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응급 중환자실에서 뇌사 상태에 빠진 우위안신(가명)을 안고 오열하는 어머니(왼쪽 사진). 보호자 대기실에서 딸과의 면회를 기다리는 아버지. 대기실에서 162일간 생활하고 있다. [채승기 기자]



너는 눈을 감고 있다. 오래도록 고요하게…. 오늘(29일)로 162일째. 아마도 깊은 잠에 빠진 거겠지. 아빠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사랑하는 내 딸 우위안신(吳元馨(가명)·25)! 아빠 목소리 들리니? 여기 서울대병원 응급 중환자실은 참담한 침묵의 공간이구나. 의료기기가 내는 윙윙 소리까지 없다면 진공상태 같은 이곳에 네가 왜 누워 있어야 하는지 아빠는 여전히 납득할 수가 없다.

 올해로 스물다섯 살인 우리 외동딸. 사춘기때부터 한국 드라마를 챙겨보면서 서울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지. 그렇게 동경하던 한국 유학 길에 오른 게 지난해 3월이었어. 한국의 명문 사립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단다. 아빠 친구들에게 “중국 땅에 우리 애보다 똑똑한 딸 있으면 나와보라”며 자랑도 했었지. 그런데 그 귀한 내 딸이 뇌사 상태라니….



 사고 소식을 들은 건 지난 1월 19일이었다. 한국으로 함께 유학을 떠났던 네 친구 A가 중국 난징으로 ‘위챗(※중국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왔어.

 “우위안신이 큰 사고를 당했어요. 어서 한국으로 오셔야겠어요.”

 그 순간 아빠는 믿을 수가 없었어. 사고 전날 엄마랑 네가 마지막으로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니. 너는 매일 밤 10시면 마트에 야간조로 출근하는 엄마와 화상통화나 위챗을 했지. 그날도 주고받은 위챗 메시지가 아직도 엄마 전화에 그대로 남아 있어.

 ‘이 옷은 어떠니? 엄마한테 어울리니?’ ‘엄마는 뚱뚱해서 못 입어^^.’ ‘알았다. 잘 자.’ ‘응. 알았어.’

 네 엄마와 나는 서둘러 한국에 들어왔단다. 응급 중환자실 문을 열자 조용히 누워 있는 네가 보였지. 누군가 옆에서 이상한 말을 하더구나.

 “낙태 수술을 받다가 뇌사 상태에….”

 중국어로 통역돼 들리는 말이 너무나 끔찍해 엄마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지. 딸아, 그때부터 네 엄마와 나는 진실을 알기 위한 싸움에 나섰단다. 병원 응급 중환자실 지하 대기실에 의자 몇 개를 붙여 침대를 만들고 숙식을 해결해 가며 사고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지. 어떻게 임신중절 수술을 하다가 뇌사에 빠지게 된 건지…. 한국처럼 의료기술이 발달한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사고가 나고 두 달쯤 지났을 때였나. 3월 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의료수사팀이 신설됐고, 이 수사팀에서 네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조사하기 시작했지. 형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어. 임신 12주였다는 네가 불법 낙태 수술 중에 끔찍한 의료사고를 당했다고 경찰이 설명해 줬지.

 경찰의 설명은 이런 거였어. 서울 OO의원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받던 중에 포도당 수액을 너무 많이 맞았고, 네가 구토 등 이상 증세를 보이니까 의사가 수술을 미루면서 계속 수액만 맞게 했다고 … 그 때문에 혈액 속 나트륨 농도가 떨어져 뇌가 부어 올랐다고…. 그런데도 그 의사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10시간 동안이나 네 몸에 10팩이 넘는 4000~5000ml의 수액을 계속 집어넣었다는 거야. 적정량의 4배가 넘는 수액을 투여하면서 의사는 혈액·소변검사 같은 기본적인 검사도 하지 않았다고 경찰이 설명해 줬어.

