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우보증(隣友保證) 사망신고.'

살인 숨기기 쉬운 나라를 만드는 대한민국 검시체계의 맹점이다. '아무개가 이렇게 죽었다'라고 증언할 이가 두 명만 있으면 의사, 경찰의 개입 없이 누구라도 공식적으로 사망자가 될 수 있다. 마을 동·리·통장은 1인으로 보증이 완성된다. 사망신고 대상자가 진짜 죽었는지, 진짜 죽었다면 증인이 증언한 사망원인이 사실과 맞는지, 시신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따지지 않는다. 당연히 살인사건을 병사로 위장하거나 스스로 사망자가 돼 잠적하는 등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무의촌이 적지 않던 시절에나 필요했을 제도가 무관심속에 여태 남아 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진단서나 검안서를 얻을 수 없는 때에는 사망의 사실을 증명할 만한 서면으로써 이에 갈음할 수 있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가족관계법) 제84조 3항에 근거한 인우보증은 의사가 적던 일제시대에 만들어졌다. 죽은 사람을 일일이 살펴보고 사망을 확인할 의사가 부족하니 망자와 가까운 사람의 증언으로 사망증명을 대신하자는 취지다. 요즘은 산간 오지에도 의사 손길이 닿는데 인우보증은 남아 있다. 필요한 경우를 꼭 찾으라면 해외 등반 중 추락사 등으로 시신을 찾을 수 없을 때 정도라고 한다. 인우보증 사망신고는 계속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인우보증으로 사망신고 처리된 사망자는 4655명이다. 전체 사망자의 1.7%를 차지한다.

인우보증은 그 특성상 범죄에 악용될 수밖에 없다. 두세 명이 공모하면 사람을 죽인 뒤 병사한 것으로 처리해 살인을 덮을 수 있다. 멀쩡한 사람을 사망한 것으로 위장할 수도 있다.

'인우보증의 폐해' 하면 단골로 언급되는 사건이 충남 보령에서 일어난 '청산가리 살인사건'이다. 2009년 4월 보령의 한 마을에서 70대 여인 A씨가 갑자기 사망하자 남편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마을 이장에게 부탁해 인우보증으로 사망신고하려 했다.

다음날 마을주민이 2명이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되자 경찰이 나섰고, 부검해봤더니 3명 모두 청산가리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은 A씨의 남편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인우보증이 살인사건을 덮을 뻔했다.

전북의 한 도시에 사는 B씨는 군입대를 피하려고 인우보증을 이용했다. 2008년 12월 병무청으로부터 입영통지를 받은 B씨는 어머니, 여동생, 친구를 내세워 자신의 인우보증 사망신고를 했다. 증인은 여동생과 친구가 서고 어머니는 사망신고를 맡았다.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구청에 신고된 B씨는 이듬해 1월 병무청에서 사망처리돼 군대에 가지 않게 됐다. 몇 년간 주민등록증 없는 '유령'으로 살던 B씨는 양심에 가책을 느껴 자수했고, 2012년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인우증명제의 터무니없는 허술함은 사망증명서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데에도 있다. 동사무소 등에선 내용 진위를 전혀 따져보지 않는다.



검시 없이 주변 증언만으로 사망신고가 가능한 인우보증제는 악용 가능성이 커서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허술한 검시체계의 악용 가능성을 묘사한 윤태호 작가의 인기 웹툰 이끼의 한 장면. 누룩미디어 제공


◆개정법안 1년 넘게 국회에

인우보증은 출생신고도 가능하다. 중국인 불법체류자가 인우보증 출생신고를 통해 국적을 취득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사망·출생신고 인우보증을 없애려는 시도는 적지 않았다. 이전에 여러 차례 관련 법 개정안이 상정됐으나 정치권 무관심속에 폐기됐다.

이번 국회도 마찬가지 흐름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강창일 의원은 지난해 8월 각각 개정안을 발의했다. 내용은 인우보증을 인정하고 있는 가족관계법 제84조 3항 삭제다. 개정안은 같은 해 1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차례 회의를 하고 추가 논의를 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법사위에 계류하다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

검시체계에 속한 모든 전문가들은 인우보증제를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인우보증이야말로 국민의 억울한 죽음을 만들 수 있는 검시제도의 허점, 맹점"이라고 말했다.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옛날에는 동네에 의사가 없어서 그랬다지만 지금은 의사가 없는 동네가 별로 없다"며 "인우보증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 왜 안 없애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specials@segye.com







치료중 사망땐 진단서… 그외엔 검안서 작성
검시제도는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누리던 개인의 사망에 한 점 의구심도 없게 하기 위한 제도다. 질병 정보 등 국민 보건에도 막중한 역할을 한다.

