 수 있어서다. 따라서 다수의 곤충이 애벌레의 먹이가 될 동물의 사체에 직접 알을 낳는데, 알은 빠르게 부화해 구더기로 변하고, 구더기가 시신을 훼손한다. 시신이 들개나 들쥐, 까마귀나 독수리 등 동물의 습격을 받는 경우도 많다.


물론 부패가 빠르지 않고 냄새도 멀리 퍼지지 않으며 주변에 벌레를 찾아보기 어려운 겨울철에 사망한 시신은 그리 빨리 손상되지 않는다. 땅속에 묻어둔 시신은 벌레 등의 접근을 막을 수 있어 온전히 세균의 힘으로 썩는데, 온대지방의 경우 매장한 시신이 백골이 되는 데 평균 7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수백, 수천 년 넘게 시신이 썩지 않고 유지되기도 한다. 그러려면 부패가 잘 진행되지 않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 사막 지역 등에서 시신이 바싹 말랐거나 동토 지역에서 꽁꽁 언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물게 늪이나 무덤 속에서 외부 공기와 차단돼 썩지 않는 경우도 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망 이후 가장 오랫동안 썩지 않은 시신은 5300년(이 정도 기간이 지나면 보통 ‘미라’라고 한다) 전 사망한 ‘아이스맨 외치(Oetzi)’다. 외치는 발견된 지역 명을 따 붙인 이름이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 산맥에서 1991년 발견된 이 미라는 현재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最古) 미라로 남아 있다. 이렇게 긴 시간 썩지 않고 보존된 이유는 추운 기후 덕분에 얼어붙은 시신이 그대로 남았기 때문이다.


외치는 1991년 9월 등산을 즐기던 부부가 발견했는데, 이들은 외치의 모습을 보고 살인사건이 벌어진 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보존 상태가 좋아 이탈리아 사우스티롤 고고학박물관 연구팀은 외치의 골격, 유전자 정보 등을 분석해 살아생전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복원했다. 외치의 사인을 분석한 많은 학자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보지만 일부에서는 두부에 강한 충격을 받아 사망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참고로 한국의 시신 중 썩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남은 것은 2004년 대전 계룡산 인근에서 발견된 ‘학봉장군 미라’다. 사방을 회곽으로 밀봉한 조선 전통 무덤 회곽묘 덕분에 썩지 않고 미라로 남은 것으로 시신의 주인공은 약 600년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전 계룡산 자연사박물관에 실물이 전시돼 있다.


저혈당발작·저체온증說


유씨의 사망을 놓고 대중의 의혹이 끊이지 않는 건 제대로 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백 년, 수천 년 전 죽은 미라도 사인을 척척 알아내는데, 죽은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시신을 놓고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발표하니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도 이해가 가는 점이다.


경찰이 유씨의 사인을 감추고 있다거나 유씨가 이미 국외로 도피했는데 가짜 시신을 내놓았다는 낭설이 이어졌으나 사망 시기와 관계없이 사인 규명은 시신이 얼마나 온전하게 남아 있느냐에 달려 있다. 유씨는 발견 당시부터 시신이 크게 훼손돼 사망 원인을 알기 어려웠다는 것이 국과수의 주장이다.


