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대교 전망대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고가 발생해 구조대원들이 남성을 구조하고 있다(영등포소방서 제공)./뉴스1
2017년까지 2년에 걸쳐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전문요원 양성 
지난 11년째 OECD 자살률 1위 불명예 잡을 정부 차원의 대책


(서울=뉴스1) 음상준 기자 = 보건당국이 심리부검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에 내년에만 10억원가량을 투입한다. 정부는 이 예산으로 지난 4월 문을 연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심리부검센터를 운영하는 한편 자살유가족에 대한 사례관리 등을 담당할 전문 수행기관을 모집해 지원하는데 쓰인다.

심리부검(Psychological Autopsy)은 전문성을 갖춘 면담자가 자살 사망자의 유가족을 인터뷰하면서 생전 고인의 삶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말한다. 고인이 사망하기전 일정기간에 어떤 심리적 행동 양상을 보였는지, 스트레스와 병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자살 원인을 추정한다. 

21일 복지부에 따르면 심리부검체계 구축 사업은 2016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2년에 걸쳐 진행된다. 내년 예산은 중앙심리부검센터를 운영할 1개 기관을 선정해 9억6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2017년 사업은 전년도 사업 실적을 평가해 지속 여부를 결정하고 예산은 정부 사정에 따라 편성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내년 1월 4일까지 심리부검체계 구축에 참여할 기관을 모집할 예정이다. 심리부검을 수행할 전문기관은 정신보건시설이나 학교, 사회복지법인, 전문인력을 갖춘 비영리법인 등이 대상이다. 선정된 기관은 심리부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전문요원을 양성하는 등 한국형 조사체계를 구축하는 업무를 맡는다. 

정부 차원에서 심리부검을 처음으로 도입한 것은 지난 2013년 1월부터다. 당시 부산시와 부산경찰청이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전국 최초로 심리부검을 시행했다. 

그 결과 부산시는 정신과 치료경험이 있거나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사람, 40대 무직자 등을 대상으로 예방 교육을 강화하면 자살률을 낮추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자살은 경제·사회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데 직업 분포도에서는 무직이 전체 절반가량인 48.4%를 차지했다.

정부가 심리부검에 주목하는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1년째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개선하려는 고육지책이다. 통계청의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고의적 자해 사망자(자살)는 총 1만3836명으로 전년대비 591명(-4.1%) 감소했다. 하루 37.9명꼴이다. 

또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지난해 27.3명으로 전년 28.5명보다 다소 줄었고, 2008년 26명 이후 6년만에 가장 적었다. 하지만 한국의 자살 사망률은 OECD 평균 12명(2013년 기준)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복지부는 "심리부검을 통해 발견한 자살유가족에 대한 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자살률 감소를 위한) 지속적인 관리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신문]

가난한 노인에게 한국은 버티기 힘든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인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이를 방증한다. 심리적 부검을 통해 사후(死後)에 취재원이 돼 준 노인들은 그들이 자살에 이르게 된 경로를 뚜렷하게 보여줬다. ‘빈곤+α’.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이 지난 10월 1일부터 11월 31일까지 보건복지부의 중앙심리부검센터와 직접 진행한 총 7건의 노인 자살자 심리부검 결과와 부산시·충청남도 등으로부터 받은 자살 유가족 심리면담 자료 98건 등을 분석해 얻은 노인 자살의 공식이다. 다수의 노인이 빈곤의 늪에 빠진 현실에서 불행히도 ‘α’는 다양하다. 지병 또는 갑작스러운 질병, 심리적 고립감, 가족과의 불화, 폭력과 학대 등이 이미 벼랑에 선 노인들의 등을 떠민다. 한국 사회에서는 노년층도 경쟁에서 이길 힘을 잃으면 떠나줘야 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각자도생’의 냉엄한 사회에서 끝내 버티지 못한 한국 노인들은 2시간 30분마다 1명씩(2014년 기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가난에 허덕이다 끝내 잘못된 방식으로 삶을 마감한 노인들의 사연을 통계와 사례로 살펴봤다.

우리 사회의 노인들을 자살로 내모는 주범은 ‘빈곤’이다. 보건복지부의 ‘2014년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노인(65세 이상)의 10.9%가 60세 이후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된 이유로는 경제적 어려움(40.4%)을 가장 많이 꼽았고 ▲건강 24.4% ▲외로움 13.3% ▲부부·자녀·친구와의 갈등 및 단절 11.5% ▲배우자·친구 등의 사망 5.4% 순이었다. 특히 잘사는 노인보다 못사는 노인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더 자주 했다. 소득 하위 20%(연 소득 754만원 이하) 가구의 노인 중 자살을 생각해 본 비율이 16.5%인 데 반해 소득 상위 20%(연 소득 3426만원 초과) 가구의 노인은 절반인 8.3%에 그쳤다.