검시의 시작인 사망신고는 공동체 구성원의 사멸을 공인하는 엄중한 절차다. 국내에선 유고 시 유가족은 사망 사실을 안 날부터 1개월 이내에 사망진단서 또는 시체검안서를 첨부해 관공서에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 사정이 있어 진단서나 검안서를 받을 수 없을 때는 ‘인우증명제’로서 사망자 주변 사람 2명의 증언으로 첨부서류를 대신할 수 있다. 진단서 또는 검안서는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등이 작성한다.



진단서와 검안서의 쓰임새는 다르나 양식은 같다. 병원 치료 중 사망자는 주치의가 진단서를 쓴다. 환자 진료기록 등이 사망 원인의 근거다. 병원 밖에서 죽었더라도 마지막 진료를 받은 뒤 48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면 진단서를 쓸 수 있다.

이 외에는 시체검안서를 써야 한다. 병원 밖 죽음은 병사 아닌 경우가 많다. 병사라고 하더라도 진료기록 등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인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법의학 지식이 부족하다면 부실한 검안서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또 책임이 무거울 수 있어 그냥 ‘미상’으로 적는 경우도 많다. 

검안에서 예상치 못한 죽음, 변사로 분류되면 수사기관 소관이 된다. 보통 병원 밖에서 숨진 사람을 발견한 목격자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경찰은 이를 변사자 및 변사사건으로 접수한다. 간혹 의사가 검안서를 작성하기 위해 시체를 살피다가 범죄 흔적이 의심되는 경우 역시 변사이며 수사기관 신고가 의무다. 이를 어길 경우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으나 실제 사례는 거의 없다.

변사자가 받는 검시에는 두 가지 의미가 혼용된다. ‘검시(檢視)’는 수사기관이 범죄 때문에 발생한 죽음인지 법률적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시체 및 그 주변환경을 종합적으로 조사하는 것이다. ‘검시(檢屍)’는 의사가 죽음에 대한 의학적 판단을 위해 시체에 대해 의학적 검사를 하는 것이다. 의사의 검시는 검안(檢案·시체를 훼손하지 않고 외부만 검사)과 부검(剖檢·시체를 해부하여 검사)으로 나뉜다.

변사체 검시(檢視)의 주체는 검사이며 경찰은 집행을 맡고 판사는 이를 허가한다. 현행 제도 하에서 법의관, 또는 의사는 일종의 기술 지원만 맡고 있는 상황이다.

변사체 신고 현장 대부분에는 경찰만 출동한다. 원래라면 법의관, 또는 의사가 현장에 나가서 시체 외부와 주변을 살피고 보다 많은 정보를 갖고 사인과 타살 의혹 여부를 파악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검안은 주로 병원, 장례식장으로 시체가 옮겨진 후 이뤄진다.

의사가 불충분한 정보만으로 경찰에 검안서를 써주면 경찰은 검찰에 검안서, 수사내용을 합쳐 변사자 발생보고를 한다. 검찰이 이를 바탕으로 범죄 관련성 등 특이사항이 없다고 판단하면 사건이 종결된다. 범죄와 연관됐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어 검찰이 부검을 지휘하면 의사가 시체를 해부해서 살피고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수사를 개시한다.


특별기획취재팀







결핵 환자를 뇌졸중으로… 흉기 찔렸는데도 死因 미상…



지난해 11월 인천 한 요양원에서 숨을 거둔 어머니를 인근 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긴 강해웅(65)씨는 어머니 시체검안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1년간 결핵을 앓고 사망 전날까지도 결핵약을 복용한 어머니가 뇌졸중 환자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강씨는 “영정사진을 가지러 집에 잠시 간 사이 장례식장에서 부른 A 의사가 ‘검안서를 써야 한다’며 전화했길래 결핵으로 7개월 넘게 입원하셨다가 요양원으로 옮긴 자초지종을 다 얘기했다”며 “그런데 장례식장에 돌아와 보니 시체검안서 사망 원인에 ‘뇌졸중·고혈압’이 적혀 있어 황당했다”고 말했다. 강씨 설명에도 A 의사는 강씨 형에게 ‘결핵으로 사망했다고 쓰면 보건소에 신고도 해야 하고 절차가 복잡한데 노인들은 뇌졸중, 고혈압으로 쓰면 장례치르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며 이같이 검안서를 작성한 것이다. “유족 말을 무시한 데다 시신도 제대로 보지 않고 검안서를 썼다”는 게 유가족 주장이다. 강씨는 “의사는 시체를 봤다고 하는데, 의사가 병원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형이 내려가 만났는데 그 짧은 시간에, 보호자를 동행하지도 않은 채 시체를 봤다는 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A 의사는 검안비로 현금 15만원을 받아갔다. 보통 대학병원이나 병원은 7만∼10만원 선이다. 강씨는 “장례식장에서 의원을 불러주고 검안비에서 수수료를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일부 장례식장과 검안의사 결탁설은 흔한 얘기다.