 의료수사팀 형사들은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자기들을 믿으라고 했어. 널 이렇게 만든 의사는 수액을 1000ml만 투여했다고 계속 주장했어. 강제 낙태가 아니라 이미 네 배 속에서 사산한 태아를 제거하는 수술을 한 것이라고도 했지. 진료차트에는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고…. 그런데 형사들이 수술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한 네 소변량이 너무나 많았던 사실을 확인하고 그걸 증거로 제시했어. 그 의사는 지금 구속됐고 간호조무사는 불구속 입건된 상태야.

 현재 의사와 병원 사람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대. 그들은 병원으로 찾아간 우리에게도 “당신 딸이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했어. 수술동의서 내용도 ‘임신중절’에서 ‘계류유산(※사산 태아가 자궁에 남아 있는 상태) 수술’로 바꿨고, 병원 폐쇄회로TV(CCTV)도 지우려고 한 것으로 밝혀졌단다. 

 네 휴대전화에 전화번호를 ‘애인’으로 저장해 뒀던 남자친구 얘기도 들려줄게. 네가 낙태 수술을 받을 때 그 친구도 함께 갔다가 사고가 났으니 아마 두렵고 무서웠겠지. 네가 뇌사에 빠지고 이틀 뒤 한강에 뛰어들었다고 들었어. 다행히 구조됐다는구나. 이 아빠는 그 친구가 우릴 찾아와 용서를 빈다면 용서해 줄 수 있단다. 딸아, 오늘 주어진 면회 시간이 다 됐어.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7시, 30분씩밖에 안 되는 면회 시간이 매번 안타깝기만 하구나. 너를 이렇게 만든 한국을 원망하느냐고? 아니야. 병원에서 지내면서 좋은 분도 많이 만났어. 의자를 붙이고 생활하는 우리에게 김치를 가져다준 청소부 아주머니도 있었고…. 비록 몇 명의 한국인이 상처를 줬지만 더 많은 한국인은 우릴 보듬어주고 있단다.

 그러니 우리 딸, 너도 어서 힘을 내서 “아빠” 하고 깨어나길 바란다. 딸아, 이제 오늘의 기도를 올리자꾸나. 늘 그렇듯 아빠가 네 조그맣고 예쁜 귀에 속삭여줄게.

 “하이쯔, 부야오팡치, 이딩야오잔치라이(孩子, 不要放棄 一定要站起來 아가야. 포기하지 마. 일어나야 해.)”


글, 사진=채승기 기자 che@joongang.co.kr



※이 기사는 중국인 우위안신의 부모와 경찰 관계자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아버지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지난달 2일부터 의료사고를 전담해 수사하는 의료사고전담수사팀을 발족했다. 2일 강윤석 경감(맨 오른쪽)과 팀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형사 1~2명으론 의료수사 한계"

수사관 7명·검시조사관 1명 구성

간호석사 투입해 전문성 강화

팀원 3명은 '간호사 남편' 공통점

30%대 그친 기소율 높일지 주목


[ 윤희은 기자 ] 

지난 2월 초 서울 서초동에 있는 성형외과의사협회에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낯선 조직의 경찰관들이 나타났다. 강윤석 경감 등 세 명의 경찰관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의료사고전담수사팀(의료수사팀)이라고 밝혔다. 1월27일 청담동의 한 성형외과병원에서 중국인 여성이 수면마취 상태에서 성형수술을 받던 중 호흡이 정지돼 뇌사 판정을 받은 직후였다.

의료사고는 관할 경찰서 경찰관 한두 명이 조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협회 관계자 입장에서는 당황할 법한 일이었다. 이날 경찰은 수술을 집도한 병원 원장이 성형외과 전문의가 맞는지, 사무장병원이 아닌지 여부를 확인했다. 의료수사팀은 이때부터 임시 운영을 시작해 지난달 2일 정식 발족했다.

가수 신해철 씨 사망사건이 계기

지난해 10월 발생한 가수 신해철 씨의 사망사건이 의료수사팀 출범의 계기가 됐다. 신씨의 사망이 장협착 수술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인지에 국민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기존 경찰 조직으로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송파경찰서는 수술을 집도한 병원 원장과 병원의 의료과실 여부 수사에 최선을 다했지만 전문성 부족에 대한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사건을 담당했던 관계자도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입해 자료를 확보하고 분석했지만 경찰이 할 수 있는 역할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 같은 한계를 절감하고 의료수사팀을 구성했다. 경찰 내에 의료사고 수사에 대한 전문성을 축적해 체계적인 수사를 하기 위해서다. 남대문경찰서 강력계장 출신인 강 경감을 팀장으로 8명이 모였다.