유씨가 타살됐다는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다. 먼저 독극물에 의한 피살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검사 결과 유씨의 시신에선 독극물이 일절 발견되지 않았으며 뼈가 부러지는 등 눈에 띄는 외상도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이 당뇨로 인한 저혈당 발작이다. 유씨가 지병으로 당뇨를 앓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에 비가 온 상황에서 당뇨나 고혈압 등의 지병을 가진 사람은 체온이 35도까지만 떨어져도 쇼크가 올 수 있다. 국과수 역시 이 점을 확인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백승경 국과수 독성화학과장은 “간과 폐의 독극물 검사에서 모두 음성 반응이 나타났다”며 “근육에서는 ‘케톤체(ketone body)’라는 성분에 음성 반응을 보였으며 나머지에는 반응을 아예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케톤체는 당뇨가 있는 사람의 몸이 포도당 대신 지방에서 에너지원을 얻을 때 생기는 물질로 보통 소변에서 검출되며 근육에선 검출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또 다른 유력한 추측으로 ‘저체온증 사망’이 꼽힌다. 만취 상태에서 길가에 쓰러졌다가 체온이 떨어져 죽었다는 것. 인근에서 술병이 발견됐다는 점, 양말 등을 벗고 있었다는 점 등이 정황 증거로 제시된다. 저체온이 계속되면 오히려 덥게 느껴져 옷을 벗는 현상이 종종 나타난다. 여성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경우 성폭행 살인으로 오해할 정도로 옷이 벗겨져 잇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한 법의학 전문가는 “시신이 신발과 양말을 벗은 상태에서 상의를 위로 끌어올리는 등 탈의 현상을 보인 것을 고려할 때 저체온 사망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체온증 사망 추측을 두고는 “저체온증으로 객사한 시체라면 반듯하게 누워 있는 게 아니라 웅크리고 있어야 한다”는 반박이 나온다. 또한 “5월 말에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5월 말이라고 하더라도 해가 뜨기 전에는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만큼의 기온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점, 밤이슬 등에 젖으면 체온이 더 빨리 떨어질 수 있다는 점 등도 고려해야 한다. 사망할 때 몸 자세가 반듯했던 것도 앞뒤 정황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왜 그랬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과학적 수사 기법 강화해야”


유씨의 사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일부 법의학자는 경찰이 현장검증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며 상당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미국 등 범죄 수사 선진국의 경우 변사체가 발견되면 법의학 전문가가 현장을 먼저 찾아가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근거를 수집하곤 하는데, 한국은 경찰이 수사를 마친 후 시신을 옮겨 부검만 요구하고, 이 결과를 토대로 경찰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관례다. 이번 유씨 사건도 경찰이 현장에 남아 있을지 모를 수많은 법의학적 근거를 놓쳐 사인 규명이 미궁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강신몽 가톨릭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국과수에서 유씨의 사인이 불분명하다고 발표한 데 동감하지만 사인은 시체를 부검해서만 밝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그 사람의 행적이나 현장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참고로 드라마 ‘CSI’로 유명한 미국의 법의학 체계는 법의관 및 검시관 제도로 크게 나뉘는데 검시관은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것이 주요 업무이고, 법의관은 사건 현장에도 참여하며 수사 과정에서 의학적 조언을 하고 범인 판단 여부에 결정적 의견을 낸다. 또 부검 여부를 판단하고 수행하는 것도 법의관의 권한이다. 따라서 변사체를 발견했을 때 경찰이 법의관이나 검시관을 대동하는 것이 상례다.


특히 법의관은 드라마에서처럼 현장을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경찰에 CCTV 영상을 포함해 다양한 증거물을 역으로 요청하는 등 범죄 수사와 관련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권한을 갖고 있다. 마이애미 주의 경우 법의관은 200건 이상의 부검 경험을 가진 병리학 전문의 중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법의관 제도는커녕 범죄 현장을 신속하게 찾아 초동 조사를 할 검시관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어서 제도 개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상한 경북대 법의학과 교수는 “미국은 부검 등으로 조사해야 할 시신이 법으로 정해진 터라 범죄 수사 때 다양한 과학적, 의학적 수단을 총동원한다”며 “우리나라도 과학적 법의학 수사 기법을 강화하는 한편 현장 전문가를 양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은 “경찰이 사망 시기조차 알아내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한다. “무언가 감추고 있으니 사망 시기를 발표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이런 주장은 미국 드라마 CSI의 영향 탓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문요원으로 분한 미남 배우들이 시신을 살펴보고 “며칠 전에 죽었다”고 단정하듯 말하는 장면이 자주 방영됐다.


물론 시신은 말은 못해도 많은 정보를 전해준다. 법의학자들은 백골만 있어도 성별과 나이, 얼굴과 키 등을 알아낼 수 있다. 시신의 부패 정도만 보고도 대략적인 사망 시각을 추정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런 것도 충분히 검증할 수 있을 만큼 시신 상태가 온전해야 가능하다.


