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는 갈수록 치밀해지고, 범인은 쉽사리 물증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 은폐되고 지워진 단서를 찾아 범행 현장을 재구성, 범인의 윤곽을 찾아가는 과학수사는 그래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한다.' 김기정 계장을 중심으로 12명으로 구성된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과수계)는 각자 저마다 전문성으로 범행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

2011년 11월의 어느 날. 대구경찰청 과수계 요원들은 대구의 한 빌라에 부부로 추정되는 남녀가 피를 흘린 채 숨져 있다는 급보를 받고 출동했다. 거실에 있는 두 구의 시신. 그들이 흘린 피의 상당 부분은 닦여 있었다. 범인은 범행 흔적으로 지우거나 없애느라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듯했다. 

그러나 요원들의 눈을 가리지는 못했다. 백지 상태에서 요원들의 퍼즐 맞추기가 시작됐다. 현관의 닫힌 전자도어록은 범인이 이곳을 통해 침입, 도주했다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알리고 있었다. 이는 면식범의 소행이라는 단서. 세밀한 수색 끝에 발견된 화장실 문턱과 세면대 출입문 안쪽 바닥의 작은 혈흔엔 물이 섞여 있었다. 범행 과정에서 범인이 부상을 당했고 그 흔적을 없애려 씻은 것이 분명했다. 그의 마지막 손길이 닿은 곳은 어딜까. 요원들은 화장실 수도꼭지를 지목했고 장시간에 걸친 수색으로 지문 하나를 확보했다. 

지문을 분석한 결과, 그 지문의 주인은 윗집에 세들어 사는 남자였다. 용의자가 특정됐고, 그는 며칠 뒤 현금인출기의 CCTV에 모습이 찍히면서 붙잡혔다. 완강히 범행 사실을 부인하던 그는 과수계가 확보한 증거에 더는 고개를 가로젓지 못했다. 오른쪽 손가락에 난 상처, 희석 혈흔에서 발견된 DNA에 결국 자백했다. 집주인의 통장 비밀번호를 알자 돈을 빼앗을 요량으로 치밀하게 계획한 범행이었으나 과수계 요원들의 치밀한 분석은 피해갈 수 없었다.

◆멈추면 끝이다

수많은 범행 현장을 마주하는 과수계 요원들이 저마다 가슴속에 새기는 좌우명은 '멈추면 끝이다'다. 이는 과학수사에서 단서를 찾아내지 못하면 범인을 잡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며, 또한 날로 치밀해지는 범행 수법에 연구와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자며 자신에게 던지는 채찍이다. 이런 노력은 대구청 과수계가 전국 최고의 수사력을 자랑하게 하는 배경이다.

현장에서 범행의 단서를 찾는 일은 쉽지도, 만만한 일도 아니다. 머리카락보다 작고 가는 흔적을 찾자면 몇 시간째 바닥과 천장, 벽면을 훑어야 한다. 허약한 체력과 나태한 정신력으로는 버텨낼 수 없는 일이다. 

김영규 경위는 "과학수사 요원들은 범죄현장의 정리되지 않은 모습을 최초로 보고, 그 속에서 단서를 찾는다. 웬만한 비위로는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오직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데 집중한다"고 했다. 그래서 과수계 요원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스스로 용납지 않는다. 언제 발생할지 모를 사건과 현장감식에 대비해 늘 긴장의 끈을 죈다. 요원 대부분이 퇴근 후에도 술을 마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고의 팀워크

김기정 계장은 2007년 대한민국 과학수사 대상을 받고 올해 경찰의 날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전국적으로 알아주는 20년 차 과학수사통이다. 그는 경북대 의대 법의학 박사 과정을 밟으며 쌓은 지식과 경험으로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단 하나의 핏방울로 범죄현장을 재구성하고 화마가 지나간 메케한 잿더미 속에서 화재 원인을 찾는 혈흔 분석 및 화재 분야 베테랑 김영규 경위, 현장만 봐도 범인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해내는 국내 1호 범죄행동 분석 특채요원 추창우 경사(경북대 심리학 석사), 일본 오사카대 범죄심리학 박사인 박희정 범죄분석관, 합성분말의 폐해와 고가의 외국산 지문 분말을 개선하고자 천연분말을 개발한 연구자이며 현장맨 김성동 경위 등 대구청 과수계 요원의 면모는 전국 최고를 자랑한다. 김기정 계장은 "요원 모두가 과학수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석`박사 과정을 밟는 등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구청 과수계는 숱한 특허와 독특한 아이디어로 제품을 개발, 전국 경찰에 보급하고 있다. 2008년 6월 아시아권 최초로 한국혈흔형태분석학회(KABPA)를 창립했고, 매년 그 학회를 대구에서 열고 있다. 2010년에는 법정에서 사용되는 혈흔의 명칭을 표준한글화위원회를 거쳐 확정. 전파했으며 올해엔 딸기와 산수유 등 천연물질을 이용해 몸에 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기존 시약보다 지문을 뜨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지문 채취용 분말도 개발했다.

이처럼 대구청 과수계가 연구개발해 출원한 특허만도 10여 종이고, 혈흔분석`차량화재 재연실험`걸음걸이기법 등 전국으로 전파한 수사기법 또한 여러 건에 이른다. 


최두성 기자 dschoi@msnet.co.kr






31일 오전 대구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요원들이 CSI버스 내에서 지문감식과 족적채취 등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dgkyj@idaegu.com


대구경찰의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버스 활용 수사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31일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CSI 버스는 ‘증거는 현장에 있다’라는 수사의 기본에 충실하고자 만들어진 이동식 현장증거분석실로 대구에는 2012년 4월4일 서울ㆍ전북경찰청과 동시에 배치됐다.

CSI 버스는 CCTV 영상분석기, 지문ㆍ족적 검색시스템, 원심분리기, 몽타주시스템, 초음파세척기, 거짓말탐지기, 증거물보관용 냉동ㆍ냉장고 등 28종의 장비를 탑재하고 있다. 가격은 7억원이 넘는다. 

CSI 버스는 ‘출동하면 사건ㆍ사고 현장에서 모든 과학수사를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강력사건을 비롯한 각종 사건ㆍ사고 수사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대구경찰의 CSI 버스 출동 횟수는 2012년 65회, 지난해 140여회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

대구지역에서 CSI 버스가 활용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2년 9월 발생한 동부경찰서 유치장 탈주범 최갑복의 도주경로 및 은신처 현장감식 등이다.

또 지난해 5월 발생한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과 9월 남구 대명동 가스폭발 사고, 올해 1월 중구 동성로 의류매장 화재 등 지역 내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ㆍ사고 해결에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특히 대구경찰청 소속 과학수사대 요원은 12명 전원이 법의학 등 분야의 석ㆍ박사들로 PSA(정액반응검사), FOB(혈흔검사키트) 등 10여가지가 넘는 특허를 내고 전국 경찰에 보급해 경찰수사에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지역 청소년에게 친근한 경찰이미지를 심어주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2012년과 2013년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과학축전에서 CSI 버스를 전시하고 체험부스를 설치해 청소년들에게 과학수사의 이해도를 높이고 체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대구지방경찰청 김기정 과학수사계장은 “각종 사건ㆍ사고 발생 시 최대한 신속하게 CSI 버스를 현장에 투입, 활용하려 노력한다”며 “앞으로도 과학수사대는 한마음 한뜻으로 안전한 시민사회 구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 기자 june@idaegu.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