취재팀 확인 결과 80대인 A 의사가 운영하는 B 의원은 최근 2년 9개월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진료비를 청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환자를 아예 보지 않았거나 비급여 진료만 했다는 뜻이다. 취재진 전화 문의에 A 의사는 “진료는 하지 않는다. 부르는 데나 나가고…”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아버지 장례를 치른 C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뜬금없이 빈소에 서류가방을 들고 온 70대 노인이 의사라며 명함을 건넸다. 그는 C씨 아버지 병력을 물어보며 “검안서에 (사인을)병사로 써주겠다”고 제안했다. 두 의사 모두 진료는 하지 않고 일대 장례식장을 순회 영업하며 마치 자판기처럼 검안서를 발급한다. 법의학계에서는 이런 이들을 ‘검안서 장수’라고 부른다.



◆검안서 장사

시체검안서나 사망진단서는 의료기관을 개설해야 쓸 수 있다. 검안서 장수 역시 대부분 병·의원을 차려놓고 진료는 하지 않는다. 심평원에 진료비를 청구하지 않으니 관할 보건소 관리감독도 받지 않는다. 병원 간판조차 없는 곳도 있다. 취재팀이 찾아낸 서울 은평구 한 검안서 장사 의원의 경우 ‘진료과목 내과·외과·산부인과·비뇨기과’와 ‘포경수술’이라고만 적혀 있을 뿐 병원명은 없었다. 심평원에 자료가 저장된 최근 5년간 진료비 청구내역도 전무했다.

이 같은 검안서 장수들은 국과수 부검의와 법의학자들 사이에서 ‘시체검안서의 나쁜 예’로 등장하는 단골 손님이다. 검안서와 사망진단서를 토대로 사망원인 통계를 내는 통계청에서도 큰 고민거리다.

한 법의학자는 “일부 의사가 사인을 ‘미상’으로 미리 써놓고 이름만 비어 있는 검안서를 들고 장례식장을 돌아다닌다”며 “경찰이나 유족 얘기는커녕 시신조차 안 보고 쓴 검안서는 엄밀히 따지면 허위진단서”라고 지적했다. 

◆범죄에 악용되는 부실 검안서

의사가 시체검안서 발부만 하더라도 이는 전혀 위법이거나 부도덕하지 않다.

문제는 일부가 망자의 죽음을 검증하는 엄중한 작업을 건성으로 하고 사인을 엉터리로 기재한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들뿐 아니라 일반 의사 다수에게서도 엉터리 사망진단서와 검안서가 발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엉터리 검안서는 자칫 억울한 죽음을 그대로 덮어버리거나, 향후 유족이 보험금 송사 등에 휘말렸을 때 증거자료 구실도 하지 못한다. 

취재 결과, 명백한 타살 흔적이 있는데도 의사가 병사 등으로 잘못 처리해 경찰에 신고되지도 않은 채 영원히 묻힐 뻔한 범죄 사례도 적지 않았다.

2012년 12월 경기도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83세 여성이 이미 숨이 끊긴 채 실려 왔다. 응급실 의사는 “어머니가 노환으로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아들의 말만 듣고 ‘직접사인-노쇠’, ‘사망의 종류-병사’로 기재해 검안서를 떼줬다. 병사는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되지 않고, 검시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노인의 죽음은 자연사로 덮힐 뻔했지만, 입관 직전 아들에 의한 패륜사건으로 드러났다. 장례식장 직원이 시신 목에 걸쳐 있던 스카프를 풀자 끈에 졸린 선명한 자국이 나타났다. 직원 신고를 받은 경찰은 아들로부터 자백을 받아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동두천 한 병원 응급실에 부엌칼이 등에 꽂힌 채 실려온 50대 남성 한모씨 사례도 비슷했다. 의사는 숨진 채 병원에 온 한씨에게 심폐소생술을 한 후 시신 등에 칼자국도 뚜렷한데도 사망 원인을 ‘심폐정지’, 사망의 종류를 ‘기타 및 불상’이라고 썼다.