구더기, 8일 만에 번데기로


통상 시신의 상태를 맨눈으로 확인해 사망 시점을 역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실온 상태라면 사람은 보통 죽은 지 하루 만에 색깔이 변하고 구더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2∼3일이 지나면 썩기 시작해 물집이 나타나고, 8일이 지나면 구더기가 번데기로 바뀐다. 하지만 이 방법이 그리 정확한 것은 아니다. 기온이 섭씨 20도 이상이라면 시신은 12∼18시간 만에 급격하게 부패하기도 한다. 최근 일부 살인사건에서 범인이 시신에 횟가루를 뿌린 경우가 간혹 있다. 횟가루는 시신 표면의 수분을 흡수해 부패를 막을 수 있다. 사망 시점이 잘못 밝혀지기를 기대한 행위로 보이지만, 부패를 이용한 사망 시각 추정 기술이 부정확한 데다 다른 추정 방법이 많아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사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신이라면 체온측정법이 자주 쓰인다. 사람은 죽은 후 2시간까지는 체온이 변하지 않지만 이후엔 1시간마다 평균 0.8도씩 떨어진다. 체온이 다 식어버리기 전에 시신을 부검하면 대략적인 사망 시점을 알 수 있다. 물론 체온은 주위 온도나 습도, 바람 등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법의학자들은 ‘헨스게법’이라는 표준 측정법을 이용하곤 한다. 시신의 직장 온도를 주변 온도, 체중과 비교하는 방법으로 사망 전후 2.8시간 이내로 사망 시점을 유추할 수 있다. 신뢰도는 95%다.


이밖에 혈액이 가라앉으며 시신 아래쪽에 생기는 시반(검붉은 점)의 크기, 시신이 굳어져가는 사후경직 순서를 봐도 사망 시점을 알 수 있다. 시반은 사망 후 30분부터 발생하기 시작해 2∼3시간 지나면 점 모양으로 나타난다. 10시간이 넘으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법의학자들은 이런 결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사망 시점을 추측한다.


이 같은 전통적 방법 외에도 첨단 기술이 계속 등장한다. 유리체 검사가 그중 하나다. 유리체는 사람의 수정체와 망막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 젤리 형태의 조직이다. 사망 이후에는 유리체의 칼륨 농도가 점차로 증가하는데, 이 농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눈동자 안에서도 위치에 따라 칼륨의 농도가 들쑥날쑥하기에 아직 참고자료로서만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이밖에 근육이 가진 에너지(글리코겐)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정확도는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의 사망 시점이 사인을 밝혀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국과수는 앞서 언급했듯 “시신의 손상이 심해 추정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말은 수긍이 간다. 유리체 검사를 할 안구는 이미 썩어 있고 장기도 대부분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사망하고 수주 이상 지난 시신을 냉장 보관했으니 체온검사법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국과수는 다만 발견한 날로부터 약 20일 전 안팎에 사망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만 내놓았다.


수상한 점 있지만…


국과수의 공식 발표에도 ‘시신이 정말 유씨의 것이 맞느냐’는 의혹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다. 7월 25일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시신을 바꿔치기 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면사무소 업무일지와 112 신고기록에는 6월 12일 시신을 발견한 것으로 기록됐지만 매실 밭 인근 주민 5명은 ‘그 이전부터 시신이 있었다’고 밝혔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세월호 사망사고 이전인 4월에 사망한 시신이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도 나왔다.


다양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유전자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 “실종된 이복형제의 시신 아니냐”는 등의 낭설도 나돌았다. 사진만을 놓고 유씨 시신의 키가 애초 알려진 것보다 더 큰 것 같다고 지적한 사람도 있었다. 이런저런 의구심이 남아 있긴 하지만 시신 자체를 유씨의 것이 아니라고 보기에는 드러난 과학적 사실이 너무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과학적으로는 유씨가 아니라 타인이라고 보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유전자 분석 결과 시신이 유씨의 이복형제일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과수는 “어머니로부터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검사한 결과 다른 어머니의 자식일 확률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국과수는 정밀 기계로 측정한 결과 유씨 시신의 키는 159.3㎝가량으로 경찰이 파악한 키와 거의 같으며 치아의 형태나 치과 기록 역시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시신이 유씨의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는 것이다.


