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서울대-생명硏과 심포지엄…국내외 전문가 참여

입법추이·인권이슈·선진감식기술 등 폭넓게 논의

(서울=뉴스1) 오경묵 기자 = 지난 1998년 10월. 구마고속도로에서 여대생 정은희(당시 18세)양이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경찰은 '성폭행 의혹'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정양의 유족이 사고 지점에서 30m 떨어진 곳에서 발견한 속옷에는 정액이 묻어있었다.

15년이 지난 지난해 9월, 대구지검이 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냈다. 정양이 단순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스리랑카인 3명이 정양을 번갈아 성폭행 뒤 달아난 것이다. 성폭행 현장을 빠져나온 정양은 도움을 청하기 위해 고속도로 위로 올라섰다. 깜깜한 밤이어서 방향 감각 없이 헤매던 정양은 23t 덤프트럭에 치어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는 DNA 데이터베이스가 큰 힘이 됐다. 검찰은 스리랑카인 K씨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입건되자 유전자를 대조해 당시 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유족의 고소 등에 따라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3개월여 조사를 통해 K씨를 구속기소하고 스리랑카에 머물고 있는 공범 2명에 대해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대검찰청은 지난 3년동안 DNA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미제사건 1266건의 범인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살인 5건, 성폭력 232건, 절도 850건 등이다. 이 중 432건에 대해 유죄가 확정됐고, 305건에 대해서는 실형이 선고됐다. 정양 사건 외에 누범 기간 중 교통사고를 내고도 구속을 피하기 위해 운전자를 바꿔치기한 사건에 대해서도 에어백에 남아있던 DNA를 바탕으로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검찰과 경찰은 지난 2010년 7월 '디엔에이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DNA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수사기관은 해당법에 따라 6만9404명의 DNA를 보관하고 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사범이 2만683명으로 가장 많고, 강·절도사범 1만3832명, 마약사범 6460명, 성폭력사범 6276명, 강간추행사범 6074명 등이다.

대검찰청은 DNA 데이터베이스 구축 3년을 맞이해 서울대학교,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공동으로 27·28일 'DNA 법과학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지난 3년간의 성과를 점검하고 선진 기법 도입 등 향후 계획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다.

심포지엄에는 DNA법 전문가인 팀 쉘버그 변호사와 브루스 부도울(Bruce Budowle) 미 노스텍사스대 교수 등 해외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부도울 교수는 미국 FBI 법과학연구부장으로 근무하면서 DNA 감식과 범죄자데이터설립에 크게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이승덕 서울대 교수와 신경진 연세대 교수 등 국내 전문가들도 참석했다.

심포지엄 둘째날인 28일에는 선진감식 기술에 대한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논의가 진행됐다. 부도울 교수는 'DNA감식과 사회, 법유전학의 미래'에 대해 발제했다. 김선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RNA를 기반으로 한 체액흔 식별 기술 개발'에 대해, 오범석 경희대 의대 교수는 '인간의 표현형 식별을 위한 연관유전자 분석'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전날에는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DNA데이터베이스의 확장과 공동활용에 대한 이슈를 놓고 전문가들의 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특히 쉘버그 변호사가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의 국제적 현황과 확장'에 대해, 권창국 전주대 교수는 '국내 DNA데이터베이스의 현황과 논점'에 대해 발제했다.

검찰 관계자는 "DNA 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피해자의 인권보호와 사회 안전망 구축에 크게 기여했다"며 "이러한 성과와 이번 심포지엄 내용을 바탕으로 오는 2017년 개최될 국제법유전학회(ISFG) 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고인측, 재판부에 DNA 재감정 요청도