이 밖에도 2010년 노숙 여성을 살해한 뒤 자신이 죽은 것처럼 꾸민 부산 ‘시신 없는 살인사건’ 등 타살사건을 검안의가 병사로 처리해 완전범죄가 될 뻔한 사례는 찾기 어렵지 않다. 완전범죄가 다수 존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법의학 서울의원 김형중 원장은 “아무리 법의학전문의가 아니라지만 검안하는 의사들이 시신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무성의하게 검안서를 쓰고 있다”며 “심폐정지는 죽음의 결과적 현상이지 직접원인이 아닌데도 사인에 심폐정지를 쓰거나 선행 사인을 알 수 없는 노쇠, 심장마비 등을 쓰는 오류가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사인 규명 대충… 사망자 10% 이상이 불명확

부실한 검시 시스템 탓… 사후 인권 강화해야
대한민국은 사인불명의 나라다. 세계일보 취재 결과 한 해 사망자 10% 이상이 ‘원인불명’으로 사망처리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원인불명 사망률 1위’다. 

이는 국민의 마지막 인권을 지키는 검시체계 전반에 걸쳐 사망진단서 부실 발급, 검안·부검 체계 혼선 등 그야말로 적폐가 정치권 무관심, 부처 칸막이 속에 방치됐기 때문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근대국가 국민복지의 최종 목표가 우리나라에선 표류 중인 것이다.

사인 규명은 인권 보호와 보건·사회 발전의 중대 과제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통일된 기준으로 사인(死因·death cause)을 분류하는데 최대 1만2000여개 항목으로 나뉜다. 이 같은 상세한 기준에 따라 모든 사망자는 의사의 사망진단 또는 시체검안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사인 불명은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세계일보가 사망진단서, 시체검안서 등에 기초한 통계청 2012년 사망원인통계 원자료를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표준질병·사인분류 지침서 기준으로 재분석한 결과 사망자 26만7221명 중 2만8838명(10.8%)의 사인이 불명확했다. 이는 ‘분류기호 R코드’인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 증후에 의한 죽음’ 2만5016명에 급성심장사, 상세불명의 심장정지 등 기타 불명확한 병태에 의한 사망을 더한 결과다.


만약 통계청이 매년 발표하는 국민 사망원인 순위에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이유로 빠지는 ‘원인불명’을 넣으면 암(7만3759명)에 이은 국민 제2의 사망원인이다.

빈부 격차는 죽음에도 예외가 없었다. 원인 불명 죽음을 들여다본 결과 역시 병원보다 병원 밖에서 죽은 사람이 많았고, 학력이 낮거나 혼자 산 이들이 많았다. 무관심과 소외의 사각지대에서 원인 미상 사망자가 대거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원인 미상 사망자 79.7%(2만2975명)는 의료기관 바깥에서 사망했다. 전체 사망 인원(26만7221명) 중에서 의료시설 내 사망이 70.1%(18만7253명)인 것과 반대다. 

‘병원 밖 사망’에는 주치의에 의한 사망진단서 대신 시체검안서가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망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의사가 쓰기 마련인 시체검안서는 사인이 ‘심박정지’ 등으로 불명확할 가능성이 크다.

17개 광역자치단체별로 원인 불명 사망 비율을 비교한 결과 부산(6.4%), 울산(7.2%), 세종(7.7%)이 가장 적었다. 부산과 울산은 이례적으로 검안서 작성에 전문성이 있는 법의학자가 민간 법의의원을 차려 검안서 대부분을 꼼꼼히 작성하고 있다. 그 결과 지역 전체 원인 불명 사망자 수가 적어진 것이다.

왜 죽었는지 밝히지 못하고 묻힌 이들은 소외계층일 가능성도 컸다. 전체 사망자 중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47.5%(12만6998명)이었지만 원인 불명 사망자 중에서는 33.3%(9599명)만 남편·부인이 있었다. 학력에서도 전체 사망자 중 57.7%인 무학·초등학교 학력자 비중은 원인 불명 사망자 중에서는 69.4%로 늘어났다. 소외계층은 죽은 후에도 사망 원인이 불명확하게 마무리되는 서러움을 겪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원인 불명 사인에도 종류가 있다. 가장 흔한 것은 '노쇠'(51.8%·1만4946명)다. 고령층이 병원 밖에서 사망하면 전신 기능 쇠약으로 인한 노쇠로 사망했다고 단정 짓는 경우가 많아서다. 사실상 '노인이라서 뚜렷한 사인을 알 수 없거나 알 필요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선 친족에 의한 살인이 가장 흔한 만큼 이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다른 원인 불명 사인에는 '기타 불명확하고 상세 불명의 사망 원인'(15.8%·4536명), '급성 심장사로 기술된 것'(7.1%·2043명), '지켜본 사람이 없었던 사람'(6.1%·1753명), '원인 미상의 기타 급사'(3.5%·1014명)가 뒤따랐다.

