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으로 인한 질식사인 것 같네요. 차문이 잠겨 있어 유리창을 깨고 문을 열었는데, 여기 여자분이 이렇게 돼 있었고, 계속 바람이 나오더라고요.” 2009년 6월 14일 오후 7시 전남 광양시 중동 버스터미널 주차장. 현장에 먼저 도착한 119구급대원이 경찰에게 발견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피해자 A씨의 나이는 42세. 더위를 피해 잠을 청하려 했는지 운전석 시트를 뒤로 젖힌 채 숨져 누운 그녀는 옷매무새부터 안경, 머리카락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다. 누군가와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방어흔도 없었다. 그저 편안히 잠자는 듯 보였다. 그러나 경찰 감식반의 눈은 날카로웠다. 자다가 사망했다면 팔이 축 처져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양팔이 주먹을 쥔 상태로 굽혀져 있었다. 눈꺼풀 밑에 확인된 일혈점도 의심스러웠다. 결정적으로 턱살이 접히는 부위에 약하게나마 끈자국 비슷한 게 있었다. 오랫동안 턱이 접혀 있어 생긴 것인지 타살의 흔적인지 알아보려면 부검이 필요했다.

가족들이 펄쩍 뛰었다. 사고로 죽었는데 왜 시신에 칼을 대 두번 죽이느냐고 했다. 경찰들은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수도 있다.”고 설득했다.

이 대목에서 잠깐. 가족들이 철석같이 믿은 것은 여름철에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에어컨 또는 선풍기 질식사다. 과연 그 믿음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 법의학자 “애꿎은 선풍기·에어컨 그만 잡으세요”

법의학자들은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잠을 잔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매스컴은 물론 일부 수사기관 종사자들도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놓고 자면 저산소나 저체온증에 의해 사망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일이 많은데 과학적으로는 물론 부검을 통해서도 증명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창문을 열어 놓고 차를 몬다고 해서 숨을 못 쉬는 게 아닌 것처럼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 놓는다고 해서 질식에 이르지도, 사망할 정도로 체온이 내려가지도 않는다.”고 했다.

통상 여름철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시신을 부검하면 사인이 대개 심장질환이나 뇌혈관질환, 지나친 음주로 인한 내인성 급사 등으로 나온다. 저체온증이 사망의 원인이 되려면 체온이 27~28도까지 떨어져야 한다. 정상체온(36.5도)에서 8도가량 떨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치명적인 체온 변화는 한겨울 산속에서 조난당해 장시간 혹한에 노출될 때만 가능하다. 

지난해 대법원도 “에어컨을 켜 놓은 방에서 자다 숨졌더라도 에어컨에 의한 저체온증이 사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세간의 속설에 의학적인 근거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단, 히터를 틀어 놓고 잠을 잤을 때에는 상황이 다르다. 밀폐된 공간에서 난방기구를 틀면서 생기는 이산화탄소가 심각한 중독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와서, 결국 A씨는 부검대에 올랐다. 목밑 피부조직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오른쪽 침샘 부근에 혈흔이 비쳤다. 누군가 조수석에 앉아 앞을 보는 운전자의 목을 조였을 때 조른 끈의 매듭이나 엄지손가락이 위치하는 자리다. 얼굴의 일혈점이나 울혈도 확인됐다. 주요 장기와 약물 등에 대한 검사를 마친 국과수의 최종 결론은 목졸림으로 인한 질식사. 범행도구는 0.7~0.8㎝ 두께의 끈으로 결론 났다. 누군가 A씨를 목 졸라 숨지게 한 뒤 차에서 에어컨을 틀어 질식사로 위장한 것이다.

한편 다른 쪽에서는 A씨 주변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통화 내역을 들여다보던 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사한 지 한달 보름밖에 안 된 A씨와 회사 사장(37) 사이에서 통화 내역이 이상할 정도로 많았다. 특히 A씨 입사 3주째부터 통화가 폭증했다. 경찰은 두 사람이 이때부터 급속도로 가까워져 사장과 직원 관계 이상으로 발전했다고 추정했다.

A씨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는 대부분 지워져 있었다. 이를 복원하자 ‘사랑한다’ 등 문자들이 여러 건 발견됐다. 이 가운데 경찰은 사건 당일 아침 사장을 발신인으로 해서 A씨에게 보내진 문자메시지에 주목했다.

