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시신이 병원에 와야 검안 시작
ㆍ최초 현장 조사하면 다를 수도
ㆍ“부검뿐인 ‘반쪽 제도’ 보완을”
2010년 4월 인천의 한 모텔에서 발생한 일명 ‘산낙지 살인사건’은 지난 9월 대법원이 용의자였던 숨진 여성(당시 21세)의 남자친구 김모씨(32)에게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하면서 영구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게 됐다. 검찰은 보험금을 노린 김씨의 계획적인 살인으로 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근무하며 이 사건을 맡았던 전석훈씨(44)는 “사망 당시 최초 현장에서 법의학 전문가가 검안·부검을 했다면 판단이 달랐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검안은 시각적으로 사망·사고 원인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부검은 해부를 통해 사인을 밝히는 일이다. 이 사건의 사망 여성은 애초 경찰이 단순 질식사로 처리해 유족들이 화장을 했고 뒤늦게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한국의 법의학자들은 검안이나 부검에 대한 독자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법의학자들은 변사자가 병원으로 옮겨진 뒤에야 볼 수 있고 경찰도 사망 사고 등 현장에서 이들을 거의 찾지 않는다. 민간 법의학 의원이 있지만, 부산·울산·대구와 서울 용산·동대문 등 전국에 5곳뿐이다.
13년간 국과수에서 일하며 3000여차례 부검을 해온 전씨는 “법의학은 현장 검안과 부검의 두 축으로 이뤄진다고 배웠지만, ‘반쪽짜리 법의학’밖에 할 수 없는 우리 현실에 자괴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씨는 함께 근무했던 김형중씨(43)와 올해 국과수를 나와 지난 9월 서울 동대문구에 ‘한국법의학 서울의원’을 차렸다. 전씨 등은 경찰 요청 시 언제든 변사 현장에 출동할 수 있도록 365일 밤낮으로 대기한다.
전씨는 “시신에서 비전문가가 놓치기 쉬운 흔적은 많다. 법의학자가 현장에 나가지 않아서 얼마나 많은 억울한 죽음이 묻히고 있는지 알 수조차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울산에서 계모 폭행으로 8세 여아가 숨졌을 당시, 지역 민간 법의학 전문가가 변사 현장에 검안을 나갔다. 계모는 “아이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 했지만, 법의학 의사의 검안과 부검 결과 오랜 시간에 걸친 학대 사실이 밝혀졌다. 타살이 아니더라도 보험 판정 등 문제 때문에 유족들이 질병·상해·산업재해 여부 등 정확한 사인을 알아야 할 경우도 많다.
김씨는 “유족도 현장 검안의 중요성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소송 등 더 복잡한 방식으로 갈등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일본 등지에서는 검시법·법의관법이 마련돼 있으며 변사 현장에 무조건 법의학 전문가가 동행해 검안토록 하고 있다.
pee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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