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이상 오류 88%로 가장 많아

“의사들 무관심이 더 근본 문제”
전남대 의대 법의학교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책임저자 민병우)은 2009∼11년 국과수에서 실시한 부검 252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사망진단서·검안서에 적힌 사망 원인과 부검 후 사인이 다르거나 ‘심(폐)정지’ 등 사인이 잘못 기재된 사례가 76.2%에 달했다. 특히 검안서 사인과 부검 후 사인이 일치하는 비율은 17.3%에 불과했다.

의료진이 직접 치료한 환자에 대해 쓰는 사망진단서 부실 문제의 경우 전북대 보건대학원(연구자 최정숙)이 2009년 전북 A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교부된 사망진단서 267건을 분석한 결과 오류가 발견된 진단서가 72.7%나 됐다. 연령별로는 80세 이상 사망자 진단서 오류가 88.4%로 가장 많았다. 노인의 사인은 노환, 노쇠 등으로 치부해 쓰는 경향 때문이다.


잘못된 시체검안서의 예. 한 대학병원 응급실 의사가 작성한 검안서에 목에 끈으로 졸린 자국이 선명한 노인의 직접 사인은 ‘노쇠’, 사망의 종류는 ‘병사’로 기재돼 있다. 자칫 자연사로 묻힐 뻔했지만 뒤늦게 아들에 의한 패륜사건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관계자는 “의사가 자살·타살 등 사망 종류까지 알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병사인지 외인사인지는 구분해야 하는데 그조차 모르고 쓰는 경우가 많다”며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변사는 신고할 의무가 있는데도 제대로 안 지키고 있고 그 허점을 노린 범죄가 그냥 묻히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오류투성이 검안서와 진단서는 행정력 낭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 경찰 검시관은 “의사가 좀 더 책임 있게 검안서를 쓴다면 경찰이 관여하는 변사가 적어지고 대신 그 시간에 치안에 더 신경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엉터리 검안서가 많다 보니 국과수 부검의도 “검안서를 아예 안 보고 부검한다”고 말하는 실정이다. 국과수 한 법의관은 “부검해보면 타살인데 검안서 사인은 병사, 심근경색 등 엉뚱하게 써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검안서를) 안 믿는다”며 “몇 개나 틀렸나 (사례를) 찾아보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늘 사인이 틀리고 형식도 안 맞는다”고 말했다.


한국법의학 부울의원 이상용 원장이 작성한 시체검안서. 사고발생 일시부터 사망 일시, 사망의 종류, 사고 종류, 사망의 원인뿐 아니라 발견 당시 사망자 상태와 병력 등이 자세히 기재된 검안의 주요소견, 종합의견까지 기재돼 있다. 
한국법의학 서울의원 제공


의사들은 제한된 정보만으로 사망 원인을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항변한다. 대한의사협회 심현영 대변인은 “의사는 환자의 병력, 검사기록 등을 참조해 명확한 근거를 갖고 사인을 써야 하는데 직접 진료하지도 않고, 이미 사망한 상태로 실려온 환자에 대해 아는 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심박정지’등을 사인으로 쓰는 것은 (시체의) 마지막 현상을 보고 그것의 직접원인을 쓰라고 배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사는 사인에 대한 의학적 소견만 주지, 원인이나 인과관계까지 판단할 의무도, 필요도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일반의사에게 정확한 사인을 쓰거나 수사에 필요한 정보까지 제공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의학교육과정에서 죽음의 증명문서에 대한 교육의 부재와 의사들의 무관심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별기획취재팀







'인우보증(隣友保證) 사망신고.'

살인 숨기기 쉬운 나라를 만드는 대한민국 검시체계의 맹점이다. '아무개가 이렇게 죽었다'라고 증언할 이가 두 명만 있으면 의사, 경찰의 개입 없이 누구라도 공식적으로 사망자가 될 수 있다. 마을 동·리·통장은 1인으로 보증이 완성된다. 사망신고 대상자가 진짜 죽었는지, 진짜 죽었다면 증인이 증언한 사망원인이 사실과 맞는지, 시신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따지지 않는다. 당연히 살인사건을 병사로 위장하거나 스스로 사망자가 돼 잠적하는 등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 무의촌이 적지 않던 시절에나 필요했을 제도가 무관심속에 여태 남아 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진단서나 검안서를 얻을 수 없는 때에는 사망의 사실을 증명할 만한 서면으로써 이에 갈음할 수 있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가족관계법) 제84조 3항에 근거한 인우보증은 의사가 적던 일제시대에 만들어졌다. 죽은 사람을 일일이 살펴보고 사망을 확인할 의사가 부족하니 망자와 가까운 사람의 증언으로 사망증명을 대신하자는 취지다. 요즘은 산간 오지에도 의사 손길이 닿는데 인우보증은 남아 있다. 필요한 경우를 꼭 찾으라면 해외 등반 중 추락사 등으로 시신을 찾을 수 없을 때 정도라고 한다. 인우보증 사망신고는 계속 줄어들고는 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인우보증으로 사망신고 처리된 사망자는 4655명이다. 전체 사망자의 1.7%를 차지한다.

