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몸으로 말하는데…

현장에 검사도 법의학자도 없다

77세 A할머니는 지난해 10월 울산 자택에서 사망했다. 가족은 상조회사 직원을 불렀고, 장례식장으로 옮겨진 시신은 일반의사가 검안했다. 사인은 ‘심폐정지(노환 추정).’ 할머니의 죽음은 흔한 노인 사망으로 치부돼 경찰에 신고되지 않았다. 상황은 발인 2시간을 남겨두고 급변했다. 할머니가 사망하기 이틀 전 딸 B(49)와 싸운 것을 의심한 가족이 고민 끝에 경찰에 변사 신고를 한 것이다. 모녀는 평소에도 다퉜다. 이틀 전 B의 언니는 어머니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는데 B는 경찰에서 “화가 나서 뺨을 3대 때렸다”고 진술했었다. 부검 결과 할머니는 양쪽갈비뼈와 골반이 부러지고 내부 출혈이 나타나 저혈량성 쇼크로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가족이 신고하지 않았다면 사망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단순 병사로 묻혔을 A 할머니 죽음에는 한국 검시제도 문제점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검시대상을 법으로 정하지 않고 검사의 판단에 맡겨두고, 법의학자가 적어 전문 지식 없는 일반의사가 검안하는 일이 많은 한국에서는 억울한 죽음이 언제라도 생길 수 있다.



◆“검시, 법치(法治) 아닌 인치(人治)”

시체 외부와 발견현장을 조사하는 검안을 한 뒤 추가로 시체를 해부해 살피는 부검이 필요할지 결정하는 건 검사다. 그러나 정작 검사 대부분에겐 시체 상태를 살필 법의학 전문성이 없다.

외국은 다르다. 일차적인 판단을 법의관이 하거나 반드시 검시해야 하는 죽음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20여개씩 아예 못 박아 놓은 경우가 많다. 채종민 경북대 교수(법의학교실)는 “한국의 검시제도는 법치가 아니라 인치”라고 말했다.

변사 통계도 제각각이다. 경찰과 해경에서 발생하는 모든 변사사건을 지휘하는 검찰의 변사자 통계는 경찰·해경 변사자 통계와 일치하지 않는다. 대검찰청이 집계한 2012년 변사자는 3만766명이다. 같은 기간 경찰과 해경의 변사자는 3만2854명이다. 2000여명 차이가 난다.

검·경은 “통계를 뽑는 기준 차이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처음에는 변사였으나 나중에 병사나 노쇠사로 밝혀진 것은 제외했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경찰에서 처음에 변사라고 올라오는 사건은 모두 포함한 통계”라고 말했다.

◆검사도 없고 법의학자도 없는 변사현장

누군가 변을 당해 숨진 현장에는 검시 지휘권을 가진 검사도 없고, 검시 전문성이 있는 법의학자도 없다.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이 변사체로 발견된 지난 6월12일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한 매실밭에도 법의학자는 없었다.

유 회장의 시신은 발견 다음날 부검을 위해 옮겨졌을 때 처음으로 법의학자 앞에 놓였다. 결과적으로 변사체가 유 회장인 것을 확인하는 데 40여일이나 걸렸고, 그 사이 수사력이 낭비됐다. 유 회장의 사인은 끝내 알 수 없게 됐다.

검사의 직접 검시율은 지난해 4.1%에 불과했다. 초동수사 격인 현장검안은 거의 경찰이 검사를 대행한다. 현장에 나가는 경찰도 법의학 전문성은 없다. 변사체 대부분은 일반 의사가 검안한다. 법의학자가 검안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전국 법의학자는 50여명이다. 범죄 연관성이 뚜렷한 부검 요청을 감당하기도 벅찬 숫자라 현장 출동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유 회장 시신은 부패 정도가 심해 법의학자라도 신원과 사인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었을 테지만 법의학자가 발견 초기 현장에 있었더라면 사인 규명에 필요한 증거수집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게 법의학계 의견이다. 



◆무연고 사망자 30% 사인 ‘미상’

허술한 검시제도 때문에 불명확하게 처리되는 죽음은 흔하다. 무연고 사망자가 대표적이다. 