현대사에서 경기침체가 자살률을 얼마나 끌어올렸는지를 봐도 노인 자살과 빈곤의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0년대 외환위기, 2000년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노인 자살률이 크게 늘었다”며 “자살은 경제적 어려움 등 원인 상황이 불거지고 2~5년 뒤 급증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인구 10만명당 노인 자살률은 1997년 30.3명이었지만 외환위기(1997~98년)로 경제 성장률이 곤두박질치고 나서 3년 뒤인 2001년 42.0명으로 급증했다. 이후 카드대란(2003년)의 여파 등이 겹치며 노인 자살률은 급증세를 보였고 2005년에는 80.3명에 달했다. 노인 자살률은 이후 잠시 감소세를 보였지만 미국발 금융위기(2008년)의 여파로 2010년에는 역대 최악인 81.9명까지 치솟았다.

자살 문제 전문가들은 “빈곤만으로는 노인 자살을 완벽히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빈곤에 추가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더해질 때 인간으로서 자존감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노인 자살을 부추기는 첫 번째 공범은 ‘병환’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이 수사한 60세 이상 자살자 4141명 중 육체적 질병 탓에 잘못된 선택을 한 것으로 결론 난 건이 1824명(44.0%)으로 가장 많았다. ‘건강=돈’인 우리 사회에서 노환이 찾아오면 경제적 어려움은 증폭된다. 박 교수는 “노인들은 질병 탓에 겪는 통증보다 경제적 부담과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존재의 고민을 한층 심각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특히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되지 못하면 ‘가장’으로서 더욱 큰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남성 노인들은 건강 악화로 돈을 벌 수 없게 되면 자살하는 사례가 여성보다 더 많다. 최명민 백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남성은 심리적 어려움 등을 겉으로 드러내 해소하기 어렵고 자살 방법도 훨씬 과격해 자살률이 여성보다 높다”고 말했다.

외로움과 심리적 고립감은 노인을 절벽 아래로 미는 두 번째 공범이다. 가족의 해체가 노인을 가난하게 또 외롭게 만든다. 국내 노인 인구 중 혼자 사는 비율은 2000년 16.0%였으나 이후 증가해 2010년 19.4%, 2015년 20.8%로 치솟았다. 통계청의 예측에 따르면 독거노인 비율은 계속 늘어 2020년이면 21.6%에 이른다. 젊었을 때 자녀를 뒷바라지하는 대신 늙어서는 자녀에 의지해 살던 전통적 가족 복지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최 교수는 “지금 노인 세대는 늙은 부모를 봉양한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로부터 부양받지 못한 첫 번째 세대”라면서 “가족 부양 체계가 이 정도로 해체될 것으로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경제적, 심리적으로 대비 없이 노년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특히 고향을 홀로 지키며 사는 농촌 노인은 심리적 어려움에 취약하다. 김도윤 충남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 부센터장은 “충남의 농촌 지역에서 노인 자살 원인을 조사해 보니 경제적 어려움, 질병 문제에 관계 단절로 인한 고독감이 겹치면서 괴로워하다 자살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전했다.

충남의 한 농촌 마을에서 3년 전 음독자살한 김신옥(82·여·가명)씨는 ‘가난’과 ‘관계 단절’의 이중고 속에 죽음에 내몰린 사례다. 아들 둘, 딸 둘을 뒀던 김씨는 재산의 대부분을 큰아들에게 증여한 뒤 다른 자녀들과 불화가 생겨 관계가 멀어졌다. 그나마 같은 지역에 살며 의지했던 큰딸마저 병으로 사망했고 이후 둘째아들과 함께 살았지만 아들이 집을 담보로 빚을 지는 등 경제적 어려움이 커졌다. 이웃과 왕래조차 없었던 그는 지역 보건소장에게 “죽고 싶다”고 자주 털어놨지만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하자 결국에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이렇듯 노인에게 자녀는 ‘힘들어도 버티게 하는 존재’여야 하지만 때로는 자살 생각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노인은 건강이 나빠지거나 경제력을 잃으면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힘든 자식에게 짐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자살하는 일이 많다. 고선규 중앙심리부검센터 사무국장은 “우리나라의 노인 중에는 짐이 된다는 생각에 시달리다가 자식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자살하는 일이 다른 나라보다 많다”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tamsa@seoul.co.kr


유영규 팀장 whoami@seoul.co.kr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그래픽 김예원 기자 yean811@seoul.co.kr






“여기 방이동(서울 송파구)인데요, 노래방 문 좀 따주세요.” 지난해 9월 20일 밤 10시. 119신고센터에 20대 여성의 다급한 요청이 들어왔다. 닷새 전 노래방 문을 연다고 나간 A(당시 46세)씨를 애타게 찾던 첫째딸(당시 28세)의 목소리였다. 구조대가 급히 달려간 지하 노래방은 앞뒤로 굳게 철문이 닫혀 있었다. 119 대원이 한참을 씨름하던 잠금장치를 절단하고 문을 열자 고약한 냄새가 확 풍겼다. 뭔가 썩는 냄새였다. 노래방 주인 A씨가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끝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자살이었다. 한눈에 들어온 현장은 그랬다. 시신이 누워 있던 노래방 내실 탁자에서는 유서가 담긴 흰 봉투와 먹다 남은 소주병 2개가 나왔다. A4 용지 2장 분량의 유서에는 구구하게 긴 사연이 담겨 있었다. 1년 전 남편 유산으로 시작한 노래방이 생각만큼 잘 안돼 속상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3남매가 엄마 마음을 몰라줘 섭섭했다는 사연, 자신은 재미있게 살지 못했지만 자식들은 서로 의지해 가며 정겹게 인생을 살라는 당부 등이 이어졌다. 노래방과 살던 집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숨겨놓은 통장은 어디에 있는지, 출금 비밀번호는무엇인지 등도 적혀 있었다.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인쇄돼 마지막에 도장까지 찍힌 유서는 남이 썼다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세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자살이라고밖에는”… 유서 2장과 소주병

