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을 경악케 한 ‘유병언 청해진해운회장 변사체’ 사건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한 직원이 “혹시나”하는 심정으로 변사체 DNA를 당국이 순천 별장 등에서 확보한 유 회장 DNA와 비교하지 않았다면 ‘장기미제’로 남을 뻔했다. 국과수 측 샘플에선 유 회장과 맞는 DNA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유 회장은 DNA 검사, 부검을 통해 신원이 확인됐지만, 부검절차 없이 묻히는 변사체가 적지 않다. 범죄 수사 현장의 부검 기피 풍토에 특유의 유교·장례문화가 겹쳐 부검 실시율이 낮은 탓이다. 고참 법의학자는 “대한민국은 살인하고 안 잡히기 괜찮은 나라”라고 말한다. 

◆변사자 증가 추세인데 부검률은 10%대

15일 경찰, 해양경찰이 취재팀에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변사 사건은 2008년 2만4194건, 2009년 2만6585건, 2010년 3만1649건, 2011년 3만2998건, 2012년 3만2854건으로 증가 추세다. 그러나 해마다 2만∼3만명에 달하는 변사자 중에서 수사 당국이 범죄 여부를 의심해 부검을 실시한 건 2008년 4294건, 2009년 4955건, 2009년 3917건, 2011년 4214건, 2012년 5511건이다.

변사자는 증가 추세인데 변사 원인을 밝히는 부검 건수가 들쑥날쑥한 건 부검 대상을 외국과 달리 법으로 정해놓지 않아 수사 실무진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실시된 결과로 해석된다. 법의학계 관계자는 “검시 관련 사회적 이슈가 있으면 부검이 인위적으로 늘어난다”며 “반대로 시절이 조용하면 부검해야 할 사건인데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변사체 발견 현장에도 일종의 ‘베르테르 효과’가 있어 유 회장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덩달아 부검 의뢰가 부쩍 늘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25만명 정도가 사망하는데 전체 사망자 대비 부검률은 2% 남짓이고 변사자 대비 부검률은 15% 안팎이다. 이는 해외에 비해 낮은 수치다.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미·일 등은 보통 사망자의 15%를 검시(검안+부검) 대상으로 보는데 우리나라는 이를 10%로 삼는 데다 미·일은 검시 대상 3분의 1을 부검하지만 우리나라는 5분의 1을 부검한다”며 “억울한 죽음이 꽤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발 안 맞는 국내 검시체제

낮은 부검률에는 수사당국의 병폐가 숨어 있다. 외상 등 명백한 범죄 징후가 안 보이는 경우 일선 경찰이 “부검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내려는 시체검안자에게 “일 만들지 말라”고 눈치 주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유족이 부검을 원치 않는다”, “타살 혐의점이 없다”, “경찰이 보기에 의심이 가지 않는다”며 부검 여부를 결정하는 검사에게 수사지휘보고서를 올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형사소송법은 “변사체는 검사가 검시하여야 한다”고 정했다. 하지만 검사가 직접 검시하는 경우는 2004년 13.2%에서 2013년 4.1%로 대폭 줄었다.

전문 지식을 갖춘 법의학자는 현장에 나가지 못하고 권한도 없으며, 일부 수사진은 부검 의뢰를 기피하고, 검사는 책상 앞에서 불충분한 정보만으로 사건을 지휘하는 것이 국내 검시 체제의 맹점인 것이다. 지휘-검사, 집행-경찰, 실무-의사(법의학자), 부검 결정-판사 등 4개 직종으로 분산된 업무 시스템도 ‘부실 검시’의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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