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선 의사증명 없인 사망처리 안 해줘

獨, 전담 공무원 배치… 서류 꼼꼼히 분석

해외에선 인우보증을 허용한 사망신고 제도를 찾기 어렵다. 사망진단서나 시체검안서를 첨부할 수 없는 상황에 대응하는 사망신고 방법을 마련해둔 국가는 있지만 인우보증과는 거리가 멀다.

김민지 법학박사(법무부 전문위원)의 논문 ‘출생 및 사망신고에서의 인우보증제도의 개선방안’(2014년 5월)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부득이한 사유로 진단서나 검안서를 첨부할 수 없으면 사망 사실을 증명할 만한 서면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다. 증명서류는 시·정·촌(일본 행정구역)의 장이 관할 법무국의 지시를 받아 처리하도록 해 신고가 사실인지 확인하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독일에는 개인신분에 대한 법률 처리를 전담하는 ‘신분공무원’이 있다. 신분공무원은 사망신고의무자가 사망신고를 했을 때 증빙서류가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처리를 보류할 수 있다. 또 의무자에게 추가 서류 제출을 요구할 수도 있다. 사실과 다른 신고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영국에서는 진단서나 검안서를 첨부하지 못하는 경우의 사망신고 방법은 따로 정해놓은 것이 없다. 사람이 사망하면 5일 이내에 관공서(등록사무소)에 신고해야 하는 영국은 늦게 신고하게 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법에 명시해 놓았다. 신고 기간이 만료되면 등록사무관은 사망 사실을 알게 된 지 7일 또는 사망일로부터 12개월이 지나기 전에 사망신고의무자에게 등록사무관이 정한 곳으로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 또 의무자에게 사망신고에 필요한 정보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또 병원에서 사망한 경우 병원 관리자를 사망신고의무자로 지정해 사망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미국의 사망신고는 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연방정부에서 만든 동태인구통계에 대한 법규(동태인구법)를 기초로 하고 있다. 미국도 의료증명서(진단서, 검안서와 같은 것)를 첨부한 신고 외에는 신고 방법을 정해놓지 않고 있다. 

동태인구법에 따르면 사망날짜 또는 시체가 발견된 날짜에서 1년 이상 지난 후 사망신고를 하는 경우 의료증명인이나 장례 담당자는 의료증명서 등이 그들의 기록을 근거로 만들었다는 서류를 첨부해야 한다. 의료증명서를 이용하기 어렵거나 관공서에서 증명서 접수를 거절하면 사망신고는 법원의 명령이 있어야 할 수 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인우보증(隣友保證) 사망신고.'

살인 숨기기 쉬운 나라를 만드는 대한민국 검시체계의 맹점이다. '아무개가 이렇게 죽었다'라고 증언할 이가 두 명만 있으면 의사, 경찰의 개입 없이 누구라도 공식적으로 사망자가 될 수 있다. 마을 동·리·통장은 1인으로 보증이 완성된다. 사망신고 대상자가 진짜 죽었는지, 진짜 죽었다면 증인이 증언한 사망원인이 사실과 맞는지, 시신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따지지 않는다. 당연히 살인사건을 병사로 위장하거나 스스로 사망자가 돼 잠적하는 등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무의촌이 적지 않던 시절에나 필요했을 제도가 무관심속에 여태 남아 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진단서나 검안서를 얻을 수 없는 때에는 사망의 사실을 증명할 만한 서면으로써 이에 갈음할 수 있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가족관계법) 제84조 3항에 근거한 인우보증은 의사가 적던 일제시대에 만들어졌다. 죽은 사람을 일일이 살펴보고 사망을 확인할 의사가 부족하니 망자와 가까운 사람의 증언으로 사망증명을 대신하자는 취지다. 요즘은 산간 오지에도 의사 손길이 닿는데 인우보증은 남아 있다. 필요한 경우를 꼭 찾으라면 해외 등반 중 추락사 등으로 시신을 찾을 수 없을 때 정도라고 한다. 인우보증 사망신고는 계속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인우보증으로 사망신고 처리된 사망자는 4655명이다. 전체 사망자의 1.7%를 차지한다.

인우보증은 그 특성상 범죄에 악용될 수밖에 없다. 두세 명이 공모하면 사람을 죽인 뒤 병사한 것으로 처리해 살인을 덮을 수 있다. 멀쩡한 사람을 사망한 것으로 위장할 수도 있다.

'인우보증의 폐해' 하면 단골로 언급되는 사건이 충남 보령에서 일어난 '청산가리 살인사건'이다. 2009년 4월 보령의 한 마을에서 70대 여인 A씨가 갑자기 사망하자 남편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마을 이장에게 부탁해 인우보증으로 사망신고하려 했다.

다음날 마을주민이 2명이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되자 경찰이 나섰고, 부검해봤더니 3명 모두 청산가리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은 A씨의 남편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인우보증이 살인사건을 덮을 뻔했다.

전북의 한 도시에 사는 B씨는 군입대를 피하려고 인우보증을 이용했다. 2008년 12월 병무청으로부터 입영통지를 받은 B씨는 어머니, 여동생, 친구를 내세워 자신의 인우보증 사망신고를 했다. 증인은 여동생과 친구가 서고 어머니는 사망신고를 맡았다.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구청에 신고된 B씨는 이듬해 1월 병무청에서 사망처리돼 군대에 가지 않게 됐다. 몇 년간 주민등록증 없는 '유령'으로 살던 B씨는 양심에 가책을 느껴 자수했고, 2012년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인우증명제의 터무니없는 허술함은 사망증명서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데에도 있다. 동사무소 등에선 내용 진위를 전혀 따져보지 않는다.



검시 없이 주변 증언만으로 사망신고가 가능한 인우보증제는 악용 가능성이 커서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허술한 검시체계의 악용 가능성을 묘사한 윤태호 작가의 인기 웹툰 이끼의 한 장면. 누룩미디어 제공


◆개정법안 1년 넘게 국회에

인우보증은 출생신고도 가능하다. 중국인 불법체류자가 인우보증 출생신고를 통해 국적을 취득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사망·출생신고 인우보증을 없애려는 시도는 적지 않았다. 이전에 여러 차례 관련 법 개정안이 상정됐으나 정치권 무관심속에 폐기됐다.

이번 국회도 마찬가지 흐름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강창일 의원은 지난해 8월 각각 개정안을 발의했다. 내용은 인우보증을 인정하고 있는 가족관계법 제84조 3항 삭제다. 개정안은 같은 해 1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차례 회의를 하고 추가 논의를 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법사위에 계류하다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

검시체계에 속한 모든 전문가들은 인우보증제를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인우보증이야말로 국민의 억울한 죽음을 만들 수 있는 검시제도의 허점, 맹점"이라고 말했다.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옛날에는 동네에 의사가 없어서 그랬다지만 지금은 의사가 없는 동네가 별로 없다"며 "인우보증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 왜 안 없애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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