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심 변사는 두번 검시 원칙

결과 불일치땐 4검도… 철저 규명

“지금의 검시제도는 조선시대보다 못하다.”

경북대 채종민 교수(법의학교실)의 평가다. “조선시대에는 죽은 자가 억울하면 저승에 가지 못하고 떠돈다고 해서 억울함을 없애자는 의미에서 검시를 철저하게 했다”는 것이다.

1937년 당시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사법제도 연혁도보에 묘사된 조선시대 검시 모습. 혹시 모를 증거를 찾기 위해 시신 옷을 모두 벗긴 후 술찌꺼기, 식초, 물 등으로 시신 몸을 세척한 후 검시했다고 한다.


수사기법이야 현대가 비교할 수 없는 우위이나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겠다는 정의 구현 의지와 국민의 마지막 인권을 대하는 자세는 조선시대가 낫다는 얘기다.

특히 조선시대에 살인이 의심되는 변사사건은 “봉분(무덤)을 파헤쳐서라도 정확하게 조사해야 한다”(정조)는 지침이 법에 명시될 정도로 철저한 검시가 이뤄졌다. 또 살인 의심 변사는 원칙적으로 두 번의 검시를 실시하고, 두 명의 ‘사또(조선 지방관 속칭)’가 개별적으로 조사하도록 했다.

최초로 이뤄지는 검시를 초검(初檢), 두번째를 복검(覆檢)이라 하는데 초검관은 복검에 참여하지 못하고, 복검을 할 때는 초검의 기록을 절대 열람할 수 없다. 초검관과 복검관이 만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초검관과 복검관이 각각 조사한 결과가 일치하면 사건을 종결했지만, 그렇지 않거나 의심이 가는 경우에는 형조, 지금의 법무부에서 파견된 관원 또는 해당지역 관찰사가 임명한 특별검시관이 3검, 4검을 할 정도로 집요하게 매달렸다. 사또는 사건 조사부터 기소, 판결까지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법의학적 지식을 갖춰야 했다. 수사가 잘못되면 파직을 당할 정도로 책임도 엄중하게 물었다

검시보고서에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되, ‘글자가 많은 것을 싫어하지 말라’며 주(註)를 달아 자세히 쓰도록 했다. 이 같은 수사 원칙과 기법은 ‘원통함이 없게 하라’는 뜻의 일종의 검시 지침서 ‘무원록(無寃錄)’이 근간이 됐다. 

증수무원록


1308년 중국 원나라 왕여(王與)가 저술한 이 책은 조선에 들어와 100여년이 지난 세종 20년(1438) 11월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으로 완성됐다. 

이후 영·정조대를 거치면서 혼란한 사회상과 다양한 범죄수법을 반영해 구택규·구윤명 부자의 ‘증수무원록대전’, 그리고 서유린의 ‘증수무원록언해’로 발전했다.

물론 당시 조선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부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의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변사사건의 사망원인을 규명하고 강력범죄를 해결했다는 것은 부검을 하지 않고도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법의학과 과학수사 기술이 발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인교대 김호 교수(사회교육과)는 “조선은 법의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고 그것이 법의학에 대한 요구로 이어져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법의학을 수용한 것”이라며 “(현대가) 과학기술은 더 발달했을지 몰라도 국민 죽음에 대한 국가의 의지나 책임은 후퇴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온 국민을 경악케 한 ‘유병언 청해진해운회장 변사체’ 사건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한 직원이 “혹시나”하는 심정으로 변사체 DNA를 당국이 순천 별장 등에서 확보한 유 회장 DNA와 비교하지 않았다면 ‘장기미제’로 남을 뻔했다. 국과수 측 샘플에선 유 회장과 맞는 DNA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유 회장은 DNA 검사, 부검을 통해 신원이 확인됐지만, 부검절차 없이 묻히는 변사체가 적지 않다. 범죄 수사 현장의 부검 기피 풍토에 특유의 유교·장례문화가 겹쳐 부검 실시율이 낮은 탓이다. 고참 법의학자는 “대한민국은 살인하고 안 잡히기 괜찮은 나라”라고 말한다. 

◆변사자 증가 추세인데 부검률은 10%대

15일 경찰, 해양경찰이 취재팀에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변사 사건은 2008년 2만4194건, 2009년 2만6585건, 2010년 3만1649건, 2011년 3만2998건, 2012년 3만2854건으로 증가 추세다. 그러나 해마다 2만∼3만명에 달하는 변사자 중에서 수사 당국이 범죄 여부를 의심해 부검을 실시한 건 2008년 4294건, 2009년 4955건, 2009년 3917건, 2011년 4214건, 2012년 5511건이다.

