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부검'에 관한 국내 학자의 첫 책 출간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은 1만3천836명이다. 6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하나 여전히 하루에 37.9명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다.

자살을 선택한 사람이 남긴 자료를 분석하고 남겨진 사람과의 면담을 통해 사망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찾아내는 책 '심리부검 : 나는 자살한 것을 후회한다'가 2일 학고재에서 출간됐다.

심리부검은 아직 우리나라에선 익숙지 않은 용어다. 심리부검은 1950년대 미국 수사기관에서 자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주변인에게 자살 동기를 탐문하는 절차로 시작돼 현재는 자살 예방을 위한 국가적 노력의 첫 단계로 선진국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된다.

경찰청 프로파일러 출신으로, 미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심리부검 전문가 자격을 획득한 저자는 이 책에서 40여개의 실제 사례를 토대로 심리부검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사례 중에는 경찰청에서 근무하면서 직접 접한 사건부터 최진실, 장국영, 정다빈 등 유명인 자살 사건이 포함돼 있다.

책은 사례 분석을 통해 자살의 유형화를 시도한다. 자살사건에 공통적인 패턴을 추출해 유형화하지 않으면 구체적인 자살 예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1980년대 일어난 허 일병 의문사 사건이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친구 빈센트 포스터 자살 사건을 통해 신뢰성 있는 자살 사건 조사를 위해 제도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짚어본다.

자살사건을 다룰 때 유서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최신 연구 방법을 응용해 한국사람들이 남기는 유서의 독특한 점을 밝힌다.

책은 마치 미국 과학수사 드라마를 보는 듯이 전개된다. 동시에 자살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저자는 그러나 심리부검이 단순히 자살 과정 추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6년 동안 현장에서 수많은 자살사건을 접하면서 '죽겠다는 의지를 찾느라 애쓰다 보면 그 죽겠다는 의지가 사실은 살고 싶다는 의지, 살려달라는 내면의 호소였음을 알게된다'고 밝혔다.

서종환 지음. 학고재. 320페이지. 1만5천원. 


lucid@yna.co.kr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2009년 11월 제주 화순 해수욕장 해변에서 한 여인이 자동차안에서 숨져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강원도에서 남편과 10대 자식을 둔 가정주부 이 모씨가 수면유도제를 탄 소주를 마신 뒤, 차 안에서 번개불을 피우고 목숨을 끊은 것. ‘그를 처벌해주세요’라는 유언장에는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20대의 시동생이 그녀를 강간한 사건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가슴에 묻어둔 채 10여년을 살아오다 남편과 시부모에게 털어놓았지만 오히려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신세가 됐다. 더 이상 문제삼지 않는다고 애원해 간신히 풀려나온 그녀가 선택한 건 자살이었다.

이 사건은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첫 심리부검이 이뤄진 사건이다.


심리부검/서종한 지음/학고재
죽음으로 이끈 흔적을 신체에서 찾는 사체부검과 달리 사망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을 주변인의 조사와 면담을 통해 찾는게 심리부검이다. 심리부검은 1950년대 미국 수사기관에서 시작돼 현재 자살방지와 유족의 심리 치유 등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 모씨 사례의 심리부검을 맡았던 경찰청 프로파일러 출신의 국내 최초 심리부검 전문가 서종한씨가 쓴 ‘심리부검’(학고재)은 국내외 심리부검 40사례를 통해 심리부검이 왜 필요하고 어떤 효력을 갖는지, 자살의 한국적 유형 등을 사건중심으로 펼쳐나간다. 

우리는 흔히 ‘자살은 한순간’이라는 말로 쉽게 설명하지만 저자가 현장에서 목격한 자살은 고통 그 자체로 표현된다. 살고자 하는 본능을 거슬러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려 할 때 몸은 감당하지 못하고 주저흔들을 남기게 된다.

저자는 자살 사망자는 분명하게 자살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가 실시한 심리 부검에서 자살자 200명 중 89%는 정신질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병원에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남은 이들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

“가족 구성원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난 자살은 사망자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가족들이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악순환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책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한 ‘가짜 유서’ 사례도 실려있다. 당시 고인의 진짜 유서 앞에 덧붙여져 인터넷에 유포된 가짜 유서 사건이다. 이 경우 문체나 분위기가 진짜와 차이가 나 구별이 가능했지만 만일 가짜 유서만 유포된 상황이었다면 그 진위 판정은 매우 복잡했을 것이란 얘기다.