인우보증은 그 특성상 범죄에 악용될 수밖에 없다. 두세 명이 공모하면 사람을 죽인 뒤 병사한 것으로 처리해 살인을 덮을 수 있다. 멀쩡한 사람을 사망한 것으로 위장할 수도 있다.

'인우보증의 폐해' 하면 단골로 언급되는 사건이 충남 보령에서 일어난 '청산가리 살인사건'이다. 2009년 4월 보령의 한 마을에서 70대 여인 A씨가 갑자기 사망하자 남편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마을 이장에게 부탁해 인우보증으로 사망신고하려 했다.

다음날 마을주민이 2명이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되자 경찰이 나섰고, 부검해봤더니 3명 모두 청산가리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드러났다. 범인은 A씨의 남편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인우보증이 살인사건을 덮을 뻔했다.

전북의 한 도시에 사는 B씨는 군입대를 피하려고 인우보증을 이용했다. 2008년 12월 병무청으로부터 입영통지를 받은 B씨는 어머니, 여동생, 친구를 내세워 자신의 인우보증 사망신고를 했다. 증인은 여동생과 친구가 서고 어머니는 사망신고를 맡았다.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구청에 신고된 B씨는 이듬해 1월 병무청에서 사망처리돼 군대에 가지 않게 됐다. 몇 년간 주민등록증 없는 '유령'으로 살던 B씨는 양심에 가책을 느껴 자수했고, 2012년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인우증명제의 터무니없는 허술함은 사망증명서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데에도 있다. 동사무소 등에선 내용 진위를 전혀 따져보지 않는다.



검시 없이 주변 증언만으로 사망신고가 가능한 인우보증제는 악용 가능성이 커서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허술한 검시체계의 악용 가능성을 묘사한 윤태호 작가의 인기 웹툰 이끼의 한 장면. 누룩미디어 제공


◆개정법안 1년 넘게 국회에

인우보증은 출생신고도 가능하다. 중국인 불법체류자가 인우보증 출생신고를 통해 국적을 취득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사망·출생신고 인우보증을 없애려는 시도는 적지 않았다. 이전에 여러 차례 관련 법 개정안이 상정됐으나 정치권 무관심속에 폐기됐다.

이번 국회도 마찬가지 흐름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강창일 의원은 지난해 8월 각각 개정안을 발의했다. 내용은 인우보증을 인정하고 있는 가족관계법 제84조 3항 삭제다. 개정안은 같은 해 1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차례 회의를 하고 추가 논의를 하기로 했지만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법사위에 계류하다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

검시체계에 속한 모든 전문가들은 인우보증제를 하루빨리 폐지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인우보증이야말로 국민의 억울한 죽음을 만들 수 있는 검시제도의 허점, 맹점"이라고 말했다.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옛날에는 동네에 의사가 없어서 그랬다지만 지금은 의사가 없는 동네가 별로 없다"며 "인우보증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 왜 안 없애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specials@segye.com






서울 대림동에서 지난 3월 발생한 살인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 검시관들이 시신의 손가락에서 손톱을 채취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변사사건 年 3만5000여건에 법의관은 40여명 불과

非전문 의사들까지 현장 출동

사망 여부만 판단하고 미세한 증거 놓치는 경우 많아

허위로 검안서 작성하기도


#1. 지난 2월 중순 대구 효목동의 한 주택에서 이모씨(54·여)가 숨진 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20여년 동안 법의관으로 근무한 권일훈 권법의학연구소장이 경찰 요청으로 현장 검안에 투입됐다. 사망 원인이 불분명한 단순 변사로 처리될 뻔한 이 사건 수사는 권 소장이 현장에서 이씨 뒷목을 덮은 머리카락을 면도한 뒤 누군가에 의해 끈으로 목이 졸린 자국, 그로 인해 피부 일부분이 벗겨진 자국을 발견하면서 타살로 급선회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멀티탭에서 나온 혈흔, 이씨의 시신 부검 결과 등을 종합한 경찰은 타살로 결론짓고 수사망을 좁힌 끝에 이씨의 여동생(52)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2. 한 달여 뒤인 3월20일 대구 삼덕동 경북대병원에서 정지향 양(3)이 숨졌다. 의사 박모씨(32)는 “목욕탕에서 넘어져 다쳤다”는 친모 피모씨(25)의 말만 믿고 사망 원인을 ‘급성외인성 뇌출혈’, 사망 종류를 ‘외인사(외부 요인으로 인한 사망)’로 기재한 사망진단서를 발급했다. 사망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지만 생략했다. 검안의 양모씨(65)는 딸을 방치·학대해 숨지게 한 것을 숨기려 한 피씨의 사주를 받고 시신도 살펴보지 않은 채 사망원인을 ‘뇌출혈’, 사망 종류를 ‘병사(질병으로 인한 사망)’로 기재한 허위 검안서를 작성한 뒤 검안비로 25만원을 챙겼다. 박씨와 양씨, 경북대병원 의료법인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각각 지난달 17일 불구속 입건됐지만 지향이의 시신은 이미 한 줌 재로 변한 뒤였다. 