변사자는 증가 추세인데 변사 원인을 밝히는 부검 건수가 들쑥날쑥한 건 부검 대상을 외국과 달리 법으로 정해놓지 않아 수사 실무진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실시된 결과로 해석된다. 법의학계 관계자는 “검시 관련 사회적 이슈가 있으면 부검이 인위적으로 늘어난다”며 “반대로 시절이 조용하면 부검해야 할 사건인데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변사체 발견 현장에도 일종의 ‘베르테르 효과’가 있어 유 회장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덩달아 부검 의뢰가 부쩍 늘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25만명 정도가 사망하는데 전체 사망자 대비 부검률은 2% 남짓이고 변사자 대비 부검률은 15% 안팎이다. 이는 해외에 비해 낮은 수치다.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미·일 등은 보통 사망자의 15%를 검시(검안+부검) 대상으로 보는데 우리나라는 이를 10%로 삼는 데다 미·일은 검시 대상 3분의 1을 부검하지만 우리나라는 5분의 1을 부검한다”며 “억울한 죽음이 꽤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발 안 맞는 국내 검시체제

낮은 부검률에는 수사당국의 병폐가 숨어 있다. 외상 등 명백한 범죄 징후가 안 보이는 경우 일선 경찰이 “부검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내려는 시체검안자에게 “일 만들지 말라”고 눈치 주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유족이 부검을 원치 않는다”, “타살 혐의점이 없다”, “경찰이 보기에 의심이 가지 않는다”며 부검 여부를 결정하는 검사에게 수사지휘보고서를 올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형사소송법은 “변사체는 검사가 검시하여야 한다”고 정했다. 하지만 검사가 직접 검시하는 경우는 2004년 13.2%에서 2013년 4.1%로 대폭 줄었다.

전문 지식을 갖춘 법의학자는 현장에 나가지 못하고 권한도 없으며, 일부 수사진은 부검 의뢰를 기피하고, 검사는 책상 앞에서 불충분한 정보만으로 사건을 지휘하는 것이 국내 검시 체제의 맹점인 것이다. 지휘-검사, 집행-경찰, 실무-의사(법의학자), 부검 결정-판사 등 4개 직종으로 분산된 업무 시스템도 ‘부실 검시’의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검시전문가 100% 현장 투입 등 관계기관과 합의 없이 일방 발표

화상통화 자문 등 실효성 낮아
유병언 전 청해진해운 회장 변사체의 노숙자 오인 사건을 계기로 경찰은 지난 13일 “단 한 사람의 억울한 죽음도 없도록 하겠다”며 ‘변사사건 종합개선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관계기관과 협의가 채 되지 않은 설익은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현장 문제점에 대응하는 실질적인 대책도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책의 골자는 변사사건 중 타살 의심, 신원 미확인, 아동학대 사망 등 사회적 이목 집중이 예상되는 사건을 ‘중점관리’ 대상으로 정해 별도 대응한다는 것이다. 타살 흔적을 잘 숨긴 사건이나 신원이 확인된 변사자에 대한 수사 허점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

또 중점관리 변사사건 현장에 검시 전문인력을 100% 투입하겠다는 내용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찰은 국내 법의학자 9명을 포함해 현장 출동이 가능한 ‘검안의 인력풀’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법의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인력풀에 대해 결정된 바 없고, 인력풀이 만들어져도 경찰 구상처럼 현장에 나갈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또 “서울·경기의 일선 경찰서 상당수는 기존의 법의학 전문의사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않다“며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한법의학회 관계자는 “경찰청과 두 차례 회의를 했지만 구체적으로 정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는 부검하기도 바쁘고, 대학 법의학교실은 부검·연구·강의를 해야 하는데 경찰 전화에 바로바로 나갈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우리가 확보한 검안의는 법의학자는 아니지만 검안 경험이 있는 의사들이고, 현장에 바로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국과수 법의관에게 태블릿 PC를 지급해 필요할 경우 화상통화를 통한 ‘원격 법의 자문’을 받겠다고 발표한 내용에 대해서도 국과수에서는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 좀 비춰주세요”하는 식으로는 현장 파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검시전문인력 투입을 명분으로 두 배 가까운 증원 계획을 발표한 ‘경찰 검시관’은 전문성에 대한 공방이 뜨겁다. 임상병리, 간호학 등을 전공한 검시관이 병리학 전문의 자격을 따고 법의병리 실무 경험을 쌓은 법의학자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시체제의 심각한 문제점인 일선 수사진의 부검 기피 풍토는 아예 빠져 있다. 취재를 종합하면 실무진에선 당직 중 변사상황이 발생하면 비번(휴무)인데도 출근해서 부검에 참여하는 등의 이유로 변사체 부검을 왠만하면 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일부에서 업무 과다를 호소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형사들은 부검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검시의 두 축인 검경이 따로 대책을 세우는 상황도 아쉬운 대목이다. 검찰은 경찰과 별도로 변사사건 처리 관련 대책을 마련 중이며 이달 말 법의학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특별기획취재팀