15년 전 사망한 대구 여대생 정은희(당시 19세)양을 성폭행한 혐의로 (특수강도강간) 구속 기소된 스리랑카인이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피고인은 DNA 재감정까지 요구하고 나서 향후 뜨거운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11일 대구지법 제12형사부(최월영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이날 첫 공판에서 피고인 Y(46)씨는 "15년 전 피해자 정양을 만난적도 없고 당연히 성폭행을 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Y씨는 "구마고속도로 근처 성폭행 현장에 가지도 않았으며 검찰이 공범으로 지목한 다른 스리랑카인 2명이 실제 그런 일을 벌였는지도 나로서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Y씨는 또 서울대 법의학 교실을 비롯한 복수의 전문기관을 통해 유전자 재감정을 실시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변호인은 "STR 기법으로 유전자 일치 여부를 검사하려면 최소 16~17개의 시료가 필요한데 검찰이 과연 이런 요건을 충족시켰는지 의문스럽다"며 "무엇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유전자 검사를 했는지 검찰이 관련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공격했다. 

정양의 속옷에서 채취한 DNA와 피고인의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게 검찰이 Y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핵심 증거인 만큼 재판부가 재검사 요청을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재판부는 오는 11월 26일 증인 4명을 법정에 불러 2차 공판을 열기로 했다. 

산업연수생으로 국내에 입국한 Y씨는 지난 1998년 10월 17일 새벽 대구 달서구에서 학교 축제를 마치고 술 취해 귀가하는 정 양을 자전거에 태워 구마고속도로 굴다리 근처로 끌고 가 현금을 빼앗고 공범들과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당시 정양이 성폭행을 당한 충격으로 고속도로 주변을 헤매다 마주 오던 23톤 덤프트럭을 들이받고 숨진 것으로 결론내렸다.

Y씨가 재판에 넘겨지기 전까지 지난 15년 간 정양은 단순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간주됐었다.

huni@cbs.co.kr







대검, 미규명 사건 해결 과학수사 우수사례 10건 선정 

2011년 10월 15일 이른 아침 경기 안양시 한 주택에 불이 났다. 방에서는 상반신에 화상을 입은 집주인 A(54ㆍ여)씨와 전신이 불에 탄 내연남 B(57)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누군가 B씨의 몸에 미리 준비해 둔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 상황이었지만 피해자이자 유일한 목격자인 B씨는 사망했다. A씨는 "다른 여자 문제로 크게 다퉜지만 나는 방 밖에 있었고 B씨가 담뱃불을 붙이겠다고 라이터를 켠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미궁에 빠지는 듯했던 화재 원인은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 과학수사담당관실 화재분석팀과 진술분석팀이 나서면서 조금씩 분명해졌다. 두 팀이 B씨의 시신, A씨의 화상, 현장 불길의 흐름, 진술 내용을 전면 재검토해 "A씨가 불을 붙였다"는 결론을 내놓은 것. ▲A씨의 화상이 오른손에서 목덜미로 이어진 점 ▲불이 문에서 방 안쪽으로 진행됐다는 점 ▲방 안에서 있던 B씨가 불을 붙였다며 방 밖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A씨가 유증기로 인한 화상을 입을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됐다. 검찰 관계자는 "진술분석팀의 추가 조사에서도 A씨의 진술은 번번이 현장 증거와 엇갈렸다"고 말했다. 

A씨는 계속 혐의를 부인했지만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A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이 사건 기소 여부를 검토한 시민위원회 역시 A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사건 발행 22개월 만인 올 8월 말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대검 NDFC는 이처럼 과학수사기법을 활용해 원인 미규명 사건을 해결한 '3분기 과학수사 우수사례' 10건을 선정했다고 24일 밝혔다. ▲피의자가 복면으로 사용한 피해자의 옷 속 DNA를 찾아 성폭행 미수범을 밝혀낸 사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범인의 DNA를 토대로 15년 만에 규명된 스리랑카인의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건 등도 우수수사로 꼽혔다. 

대검 중수부 과학수사운영과에 뿌리를 둔 NDFC는 법의학 및 과학 수사 연구소로 지난해 11월 출범했다. 140여명의 검사 및 전문요원이 검찰의 과학수사(법화학, 문서, 심리, 영상, 음성, 화재 분석), 디지털수사, DNA수사, 사이버범죄 수사 등을 지원한다.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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