A씨의 왼쪽에는 피묻은 칼이 놓여 있었다. 노래방 부엌에 있던 식칼이었다. 칼은 명치와 왼쪽 손목 2군데에 상처를 냈다. 치명상은 명치 쪽인 듯했다. 정황상으로 보면 A씨는 평소에 자살을 고민해 왔고, 결국 어느 날 노래방 문을 잠그고 술을 마신 뒤 1차로 손목을 2차례 긋고 나서 다시 명치 부위를 스스로 찌른 것으로 보였다.

자칫 억울하게 묻힐 뻔했던 A씨 피살의 한을 풀어 준 사람은 베테랑 형사였다. 자살 치고는 현장이나 시신이 지나치게 깔끔했다. A씨가 자살한 쪽방은 성인 2명 정도가 겨우 누워 잘 수 있는 크기. 그나마 가로로는 누울 공간조차 나오지 않을 만큼 좁은 방이었지만 벽에 피가 튄 흔적이 전혀 없었다. 바닥에 고여 있는 혈액의 양도 이상하리만큼 적었다.

●“최후 순간에는 주저하기 마련, 그러나…”

피해자의 몸에 난 상처도 주저흔(hesitation marks) 하나 없이 지나치게 깨끗했다. 주저흔이란 자살하려는 사람이 한번에 치명상을 만들지 못하고 여러 차례 자해한 흔적을 남기는 것을 말한다. 주로 치명상 주위에 생기는데 송곳에 찔린 듯한 작은 것부터 1~2㎝까지 많게는 수십개가 남기도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사망자의 몸에 칼에 찔린 상처가 많고 외부로 흘러나온 혈액이 많으면 타살로 간주하기 쉽지만 자살인데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흉기로 자살하려는 사람은 고통 없이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치명적인 곳을 못 찾거나 주저하게 돼 스스로 여러 곳에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 자녀도 “자살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A씨가 워낙 솔직하고 화통해 우울증이나 자살과는 거리가 먼 데다 유서도 어색하다고 했다. 유서에는 “내가 글씨를 잘 못써 PC방 점원에게 워드(워드프로세서)를 배웠는데, 유서 쓰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자녀들은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엄마가 어느 결에 워드를 배웠는지도 의문이고, 굳이 유서를 워드로 작성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유서 속 단어들이 평소 엄마의 말투와 전혀 달랐다.

●생활반응이 말해 주는 사건의 진실

A씨의 시신에 대해 부검 결정이 났다. 치명상은 가슴에 난 창상이었다. 찔린 곳은 한 곳이었지만 칼이 만든 상처의 끝부분이 묘하게 변해 있었다. 치명상을 입히려고 같은 곳을 정확하게 두 번 찔렀을 때에나 생기는 현상이다. 자살하는 사람이 스스로 치명상이 난 곳을 정교하게 찾아 두 번 칼을 찌를 리 없다.

자살 현장이 조작됐음을 말해주는 결정적인 증거는 시신 왼쪽 손목의 상처였다.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다는 A씨의 상처에 ‘생활반응’(生活反應·특정 충격에 대해 살아 있는 몸이 보이는 반작용)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적은 출혈량 등을 감안했을 때 살아있는 상태에서 손목을 그었다기보다는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만든 가짜 상처로 결론났다.

하지만 의문은 계속됐다. 범인이 누구이기에 통장 비밀번호는 물론이고 남의 가족사를 줄줄이 꿰고 있을까. 그렇다면 범인은 3남매 중 하나일까. 주변인물을 대상으로 수사가 시작됐다. 정작 범인 색출은 싱겁게 마무리됐다. 유서 봉투에서 둘째 딸(당시 25세)의 헤어진 동거남(당시 25세)의 지문이 나왔다. A씨 사망현장에 그가 있었다는 얘기다. 친척집에 숨어 있던 동거남은 순순히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그는 1년 넘게 A씨의 둘째딸과 동거를 해왔지만 최근 자주 다투면서 때리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사건이 나기 한달 전 동거녀가 가출하자 노래방에 찾아가 “딸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지만 A씨에게 면박을 당한 뒤 모욕감에 범행을 결심했다. 그는 “결혼식은 못 치렀지만 1년 이상을 사위처럼 살면서 집안 대소사를 챙기고 상주 노릇까지 했는데 장모가 나에게 너무 모질게 대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whoam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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