80세 이상 오류 88%로 가장 많아

“의사들 무관심이 더 근본 문제”
전남대 의대 법의학교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책임저자 민병우)은 2009∼11년 국과수에서 실시한 부검 252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사망진단서·검안서에 적힌 사망 원인과 부검 후 사인이 다르거나 ‘심(폐)정지’ 등 사인이 잘못 기재된 사례가 76.2%에 달했다. 특히 검안서 사인과 부검 후 사인이 일치하는 비율은 17.3%에 불과했다.

의료진이 직접 치료한 환자에 대해 쓰는 사망진단서 부실 문제의 경우 전북대 보건대학원(연구자 최정숙)이 2009년 전북 A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교부된 사망진단서 267건을 분석한 결과 오류가 발견된 진단서가 72.7%나 됐다. 연령별로는 80세 이상 사망자 진단서 오류가 88.4%로 가장 많았다. 노인의 사인은 노환, 노쇠 등으로 치부해 쓰는 경향 때문이다.


잘못된 시체검안서의 예. 한 대학병원 응급실 의사가 작성한 검안서에 목에 끈으로 졸린 자국이 선명한 노인의 직접 사인은 ‘노쇠’, 사망의 종류는 ‘병사’로 기재돼 있다. 자칫 자연사로 묻힐 뻔했지만 뒤늦게 아들에 의한 패륜사건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관계자는 “의사가 자살·타살 등 사망 종류까지 알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병사인지 외인사인지는 구분해야 하는데 그조차 모르고 쓰는 경우가 많다”며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변사는 신고할 의무가 있는데도 제대로 안 지키고 있고 그 허점을 노린 범죄가 그냥 묻히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오류투성이 검안서와 진단서는 행정력 낭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 경찰 검시관은 “의사가 좀 더 책임 있게 검안서를 쓴다면 경찰이 관여하는 변사가 적어지고 대신 그 시간에 치안에 더 신경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엉터리 검안서가 많다 보니 국과수 부검의도 “검안서를 아예 안 보고 부검한다”고 말하는 실정이다. 국과수 한 법의관은 “부검해보면 타살인데 검안서 사인은 병사, 심근경색 등 엉뚱하게 써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검안서를) 안 믿는다”며 “몇 개나 틀렸나 (사례를) 찾아보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늘 사인이 틀리고 형식도 안 맞는다”고 말했다.


한국법의학 부울의원 이상용 원장이 작성한 시체검안서. 사고발생 일시부터 사망 일시, 사망의 종류, 사고 종류, 사망의 원인뿐 아니라 발견 당시 사망자 상태와 병력 등이 자세히 기재된 검안의 주요소견, 종합의견까지 기재돼 있다. 
한국법의학 서울의원 제공


의사들은 제한된 정보만으로 사망 원인을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항변한다. 대한의사협회 심현영 대변인은 “의사는 환자의 병력, 검사기록 등을 참조해 명확한 근거를 갖고 사인을 써야 하는데 직접 진료하지도 않고, 이미 사망한 상태로 실려온 환자에 대해 아는 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심박정지’등을 사인으로 쓰는 것은 (시체의) 마지막 현상을 보고 그것의 직접원인을 쓰라고 배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사는 사인에 대한 의학적 소견만 주지, 원인이나 인과관계까지 판단할 의무도, 필요도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일반의사에게 정확한 사인을 쓰거나 수사에 필요한 정보까지 제공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의학교육과정에서 죽음의 증명문서에 대한 교육의 부재와 의사들의 무관심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별기획취재팀







“50년째 이야기하고 있는데 바뀐 게 없습니다. 검·경 수사권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검시 문제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김형석 대한법의학회 총무이사) 검·경이 검시체계 개선 작업에 나서고 관련법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이를 바라보는 법의학계의 시선은 차갑다. 정치권이나 정부의 진짜 속내는 검시제도에 대한 관심도, 개선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역대 검시제도 개선 작업이 별다른 성과 없이 번번이 무산된 과정을 살펴보면 법의학계의 이 같은 냉소는 이해가 간다.



