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현장 베테랑 법의관 부검 여부 판단하고 결정

[동아일보]

“범죄 현장을 녹화한 폐쇄회로(CC)TV 영상입니다.”

법의학자 한 사람이 범죄 현장을 실시간 촬영한 영상을 틀자 방에 있던 10여 명의 의사도 자세를 고쳐 앉으며 집중한다. 화면 속에서는 복면을 쓴 권총강도가 한 피부관리실에 들어와 권총을 난사하는 장면, 가게 한쪽에 앉아 있던 어린아이 한 명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이 나왔다.

CCTV를 통해 범죄 현장을 확인한 법의학자들은 사망한 어린아이의 부검 과정을 상세히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토론을 벌였다. 어린이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총격이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서다.

○ 미드 ‘CSI 마이애미’ 실재했네

국내에서 과학수사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진 계기는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 방영이다. 특히 드라마 배경이 된 라스베이거스와 마이애미, 뉴욕은 과학수사가 어느 곳보다 발전한 곳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17일 찾은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는 미드 CSI 마이애미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도 가장 발전된 법의학 및 과학수사 체계를 갖추고 있다. 마이애미 공항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마이애미대병원 외상센터 맞은편에 위치한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법의학본부(ME Office)’는 카운티 내에서 발생하는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3000건 이상의 의학적, 과학적 조언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법의학 체계는 크게 법의관 제도와 검시관 제도로 나뉜다. 검시관은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것이 주요 업무인 반면, 법의관은 의학적 조언과 범인 판단 여부에 결정적인 의견을 내며 부검 여부를 판단하고 수행한다.

법의관은 드라마에서처럼 현장을 직접 찾기도 하는데 경찰에게 CCTV 영상을 포함해 다양한 증거물을 요청할 수 있는 등 범죄 수사에 관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권한을 갖고 있다. 법의관은 200건 이상의 부검 경험을 갖고 있는 병리학 전문의 중에서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

에마 루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수석법의관은 “다양한 검시제도 중에서 법의학본부 체제는 현재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과학-의학 수사 제도”라고 말했다.

○ 의학-과학 연계돼 ‘범죄 꼼짝 마’

마이애미 법의학 본부가 유명해진 이유는 과학기술팀과의 긴밀한 연계 때문이기도 하다. 드라마에서처럼 법의관들은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히는 데 주력하는데, 그 과정에서 얻은 다양한 증거는 본부 내 전문 분석팀에 넘겨 공동 대응한다. 또 사건 현장의 정밀한 증거사진을 남기기 위해 3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사진팀을 운영하고 있다. 과학적 범죄 연구를 위해 부검 과정에서 얻은 인체조직을 모아두는 ‘조직은행’도 구축 중이다. 우리나라도 드라마 때문에 과학수사에 대한 대중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미국에서는 범죄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검시관 제도도 전문 법의관 제도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범죄 현장을 신속하게 찾아 초동조사를 할 검시관도 찾기 힘든 상황이다. 

또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부검을 할 때도 미국에서는 법의관 재량이지만, 우리나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나 대학 법의학팀에서 부검을 하기 위해서는 가족 동의와 함께 경찰이나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이상한 경북대 법의학과 교수는 “미국은 조사해야 할 죽음이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범죄 수사에 다양한 과학적 의학적 수단이 총동원된다”며 “우리나라도 과학적 법의학 수사기법을 강화하는 한편 제도의 개선과 현장 전문가 양성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애미=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31일 오전 대구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요원들이 CSI버스 내에서 지문감식과 족적채취 등을 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dgkyj@idaegu.com


대구경찰의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버스 활용 수사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31일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CSI 버스는 ‘증거는 현장에 있다’라는 수사의 기본에 충실하고자 만들어진 이동식 현장증거분석실로 대구에는 2012년 4월4일 서울ㆍ전북경찰청과 동시에 배치됐다.

CSI 버스는 CCTV 영상분석기, 지문ㆍ족적 검색시스템, 원심분리기, 몽타주시스템, 초음파세척기, 거짓말탐지기, 증거물보관용 냉동ㆍ냉장고 등 28종의 장비를 탑재하고 있다. 가격은 7억원이 넘는다. 

CSI 버스는 ‘출동하면 사건ㆍ사고 현장에서 모든 과학수사를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어 강력사건을 비롯한 각종 사건ㆍ사고 수사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대구경찰의 CSI 버스 출동 횟수는 2012년 65회, 지난해 140여회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다.

대구지역에서 CSI 버스가 활용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2년 9월 발생한 동부경찰서 유치장 탈주범 최갑복의 도주경로 및 은신처 현장감식 등이다.

또 지난해 5월 발생한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과 9월 남구 대명동 가스폭발 사고, 올해 1월 중구 동성로 의류매장 화재 등 지역 내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ㆍ사고 해결에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특히 대구경찰청 소속 과학수사대 요원은 12명 전원이 법의학 등 분야의 석ㆍ박사들로 PSA(정액반응검사), FOB(혈흔검사키트) 등 10여가지가 넘는 특허를 내고 전국 경찰에 보급해 경찰수사에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지역 청소년에게 친근한 경찰이미지를 심어주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2012년과 2013년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과학축전에서 CSI 버스를 전시하고 체험부스를 설치해 청소년들에게 과학수사의 이해도를 높이고 체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대구지방경찰청 김기정 과학수사계장은 “각종 사건ㆍ사고 발생 시 최대한 신속하게 CSI 버스를 현장에 투입, 활용하려 노력한다”며 “앞으로도 과학수사대는 한마음 한뜻으로 안전한 시민사회 구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 기자 june@idaegu.com





살인이나 변사 사건 현장에 출동해 초동조치 등을 책임지는 ‘경찰검시관’ 선발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데다 사후교육 등도 허술해 경찰 수사의 전문성을 높인다는 당초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3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2005년 11월 도입돼 시행 10년 차를 맞은 경찰검시관 제도가 축소·변형된 채 시행돼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을 키워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지난 2005년 당시 경찰 수사기능을 보강하기 위한 방안으로 2년 뒤인 2007년까지 보건의료 분야 석·박사 112명을 검시관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으나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경찰검시관은 68명이 재직하는 데 그치고 있다. 관련 분야 석·박사 학위를 가져야 한다는 자격요건 역시 전문학사도 가능한 것으로 하향 조정된 상태다.

무엇보다 채용 과정에서 법의학 분야에 대한 필기시험을 보지 않아 관련 분야의 전문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검시관 선발은 1차 서류전형과 2차 면접으로 이뤄지는데 면접과정에 참여한 관련 전문가들은 짧은 면접을 통해 법의학적 이론과 지식을 검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채용 후 교육 과정도 허술한 실정이다. 경찰검시관은 채용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교육을 받고 각 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에 배치되지만 국과수 사정에 따라 짧게는 1개월 만에 교육이 끝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용도 그때그때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찰검시관은 지난 2005년 18명을 모집하는 것을 시작으로 2006년 29명, 2007년 17명을 선발했다. 이후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선발이 없다가 지난 2012년에야 15명이 채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박행렬(경찰학) 대전대 교수는 “1개월의 교육만으로 일선에 배치한 사례 등은 관련 인력 운용의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해도 이해하기 어렵다”며 “시험일정이나 선발규모 등도 어느 정도 정례화돼야 관련 분야 인재들이 꾸준히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