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전북 한 중학교 3학년 이모군(17)의 아버지(43)는 전북경찰청을 찾은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집에서 아버지 이씨의 체벌에 시달리며 성격이 위축된 이군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으면 이성을 잃고 의자를 던지거나 화분을 부쉈다. 이씨 부부는 1000만원 넘는 돈을 들여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게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군은 “자살하고 싶다” “학교에 더는 못 가겠다”고 했다.
전북경찰청 수사과 과학수사계 박주호 경사(40)에게 이군의 상담이 맡겨졌다. 박 경사는 최면수사 전문수사관이다. 박 경사가 원래 맡은 일은 연쇄범죄자의 행동을 분석해 다음 범행을 막고 피해자와 목격자에게 최면을 걸어 범인의 인상착의를 비롯한 수사 단서를 찾아내는 것이지만, ‘최면’과 ‘상담’을 접목하면 잠재된 상처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경찰에서 유일한 ‘최면 상담’을 시작했다.
사람을 ‘잡는 데’ 사용하던 최면을 사람을 ‘살리는 데’ 활용한 결과는 상당히 좋았다.
부모와 함께 치료를 시작한 이군은 최면 상태에서 그간 학교에서 당한 폭력과 부모의 무관심으로 인한 상처를 드러냈다. 이씨는 그때까지 아들의 상처가 그렇게 큰 줄 몰랐다.
이군의 가족은 그간 함께해보지 못했던 산행, 영화 관람, 식사, 사진찍기를 통해 서로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군은 2년이 지난 현재 원만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2012년 4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박 경사로부터 최면 상담을 받은 학교·성·가정폭력 피해자와 가해자는 모두 81명. 올해에도 이달 23일까지 12명이 다녀갔다.
평일상담을 받기 어려운 피해자들을 위해 주말까지 출근해야 하지만 그는 “상담을 받은 피해자에게 ‘생명의 은인’이라는 얘기를 들은 뒤부터 이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며 웃었다. “경찰 원스톱지원센터에서 일반적인 상담이 이뤄지긴 하지만 상처가 큰 피해자들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는 상처를 드러내길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의식 상태에서 자신의 상처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면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극복하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박 경사는 “최면 상담의 효과가 큰 만큼 다른 지역으로 확대됐으면 한다”며 한 피해자가 보내온 문자를 보여줬다. “오늘 상담 치료 정말 감사합니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기쁨과 행복을 찾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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