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돌아 뽀스피스

○○년 ○월 ○○지방검찰청으로부터 화투 53점과 콘택트렌즈 1점이 사기도박용으로 특수하게 만들어진 것인지 감정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이 접수됨

화투 53점은 광학장비 중 VSC-5000을 이용해 화투 뒷면에 일정한 숫자와 기호가 숨겨져 있는 것이 쉽게 감식되었지만, 문제는 콘택트렌즈에 대한 감정이었다. 화투 자체가 사기도박용 일명 ‘목화투’라는 것이 밝혀졌다 하더라도 콘택트렌즈 감정이 성공하지 못하면 피의자의 자백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 콘택트렌즈 감정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검찰수사의 특성상 콘택트렌즈까지 감정 의뢰된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를 감정할 장비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담당감정관이 위생상의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눈에 착용하여 관찰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과학적으로 현출해 법정에 제출해야 하므로 근본적 방법이 되지 못했다. 결국 일반 감정물 촬영에 사용되는 고화질 디지털 카메라 렌즈에 문제의 콘택트렌즈를 접착한 후 화투 뒷면을 모두 관찰하였으나 아무런 표식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기도박용 특수렌즈가 아니라서 아무런 표식이 발견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감식방식이 잘못되어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런 상태로는 감정의견을 ‘판단불명’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건 정황이나 콘택트렌즈 외관상 사기도박용 특수콘택트렌즈라는 의심을 버릴 수 없어 며칠을 연구하다가 콘택트렌즈의 크기와 반구의 기울기가 고화질 디지털카메라의 렌즈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감정방법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카메라 렌즈의 크기와 콘택트렌즈의 크기가 비슷하다면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우선 감정관이 사용하던 핸드폰 카메라 렌즈 부분에 식염수를 묻힌 콘택트렌즈를 최대한 밀착한 후 카메라 렌즈를 통해 화투 뒷면을 관찰해 보니 정확한 형태를 알아 볼 수는 없었지만 숫자로 추정되는 희미한 형상이 나타났다.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핸드폰 카메라가 전문 카메라에 비해 그 성능이 떨어져 정확한 형상이 현출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어 그 즉시 고성능 소형 디지털카메라를 구입, 같은 방법으로 관찰한 결과 숫자와 특수문자가 분명하게 관찰되어 사진으로 현출할 수 있었고, 본 감정결과를 토대로 주임검사는 피의자를 불구속기소(피의자 자백)하게 되었다.

본 감정의 특징은 사기도박용 특수콘택트렌즈에 대한 감식이 자칫 ‘판단불명’으로 갈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화투 53점에 대한 감정결과만으로는 공소유지가 어려울 수 있었던 사건을 담당감정관의 의지와 실험정신에 의해 확고부동한 과학적 증거물을 얻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