노숙인이나 혼자 사는 사람이 대부분인 무연고자가 죽으면 거의 경찰에 변사체로 신고된다. 그러면 경찰이 현장에 나가 시체를 병원에 옮겨서 법의학 지식이 없는 일반 의사가 검안하는 것이 통상 절차다. 전남 순천 매실밭에서 발견된 유 회장 변사체도 이 절차를 거쳤다. 무연고자 시신은 경찰 신원 확인을 거쳐 범죄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부검 없이 화장(火葬)된다. 유 회장의 경우 신원 확인 과정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확보하고 있던 DNA 대조를 통해 신분이 밝혀졌다.

취재팀이 서울 시내 25개 구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에서 사망한 무연고 사망 1181건 중 394건(33.4%)이 ‘사인미상’으로 처리됐다. 이들의 검시에는 법의학자가 관여하지 않았다. 어쩌면 망자가 시신으로 하는 증언을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설령 나중에 타살 가능성이 제기돼도 이미 화장한 후라 수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많은 변사가 법의학 전문가 확인없이 함부로 처리된다. 검시 관련 법령이 없어 법의관이 현장에 가려 해도 갈 수 없다. 사인의 진실이 묻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나라는 1년에 25만명 정도 사망한다. 병원에서 15만명 정도 죽고 나머지 10만명은 병원이 아닌 곳에서 사망한다. 이게 변사다. 그런데 이 10만명의 죽음을 ‘제대로 다루라’는 법령은 하나도 없다. 사건 현장에 경찰이 달려가 전공과 무관하게 아무 의사나 불러 간단한 의견을 청취한 다음 검사에게 보고하고 판사가 부검 영장을 발부한다.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나.” 한 인터뷰에서 토로한 정희선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의 개탄이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살인의심 변사는 두번 검시 원칙

결과 불일치땐 4검도… 철저 규명

“지금의 검시제도는 조선시대보다 못하다.”

경북대 채종민 교수(법의학교실)의 평가다. “조선시대에는 죽은 자가 억울하면 저승에 가지 못하고 떠돈다고 해서 억울함을 없애자는 의미에서 검시를 철저하게 했다”는 것이다.

1937년 당시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사법제도 연혁도보에 묘사된 조선시대 검시 모습. 혹시 모를 증거를 찾기 위해 시신 옷을 모두 벗긴 후 술찌꺼기, 식초, 물 등으로 시신 몸을 세척한 후 검시했다고 한다.


수사기법이야 현대가 비교할 수 없는 우위이나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겠다는 정의 구현 의지와 국민의 마지막 인권을 대하는 자세는 조선시대가 낫다는 얘기다.

특히 조선시대에 살인이 의심되는 변사사건은 “봉분(무덤)을 파헤쳐서라도 정확하게 조사해야 한다”(정조)는 지침이 법에 명시될 정도로 철저한 검시가 이뤄졌다. 또 살인 의심 변사는 원칙적으로 두 번의 검시를 실시하고, 두 명의 ‘사또(조선 지방관 속칭)’가 개별적으로 조사하도록 했다.

최초로 이뤄지는 검시를 초검(初檢), 두번째를 복검(覆檢)이라 하는데 초검관은 복검에 참여하지 못하고, 복검을 할 때는 초검의 기록을 절대 열람할 수 없다. 초검관과 복검관이 만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초검관과 복검관이 각각 조사한 결과가 일치하면 사건을 종결했지만, 그렇지 않거나 의심이 가는 경우에는 형조, 지금의 법무부에서 파견된 관원 또는 해당지역 관찰사가 임명한 특별검시관이 3검, 4검을 할 정도로 집요하게 매달렸다. 사또는 사건 조사부터 기소, 판결까지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법의학적 지식을 갖춰야 했다. 수사가 잘못되면 파직을 당할 정도로 책임도 엄중하게 물었다

검시보고서에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되, ‘글자가 많은 것을 싫어하지 말라’며 주(註)를 달아 자세히 쓰도록 했다. 이 같은 수사 원칙과 기법은 ‘원통함이 없게 하라’는 뜻의 일종의 검시 지침서 ‘무원록(無寃錄)’이 근간이 됐다. 

증수무원록


1308년 중국 원나라 왕여(王與)가 저술한 이 책은 조선에 들어와 100여년이 지난 세종 20년(1438) 11월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으로 완성됐다. 