검시제도 개선 논의는 196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본격적인 건 2000년대 초반 의문사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2002년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건의로 법무부에서 개선 방안까지 내놨으나 유야무야됐다. 2005년 17대 국회 당시에는 윤호중 의원이 검시 대상을 법으로 정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유시민 의원도 각계 의견을 모아 검시법 초안을 만들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유 전 의원의 검시법 초안 폐기는 법의학계가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유 전 의원은 “검찰, 경찰,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관련기관 실무자들과 10여회 협의를 거쳐 합의로 만든 이 법률안이 법사위에서 아무 합당한 이유도 없이 의결을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이명박정부에서는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검시제도 개선 기획조사 및 공청회 등을 통해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 구체적 방안까지 청와대에 보고됐으나 이 역시 흐지부지됐다. 



검시체계 개선작업이 번번이 무산된 배경에는 검시권을 수사권과 결부시킨 검·경 간 갈등이 놓여 있다. 권익위 검시체계 개선 작업에 참여했던 김헌진 전 권익위 전문위원은 “청와대에 보고를 들어가서 마무리지으려고 했던 부분인데 (청와대내에서조차 부처 파견 비서관 간에) 조율이 계속 안됐다”고 말했다. 그는 “각 기관 입장에서 생각할 게 아니라 국민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야만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검시체계 개선 작업에는 이처럼 법무부와 검찰,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법의학계 등 여러 조직이 얽혀 있는 만큼 범부처 차원의 총리 또는 사회부총리 산하 위원회 신설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박종태 대한법의학회장은 “예전 학회 차원에서 정리된 내용은 총리 산하에 검시위원회를 두고 그 위원회가 검시를 관리하는 것”이라며 “변사체가 발생하면 경찰이 법의관한테 신고해 현장 출동하도록 하는데, 일단 (인력을 차차 충원하면서) 시행 가능한 지역부터 하고 점차 확대하자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도 “검시위나 검시를 총괄하는 조직을 만들어 현장 검안 의사부터 검안 자격 등을 관리해야 한다”며 “넓게는 의과대에 법의학교실 설치를 의무화하고 의사고시에도 법의학 과목을 넣는 등 법의 양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은 부처 간 권한 갈등에 휩싸일 가능성도 크다. 한 법의학자는 “총리실 소속 검시위를 만들자고 하면 기관 권한 싸움이 시작돼 개선 작업이 난관에 부닥친다”며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의사 얘기는 없는데 형사소송법 혹은 규칙에라도 ‘이러이러한 경우는 법의관의 검시를 받아 처리하라’고만 넣어도 굉장한 진전이 있을 듯하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검사 판단에만 맡겨 놓은 검시 대상 일부를 ‘수용시설 내 사망사건’ 등 일정 상황에는 무조건 검시하도록 법에 정해 놓는 방안이 시급하다. 검안서를 모든 의사가 쓸 수 있도록 돼 있어 부실한 검안서가 쏟아지는 현실도 고쳐야 한다. 법의학자만 검안서를 쓰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법의학자가 부족해 당장 어렵다면 검안서 작성 교육을 따로 받은 의사만이 검안서를 쓰도록 해야 한다. 



경찰은 검시권을 검찰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내부적으로 가능한 방안을 모은 것이 지난 13일 발표한 ‘변사사건 개선 종합대책’이었다. 임상병리학·간호학 등을 전공한 경찰검시관을 대폭 늘리고, 검안 경험이 많고 현장에 출동할 수 있는 일반 임상의사들로 인력풀을 꾸려 현장 검안을 강화겠다는 것이 요지이다.

그러나 여전히 법의전문의사들을 활용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현장 검안의 인력풀에 민간 법의학자 9명을 포함했지만, 경찰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민간 법의학자와 적극적인 공조체제를 구축한 부산·울산은 만족도가 높은 반면에 다른 지역에서는 “공적인 수사 영역에 민간 법의학자를 개입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조를 꺼려 왔다. 

민간 법의학자와 경찰의 공조체계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국과수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소수의 믿을 만한 법의학자들이 활동하지만 나중에는 하나의 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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