“K병원 앞으로 가 보세요, 애 엄마가 약을 줄 텐데, 그것 먹고 집에 가서 쉬세요.”

K병원은 피해자가 발견된 주차장 부근이고 애 엄마는 사장의 두 번째 부인 B씨(43). 경찰은 사장과 B씨가 공모해 그녀를 살해한 것으로 판단하고 두 사람을 체포했다. 

사장은 A씨를 좋아했던 사실을 순순히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날 아침 A씨에게 문자를 보낸 사람은 절대로 내가 아니다.”고 부인했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문자를 보낸 사람도, A씨를 살해한 사람도 사장 부인 B씨였다.

# 남편 의심한 아내, 휴대전화 문자 수시로 훔쳐봐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평소 남편의 여성 편력을 의심해 온 B씨는 사건 몇 달 전 남편 몰래 인터넷 문자 확인 서비스에 가입했다. 이를 통해 남편의 휴대전화에서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컴퓨터를 통해 몰래 관찰해 왔다.

5월 중순 걱정하던 일이 생겼다. 남편이 새로 입사한 A씨에게 구애를 하는 내용의 문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골프 레슨권이나 중국여행권 등 선물 공세도 이어졌다. B씨는 사건 당일 아침 남편의 휴대전화 번호로 K병원 앞으로 가라는 내용의 허위 문자를 보내고 그 앞에서 A씨를 만났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어요. 관계를 정리하라고 충고만 하고 말려고 했는데 여자가 너무 당당하게 굴더군요.”

둘의 말싸움이 한 시간 정도 이어졌을 때, A씨가 결정적인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당신도 첩인 주제에 무슨 권리로 헤어지라는 거냐.”

B씨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장의 아이까지 낳아 기르며 참고 살아온 세월을 ‘첩’이라는 말로 매도한 게 너무도 괘씸했다. A씨의 목을 졸랐다. 유도로 단련된 B씨에게 A씨는 완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사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사장의 첫째 부인이 식물인간 상태인데, 둘째 부인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 것이었다. B씨의 지인들이 “술 먹을 때 B씨가 한 얘기”라고 했다. 결국 모든 것을 체념한 B씨는 그것도 자기가 한 일이라고 자백했다.

남자의 외도와 여자의 질투. 정상 궤도를 이탈한 두 사람의 그릇된 욕망은 모두를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며 막을 내렸다.


whoami@seoul.co.kr





거세게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와 다급한 남자의 외침이 자정 무렵 다세대주택 골목의 정적을 갈랐다. “누구세요? 이 시간에….” 잠에서 깬 A(51)씨가 놀라서 뛰어나왔다. “불이 났어요. 집에, 불이 났어요. 빨리 119에 신고 좀 해 주세요. 어머니가 안에 있는데….” 칠순 노모와 함께 사는 옆집 큰아들 김씨(53)였다. 그의 집은 이미 강한 불길과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A씨는 119에 신고했고, 김씨는 A씨로부터 휴대전화를 빌려 동생들에게 전화를 돌려댔다. 소방차들이 출동했고 주민들은 자다 말고 뛰쳐나왔다. 동네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들어가 어머니를 구해 보라고 했지만, 두려움 때문인지 김씨는 그 자리에서 어린아이처럼 울부짖기만 했다. 얼마 후 불이 꺼졌다. 작은방에서 까맣게 타 버린 시신이 발견됐다. 김씨의 어머니(72)였다. 자식에게 지극정성이던 노모를 잃은 형제들은 목 놓아 울었다. 김씨는 경찰에서 “동료와 술을 마시고 들어왔는데 현관을 열어 보니 집 안에 불길이 가득했다.”고 넋이 나가 말했다.

지난해 5월 16일 발생한 경기 파주시의 화재 현장은 참혹했다. 10평 남짓한 작은 집이 무엇하나 건질 것 없이 모두 타거나 녹아내려 있었다. 화마의 흔적만큼 시신의 훼손도 심했다. 경찰은 가장 많이 탄 안방에서 불이 시작됐을 것으로 판단했다. 현장감식반은 노인의 사망 원인이 직접적으로 화재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간이 검사를 했다. 시신의 콧속에 빨대를 끼운 후 그 속으로 면봉을 밀어 넣었다. 화재가 났을 당시 사망자가 호흡을 하고 있었는지 아닌지를 가리는 검사다.

