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1] 이번 판결이 내려진 서울고등법원의 모습 [출처 : 연합뉴스]
지난 22일 서울고등법원 행정9부(부장 박형남)는 심리적 부검에 따라 세무공무원 김모씨의 유족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청구인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번 판결은 최초로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여 그것을 재판의 증거로 삼았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과연 이 사건은 어떻게 발생하여 판결이 나온 것이고, ‘심리적 부검’이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사건의 소개 부분은 중앙일보를 참고
2009년 11월 29일 새벽 세무공무원 김모(당시 44세)씨가 아파트 22층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김씨의 바지 주머니에서는 유서 한 장이 발견되었습니다.
유서에는 “○○ 엄마 미안하오! 일은 계속 떨어지는데 직원은 보내주지 않고, 팀장은 욕만 먹고…. 한직에서 고생하는 직원을 우대해줘야 합니다. 내가 죽는 이유는 사무실의 업무과다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란 것을 확실히 밝혀둡니다.”고 써져 있었습니다.
김씨의 부인 심모씨는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금 지급을 신청하였으나, 공무원연금공단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산업재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기각합니다. 이에 심모씨는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합니다.
[그림2]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마크 [출처 : 공무원연금관리공단]
김씨의 불면증 치료 내역, 직장 내부 조사자료, 우울증의 가능성이 있다라는 병원 감정기록 등이 증거로 제출되었습니다. 하지만 2012년 7월 1일 1심 재판부는 심씨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업무과다가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없고, 김씨의 유서 내용은 김씨 스스로 생각하는 자살원인일 뿐 의학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이에 심씨는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였고,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행정9부(부장 박형남)는 항소가 이유 있다고 판단하여 원심을 파기하였습니다. 1심의 증거만으로는 김씨의 사망 원인을 추정하기 어렵고, 김씨가 생전에 우울증 치료를 받지 못 하였다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이에 따라 최초로 법원의 명령에 따른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게 됩니다.
법원행정처는 감정인(鑑定人)으로 민성호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를 추천했습니다. 민 교수는 김씨의 유족 4명과 직장 동료 3명 총 7명을 10시간 동안 면담했습니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① 김씨가 “일은 많은데 직원이 없어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는 말을 수시로 하였다. ② 자살 직전 부하 직원에게 “몸이 힘들어 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 같다”고 전화했다가 심씨에게 “일이 많아 출근해야 할 것 같다”고 하였다. ③ 자살 직전 34인치였던 허리둘레가 31인치로 줄었을 정도로 식욕을 잃었다는 사실.
[그림3] 민성호 연세대학교 원주의대 교수 [출처 :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2심 재판부는 1심을 깨고 “공단 측이 유족보상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22일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김씨가 중증의 우울증으로 정신적 억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에서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고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림4] 심리적 부검 [출처 : criminalpsychologytoday]
심리부검(心理剖檢, psychological autopsy)은 자살에 대해 수집된 포괄적인 후향적 정보를 가지고 자살에 대해 연구하는 방법입니다. 자살자의 가족 구성원, 친척, 친구, 직장 동료, 담당 의료인 등 기타 지인들에 대한 구조화된 면접을 통해서 자살자에 대한 모든 활용 가능한 정보를 수집하고, 추가적으로 모든 활용 가능한 의료기록 및 정신과 치료기록, 검사결과와 기타자료 등을 활용합니다. 따라서 심리부검은 다양한 피조사자와 기록들로부터 정보를 종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심리부검은 사망의 종류를 결정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즉 심리부검을 통해 자살사건이 자연사인지,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타살인지 결정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심리적 부검의 역사
심리부검은 1934년에서 1940년 사이 뉴욕 경찰 93명이 연속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자살 원인 규정을 위한 전문가 조사’가 시행되고, 여기에서부터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한편, 현대적 의미의 심리부검이 시작된 것은 1956년 미국 워싱턴대학의 Eli Robins와 그의 동료들이 1년 동안134건의 자살 사건에 대해 체계적으로 조사하면서부터입니다.
[그림5] Eli Robins 박사 [출처 : beckerarchives.wustl.edu]
1958년 LA 자살예방센터의 사망 원인 불명의 사례에 대한 연구에서, Edwin Shneidman이 처음으로 신체적 부검과 비교되는 의미에서 심리 부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후 캐나다,미국, 서유럽, 북유럽, 호주 등을 중심으로 표준화된 면담방법을 사용하여 자살의 원인을 규명하는 심리적 부검 연구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었습니다.
[그림6] Edwin Shneidman 박사 [출처 : didihirsch.org]
1991년 이스라엘, 95년 대만, 99년 인도, 2002년 중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또한 연구방법도 통제된 연구나 정신질환을 밝힐 수 있는 연구방법보다 구조화된 면담도구를 이용한 연구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심리부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재판의 결과를 바꾸는 결정적인 자료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3. 우리나라의 심리 부검
[그림7] 한국자살예방협회의 로고 [출처 : 한국자살예방협회]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심리적 부검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이루어져 있을까요? 보건복지가족부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는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심리 부검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10년 간 세계 각국의 심리적 부검 조사 사례를, 자살사망자 사례 수집 경로, 대조군 선정 방법, 조사원 자격, 조사 시기, 정보 제공자, 조사 방법 등의 항목에 따라 검토하였습니다. 그 결과 2000년 베이징 자살연구예방센터의 Michael Philips 박사가 개발한 심리적 부검 조사 도구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이를 알기 쉽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심리 부검 조사 수행기관
유가족지원서비스가 가능한 정신보건센터
(2) 자살사망자 발굴 경로
경찰청의 변사사건수사기록, 응급의료기관의 자살사망자 진료기록
(3) 대조군 선정 방법
자살사망자와 성별, 나이 등이 비슷하고, 동일한 시, 군, 구에 거주하는 지역주민
(4) 심리 부검 정보제공자
자살사망자의 가족(부모, 배우자, 형제, 자녀 등), 가까운 친척, 친구 또는 직장동료, 자살사망자가 자살 사건 발생 1년 이내에 정신의학적 문제로 방문한 의료진 등
(5) 심리 부검 조사원의 자격
정신과 전문의, 임상심리사, 정신보건 전문 간호사
(6) 심리 부검 조사 방법
조사원와 정보제공자의 직접 대면 조사를 원칙으로 진행
(7) 심리 부검 조사 항목
사망자의 인적 정보, 사망과 관련된 주요정보, 신체적 부검의 결과, 가족의 과거력, 자살 사망자의 사회적 과거력, 자살 사망자의 신체적 질병력 및 정신질환력, 자살 사망자의 음주 및 약물 남용 과거력, 자살 사망자의 이전 자살 시도력, 자살 사망자의 업무 및 업무에 대한 만족도, 자살 사망자의 재정적 상태, 자살 사망자와 관련된 법적인 문제, 자살 사망자의 사망 당시 특징 및 행동 변화, 자살 사망자의 사망 당시 대인관계, 자살 사망자에 대한 정신의학적 진단
(8) 심리 부검 조사 시기
자살 사건 발생 3개월 이후부터 1년
이번에는 대상 판결에 대한 소개와 심리적 부검의 의미와 역사, 우리나라의 심리 부검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다음 下편에서는 이어서, 심리부검으로 결과가 뒤바뀐 사건 몇 개와, 앞으로 우리나라에 심리적 부검이 정착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편도 기대 많이 해주세요.
- 대검찰청 블로그 기자단 명예필진 정요한, 정혜선 -
http://spogood.blog.me/9018797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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