에드윈 슈나이드먼 UCLA교수의 가짜 유서 구별법에 따르면, 진짜 유서는 구체적인 사물, 사람, 장소를 더 많이 언급하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사고과정 혹은 결정과 관련된 단어들의 빈도가 높다. 

책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자살의 한국적 유형화 시도다. 저자는 2009년부터 실시한 심리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자살의 12가지 원인을 찾아내 네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즉 급성스트레스 유형과 만성스트레스 유형, 적극적 자해 자살 시도 유형, 정신과적 문제 유형 등이다.

급성스트레스 유형으로 꼽은 사례는 지난해 발생한 아파트 경비원 분신자살 사건. 평소 활달하고 가족과 주변인과 원만하게 지내왔지만 사건 발생 직전 근무지 이동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무력감, 정서적 불안에 입주민으로부터 인격 모욕을 받은게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이다.

만성스트레스 유형은 송파구 세모녀 자살사건이 해당된다. 만성적인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들의 절망적 상황, 도움을 줄 가족이나 친구의 부재로 벗어날 탈출구를 찾지 못한 경우다.

저자는 이를 토대로 ‘고위험군 분류 프레임워크’를 만들어냈다. 자살과 관련된 직접적 요인과 추가적 위험요인에 따라 위험도를 분류한 것. 가령 최진실 사례의 경우, 필수위험요인1(‘죽고싶다’‘아이들을 부탁한다’)+추가적 위험요인 4개이상(악성 댓글, 불면증, 이혼, 부부폭력, 우울증. 자살자 경험 등)에 따라 고위험군에 속한다.

책에는 지난 수년간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온 자살사례가 망라돼 사회 심리 안전망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심리부검이 남겨진 이들에게 기억과 후회, 애도할 시간을 줌으로써 상처 치유의 역할을 한다든지, 심리부검이 법적 증거로 채택되기 위한 표준화 문제 등도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meelee@heraldcorp.com








서울 마포대교 전망대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고가 발생해 구조대원들이 남성을 구조하고 있다(영등포소방서 제공)./뉴스1
2017년까지 2년에 걸쳐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전문요원 양성 
지난 11년째 OECD 자살률 1위 불명예 잡을 정부 차원의 대책


(서울=뉴스1) 음상준 기자 = 보건당국이 심리부검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에 내년에만 10억원가량을 투입한다. 정부는 이 예산으로 지난 4월 문을 연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심리부검센터를 운영하는 한편 자살유가족에 대한 사례관리 등을 담당할 전문 수행기관을 모집해 지원하는데 쓰인다.

심리부검(Psychological Autopsy)은 전문성을 갖춘 면담자가 자살 사망자의 유가족을 인터뷰하면서 생전 고인의 삶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말한다. 고인이 사망하기전 일정기간에 어떤 심리적 행동 양상을 보였는지, 스트레스와 병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자살 원인을 추정한다. 

21일 복지부에 따르면 심리부검체계 구축 사업은 2016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2년에 걸쳐 진행된다. 내년 예산은 중앙심리부검센터를 운영할 1개 기관을 선정해 9억60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2017년 사업은 전년도 사업 실적을 평가해 지속 여부를 결정하고 예산은 정부 사정에 따라 편성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내년 1월 4일까지 심리부검체계 구축에 참여할 기관을 모집할 예정이다. 심리부검을 수행할 전문기관은 정신보건시설이나 학교, 사회복지법인, 전문인력을 갖춘 비영리법인 등이 대상이다. 선정된 기관은 심리부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전문요원을 양성하는 등 한국형 조사체계를 구축하는 업무를 맡는다. 

정부 차원에서 심리부검을 처음으로 도입한 것은 지난 2013년 1월부터다. 당시 부산시와 부산경찰청이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전국 최초로 심리부검을 시행했다. 

그 결과 부산시는 정신과 치료경험이 있거나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사람, 40대 무직자 등을 대상으로 예방 교육을 강화하면 자살률을 낮추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자살은 경제·사회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데 직업 분포도에서는 무직이 전체 절반가량인 48.4%를 차지했다.

정부가 심리부검에 주목하는 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1년째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개선하려는 고육지책이다. 통계청의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고의적 자해 사망자(자살)는 총 1만3836명으로 전년대비 591명(-4.1%) 감소했다. 하루 37.9명꼴이다. 

또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지난해 27.3명으로 전년 28.5명보다 다소 줄었고, 2008년 26명 이후 6년만에 가장 적었다. 하지만 한국의 자살 사망률은 OECD 평균 12명(2013년 기준)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복지부는 "심리부검을 통해 발견한 자살유가족에 대한 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자살률 감소를 위한) 지속적인 관리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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