하지만 기도 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면봉에는 그을음이 묻어나지 않았다. 화재로 사망한 사람의 기도에 매연이 없다? 그것은 이미 죽거나 죽임을 당한 뒤 화재를 만났다는 얘기다. 감식반원들은 섬뜩해졌다. 결국 시신은 단순 화재 사망으로 처리되지 않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넘어갔다.

보통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은 신체가 심하게 불에 훼손된 채 발견된다. 하지만 모두 화상이 직접적인 원인이 돼 죽는 것은 아니다. 화재 사망의 원인은 대략 세 가지다. 가장 흔한 것이 공기의 불완전 연소로 인해 발생한 일산화탄소 또는 내장재가 타면서 발생한 유독가스(암모니아, 염소 등)를 들이마시는 것이다. 특히 일산화탄소는 치명적이다. 공기 중 일산화탄소의 농도가 30% 이상인 곳에서 30초 동안만 숨을 쉬어도 혈중 일산화탄소량이 치사량을 넘는 75%까지 올라간다. 

두 번째는 불길이 번지면서 산소가 대량으로 한꺼번에 사라지면서 질식사하는 경우다. 선박같이 밀폐된 공간에서 큰 화재가 났을 때 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세 번째가 화염에 휩싸여 곧바로 소사(燒死)하는 것인데 그 비율은 예상 외로 낮다. 하지만 어떻게 죽음에 이르든 살아 있는 상태에서 화재를 만난 사망자의 기도에는 그을음이 남는다. 불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발버둥친 최후의 생활반응(生活反應)이기 때문이다.

감식반의 보고를 받은 경찰은 곧바로 아들 김씨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반드시 30대 초반에 4세 여자아이를 강간하고 살해했던 전과기록 때문만은 아니었다. 진술에 아귀가 맞지 않았다. “동료와 술을 마신 후 버스를 타고 자정쯤 집에 와 보니 불이 나 있었다.”고 했지만 실제 술자리가 끝난 것은 이보다 3시간 앞선 오후 9시였다. 아무리 불길과 연기가 심하다고 해도 어머니를 구해 보려는 시도가 없었다는 점도 의심스러웠다.

불이 났다며 A씨 집에 찾아와 전화를 걸면서 어머니의 사망을 기정사실화한 것도 이상했다. 그는 동생들과 통화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말해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심증일 뿐 물증이 없었다. 수사는 조심스러웠다. 극한의 슬픔에 빠져 있는 피해자 유족을 수사선상에 올리기는 늘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2개월이 갔다. 차츰 사건 당시 김씨의 알리바이가 조작됐다는 증거들이 나타났다. 자정쯤 집에 왔다는 그를 “화재 발생 두 시간 전인 오후 10시쯤 집앞 슈퍼마켓에서 봤다.”는 증언이 나왔다. 목격자는 당시 옷차림부터 운동화, 김씨가 흥얼거린 노래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사망한 노모와 아들이 큰 소리로 싸우는 걸 들었다는 동네 주민의 증언도 있었다.

부검 결과도 정황 증거를 더했다. 사망자의 목과 턱밑에서 작은 출혈이 확인됐다. 폐에서는 울혈과 부종이, 기관지 안에서는 거품이 발견됐다. 흔적은 약했지만 모두 목 졸려 질식사한 시신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이었다. 거짓말 탐지기도 김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응했다.

그 스스로 자승자박한 대목도 있었다. 알리바이에 대한 경찰의 추궁이 이어지자 교통카드 회사에 전화를 했는데 통화 내용이 고스란히 녹음됐다.

“듣자 하니 버스를 타고 내린 시간이 기록으로 남는다는데 진짜인가요.”

“맞습니다. 고객님.” 통화 내용에는 그의 한숨 소리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낳아 주고 길러 준 어머니를 살해하고 범행을 감추기 위해 시신과 집에 불까지 지른 패륜범. 범행 이유가 수사관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들었다. 잦은 음주에 어머니가 심하게 훈계하는 것이 못마땅해서 그랬다는 것이었다.


whoam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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