법의학 지식을 갖춘 검안의가 변사 사건 현장에 투입돼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지향이 사건’처럼 형식적으로 이뤄진다. 시신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사망의 원인·종류 등을 파악해 범죄 현장을 재구성해야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지만 겉치레 검안은 초기 수사 때부터 혼선을 줘 수사를 어렵게 만든다. ‘시신이 몸으로 쓴 유서’를 읽어 내는 검안을 법의학적 지식이 없는 동네 의사 등 민간에 맡기면서 벌어진 부작용이라는 분석이다. 

○법의관 40여명에 변사사건 3만5000여건

양씨처럼 일반 개업의를 강력사건 현장에 검안의로 투입하는 이유는 국내 법의관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연평균 3만5000여건의 변사 사건이 발생하지만 법의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23명을 비롯해 서울·연세·고려·경북·조선·전북·전남대 등 법의학 전공 교수들, 국과수 법의관 출신 개업의 등 40여명에 불과하다. 

국과수 법의관들은 연간 5000여건(1인당 연평균 220여건)의 부검 업무를 소화하느라 현장 검안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국과수 법의관 출신 개업의들도 권일훈·김광훈·이상용·조갑래·한길로 박사 등 5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서울, 대구·경북권, 부산·경남권 등 권역별로 소수만 활동하고 있을 뿐이어서 극히 제한된 일부 사건만 검안할 수 있다. 2005년부터 전국 지방경찰청에서 특별채용한 경찰 검시관들도 검안을 할 수 있지만 이들에게는 초동수사를 마친 뒤 검사에게 제출해야 할 시체검안서 및 사망진단서 작성 권한이 없다. 

의료법 17조에 따르면 치과·한의사를 포함한 의사만 시체검안서나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네에서 감기 진료를 하던 내과 의사가 검안의 부족에 허덕이는 경찰의 요청을 받고 사건 현장에 출동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 소재 일선 경찰서 과학수사팀에서 근무하는 김모 경사(40)는 “시신의 손톱 밑에 낀 살점이나 혈흔을 확보하려면 현장에서 손톱을 깎아 보관해야 하는데 동네 의사들은 사망 여부만 판단한 뒤 대충 넘어간다”고 토로했다.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혈흔의 방향이 바뀌고 섬유조직 등 미세증거가 사라지기 일쑤다. 김 경사는 “예전에는 시체 운구 차량을 타고 동네 의사들이 현장에 먼저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들은 현장 보존보다 시신의 사망 여부에만 관심을 갖는다”며 “시신의 동공을 열어보겠다며 시신에게 다가가 현장을 훼손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했다”고 귀띔했다. 

○“국가가 검안제 관리·감독해야”

경찰은 현장 검안에 전문가를 제대로 투입하려면 현재 인력의 4배 이상인 160여명 이상의 법의관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시신 1구에 평균 검안 시간을 9시간으로 잡으면 검안의 1명이 하루에 살펴볼 수 있는 시신은 많아야 2구 정도라는 점이 근거다. 

하지만 법의관은 의대생들이 기피하는 직종이라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과수도 1955년 설립 이후 57년 만인 지난해 처음으로 법의관 정원 23명을 채웠을 정도로 이 분야는 ‘3D’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시체검안서 및 사망진단서를 경찰검시관이 작성한 변사사건 조사결과 보고서로 대체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법의관 및 경찰검시관을 충원할 수 없다면 최소한 검찰로 넘겨야 할 시신 관련 서류를 검시관이 작성한 서류로 갈음할 수 있도록 숨통을 터달라는 얘기다. 

변사사건 전문성을 강화하려고 선발한 경찰검시관은 현재 △서울·경기 각 10명 △부산 6명 △대구·인천·전남·경북·경남 각 4명 △광주·대전·울산·강원·충북·전북 각 3명 △충남·제주 각 2명 등 전국 지방경찰청에 소속돼 있다.

유제설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 교수는 “동네 의사들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 간호사, 임상병리사 출신인 경찰 검시관들로 검안의를 100% 대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종합병원 의사라도 해부학적 지식을 갖추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부검을 할 수 없듯 경찰검시관이든 동네 의사든 검안의도 법의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 시체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등에 흩어진 관련 규정을 아우를 수 있도록 독립적인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다. 유시민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2005년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 산하에 검시위원회를 두고 검시관의 자격을 의사에서 △법의학 교육과정 수료자 △병리전문 자격증 취득자 △법의·병리학 전공 교수·부교수·조교수까지 확대하는 내용이었지만 폐기됐다. 

최용석 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억울한 죽음이 없으려면 사실상 민간에 맡겨진 ‘엉터리 검안’을 국가가 철저하게 관리·감독해야 한다”며 “부검도 중요하지만 경찰 입장에서는 고인의 죽음 직전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최고의 단서를 찾아낼 수 있는 검안이 더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

■ 검안(檢案)

변사 사건이 발생하면 사건 현장에서 시신의 외부를 검사해 사망의 원인·종류 등을 알아내는 검시(檢視)의 일종. 시신을 병원으로 옮겨 개복하고 내부를 검사하는 것은 부검(剖檢)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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