이후 영·정조대를 거치면서 혼란한 사회상과 다양한 범죄수법을 반영해 구택규·구윤명 부자의 ‘증수무원록대전’, 그리고 서유린의 ‘증수무원록언해’로 발전했다.

물론 당시 조선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부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의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변사사건의 사망원인을 규명하고 강력범죄를 해결했다는 것은 부검을 하지 않고도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법의학과 과학수사 기술이 발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인교대 김호 교수(사회교육과)는 “조선은 법의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고 그것이 법의학에 대한 요구로 이어져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법의학을 수용한 것”이라며 “(현대가) 과학기술은 더 발달했을지 몰라도 국민 죽음에 대한 국가의 의지나 책임은 후퇴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온 국민을 경악케 한 ‘유병언 청해진해운회장 변사체’ 사건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한 직원이 “혹시나”하는 심정으로 변사체 DNA를 당국이 순천 별장 등에서 확보한 유 회장 DNA와 비교하지 않았다면 ‘장기미제’로 남을 뻔했다. 국과수 측 샘플에선 유 회장과 맞는 DNA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유 회장은 DNA 검사, 부검을 통해 신원이 확인됐지만, 부검절차 없이 묻히는 변사체가 적지 않다. 범죄 수사 현장의 부검 기피 풍토에 특유의 유교·장례문화가 겹쳐 부검 실시율이 낮은 탓이다. 고참 법의학자는 “대한민국은 살인하고 안 잡히기 괜찮은 나라”라고 말한다. 

◆변사자 증가 추세인데 부검률은 10%대

15일 경찰, 해양경찰이 취재팀에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변사 사건은 2008년 2만4194건, 2009년 2만6585건, 2010년 3만1649건, 2011년 3만2998건, 2012년 3만2854건으로 증가 추세다. 그러나 해마다 2만∼3만명에 달하는 변사자 중에서 수사 당국이 범죄 여부를 의심해 부검을 실시한 건 2008년 4294건, 2009년 4955건, 2009년 3917건, 2011년 4214건, 2012년 5511건이다.

변사자는 증가 추세인데 변사 원인을 밝히는 부검 건수가 들쑥날쑥한 건 부검 대상을 외국과 달리 법으로 정해놓지 않아 수사 실무진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실시된 결과로 해석된다. 법의학계 관계자는 “검시 관련 사회적 이슈가 있으면 부검이 인위적으로 늘어난다”며 “반대로 시절이 조용하면 부검해야 할 사건인데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변사체 발견 현장에도 일종의 ‘베르테르 효과’가 있어 유 회장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덩달아 부검 의뢰가 부쩍 늘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25만명 정도가 사망하는데 전체 사망자 대비 부검률은 2% 남짓이고 변사자 대비 부검률은 15% 안팎이다. 이는 해외에 비해 낮은 수치다.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는 “미·일 등은 보통 사망자의 15%를 검시(검안+부검) 대상으로 보는데 우리나라는 이를 10%로 삼는 데다 미·일은 검시 대상 3분의 1을 부검하지만 우리나라는 5분의 1을 부검한다”며 “억울한 죽음이 꽤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발 안 맞는 국내 검시체제

낮은 부검률에는 수사당국의 병폐가 숨어 있다. 외상 등 명백한 범죄 징후가 안 보이는 경우 일선 경찰이 “부검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내려는 시체검안자에게 “일 만들지 말라”고 눈치 주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유족이 부검을 원치 않는다”, “타살 혐의점이 없다”, “경찰이 보기에 의심이 가지 않는다”며 부검 여부를 결정하는 검사에게 수사지휘보고서를 올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형사소송법은 “변사체는 검사가 검시하여야 한다”고 정했다. 하지만 검사가 직접 검시하는 경우는 2004년 13.2%에서 2013년 4.1%로 대폭 줄었다.

전문 지식을 갖춘 법의학자는 현장에 나가지 못하고 권한도 없으며, 일부 수사진은 부검 의뢰를 기피하고, 검사는 책상 앞에서 불충분한 정보만으로 사건을 지휘하는 것이 국내 검시 체제의 맹점인 것이다. 지휘-검사, 집행-경찰, 실무-의사(법의학자), 부검 결정-판사 등 4개 직종으로 분산된 업무 시스템도 ‘부실 검시’의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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