의료수사팀은 기존 경찰 조직으로 해결하기 힘들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의료사고를 전담한다. 팀이 소속된 서울청 광역수사2계의 강상문 계장은 “의료사고 특성상 수사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만큼 일선 경찰서에서 형사 한두 명만으로는 수사가 어렵다”며 “의료사고 중 사망과 뇌사를 포함한 중상해, 사회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에는 가능하면 모두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팀원들, 의료사고 수사 자원

8명의 팀원은 이전에 의료사고를 수사했던 이들로 구성됐다. 특히 간호 석사 출신으로 2006년 경찰에 입문한 이지연 검시조사관은 팀원 중 유일한 여성이다. 이전에도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료차트를 분석하거나 조언을 해주던 이 조사관은 의료수사팀에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현장에 나서게 됐다. 이 조사관은 “현장에 가지 않고 차트 분석만 하다 보니 압수수색이나 수사 진행 과정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어 늘 안타까웠다”며 “전문적인 수사팀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생겨서 기쁘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관들은 일선 경찰서 형사과 소속으로 의료사고를 도맡아 수사한 경력이 있다. 열악한 수사환경과 의사들 사이의 동업자 의식으로 번번이 수사가 벽에 부딪히는 것을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동형 경사는 “의료사고 수사 과정에서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 의사협회 등에 감정 의뢰를 요청할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애매하고 난해한 답변을 받는 경우가 많아 수사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정훈 경위도 “해당 의료사고에 지식과 경험이 있는 다른 병원 의사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할 경우 상당수 의사가 사고가 난 병원 의사를 보호하겠다는 의도로 조사를 꺼리곤 했다”고 했다.

이들은 의료수사팀이 발족한 후 의료수사 과정에서 겪던 어려움이 상당수 해소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 조사관이 옆에서 수시로 조언해주는 데다 보건복지부와 각종 의학회, 의대 교수 등과 연계해 체계적으로 자문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홍순재 경위는 “형사 시절에는 다른 강력 사건과 함께 의료사고를 조사해야 해서 수사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며 “의료수사팀에서는 의료사고 하나만 맡아 꾸준히 수사하다 보니 업무 속도가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재미있는 것은 남성 팀원 7명 중 3명의 아내가 간호사라는 점이다. 강 팀장은 “의도한 것은 아닌데 팀을 갖추고 보니 그랬다”며 “열악한 의료사고 수사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던 아내들의 마음이 이들을 의료수사팀으로 모이게 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의료사고 기소율 31.42%

최근 발족 한 달째를 맞은 의료수사팀은 5건의 의료사고 현장에 출동했으며 이 중 3건을 수사하고 있다. 짧아도 3개월 이상 걸리는 의료사고 수사 기간을 가능한 한 단축하는 것이 목표다. 팀원들끼리의 소통은 물론 외부 전문가 그룹과의 협조가 중요한 이유다.

가장 어려운 점은 “대부분이 일선 형사 출신인 팀원들이 전문성이 필요한 의료사고 수사에서 얼마나 실적을 내겠느냐”는 주변의 회의적인 시선이다. 강 팀장은 “‘정말 경찰의 의료사고 수사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겠나’ ‘따로 팀을 만들었다고 기소율이 얼마나 높아지나’ 등의 부정적인 시선을 접할 때가 자주 있다”며 “이런 시선을 불식하기 위해 중요한 의료사건에 팀의 역량을 집중하고, ‘제2의 신해철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더 효율적이고 빠른 수사를 통해 팀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지역에서 발생한 의료사고 기소율은 2010년 29.10%, 2011년 29.45%, 2012년 29.45%, 2013년 28.07% 등 꾸준히 30% 이하였다. 지난해 처음으로 31.42%(105건 중 33건)를 기록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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