선진국은 대체로 원인불명 사망률이 낮다. 세계일보가 OECD 사망원인통계를 분석한 결과 인구 10만명당 R코드로 분류된 원인불명 사망자수에서 우리나라는 2010년 100.4명, 2011년 90명, 2012년 85.8명으로 연속 1위였다. 다른 나라는 2010년 기준 포르투갈 81.8명, 그리스 80.3명, 폴란드 71.1명 등이 많고 일본 30.3명, 독일 23.3명, 스페인 20.2명, 영국 14명, 미국 12.5명, 캐나다 7명, 호주 3.9명 등이다.

원인불명 사망이 많다는 것은 보건이 나쁘거나 사인을 밝히려는 국가·사회 의지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WHO는 “원인불명 죽음 뒤에는 진짜 사인이 숨어있다”며 ‘65세 미만 사망자는 R코드 사인 비율 5%, 65세 이상은 10% 이하’를 상한선으로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65세 미만 5.7%, 65세 이상 10.8%로 이를 초과한 상태다.

원인불명 사망자가 많은 건 부실한 검시체계 때문이다. 이를 연구한 구향자 통계청 통계실무관과 이태용 충남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관련 논문에서 “분석 결과 불명확한 사망원인의 요인으로 검시제도가 가장 중요한 변인으로 선정됐다”며 인우증명 폐지, 검시대상 사망종류의 명문화, 시체검안제 강화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빈부 격차는 죽음에도 예외가 없었다. 취재팀이 2012년 원인 미상 사망자를 분석한 결과다. 취재팀이 통계청으로부터 제공받은 2012년 국내 사망원인 통계 자료에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을 적용한 결과 26만7221명의 사망자 중 2만8838명이 ‘원인 불명’ 사망자로 분류됐다.




이들의 죽음을 들여다본 결과 역시 병원보다 병원 밖에서 죽은 사람이 많았고, 학력이 낮거나 혼자 산 이들이 많았다. 무관심과 소외의 사각지대에서 원인 미상 사망자가 대거 양산되고 있다. 원인 미상 사망자 79.7%(2만2975명)는 의료기관 바깥에서 사망했다. 전체 사망 인원(26만7221명) 중에서 의료시설 내 사망이 70.1%(18만7253명)인 것과 반대다. 

‘병원 밖 사망’에는 주치의에 의한 사망진단서 대신 시체검안서가 쓰였을 가능성(박스기사 참조)이 크다. 망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의사가 쓰기 마련인 시체검안서는 사인이 ‘심박정지’ 등으로 불명확할 가능성이 크다.

17개 광역자치단체별로 원인 불명 사망 비율을 비교한 결과 부산(6.4%), 울산(7.2%), 세종(7.7%)이 가장 적었다. 부산과 울산은 이례적으로 검안서 작성에 전문성이 있는 법의학자가 민간 법의의원을 차려 검안서 대부분을 꼼꼼히 작성하고 있다. 그 결과 지역 전체 원인 불명 사망자 수가 적어진 것이다.

왜 죽었는지 밝히지 못하고 묻힌 이들은 소외계층일 가능성도 컸다. 전체 사망자 중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47.5%(12만6998명)이었지만 원인 불명 사망자 중에서는 33.3%(9599명)만 남편·부인이 있었다. 학력에서도 전체 사망자 중 57.7%인 무학·초등학교 학력자 비중은 원인 불명 사망자 중에서는 69.4%로 늘어났다. 소외계층은 죽은 후에도 사망 원인이 불명확하게 마무리되는 서러움을 겪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원인 불명 사인에도 종류가 있다. 가장 흔한 것은 ‘노쇠’(51.8%·1만4946명)다. 고령층이 병원 밖에서 사망하면 전신 기능 쇠약으로 인한 노쇠로 사망했다고 단정 짓는 경우가 많아서다. 사실상 ‘노인이라서 뚜렷한 사인을 알 수 없거나 알 필요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선 친족에 의한 살인이 가장 흔한 만큼 이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다른 원인 불명 사인에는 ‘기타 불명확하고 상세 불명의 사망 원인’(15.8%·4536명), ‘급성 심장사로 기술된 것’(7.1%·2043명), ‘지켜본 사람이 없었던 사람’(6.1%·1753명), ‘원인 미상의 기타 급사’(3.5%·1014명)가 뒤따랐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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