치과 기록에 대해 한 치과 개업의는 “방송 등에 나온 영상을 기준으로 보면 금니로 때운 부분(골드크라운)은 어금니 두개를 묶어 씌운 것으로 과거의 치료법이지만 꽤 오래전에 치료받은 것으로 보여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면서 “치과 치료 기록을 주치의가 미리 제공했다고 들었는데 기록과 시신의 치아 상태가 일치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물론 과학적 증거와 관련해 “시료나 검사 결과 자체가 조작됐다” “국과수조차 정부의 끄나풀이라 모든 발표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주장은 음모론에 가까울 뿐 과학적으로는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한 법의학 전문가는 “국과수 이외에도 수많은 법의학 전문가가 활동하며, 이 정도까지 증거를 제시했는데도 믿지 못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한 대학 법의학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 법의학자 중 4분의 1이 방송에 등장했을 만큼 국과수 검사 결과에 대해 시민의 의구심이 큰 것 같다”며 “정황상 의구심이 생기는 부분이야 있겠지만 과학적인 조사 결과만큼은 신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법의관·경찰검시관 협업 잘 안돼… 검시 잘못돼도 책임지는 사람 없어”


“국과수 소속이 아니라 법의학 하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인 것처럼 ‘검시는 의사에게, 법적 판단은 사법부에게’가 제 결론입니다.”

서중석(사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1991년부터 법의관으로 일해오며 과학수사의 초석을 다져왔다. 다음은 서원장과 일문일답.


―현행 검시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병원 의사는 환자가 진찰실에 들어올 때부터 진료를 한다. 검시 역시 전문가가 맡아 ‘수사가 필요한 부검이겠다’ 싶으면 수사기관에 연락하면 된다. ‘의사한테 이런 걸(검시권) 맡겨도 되겠는가’라고 하는데, 그래서 외국에선 법의관에게 별도의 라이선스를 주는 것이다.”

―법의관 검시권 부여는 기소독점주의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한 것 아닌가.

“법의관에게 검시권을 주는 것이 제대로 된 검시제도다. (그게 안 되니) 그러면 뭔가 변형을 해야 하는데 그때부터 ‘한국식’이라는 말을 붙이게 된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간호사 등을 뽑아서 ‘검시관’이라고 한다. 검시관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검시관이 하는 사망 판단을 점검해보니 맞는 판단이 반도 안 된다. 그런데 그걸 왜 운영하는가.”

―법의관이 직접 현장에서 사법부검 대상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검시체계 전반을 직접 관장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리고 경찰검시관이 전혀 쓸모없는 분들이 아니라 의사 입장에서 굉장히 좋은 자원이다. 처음 검시관 논의가 시작될 때 경찰에서 ‘국과수 인원 늘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구조로 돼 있으니 그걸 우회적으로 국과수에 다 파견해주겠다’고 해서 제가 (검시관 제도 도입을) 뒷바라지했다. 막상 검시관 인력이 생기니 ‘왜 우리 인력을 딴 데 주느냐’며 경찰이 쓰고 있다. 이는 병원이 의사와 간호사를 따로 뽑아서 양쪽에서 따로 운영하는 거랑 똑같은 것이다. 합쳐져야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 그 좋은 인력 144명을 (추가 검시관으로) 뽑는다는데, 국과수에 붙여주면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형성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현재 법의관과 검시관 협업은 잘되는가.

“아마 의사들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은 것으로 안다. 이상한 편법을 쓰다 보면 점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복잡해지고 일이 꼬여 간다. 법의학 20여년 경험으로 봤을 때 (검시체제가) 과거보다 더 나빠지고 있다. 외국은 점점 단순화해서 협업하도록 하는데 우리나라 현장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누가 검시를 잘못해서 처벌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령화사회의 검시 문제는 더 심각해지는가.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죽은데 그 검안을 의료보험 재정에서 지원하는 걸 검토해야한다. 돈이 없거나 병원에 가기 어려워서 사각지대에서 그냥 쓸쓸히 유명을 달리 하시는 분들의 사인규명은 나라가 책임지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